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_상_떨림, 사랑, 그리고 두근거림 - 단편 상
2018.09.06 18:30
직장일기 중간중간 번외편을 쓰고 있습니다. 사실 직장일기와는 사뭇 다른 이야기들 입니다.
이번 이야기는 번외편으로 단편으로 집필하기에 조금 긴 내용이라서 또 다른 중편으로 상, 중, 하 편으로 연재 할까 합니다.
직장일기에 매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작품 활동으로 더욱 매진하기 위함이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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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응?”
선생님과 다시 이렇게 우연하게 만난다는 것은 내가 중학교 시절에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었다.
“민기 아니니?”
“선생님~”
충무로 대한극장 앞에서 영화를 보기 위해 우산을 쓰고 군밤을 사려던 나는 옆에서 뭘 사던 여자가 눈에 들어왔고 이내 모두 깜짝 놀랐다.
“어머~ 여자친구?”
“네? 네~”
“안녕하세요~”
서로 인사를 한다. 여자친구… 그래 여자친구다. 오늘로 세 번째 만남이고 영화를 보러 가기로 해서 이곳에서 만났다.
“선생님은 일행?”
“아~ 나는 신랑이랑 왔어~”
“아 네~”
저쪽에서 누군가 의아해 하면서 이쪽을 바라본다. 선생님의 부군인가 보다. 서로 살 것들을 사고 나서 우산을 접고 인사를 나누었다.
중학교 선생님!! 그리고 그 부군!! 제자와 그 여자친구!! 좀 웃기는 멤버다.
“안녕하세요~”
“어머~ 너무 예쁘다~ 민기 능력있네?”
선생님이 의외로 중간 역할을 해주신다. 내가 학교에 다닐 적에는 생각할 수도 없는 모습이다.
부끄러워하는 그 애는 처음 만나서 술자리를 가졌고 그날 함께 있었다. 우리는 어렸고, 또 서로에게 호감이 있었다. 깔깔대며 자기 신랑에게 설명을 하는걸 우리는 들리지 않는다.
“아~ 반가워요~”
선생님의 남편이 인사를 한다. 흰 남방에 청바지… 나이는 40대로 보이지만 그런대로 잘 어울린다. 센스도 있어 보이고 미술 선생님의 남편으로도 손색 없어 보인다.
“네~ 안녕하세요~”
여자친구 대신 내가 인사를 하며 거들었다. 모두 어색한 상황이다. 사실 평일에 비가 오는 날에 이런 시간에 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이 많지는 않으리라… 그런데 우리는 마주쳤다.
“민기야 너네 무슨 영화 볼거니?”
“아 저희는 XXXXX 보려고요~”
“어머~ 우리도 그거 볼건데~ 표 끊었어?”
“네? 아직~”
“그럼 오랜만에 선생님이 한턱 쏠까?”
“아니에요~ 폐끼치면…”
선생님의 남편이 거든다.
“아이고~ 우리 마누라 제자면 나도 그냥 있을 수 없죠~”
남편이 얼른 표를 끊으러 간다. 그 사이 여자친구가 화장실을 간다면서 다소곳하게 눈인사를 하고는 화장실로 향한다.
“민기 잘 지냈어?”
김예원 선생님!! 그녀는 미술 선생님 이었다. 중학교 내내 그녀는 모든 학생들의 우상이었다. 날씬한 몸매와 늘씬한 다리… 그리고 예쁘고 활발한 성격이 모든 남학생뿐 아니라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초임 미술 교사는 관심의 대상 이었다.
“아~ 선생님은요?”
“뭐 나야~”
“언제 결혼하신 거에요?”
“응? 작년에”
“아~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
그녀가 쓸쓸하게 웃는다. 왠지 나도 모르게 씁쓸한 기분이 든다. 나는 그녀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또 그녀는 나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이제와 이렇게 만나는 것은 또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아~ 4장 끊었어~ 아직 20분 정도 남았는데?”
“어머~ 뭐하지?”
“그럼 커피나 마시죠~”
비가 오는 날이면 그녀는 커피를 마셨다. 아무것도 타지 않은 쓴 거피를 그녀는 즐겼었던 기억이다. 여자친구가 돌아오고 나서 우리는 바로 옆에 있는 커피숍으로 갔고 이번에는 내가 사오겠다고 하고는 내가 주문을 하러 가니 여자친구가 따라온다.
“왜 자리에 있지~”
“누구야?”
“응~ 나 중학교 미술 선생님~ 졸업하고는 첨 보네?”
“너 미술도 했었어?”
“아니~ 그냥 선생님이지~”
“응”
여자친구가 은근히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선생님이기는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부임해서 우리를 가르쳤고 그게 내가 중학교 2학년 시절이니 15살이고 그녀는 24살 이었다. 지금 내가 20살이 된 대학생이니 그녀도 29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꾀나 동안이어서 학교 때에도 학생들의 우상 이었지만 지금도 내 여자친구가 신경 쓰이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커피를 주문해서 가져가 잔을 돌려 놓으면서 선생님 앞에는 에스프레소를 놓아 주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커피!!
“어머~ 맛있다아~”
뜨거운 커피를 호호 불면서 한 모금 마시더니 선생님이 호들갑을 떤다. 선생님의 남편은 까페 모카~ 내 여자 친구는 카라멜마끼아또, 그리고 난 아무것도 넣지 않은 아메리카노…
모두들 맛을 기대하면서 각자 커피잔에 입을 가져가 조금씩 후후~ 불면서 한 모금씩 마신다.
모두 만족한 모습…
그런데 우리는 그 후에 말이 없었다. 선생님이
“그래 민기야 대학은?”
“아 XX대요”
“음~ 좋은 대학 갔네?”
“무슨꽈?”
“경영학과요”
“의외네?”
“네?”
“아니 선생님은 니가 국문과나 뭐 이런데 갈줄 알았는데”
그 때는 책을 참 좋아했었다. 뭐 사실 지금도 소설가가 꿈이긴 하지만 집에서는 이과에 진학해서 먹고 살아가는데 불편함이 없길 바랬고, 나는 그나마 문과에 진학 하면서 부모님의 말대로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영화 시간이 다 되어 계단을 올라 영화관으로 들어섰다. 캄캄한 곳에서 자리를 잡느라 조금 시간이 걸렸다. 선생님의 남편, 선생님, 나, 그리고 내 여자친구가 앉았다. 굳이 제일 밖의 자리가 편하다면서 여자친구는 밖에 앉기를 희망했다.
선생님과 오랜만에 이렇게 앉아본다.
모두 불어 꺼지더니 CF가 나온다. 귀가 따가울 정도로 볼륨이 큰 영상이다. 선생님을 보니 역시 귀가 따가운지 조금 아래로 고개를 떨구고 있다. 그 모습을 보니 왠지 그때 생각이 난다.
“자자~ 수업 여기까지 다 못 그린 그림은 집에서 그려와서 반장이 걷어와~”
중학교 2학년 미술 시간… 남학교인 탓에 미술 시간은 언제나 시끄럽게 진행된다. 선생님은 종이 울리자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과 인사를 나눈다. 왠지 아쉽다. 중학교 2학년 처음 봄 방학 개학식에 교장선생님의 소개로 나타난 선생님은 우리학교의 우상이었다. 그만큼 예쁘고 신비했다.
미술시간만 되면 아이들은 자동차 백미러에 붙어 있는 작은 볼록렌즈를 신발에 끼워 선생님의 치마 속을 보기 위해서 혈안이 되었다. 나를 비롯해서 여러 학생들은 소위 잘 나가는 그 녀석들의 그런 짓이 정말이지 못 마땅했다.
그날도 그랬다.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우리 반… 아니 전교에서 또라이라고 불리우는 성호가 또 그짓을 시작했다. 수업 시작 전부터 신발에 그 볼록렌즈를 끼우고는 실험을 한답시고 난리를 피우는 것을 내 눈으로 보면서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수업이 시작하고 정물화를 그려보자는 선생님은 교탁 위에 접시와 과일, 채소를 다소곳하게 놓고는 아이들의 그림을 지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성호와 그 단짝인 병태가 드디어 일을 벌인다. 병태가 손을 번쩍 들더니 선생님께 질문을 한다. 선생님은 아무것도 모르고 병태에게 다가가 병태의 손을 잡고 함께 그림의 형태를 잡아준다. 그 사이 성호는 선생님의 치마 속을 보려고 킬킬대면서 은근한 기대 심리로 입이 삐죽 나오면서 슬금슬금 볼록렌즈가 달린 신발을 선생님의 치마 속으로 발을 뻗는다.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른다. 사실 어려서부터 몸집이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전학을 오고 나서는 조용히 학교를 다니는 착한 놈이었다. 아이들도 착하고 순하지만 몸집이 작지 않아 무시를 하거나 심한 장난을 치지는 않아 스스로 다행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런 내가 벌떡 일어나 성호 멱살을 잡았다.
“다리 집어 너라~”
“이 새끼가?”
흥분하고 놀란 성호는 수업시간 인데도 길길이 날 뛰었다. 놀란 선생님은 뒤 돌아서 우리를 가깝게 지켜보셨다.
“너 씨발 끝나고 뒤로 나와~”
“이런 씨발놈이 미쳤나~”
나는 우선 성호를 앉히고 선생님을 안심 시키기 위해서 끝나고 남으라는 말로 달래고는 성호와 나는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을 멍~ 하니 보시던 선생님은 다 커버린 남자 아이들이 무서웠는지 조금 겁에 질린 표정으로 다시 홱 하고 돌아서 명태의 그림을 조금 더 봐 주시고는 교탁 옆에의 책상에서 창 밖을 한참 바라보셨다.
딩동댕~ 딩동댕~
수업종이 울리고 선생님은 반장에게 지시를 하더니 이내 곧 사라졌다. 선생님이 문을 닫기 무섭게 성호가 달려든다.
“너 이 새끼 죽어볼래?”
멱살을 잡아 올린다. 이 정도는 예상을 했다. 나도 이제는 더 이상 순하게 공부만 하던 범생이 노릇은 지겹다. 확 뿌리치며~
“씨발~ 지금 하자고? 너랑 나랑 정학 맞기 싫으면 끝나고 보자~”
“하~ 이 새끼가 돌았나~”
하면서 손을 치켜 든다. 나는 계속 녀석을 노려보고 있었다.
성호는 다시 조금 실소를 짓더니
“그래 씨발~ 너 끝나고 보자~ 뒤질라구~ 아 나 씨발~”
이렇게 우리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마지막 수업을 기다렸다.
순간 다시 컴컴해진다. CF가 다 끝나고 영화가 시작할 타이밍!!
어두운 그 때에 선생님이 내 손을 잡아준다. 놀란 나는 선생님을 보았다. 선생님은 여전히 영화를 더 자세히 보겠다는 그 자세로 앞만 보고 있다. 3초쯤 흘렀을까 영화사를 홍보하는 영상이 흐르며 다시 귀가 아플 정도의 오디오가 영화관을 메운다.
“야~ 씨발 이빨 부러졌다고 집에 얘기하지 말자~”
“너나 질질 짜지마 븅신아~”
중학생~ 지금 생각해도 조금 실소가 나온다. 겁도 많고, 아직 뭐가 뭔지 잘 모를 나이다. 물론 남자는 더 나이가 먹더라도 마찬가지다. 서로 온갖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뱉으면서 노려본다. 그러다가 성호가 달려들었다.
“와아~”
둥그렇게 몰려든 아이들이 환호성을 짖는다. 성호는 강했다. 아니 중학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손과 발이 빨랐다. 나도 녀석을 몇 번 때리긴 했지만 흠씬 두들겨 맞았다.
녀석과 나는 지칠 대로 지쳤지만 훨씬 많이 맞은 것은 나였고, 그건 누가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아 참나~ 씨발! 야~ 너 미술 좋아해?”
성호가 입을 연다. 눈에 불이 난다. 녀석의 입에 미술 선생님의 이름이 오르는 것조차 불쾌하고 또 이렇게나 많이 모인 친구들의 시선이 모조리 나를 향한다. 무슨 용기가 나서 일까?
“이런 씨발놈이~”
다짜고짜 녀석을 향해 돌진하는 나름 녀석은 가볍게 제쳤다.
“야~ 씨발!! 그만하자~ 내가 여기서 너 더 때리면 나도 너도 힘들다”
의외로 녀석이 먼저 화해를 해온다. 가로 젖는 녀석의 손을 왼손으로 치면서 어퍼컷을 날렸다. 당시에는 그게 어퍼컷인지 뭔지 잘 모르고 그냥 휘둘렀던 기억이다.
“퍼억~”
찌르는 듯 오른손이 아프다. 녀석이 조금 뜨더니 이내 멀찌감치 고꾸라진다.
“와아~”
아이들의 함성~
녀석이 처음으로 쓰러졌다. 누구도 대적하지 못했던 놈이다. 그 놈이 내 펀치에 쓰러졌다. 오른손이 몹시 아프다.
그 후에 학생부 선생님이 오셨고, 우리 둘은 정학을 맞았다. 성호는 잠시 턱을 맞아 기절 했고, 나는 오른손의 뼈가 금이 가서 병원에서 깁스를 해야 했다.
우리 둘은 그 뒤로 화장실 청소를 한달 동안 해야 했고, 반성문도 한달 이나 써야 했다.
“야~ 너 씨발 쎄더라?”
“야 솔직히 운이지~ 봐라 나만 씨발 손병신 됐자나~”
“하하하~” “킥킥킥”
뒤로 우리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화장실 청소를 보름쯤하고 검사를 위해 학생부 선생님을 찾았다.
“아~ 됐어~ 그냥 가라”
씨발놈!! 귀찮으면서 왜 검사 후에 집에 가도록 한 것인지… 욕이 나온다. 그렇지만 대답을 곱게 하고는 나와서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에서 성호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드르륵~~
갑자기 미술실 문이 열리더니
“어머~ 민기야~ 선생님 뭐 옮길게 있는데 좀 도와줄래?”
“네?”
“도와주면 선생님이 맛있는거 사 줄께~ 응? 부탁 좀 하자~”
나는 성호가 기다린다. 그 후로는 친구가 되어 하교도 함께 하고, 오락실도 함께 가고, 삥도 함께 뜯고 다녔기 때문이다.
“저… 네~ 근데 저 책가방 좀 가져와서요~”
하고는 눈도 못 쳐다보고 대답하고 화장실로 냅다 뛰었다. 가슴이 콩닥콩닥…
화장실에서 성호는 창 밖을 보고 있었다.
“야~ 선생님이 가래~”
“그래? 씨발~ 검사도 안할거면서… 아 씨발 대충할걸! 가자!!”
책가방을 둘러 매더니 가자고 재촉한다. 왠지 죄짓는 느낌이다.
“아니~ 난 담임이 오래~ 오늘은 너 먼저 가라~ 낼 보자”
“왜? 씨발 너 사고 쳤냐?”
“아니 몰라~ 아무튼 나는 교무실 가봐야 하니까 너 먼저 가~”
“그래? 알았어~ 일찍 끝나면 오락실로 와라~”
하더니 무심하게 가버린다. 여전히 가슴이 콩닥거린다. 책가방을 메고 미술실로 향했다.
똑똑…
“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민기~ 왔어? 가방 거기 내려 놓고 이리 와 볼래?”
여전히 아름답다. 선생님은 내 우상이다. 요 근래 내 자위는 항상 선생님이 주인공이다.
“네~”
가방을 내려 놓고 선생님의 그림을 그리는 이젤 앞에 가보니 의외로 인물화를 그리고 계신다. 그것도 남자! 나신이다.
“어~ 선생님!! 누드도 그리세요?”
“뭐? 호호호~ 누드는 무슨~ 모델두 없는데에~”
“근데 시키실게~”
“아니 뭐 시킬건 없구~ 민기 맛있는거 사줄려고~”
“네?”
내심 놀랐다. 그 사건 이전에도 이후에도 사적으로 선생님과 말을 나눈 적은 거의 없다. 갑자기 선생님이 왜 그러시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
선생님은 연필을 놓고 가방을 메더니
“나가자”
하시고는 나를 미술실 앞에 두고 열쇠로 미술실 문을 잠그더니 손을 뻗어 미술실 위 창문 아래 안 보이는 곳에 키를 놓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앞장세워 학교를 빠져 나왔다. 가는 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왠 일인지 선생님도 아무 말도 없으셨다.
우리는 학교 앞 자장면 집으로 들어가 방에 앉아 서로 말없이 테이블만 바라 보았다.
선생님은 자장면, 그리고 탕수육과 소주를 시키셨다. 조금은 의외였다. 당시에만 해도 소주를 마시는 여자는 많지 않았다.
조금 후에 음식이 나오고 자장면을 비벼주시고는 내 앞에 내미시면서
“어서 먹어~”
하시고는 소주를 따서 잔을 채워 한잔 마시고는 나를 바라보셨다. 난 선생님을 바라보기 두려워 자장면에 코를 박고 꾸역꾸역 먹기 시작했다.
“어머~ 민기야~ 체하겠다. 천천히 탕수육도 먹으면서 먹어~”
선생님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 꾸역꾸역 자장면을 다 먹었다. 눈 앞의 탕수육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자장면이 줄어들면 들수록 왠지 겁이 덜컥 난다.
“후훗~ 배고팟구나 민기~”
새삼 의문이 든다. 선생님은 원래 나 같은 존재는 몰라야 정상이다. 전교생의 이름을 다 외울 수는 없다. 내가 특별히 미술을 잘 하는 학생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선생님과 친분이 있지도 않고, 학급의 임원도 아니었다.
“저 그런데 선생님 저 어떻게 아세요?”
그냥 생각나는 대로 물어 보았다.
“응? 왜 선생님이 널 알면 안돼? 선생님이 학생을 아는게 당연하지~”
할 말이 없다.
“성호랑 싸운데는 괜찮니?”
어제 병원에서 깁스를 푼 오른손을 매만지면서
“네~ 뭐 이깟거~”
하면서 선생님을 보았다. 선생님은 나를 지긋이 바라보고 계셨다. 이내 손을 뻗어 소주를 한잔 더 따르시고는 단숨에 마시고, 다시 소주를 따라 잔에 부으시고는 날 다시 바라보셨다.
“왜 그랬어?”
“네?”
“선생님은 괜찮은데 민기 왜 그랬니?”
“뭘~”
약간 의외였고, 아니 당황스러웠던 기억이다.
“애들이 선생님 보려고 거울 장난 하는거 알고 있어~ 민기는 안그러던데~”
“…”
내가 한 일이 아님에도 왠지 죄송스러웠다. 조금 슬프기도 했다.
“민기가 그날 선생님 지켜준거지? 그렇지?”
“네? 뭐~ 애들이 그러는게 그냥 싫었어요~”
“왜~?”
“그냥요~”
조금 웃더니 소주를 한잔 더 마신다. 젓가락으로 탕수육을 소스에 조금 묻히고 팔을 뻗는다.
“민기는 탕수육 싫어해? 이거 먹어~ 다 식겠다~”
“그냥 선생님 드세요~”
고개를 돌렸다.
“먹어~ 선생님 손이 부끄럽잖아~”
눈은 그냥 그대로 저쪽을 보면서 입을 가져가서 받아 먹었다. 왠지 젓가락에 입을 대면 안될 것 같아 끝을 물고 떼어내 내 젓가락으로 입으로 밀어 넣었다.
“민기야~ 고마워~ 선생님도 애들 이해는 하지만~ 너무 속상했어~ 민기가 선생님 지켜주고 나서 애들이 아무도 안그러더라?”
“네? 네~ 다행이네요”
“민기야 너무 고마워~”
하더니 고개를 숙여 훌쩍거린다. 순간 아이들이 미워진다. 마음 속으로 어떤 새끼든 그딴 짓을 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생각이 든다.
“그래서 민기한테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어~”
“네~ 저 이제 가도 돼요?”
왠지 부끄럽고, 선생님과의 이 자리가 불편하기만 했다. 동경하는 선생님과 단 둘이서 이렇게 앉아 있지만 왠지 불편하기만 하다.
“응? 이거 먹고 가야지~”
“다 먹었는데요”
“민기는 선생님이 싫어?”
“네? 아니요~”
“그런데 왜 벌써 가려고 해~”
“그냥”
선생님이 조금 웃는 것 같다. 나는 계속 고개를 떨구고 있어서 그걸 볼 수는 없다. 순간 선생님의 손길이 턱에 느껴진다. 움찔하고 놀랐지만 그녀의 손길이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질 만큼 부드럽다.
“선생님 좀 봐~”
“네~”
“민기야~”
날 똑바로 부른다. 꿈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제서야 똑 바로 처다 볼 수 있다.
“선생님이 너무 고마워어~ 알지?”
“네~”
“어서 더 먹어~”
하더니 탕수육 그릇을 내 앞으로 밀어준다. 그리고는 소주를 마시고 다시 따라서 더 마신다. 그날 선생님과 나는 그렇게 앉아 있었고, 나는 탕수육을 더 먹을 수 없었다. 선생님이 소주를 다 마시고 나서야 우리는 헤어졌고, 나는 그날 3번이나 자위를 했다.
그 일이 있고 2주 후에 나는 선생님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이번 이야기는 번외편으로 단편으로 집필하기에 조금 긴 내용이라서 또 다른 중편으로 상, 중, 하 편으로 연재 할까 합니다.
직장일기에 매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작품 활동으로 더욱 매진하기 위함이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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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응?”
선생님과 다시 이렇게 우연하게 만난다는 것은 내가 중학교 시절에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었다.
“민기 아니니?”
“선생님~”
충무로 대한극장 앞에서 영화를 보기 위해 우산을 쓰고 군밤을 사려던 나는 옆에서 뭘 사던 여자가 눈에 들어왔고 이내 모두 깜짝 놀랐다.
“어머~ 여자친구?”
“네? 네~”
“안녕하세요~”
서로 인사를 한다. 여자친구… 그래 여자친구다. 오늘로 세 번째 만남이고 영화를 보러 가기로 해서 이곳에서 만났다.
“선생님은 일행?”
“아~ 나는 신랑이랑 왔어~”
“아 네~”
저쪽에서 누군가 의아해 하면서 이쪽을 바라본다. 선생님의 부군인가 보다. 서로 살 것들을 사고 나서 우산을 접고 인사를 나누었다.
중학교 선생님!! 그리고 그 부군!! 제자와 그 여자친구!! 좀 웃기는 멤버다.
“안녕하세요~”
“어머~ 너무 예쁘다~ 민기 능력있네?”
선생님이 의외로 중간 역할을 해주신다. 내가 학교에 다닐 적에는 생각할 수도 없는 모습이다.
부끄러워하는 그 애는 처음 만나서 술자리를 가졌고 그날 함께 있었다. 우리는 어렸고, 또 서로에게 호감이 있었다. 깔깔대며 자기 신랑에게 설명을 하는걸 우리는 들리지 않는다.
“아~ 반가워요~”
선생님의 남편이 인사를 한다. 흰 남방에 청바지… 나이는 40대로 보이지만 그런대로 잘 어울린다. 센스도 있어 보이고 미술 선생님의 남편으로도 손색 없어 보인다.
“네~ 안녕하세요~”
여자친구 대신 내가 인사를 하며 거들었다. 모두 어색한 상황이다. 사실 평일에 비가 오는 날에 이런 시간에 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이 많지는 않으리라… 그런데 우리는 마주쳤다.
“민기야 너네 무슨 영화 볼거니?”
“아 저희는 XXXXX 보려고요~”
“어머~ 우리도 그거 볼건데~ 표 끊었어?”
“네? 아직~”
“그럼 오랜만에 선생님이 한턱 쏠까?”
“아니에요~ 폐끼치면…”
선생님의 남편이 거든다.
“아이고~ 우리 마누라 제자면 나도 그냥 있을 수 없죠~”
남편이 얼른 표를 끊으러 간다. 그 사이 여자친구가 화장실을 간다면서 다소곳하게 눈인사를 하고는 화장실로 향한다.
“민기 잘 지냈어?”
김예원 선생님!! 그녀는 미술 선생님 이었다. 중학교 내내 그녀는 모든 학생들의 우상이었다. 날씬한 몸매와 늘씬한 다리… 그리고 예쁘고 활발한 성격이 모든 남학생뿐 아니라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초임 미술 교사는 관심의 대상 이었다.
“아~ 선생님은요?”
“뭐 나야~”
“언제 결혼하신 거에요?”
“응? 작년에”
“아~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
그녀가 쓸쓸하게 웃는다. 왠지 나도 모르게 씁쓸한 기분이 든다. 나는 그녀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또 그녀는 나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이제와 이렇게 만나는 것은 또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아~ 4장 끊었어~ 아직 20분 정도 남았는데?”
“어머~ 뭐하지?”
“그럼 커피나 마시죠~”
비가 오는 날이면 그녀는 커피를 마셨다. 아무것도 타지 않은 쓴 거피를 그녀는 즐겼었던 기억이다. 여자친구가 돌아오고 나서 우리는 바로 옆에 있는 커피숍으로 갔고 이번에는 내가 사오겠다고 하고는 내가 주문을 하러 가니 여자친구가 따라온다.
“왜 자리에 있지~”
“누구야?”
“응~ 나 중학교 미술 선생님~ 졸업하고는 첨 보네?”
“너 미술도 했었어?”
“아니~ 그냥 선생님이지~”
“응”
여자친구가 은근히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선생님이기는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부임해서 우리를 가르쳤고 그게 내가 중학교 2학년 시절이니 15살이고 그녀는 24살 이었다. 지금 내가 20살이 된 대학생이니 그녀도 29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꾀나 동안이어서 학교 때에도 학생들의 우상 이었지만 지금도 내 여자친구가 신경 쓰이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커피를 주문해서 가져가 잔을 돌려 놓으면서 선생님 앞에는 에스프레소를 놓아 주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커피!!
“어머~ 맛있다아~”
뜨거운 커피를 호호 불면서 한 모금 마시더니 선생님이 호들갑을 떤다. 선생님의 남편은 까페 모카~ 내 여자 친구는 카라멜마끼아또, 그리고 난 아무것도 넣지 않은 아메리카노…
모두들 맛을 기대하면서 각자 커피잔에 입을 가져가 조금씩 후후~ 불면서 한 모금씩 마신다.
모두 만족한 모습…
그런데 우리는 그 후에 말이 없었다. 선생님이
“그래 민기야 대학은?”
“아 XX대요”
“음~ 좋은 대학 갔네?”
“무슨꽈?”
“경영학과요”
“의외네?”
“네?”
“아니 선생님은 니가 국문과나 뭐 이런데 갈줄 알았는데”
그 때는 책을 참 좋아했었다. 뭐 사실 지금도 소설가가 꿈이긴 하지만 집에서는 이과에 진학해서 먹고 살아가는데 불편함이 없길 바랬고, 나는 그나마 문과에 진학 하면서 부모님의 말대로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영화 시간이 다 되어 계단을 올라 영화관으로 들어섰다. 캄캄한 곳에서 자리를 잡느라 조금 시간이 걸렸다. 선생님의 남편, 선생님, 나, 그리고 내 여자친구가 앉았다. 굳이 제일 밖의 자리가 편하다면서 여자친구는 밖에 앉기를 희망했다.
선생님과 오랜만에 이렇게 앉아본다.
모두 불어 꺼지더니 CF가 나온다. 귀가 따가울 정도로 볼륨이 큰 영상이다. 선생님을 보니 역시 귀가 따가운지 조금 아래로 고개를 떨구고 있다. 그 모습을 보니 왠지 그때 생각이 난다.
“자자~ 수업 여기까지 다 못 그린 그림은 집에서 그려와서 반장이 걷어와~”
중학교 2학년 미술 시간… 남학교인 탓에 미술 시간은 언제나 시끄럽게 진행된다. 선생님은 종이 울리자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과 인사를 나눈다. 왠지 아쉽다. 중학교 2학년 처음 봄 방학 개학식에 교장선생님의 소개로 나타난 선생님은 우리학교의 우상이었다. 그만큼 예쁘고 신비했다.
미술시간만 되면 아이들은 자동차 백미러에 붙어 있는 작은 볼록렌즈를 신발에 끼워 선생님의 치마 속을 보기 위해서 혈안이 되었다. 나를 비롯해서 여러 학생들은 소위 잘 나가는 그 녀석들의 그런 짓이 정말이지 못 마땅했다.
그날도 그랬다.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우리 반… 아니 전교에서 또라이라고 불리우는 성호가 또 그짓을 시작했다. 수업 시작 전부터 신발에 그 볼록렌즈를 끼우고는 실험을 한답시고 난리를 피우는 것을 내 눈으로 보면서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수업이 시작하고 정물화를 그려보자는 선생님은 교탁 위에 접시와 과일, 채소를 다소곳하게 놓고는 아이들의 그림을 지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성호와 그 단짝인 병태가 드디어 일을 벌인다. 병태가 손을 번쩍 들더니 선생님께 질문을 한다. 선생님은 아무것도 모르고 병태에게 다가가 병태의 손을 잡고 함께 그림의 형태를 잡아준다. 그 사이 성호는 선생님의 치마 속을 보려고 킬킬대면서 은근한 기대 심리로 입이 삐죽 나오면서 슬금슬금 볼록렌즈가 달린 신발을 선생님의 치마 속으로 발을 뻗는다.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른다. 사실 어려서부터 몸집이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전학을 오고 나서는 조용히 학교를 다니는 착한 놈이었다. 아이들도 착하고 순하지만 몸집이 작지 않아 무시를 하거나 심한 장난을 치지는 않아 스스로 다행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런 내가 벌떡 일어나 성호 멱살을 잡았다.
“다리 집어 너라~”
“이 새끼가?”
흥분하고 놀란 성호는 수업시간 인데도 길길이 날 뛰었다. 놀란 선생님은 뒤 돌아서 우리를 가깝게 지켜보셨다.
“너 씨발 끝나고 뒤로 나와~”
“이런 씨발놈이 미쳤나~”
나는 우선 성호를 앉히고 선생님을 안심 시키기 위해서 끝나고 남으라는 말로 달래고는 성호와 나는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을 멍~ 하니 보시던 선생님은 다 커버린 남자 아이들이 무서웠는지 조금 겁에 질린 표정으로 다시 홱 하고 돌아서 명태의 그림을 조금 더 봐 주시고는 교탁 옆에의 책상에서 창 밖을 한참 바라보셨다.
딩동댕~ 딩동댕~
수업종이 울리고 선생님은 반장에게 지시를 하더니 이내 곧 사라졌다. 선생님이 문을 닫기 무섭게 성호가 달려든다.
“너 이 새끼 죽어볼래?”
멱살을 잡아 올린다. 이 정도는 예상을 했다. 나도 이제는 더 이상 순하게 공부만 하던 범생이 노릇은 지겹다. 확 뿌리치며~
“씨발~ 지금 하자고? 너랑 나랑 정학 맞기 싫으면 끝나고 보자~”
“하~ 이 새끼가 돌았나~”
하면서 손을 치켜 든다. 나는 계속 녀석을 노려보고 있었다.
성호는 다시 조금 실소를 짓더니
“그래 씨발~ 너 끝나고 보자~ 뒤질라구~ 아 나 씨발~”
이렇게 우리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마지막 수업을 기다렸다.
순간 다시 컴컴해진다. CF가 다 끝나고 영화가 시작할 타이밍!!
어두운 그 때에 선생님이 내 손을 잡아준다. 놀란 나는 선생님을 보았다. 선생님은 여전히 영화를 더 자세히 보겠다는 그 자세로 앞만 보고 있다. 3초쯤 흘렀을까 영화사를 홍보하는 영상이 흐르며 다시 귀가 아플 정도의 오디오가 영화관을 메운다.
“야~ 씨발 이빨 부러졌다고 집에 얘기하지 말자~”
“너나 질질 짜지마 븅신아~”
중학생~ 지금 생각해도 조금 실소가 나온다. 겁도 많고, 아직 뭐가 뭔지 잘 모를 나이다. 물론 남자는 더 나이가 먹더라도 마찬가지다. 서로 온갖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뱉으면서 노려본다. 그러다가 성호가 달려들었다.
“와아~”
둥그렇게 몰려든 아이들이 환호성을 짖는다. 성호는 강했다. 아니 중학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손과 발이 빨랐다. 나도 녀석을 몇 번 때리긴 했지만 흠씬 두들겨 맞았다.
녀석과 나는 지칠 대로 지쳤지만 훨씬 많이 맞은 것은 나였고, 그건 누가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아 참나~ 씨발! 야~ 너 미술 좋아해?”
성호가 입을 연다. 눈에 불이 난다. 녀석의 입에 미술 선생님의 이름이 오르는 것조차 불쾌하고 또 이렇게나 많이 모인 친구들의 시선이 모조리 나를 향한다. 무슨 용기가 나서 일까?
“이런 씨발놈이~”
다짜고짜 녀석을 향해 돌진하는 나름 녀석은 가볍게 제쳤다.
“야~ 씨발!! 그만하자~ 내가 여기서 너 더 때리면 나도 너도 힘들다”
의외로 녀석이 먼저 화해를 해온다. 가로 젖는 녀석의 손을 왼손으로 치면서 어퍼컷을 날렸다. 당시에는 그게 어퍼컷인지 뭔지 잘 모르고 그냥 휘둘렀던 기억이다.
“퍼억~”
찌르는 듯 오른손이 아프다. 녀석이 조금 뜨더니 이내 멀찌감치 고꾸라진다.
“와아~”
아이들의 함성~
녀석이 처음으로 쓰러졌다. 누구도 대적하지 못했던 놈이다. 그 놈이 내 펀치에 쓰러졌다. 오른손이 몹시 아프다.
그 후에 학생부 선생님이 오셨고, 우리 둘은 정학을 맞았다. 성호는 잠시 턱을 맞아 기절 했고, 나는 오른손의 뼈가 금이 가서 병원에서 깁스를 해야 했다.
우리 둘은 그 뒤로 화장실 청소를 한달 동안 해야 했고, 반성문도 한달 이나 써야 했다.
“야~ 너 씨발 쎄더라?”
“야 솔직히 운이지~ 봐라 나만 씨발 손병신 됐자나~”
“하하하~” “킥킥킥”
뒤로 우리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화장실 청소를 보름쯤하고 검사를 위해 학생부 선생님을 찾았다.
“아~ 됐어~ 그냥 가라”
씨발놈!! 귀찮으면서 왜 검사 후에 집에 가도록 한 것인지… 욕이 나온다. 그렇지만 대답을 곱게 하고는 나와서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에서 성호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드르륵~~
갑자기 미술실 문이 열리더니
“어머~ 민기야~ 선생님 뭐 옮길게 있는데 좀 도와줄래?”
“네?”
“도와주면 선생님이 맛있는거 사 줄께~ 응? 부탁 좀 하자~”
나는 성호가 기다린다. 그 후로는 친구가 되어 하교도 함께 하고, 오락실도 함께 가고, 삥도 함께 뜯고 다녔기 때문이다.
“저… 네~ 근데 저 책가방 좀 가져와서요~”
하고는 눈도 못 쳐다보고 대답하고 화장실로 냅다 뛰었다. 가슴이 콩닥콩닥…
화장실에서 성호는 창 밖을 보고 있었다.
“야~ 선생님이 가래~”
“그래? 씨발~ 검사도 안할거면서… 아 씨발 대충할걸! 가자!!”
책가방을 둘러 매더니 가자고 재촉한다. 왠지 죄짓는 느낌이다.
“아니~ 난 담임이 오래~ 오늘은 너 먼저 가라~ 낼 보자”
“왜? 씨발 너 사고 쳤냐?”
“아니 몰라~ 아무튼 나는 교무실 가봐야 하니까 너 먼저 가~”
“그래? 알았어~ 일찍 끝나면 오락실로 와라~”
하더니 무심하게 가버린다. 여전히 가슴이 콩닥거린다. 책가방을 메고 미술실로 향했다.
똑똑…
“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민기~ 왔어? 가방 거기 내려 놓고 이리 와 볼래?”
여전히 아름답다. 선생님은 내 우상이다. 요 근래 내 자위는 항상 선생님이 주인공이다.
“네~”
가방을 내려 놓고 선생님의 그림을 그리는 이젤 앞에 가보니 의외로 인물화를 그리고 계신다. 그것도 남자! 나신이다.
“어~ 선생님!! 누드도 그리세요?”
“뭐? 호호호~ 누드는 무슨~ 모델두 없는데에~”
“근데 시키실게~”
“아니 뭐 시킬건 없구~ 민기 맛있는거 사줄려고~”
“네?”
내심 놀랐다. 그 사건 이전에도 이후에도 사적으로 선생님과 말을 나눈 적은 거의 없다. 갑자기 선생님이 왜 그러시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
선생님은 연필을 놓고 가방을 메더니
“나가자”
하시고는 나를 미술실 앞에 두고 열쇠로 미술실 문을 잠그더니 손을 뻗어 미술실 위 창문 아래 안 보이는 곳에 키를 놓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앞장세워 학교를 빠져 나왔다. 가는 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왠 일인지 선생님도 아무 말도 없으셨다.
우리는 학교 앞 자장면 집으로 들어가 방에 앉아 서로 말없이 테이블만 바라 보았다.
선생님은 자장면, 그리고 탕수육과 소주를 시키셨다. 조금은 의외였다. 당시에만 해도 소주를 마시는 여자는 많지 않았다.
조금 후에 음식이 나오고 자장면을 비벼주시고는 내 앞에 내미시면서
“어서 먹어~”
하시고는 소주를 따서 잔을 채워 한잔 마시고는 나를 바라보셨다. 난 선생님을 바라보기 두려워 자장면에 코를 박고 꾸역꾸역 먹기 시작했다.
“어머~ 민기야~ 체하겠다. 천천히 탕수육도 먹으면서 먹어~”
선생님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 꾸역꾸역 자장면을 다 먹었다. 눈 앞의 탕수육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자장면이 줄어들면 들수록 왠지 겁이 덜컥 난다.
“후훗~ 배고팟구나 민기~”
새삼 의문이 든다. 선생님은 원래 나 같은 존재는 몰라야 정상이다. 전교생의 이름을 다 외울 수는 없다. 내가 특별히 미술을 잘 하는 학생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선생님과 친분이 있지도 않고, 학급의 임원도 아니었다.
“저 그런데 선생님 저 어떻게 아세요?”
그냥 생각나는 대로 물어 보았다.
“응? 왜 선생님이 널 알면 안돼? 선생님이 학생을 아는게 당연하지~”
할 말이 없다.
“성호랑 싸운데는 괜찮니?”
어제 병원에서 깁스를 푼 오른손을 매만지면서
“네~ 뭐 이깟거~”
하면서 선생님을 보았다. 선생님은 나를 지긋이 바라보고 계셨다. 이내 손을 뻗어 소주를 한잔 더 따르시고는 단숨에 마시고, 다시 소주를 따라 잔에 부으시고는 날 다시 바라보셨다.
“왜 그랬어?”
“네?”
“선생님은 괜찮은데 민기 왜 그랬니?”
“뭘~”
약간 의외였고, 아니 당황스러웠던 기억이다.
“애들이 선생님 보려고 거울 장난 하는거 알고 있어~ 민기는 안그러던데~”
“…”
내가 한 일이 아님에도 왠지 죄송스러웠다. 조금 슬프기도 했다.
“민기가 그날 선생님 지켜준거지? 그렇지?”
“네? 뭐~ 애들이 그러는게 그냥 싫었어요~”
“왜~?”
“그냥요~”
조금 웃더니 소주를 한잔 더 마신다. 젓가락으로 탕수육을 소스에 조금 묻히고 팔을 뻗는다.
“민기는 탕수육 싫어해? 이거 먹어~ 다 식겠다~”
“그냥 선생님 드세요~”
고개를 돌렸다.
“먹어~ 선생님 손이 부끄럽잖아~”
눈은 그냥 그대로 저쪽을 보면서 입을 가져가서 받아 먹었다. 왠지 젓가락에 입을 대면 안될 것 같아 끝을 물고 떼어내 내 젓가락으로 입으로 밀어 넣었다.
“민기야~ 고마워~ 선생님도 애들 이해는 하지만~ 너무 속상했어~ 민기가 선생님 지켜주고 나서 애들이 아무도 안그러더라?”
“네? 네~ 다행이네요”
“민기야 너무 고마워~”
하더니 고개를 숙여 훌쩍거린다. 순간 아이들이 미워진다. 마음 속으로 어떤 새끼든 그딴 짓을 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생각이 든다.
“그래서 민기한테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어~”
“네~ 저 이제 가도 돼요?”
왠지 부끄럽고, 선생님과의 이 자리가 불편하기만 했다. 동경하는 선생님과 단 둘이서 이렇게 앉아 있지만 왠지 불편하기만 하다.
“응? 이거 먹고 가야지~”
“다 먹었는데요”
“민기는 선생님이 싫어?”
“네? 아니요~”
“그런데 왜 벌써 가려고 해~”
“그냥”
선생님이 조금 웃는 것 같다. 나는 계속 고개를 떨구고 있어서 그걸 볼 수는 없다. 순간 선생님의 손길이 턱에 느껴진다. 움찔하고 놀랐지만 그녀의 손길이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질 만큼 부드럽다.
“선생님 좀 봐~”
“네~”
“민기야~”
날 똑바로 부른다. 꿈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제서야 똑 바로 처다 볼 수 있다.
“선생님이 너무 고마워어~ 알지?”
“네~”
“어서 더 먹어~”
하더니 탕수육 그릇을 내 앞으로 밀어준다. 그리고는 소주를 마시고 다시 따라서 더 마신다. 그날 선생님과 나는 그렇게 앉아 있었고, 나는 탕수육을 더 먹을 수 없었다. 선생님이 소주를 다 마시고 나서야 우리는 헤어졌고, 나는 그날 3번이나 자위를 했다.
그 일이 있고 2주 후에 나는 선생님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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