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미친 날의 이야기


<어느 미친 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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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스스로 평범하다는 것에 염증을 느낄 때가 있죠 
 저 역시 그럴 때가 있는데 다름 아닌 여자에 대해서랍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제 주변엔 아무리 찾아봐도 섹시하거나 쭉쭉 빵빵 하거나 
 먼저 유혹하는 그런 여자는 없으니까요..후후 어쩌면 일반적인 현실에서의 우리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거리를 걷다보면 꿈에 그리던 몸매를 한 여인이 지나가기도 하고 눈을 땔 수 없어 바라보고 있자면 
 어떤 남자가 나타나 천사처럼 보이는 그녀의 뒷통수를 딱! 치며 "왜 늦었어?" 이러기도 하구요 
 저라면 그런 그녀가 늦게 나와도 머리 후려칠 생각은 못 할텐데요..하여튼 본론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여기서 잠깐 제 소게를 하면 그냥 평범한 삶을 사는 청년이죠 
 총각이라고도 하구요 평범이란 단어에 포함된 평범한 경제력 과 평범한 외모 평범한 일상 
 주변엔 그저 평범한 여자들..


사람들은 맘에 드는 여자가 나타나면 길에서라도 작업을 건다는데 평범이 지나친 건지 그럴 생각도 못하니까요.


그렇게 따분하도록 평범한 어느 날 여름 해라 6시가 넘었어도 온 통 환한 거리를 그저 평범한 일과를 마치고 
 왠지 맥이 빠져 터덜터덜 집으로 걷고 있었답니다. 
골목 어귀에선 상점이 새로 개업했는지 풍선꾸러미가 아아치를 그리고 있고 요란한 음악이 계속 나오더군요 


 그런가 보다..하고 지나가는데 순간 눈에 확 들어오는 광경이 있었습니다. 
나레이터 모델이라고 하죠 두 명이 춤도 추고 홍보도 하고 전단도 나누어 주는데 
 그 중 한명이 눈에 확 들어왔답니다. 


무척 짧은 치마 아래로 햇살에 알맞게 탄 갈색 허벅지와 종아리선, 
걸을 때 마다 허벅지의 탄탄한 살집이 물결치듯 흔들렸고 
 치마 아래 감춰진 엉덩이는 크지도 작지도 않게 알맞은 모양으로 매력을 뿜고 있더군요 


 가슴만 가리게 입는 상의 아래로 정말 매끈한 배와 옆구리가 몸 움직임에 따라 미묘한 움직임을 새겨가며 
 꿈틀거리고 갈색 머리는 스트레이트로 시원하게 허리까지 늘어뜨렸고 
 얼굴인상은 한마디로 시원했습니다. 


도톰한 입술, 작고 귀여운 코, 눈매는 약간 위로 치켜진듯해서 섹시해 보이기도 하면서 
 날카로와 보이기도 하구요 
 거기에 키가 꽤 커서 몸의 모든 게 시원시원하게 쭉 뻗어있었습니다. 


목 언저리엔 여름날씨에 흐른 땀이 끈적이는 느낌으로 베어있고..
순간 전 그냥 우두커니 서서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제 키는 170에 체격도 큰 편은 아니라. 그냥 아담한데 느낌에 저보다도 훨씬 커보였답니다. 
아! 그리고 전 그리 잘생긴 얼굴도 아니구요. 


평소엔 그렇게 빤히 쳐다볼 엄두도 못 내고 그냥 흘낏 쳐다보며 지나가고 말걸 그날은 정말 미쳤는지 
 길 앞에서 우두커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답니다. 
그러다가 그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순간 얼어붙는 나..
그녀 제 앞으로 걸어오더니


“어서오세요 한번 구경하고 가세요”


하며 전단을 줍니다. 그리고 다시 저쪽으로 가버리는데 제 안에 이런 생각이 떠오릅니다.


‘아 미치겠네 여기 서서 뭐 하는거지? 씨이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냥 미친 척 계속 쳐다보고 있어볼까?’


별것 아닌 일에 전 왜 그렇게 긴장이 되던지 사람들 오가는 거리에서 그녀를 쳐다보고 있을 까 말까 하는 
 황당한 고민을 끙끙 하고 있었답니다. 
그러다 그녀와 다시 눈이 마주쳤습니다.


‘헉’ 


그녀의 눈빛에 짜증이 어리는 게 보입니다. 순간 전 발길을 돌려 집 쪽으로 걷고 있었답니다. 
그렇게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방에 있자니 저 멀리서 그곳 음악소리가 
 계속 들립니다. 
그리고 그녀의 눈빛에 도망치듯 그곳을 떠났던 제가 한심스러워 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의 소심함과 평범함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고 
 결국엔 그 짜증이 내 전신을 휘감고 화가 솟구치더니 알 수 없는 도전정신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답니다. 


전 뭔가에 홀린 듯 다시 그곳으로 갔고 아까처럼 그녀를 응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리 저리 다니며 전단을 나눠주던 그녀, 제 앞으로 왔다가 저쪽으로 가고 다시 제 앞으로..
전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린 것처럼 모든 쪽팔림을 무릅쓰고 그렇게 그녀를 응시 합니다. 


알고도 모른 척 하는건지 제게 눈길 한번 안주던 그녀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절 쏘아봅니다. 
우리 둘의 눈이 정면으로 부딪히고 뭔가 알 수 없는 팽팽한 시선이 서로를 쏘아봅니다. 
갑자기 그녀 제게로 걸어옵니다. 이번에는 시선을 때지도 않고 똑바로 쏘아보며 말이죠


“뭘 그렇게 봐요?”


짜증섞인 그녀의 물음에 오히려 전 더 미쳤는지 태연히 대꾸합니다.


“그쪽이요” 


 “왜요?”


왜요? 라고 물어보는 눈빛에 짜증과 신경질과 귀찮음이 한데 어우러져 저를 찔러댑니다. 
아! 역시 키도 저보다 훨씬 커서 내려보며 말하더군요


“예뻐서요”


 “....”


휙 돌아서서 저쪽으로 가는 그녀의 뒤로 조그맣게 "씨발" 이란 소리가 들립니다.


“....”


이제 전 아무 생각없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녀도 포기했는지 눈길 한번 안 주더군요 그렇게 1시간이 흘렀나 다시 그녀가 옵니다.


“이봐요 신경 거슬리게 하지말구 좀 가요” 


말투에 니깟 게 뭔데 날 넘봐? 하는 뉘앙스가 풍겨옵니다. 
시간은 거의 8시가 다되어가고 자기 일 끝나고도 내가 있으면 따라올까 봐 그러나 봅니다. 
이런 참 꼭 내가 치한이나 변태가 된 듯 내모는 말투에 갈데까지 간 오기가 또 생깁니다.


“걱정 말아요 여기서 집 가까우니 갈 때 되면 갈거예요”


이런 등신 같은 표현이 있나 싶었지만 고작 나온 말은 그게 다였죠


“왜 그렇게 빤히 봐요 여자 첨봐요? 재섭써”


그리곤 한대 칠 듯? 절 노려보고 있더군요 


“화나게 했담 미안해요 그치만 너무 예뻐서 그래요 눈을 못 떼겠는걸요 
 당신처럼 머리부터 신발(?)까지 다 예쁜 사람은 첨봐요” 


그러면서 그녀의 눈빛을 계속 받고 있었죠 아마 상상되실 거예요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녀는 제 대답에 기가 찬 듯 멍하니 절 보더니 다시 가더군요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흘러 파장분위기가 되고 사람들이 벌여 논 것들 치우고 그러더군요 
 그녀도 안으로 들어가 뭔가 정리하는 듯 다니는 게 보이고 
 전 스스로 지금까지 한 행동이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떠올리며 한심스럽게 멍하니 서 있었죠 


 스스로 참 우습더군요 
 그때 여름날 무더운 대기가 하늘 가득히 차서 그랬는지 ‘후두둑’ 소나기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방울 두 방울 내리더니 순식간에 쏴아아 하는 소리와 함께 퍼붓기 시작하는데 
 사람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비를 피하러 사라졌지만 
 저 혼자 제가 한 어이없는 행동에 멍해진 상태로 우두커니 서있는 꼴이 되버리고 말았죠. 


한 5분 그렇게 있자니 온몸이 흠뻑 젖어 그냥 물 덩어리가 됐답니다. 
그래도 움직일 생각도 안 들고.. 


아마 그냥 단조롭게 지내온 생활의 응어리가 그런 식으로 분출되는 것인지도 모르죠 


 해는 져서 어두운데 비에 흠뻑 젖어 우두커니..
그건 분명 제 삶 중에 일어난 무척 특이한 미친 어느 날의 사건이 되 버린 거죠. 


날이 더워 춥진 않았지만 등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 느낌에 서서히 제정신으로 돌아오며 
 이제 그만 집에 가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서서히 고개를 들고 움직이려하지 않는 발을 들어 집으로 옮기려는데 
 빗소리 중에 아련히 그녀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봐요 이리 와서 비 피해요”


그녀를 보니 집으로 가려고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그녀가 매장 처마 밑에서 저를 부르더군요 
 아주 서서히 걸어서 그녀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한쪽으로 비켜서며 제 자리를 내주더군요 
 둘이 처마 밑에 나란히 서서 전 물에 젖은 체 그녀는 우산이 없는지 하늘만 올려보며..
그러고 있는데 왠지 느낌에 아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게 느껴졌답니다.


“왜 그러고 있었어요? 비오는데 왠 청승이람”


그러며 피식 웃습니다. 
하지만 경멸이나 신경질은 없고 다정한 느낌이 묻어나더군요 
 저도 그냥 마주보고 웃기만 했죠 그렇게 서로 눈을 마주보고 알듯 모를 듯 미소 짓고 있는데 
 그녀가 그 긴 손을 뻗더니 물에 젖어 눈을 찌르고 있는 제 앞머리를 걷어주더군요 순간 제가 물어봤죠


“배 안고파요?”


 “고파요. 아직 아무것도 안먹어서”


시간은 9시가 다 되가는데..갑자기 전 그녀의 손을 잡고 뛰기 시작했답니다.


“뛰어요”


 “어디가요?”


 “밥먹으러요”


 “내?”


전 그녀의 손을 잡고 제 방으로 뛰었습니다. 
일단은 우산도 빌려줄 맘이 생겼고 제가 너무 젖어서 그냥 식당가기에도 그랬거든요 
 골목을 돌아 제 원룸 앞에 오자 그녀가 묻더군요


“여긴 어디예요?”


 “제 방이요 잠시 있어요 옷 갈아입구 우산 가져올께요”


그녀는 살짝 웃음으로 대답하더군요 나는듯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려는데 우산이 없더군요 
 이런! 여기 저기 찾아도 보이진 않고 그땐 무슨 용기에 그랬는지 다시 나가 그녀에게 말했죠


“우산이 안보여요 들어와요 저녁 시켜먹어요”


전 정말 바보같이 있는 그대로 이야기 했는데 순간 아차! 싶더라구요 이 여자가 날 뭘로 볼까? 
그녀도 순간 약간 망설이는 빛이 스치더니 조심스레 제 눈을 보더군요 
 그러자 전 더 얼어붙어서 어쩔 줄을 몰라했죠 얼굴이 화끈거리며 무안한 핏기가 몰리더니 
 더듬거리며 변명이라고 주절주절


“어..저..다른 뜻은 아니구 그냥 비가 와서”


순간 그녀 얼굴에 알듯 모를 듯한 미소가 번지더니 


“실례 안될까요? 갑자기 와서..그럼 제가 살께요” 


하더군요 그렇게 우린 제 방까지 같이 들어왔답니다. 
아마 우리 둘 다 여름날의 마법에 걸렸던 것 같아요 뭔지 모를 열기 같은 거에..


막상 들어오고 나니 모든 게 어색하고 어정쩡했어요 그녀를 책상 앞 의자에 앉게 하고 
 전 식당 번호를 찾고


“저..탕수육밖에 없내요”


 “괜찮아요”


침묵


“콜라로 할까요? 사이다로?”


 “콜라요”


침묵..탕수육 에 콜라를 주문하곤 그녀 맞은편 침대위에 걸터앉아 땅만 보고 있었답니다. 
그녀도 가만히 앉아 있고 밖에선 우르릉거리는 소리와 빗소리가 계속 들려왔습니다. 


순간 창문도 닫아놓고 밀폐된 방에 그녀와 이러고 있는 게 어색해서 창문을 활짝 열었답니다. 


‘쏴아아’


대기에 섞인 비 냄새와 거리의 소리가 온방으로 흘러 들어왔고 
 그러자 그녀도 끈에서 풀려난 것처럼 살며시 일어나 창가로 오더군요 
 우리 둘은 나란히 서서 거리를 내려보며 빗방울을 보고 있었습니다. 


코끝을 스치는 그녀의 향기가 느껴졌고 그녀의 온 몸에 하루동안 흘려 범벅이 된 땀 냄새와 물기 어린 냄새, 
거기에 옅은 화장품 향까지. 그녀가 묻습니다.


“혼자 사나요?”


 “내”


 “저도 혼자 살아요”


 “내”


침묵


“궁금해요 왜 그렇게 빤히 날 봤는지”


그렇게 입이 탄 적도 없었는데 정말 첫마디가 안 떨어지더군요


“아까 말한 것처럼 너무 예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제가 예쁜가요?”


 “내” 


 “얼만큼?”


순간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 나오는 대사가 튀어나왔습니다. 


“온 세계 정글의 호랑이가 버터가 되버릴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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