저는 섹스를 좋아합니다  

저는 섹스를 좋아합니다              img #1
영화 [투어리스트]
 
내가 30대 여자를 품평하는 기준은 딱 한 가지다. 근사한 40대로 넘어갈 만큼 될성부른가? 자기 얼굴과 분위기 그대로에 책임지지 않을 것 같은 여자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남편과 자식 얘기밖에 못 하는 여자는 괴롭고, 자기 소신대로 사회평론 한 가닥 못 뽑는 여자는 재미없다. 이런 징후가 30대에 드러난다.
 
(...)
 
잊지 말자. 30대를 팽팽한 긴장감으로 잘 보낸 여자들이 비로소 매력적인 여성이 된다. 여자 30대는 흔들리는 게 아니라 중심을 찾아가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다중의 압력 속에서 여자 30대가 지나간다. 10년이 긴 것 같은가? 쏜살같다. 30대를 꾸려가는 당신의 비결은? 늦기 전에 누드집을 만들건, 더 늦기 전에 '성공스토리'를 쓰려 하건, 또는 일찍 창업하려 하건 30대 여자여, 당신의 '외향 외' 공격성은 위대하다.
 
- 건축가 김진애

 
1년 전쯤 이 글을 읽고 나는 누드집을 내고 싶었다. 지금도 그 마음은 여전하다. 사진작가는 섭외해 두었고 그는 촬영을 약속해주었다. 왁싱을 하고 탈색된 헤어로 뉴질랜드의 자연에서 촬영할 계획이다. 물론 지금은 계획만 그러하다. 1년째 말만...
 
컨셉은? 그냥 자연이다. 큐트, 뷰리풀, 센슈얼, 섹슈얼 다 아니고... 난 그냥 초연하게 서서 풀밭에서 찍고 싶다. 나는 끽해야 그저 자연이다. 자궁이든 감각이든 그 무엇이든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음악은 비탈리의 샤콘느를 들으며. 음악이 왜 이거여야 하냐면 내가 한때 갑자기 삶의 중반에서 Stop이라고 외치고는 잠시 서서 여러 생각 속에 놓일 때가 있었다. 그때 여러 음악을 특히 이 음악을 무한 반복해 들으며 여태의 삶을 이처럼 무한 반복해서 고민하던 중 어느 날 뉴질랜드 간헐천이 폭발하듯 자궁이 살아 일어났기 때문이다.
 
다음은 1년 반전 내가 방황을 시작하고, 삶의 각성이 시작되고, 동시에 자궁이 꿈틀거림을 만나게 될 즈음 끄적거린 글이다. 이것들이 연결되어 있는지 각기 연관성 없는 것일 뿐인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이들은 세트메뉴처럼 같이 왔다.
 

 
직장인 남성과 일반적인 남성, 혹은 군인, 직장인 20대 여성, 상큼한 여자 연예인 그리고 학생들, 그 어디에도 맹렬히 끼지는 못한 채 존재하는 존재가 있다. 20대가 아닌 여성. 사회가 만들어 놓은 일반적인 욕망의 대상에서 시시각각 한 걸음씩 멀어지고 있으며, 남성에 비해 비교적 더 많은 비율이 커리어로부터 단절되었거나 커리어를 쌓아왔다고 해도 그 자체만으로 온전히 평가받지 못하고 그녀에겐 무언가를 늘 더해서 평가하곤 한다. 그녀가 만나는 혹은 동거하는 남자의 클래스, 그녀의 여성적 매력, 그녀의 차, 가방, 구두. 이 복잡다단한 가치 매김 종목으로 등수 매겨지는 애매한 정체성 속에 사는 종족, 20대가 아닌 여성.
 
그런데 한편으론 그것들은 그녀들에게 순간 그리고 낙인처럼 강하게 찍어내는 도장일 뿐, 사회는 그녀들에게 그다지 대단한 관심들 두는 건 아니다. 낱낱이 평가받되, 주목받지 못하는 종족. 30~40대의 여성은 지금, 같은 여성끼리 피부나 핸드백을 관찰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훗날을 대비하는 정신적 자산을 창고에 쌓아두어야 할 시기인 것 같다.
 
때론 더욱 냉철하게, 더욱 깊이 자아를 들여다보고, 사회적 두뇌를 키우며, 자기 안의 중심을 세운 채, 언젠가 사회가 휘두를 그   없는 생물적 선고, "성적 대상에 있어서 한걸음 뒤로 물러서게 될 상태"를 느닷없이 망연자실하게 받아들이지 않도록...
 
안젤리나 졸리.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여자 중 하나라고들 한다. 그녀는 아름답고 강하고 자기 자신에 충실해 보인다. 10대에서 20대 초반까지 일탈을 일삼았던 그녀는 말했다.
 
"새로운 것을 탐험하지 않으면 행복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마치 우리에 갇힌듯한 기분이 들어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게 내가 가진 욕구입니다."
 
한 인터뷰에서 질문을 했다. "당신이 섹시하다는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 네. 저는 섹스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보이는 것 아닐까요?"
 
카메라맨이 잠시 움찔했던 것 같은 건 나의 착각일 거다. 그녀는 섹스를 이야기하던 말투와 하나도 다르지 않은 말투로 이렇게 이야기했나 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으세요. 일도 사랑도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우리나라에는 이런 이미지, 즉, 성적인 매력이 넘치면서도, 자기 성찰적이며, 세계 안에서 자기로서의 뚜렷한 가치관을 가지고, 또, 이를 사회적으로도 표방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인은 별로 없는 듯하다. 강하고 매혹적이며 뇌 속에 그녀만의 세계를 지닌 것 같은 멋진 여자! 노년이 되어도 멋질 것 같은 그녀. 언젠가 그녀에게 "성적 대상에 있어서 한걸음 뒤로 물러서게 될 상태"가 왔을 때도 그녀는 거부하길 바라며...
 
그녀의 주름진 노년기 어느 날, 이런 인터뷰를 바래본다.
 
"당신이 여전히 섹시하다는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뇌쇄적인 눈빛의 그녀는 실버 컬러드 헤어를 쓸어 넘기며 이렇게 말한다. 그저 나의 상상이다.
 
"아, 네? 저는 여전히 섹스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보이는 것 아닐까요?"
 
눈앞의 섹시한 카메라맨이 그녀보다 먼저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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