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BDSM] 변태가 되는 법_만남편  

지금 나는 술에 취해 있고, 벌써 동이 트고 있다. 너부리 형님과 약속한 마감시간은 벌써 이틀이 지나 있다. 상황이 이렇게 개판이 된 이유는 내가 게으르고 무책임한 탓도 있지만 나 자신의 변태적인 경험을 까발리는 것이 쑥스럽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이 쑥스러움이란 그냥 얼굴을 붉힐 만한 종류의 것이 아니다. 마치 스스로 해부되는 느낌이랄까? 이건 장마철 수해가 나서 장롱에 쟁여 뒀던 너절한 이부자리가 구정물에 둥둥 것과 비슷한 기분이다. 혹은 젓가락질에 충분히 유린된 밥상 위의 영광굴비가 되거나. 그리고 기형도가 말했던 [공포를 기다리는 흰 종이들]. 물론 지금 나는 펜 대신 키보드를 두드리며 뒤통수가 산더미만한 구형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지만.

하여튼, 시작해보자. 독자들에게 취중 필담을 전해 올리는 것은 죄송스럽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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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중 상당수는, 한 6개월 간 섹스를 못해서 아랫도리가 근질거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남자라면 미니스커트 밑의 미끈한 다리를, 여자라면 미소년의 팔뚝에 돋아난 독사 같은 핏줄을 눈으로 탐닉하며 입맛을 다셔본 적이 있으리라. 내겐 두 가지 욕망이 있다. 하나는 일반적인 섹스의 욕망이고, 다른 하나는 SM적인 지배욕이었다. 나는 이 [멜돔]으로서의 원초적인 욕구를 태어나서 국방의 의무를 마치기까지 직접적으로 해소해 본 적이 없었다. 이런 상태에서 인터넷을 떠돌아다니는 사진을 감상하고, 혹은 나름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오른 손으로 내 성적인 自我... 그러니까 자지(에라 모르겠다)를 주물럭거린들 숫총각의 몽정과 무엇이 다르랴.

섹스. 키스와 애무를 거쳐 삽입에 이르고.... 그리고 사정을 하고. 키스는 가벼운 뽀뽀로 시작해 이윽고 두 혀가 그레코로만형 레슬링을 하다가 가슴을 만지며 브래지어 끈의 클립을 잡고 어물대다가, 결국은 답답함에 못이긴 여자가 풀어준다는 뭐 그런 것. 앞으로 할 수도 있고(체위 이야기다) 뒤로 할 수도 있으며 모텔 화장실 벽에 붙어서 이른바 [벽치기]를 구사할 수도 있지만 어차피 섹스는 섹스며 오르가즘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비지땀을 흘리는 이인삼각의 달리기다. 

오르가즘은 생리적이다. 하지만 SM은 오감을 넘어 육감을 자극시킨다. 그 여섯 번째 감각 - 식스 센스는 대체 뭘까? 나의 변태성? 아니면 에리히 프롬이 다그쳤던 정신적인 미숙함? 여하간 배고픈 자가 숟가락을 들듯이 변태는 채찍을 들어야 한다. 나는 배고팠고 숟가락은 천 개도 넘게 있었지만 숟가락 들면 뭐하나, 먹을 밥이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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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밥을 지을 쌀을 찾아야 했다. 쌀, 즉 여성 매저키스트 - 펨섭을 찾는 것은 멜돔으로 하여금 먹음직스런 먹잇감을 찾는 듯한 기분을 제공한다. 

[나의 채찍에 신음하며 내 발에 입 맞출 자 누구냐?]

그러나 그것은 기분일 뿐, 현실은 아니다. 현실은 냉혹하다. 돔은 어떤 섭이라도 자신의 욕구를 배설할 수 있는 변기(좀 심한 표현이다만....)라면 가리지 않고 만나려 하지만 섭은 자신을 지배하고 능욕할 [자격]을 갖춘 상대를 찾으려 한다. 따라서 이 SM 연애시장에서 우위에 서 있는 것은 펨섭이며, 이 우위는 남로당 접특 보다도 더 절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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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Jean Leon Gerome)의 [노예시장]

여자 노예 한 명을 사려고 경쟁하는 열광적인 구매자들.
펨섭을 찾는 멜돔들이 바로 이런 모습이다.

 
삼천포로 잠깐 빠져보자면 여자들 특유의 수비적인 태도도 큰 이유가 된다. 게다가 자신과 데이트할 상대가 아니라 자신의 육체와 인격을 유린할 상대를 찾는다면-혹은 기다린다면- 그 조심성이 얼마나 심하겠는가. 여기엔 또 간과할 수 없는 질척한 현실이 하나 있다. 바로 멜돔으로 가장한 개나리 십장생들이 펨섭을 불러들여서 강간과 다름없는 공짜 섹스를 하고 내빼는 일이 다반사라는 것이다. 이런 정보를 꿰고 있는 펨섭들은 웬만하면 멜돔이라 자칭하는 녀석들과 만나기는커녕 온라인 채팅조차도 쉽게 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프라인 플레이라곤 해본 적도 없는 당시의 순진한 내가 이런 까칠한 현실을 어찌 알았으랴. 나 정도면 키 되겠다, 인물 되겠다, 매너 되겠다....(나 왕자병 맞다. 마음껏 욕하시길) 그냥 신호 한 번 보내면 펨섭들이 줄을 서고 나는 그녀들 중 하나를 골라잡으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마음가짐으로 펨섭을 물색한다는 것은 길거리에서 자위를 하며 허공에 정액을 뿌리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것도 누구의 눈길도 받지 않은 채로.(이게 더 비참하다. 바바리맨은 여고생들의 아크로바틱한 반응이 있기 때문에 즐거운 법.) 

냉혹한 현실의 찬바람을 장시간 맞은 나는 펨섭에 접근하는 전략을 수정했다. 그 전략이란 접특 당원들이 추천하는 작업술과 별반 다르지 않다. 바로 끈기였다. 이 시기 나는 다음과 같은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펨섭들은 아무에게나 자신의 심신을 맡기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스스로보다 인격과 심성이 존경스럽거나 최소한 존경할만한 구석이 있는 돔을 원한다. 자신의 기질이 돔이라는 이유만으로 여기저기 큰소리치며 좁은 SM 바닥을 부유하는 인간들을 백이면 백 찌질이 취급을 당한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듯이 섭은 약자지만 결정적인 순간에서는 돔보다 강하다. 섭은 돔에게 지배를 허락한다. 선택권은 섭에게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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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숲속을 누비는 배고픈 늑대에게 먹이를 간택 받을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사실 SM에서의 만남은 절대 다수가 온라인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주변의 이성에게 [나랑 데이트할래?]라고 묻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다. 그런데 [나한테 묶여볼래?]라니. 천길 땅속으로 매장당하기 딱 좋은 멘트다. 그런데 최초의 기회는 엉뚱하게도 오프라인에서 왔다. 어느날 학교에서, 복학생인 나는 친한 여후배와 함께 강의실 건물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 때 무척이나 세련된 한 여학생과 마주쳤는데, 그녀는 마침 후배의 고등학교 동기여서 둘은 나를 옆에 세워두고 한참이나 수다를 떨다가 헤어졌다.
 
며칠 후, 같은 수업을 듣는 강의실에서 나란히 앉은 후배와 나는 여느 때처럼 수다를 떨고 있었다.(무척 지겨운 강의였다.) 재미난 사실이 생각난 듯 후배가 문득 화제를 돌렸다. (※ 대화는 기억에 근거에 재구성한 것이다.)

- 오빠, 그런데 지금 하는 말 듣고 왕자병 재발하면 안돼요.

- 무슨 얘긴데?

- 며칠 전에 계단에서 만났던 그 친구가 그러는데, 오빠가 되게 잘생겼대요.

왕자병은 재발하고 말았다. 구내식당에서 돈가스 조각 하나 더 배급 받으려고 핏대를 세우는 복학생에게 이 무슨 감당하기 힘든 축복이란 말인가. 어쨌든 대화는 이어졌다.

- 그런데 그 애... 오빠 보고 잘생겼다고 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되게 이상한 애에요. 고등학교 다닐 때 우리 학교에서 완전 변태로 소문난 앤데.

- 어떤 변태길래?

- 오빠 매저키스트란 말 아세요?

- 책에서 본 적 있어. 무슨 뜻인지는 대충 알지.(왜 모르겠는가. 나의 최대 관심분야인데.)

- 걔 매저키스트에요.

- 구체적으로 어떻게?

- 왜 여학교에 보면 체육 잘하고 카리스마 있는 중성적인 애들이 하나씩 있어요. 그런 애들이 보통 굉장히 인기가 많은데... 우리 학교에도 A라고 그런 애가 하나 있었는데, 그 친구가 A의 추종자였어요.

- 하지만 그런 추종자 집단은 꽤 되잖아? 그런 애들이 다 변태는 아니라구.

- 그런데 그 친구는, 그냥 졸졸 따라다니는 정도를 넘었어요. A 앞에서 뭐랄까, 마치 애완동물처럼 행동했어요. 자기를 거둬주고 길러주길 원했다고 해야 하나, 하여간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A도 나중에는 멀리했어요. 그리고 걔가 결정적으로 이상했던 건... 숙제 같은 거 안 해 와서 선생님한테 매 맞는 거, 그걸 굉장히 좋아했어요. 

- 허허. 그거 참 이상한 여자애네. 소개 좀 시켜 줘... ㅡ.ㅡ

- ㅡ.ㅡ....

(※참고로 나는 잘생기지 않았다. 그녀의 취향이 변태적이라는 점을 상기하자.)

그녀의 성향이 펨섭인지 아닌지 확인해봐야 했다. 결국 후배의 중개 덕분에 커피숍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었고 식사도 하고 맥주도 마셨지만 도저히 SM에 대한 이야기는 꺼낼 수 없었다. 고백했다가 거절 당하길 두려워하는 남자들의 흔한 심리처럼 나도 변태를 바라보는 경멸적인 눈빛이 두려웠다. 우리는 밤이 되어서 헤어졌고 나는 집에 돌아와서 그녀에게 [잘 귀가했느냐]고 묻는 안부전화를 걸었다. 나는 얼굴을 맞대고는 불가능했던 질문을 던졌다. SM에 대해 아세요? 나는 사디스트입니다. 00씨는 펨섭이 아니신가요?

대답은 모두 예스였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서로가 변태임을 확인했으니 이제 그녀를 유혹해야 했다. 나는 플레이를 하고 싶다고 했고 그녀는 만나서 결정하자고 했다. 자신의 친구와 친한 선배다 보니 분명히 온라인에서 확인하기 힘든 신뢰성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와 만나서 정곡을 찔리는 질문을 들어야 했다.

저에게 관심이 있으신 건가요? 아니면 저와의 플레이에 관심이 있으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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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누구신가요?

두 번째에 가까웠지만 나는 둘 모두라고, 약간의 거짓을 섞어 대답했다. 나는 내가 왜 그녀에게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는지를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녀의 조용하고 지나치게 내성적인 성격, 나지막하게 깔린 듯한 조심스러운 음성, 창백한 피부에 역시 창백한 화장, 그리고 유난히 짙은 아이새도,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 은근하고 소리 없는 걸음걸이. 마치 길거리의 벽화처럼 숨겨져 있지만(왕따 스타일이다....) 그러나 한 번 발견하고 나면 자꾸만 도발적으로 다가오는 요소들 - 코발트색으로 치장된 발톱, 너무 폭이 좁아서 목에 감긴 듯한 목걸이, 졸린 듯한 눈매, 발가락을 부드럽게 옥죄고 있는 검은 색 샌들 끈 등. 이 모든 조합이 그녀를 발견하기는 힘들지만 자꾸만 소유하고 싶어지는 노예로 비춰지게 한다고. 그리고 운 좋은 발견자인 나 혼자서만 독점하고픈 살아있는 인형이라고. 이것은 사실 진심이기도 했다. 그녀는 마치 나른한 오후의 망상에서 빠져 나온 듯한 몽환적인 존재였다.

그녀는 잠재적인 지배자에게 ‘발견되었다’는 대목을 특히 마음에 들어 했다. 우리는 장기적인 D/s(지배/복종) 관계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채 드디어 플레이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플레이의 성격과 종류, 범위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두고 토론했다. 예를 들면 출혈사고가 생겨서는 안 된다는 것, 플레이에 섹스는 포함되는 것인지, 그리고 섹스의 기준은 어디서부터인지 등. 플레이 시점은 그녀의 생리가 완전히 끝나는 며칠 후. 집으로 돌아온 나는 미친 듯이 인터넷을 뒤지며 실전 노하우를 사냥해야 했다.

초보가 뭘 알겠는가. 일단 플레이의 사례, 노하우와 내 평소의 판타지를 적절히 혼합해 어떻게 플레이를 할 건지 와꾸를 짜야 했다. 매뉴얼은 습득할 수 있어도 준비물이 복잡했다. 예를 들어 반디지를 한다고 치자. 부드러운 재질의 마(麻)로프나 면(綿)로프가 있어야 한다. 아무 걸로나 함부로 묶어대다간 피가 안 통하거나 뼈가 부러지는 등 다치기 십상이다. 그리고 올바로 묶는 법도 충실히 숙지해야 한다. 손재주가 없는 나로서는 가장 힘든 것이 반디지였다. 하지만 집념을 가지고 가장 쉬운 결박법 하나를 암기했고 쓸모 없는 옷들을 찢어 연결해 야매로 밧줄 하나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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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상품화되어 판매중인 반디지용 마(麻)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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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들(paddle)은 원래는 배 젓는 노를 뜻하는 말인데 
BDSM에서는 엉덩이를 때리기 위한 널찍한 도구를 뜻한다. 
사진 속의 패들은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구멍이 뚫려 있다. 
구멍 뚫린 금속 패들도 있는데, 한 대 맞으면 기절할 정도라고 한다.

케인(cane)은 승마용 회초리나 지팡이 등 주로 얇은 막대를 총칭하는 말이다.
 
그 다음은 스팽킹(Spanking : 때리기)을 위한 케인이나 패들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걸 당장 어디서 구하나. 그래서 베란다에서 초등학교 때 쓰던 먼지 묻은 잠자리채를 잘라 역시 야매로 회초리를 하나 만들었고 구석에서 굴러다니는 원형 손거울과 기타 도구로 쓸 법한 것들을 긁어모아 너절한 부랑자 패키지를 완성했다. 대형견(犬)용 개목걸이와 관장기구는 따로 구입했다. 마지막 단계는 이미지 트레이닝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는 신천의 한 커피숍에서 플레이를 위해 접선했다.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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