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시마 다케오의 여인추억 1 ... - 1부 5장

5. 첫사랑



마사오가 일 년 연상인 다에꼬에게 "좋아한다"고 말한 건 8월 15일

패전일을 얼마 지나지 않은 그 해 가을이었다. 그 한마디를 하기 위해

마사오는 어느 날 저녁 무렵 다에꼬의 집에까지 일부러 갔다.

다에꼬는 집 안뜰에서 이제 막 노랗게 변하기 시작한 감나무를 올려

다보고 있었다. 다에꼬 뒤로 다가가 인기척을 내자 다에꼬는 뒤돌아보

더니 반색을 했다.

"어머, 오랜간만이네."

마사오가 중학교 2학년이었으므로 다에꼬는 3학년이었다. 연상의

위엄이 있었다.

"지금 싯귀를 생각하고 있었어."

"응? 난 또 저 감을 태어

나서 처음으로 남에게 "좋아한다"는 고백을 할 순간이었다. 해야 한

다. 마사오는 스스로 다짐했다.

"다에꼬?"

"응? 무슨 말을 할려고 그러는데?"

"웃으면 안 돼."

"웃지 않을께."

"난... 다에꼬를.... 좋아야. 그걸 말하러 왔어. 이제 말했으니 됐어.

안녕."

마사오는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대답은 필요

없다. 말하는 것많으로 좋다. 다에꼬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목소

리 대신 마사오를 눈으로 배웅하는 듯했다. 다에꼬의 시선이 등에 와

꽂히고 있는 게 분명했다. 다에꼬 집의 대문을 나서면서 마사오는 자

신의 용기를 자축하고 있었다.



패전 직후 사회 분위기는 암울했다. 혼란의 와중에서 마사오는 자신

이 지망했던 군사 학교로부터 거절당했고 그즈음 며칠간은 그저 멍한

상태로 시간만 보낼 뿐이었다. 마사오는 어린 나이이긴 했지만 그 어

떤 것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최후의 한 사람까지 싸우겠다던 대

일본 제국이 본토에 적이 상륙하기도 전에 항복을 해버렸고 신문이나

라디오는 이제까지와 전혀 다른 내용으로 절규하기 시작했으며 학교

선생님들은 자신감을 잃고 점차 의기 소침해져 갔다.(에고 핵폭탄이 더

떨어 졌야 하는데.. (^.^)... ?? ) 선생님뿐만 아니라 마사오 또래의 학생

들도 늘 풀죽은 꼴을 하고 다녔으며 유독 그 중에서 수완 좋은 녀석들만이

위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그러니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을 기둥삼아

스스로를 단련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면 다에꼬 같은 상냥한 사람에게 구원을 청해 평온을 얻으려

했던 것일까 ? 다에꼬를 좋아한다고 하는 자체가 가슴이 뛰는 일이었

다. 패전으로 마음의 지주를 잃게 되었다는 것은 결코 과장은 아니었

다. 왠지 모르게 멍하고 나른해지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때문에 긴장

감이 필요한 건 분명했고 다에꼬에 대한 고백은 그 긴장감을 얻기 위

한 수단의 하나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적어도 사랑은 시대의 변화에

상관없이 영원하며 변함이 없는 가장 은밀하고 사적인 감정이었다.



열흘이 흘렀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다에꼬와 마주치게 되었

다. 간단한 목례만 보내고 그냥 지나치는 마사오 앞으로 다에꼬가 다

가와 길을 가로막고 섰다. 주위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전쟁중

에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학생이 남학생을 가로막고

서다니. 그것도 대낮에 한길에서.

"미야자끼."

다에꼬는 이름 대신 성을 불렀다. 한껏 격식을 차린 셈이었다. 목소

리도 의젓했다.

"아, 안녕?"

"놀러 올래? 감 줄께."

"응, 갈께."

이야기는 그것뿐이었다. 다에꼬는 마사오의 대답에 가볍게 고개만

끄덕거려 보이고는 휑하니 가 버렸다.

그날 다에꼬의 집 안뜰에 이어진 야트막한 야산에서 마사오는 처음

키스라고 부를 만한 체험을 했다. 그전 목욕탕에서 센쯔루와 나눴던

키스는 그저 입술을 맞댄 것뿐이었다. 그보다 훨씬 더 전 요시꼬의 입

술도 어른이 아이를 귀여워하는 듯한 행동이었지 사랑의 표시인 키스

는 아니었다.

마사오는 용기를 내어 다에꼬의 입술을 요구했고 다에꼬도 태도를

분명히 했다. 허락한다는 태도였다. 다에꼬로서는 이제까지 마사오에

게 품고 있었던 가득한 정을 비로소 겉으로 내놓은 것이었고, 요시꼬

와 센쯔루를 경험한 바 있는 마사오는 용기를 낼 만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다에꼬는 살며시 눈을 감고 얼굴을 들어 마사오의 입술을 받았다.

거부하지도 않앗으나 적극적으로 응하지도 않았다. 마사오는 다에꼬

의 뺨이 붉게 물드는 것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잔잔히 퍼진 저녁

놀이 두 뺨에 비친 탓이기도 했을 것이다. 다에꼬가 눈을 떴다. 눈과

눈이 마주쳤다. 다에꼬의 몸은 굳어 있었고 다시 천천히 눈을 내리감

았다. 마사오는 다시 용기를 얻어 다에꼬를 안은 두 팔에 힘을 넣으면

서 다에꼬의 입 안 깊숙이 들어갔다. 그건 공상의 세께가 아니었다.

살아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현실이었다.

이윽고 입술을 뗀 마사오는 뺨과 뺨을 더욱 밀착시킨 채 포웅을 풀

지 않았다. 다에꼬의 낮은 속삭임이 들렸다.

"마사오, 불량스러워."

그러나 그 목소리엔 비난의 빛은 없었다. 오히려 달콤한 분위기가

실려 있었다. 처음 겪는 이 곤혹스러운 상황을 가볍게 넘기려는 앙징

맞은 말투였다.

"그렇지 않아. 다에꼬를 내 여자로 하고 싶어서 그래."

"정말이야?"

"다에꼬뿐이야."

다시 한번 마사오는 입술을 요구했고 다에꼬는 피하지 않았다. 이번

은 아까와 달리 다에꼬의 입술에서 확연하게 따뜻하고 부드러운 여자

를 느낄 수 있었다. 다에꼬가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마

사오는 기뻤다. 이제야 키스다운 키스를 한 것이다.

그동안 마사오는 감정보다 정신이 앞서 있었기 때문에 이렇다 할 성

적 흥분을 느끼지 못했고, 다에꼬의 육체에 다가가려는 마음은 전혀

표면화되지 않았다. 단지 이제 다에꼬의 마음을 얻었다는 기쁨만이 넘

치고 있었다. 예전의 그 요시꼬와 달리 키스는 단순히 육체적인 행동

이 아니라 사랑을 나누는 중요한 의식의 하나였다.

다에꼬의 팔이 마사오의 어깨를 안았을 때는 그녀가 분명히 적극적

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확신을 주었다. "이제 괜찮아. 나와 다에꼬는

이것으로 하나가 되었다." 그래도 마사오는 입술을 떼었을 때 다에꼬

의 귀에 속삭였다.

"날 좋아해?"

말로 확인받고 싶었다. 말 이상의 행위로 서로를 확인했으므로 이제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역시 그건 불안했다. 다에꼬는 곧, "좋

아해" 하고 대답했다. "훨씬 전부터" 라고 덧붙였다. 다에꼬의 대답은

당연하기도 했지만 또한 의외였다. 연상인 다에꼬는 어디까지나 마사

오를 하급생으로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붉게 내려앉았던 하늘이 어느새 진한 자색으로 변해 있었다. 곧 산

속에 어둠이 닥쳐올 기세였다. 다에꼬 식구들의 의심을 살 필요는 없다.

"이제 돌아갈께." 마사오는 마지막 키스를 했다. 다에꼬의 팔에도

힘이 들어갔다. 다에꼬가 망설이듯 물었다.

"누구랑 키스한 적이 있어?"

"아니 다에꼬가 처음이야."

"나도야. 오늘 밤은 분명히 잠을 못 잘 것 같애."

마사오는 거짓말을 했지만 다에꼬의 말은 진실일 것이다. 다에꼬에

게는 그런 상대가 있을 리 없었다. 마사오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다에꼬는 이제까지의 다에꼬가 아니었다. 연상이라는 느낌은 사라지

고 대등한 존재가 되었다. 다에꼬의 마사오를 대하는 태도도 역시 그

랬다. 그걸 느끼게 되자 마사오는 어렴풋한 책임을 느겼다. 이런 상황

을 만든 장본인은 마사오 자신이기 때문이었다.

마사오와 다에꼬는 서로의 사진을 교환했다. 당시 여학생과 남학생

이 특별한 사이가 되었을 때 제일 처음으로 하는 작은 의식 같은 거였

다. 사진을 책상 속 깊숙이 비밀스럽게 간직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수

첩 같은데 항상 갖고다니는 아이들도 있었다.

마사오는 책상 속을 택했다. 갖고 다니면 예고 없는 소지품 검사 때

빼앗길 염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미국식 민주주의가 몰려오기 시작했

지만 남녀 교제는 아직 금기시되었다. 여학생과 사귀는 아이는 일부

불량 소년뿐이라고 생각하던 시대였다. 그런 학생들과 똑같이 보이는

걸 마사오는 두려워했다. 그래서 새로운 관계가 되었다 해도 두 사람

이 자주 만나거나 하진 못했다. 함께 영화보러 가는 일도 없었다. 평

소와 거의 다름이 없었다. 마사오와 다에꼬는 국민학교 때부터 소꼽

친구였기 때문에 두 사람이 만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 점만금은 유리했다. 일 주일에 한 번 정도 두 사람

은 들이나 숲을 한 시간쯤 산책하면서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발길은 자연히 사람이 없는 곳으로 향해졌고 그곳에 가서 둘은 키스

를 나누곤 했다. 두 사람은 점점 키스에 익숙해져 갔다. 혀를 사용할

줄도 알았고 짓궃게 장난을 칠 때도 있었다. 다에꼬가 요구할 때도 가

끔 있었다. 그럴 때마다 마사오는 다에꼬의 젖가슴을 느끼곤 했다. 마

사오의 몸은 달아오르곤 했으나 그건 생리적인 현상일 뿐 그 이상 진

전시키고 싶다는 충동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몸이 흥분 상

태에 있다는 것을 다에꼬가 알게 될까 두려워 키스를 할 때마다 허리

를 늘 뒤로 빼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마사오에게 그런 욕정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면 다에꼬는 몸을 빼 달아나 버릴 것만 같았다.

세상은 시끄러웠다. 격동의 시대였다. 끔찍산 사건이 연이어 일어

났다. 그러나 마사오의 주위는 평온했다. 다에꼬의 마음을 얻은 것으

로 마음의 평정도 되찾았다.

새해가 되었다. 겨울 방학이 끝나는 날 오후 천지가 하얀 눈으로

덮였다. 마사오는 책을 빌린다는 핑계로 다에꼬 집을 찾아갔다. 내일

이면 마사오가 3학년이 되므로 다에꼬의 3학년 교과서를 빌릴 셈이었다.

응접실에서 마사오를 맞이한 다에꼬는 빨간색 옷을 입고 있었다. 다

에꼬의 어머니는 밀감과 떡을 구워주기도 했다. 연말에 만들어 놓아

딱딱해진 떡을 화로에 올려 구울 때 풍기는 냄새를 마사오는 펵 좋아

했다. 대접을 받으면서도 마사오는 비밀을 가졌다는 떳떳하지 못함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으나 다에꼬는 침착해 보였다. 정말 예전처럼 천

진난만한 소꼽친구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단 둘이 있을

때와는 달리 노골적으로 누나처럼 행동했다. 다에꼬의 어머니 앞에서

마사오는 다에꼬의 동생이었고 다에꼬는 자상하고 의젓한 누나였다.

"마사오, 내가 밖에 볼 일이 좀 있구나. 그 동안 네가 다에꼬하고

같이 있어 줄 테냐? 오래 걸릴 일은 아닌데."

다에꼬 어머니의 뜻하지 않은 말이었다. 다에꼬으 동생들도 어머니

를 따라나갈 모양이었다. 그렇게 되면 이 집에는 다에꼬와 마사오 둘

만이 남게 된다.

"그렇게 할께요. 다에꼬 누나한테 물어볼 것도 있구요."

"그래 주련?"

"네."

다에꼬 어머니는 서둘러 외출 준비를 끝냈고, 어머니가 동생들을 데

리고 집을 나서기 바로 전까지도 다에꼬는 어머니 앞에서 능숙하고 요

령있게 마사오의 누나 노릇을 잘 해냈다.

집에는 이제 둘만이 남게 되었다. 마사오도 다에꼬도 전혀 예성하지

못한 일이었다. 둘은 응접실 바닥에 마주앉았다. 서로 말이 없었다.

"저녁때나 돼야 오실 거야."

마사오의 어떤 행동을 재촉하는 듯한 다에꼬으 달콤한 목소리가 어

색한 분위기를 깼다. 마사오는 그런 생각이 착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

하면서도 남자로서의 용기를 저버리면 안 된다는 의무감 같은 느낌이

들었고, 다에꼬가 뭔가 기다리듯이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확

인하자 두 팔을 벌려 다에꼬를 맞아들였다. 역시 다에꼬는 마사오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 껴안은 채 입맞춤을 했다. 실내에서는 처음 해보는

키스였다. 밖에서보다 훨씬 더 포근했고 아늑한 느낌이었다. 시간이

길어져다. 그럴수록 마사오의 가슴은 더욱더 두근거렸고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허둥대기 시작했다. 껴안고 있던 두 사람이 동시에 바닥에 쓰

러진 건 바로 그때였다. 마사오의 자세가 흐트러지자 그에게 몸을 싣

고 있었던 다에꼬도 함께 쓰러진 것이었다.

마사오의 손이 우연히 다에꼬의 가슴에 가 닿았다. 마사오는 손을

떼지 않았다. 거절당하면 어른스럽게 뺄 생각이었고, 그 다음으로 나

아갈 의도는 전혀 없었다. 다에꼬는 약간 몸을 비틀며 피하려는 듯하

더니 곧 멈추고 젖가슴을 마사오의 손에 맡겼다. 작은 가슴이었다.기

억에 있는 센쯔루의 가슴과 달리 연약한 느낌이 들었다. 마사오는 손

가락을 움직여 보았고 다에꼬는 그때마다 움찔거리며 마사오의 팔을

잡은 손에 힘을 주곤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마사오는 이윽고 젖가슴에서 손을 떼고 입술

도 떼었다. 두 사람은 서로 발을 감은 채 다다미 위에 누웠다. 마사오

는 다에꼬의 머리에 팔베개를 해 주고 작은 소리로 속삭이기 시작했다.

저녁 무렵 다에꼬의 어머니가 돌아왔을 때 두 사람은 응접실 이편과

저편에 서로 떨어져 앉아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의심을 받지 않기 위

해서 한 시간 전부터 그렇게 앉아 있었던 것이다. 성적인 쾌락을 맞볼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는 생각이 물론 마사오에게 없지는 않았다. 그

러나 그것은 지극히 작은 느낌이었다. 몇 시간 동안 둘이서만 느긋하

게 이야기를 나눈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집을 비운 동안 마사오가 다에꼬의 말 상대가 되어 준 것

을 고마와했다. 그건 마사오도 마찬가지였다. 다에꼬의 어머니가 고

마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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