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결캔디 괴담
2019.06.22 00:49
뮤직비디오 [루나 –‘Free Somebody’]
요즘에는 대부분 학교가 남녀공학이지만 내가 자랄 때만 해도 성별이 나뉜 학교가 대부분 이었다. 나 또한 여중, 여고를 나왔고 딸만 셋인 선천적으로 양기가 부족한 환경에서 성장한 탓에 성관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아기 씨가 어디로 들어가는지 그림으로만 보다 중학교 올라가서 본 야한 만화책과 일진이라 불리는 노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느지막이 겨우 깨우쳤다.
처음에는 당황해서 토 나온다고 생각했지만 묘하게 궁금하고 호기심이 생겨서 집요하게 자료를 찾아보았고 고등학교 올라가서는 성교육 시간에 담당 선생님의 총애를 받았다. 콘돔은 고등학교 성교육 시간에 처음 봤다. 나무토막에 콘돔을 씌웠었는데 지금이나 그때나 미끄러운 콘돔의 고무 감촉이 썩 좋진 않았다.
이때까진 아직 남자 고추가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다. 목욕탕에서 본 아기고추가 그림판에서 사진 늘리듯 가로세로 점 8개 붙잡아 늘려놓은 모양인 줄 알았는데 친절한 바바리맨 아저씨가 정액 색깔까지 알려주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 덕에 성인이 되기 전까지 비교적 안정된 가치관과 성 지식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중학교 때 어떤 학급에서 순결캔디란 걸 먹었다고 한다. 성교육을 마치고 순결서약을 하면서 먹는 거라는데 이 순결캔디는 한가지 괴담이 있었다.
"순결캔디 정액으로 만든 거래!"
"그걸로 사탕을 왜 만들어?"
"나중에 먹고 당황하지 말라고?"
까진 친구가 저렇게 말하는데 나는 아직 먹어보지도 않은 순결캔디의 맛을 상상하며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것 같다. 꿈에 여러 명의 남자가 큰 통에 둘러앉아 단체로 정액을 쏘아대는 장면을 본다든가 하진 않았지만, 상상은 했다. 상상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지고 도대체 그걸 왜 먹는지 이해가 안 됐다.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1 때 한 학기에 걸친 성교육 수업이 끝나고 나 또한 순결캔디를 먹었다. 딸기우유 맛 같기도 하고 아니 옛날 건빵에 딸려 나오던 구름 그려진 사탕이랑 비슷한 맛이었다.
"정액 맛 아니잖아!"
"먹어봤냐? ㅋㅋㅋ"
"이뇬이 ㅋㅋㅋ"
아무튼 저렇게 순결캔디의 괴담은 정액이 아닌 거로 결론이 났다. 근데 오늘 무엇 때문인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여학생만 순결캔디를 먹지?’
‘왜 순결서약을 시키는 걸까?’
‘이미 처녀가 아니었을 아이들은?’
먹은 지 10년이 훌쩍 넘어버린 순결캔디. 이 순결캔디가 나에게는 순결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지게 된 계기였나 보다. 첫 남친과 헤어지고 두 번째 남친과 사이가 깊어질 무렵 나는 심각하게 처녀막 재생수술을 검색했었다. 원래 집요한 성격이라 뭐 하나 빠지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니만큼 처녀막 파괴의 흔적을 어떻게 만들지 엄청나게 고민하고 연구했었다. 방법은 다양했다. ‘생리 끝날 때쯤 해라.’, ‘랩에 잉크 싸서 미리 넣어놓아! (이건 다시 생각해도 미쳤다.)’, ‘바늘로 손을 똑 따!’ 하아. 내가 어떻게 했을 것 같은가? 정답은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았다.’이다.
그 날은 정말 예고 없이 찾아와서 그럴 정신도 없었고 그도 나도 서로 몇 번째인지 물어보지 않았고 궁금해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내가 분위기에 휩쓸려 사탕까지 받아먹고 한 맹세에 집착하고 있었던 거다. 공교육은 긴 기간에 걸친 가장 확실한 세뇌라고 생각한다. 이 ‘순결캔디’, 지금도 학교에서 먹이고 있는 건지 궁금하다.
내가 만약 성교육 선생님이라면 순결을 맹세하고 지키는 것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섹스라는 행위에 대한 책임과 얼마나 즐겁고 좋은 건지 가르칠 것 같다. 나 스스로도 그 별거 아닌 걸 깨는데 큰 결심과 행동이 필요했고 막상 살다 보니 그렇게 의미 있는 일도 아닌 즐겁고 일상적인 행위였다. 순결서약이니 순결캔디니 하면서 섹스 자체를 너무 신성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성녀가 아니고 지금 내 옆에 자는 남자도 성인군자가 아닌 그냥 대한민국의 보통 사람이다. 보통사람의 보통행위이고 즐거운 행위로 가르쳤으면 좋겠다. 지금도 의문이고 누가 만든 아이디언지 궁금하다. 순결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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