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차장 - 4부 3장

박 차장 4-3







“안녕하세요? 아저씨.”



“어…장우 학생 왔어? 오늘은 웬 일이지? 기훈이 학생도 왔는데.”



“기훈이가요?”



주인 아저씨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장우와 기훈이 항상 앉는 테이블에 기훈과 김 간호사가 앉아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기훈은 장우가 들어오는 것을 본 모양인지 장우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럼, 저도 기훈이랑 같은 테이블에 앉을께요. 일단 500 두 잔 주세요.”



장우를 따라 기훈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같이 가면서 고 대리가 웃긴다는 듯이 조용히 얘기했다.



“장우 학생이요? 이렇게 늙은 학생도 있나요? 후훗.”



“어릴 때부터 봐 온 분인데요. 뭐. 아직 혈기왕성한 청년으로 보이나 보지.”



“기훈아~, 김 간호사님도 오셨네요.”



“어~ 장우야. 간만에 김 간호사한테 잘 보일라고. 우리 간호원 한명이 또 그만 뒀걸랑.”



“박 선생님, 안녕하세요?”



“참…소개할께. 여긴 고인하씨. 나랑 같은 직장 부서 동료야. 고 대리님, 여긴 제 친구. 이기훈, 돌팔이 의사 선생님이시고, 옆에 있는 분은 우리나라 최고의 간호사인 김 간호사님.”



“그렇지…내가 돌팔이라서 니 놈 가운뎃 다리를 그 모양으로 만들어놨고, 우리 김 간호사님은 그 넘이 사용가능한지 까지 확인하셨으니, 우리나라 최고의 나이팅게일이 맞지.”



“아…고만, 고만, 술 나온다.”



장우는 기훈의 얘기에 옆에서 눈을 말똥말똥거리면서 자신을 쳐다보는 고 대리가 부담스러워 얼른 맥주 얘기로 화제를 바꿨다. 김 간호사도 기훈의 말이 우스워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쩐지 그녀의 눈길이 장우의 바지 앞섬에 머물고 있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500 두 잔에다, 노가리는 서비스야.”



“히…서비스 안주까지. 고맙습니다.”



주인 아저씨가 맥주잔과 안주 접시를 놓고 돌아서자 이제까지 들리던 노래가 멈추고 새로운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Love Is Like Oxygen.



“제 말이 맞죠? 제가 여기 오면 저 노래가 자동으로 나오게 돼요.”



“어머, 정말 그렇네요.”



“저 자슥…저거 또 써 먹네.”



“이 선생님, 그게 무슨 말이에요? 또 써 먹다니요?”



“저 자슥, 학교 다닐 때부터 여자 꼬실려고 맘 먹으면 여길 데리고 왔거든. 여길 오면 주인 아저씨가 Love Is Like Oxygen 틀어준다. 나의 아지트다. 나랑 내 아지트에 가지 않을래. 너랑 오래도록 이 아지트에 머물고 싶다. 기타 등등이지 뭐.”

“너, 고인하씨 꼬실려고 여기 왔냐?”



“맞아요. 이 선생님, 저 한테 얘기한거랑 똑 같아요. 그리고 자긴 오늘은 수컷 늑대라고 했어요.”



“이젠 수컷 늑대까지? 하이고, 저 녀석 갈 때까지 같구만…장우야…박장우야…이제 고만해라.”



“뭐라꼬~ 난 노래 소리만 들린다으…암 것도 안들린다으…”



“고인하씨, 절대로 저 넘 꾀임에 넘어가지 마세요. 저 순진을 가장한 마스크에 애궂은 처녀들 많이 당했습니다.”



“아! 우리나라에서 가장 고명하신 성형외과 의사 선생님께서 어찌 그리 입이 험하십니까? 이 술집에 있는 손님들 중에도 선생님이 칼 댄 분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음…하긴 고명한 의사인 내가 넘 지나치면 안되지.”



“하하하….”



남자들이 말도 안되는 얘기를 하면서 서로 웃는 사이에 고 대리가 재미있다는 듯이 김 간호사에게 물어봤다.



“저 분들 항상 저래요?”



“저 분들 항상 저래요. 좀 저질이죠. 히힛. 한 사람은 바지 내리고, 한 사람은 칼로 째고 바느질하고. 못 말려요.”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어요.”



“혹시, 박 선생님 거기 구경 못하셨어요?”



“거기라면…?”



“자지요.”



“어머! 김 간호사님”



김 간호사의 입에서 ‘자지’라는 말이 나오자, 고 대리의 말소리가 작아지면서 고개가 저절로 아래로 숙여졌다.



“괜챦아요. 전 박 선생님꺼 닦아주고 붕대 메주고, 볼 것 다 봤는데요. 뭐.”



“아하…그러니까. 이 선생님이 차장님 그 수술을 해줬고, 김 간호사님이 뒷처리를 했다는 말이군요. 성형외과 전문의라고 하셨는데, 거기서 그 수술도 하나요?”



“성형 맞아요. 완전히 바뀌었어요. 깔깔깔”



“고만해요. 그게 언제 얘긴데. 아직까지…난 쉬나 하고 올께요.”



“어~ 장우야, 나도 쉬하러 가자.”



장우와 기훈은 화장실 소변기 앞에 나란히 서서 자신들의 물건을 꺼냈다.



“장우야. 그거 자주 사용하냐?”



“자주 사용하는 편은 아니야. 미안하다. 작품을 만들어줬는데.”



“그러게…나 한테 미안하겠다. 기껏 만들어줬구만. 이혼이나 하고 자빠졌고. 대식이 엄마랑 대식인 잘 지내고 있다니?”



“나…연락 끊었어.”



“그래도 니 아들래민데 연락까지 끊으면 어떡하냐? 니 핏줄이라곤 그 놈 하나 만들어놨는데.”



“좀 얘기가 길어. 나중에 얘기하자. 아직까진 내가 용서가 안되서. 그러는 니 넘은 나 따라 이혼했냐?”



“우리 집은 이혼 얘기 나온 지 오래됐쟎아. 어차피 각 방 써온지 오래됐는데 뭐. 아무 감정도 없다. 그나저나 저 여자 꽤 미인이다. 니 앤이냐?”



“아까 얘기했쟎아. 직장 동료라고.”



“그래? 둘이 꽤 잘 어울리는 것 같던데…”



“야! 그만 털고 나가자. 꼬추 얼겠다.”



남자들이 화장실에 간 사이, 김 간호사는 고 대리와 장우 사이가 궁금한지 이것 저것 질문을 퍼 부었다.



“정말 직장 동료 사이일 뿐이에요?”



“네…”



“확실히 박 선생님은 여자 보는 눈이 없는 것 같아요. 이렇게 예쁜 여자를 바로 옆에 두고서도…바보.”



“김 간호사님도 차장님이랑 굉장히 친해보여요.”



“우리요? 제가 이 선생님 병원에 들어와서부터 봐 왔으니까…벌써 5년이 되네요. 두 사람 모두 사랑스런 남자들이에요.”



“사랑스러워요? 징그러운 남자들 아니구요?”



“둘 다 꼬추가 얼마나 사랑스러운데요. 히힛!”



“후훗. 김 간호사님 굉장히 짓굳어요.”



“제가 오늘 술이 좀 들어갔나봐요.” 내가 생각해도 처녀한테…참! 미쓴가요? 흠 처녀한테 별 얘기를 다하네. 오우, 저기 사랑스런 꼬추들이 돌아오네요. 헤이 꼬추스!”



“김 간호사, 넘 많이 마신 거 아니야?”



“저요? 오늘 마시라고 여기 데리구 온 거 아니었어요? 빨랑 하나 뽑아요. 요새 힘들어 죽겠다구요.”



“알겠어요. 내 빨랑 뽑도록 할게. 우리의 새로운 이쁜이를 위하여 건배!”



네 사람은 500잔을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테이블에는 비워진 맥주잔들이 눈에 띄게 늘기 시작했다. 고 대리도 일을 마치고 홀가분한지 자신의 주량을 넘어선 맥주를 마셨다. 그녀의 발그레진 볼이 그녀를 더욱 아름답게 보여주는 것 같았다. 기훈의 넉살좋은 입담에 자지러지게 웃는 고 대리가 어쩐지 그녀를 첨 봤을 때의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따르릉…”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묻혀 고 대리의 백 안에 있는 전화의 벨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여보세요. 응. 언니야. 뭐라구….알았어. 곧 갈게.”



전화기를 들고 있던 고 대리의 손이 힘 없이 아래로 늘어지며 고 대리의 고개가 숙여지고 그녀의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고 대리, 왜 그래요?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생겼어요?”



“아버지가…아버지가…돌아가셨어요.”

“죄송한데, 저 이만 가봐야겠어요. 동생 혼자 있거든요. 저 먼저 일어날께요.”



“고 대리님, 병원이 어딘데요?”



“동해병원이에요. 저 일어나야겠어요.”



“동해병원이면 강원도 동해시에 있는거 말이에요?”



“네.”



“거길 지금 혼자 어떻게 가요? 기훈아, 너 차 갔고 왔냐?”



“엉? 응! 요 앞에 대놨다.”



“나 차 키 좀 주라.”



“저 씹새는…내가 고인하씨 땜에 준다. 여기.”



“나 갈게.”



“그래, 너 술 좀 마셨으니까. 운전 조심하고.”



“알았다.”



장우는 술집 앞에 세워진 기훈의 승용차 조수석에 몸 가누는 걸 힘들어 하는 고 대리를 먼저 앉히고는 운전석에 올라 차 열쇠를 꽂았다. 배기량이 큰 기훈의 승용차의 엔진에서 힘찬 엔진음이 들렸다. 장우는 바로 엑셀리에터를 밟아 강변도로 방향으로 차를 몰아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헉헉…”



“육 대리. 나 장우야.”



“차장님…이 시간에 웬 일이세요? (야~ 그만 빨아. 나 전화하고 있단 말이야~)”



“육 대리, 미안한데. 육 대리한테 부탁할 일이 있어.”



“네, 말씀하세요.”



“방금, 고 대리 아버님이 돌아가셨어.”



“네? 고 대리 아버님이요?”



“그래, 지금 고 대리하고 병원으로 가고 있어. 동해시 동해병원이고, 돌아가신 분 존함은…고자 명자 환자. 빠삐용 이름으로 조화 보내고, 빠삐용 이름으로 조의금…300만원 준비해 줘. 그리고, **언더웨어 관리부서의 김 과장한테도 알려주고. **에서는 오늘 조의금 불출이 안될 테니까, 조화하고 조의금은 자네가 먼저 처리하고 나중에 받겠다고 해. 그리고, 우리 팀 다른 사람들하고, ** 제약, ** 언더웨어 사람들에게도 알려줘. 발인은 일요일이 될거야.”



“여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리고 전 내일 아침에 일 마무리하고 그 쪽으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할께. 이만 끊어.”



승용차는 강변도로에서 천호대교를 건너 88도로로 접어들었다. 옆에서 계속 훌쩍거리는 고 대리가 안스러워보였지만, 장우는 빨리 차를 몰아 병원으로 가는 것에만 신경을 쓰기로 했다.



“여보세요? 정 대리님. 전 육 대린데요. 오늘 고 대리 아버님이 돌아가셨데요.”



“…”



“네, 전 내일 떠날거니까. 밤 같이 세우시려면 저랑 같이 떠나면 돼요.”



“…”



“그럼, 내일 회사 앞에서 12시에 뵐께요.”



육 대리는 정 대리에 이어서 안 대리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기에서 지금은 통화를 할 수 없다는 안내음만이 계속 흘러나왔다.



“이 자식, 어디 갔길래 전화도 안되는거야? 제일 쇼크 받을 놈이…”

“야! 오늘 고만 하자구. 나 바쁘니까. 너 그냥 디벼 자.”



“아이…등신씨. 불 지펴 놓고 그만두기가 어딨엉~?”



“하이고, 나 증말 바빠서 그래. 내가 오죽하면 벌려진 보지 보고도 자지를 걷겠냐? 오늘은 걍 자라. 응?”



“칫. 정말 치사하게…”



여자는 귀챦다는 듯이 밷어버리는 육 대리의 말에 기분이 나빳는지 육 대리로부터 몸을 돌렸다. 여자의 어깨가 움직이며 자그마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육 대리는 연신 전화기를 눌러댔다.



엄청 밞아서 그런지 장우는 4시간 만에 병원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영안실 앞에는 고 대리의 동생이 초췌해진 모습을 하고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언니~”



“응…인숙아….너 혼자 힘들었지. 미안해. 언니가 이제 와서.”



“언니…우리 아빠, 너무 불쌍해…엉엉엉.”



“그래, 그래, 우리 아버지 넘 불쌍하시지…흑…”



장우는 부둥켜 앉고 슬픔에 어쩔 줄 몰라하는 두 자매에겐 한 동안 말도 붙이지 못했다. 잠시 후에 장우는 고 대리의 동생에게 어렵사리 말을 붙였다.



“저…인숙씨, 아마, 영안실 사용 문제라든가 다른 걸 하나도 못했을꺼야. 여기 원무과부터 나랑 가야될 것 같은데. 몇 가지만 나랑 같이 해. 그 다음엔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인숙아. 우리 팀장님이셔.”



“안녕하세요.”



인숙은 울어서 퉁퉁 불은 눈을 하고는 장우에게 꾸뻑 인사를 했다. 장우는 인숙과 원무과에 가서 몇 가지를 확인한 후 인숙과 고 대리를 휴계실에서 쉬도록 했다. 그리곤, 영안실 사용과 조문객들에게 제공할 식사며, 고인의 영정과 고인에게 들어가는 것들을 준비해갔다. 마지막으로 장우는 육 대리에게 영안실 홋수를 문자 메시지로 보냈다.



“상주들도 상복으로 갈아입고, 그리고 주위 친척이나 친구분들, 그리고 상주 친구들에게도 알려야지. 연락을 해 줄 사람한테만 전화를 넣도록 해요.”



상주들이 전화를 하고 나자 장우는 두 자매를 영안실로 데리고 왔다. 다행히 영안실에는 상주들을 위한 방도 마련이 되어 있었다. 장우는 두 자매에게 상복을 내밀었다. 상주들이 상복으로 갈아입는 동안, 고인의 영정이 도착하고 **언더웨어와 빠삐용 이름의 조화도 도착했다. 육 대리가 동해시 쪽의 꽃가게를 알아보고 주문을 한 모양이었다. 상주가 옷을 갈아 입고 나온 후에는 영안실의 모습이 갖춰져 있었다.



“차장님, 고마워요.”



“고맙긴, 동료로써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아버님에게 인사드려야죠.”



두 자매가 먼저 고인에게 절을 올리고 장우가 그 뒤를 이어서 절을 올렸다.



“조문객들이 오려면 시간이 좀 남았으니까 여기 앉아서 좀 쉬도록 해요.”



장우는 자매를 영안실의 한 쪽 벽을 기대고 앉게 했다.



“아버진…돌아가실 때 편하게 돌아가셨니?”



“응, 호흡이 힘드셨지만 그리 큰 고통은 없으셨던 것 같아. 눈 감으시기 전에 언니 이름을 부르시는 것 같았어.”



“그래. 내가 나빠…아버지 옆에 있어드리지도 못하고.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저…고 대리, 혹시 고향에 선산이라도 있나? 내가 나중에 친척분들하고 얘길할까?”



“아니요. 여긴 친척이 없어요. 6.25 때 할아버지가 아버지만 데리고 내려오신 걸요. 어머니도 타지 분이셨는데. 인숙이 낳자마자 돌아가시고… 친가나 외가쪽이나 오실 분들은 없어요. 아버지가 그러셨어요. 돌아가시면 화장해서 하늘로 당신을 훨훨 날려보내 달라고…”



“음…알았어. 내가 알아서 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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