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30대 남자를 말하다
2019.07.01 00:49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모두를 만족시키는 연애 조언 같은 건 없다. 성별, 나이, 상황에 따라 대처해야 할 방식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백 명의 사람이 있으면 백 개의 연애 방식이 존재한다’는 게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은 개인을 그룹화하고 공통점을 도출하려 애쓴다. 혈액형과 별자리에 지독히 매달리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이런 분류화 작업을 거친 대한민국 30대 초중반 이 시기 남성들은 자신의 가치가 이전보다 상향 조정됐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고, 이를 즐기고자 한다. 그들에게 정착이란 모처럼 찾아온 황금기의 종말을 의미한다는 걸 잘 알기에 한사코 결혼을 미루며 연애와 썸의 경계를 자유로이 표류하길 원한다. 적어도 향후 몇 년간은.
| 테마파크남 (마음껏 놀되, 귀가는 필수)
그렇게 탄생한 게 바로 ‘테마파크남’이다. 테마파크는 많은 사람이 온종일 즐겁게 놀 순 있어도 하룻밤 자고 갈 만한 마땅한 숙박 시설은 없는 공간이다. 즐거움의 농도는 그 어느 곳보다 짙지만 체류가 불가하다. 그게 바로 테마파크남이 지닌 의미다.
“걔랑은 헤어졌어. 난 그저 가끔 밥 먹고 차 마시고 영화를 볼 상대를 원했는데, 자꾸만 더 깊은 관계가 되길 원하니깐. 마지막엔 ‘결혼’이라는 카드를 당연하단 듯 내밀어서 식겁해서 끝냈어.”
이들은 공통적으로 철저한 ‘얕음’을 지향한다. 이성을 만날 때 애용하는 방식은 소개팅이 아닌 책임감을 한 큰술 덜어낼 수 있는 SNS팅이며 끔찍하게 두려워하는 건 관계의 발전이다. 테마파크에 편히 머무르려는 손님들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내보내는 게 이들의 고민거리다.
결혼의 단점을 묻는 말에 “이제 내 생활을 해야 하는데 여자친구가 도통 집에 갈 생각을 안 하는 것”이라는 혹자의 우스갯소리가 호응을 얻는 건 ‘테마파크남’이 도처에 만연해 서기 때문이리라.
| 자극보단 편안함
“아까부터 왜 그렇게 한숨이야?”
“여친이랑 휴가철에 여행 가기로 했거든.”
“좋은 일인데, 뭐가 문제야?”
“애인이랑 여행 가면 봉사하는 기분이야. 너희랑 아무 생각 없이 다니던 여행이랑은 천지 차이란 말이지. 괜히 갔다가 싸울까 벌써 걱정이야.”
30대 남자를 공략하려는 여성들이 알아둬도 꽤 유용한 정보다. 30대 남자들도 소싯적 긴 생머리의 청순녀, 눈빛이 뇌쇄적이고 발육이 남다른 섹시녀 등 다양한 이상형을 꿈꿨던 적이 있다. 허나 지금 그들의 이상형을 물어보면, 의외로 한결같다. 함께했을 때 심적으로 편안함을 주는 상대다. 흡사 동성 친구와도 같은.
남자들은 잘 안다. 이성과 동행하는 게 얼마나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피곤한 일인지. 어딜 가도 눈치를 살피며, 만족도 체크가 필수다. 이런 행동은 배려라는 단어로 포장되며 남자의 당연한 덕목으로 치부된다. 여행이라도 갈라치면 숙소부터 맛집, 동선까지 신경 쓸 일 투성이다. 어느덧 나의 행복은 뒷전이다.
남자끼리 캠핑을 가고 여행을 가고 술을 마시는 게 이성의 그것보다 편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거기선 언제나 내가 우선이다. 배려가 없는 게 아니라 신뢰에 기인한 행동이다. 정신적 밀당이 익숙해진 이성과의 여행은 안타깝게도 추억보단 피로감이 쌓인다. 이를 연애의 희생이라 감내할 이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성적 취향과는 무관하게 심적으로 동성과 유사한 이성을 찾게 되는 묘한 상황이 발생한 것. 정서적 게이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함께 있으면 편하고 행복하다. 내가 행복하면 여유가 생기고 여유가 생기니 상대를 더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어느새 데이트가 설렘이 아닌 부담이 됐던 그들이 함께 하는 순간의 즐거움을 온전히 느끼고 싶은 거다. 단순한 털털함과는 미묘하게 다르며 동양보다는 서양권의 여성들에게서 흔히 찾을 수 있는 성향이다. 지금 직장인들은 정서적 게이가 차고 넘친다.
여성들의 입장에서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마초 같고 나쁜 남자들을 선호했던 여자들이 이제는 섬세하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이들에 끌리기 시작한 것. 꼼꼼하게 다이어리를 색색으로 기재하고 집 안 인테리어에 고심하는 모습이 과거 꼴불견남으로 치부됐다면 현재는 매력남의 한 요소로 자리매김했다. 그들의 이런 성향이 동성 친구와 수다를 떠는 듯한 편안함을 자아내고 심적 포만감을 느끼게 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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