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으니 주말이 즐거워졌다
2018.04.15 21:20
벗으니 주말이 즐거워졌다
자신이 출연하는 영화에서까지 툭하면 올 누드를 보여주는 영화배우 이완 맥그리거만큼 ‘누드 예찬론자’는 아니지만 주말이면 어김없이 다 벗거나 언더웨어만 입는‘주말 누드 예찬론자’쯤은 된다. 벗는 이유? ‘벗으니 주말은 자유롭고 유쾌해졌다’쯤이 될 듯하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집에서 속옷 이외의 옷을 걸치지 않는다. 자랑할 것의 종류는 아니나 속옷마저 벗어 던질 때가 대부분이다. 무병장수를 위해 나체로 침전에 들었다는 조선 왕실 비방을 흉내내는 것도 아니고 몸매를 과시하기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내 생애 처음으로 헬스클럽을 일주일에 다섯 번씩 다녔을 때 나는 운동에 대한 스트레스로 땡볕에 놓인 가지처럼 쭈글쭈글 말랐었고, 푹푹 찌는 한 여름 밤의 야근을 위해 민소매로 갈아 입고 사무실에 들어서는 나를 보고 모든 선배와 동료들은 “어우, 야~” “몸이 그냥 흰 살코기네”(내 속살은 내가 봐도 유난히 희다) 등의 혹평을 쏟아내며 자지러졌다. 돌이켜보건대 백김치처럼 흰 피부에 검은 글씨 하나 박히지 않은 흰색 민소매를 입은 것이 실수였다.
본론으로 돌아간다. 내가 집에서 팬티 이외의 옷을 쳐다도 보지 않는 이유는 백 퍼센트, 오직 ‘너무 편해서’다. 출근하는 아침마다 옷을 고르는 것도 무시 못할 스트레스인데 침대에서 일어난 몸 그대로 먼지처럼 뒹굴며 책 읽고, 밥 먹고, 영화 보다 다시 잠자리에 드는 것이 레이저빔처럼 반짝이는 양복을 입고 외출하는 것보다 행복하다. 맨살에 이불이 닿는 보드라운 느낌도 좋다. 그것은 이를테면 맨발로 황톳길을 밟을 때의 느낌과 비슷한 것인데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 후 알몸으로 잠자리에 들 때 나는 옷을 입었을 때보다 훨씬 편안하고 안락한 잠을 잔다. 피부 톤이 맑아지고, 장기의 움직임이 원활해지며 정력도 좋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라고 말하면 좋겠지만 이는 아직 경험하지 못했다. 다만, 심신이 홀가분한 상태를 즐기는 데서 오는 심리적 만족감이 일주일간 쌓인 스트레스를 경감시키는데는 혁혁한 공을 세움을 인정한다. “노출증 환자 아니냐!” “변…변태냐!”며 사시미 칼 같은 눈길을 보내는 이 없지 않겠으나 몸이 느끼는 편안함과 만족감을 증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은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톤으로 “당신도 벗어보세요”라고 말하는 수밖에 없으니 안타깝다.
하여, 나는 언더웨어 역시 최대한 헐렁한 것을 선호하나 내장까지 압박할 정도가 아니라면 타이트하면서도 다소 노골적으로 국부의 골격을 드러내는 삼각팬티 또한 정기적으로 입는다. 이 역시 몸매 과시용은 절대 아니다. 이를테면 나름의 충격 요법인데 팬티의 밴드 위로 홍수처럼 범람하는 뱃살을 보며 그래도 한때 날렵한 몸매를 자랑했던 과거로의 회귀를 다짐한다. 작년 이맘때 헬스 트레이너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그가 제안한 최고의 충격 요법 또한 ‘쫄팬티만 입고 거울 보기’였다. 흘러내리는, 혹은 알을 잉태한 것 같은 뱃살로 고민하는 남자들이여. 지금 사이즈보다 한 치수 작은 팬티 한 장 보석함에 꼭꼭 챙겨두고 수시로 꺼내 입자. 그것을 버리는 순간 당신의 몸매 역시 버림받은 듯 망가진다.
열심히 입었던 당신, 주말에는 벗어라
언젠가 탤런트 조재현이 아침 TV 프로에 나와 아내에게 주었던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을 얼굴에 홍조를 띠며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 선물은 다름 아닌 ‘초콜릿 팬티’였다. 부연 설명하자면, 아내에게 입힌 다음 땅따먹기하듯 야금야금 씹어 먹어(초콜릿이니까) 팬티 한 장을 형체도 없이 사라지게 하는 ‘마술 팬티’였다. 조재현의 아내는 몸둘 바를 몰라 하며 부끄러워했지만 조재현의 숫사자 같은 혈기 왕성함과 엉큼함으로 그날 밤, 부부는 기획과 콘셉트가 있는 시간을 보냈으리라. 나는 지금도 그 팬티의 판매처가 궁금한데, 대한민국의 많은 남녀가 언더웨어 한 장으로 달라질 수 있는 영리한 주말을 조재현처럼 기획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펜션을 알아보고, 영화 상영 시간을 뒤지고, 놀이공원을 배회하는 것보다 이 얼마나 영악하고 기치 발랄한가. 다행히 이벤트용으로도 손색없을, 빨간 지붕처럼 튀는 언더웨어는 시중에 넘쳐난다. 튼실한 둔부를 아슬아슬하게 부여잡아주는 끈 팬티, 엉덩이와 허벅지를 타이트하게 조여 나이지리아 축구 대표 선수처럼 탄력 있는 둔부를 완성시키는 쫄사각 드로즈, 하드코어 영화에나 나올 법한 망사 팬티, 로마시대 병사의 것처럼 골격을 우람하게 보이게 하는 T 팬티 등…(여성의 언더웨어 종류는 이보다 열 배는 더 다양하다).개화기를 지난 지가 100여 년이 다 되어가고, 누드 비치가 인도네시아에조차 존재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노출과 관련해 여전히 조심스러운 우리인지라 아직까지도 무난하고 심플한 흰색 언더웨어가 높은 판매고를 기록하지만 일본이나 인도만 해도 사정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일본에서는 중년 남성의 바람 빠진 타이어 같은 뱃살과 히프를 ‘업’시켜주는 거들이 높은 인기를 끌고 있으며 인도에서는 밝은 빨강, 자홍색 등 강렬한 색깔의 언더웨어가 판매되는 속옷의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화려한 언더웨어가 환영받기는 “밖으로 나타내는 것 이외에는 유혹하는 어떤 것도 보여서는 아니 되니라” 하고 가르치는 코란이 국교인 중동의 여성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두바이 취재 때 만난 현지 관광청 직원은 “온몸을 항상 철저하게 가려야 하는 중동 여성들은 그에 대한 보상 심리로 밝고 컬러풀하며 화려한 언더웨어에 집착한다”고 말했다.
모델 장윤주에 버금가는 가슴과 다리를 지닌 여성, 강철 같은 근육을 지닌 남성들만 유쾌 발랄한 언더웨어를 입고 주말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언더웨어 한 장과 주말을 즐겁게 보내고자 하는 ‘착한 욕구’만 있다면 주말은 누구에게나 파티일 수 있다. 벗어라, 그 안에 즐거운 주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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