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동은 오늘, 자위는 내일
2019.08.30 12:49
영화 <돈존>
지난 칼럼에서 다뤘던 주제를 이어가려 한다. ‘너 없이는 자위도 잘 안 돼'라는 이전 칼럼에서 나는 한 살 한 살 나이가 먹어갈수록 사그라지는 성적 상상력과 발끈 에너지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었더랬다. 한데 실은 요즘 와서는 그 지난한 성적 상상력에 불을 지필 방법을 몇 가지 찾은 참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자위가 가능할 만큼 나 자신을 흥분시킬 요령을 나름 터득했다는 말이다.
개중 하나는 이렇다. 야동을 본다. 그게 무슨 대단한 요령이냐 하겠지만, 요컨대 야동을 보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말이다. 일단 몰카식 야동이나 미국식 발정 코스프레 야동은 취급하지 않는다. 고작 그런 걸로는 성적 상상력에 불똥도 튀지 않는다.
나는 이제 데이트 컨셉의 일본 야동만을 구한다.(애당초 데이트 컨셉의 야동은 일본산뿐이다.) 데이트 야동은 총 재생 시간이 거의 두 시간에 육박하는 경우가 대개이며 초반 삼십 분에서 한 시간 분량은 섹스 없이 그저 일인칭 시점으로 데이트만 즐기는, 일종의 왜색 짙은 특촬물이다. 재생 시간이 반이 넘어갈 즈음에 가서야 호텔방을 잡고 샤워 가운을 입은 그녀와 간단히 와인 한 잔을 하다가 부끄부끄하며 핥고 빨기를 시작한다.
데이트 야동 감상 시의 요령은 이렇다. 나는 이 두 시간 짜리 야동을 영화 보듯 다 본다. 간혹 한글 자막이 포함된 경우는 끝까지 다 보기가 더 수월하다.(야동에 자막이라니, 신선하지 않은가!) 또한 야동 시청 시 한 손은 생식기에, 한 손은 스킵을 위해 키보드 우 방향키에 두는 전통적인 포즈를 거부하고 정 자세로, 심지어는 소설이나 인문서를 틈틈이 읽어가며 영화 분량의 야동을 처음부터 끝까지 충실히 감상해 주는 것이다. 이 와중에 수음은 하지 않는다. 발기가 되지 않아도 관여치 않는다.
데이트 야동 감상을 마치고 나면 자위를 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한다. 어떨 때는 느닷없이 다음날 자위를 한다. 그러니까 데이트 야동을 통해 ‘데이트를 했던’ 가상의 기억을 더듬으며 흥분하는 것이다. 27인치 화면 속의 미카 짱이 어디를 만져줬을 때 움찔거렸는지를 상기해가며 수음을 하다 보면, 가끔은 나가 어찌 말 한 마디 안 통하는 일본섹녀와의 섹스런 추억을 가질 수 있는지 아리송해지기도 한다.
엔간한 야동 가지고는 발기도 못하는 미미한 상상력의 내가 소개하는 데이트 야동 활용법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데이트 야동을 받는다.
2. 고고하고 지적인 자세로 2시간 분량의 야동을 영화 보듯 감상한다. (스킵 따위 하지 않는다.)
3. 데이트 야동의 내용을 마치 내 경험인 양 가슴 깊이 새기고는 일상을 이어간다.
4. 그러다 문득 미카 짱(혹은 나오코 짱)과의 회전차 안에서의 은밀한 전초전과 호텔방에서의 목적 달성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폭풍수음을 만끽한다.
자지에는 손도 대지 않으면서 야동을 보고, 야동의 내용을 마치 내 경험인 양 기억 속에 저장하고, 그 ‘가상의 추억'을 더듬으며 자위를 하고. 왜 이런 미친 짓거리를 자랑스레 늘어놓느냐 물으면, 그게 실은 정말 자랑이기도 하다. 요컨대 떡방아 하이라이트 장면 만을 찾아 연발로 스킵해가며 책상 밑으로 정액을 쏟아내는 흔해 빠진 자위 가지고는 변태로 불릴 자격도 없다 이거다.
우아한 자세로 한 손에는 블랙마운틴 한 잔, 다른 손에는 자크라캉 입문서 따위를 들고 2시간 짜리 데이트 야동을 여유롭게 감상하고서는, 다음날 저녁 샤워 중에 문득 전날 본 야동의 내용을 떠올리며 자위를 즐기는 행태야말로 진정 유비쿼터스 시대에 걸맞은 상변태 라이프스타일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렇듯 나는 성적 상상력 부재라는 시련에 굴하지 않고 외려 상종 못할 변태력을 키워가는 본인의 에티튜드가 퍽 자랑스럽다. 덧붙여, 마광수 교수께서 말씀하시길 ‘변태일수록 세상에 해악을 덜 끼친다'고 하셨다. 자기 변태질하느라 바빠서 악덕을 떨칠 시간도 없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소극적 황금률(네가 당하기 원치 않는 일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를 실천하는 데 상변태가 되는 것보다 수월한 길은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오늘 야동을 보고 내일 자위할 찌어다. 이것만으로도 상변태로 가는 길에의 위대한 한 걸음이 될 것이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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