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섹스 맞춰가기
2019.08.14 00:49
영화 <베리 굿 걸>
몽정을 했다. 오랜만이었다. 요즘 욕구불만에 시달리거나 금욕의 시간이 길지도 않았는데 몽정을 해버렸다. 섹스를 한 것도 아니었다. 알몸에 긴 자켓만 걸치고 유흥업소 사이를 걷는 게 고작이었다. 일명 '노출워킹' 하나로 내 클리토리스는 수면시간따위 아랑곳 않고 발기돼 버렸다. 정사몽이 아닌 다른 내용으로 몽정한 게 오랜만이라 신기했다.
요즘 만나는 선생님에게 어제 몽정했으니 시간 되면 야한 섹스나 하자고 말했다. 오후에 만나 저녁을 먹고 모텔로 향했다. 가까운 곳 아무 데나 갔다. 청소 안 된 방을 두 번이나 안내한 모텔을 거절하고 결국 다른 모텔을 갔다. 거기서부터 불길했다.
사실 선생님은 별로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피자를 좋아하는 나에게 피자를 사주고 싶어서 피자를 사준다더니 식사 내내 이상한 말과 태도를 보였다. 자기 딴에는 유머나 농담이라고 했다. 선생님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온 모양이다, 생각하고 잘 참고 넘어갔다. 하지만 결국 체했다. 먹는 중에, 후에, 집에 와서까지 내내 배가 아팠다.
사실 섹스를 엄청 하고 싶지는 않았다. 몽정하고 난 뒤라 섹스에 대해 약간의 의무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리는 연인이니까 섹스가 대수로운 일은 아니었다. 선생님도, 우리의 분위기도, 나도 유연하고 따뜻해지고 싶었다.
대충 샤워기로 몸을 훑고 나와 누워 있는 선생님 앞에 무릎 꿇고 앉았다. 나에게 노래 한 곡을 요청하기에 나는 악기를 연주하겠다며 펠라치오를 시작했다. 고환부터 핥다가 페니스에 정착했다. 입 안에 넣을 때는 느슨하게 힘을 다소 빼고, 뺄 때는 흡입하듯 힘을 조절한다. 박자에 맞춰 반복하다 보니 하관의 힘이 풀렸다. 근육에 쥐가 나는 느낌이었다. 오리 주둥이가 된 채로 펠라치오의 감흥이 떨어지기 전에 서둘러 질에 삽입했다. 역시 여성 상위 체위는 나랑 안 맞는다. 운동 부족이다. 힘들고 내 질과도 궁합이 아주 좋은 편은 아니다.
후배위로 자세를 바꿨다. 엉덩이만 바짝 올렸다. 선생님은 내가 좋아하는 판타지를 실현해주기 위해 거칠게 섹스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애널로 진입했다. 거부했다.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페니스는 태연하게 들어왔다. 그리고 마구 흔들었다. 몹시 당황했다.
그리고는 성급히 페니스를 뺐다. 너무 놀라서 눈물이 났다. 아팠고, 거부하는데 애널 삽입을 한 선생님이 야속했다. 게다가 충분한 애무도 없이, 처음부터 거칠게 흔드는 게 더욱 야만적으로 느껴졌다.
울고, 자세를 바꿔 또 울었다. 선생님은 눈물로 범벅된 내 얼굴을 보며 또 삽입했다. 스트레스 덩어리같이, 갈등을 섹스로 푸는 보노보와 같이 나에게 들어왔다. 눈물을 꾹꾹 참았다. 마음이 상해서인지 질감도 불쾌했다. 그러다가 다시 질감이 좋아졌다. 그러나 단지 사정을 기다리는 섹스였다. 나쁜 섹스였다.
나는 피학적 섹스와 연출 페티쉬를 즐긴다. 만남을 시작하면서 선생님에게 취향을 전달했고, 선생님의 취향과 얼추 맞는 부분도 있었다. 섹스 취향이 잘 맞는다니, 즐거운 섹스만 남았었다. 그리고 그동안 그럭저럭 좋았다. 그런데 선생님은 아니었나 보다. 나의 피학성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무리한 것이다. 그건 우리 취향대로 섹스한 게 아니었다. 나의 취향을 맞춰주며 섹스한 것이다. 나는 선생님도 다소 가학성향이 있고, 충분히 다양한 섹스를 즐긴다고 생각했다. 가학성 섹스가 잘 맞는 옷이거나, 혹은 입어 본 적은 없어도 입고 싶었던 옷일 거로 생각했다. 오해였다.
나는 꼭 피학적 섹스만 고수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피학적 섹스로만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피자를 좋아한다고 해서 매일 피자를 먹지는 않는다. 나는 마조히스트 취향이 있는 거지, 피해 당하는 걸 한 없이 좋아하는, 복종하는 정신적 노예가 아니다.
S이거나 S성향 섹스를 무난하게 즐기던 남자가 아니라면 가학성 섹스가 위험할 수 있다. 그들은 “NO”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 그리고 가학적 섹스로 끝나지 않을 때도 있다. 연인 관계에서 가학성을 그대로 끌고 오는 경우가 생긴다. SM성향 섹스의 기본 법칙을 제대로 정하지 않았거나,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 그렇게 되기 쉽다.
바닐라를 잘 분별하고, 그들에게 부담 주지 않는 게 중요하다. ‘나 사실 맞는 게 좋아’라고 고백했을 때, 마조성향의 여자를 실제로 처음 본다며 신기하다는 말을 아침까지 지껄이는 남자도 있었다. 가학적으로 다뤄달라는 요청으로 나를 열심히 때리고, 욕하던 어떤 바닐라 남자는 갑자기 죽어버렸다. 페니스가 죽어버렸다. 나는 그 뒤로 남자에게 내 성적 성향을 강하게 어필하지 않는다. 남자에게 여자의 성적 흥분은 판타지만큼이나 중요한데, 나는 남자를 여자의 판타지와 성적 흥분도 못 시켜주는 고자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모든 남자와 평범한 섹스부터 하고 나중에 하나씩, 하나씩, 색다른 취향 즐기기로 돌입했다. 피학성향이나 페티쉬에 대한 내용은 애교스럽게 진행되어야 부담을 줄이고 실행할 수 있다. 선생님과 노멀한 섹스로 시작했어야 했다. 아마도 선생님과 성적 취향에 대해 다소 무겁게 대화를 나눈 게 아닌가, 싶다. 서로에 대한 기대와 배려가 비틀려 나쁜 섹스를 한 게 아닌가, 이내 마음이 자꾸 걸린다.
다음 번에는 어떤 섹스를 할지 기대된다. 애정이 듬뿍 느껴지는 따뜻한 섹스로 지난 나쁜 섹스를 녹이고 싶다. 거친 표현도, 스팽킹도, 낯선 연출도 필요 없다. 그냥 선생님 체온 그대로 담는 섹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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