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꽃 향기-제3부 - 단편

밤꽃 향기-제3부

유월의 산은 연한 연두색을 풀어놓은 듯 산언저리에서 꼭대기로 번져간다. 4월의 벚꽃이 가고 5월의 산마다 만개하더니 6월의 철쭉이 철을 만났다. 마침 일요일이라, 건강도 챙길 겸 등산을 한다. 금정산을 가려면 서면에서는 어린이 대공원 옆 초읍동에서 오른다. 아내는 무릎 관절이 아파서 등산을 싫어한다.



취미가 같으면 좋을 텐데, 가끔씩 아쉬운 생각이 든다. 그렇게 이미 나는 혼자 하는 등산에 익숙해져있다. 초읍동 마트에서 이것 저것 마실것과 먹을 것을 준비했다. 초읍동 세미산을 오르는 길이 가파르다.



산은 이미 초록으로 또는 붉은 남색으로 잎과 싹을 틔우고 있다. 세미산 정상에 오르자, 남으로 확 트인 해운대 앞 바다가 뿌옇게 봄 안개를 드리우고 있다. 벌써 얼굴에는 기분 좋은 땀방울이 맺힌다. 잠시 쉬고 전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로 들어섰다. 등산하는 사람들이 가끔 스쳐지나간다.



나의 앞에는 여자 넷이서 간다. 그중 한 여인이 낯설지 않다. 정희진을 많이 닮은 듯 하여 시간이 있을 때마다 유심히 지켜본다. 그렇게 걷는 동안 그들이 샘물 터에서 발길을 멈추고 잠시 쉬었다.



그녀는 벙거지 모자를 쓰고, 귀여운 작은 배낭을 메고 있는 차림새가 마치 아가씨처럼 보였다. 붉은 입술이 도톰한 그녀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도 벙거지 모자에 등산복 차림을 했으니, 쉽게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약수 물을 한 바가지 마시고 벙거지 모자를 벗었다. 뒤로 묶어 넘긴 머리로 가름한 얼굴이 드러났다.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안녕하세요, 희진씨?"

"오, 창수씨!"

그녀는 약간 놀란 듯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등산하세요?"

"예, 창수씨도 등산하나보죠?"

"예..."

"혜연씨와 같이 안 오고예?"

"예, 그 사람은 다리가 좋지 안아서 쉽니다."

"예."

"희진씨 일행인가 보지요?"

"예, 우리 고등학교 동창들 이예요."

"예, 안녕하세요?"

나는 그녀들에게 인사를 했다.



"어디까지 등산하나요?"

"예, 금정산 남문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갈까 생각중입니다."

"아, 예~"

"어디까지 등산하는데요?"

정희진이 나에게 물었다.



"나는 범어사로 내려 갈려고 했는데..."

샘물 터에서 잠시 쉬었다가 3명은 앞서가고 나와 정희진은 그녀들 뒤를 따라간다.



가끔씩 불어오는 소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봄바람이 시원스럽게 가슴속까지 파고든다. 저만큼 앞서가던 그녀들이 어느새 지쳤는지 걸어가는 속도가 떨어진다. 만덕고개 길에 내려오니, 막걸리와 아이스크림 파는 아저씨가 우리들을 기다린 듯이 반긴다.

"희진씨, 우리 아이스크림 하나씩 먹고 갈래요?"

"조치요?"

그녀들 중 하늘색 추리링을 입은 바람머리 아줌마가 앞장서서 아이스크림 아저씨에게 간다. 우리들도 그녀 뒤를 따랐다.



"야! 공짜로 먹을 수야 있나?, 인사는 해야제."

정희진이 나서 인사를 시킨다.



"이쪽은 바람머리는 송필옥, 김성희, 정혜영이구요. 모두 고등학교 동창입니다."

"이쪽은 남편 친구, 강민수씨"

우리는 서로 가볍게 인사를 했다.



"뭐, 아이스크림 하나가지고... 부끄럽네요."

모두 탱크바를 하나씩 들고 땀을 식혀낸다.



"그런데 남편 친군데, 마치 애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한다, 너 그래도 되는 거니?"

송필옥이 쭈쭈바를 손으로 밀어 올리면서 정희진에게 투덜거린다.



"그런가? 오늘만 그래하지 뭐."

"너, 후한이 두렵지 않니?"

"바람머리, 너만 조용하면 문제없는데..."

"맨 입에 되니?"

"그래?"

정희진은 송필옥 옆으로 가더니만

"맨입으로 안되면, 뽀뽀라도 해줄께."

하며 송필옥 입술에다 도톰한 입술을 들어댄다.

"이년이 미쳤나"

송필옥은 깜짝 놀란 척 하며 김성희 옆으로 뒤쳐간다. 그 모양을 보고 모두다 깔깔거리며 웃는다.



나도 입에 넣었던 아이스크림이 폭탄처럼 튀어나온다. 만덕 고개에서 오르는 산길이 가파르다. 오르는 길이 너무 가파르므로 누군가 잡아주면 쉽다.

나는 언덕을 먼저 올랐는데, 정희진이 맨 마지막에 뒤 쳐져온다.



"창수씨, 희진이만 챙기지 말고 좀 댕겨주소?"

뒤따라오던 송필옥의 성화에 멀쑥해진 나는 송필옥과 정혜영 김성희 그리고 정희진의 손을 잡고 차례차례 담벽위로 당겨 올렸다. 모두 힘드는지 쌔근거리는 목소리로 고맙다고 인사한다. 마지막으로 정희진의 오른손을 잡고 잡아당기면서 왼손으로 정희진의 허리를 받쳐 잡았다.



그녀의 어깨가 나의 가슴에 들어온 듯 품속에 감겨든다. 순간 그녀의 땀에서 풍기는 봄꽃 같은 향수가 사향처럼 스친다. 다시 소나무 오솔길이다. 모두 발길이 느려졌다.

"땀 내음이 좋으네요."

그녀 곁에서 속삭이듯 말을 걸었다.



"예?, 땀 냄새가 뭐...."

그렇게 말하면서 싫지는 않은 기색이다.



"금정산성 동문 쪽에 가면 밤꽃이 활짝 피었을 텐데, 꽃구경 가실래요?"

"예?, 밤꽃 구경요?"

그녀는 약간 놀라는 것처럼 물어본다.



"싫어하세요?"

"....."

나는 그녀 뒤에서 한참동안 말없이 그렇게 걸었다.



그녀의 다른 친구들은 약간 뒤쳐져 따라온다. 갑자기 말없이 걸어가는 것이 쑥스러워 걸음을 늦추었다.

"혜영아, 니는 언제 이사하는데?"

"음, 내일"

"어디로 하는데?"

"전포동, 한신아파트 뒤"

"우리가 도울 거는 없나?"

"다 버리고 가는데, 뭐 이사할 것 있겠나?"

"힘들제?"

"힘들기는, 이제는 다 잊고 산다."

"가게는 잘되니?"

"그냥 먹고사는 거지 뭐."

소나무 오솔길에서 뒤따라오던 송필옥과 정혜영이 나누는 이야기다.

"....."

"니도 잊어버리고 재혼해라."

"그게 그렇게 쉽나?"

"그렇채...."

"....."

앞서가던 정희진이 솔밭 그늘진 곳을 바라보며

"저곳에서 좀 쉬다 가자."

모두 얼굴에는 땀방울이 솟아나고, 홍조가 가득하다.



"우리 북문까지 가서 범어사로 내려갈까?"

갑자기 정희진이 코스를 변경하자고 한다. 북문까지는 아직 10km이상을 걸어야한다. 남문은 이제 거의 다 왔다.

"나는 안돼."

정혜영이 손을 젖는다.



"나도..."

송필옥도 손을 흔든다.



"나는 괜찮아, 어차피 범어사 쪽이 집이니까"

김성희가 말한다.



"그럼 어쩌지?, 창수씨는 범어사 쪽으로 간다는데."

정희진이 약간 걱정스런 투로 말한다.



"희진씨, 괜찮아요, 나도 케이블카로 금강공원에서 하산할게요."

괜히 나 때문에 분위기가 흐려지는 듯 하여 나도 그녀들과 함께 하산한다고 말했다.

"그러실 필요는 없는데..."

"아닙니다. 오늘처럼 많은 미인들과 등산은 처음입니다. 그런 뜻에서 하산주는 제가 사겠습니다."

"오, 그래요?"

송필옥이 가장 반가와 한다.



남문입구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약간 내려와 넓은 공터에 돗자리를 깔고 도시락을 풀었다. 그녀들은 전, 계란말이, 된장찌개, 두루치기 등 온갖 반찬들을 화려하게 준비했다. 나는 달랑 김밥집 김밥 2줄과 참외2개, 오이3개 막장 한 숟가락 그게 전부이다. 나의 김밥은 손도 대지 않고 그녀들의 밥상을 나의 게걸스런 식성이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거기다 후식으로 커피까지 그냥 먹기에는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혜영아, 내일 이사하면 들어갈 집에 도배하고 준비는 다했나?"

김성희가 정혜영을 쳐다보면서 물어본다.



"주인집에서 어제 해준다고 했는데, 갈 때 들려봐야지."

"그럼 도배했는지 보고, 집 구경이나 하자."

"그래."

나는 그녀들 결정에 따라 금강공원으로 내려가는 케이블카를 탔다.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산을 오르는 사람들로 케이블카는 만원이다. 케이블카 아래로는 희미한 수채화를 그려가듯 물들어 가는 봄날의 정치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정희진과 나는 케이블카 앞쪽을 보고서서 말없이 내려간다.



"산에 자주 오세요?"

정희진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예, 가끔..."

"희진씨는 산에 자주 오나요?"

"저도, 가끔씩 하지요."

"민욱이와 같이 산행하나요?"

"그럴 때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자주해요."

"민욱씨는 오늘 혼자 집을 지키겠네요."

"아니요, 지난 금요일 서울에 일 때문에 올라갔어요."

"아! 그래요, 언제 내려오는데요?"

"아마, 모래 화요일 저녁에요."

"일이 많은가 봐요?"

"예, 올라간 김에 겸사겸사 물품 공급자들과 재 계약도하고 쇼핑몰을 조금 다양화시키려나 봐요."

"불경기인데, 대단하십니다, 허허허"

"뭘요."

그때 케이블카의 앞쪽이 흔들렸다.



그녀는 앞 가이드를 잡았지만, 나는 엉겁결에 그녀를 안 듯이 하여 가이드를 겨우 잡았다. 그녀의 머리 결이 나의 얼굴에 찰랑인다. 향수는 땀 내음을 타고 나의 코 끝을 자극한다. 문득 지난날 옥상에서 보았던 그녀의 물 고인 붉은 꽃잎이 뇌리를 스쳤다.



나는 그녀의 목덜미에 대고 뜨거운 입김을 불었다. 그녀의 등판이 나의 앞가슴을 눌러왔다. 그런 상태로 서로가 기댄 채 한참동안 서있다. 모두 창가에 붙어 서서 푸르게 물들어 가는 봄 풍경을 지켜본다. 금강공원에서 내려오는 길에 막걸리 집에 들려 동동주를 한잔씩 마셨다.



김성희와 송필옥은 집으로 바로 들어가고, 나와 정희진과 정혜영은 그녀가 얻어 놓았다는 새 집 구경을 가기로 했다.



2층 연립주택으로 방 두개에 좁은 거실이 하나이다. 도배를 새로 해서 그런지 방안은 깔끔하다.

"혜영아, 살던 아파트는 팔린거야?"

"응, 팔렸어"

"좌우지간 힘들겠다."

정희진이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쳐다본다.



"창수씨, 앞으로 혜영이 많이 도와주세요, 앞으로 필요할지 모르니까"

"혜영씨, 필요하면 언제든지 부르세요, 힘쓰는 머슴이 되겠습니다."

"말만이라도 고마워요."

"말만 아닙니다. 정말 필요할 땐 연락하세요."

"창수씨, 너무 집착하는 것 같다."

정희진이 툭 건드리듯이 말을 던진다.



"예?, 그게 아니고...."

나는 뭐라고 변명하고 싶었지만 할말이 없었다.



"아니긴, 혼자 사는 사람한테 너무 친절하지 마세요, 예에?"

"아이쿠, 희진씨 말하는 투가 꼭 마누라 같구먼."

"그런가요? 호호호"

"허허허..."

"혜영아, 내일 이사 끝나고 도움이 필요하면 창수씨 불러?"

정희진이 큰방 문을 닫으며 말한다.



"희진아, 꼭 너 남편한테 심부름시키듯 한다. 너"

정혜영이 꼬집듯이 한마디하며 나를 쳐다본다.



"그게 아니라, 이사하면 전기, 전화, 가스..., 그리고 못 박는 일까지... 일 많다, 너."

정희진이 변명하듯 말한다.



"혜진씨, 맞아요."

나도 정희진의 말을 거들었다.



"그렇기도 하겠네, 그럼 너도 같이 와서 도와 주라."

"나도 같이?"

"왜? 안돼?"

"아니 안될 건 없지만... 생각을 안 해봐서"

"친구 도와주는 일인데, 생각 깊게 할거 있니?"

"그래 알았어, 창수씨! 내일 저녁 시간 되나요?"

"시간 안되어도 만들어 봐야죠? 허허허"

"고마와요."

우리들은 그렇게 약속하고 이사할 집을 나왔다.



정혜영은 집으로 가고 정희진과 나만 남았다. 그녀는 남포동 방향이고 나는 화명동 방향이다. 그곳에서 헤어져야 하는데, 쉽사리 해어지자고 이야기가 나오질 않는다.

"희진씨 저녁식사나 같이 할까요?"

"소영이가 집에 혼자 있는데."

"아참, 그렇지요."

나는 몰랐다는 듯이 정희진의 눈치를 본다.



"소영이는 혼자서 밥을 못 챙겨 먹죠?"

"예..."

정희진은 아쉬운 듯 지하철을 내려다본다.



"그럼 저녁 먹고 들어가서, 소영이 챙겨주세요, 전화해서 좀 기다리라고 하고..."

"음, 그렇게 할까요?"

그녀가 전화를 걸었으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일단 우리는 저녁 먹으로 가기로 정했다. 우리들은 어디를 갈까 망설이다가 삼겹살 집으로 정했다. 1층과 2층으로 영업을 하는데, 오늘은 저녁 손님이 많아 우리들은 2층으로 올라갔다. 삼겹살 종류도 4,5종류 되고, 가격이 보통 삼겹살 값의 2배가 넘는다. 분위기는 은은하고 조용하다. 우리는 구석에 앉아 위스키 삼겹살과 백세주를 시켰다.

"술 잘하세요?"

나는 그녀에게 물어 보았다.



"아니요, 조금해요."

"지난번 우리 집에 희진씨 좋아하는 술이 아직도 집에 있는데..."

"창수씨는 술 잘하잖아요?"

"예, 밖에서는 마셔도 혼자 집에서는 안 마셔요."

"그래요?"

삼겹살이 익어가고 우리들은 술을 비웠다. 생고기를 양주에 절여서 그런지 부드럽고 맛이 독특하다. 나는 슬쩍 화제를 돌렸다.



"희진씨, 오늘은 독수공방 하겠네요?"

"호호호, 예, 벌써 며칠 째로 그렇네요."

정희진은 땀에 마른 머리를 쓸어 넘기면서 웃는다.

나는 문득 아내가 생각났다. 늦겠다고 전화를 해야하는데, 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혜연씨는 오늘 심심했겠네요, 전화 안 해주세요."

"예?, 아 예, 해야죠."

나는 배낭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응, 난데, 오늘 좀 늦겠네"

"왜요?"

"산에서 내려왔는데, 저녁 먹고 들어갈게."

"예, 빨리 들어와요."

"그래 알았어."

내의 전화가 끝나자 정희진이 다시 집에 전화를 걸었다.



"소영아, 어디 갔다 왔어?"

"그래?, 재미있었어?"

"음, 그래 엄마 좀 있다 들어갈게"

정희진의 통화내용도 단순했다.

"소영이가 집에 있나보네요?"

"예, 친구 집에서 저녁 먹고 와서 텔레비전보고 있다네요."

"음, 잘 됐네요"

위스키 삼결살이라 그런지 입속에서 삼겹살이 살살 녹아 들어간다.



"우리 나가서 시원한 맥주 한잔 더할까요?"

"미안하지만 오늘은 안되겠는데요."

정희진은 애매한 표정으로 거절했다.



나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술 한 병을 더 시켰다.

"내일 저녁에 혜영이 이사 짐 정리하는데 도와주러 오실 거죠?"

"예, 그런데 내가 가서 도와줘도 될려는지?, 오늘이 초면인데..."

"괜찮아요, 창수씨 답지 않게 왜 그래요?"

"그게 아니라, 혜영씨는 혼자라면서요..."

"예, 혼자지요, 한 3년쯤 되었어요, 남편이 대학 시간 강사였는데, 교통사고로 사별하게 되었지요."

"음, 안됐군요, 그렇지만 요즘은 재혼도 많이 하잖아요, 재혼하지 않고서..."

"사고 나고 2년 후 재혼하려고 사귄 사람도 있었는데, 그 사람의 폭행 때문에 마음의 상처만 입고 얼마 전에 해어졌나봐요."

"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오늘 정혜영의 우수에 젖은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럼, 아이들은 없나요?"

"있지요, 우리 소영이 보다 한 살 작은 딸이 하나있지요."

"재혼도 어렵겠네요."

"그래서, 살던 아파트를 팔고 단독주택 전세로 옮기면서 서면 지하상가에 가게하나를 얻어 의류매장을 하는데 그럭저럭 장사는 되는가봐요."

정희진과 나는 얘기를 나누면서 다시 백세주 한 병을 시켰다. 벌써 4병째다.



"창수씨! 창수씨가 많이 도와주세요, 나의 동창이기도 하지만 둘 없는 친구이니까요."

"예, 누구의 부탁인데..., 도와 드릴게요."

정희진의 볼에 약간의 홍조가 돈다. 나는 그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응?, 왜요?, 얼굴에 뭐 묻었나요?"

"예? 아니요..."

나는 되묻는 말에 순간 당황했다.



"희진씨, 노래 잘하세요, 노래방에 가서 노래나 한 곡할까요?"

"노래요? 단 둘이서~"

"그래요, 시원한 맥주 한잔에 노래 한 곡 부르고 집으로 들어가요."

"저는 노래 못 불러요~"

"그럼 맥주나 한잔 마셔요?"

"오늘 여기서도 많이 마셨는데..."

"이것은 음료수 보다 알콜이 낮아요, 백세주가 뭐 술인가요?"

"그렇기는 하지만..."

나는 그녀의 작은 배낭을 한손에 잡고 한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아끌면서 네온사인이 하나 둘 켜져 가는 골목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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