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팬티 여성들


노팬티 여성들 




 요새 세상이 많이 변해 여자도 자기의 의사나 욕구표시를 서슴 없이 하는 세상이 되었다고 하고 그래 그런지 여자가 외출을 할 때 노팬티나 노브라로 나다니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들 한다. 


노팬티로 외출을 한다. 무슨 뜻일까? 누가 아니 불특정 남자가 자기의 보지나 다른 은밀한 곳을 슬금슬금 보고 흥분하라는 건가? 아님 자기가 현재 꼴려 있고 여건만 맞으면 언제 어디서건 남자의 좆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 


 다는 표시인가? 


아무튼 생각만 해도 기분이 수물대는 일이다. 


요새만 그럴까? 그게 아니다. 20년 전, 30년 전에도 용감하게 노팬티로 나다니던 처녀와 유부녀가 있었다. 




- 노팬티녀와의 첫번 째 조우 




 내가 맨 처음 노팬티 여자를 만난 건 대학교 1학년 때였다. 당시엔 지하철이 없었던 시절이라 등 하교 시 버스는 가히 콩나물 시루였다. 요새 러시아워 때의 전철 보다 훨씬 더 심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 이른바 버스간에서의 성적추행, 이른바 렁탕(주물렁탕의 준말)은 자동이었다. 


세상 모든 여자가 그런 자리에서 남자가 손으로 몸을 만지거나 발기된 좆으로 몸에 비벼대는 걸 싫어할까?, 아마 이 글을 읽는 여성분들 중에서도 분명 그런 걸 즐기는 분이 있듯이 내가 생각할 때 일정 수의 여성은 버스나 


 극장 같은 공개된 밀집공간에서 모르는 남자가 좃으로 비벼대는 걸 은근히 즐긴다고 생각한다. 물론 자기 생각에 받아들일 수 있는 남자일 경우 말이다. 


렁탕에도 순서가 있다. 처음부터 무턱대고 좃으로 비볐다간 봉변을 당할 수 있다. 먼저 앞 여자의 히프와 등에 몸을 밀착 시킨 다음 차가 쏠릴 때를 이용해 손을 팔이나 허리 또는 엉덩이 부분에 슬쩍 대보는 것이다. 


거부반응 여부를 체크해 보는 첫 단계다. 거부반응이 없다 싶으면 몸의 접착부분을 늘리고 발기된 자지로 히프를 슬쩍 눌러 본다. 




제 2단계 체크 과정이다. 그쯤에선 여자도 무언의 몸짓으로 반응을 보내오는데 그 전에 슬쩍 뒤를 돌아 남자의 얼굴을 보고 빠르게 심사를 한다. 아니다 싶으면 몸을 빼고 괜챦다 싶으면 엉덩이를 살짝 뒤로 밀어준다. 


그 다음부터는 둘의 은밀한 애무가 시작되는 것이다. 손으로 만지고 좆으로 비비고. 콧김으로 덥히고. 


나 같은 선수들은 여자 보지에서 나오는 씹물의 냄새까지 어렵지 않게 맡는다. 그 체크 과정에서 손으로 엉덩이를 살짝 비비는 데 이게 이상한 거라. 도대체 팬티선이 안 느껴진다. 


두 번 세 번 왕복해 보니 요년 노팬티인 거라. 


큰 게 걸렸구나 생각하며 잔뜩 선 좆대가리를 그녀의 엉덩이 계곡에 딱 맞추어 비비며 그녀의 얼굴을 힐끗 보았다. 




나이는 많아야 20 중반에 유부녀 같진 않고, 요걸 아침인데 어떻게 삶아 먹지? 학교는 어떡하고? 머리를 바삐 회전시킨다. 그리고 차가 커브를 도는 틈에 살짝 치마를 올려 손을 속으로 넣어본다. 


그때 여자가 거부반응을 보낸다. 자기가 노팬티라 내가 자길 무시할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며 몸을 빼는 척 하는 것이다. 나는 기회를 주지 않고 그녀를 바짝 당기며 손으로 그녀의 맨보지를 움켜쥔다. 


그 스릴, 그 감동. 그 떨림은 월드컵 4강이 결정되는 순간과 맞먹으리라.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그쯤에선 꼴린 보지에서 나오는 암내가 슬그머니 퍼지게 마련이다. 얼른 손을 빼고 스커트 겉을 보지에 눌러 씹물을 닦으면서 보지구멍을 막는다. 


그리고 몸을 약간 옆으로 해 자지를 그녀의 옆구리쪽 허벅지에 댄다. 그리고 한 손으로 그녀의 엉덩이를 잡으면서 다른 손으로 그녀의 손을 끌어 잔뜩 꼴린 내 좃봉을 만지게 한다. 


뜨끈한 소시지를 손에 쥔 그녀는 보지구멍에서 나오는 육수물을 느끼며 진저리를 친다. 


고 예쁜 보지에다 내 소시지를 삶아먹은 얘기는 따로 하기로 하고 오늘은 주제인 노팬티 얘기를 잇는다. 




- 두 번째 조우 




 옛날엔 지금의 버스와 봉고의 중간쯤 되는 승합이라는 옴니버스가 있었다. 열 댓 명 탈 수 있는데 이게 천정이 낮아 우리처럼 6척이나 되는 사람은 허리를 구부리는 것도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서 새파란 나이에도 자리 양보를 받는데 수원으로 딸기를 먹으러 가던 그 여름에도 나는 뒷자리를 양보 받았다. 자릴 양보 받으면 그 앞에 있는 중고등학생들의 가방을 받아 무릎에 세 네 개 쌓아 놓는다. 


그리고 그 위에 손을 얹어 가방을 잡게 되는데 고 위치가 앞에 서 있는 여자의 보지와 수평이 된다. 


승합 운전사 운전 알 조 아니겠나, 지금의 마을버스 운전사들처럼 핸들을 좌우로 제멋대로 꺾어댄다. 그럼 승객들이 짐짝처럼 이리 저리 밀리기 십상인데 그때 몸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내 손에 몸을 대는 여자가 있었다. 


몸을 댄 게 아니고 정통으로 보지를 댄 것이다. 위를 힐끗 보니 나보다 한 둘 위, 그러니까 대학교 3학년이나 4학년쯤 되어 보였다. 




내가 올려봤는데도 그녀는 보지를 치우지 않았다. 아니 치우기는 커녕 차가 요동을 치자 몸을 움직여 내 손이 어렵지 않게 그녀의 치마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었다. 


손을 세워 손가락으로 위를 훑어보니 앗 뜨거워, 요 이쁜년 맨보지가 손 끝에 닿는데 뭔가 축축한 거라. 노팬티에 보지가 웬간히 꼴려 있는 거라. 


야, 이거 복권당첨 아닌가, 젊쟎게 앉아서 여자가 비벼주는 맨보지를 그냥 잡수니 말이다. 손을 뒤집어 손가락을 까딱했다. 내 손가락이 고 예쁜 보지 속으로 쏙 들어간다. 


어이구야. 좆 꼴리는 거. 이년 보지는 뚝 터진 나이아가라 폭포였고 용암 뱉어내는 활화산이었다. 


내 살아 생전에 가장 맛있게 보지를 손으로 애무했던 순간이었다. 그것도 논스톱으로 한 시간 가까이나. 나중에 보니 가운데 손가락이 씹물에 퉁퉁 불어 있었다 




- 세 번째 조우 




 군에 있을 때 쑥고개 그러니까 오산 비행장의 외곽 경비대장을 한 1년 했었다. 


그때 휴가를 받으면 서울에 오기도 하지만 안성이나 수원 등에서 며칠 푹 쉬며 먹고 자고 그리곤 좆에 굶주린 여자들을 찾아 내 짙펀하게 씹을 한 후 귀대하곤 하였다. 


수원 남문 옆에 중앙극장이 있었다. 한국영화 전용관. 항상 사람이 많아 앉아 보는 사람과 서서 보는 사람의 숫자가 거의 비슷했는데 나는 말할 것도 없이 사람들이 빽빽히 서있는 뒤를 좋아했다. 


극장 안에서 렁탕도 하고 끝나면 중국집에서 한 탕 뜨거나 운 좋으면 밤새 씹을 할 여자가 반드시 거기서 나를 기다리니까. 


그날도 나는 극장에 들어간지 15분도 안되어 야리야리 하게 생긴 서른 쯤 되어보이는 젊은 유부녀의 어깨를 끌어 안고 화기애애하게 젖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은밀하고 재빠르게 그리고 말 없이 서로의 의사를 확인해 맞추고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허리를 감고 하는 일이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노련한 선수끼리만 가능한 작업이다. 


바짝 꼴려 바지 속에서 꺼떡대는 좃을 슬그머니 그녀의 엉덩이에 비비는데 느낌이 다른 거라. 뭐 걸리는 거 없이 따뜻한 살맛이 전해 오는 거다. 


노팬티? 내가 기대를 걸고 손바닥으로 엉덩이를 훑어보니 요년 맨엉덩이야. 아이구 이쁜년. 


당시 시골 여자들은 거창한 외출복 대신으로 위에는 얇은 봄 스웨타 같은 걸 입고 밑엔 긴 한복형 치마를 입는 게 평상 외출 패션이었는데 고 이쁜 유부녀도 그 차림이었다. 


치마단 속으로 손을 넣어보니 뜨근한 맨보지가 헐떡이고 있는 거라. 아이고 이쁜 거. 고 이쁜년 손에 선물로 뜨끈한 좆방망이를 쥐어 주었지. 


우린 극장안에서 자리를 조금씩 옮겨다니며 살짝살짝 키스도 하고 서로의 자지와 보지를 진탕 주무르고 비볐다. 곧바로 나가 씹을 하는 거완 또 다른 깊은 맛을 선수인 둘이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관중이 꽉 찬 극장 안에서 내 손가락에 의해 두 번 까무로쳤고 나도 그녀의 손에 한 번 싸고 말았다. 


그리곤 나와서 중국집에서 짜장면 곱빼기 시켜놓고 먹기 전에 씹 한 번 하고 농대 뒤 서호 뚝방에서 서서 한 번 박고 엎어져서 또 한 번 박고 그리고 여인숙에 들어가 밤 새도록 보지가 헐도록 쑤시고 또 쑤셨다. 


새벽녘엔 아무리 용을 써도 좆물이 나오지 않았다. 


요샌 조개들이 자글자글한 곳을 자주 못 가 노팬티 여자를 만날 행운을 못 가져 봤는데 날 잡아 다시 출근길 전철을 타고 노팬티 여자의 구원길에 나설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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