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위하여 - 5부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하여 상무에게 면담을 요청하여 상무실로 들어가 상무를 독대하는

자리에서 말을 꺼낸다.

“이제 와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만, 저를 기획실로

발령하시려는 것을 취소 해 주셨으면 합니다.”

상무가 정색을 하면서 되묻는다.

“자네, 그게 무슨 말인가? 지난 번에는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자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는가?”

“그 동안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는데, 지금 제가 기획실로 가는 것보다 영업파트에서

일을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상무님 말씀대로 기획실이 우리 회사의 두뇌인데, 경험이 미천한 제가 기획실로 가더라도

회사를 위해 크게 도움이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현장부서에 있으면서 실무적인 일들은 배웠읍니다만, 영업현장에서 발로 뛰면서

많은 경험을 쌓은 후에 기회를 주신다면 기획실에서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역시, 자네군. 좋은 생각이야. 현장과 영업을 다 알아야 기획을 하더라도

좋은 기획안이 나올 수 있겠지.

자네가 탐이 나서 내가 깊은 생각을 하지 못하고 일을 서둘렀군.

알았네. 회사의 명령을 아직 한번도 번복한 적은 없네만, 이번만은 내 불찰도 있고

또, 앞으로 우리 회사를 위해서 인재를 키운다는 뜻에서 인사 명령을 번복하도록 하지.

음.. 우리 회사에 영업3부까지 있는데, 어느 부서가 좋을까?

그렇지.. 영업2부가 낮겠군. 김 창수 부장이 있는 부서로 발령을 해야겠군.

그 사람은 우리 회사 창업 때부터 있었는데, 이젠 나이도 있고 감각이 떨어지는 것 같아.

자네가 그 부서로 가서 영업을 배우게나.

정식적인 인사 명령서는 결재를 거쳐서 내기로 하고, 내가 우선 사장님께 구두 보고를

할 테니까 당장 월요일부터 영업2부로 가서 근무를 하게.

영업2부장에게도 미리 이야기를 해놓을 테니까.”

“제 생각을 감읍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상무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여하튼 열심히 하게나. 회사를 위해서도 그렇고, 자네 자신을 위해서도 말이야.

앞으로도 자네에게 관심을 갖고 쭉 지켜보겠네.”



그리고는 상무 방을 나선다.

역시 김 부장님의 말이 맞는구나. 김 부장의 감각이 떨어진다고 말했지만,

나로 인해 그 분이 필요 없어지면 치려는 생각이겠지..

잠시 사무실을 나와 회사의 휴게실에 있는 공중전화 박스로 간다.

아직 업무시간 중이라 다행히 직원들은 보이지 않는다.

영업2부의 김 부장님에게 전화를 한다.

“저.. 김 영민입니다. 방금 상무한테 가서 면담을 끝내고 나왔는데,

월요일부터 부장님 밑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어딘가?”

“휴게실에 있는 공중전화 박스입니다.”

“항상 조심을 하게. 방금 나도 상무한테 전화를 받았네.

그럼, 월요일 날 보세나.”

“그럼, 월요일 날 뵙겠습니다.”



토요일 오전근무가 끝나고, 같은 부서 직원들에게 일일이 작별인사를 한다.

박 부장님에게도 마지막으로 작별인사를 하는데 부장님이 책상에 있는 메모지에다

적는다.

[퇴근하지 말고 좀 기다리게.]

알았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고 내 자리로 와서 소지품들을 챙기는 척하며 직원들이

다 퇴근하기를 기다린다.

이윽고, 모든 직원들이 퇴근을 하고 사무실에 박 부장님과 나만 남고, 내가 박 부장의

자리로 간다.

“자네, 아까 상무하고 면담하는 것 같던데, 이야기는 잘 되었나?”

“예. 이야기 잘됐습니다. 월요일부터 김 부장님께서 계시는 영업2부에 가기로 했습니다.”

“잘됐군. 항상 언행을 조심하고, 주위 사람들을 잘 살피게.

직원들 중에는 상무의 심복들이 있으니까.

어쨌든 영업부로 가거든 열심히 하게나. 김 부장이 알아서 잘 하겠지만,

내 도움이 필요하면 망설이지 말고 바로 연락을 하게.”

“부장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여러모로 신경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네 입으로 그랬잖은가? 나나 김 부장을 작은 아버님으로 생각하겠다고..

나 역시 자네를 내 아들로 생각하네.

그리고, 내일 김 부장하고 같이 자네 집을 방문하려고 하는데, 약도를 좀 그려주게.”

“내일 저의 집에 찾아 오시려고요?”

“자네 모친을 한번 찾아 뵈어야지. 그 동안 내가 너무 무심했던 것 같아.

오후 두 시쯤 찾아 갈 생각이네.”

박 부장님에게 우리 집의 약도를 그려주고 퇴근을 한다.



그리고, 일요일 날, 박 부장님하고 김 부장님이 우리 집을 다녀간다.

어머니께선 내가 최 대성이가 있는 대성건설에 다니고 있으니, 그 동안 계속 불안한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시고 계셨던 모양인데, 그래도 예전에 아버님의 심복이셨던

두 분 부장님이 나랑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는 걸 아시고 한결 마음을 놓으시는 것 같아

다행이다.



월요일부터 김 부장님 밑에서 본격적으로 영업을 배우기 시작한다.

처음 약 두 달간은 다른 직원들과 같이 다니면서 그 들이 영업을 하는 것을 보조하면서

공사가 발주되는 과정과 영업에 대한 기본을 배운다.

그리고, 주 거래업체나 관공서 등의 실무 담당자와 안면을 익힌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가 공정하게 경쟁이 되어 공사가 발주 되는 게 아니라,

이면의 금품수수와 술 접대 등으로 이루어 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술 접대 좌석에도 몇 번을 참석해보지만, 접대를 하는 쪽에서 본인의 기분보다는

상대의 기분을 먼저 파악해야 하고, 노래를 부르던, 어릿광대 짓을 하던,

술집 아가씨에게 미친 짓을 하던 상대방이 최대한 기분 좋게 즐길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술이 세던 약하던 상대보다 먼저 술에 취해서는 안되고, 술좌석이 끝나고 상대를

보낼 때까지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며 한시라도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

아직 사회 초년병이라 그런 일에 익숙하지 못하다 보니, 아무래도 하는 행동이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내가 부자연스러우면 접대를 받는 상대방 역시 부담스러울 것이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영업을 하려면 그런 것에 대한 트레이닝이 필요할 것 같았다.

리베이트 건이야 약속만 확실히 하고 돈만 실수 없이 전달하면 되지만, 술 접대는

어느 정도 술에 강해야 하며 술 마시는 요령도 알아야 되고, 노래도 잘하던 못하던

재미있게 부르면서 좌중의 흥을 돋울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술집 아가씨도 능수능란하게 다룰 줄 알아야 하고, 일부러 미친 척 아가씨에게

짓궂게도 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상대도 눈치보지 않고 여자를 주물럭거리며 즐기는 것이다.



그렇게 두 달이 흘러가고 토요일 날, 오전 근무가 끝나고 김 부장님이 날 불러

김 부장님의 자리로 간다.

“부장님, 부르셨습니까?”

“자네 퇴근하고 시간 어때?”

“특별한 일은 없읍니다만..”

“그럼, 나하고 술 한잔 하세. 지난번에 갔던 그 술집.. 노을 이던가?

거기에 먼저 가서 기다리게. 난 조금 있다가 갈 테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회사를 나와 택시를 불러 타고, 지난번에 갔던 그 술집으로 향한다.

지난번의 기억을 더듬어서 찾아가니 별로 어렵지 않게 찾을 수가 있었다.

술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마침 마담이 홀에 나와 있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으며 내게로 다가오더니 말을 붙인다.

“영민 총각. 어쩐 일이에요? 혼자서 여길 다 오고..”

마담의 웃는 모습에 내 가슴이 다 울렁거린다.

“김 부장님께서 먼저 가 있으라고 하셔서 왔습니다.

부장님께선 조금 있다가 오실 겁니다.”

“그래요? 그럼, 먼저 룸으로 들어가서 기다려요.”

마담이 앞장을 서서 룸을 안내해준다.

룸 안으로 들어가서 내가 자리에 앉고 마담이 맞은 편에 앉는다.

“술은 부장님이 오고 나서 내어와야 되겠지요?”

“예. 근데, 저기..”

“말 해봐요.”

“말씀 낮추시면 안돼요?”

“지난번에 내가 그렇게 이야기했으니까.. 그럼, 그렇게 할까?

영민이는 자세히 보니까 아버님 젊었을 때의 모습을 그대로 빼다 박은 것 같아.”

“제 아버님과는 친하셨어요?”



“예전에 아버님께서 사업을 하실 때 직원들이랑 한번씩 내가 일하던 가게에

오시곤 했었는데, 그 때 내 나이가 스물 세 살로 집안 사정 때문에 술집에서 처음

일하게 되다 보니까 여러 가지로 서툴렀고 많이 힘들었지.

술집 여자가 어디 인간대접을 받을 수가 있어야지.

그런 나에게 영민군 아버님께서 마음을 많이 써주셨어.

항상 우리 가게로 오시면 나를 옆에 불러 다 앉히고는 그냥 당신의 술만 따르게 하셨어.

다른 사람들처럼 몸을 만지거나 짓궂은 장난을 치시거나 하지 않고

날 점잖게 대해 주셨지.

그리고, 팁도 과분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주셨고..

단 한번도 나를 어떻게 해보겠다거나 내게 다른 마음을 품지 않으셨어.

내가 은근히 그러기를 기다리기 까지 했으니까..

내가 생각하기론 나를 친 누이동생 정도로 생각을 하셨나 봐.



언젠가 한번은 아버님께서 지금의 박 부장님과 김 부장님을 데리고 가게에 좀 늦게 오셨어.

그 날은 내가 이미 두 테이블을 뛰다 보니 술이 조금 취해 있었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내가 아버님의 옆에 앉아서 술 시중을 들게 되었지.

그 날도 역시 내게 너무 점잖게만 대하시는 거야.

술을 마셔 좀 취한 상태에서 그런 아버님이 너무 야속하게만 보였어.

그래서 내가 전과는 달리 일부러 아버님 품속으로 파고 들면서 말했지.



‘난 여자로 보이지 않아요?”

‘오늘 술이 좀 취했구나.’

‘저.. 사장님 사랑해요.’

‘사랑이란 말을 함부로 하는 게 아냐..’

‘왜 술집여자는 남자를 사랑하면 안돼요?’

‘난 마누라가 있어. 아들도 하나 있고.. 유부남을 사랑해서 어쩌려고?’

‘상관없어요. 전 숨겨진 여자라도 상관 없어요. 사장님의 사랑을 받을 수만 있다면..’

‘혜진아. 나도 널 좋아한다. 여자로서가 아니고, 친 동생처럼 말이야.

앞으로 네 배필이 될 좋은 남자가 나타날 거야.’

그러면서 테이블에 엎드려 울고 있는 나의 등을 두드리더구나.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사장님 말대로 그 이후에 내겐 배필이 될 남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나타났을지도 모르지. 내가 그런 쪽으로는 아예 눈을 돌리지 않았으니까..

영민이 아버님 이후로 내게 남자로 보이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아버님께서 사업을 망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지.

나도 먹고 사는 게 힘든 처지라 내 작은 힘으로는 도와드릴 수도 없고

안타깝기만 하더구나.

지금 정도 같으면 조금의 힘은 될 수가 있었을 텐데..

그리고, 지금까지 이십 이년 동안 한눈 팔지 않고 이 계통에서 일하다 보니,

이젠 내 가게도 하나 차렸고, 남들이 그러더구나.

여자 혼자 힘으로 이 험한 세파에서 성공했다고 말이야.



내가 아무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은 내가 살아온 이런 이야기를 영민이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영민이가 그 분의 단 하나뿐인 혈육이고 생긴 모습이 아버님의 젊었을 때의

모습과 너무 흡사하다 보니 잠시 예전에 그런 감정을 느끼고 싶어서인지 몰라.”



마담의 긴 이야기가 끝이 난다.

내가 묻는다.

“아주머니의 지금 나이가 마흔 다섯이겠네요? 그리고, 이름이 혜진이에요?”

“그래.. 지금 마흔 다섯이지. 이름은 백 혜진이고..”



룸의 문이 열리더니 김 부장님이 안으로 들어온다.

“내가 많이 늦었지? 업무 정리할게 밀리다 보니..”

마담이 말을 건넨다.

“어서 오세요. 김 부장님.”

“오랜만이네. 영민군하고 데이트하고 있었던 거야?”

내가 얼굴을 붉힌다.

“부장님도.. 참,”

마담이 빙글거리며 말을 받는다.

“왜, 난 젊은 총각하고 데이트하면 안돼요?”

“안될 거야 없지. 그건 마담의 능력이고..”

“호호호! 술 가지고 올까요?”

“그래. 발렌타인 17년산으로 하지.”

“알았어요. 준비할게요.”



마담이 밖으로 나가고, 김 부장이 내게 말한다.

“그 동안 자네랑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별로 없어 이렇게 보자고 했네.

일은 어때?”

“이제 겨우 영업을 어떻게 하는 거지 감을 잡은 것 같습니다.

근데, 영업이란 게 열심히 한다고만 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렇게 생각을 하나?”

“물론 공정한 경쟁을 해서 발주처 쪽에서 원하는 조건.. 시방이나 가격 등

그런 것으로 공사 발주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리베이트나 술 접대 등 뒷거래로 공사가

결정되는 경우도 많이 있더군요. 특히, 큰 공사 같은 경우는..

전 아직 어려서 그런지 아무래도 그런 접대자리 같은 건 어색해요.”

“아직까진 우리 사회가 그래.

그래도, 앞으로 영업을 하려면 그런 자린 능숙하게 해낼 수 있어야지.”



룸의 문이 열리고 술이 셋팅되고, 마담이 내 옆 자리에 앉는다.

마담이 김 부장과 내 잔에 술을 따라주면서 묻는다.

“무슨 이야기들 하고 있었어요.”

김 부장이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말한다.

“이 친구가 영업부서로 옮겨온 지 이제 두 달이 되었는데, 그 동안 어떤가 하고 물어봤어.”

”그래, 영민이.. 어떤데?”

김 부장이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아니? 두 사람. 언제 그렇게 다정하게 부르는 사이가 됐어?”

마담이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을 한다.

“우리 서로 친하게 지내기로 했어요. 그래, 영민이. 영업을 해보니까 어때?”

부장이 대신 대답을 한다.

“이 친구가 아직 젊고 사회경험이 없다 보니, 영업의 뒷거래 같은 건 어색한 모양이야.

앞으로 프로 세일즈맨이 되려면 그런 것도 능숙하게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래요? 돈 거래나 술 접대 자리 같은 걸 말하는 모양인데,

젊은 사람이 그걸 잘하면 오히려 이상한 거지..”

내가 말을 한다.

“리베이트 건이야 확실한 언질을 받고 실수 없이 돈을 전달하면 되지만,

술 접대자리는 잘하고 싶어도 경험이 없어서 영 어색해요.”



마담이 말을 한다.

“그나 저나 나는 술 한잔 안 줘요?”

내가 황급히 마담에게 술을 따른다.

김 부장이 마담에게 말을 한다.

“자넨 여기 계속 앉아 있어도 괜찮아? 나가봐야 되지않아?”

“저도 오늘은 손님으로써 여기서 술 마시고 싶어요. 괜찮죠? 부장님.

대신 술은 오늘 제가 살게요.”

“그렇게 해서 언제 돈을 벌어? 나야 괜찮지만.. 영민군. 자넨 어때? 관계 없겠어?”

내가 두 손을 내저으며 말한다.

“아이구, 전 아무 상관없습니다.”

“돈이야 벌만큼 벌었고, 제가 두 사람에게 술 한잔 대접 못하겠어요?”



그러더니, 마담이 인터폰으로 누군가를 부른다.

잠시 후, 룸의 문이 열리며 정장을 한 사십대 초반의 남자가 들어와서 고개를 숙인다.

마담이 그 사람을 보고 말한다.

“지배인님, 이 두 분은 귀한 손님인데, 오늘 이 자리에 계속 있을 테니까,

다른 손님들이 날 찾거든 어디 나갔다고 해요.”

“잘 알았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고 지배인이 나간다.

마감이 술잔을 들어 올리더니 건배를 청한다.

“자, 오늘 기분 좋게 한잔해요. 내일이 일요일이니까, 조금 늦게까지 마셔도 괜찮지요?”

김 부장이 기분 좋은 얼굴로 술잔을 들고 말한다.

“자네도 술 한잔씩 하는 모양이지?”

“보통 때야 술은 잘 안 마셔요. 하지만, 오늘은 술 한잔 하고 싶네요.”

부장이 농담을 한다.

“왜? 옛날 사모하던 분의 아들이 와서 그래?”

“어떻게 내 마음을 그리 잘 아세요? 이렇게 쳐다보니까 꼭 그 분과 닮았네요.”

마담이 그렇게 말하면서 날보고 윙크를 한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며 얼굴이 뻘개지는 것 같다.

안 그래도 아까부터 내 옆 자리에 앉아있는 마담에게서 향수냄새인지 향기로운 냄새가

내 후각을 자극하다 보니, 마신 술과 더불어 온 몸이 흥분되어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부장이 그런 나를 보고 재미있다는 듯이 말한다.

“이 친구 얼굴 빨개지는 것 좀 봐.”

마담이 고개를 옆으로 돌려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장난기 섞인 얼굴로 말을 한다.

“영민이는 사귀는 여자친구가 없어?”

“아직… 없습니다.”

부장이 말을 받는다.

“이 친구.. 명문대인 H대를 수석으로 졸업하려면 공부말고는 한눈 팔 사이가 있었겠어?”

마담이 나를 보고 말한다.

“음.. 그럼, 내가 참한 여자 애를 하나 소개해줄까?

하기야, 내가 아는 여자 애라곤 이 계통에서 일하는 애들밖에 없으니..”

“아직은 그런 쪽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하기야 다 자기 짝은 정해져 있다는데, 언젠가는 참한 아가씨가 영민이 곁에 나타나겠지.

그보다 앞으로 영업을 하려면, 술 접대 자리도 그렇고 여자 경험도 있어야 능숙하게 영업을

잘할 수 있을 텐데..

영민이. 여자 경험은 있어?”

내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말을 한다.

“아직.. 없습니다.”

“나이가 몇 살인데?”

“스물 일곱입니다.”

“그 나이에 아직도 여자를 몰라? 그래 가지고 술 접대 자리에서 여자를 다룰 수 있겠어?”

김 부장이 나선다.

“마담이 적당한 아가씨를 골라 영민군 교육을 좀 시키지?

부담이 없는 그런 아가씨로 말이야.”

“그야 어렵진 않지만.. 정말 그래 볼까요?”



나는 계속 고개를 숙이고 말을 못하고 앉아 있다.

애꿎은 술만 들이킨다.

서로 여러 순배의 술이 돌아가고, 마담이 양주 한 병을 더 시킨다.

마담도 이젠 술이 오르는지 홍시처럼 빨개진 얼굴로 말한다.

“부장님, 노래 하나 해야지요?”

“어? 그래.. 노래 해야지. 마담이 먼저 노래 한 곡을 불러.”

“그럴까요?”

마담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음악을 틀고 노래를 부른다.

곡목은 김 현식의 ‘사랑했어요’ 이다.

고운 한복을 입고 두 손으로 마이크를 감싸 쥔 채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황홀하기 조차 하다.

넋을 잃고 마담이 노래 부르는 모습을 바라본다.



‘돌아서 눈 감으면 잊을까.. 정든 님 떠나가면 어이 해.

………………………………………………………………

………………………………………………………………..

사랑했어요. 그땐 몰랐지만.. 이 마음 다 바쳐서 당~신을 사랑했어요.

…………………………………………………………………

…………………………………………………………………’



마담의 노래가 끝이 나고, 부장님과 내가 박수를 친다.

내 착각인가? 마담의 눈이 반짝거리는 것 같다.

부장님이 일어나서 뽕짝 노래를 한 곡 하고, 마담이 날보고 노래를 시킨다.

“영민이. 한 곡 불러봐.”

“전.. 노래를 잘 못하는데요.”

“영업을 한다는 친구가 노래를 못하면 어떻게 해? 노래를 못하면 억지로라도

노래를 배워야지. 내가 들어볼 테니까 한번 불러봐.”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른다.

곡목은 나 훈아의 ‘사나이 눈물’이다.



한 곡을 부르고 나서 자리에 앉으니 마담이 내게 말을 한다.

“박자나 음정은 그런 데로 맞는데, 노래의 맛이 없어.

노래 부를 때는 최대한 감정을 넣어서 노래를 부르고, 자신 있게 크게 부르는 게 중요해.

또, 강약을 조절해서 부르는 것도 중요하고..

그리고, 접대자리에선 가급적이면 흥겨운 노래를 선곡해서 불러야 해.”

김 부장이 말을 한다.

“앞으로 마담이 영민군을 좀 가르치게나.”

“그럴까요? 근데 영민이는 사교춤은 출 줄 알아?”

“아뇨.. 춤 배울 기회가 없어서..”

“능숙하게 잘할 필요는 없지만, 기본적인 사교춤은 출 줄 알아야지..

안되겠다. 부장님 말씀대로 내가 널 가르치던지 해야겠다.

물론 댄스 교습소도 있겠지만, 매일 시간을 투자하는 것도 그렇겠고, 그런 데는

투자하는 시간에 비해서 별로 진도도 나가지 않고..

내가 따로 영민이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대성건설에 입사를 한 이유가 아버님의

복수를 하기 위한 것이 아냐?

그럼, 이것 저것 가릴 것 없이 최대한 목표에 빨리 도달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야지.

당장 다음 주부터 일주일에 한번 시간을 내서 여기로 와.

토요일이 좋겠군.

룸을 하나 따로 준비해놓을 테니까, 서너 시간 정도 영민이에게 가르칠 테니까.

술을 마시는 법이라든지, 기본적인 사교춤과 여자를 다루는 방법 등 말이야.”

김 부장이 말을 한다.

“아주 잘되었군.. 영민군, 그렇게 하도록 하게나.”

“저야 그렇게 해주시면 고맙지만, 마담께서 저 때문에 너무 수고를 하시는 것 같아서..”

“영민이 아버님께서 내게 해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나도 영민이가 계획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그 날은 그렇게 술 좌석이 끝이 나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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