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동이 섹스를 바꾼다  

야동이 섹스를 바꾼다              img #1
영화 <나인 하프 위크>
 
야동에서 보면, 애무가 없다. 감정의 흐름이 없고, 뜨거운 육탄공세와 군대 맛다시처럼 등장하는 펠라티오와 커닐링구스, 그리고 신들린 피스톤운동, 신나게 상대의 얼굴에 쏟아붓는 정액의 향연. 그래서 섹스 좀 해본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여자에게 못할 짓 중 순위권에 드는 일이 야동을 따라 하는 섹스라고 말이지.
 
충분히 공감한다. 시이나 유나같이 돈 버는 일도 아니고 컷, 떨어지자마자 질 속으로 밀려 들어오는 귀두 표피에 아픈 내색하나 없이 어떻게 무료 봉사를 할 수 있는가, 하는 거다. (시이나 유나를 모른다면, 그대는 아직 매니아는 아닌 거다)
 
여자는 야동을 따라 하는 그의 섹스에 만족을 하지 못한다. 부드럽고 가장 소프트하게 자신을 어루만져달라고 속으로 외친다. 남자는 그녀의 모든 언어를, 활처럼 휘는 허리를 통해 해석해야 한다. 몸의 구석구석 혀끝과 손톱으로 어루만지며 그녀를 더듬는 신체 어느 기관 하나 쉬지 않아야 하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항상 그렇듯이 그녀의 마음부터 애무해나가는 것이 정석이라는 것을 기초에 충실한 모범생처럼 훌륭히 보여주고 있다. 근데 반전은 뜻밖의 대상에서 이루어진다.
 
요즘 청소년들도 섹스를 한다. 외국 이야기가 아니다. 법적으로도 만 13세 이상의 청소년들은 서로 섹스를 해도 문제가 안 된다고 하니 뭐. 환경이 잘 받쳐주고 있고 눈부신 한국경제의 발전과 더불어 발육도 건실하다. 75, 80 A컵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그리 슬프지 않은 진화론적 추세다. 서로 마음이 당기니 몸도 당기고 사귀는 청소년 커플들은 꽤 적지 않은 비율로 섹스를 한다.
 
문제는 이들이 보통 초3 이후로 섹스를 즐겨 하며 곁에 두게 되는 문화가 야동 문화라는 것. 성조숙증과 스마트폰의 조합으로 충실한 컨텐츠를 서로 공유하게 되고 서로의 페이스북에는 심심찮게 섹스장면 편집본이 돌아다닌다. 이미 알 거 다 아는 처지에 보건선생의 성교육 시간은 정말 눈 가리고 아웅이다. (암만 그래도 정자와 난자의 만남이 뭔가? 맥빠지게)
 
성에 대한 호기심과 더불어 야동의 자극적인 장면들은 그들에게 충분한 교본이 된다. 강한 템포의 자극적인 섹스가 당연해지면서 웃기게도 그들은 너무도 빠르고 멋지게 섹스를 즐기고 그 이하의 자극에는 시큰둥해지는 것이다.
 
섹스의 선구자들이 피맺힌 목소리로 반대하던 야동의 오마주가 오히려 이들에게는 당연한 메뉴얼이 되면서 흔히 말하는 '기본기' 로 변해버린 것. 이것이야말로 역의 역으로 이루어낸 역변화라 아니 말할 수 없다.
 
게다가 우리 민족이 어떤 민족인가. 천성적으로 '손재주'가 좋으며, "음"을 즐기며 "몸으로 움직이는 것" 또한 즐기는 멋진 한민족이 아니던가. 뭔가 머지않은 미래가 기대되는 적당한 느낌이다. 얼마 전 '만난 지 30초 만에 합체 동영상'을 보면서 등골이 서늘해졌다. 저것도 따라 하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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