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는 원기옥이 아니다
2019.08.27 00:49
영화 <드래곤볼 에볼루션>
결혼을 앞둔 연인이 있었다. 둘은 ‘혼전순결’을 지키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오래 참은 만큼, 결혼 후에는 서로 더 뜨겁게 사랑하자고 다짐했다.
마침내 둘은 결혼했다. 꿈 같은 신혼 생활이 시작됐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신혼인데도 남편이 며칠이나 밤일을 해주지 않는 것이었다. 아내는 말은 못하고 잔뜩 부아만 치밀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잠자리에 들기 전 책을 읽던 남편이 느닷없이 아내의 팬티 속으로 손을 쑤욱 집어넣었다. 아내는 이제야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한데 남편은 금세 손을 도로 빼더니 태연히 책장을 넘기는 것이었다.
아내는 폭발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따졌다.
“당신 지금 뭐하는 거예요? 나 놀리는 거예요?”
남편이 말했다.
“응? 아니 책장을 넘기려는데 손가락이 말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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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냉장고를 부탁해’를 즐겨본다. 얼마 전에는 강균성, 강예원 편을 봤다. 어쩌다 그런 주제가 나왔는지 모르겠는데 강균성이 혼전순결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자기는 혼전순결을 꼭 지키겠다는 뭐 그런 다짐을 했다. 여성 게스트인 강예원도 강한 동감을 표했다.
혼전순결하겠다는 사람을 말릴 생각은 없다. 나는 지킬래도 이미 늦었다고 해서 굳이 자기 좆을 무기한 봉인한다는 사람들에게 열을 낼 필요는 없으니까.
다만 '혼전순결'이라는 단어 자체는 마음에 안 든다. 순결의 기준을 고작 처녀막(사실 이 단어 또한 폭력적이다. 질막이란 표현이 알맞다 한다. 섹시고니 님께 배웠다)의 유무나, 자기 위로에 핸드잡 말고 다른 도우미가 있었는지 여부에 둔다는 게 과연 합리적인가.
다들 그냥 별 뜻 없이 쓰는 말이니 이 정도 해두고, 내가 정말 코웃음 쳤던 장면은 따로 있었다. 강균성이 자신의 축적된 리비도(이런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맥락상)를 결혼 후에 폭발 시키겠다며 포효하는 장면이었다. 모든 이가 폭소를 터뜨렸다. 나도 물론 재미있었다.
그런데 문득 10년도 더 된 어느 고위직 여성 공무원의 인터뷰 장면이 떠올랐다.
그 여성 공무원은 남편과의 일화를 얘기했다. 둘은 순수한 사랑을 가지고 혼전순결을 끝까지 지켜냈으며 신혼 첫날 밤 그 아껴왔던 사랑의 에너지를 용광로처럼 활활(이런 상투적 비유는 아마 안 했을 것이다) 불태웠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첫날 밤에 황홀경을 체험했다는 것.
그때도 그랬다. 바로 그 장면에서 나는 '냉부'의 강균성 편을 볼 때처럼 코웃음을 쳤더랬다. 이 기시감은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에서 주인공이 부조리를 목격할 때마다 구토감을 느꼈던 그 작동과 흡사하다(그랬으면 좋겠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혼전순결 자체에는 거부감이 없다. 실제 내 주변에는 혼전순결을 철저히 지키는(철저히, 라는 건 딥키스도 자제한다는 의미) 종교인들도 많다. 그들과 이 주제로 논쟁을 벌이는 일은 없다. 이유야 어쨌든 본인들이 지키겠다는데 내가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다만 간혹 꼴 같잖을 때가 있다. 그 순결의 수호자들이 자신을 무슨 오르가즘의 마시멜로를 차곡차곡 쌓아두는 부지런한 개미들처럼 묘사할 때다. 대개 종교적인 이유로 혼전순결을 지킨다 하면 왠지 촌스러 보이니까 이런 드립을 치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세상에는 오래 묵혀야 포텐이 터지는 일들도 있다. 와인 숙성하듯, 장 담그듯 말이다. 하지만 기회 닿을 때마다 경험치를 쌓아야 발전하는 것들도 있다. 섹남섹녀 분들은 익히 아시겠지만, 섹스는 당연히 후자다.
섹스는 오래 참을수록 그저, 남자는 빨리 쌀 뿐이고 여자는 둔감해질 뿐이다.(잦은 자위를 통해 관리를 해왔다면 좀 낫겠지만 그건 미봉책일 뿐) 다들 자신의 첫 경험을 생각해보라. 얼마나 금방, 소리 없이, 바람처럼 스쳐갔었는지를. '어? 이게 다야?'
섹스는 할수록 느는 것이고 할수록 좋아지는 것이다. 에너지 축적은 기껏해야 하루 이틀, 일주일 참았을 때나 효용이 있는 것이지 무턱대고 참는다고 마법봉에 마나 쌓이듯 쌓이는 게 아니다.(실제 ‘카마수트라’에는 새 파트너를 만나고 첫 열흘 간은 섹스를 삼가는 것이 좋다는 구절이 있기도 하다.)
해서 마시멜로 모으듯 성적 에너지를 축적해왔다고 해서 그 무시무시한 활력이 황홀한 첫 경험을 보장해줄 거라 믿는 건 그 자체로 하나의 신앙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 고위직 여성 공무원께서 자신과 남편은 에너지를 축적하여 첫날 밤에 황홀함의 포텐을 터뜨렸다고 자랑스럽게 늘어놓을 때 중얼거렸다.
“뻥치시네.”
그렇다. 그건 뻥카다. 있어 보이려고 하는 소리일 뿐이다.(물론 그녀가 내츄럴본 섹 스천재일 가능성도 있겠지만 암튼)
‘결혼하고 처음 했는데 그간 열심히 참아와서 그런지 우린 더할 나위 없이 뜨거운 밤을 보냈어’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그건 사실 자신의 실망감을 감추기 위한 심리적 자위일 뿐이다. 말도 안 된다. 그냥 솔직히 ‘생각보다 별로던데. 그지만 앞으로 열심히 하면 점점 좋아지지 않을까’라고 말하지. 그럼 내가 집들이 때 딜도라도 하나 사갈 텐데.
실제 주변에 결혼한 커플들을 봐도 그렇다. 그네들의 성생활을 넌지시 물어보면 결혼 전에도 자주 섹스를 하던 커플들이 결혼 후에도 미친듯이 섹스를 해대지, 순결을 수호하던 이들이 별안간 섹마로 변절하는 경우는 없다.
해서 결론은 ‘본인 생식기의 순결을 결혼 전까지 수호하거나 말거나 그건 본인의 자유지만, 그렇게 해서 모은 리비도 덕분에 결혼 후에 섹스 포텐이 자연 발생적으로 터지리라 기대하는 건, 올해는 착한 일 많이 했으니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핀란드에서 직배송으로 애플 맥북 정도는 배송 될 거라 기대하는 바나 다름 없다’라는 것이다.
섹스는 원기옥이 아니다. 기를 모아봐야 몽정이나 안 하면 다행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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