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일기 - 1부 9장

*



저녁동안은 어째 몸에 기운이 없었다.

한나절을 같이 보냈던 누나가 집에 가서 그런지, 아니면 소연이가 매몰차게 가버려서 그런지.

어느 쪽도 확실하지 않았다.

다만 가사도우미 겸임 과외선생님 겸임 룸메이트가 생겼다는게 반년이나 수레바퀴같이 규칙적이던 회전에 돌멩이처럼 끼여들었다.

돌멩이라 해야할지, 보석이라 해야할지..

매력있고, 보기에는 좋으니 관상용으로는 딱이다.

꼬옥 품고 싶을 정도로 아찔한 매력을 가진 보석..



또 하나는 잘 굴러가던 수레바퀴를 멈추고 주워들었던 종이비행기.

내게 날아왔지만, 다시 어딘가로 날아가버렸다.

소연이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릿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내 선행이 걔한테는 선행으로 작용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동거하게 될 여자, 윤아영에 대한 생각을 하면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여자가 겁도 없어.

고1은 사내도 아니라는걸까?



" 내가 비뚤어져서 보는거야? "



기분이 좋지를 않으니 자연히 생각도 바른 길로 안가고 샛길로 빠지려든다.

오늘 하루동안 내가 느낀 여인 윤아영은..

매력적이다. 아름답다. 착하다. 배려심이 깊다. 현명하다. 용감하다.

전부 매력적이라는 말인데.



같이 섹스하고싶은 여자?

차라리 돈을 보고 혹해서 왔으면 좋겠다.

지금 당장이라도 불러서 품을 수 있으니까.

소중하게 보듬어주지 않아도 내것으로 만들 수 있다.

미친듯이 누나가, 아니 윤아영이라는 여자를 안고싶었다.

내 안의 악마를 너한테 풀어놓고 싶다.

네 가녀린 허리를 끌어안고, 실크를 만지는듯 보드라운 피부를 느끼면서 너를 내것으로 만들고 싶다.

내 아래에서 괴로운듯 신음하고, 열락에 환희하고, 마침내 나를 보며 수줍은듯 미소짓는 너를 갖고싶다.



하지만 진짜 내가, 인간 김은성이가 원하는게 그것뿐일까?

아니다. 너를 지배하고싶다.

동거하는 룸메이트이기 이전에, 남자로서 너 여자 윤아영을 지배하고싶다.



나는 킥킥 웃었다.

혼자 야한 생각을 하더니 종내에는 싸이코처럼 욕정해버렸다.

어린애도 아니고 혼자 고민하고 씨름하고.. 한심하다.

이젠 다 컸으니까 얻고싶은게 있으면 스스로 얻어야한다.

갈증은 남이 겪는게 아니라, 내가 겪는것이다.

물을 마셔도 내가 마셨지...



위이잉, 하는 나즈막한 진동음이 조용한 실내를 깨웠다.

나는 느긋하지도, 서두르지도 않는 걸음으로 협탁으로 가서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 여보세요? "



나 스스로도 내 목소리가 조금 더 밝아진걸 느낄 수 있었다.



" 나야. 내일 힘좀 써야하니까 일찍 자려구 전화해버렸어. 히히.. 너도 내일 선생님 방에 있는 박스 옮기려면 힘좀 써야할거야. "



" 그거 다 옮기면 바로 여기에서 주무시는거에요? "



" 응, 앞으로도 거기서 숙식하고 통학할거야. "



반드시 힘을 써야할 이유가 생겼다.



" 근데 너, 그새 무슨 좋은 일 있었어? 목소리가 좀 밝다? "



목표가 생겼거든요.

보석이 가지고 싶어졌어요.



" 그냥, 내일 파티하니까 들뜬거죠. "



핸드폰 너머로 누나가 킥킥대는것 같았다.



" 히히.. 그래. 내일 힘 잔뜩 써야하니까, 일찍 자. "



" 굿 나잇. "



" 잘 자, 은성아. "



*



아침이 되자 부랴부랴 씻고 신도림으로 가는 직행열차를 탔다.

부스스한 목소리로 띄엄띄엄 주소를 얘기해주는 윤아영이 너무 귀여워서 시내에서 혼자 큭큭거리다가 주위에서 흘리는 이상한 시선까지 받았다.



" 으응.. 거기.. 잠실역에서.. 부평역가는 표 사구.. 하암~ 역전으로 나오면.. 내가 마중나갈께.. 으응.. "



꼭 응석부리는것처럼 사랑스럽게만 느껴졌다.

연상을 좋아하는건 내가 모성애를 덜 받았기 때문이라고 어디서 연구결과를 본것같은데.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내가 윤아영을 좋아하는것과 부모 사랑을 덜 받고 자란건 다르다는거다.



인천하고 서울이 같은 수도권인데도 이렇게 멀다는건 처음 알았다.

신도림에서 환승하고 부평으로 가는 직행을 타고 나서야 전화를 했는데 아무래도 누나를 조금 기다리게 하진 않았나 벌써 조마조마했다.



스크린도어가 열리자 마자 뛰어나와서 게이트를 통과해 만남의 광장까지 정말 단숨에 달려간것 같았다.

분수 앞에서 누나는 벤치에도 앉지 않고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었다.



" 다리 아플텐데.. 앉아 있지. "



데님팬츠 위에는 라운드티에 백 하나를 양손으로 들고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왜 안오나, 하고 살짝 심통이 난 표정인데 나는 장난기가 발동해 그녀의 뒤로 가서 말했다.



" 저기요, 번호좀 주시면 안될까요? "



" 아, 저 남자친구 있.. 야! "



" 누나, 많이 기다렸어요? "



" 아냐, 방금 왔는데. "



누나는 어쩐지 내 눈치를 살피다가 입을 열었다.



" 니가 갑자기 와서 그러니까 또 귀찮은 파리 꼬이는줄 알고 거짓말했잖아. 으이씨, 거짓말 하면 벌받는다는데. "



" 누나도 꾸미니까 엄청 예쁘네요. 진짜 몰라뵈어 죄송합니다~! "



장난스레 말하자 누나가 가디건을 매만지다가 킥킥 웃었다.

파스텔톤 가디건이 어찌나 누나와 잘 어울렸는지..!



" 예쁘다고 하니까 용서해줄게. 아침은 먹었어? "



" 오늘 잔뜩 힘 쓸 만큼 먹고왔어요. "



나는 불끈 팔에 힘을 주어서 알통을 보여줬다.

고딩답지 않게 탐스럽죠? 큭큭.



" 헤, 너 진짜 운동 열심히했구나. 이제 공부만 열심히 하면 킹카되겠다. "



누나의 보폭에 걸음을 맞춰 걸으며 정신없이 지하상가를 구경하다가 용케도 누나를 놓치지 않고 쫓아갔다.



" 여기 사람 되게 많네요. 주말이라 그런가? "



" 여기가 인천의 메카야. 학생들도 많고~ 히히. 종종 놀러오자. "



" 그거 데이트 요청? "



누나가 옆에 사람들이 한 무더기로 쏟아지자 내 곁에 꼭 붙어 속삭였다.



" 오늘은.. 사람이 어째 평소보다 더 많은것 같아! 나중에 만나줄거죠, 은성씨? "



나는 심각하게 고민하는척 했다.

솔직히 말해서 심각한 체 안했으면 얼굴이 새빨개졌을것이다.

옆에서 누나가 속삭여가지고 귀에 바람이 들어간것 같았다.



" 음, 뭐.. 정 제가 필요하시다면야. "



" 바보. 어쨌든 짐 정리 도와줘서 고마워. "



" 룸메이트잖아요. "



누나는 손을 들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 히히.. 서점부터 가자. 돌쇠야! "



아, 공부도 해야하는구나.



" 예, 마님! "



나는 그래도 기분좋게 토요일을 보낼 준비가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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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개념님,갈고다까님,RAZRsilver님,황금의미학님,찍이님,가오09님,쿤빨님,냥초님,삑사리님,구름속진실님,비엔쏘주님,죽사랑님,오라를님,1ㅋㄷ2님,evend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외 졸작이나마 추천 눌러주시고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삑사리님, 오라를님, 연중은 아마도 없지 않을까..^^;; 이것만큼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해볼게요. 감사합니다!

죽사랑님, 편하게 읽어주신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ㅜ,ㅜ

구름속진실님, 덕분에 이런 실수를 반성할 기회를 가졌으니 감사할수밖에요. ㅎㅎㅎ

1ㅋㄷ2님, 아이디를 외워버렸어요. ㅋㅋㅋ

RAZRsilver님, 다음부터는 좀 정신차려서 쓸게요. 반성하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ㅠㅠ

비엔쏘주님, 산뜻하다니.. 뿌듯하네요. ㅎㅎㅎ 섹스신이 약 2화 내로 1화분량정도로 진행하는게 지금 계획입니다. 실망시켜드리고 싶지는 않은데 필력이 부족해서리. ㅠㅠ

Micca님, 1등 축하드려요. ㅋㅋㅎㅎ

쿤빨님도 좋은 하루 되세요 ^^

evend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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