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의 의미 - 나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2019.08.10 00:49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스물여섯 살 때까지 섹스란 내게 ‘시작’을 의미했다. 누군가와 섹스를 하고 나면 전에 없던 유대감이 생겨나면서 그 사람과는 어떠한 형태로든 지속성이 부여된 관계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침대에서는 다른 곳에서 알 수 없는 그 사람의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신체의 특징이나 고유의 체취, 성적 취향 등 하다못해 젖꼭지에 난 털의 개수까지도 말이다. 그래서 섹스라는 것에 담겨있는 의미는 수만 가지가 있겠지만, 맨 처음에 말했듯이 나는 섹스를 주로 ‘시작’으로만 해석했었다. 27살 3월, 그녀를 만나기 전까진 말이다.
독서토론모임에서 만난 그녀와 나는 비슷한 업종에 비슷한 감성을 가지고 있었다. 영화와 책, 그리고 역사, 정치 등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 걸친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서로의 감성을 섞었고, 감성의 두께가 두꺼워지면서 금방 몸을 섞었다.
그녀는 섹스라는 행위 자체를 참 좋아했다. 언젠가 내게 "나 여자 중에서, 아니 여느 남자랑 비교했을 때도 절대 뒤지지 않을 강한 성욕을 가지고 있어." 라고 속삭인 적도 있었다. 나도 섹스를 좋아하는 편이었기에 그녀와 나는 섹스를 하는 빈도수가 상당히 잦았고, 섹스하지 않을 때도 섹스에 관련된 대화를 종종 나누곤 했다. 이전의 연인들과는 성에 대해서 툭 터놓고 대화를 나눈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녀와 함께 몸과 입으로 섹스를 편하게 다룰 때마다 나는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섹스를 할 때, 그녀에겐 하나의 부담스러운 습관이 있었다. 섹스가 후반부로 돌입해 결말에 거의 치 닿을 때면 그녀는 꼭 내 위로 올라가서 거칠게 허리를 돌리며 오르가즘을 느껴야만 했다. 그 오르가즘이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본인이 느끼는 그녀만의 포인트가 확실히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녀의 표정과 신음, 몸짓으로 어림잡아 그녀가 오르가즘을 느꼈는지를 구분하곤 했다. 물론 그녀의 행동이 왜 부담스러운 습관이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가 굳이 그 습관을 ‘부담스럽다’고 말한 이유가 있다.
사실 섹스를 할 때마다 남자의 컨디션은 항상 좋을 수 없다. 여자에게 위험한 날이 있는 것처럼, 남자에게도 위험한 날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습관에는 자비가 없었다. 섹스의 후반부에 그녀가 마지막 제스처를 취하기 전에 내가 먼저 싸버리면, 그녀는 어김없이 빈정거렸다.
나는 개인적으로 섹스가 육체의 합일인 동시에 정신의 합일이라고도 생각한다. 때문에 정신적으로 으쌰으쌰하면서 상대방을 응원해주고 말을 신경 써서 해주면 그만큼 육체도 분명히 따라온다. 하지만 반대로 본인이 만족하지 않았다고 그것을 대놓고 앞에서 심하게 티 내면 상대방은 의기소침해져서 다음번 섹스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렇기에 나는 가끔은 그녀가 이해해주길 바랐다. 내가 생각하는 궁극의 사정 포인트와 그녀가 생각하는 궁극의 사정 포인트가 당연히 다르겠지만, 한 번씩은 내가 싸고 싶을 때 편하게 싸는 것을 그녀가 허락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녀는 겉으로 보기엔 리드를 당하는 듯했지만 실제 침대 주도권을 절대 놓지 않았고 나중에는 나도 불필요하게 내가 원하는 체위를 고수하거나 피스톤 운동을 너무 격하게 하는 등의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기도 했다.
물론 그녀와의 섹스를 통해서 사정시간을 지연하거나 체위와 관련된 기술적인 면에 대한 비약적인 발전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섹스의 기반에 깔려야 하는 에로스한 감성은 계속해서 시들어 가기만 했다.
그렇게 그녀와 나는 딱 100일 동안 몸과 마음을 섞었다. 처음에는 ‘나한테 이렇게 잘 맞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라고 생각하며 달콤한 시간을 보냈지만 시간이 갈수록 처음의 기대와는 다른 서로의 모습에 놀랐고 실망했으며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것도 없이 우리는 이별을 맞이했다. 먼저 헤어지자고 한 사람은 나였다. 그리고 내가 그녀와의 이별을 생각하게 된 것은 바로 섹스 때문이었다. 분명 섹스로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지만, 언제부턴가는 섹스 사이 사이에 스트레스가 끼어들었고, 시간이 갈수록 그녀와의 섹스는 내게 부담이 되어 있었다.
헤어진 후에도 그녀에게선 계속해서 연락이 왔다. 나는 한번 헤어진 사람들은 다시 만나도 무조건 같은 이유로 또 헤어진다는 하나의 진리에 대해서 맹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그녀의 연락도 끊길 때쯤 그녀와 나는 어느 한 브랜드 행사장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그 순간 우리는 서로를 아는 척하지 않았다. 분명 서로가 서로를 인지했는데도 우리는 서로에게 가벼운 눈인사도 하지 않았다. 텁텁하기도 하면서 어찌 보면 당연한 상황이었다. 나는 헤어진 후에 연인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우연히 마주친 날 새벽에 그녀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받지 않던 그녀를 전화를 그날은 받았고 우리는 얼굴이나 한번 볼까하는 생각으로 약속을 잡았다. 물론 얼굴이나 한번 볼까하는 말은 명분이었고, 우리 둘은 다시 만나보자 라는 생각을 가지고 다시 마주했다.
내 입장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하자면 그때는 새로 사귀는 사람도 없었고 외로웠고, 그렇게 우연히 얼굴을 마주친 것이 어떻게 보면 인연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렇게 그녀와 나는 다시 만나 두 손을 맞잡고 깨어진 ‘우리의 조각’을 다시 맞추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만난 그 날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모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섹스했다. 전보다 더 격렬하지도 덜 격렬하지도 않았다. 그냥 딱 예전에 했던 것처럼. 처음엔 재회의 첫 섹스이니 방에 들어가자마자 거칠게 키스를 퍼부으며 사랑이 넘치는 격렬한 섹스를 하겠다고 다짐 아닌 다짐을 했지만, 막상 방에 들어가서는 그냥 하루에 세 끼를 먹고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습관적인 섹스를 했다.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위로 올라가서 입술에서부터 가슴까지 혀로 여기저기를 구석구석 핥는, 하지만 귀나 등까지는 가지 않는. 그것은 그녀와 나 사이에 형성되어 있던 애무 패턴이었다. 원래 그녀는 애무를 받는 것도 하는 것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고 애무 없이도 상당히 빨리 젖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건조한 애무를 금방 거두고 얼른 삽입했다.
그날의 그 섹스를 그녀가 정말로 만족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날의 그녀는 ‘좋다’, ‘사랑한다’, ‘맛있다’ 등 상당히 만족스러운 표현을 계속해서 뱉었고, 우리는 침대와 화장대 앞, 원형 의자 등을 오가면서 섹스를 이어갔다. 그렇게 한참을 하고 있는데 나는 문득 섹스 중에 딴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재회의 섹스에 대한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일전의 그녀와의 섹스에서 나를 힘들게 했던 그녀의 습관이 오늘도 또 나오겠지‘라는 아이러니한 생각. 그렇게 한창 딴 생각을 하는 도중에 그녀는 어느샌가 내 위에 타서 내 것을 쪼이며 본인만의 오르가즘을 찾고 있었고,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나는 그녀의 오르가즘과 그녀의 허락 후에 사정했다.
섹스를 마치고 나는 내 속에서 느껴지는 이 감정을 어떤 문장으로 풀어내야 할지 몰랐다. 좋지도 싫지도 않지만, 약간은 찝찝하고 불편한 느낌. 이것은 사랑도 설렘도 아니었다. 연인과 다시 시작하기로 한 날, 나름 격렬하게 나눈 섹스였음에도 나는 섹스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저 티슈를 한두 장 더 뽑아서 그녀에게 건넬 뿐이었다.
아마도 예상했겠지만, 그 섹스 이후로 그녀와 나는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된 것에는 내 책임이 전적으로 컸다. 다시 잘해보려고 만난 그날의 섹스를 통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내가 먼저 그녀의 습관을 기다렸고, 그 습관을 다시 몸으로 느낀 순간 나는 사정과 함께 내 정액과 그녀의 관계를 함께 묶어 내 안에서 밖으로 흘려보냈다.
나에게 누군가와의 섹스란 그 사람을 온전히 느끼면서 뭔가 끈끈해지는 시작의 의미가 강했는데, 그녀와는 ‘섹스’를 통해서 시작이 아닌 끝을 맺게 됐다. 나는 다시 만난 그녀에게 도대체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그녀를 다시 만나서 내가 가지고 있던 섹스의 의미를 다시 끄집어내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증명은 처참히 무너졌고 그녀와의 관계 또한 끝이 났다. 섹스는 더 이상 내게 시작의 의미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제 섹스는 시작일 수도 있고 끝을 의미할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또 다른 사람을 만나면 섹스는 내게서 또 다른 의미로 확장될 것이다. 그녀와 헤어진 지 몇 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시작과 끝 그 사이에서 섹스 라는 것을 어디쯤 위치해 놓아야 할지 가늠해본다.
침대에서는 다른 곳에서 알 수 없는 그 사람의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신체의 특징이나 고유의 체취, 성적 취향 등 하다못해 젖꼭지에 난 털의 개수까지도 말이다. 그래서 섹스라는 것에 담겨있는 의미는 수만 가지가 있겠지만, 맨 처음에 말했듯이 나는 섹스를 주로 ‘시작’으로만 해석했었다. 27살 3월, 그녀를 만나기 전까진 말이다.
독서토론모임에서 만난 그녀와 나는 비슷한 업종에 비슷한 감성을 가지고 있었다. 영화와 책, 그리고 역사, 정치 등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 걸친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서로의 감성을 섞었고, 감성의 두께가 두꺼워지면서 금방 몸을 섞었다.
그녀는 섹스라는 행위 자체를 참 좋아했다. 언젠가 내게 "나 여자 중에서, 아니 여느 남자랑 비교했을 때도 절대 뒤지지 않을 강한 성욕을 가지고 있어." 라고 속삭인 적도 있었다. 나도 섹스를 좋아하는 편이었기에 그녀와 나는 섹스를 하는 빈도수가 상당히 잦았고, 섹스하지 않을 때도 섹스에 관련된 대화를 종종 나누곤 했다. 이전의 연인들과는 성에 대해서 툭 터놓고 대화를 나눈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녀와 함께 몸과 입으로 섹스를 편하게 다룰 때마다 나는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섹스를 할 때, 그녀에겐 하나의 부담스러운 습관이 있었다. 섹스가 후반부로 돌입해 결말에 거의 치 닿을 때면 그녀는 꼭 내 위로 올라가서 거칠게 허리를 돌리며 오르가즘을 느껴야만 했다. 그 오르가즘이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본인이 느끼는 그녀만의 포인트가 확실히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녀의 표정과 신음, 몸짓으로 어림잡아 그녀가 오르가즘을 느꼈는지를 구분하곤 했다. 물론 그녀의 행동이 왜 부담스러운 습관이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가 굳이 그 습관을 ‘부담스럽다’고 말한 이유가 있다.
사실 섹스를 할 때마다 남자의 컨디션은 항상 좋을 수 없다. 여자에게 위험한 날이 있는 것처럼, 남자에게도 위험한 날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습관에는 자비가 없었다. 섹스의 후반부에 그녀가 마지막 제스처를 취하기 전에 내가 먼저 싸버리면, 그녀는 어김없이 빈정거렸다.
나는 개인적으로 섹스가 육체의 합일인 동시에 정신의 합일이라고도 생각한다. 때문에 정신적으로 으쌰으쌰하면서 상대방을 응원해주고 말을 신경 써서 해주면 그만큼 육체도 분명히 따라온다. 하지만 반대로 본인이 만족하지 않았다고 그것을 대놓고 앞에서 심하게 티 내면 상대방은 의기소침해져서 다음번 섹스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렇기에 나는 가끔은 그녀가 이해해주길 바랐다. 내가 생각하는 궁극의 사정 포인트와 그녀가 생각하는 궁극의 사정 포인트가 당연히 다르겠지만, 한 번씩은 내가 싸고 싶을 때 편하게 싸는 것을 그녀가 허락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녀는 겉으로 보기엔 리드를 당하는 듯했지만 실제 침대 주도권을 절대 놓지 않았고 나중에는 나도 불필요하게 내가 원하는 체위를 고수하거나 피스톤 운동을 너무 격하게 하는 등의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기도 했다.
물론 그녀와의 섹스를 통해서 사정시간을 지연하거나 체위와 관련된 기술적인 면에 대한 비약적인 발전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섹스의 기반에 깔려야 하는 에로스한 감성은 계속해서 시들어 가기만 했다.
그렇게 그녀와 나는 딱 100일 동안 몸과 마음을 섞었다. 처음에는 ‘나한테 이렇게 잘 맞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라고 생각하며 달콤한 시간을 보냈지만 시간이 갈수록 처음의 기대와는 다른 서로의 모습에 놀랐고 실망했으며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것도 없이 우리는 이별을 맞이했다. 먼저 헤어지자고 한 사람은 나였다. 그리고 내가 그녀와의 이별을 생각하게 된 것은 바로 섹스 때문이었다. 분명 섹스로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지만, 언제부턴가는 섹스 사이 사이에 스트레스가 끼어들었고, 시간이 갈수록 그녀와의 섹스는 내게 부담이 되어 있었다.
헤어진 후에도 그녀에게선 계속해서 연락이 왔다. 나는 한번 헤어진 사람들은 다시 만나도 무조건 같은 이유로 또 헤어진다는 하나의 진리에 대해서 맹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그녀의 연락도 끊길 때쯤 그녀와 나는 어느 한 브랜드 행사장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그 순간 우리는 서로를 아는 척하지 않았다. 분명 서로가 서로를 인지했는데도 우리는 서로에게 가벼운 눈인사도 하지 않았다. 텁텁하기도 하면서 어찌 보면 당연한 상황이었다. 나는 헤어진 후에 연인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우연히 마주친 날 새벽에 그녀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받지 않던 그녀를 전화를 그날은 받았고 우리는 얼굴이나 한번 볼까하는 생각으로 약속을 잡았다. 물론 얼굴이나 한번 볼까하는 말은 명분이었고, 우리 둘은 다시 만나보자 라는 생각을 가지고 다시 마주했다.
내 입장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하자면 그때는 새로 사귀는 사람도 없었고 외로웠고, 그렇게 우연히 얼굴을 마주친 것이 어떻게 보면 인연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렇게 그녀와 나는 다시 만나 두 손을 맞잡고 깨어진 ‘우리의 조각’을 다시 맞추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만난 그 날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모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섹스했다. 전보다 더 격렬하지도 덜 격렬하지도 않았다. 그냥 딱 예전에 했던 것처럼. 처음엔 재회의 첫 섹스이니 방에 들어가자마자 거칠게 키스를 퍼부으며 사랑이 넘치는 격렬한 섹스를 하겠다고 다짐 아닌 다짐을 했지만, 막상 방에 들어가서는 그냥 하루에 세 끼를 먹고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습관적인 섹스를 했다.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위로 올라가서 입술에서부터 가슴까지 혀로 여기저기를 구석구석 핥는, 하지만 귀나 등까지는 가지 않는. 그것은 그녀와 나 사이에 형성되어 있던 애무 패턴이었다. 원래 그녀는 애무를 받는 것도 하는 것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고 애무 없이도 상당히 빨리 젖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건조한 애무를 금방 거두고 얼른 삽입했다.
그날의 그 섹스를 그녀가 정말로 만족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날의 그녀는 ‘좋다’, ‘사랑한다’, ‘맛있다’ 등 상당히 만족스러운 표현을 계속해서 뱉었고, 우리는 침대와 화장대 앞, 원형 의자 등을 오가면서 섹스를 이어갔다. 그렇게 한참을 하고 있는데 나는 문득 섹스 중에 딴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재회의 섹스에 대한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일전의 그녀와의 섹스에서 나를 힘들게 했던 그녀의 습관이 오늘도 또 나오겠지‘라는 아이러니한 생각. 그렇게 한창 딴 생각을 하는 도중에 그녀는 어느샌가 내 위에 타서 내 것을 쪼이며 본인만의 오르가즘을 찾고 있었고,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나는 그녀의 오르가즘과 그녀의 허락 후에 사정했다.
섹스를 마치고 나는 내 속에서 느껴지는 이 감정을 어떤 문장으로 풀어내야 할지 몰랐다. 좋지도 싫지도 않지만, 약간은 찝찝하고 불편한 느낌. 이것은 사랑도 설렘도 아니었다. 연인과 다시 시작하기로 한 날, 나름 격렬하게 나눈 섹스였음에도 나는 섹스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저 티슈를 한두 장 더 뽑아서 그녀에게 건넬 뿐이었다.
아마도 예상했겠지만, 그 섹스 이후로 그녀와 나는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된 것에는 내 책임이 전적으로 컸다. 다시 잘해보려고 만난 그날의 섹스를 통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내가 먼저 그녀의 습관을 기다렸고, 그 습관을 다시 몸으로 느낀 순간 나는 사정과 함께 내 정액과 그녀의 관계를 함께 묶어 내 안에서 밖으로 흘려보냈다.
나에게 누군가와의 섹스란 그 사람을 온전히 느끼면서 뭔가 끈끈해지는 시작의 의미가 강했는데, 그녀와는 ‘섹스’를 통해서 시작이 아닌 끝을 맺게 됐다. 나는 다시 만난 그녀에게 도대체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그녀를 다시 만나서 내가 가지고 있던 섹스의 의미를 다시 끄집어내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증명은 처참히 무너졌고 그녀와의 관계 또한 끝이 났다. 섹스는 더 이상 내게 시작의 의미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제 섹스는 시작일 수도 있고 끝을 의미할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또 다른 사람을 만나면 섹스는 내게서 또 다른 의미로 확장될 것이다. 그녀와 헤어진 지 몇 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시작과 끝 그 사이에서 섹스 라는 것을 어디쯤 위치해 놓아야 할지 가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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