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강한 열전 - 5부 6장

제 6 부 유부녀의 외로움



미라는 사흘을 버티다 마강한이란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버티다"라는 표현말고는 지금 미라의 심정을 적절히 나타내는 단어는 없을 것이다.

그 사흘 동안을 미라는 온통 마강한이란 사내만 생각하였던 것이다.



처음 그를 만나러 갈 때는 무료할 정도로 따분한 나날이었었다.

나이가 많은 남편은 젊은 아내인 자기를 피하듯이 사업핑계를 대고 출장이 잦았고, 전처 소생의 남매는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기에 대궐같은 아파트에는 늘상 미라 혼자있을 때가 많았다.

남편의 나이가 아버지뻘이라는건 미라가 충분히 받아들일수 있는 문제였다.

실제로 남편은 그녀의 아버지보다 불과 두 살이 적을 뿐이었지만, 노동과 가난으로 찌든 아버지보다 열살은 더 젊어보였다.

그리고 불독을 통해서 나이많은 남자에 대한 거부감은 전혀 들지 않았다.

남자란 동물은 나이가 많거나 젊거나 관계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는 어린애처럼 행동한다는걸 알기 때문이다.

오히려 늙은 말이 햇콩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시피 나이가 들어갈수록 여자를 밝히는 남자들이 많다는것도 알았기 때문이다

이런 남자들은 자신의 남성이 시들어지는걸 안타까와 하며 발악적으로 젊은 여성에게 빠져들기 마련이다.

왜 남자들이 영계라면 사족을 못쓰는지 여러분들도 그 까닭을 알지 않은가?

그래서 미라는 남편될 남자의 사회적인 지위와 경제력을 보고 별다른 거부감없이 결혼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결혼생활이란건 알게 모르게 여자를 구속하는 것이 많았다.

아무리 편한 생활을 한다고 하여도, 또래의 친구들을 만나 돈많은 여자의 여유를 뽐내고 다녀도, 가슴 한구석에는 채워지지않는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꼭히 섹스만은 아니었다.

결혼을 한 다음에는 저녁밥을 해놓고 남편을 맞이하는 재미도 있어야 할 것이고, 애기를 안고 불편한 나들이를 하는 재미도 있어야 할 것이고, 잠자리에서 벌거벗고 누워서 알콩달콩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밖에도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있는 미라의 결혼생활이었던 것이다.

결혼생활의 깊은 맛이 결여된 일상에 숨이 막힐 뻔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잘 참아왔었더랬는데..........



결혼 7년차가 되고 여성으로서 활짝 피어날 나이가 된 근자에는 무의식적으로 막연한 일탈을 꿈꾸고 있었다.

그러던참에 갑자기 나타난 사내가 마강한이었던 것이다.

강렬한 눈빛의 매너좋은 사내는 요 이틀동안 미라의 뇌리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명색이 남편이 있는 유부녀가 스스로 감정을 나타내는 전화를 하기는 어려웠기에 사흘동안을 고민을 하며 버텼던 것이다.



"저....기억하시겠어요?"



"그럼요. 그렇잖아도 연락이 오지 않아 상사병이 날 지경입니다."



"제가 연락하리라 생각하셨나요? 일방적으로 말해놓고선...."



"물론 쉽지는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진실은 당연히 상대방에게 전달되리라는 신념은 있었습니다."



"역시나 말 하나는 매끄럽게 잘하시네요. 호호호....."



"그렇지도 않습니다. 지금도 덜덜 떨리는걸요."



"저도 마강한씨처럼 매너가 좋은 분은 처음 봤어요.

그래서 용기를 내어 전화를 드리는 거얘요."



"고맙습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린대로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습니다."



"네. 오늘 저녁에 만나요.

대신에 조건이 있어요. 오늘 저녁은 제가 사는걸로 해요."



미라는 외간남자를 만나는 명분을 이렇게 만들었다.

**************



지중해풍의 레스토랑에서 저녁에 만난 미라는 간편한 캐주얼 차림이어서 누가 봐도 아가씨처럼 보였다.



"강한씨는 애인 없어요?"



식사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중에 느닷없이 직설적인 질문을 그녀가 던졌다.



"전 애인 같은 건 키우지 않아요."



"키우지 않다니요?"



"골치 아파요. 차라리 없는 편이 나아요.

그랬으니까 미라씨처럼 멋진 숙녀와 이렇게 데이트할 수 있는 호사도 누리잖아요."



"하여간.......

보기 보다는 상당히 엉큼해요. 강한씬....."



"생각하기 나름이죠."



"그 나이에 애인이 없으면 외롭지 않나요?"



"그렇지도 않아요.

가끔 생일이나 크리스마스날 선물 줄 사람도 받을 사람도 없을 때가 조금 쓸쓸하긴 하지만, 그런 건 금방 잊어버리고 살아요."



"그러면 이번 성탄절에는 내가 강한씨에게 선물을 받도록 하지요.

호호호...."



그러면서 그녀는 천진스럽게 깔깔거렸다.



"알았어요.

우리 그때까지 연이 닿을 지 모르겠지만, 선물 주고받기 위해서라도 그때까지 만나야 겠네요."



"좋아요. 저도 그러길 바랄께요."



두 번째의 만남에서 우리가 나눈 대화의 내용이다.

서로가 호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진도가 무척 빨리 나가는 것 같았다.



우리는 며칠 후 다시 만날 약속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진단이 틀림없다면 다음번에 그녀를 자빠뜨릴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 헤프다 싶을 정도로 잘 웃는대다가 입술에 조그만 점이 있는걸로 봐서는 정조관념이 그다지 투철하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닦은 내공으로 두 세번만 만나보면 나는 여자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기에 가능한 진단이다.



드디어 세 번째 만나는 날 나는 호텔이 인접한 한 레스토랑으로 그녀를 데리고 갔다.

호텔과 레스토랑이 직접 붙어 있지 않아 바로 호텔 방으로 가기는 조금 어렵겠지만, 대신 그녀에게는 불안감을 없앨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나는 집에서 나설 때 담배꽁초를 비닐봉지에 넣어서 나갔다.

그리고 일부러 약속시간보다도 30분이나 일찍 나가서 재떨이에 담배꽁초를 수북히 만들어 놓았다.



정확히 약속시간에 나타난 그녀는 재떨이에 수북히 쌓인 담배꽁초를 보더니 놀라는 기색이었다.



"아니, 강한씨.........

언제 왔길래 담배꽁초가 이렇게 많아요?"



"미라씨를 만난다는 생각에 조금 일찍 나왔어요.

어차피 만나기 전에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기도 했구요."



"우리 이제 겨우 3번째 만나는데 너무 오버 하는것 아니얘요?"



"횟수가 무슨 문제입니까?

그것은 단순한 숫자놀음에 불과할 뿐이고, 얼마나 감정이 통하느냐가 더 중요하죠.

게다가 미라씨는 저에게 특별한 사람입니다."



"무슨.....?"



"사실 이런 이야기는 안할려고 했는데........

미라씨는 저와 결혼을 약속했던 여인과 너무나 닮았습니다.

제가 이 나이가 되도록 장가도 안갔고, 또 애인같은 것도 안키운다고 했는가 하면 바로 야속하게 제 곁을 떠난 그 여인을 아직도 못잊어하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좋아했으면서 왜 헤어졌는데요?"



"어쩔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지금 이세상에 있지 않으니까요.

백혈병인가 뭔가 하는 몹쓸병에 걸려서 나의 손을 꼭 잡은채 눈을 감았으니까요.

그리고 이런 이야기해서 미안합니다만 오늘이 바로 그녀가 내 곁을 떠난 바로 그날입니다."



"저런....쯔쯔쯔......

그런 슬픈 사연이 있었군요."



"그녀 집에서도 저를 인정하는 사이였기에 화장을 해서 제 손으로 직접 강물에 뿌렸습니다.

당신의 인생은 너무 짧았으니까 지금부터는 물고기의 삶을 살아라.

물고기의 삶을 살다가 기회가되면 고래에게 잡아 먹히도록 하여라.

그리하여 고래의 몸을 빌려서 전세계의 바다를 누비고 다녀라.......

이렇게 기원을 해 주었더랬습니다."



"그래요......

그래도 그녀는 생전에 그토록이나 사랑했던 사람이 있어서 덜 외로웠을 꺼얘요."



"오늘 오전에 그녀를 뿌린 강에 갔다가 오는 길입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제 마음에서 떠나라고 뇌까렸습니다.

비록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지만 제 마음속에 새로운 여인이 자리잡을려고 한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



"제가 왜 미라씨를 처음 만나던 날 다음에 꼭 만나고 싶어했는지 이제 이해하시겠지요?"



나는 다시 담배 한 개피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여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아랫입술을 윗입술보다 밖으로 내밀어 담배연기가 눈 쪽으로 가도록 위로 후~ 불었다.

눈이 따가워지면서 당연히 눈동자가 벌겋게 충혈되었다.



"강한씨!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어차피 인연이 안되는 사람은 빨리 잊는게 좋아요."



이런 이야기로 분위기를 잡고 있는데 웨이터가 주문을 받으러왔다.



"뭘로 하시겠어요?"



그녀가 눈으로 메뉴를 훑어보고 나서 물었다.



"전 식사보다는 술을 한 잔 했으면 좋겠는데요."



".......?

그렇게 하세요."



술을 시키고 나서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위로할 말을 궁리하는 것 같았고, 나는 그녀를 어떻게 호텔까지 끌어들일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몹시 외로운 표정을 지으며 스트레이트로 술 몇 잔을 연거푸 들이켰다.

그녀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저도 한잔 주세요."

하며 잔을 내밀었다.



나는 일이 너무 술술 풀려나가는 것 같아 속으로 춤을 추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녀는 술을 잘 마시는 편이 아니었다.



"저 대신 운전하셔야지요."



"아니 괜찮아요. 그런 걱정 말고 주세요."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잠깐 망설이는 척하다가 그녀의 잔에 술을 채웠다.

그녀도 단숨에 받아 마셨다.



"난 나만 외로운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나보다 더 외로운 사람이 있군요."



나는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스스로 자기 잔에 술을 따랐다.

난 그녀의 말이 뭘 의미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묻지는 않았다.

난 자신의 외로움에 푹 빠져 상대를 생각할 여유가 없는 사람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술이 병 바닥에만 남았을 때 난 머리를 테이블 위에 박았다.

보통 주량 대로라면 이 정도로는 끄덕없었지만, 이후의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한씨, 강한씨! 정신차려요."



그녀는 다급하게 말하며 내 어깨를 흔들었다.

그래도 나는 꿈쩍하지 않았다.

그녀는 한동안 어쩔 줄 몰라하다가 웨이터를 불러 도움을 청하였다.

나는 웨이터의 등에 업힌 채 예상대로 근처 호텔 방까지 갔다.

그녀도 대여섯 잔 정도의 술을 마신 터라 운전대를 잡을 엄두는 내지 못했을 것이다.

웨이터가 나를 침대에 부려 놓고 돌아가려 하자, 그녀는 그에게 만 원짜리 두어 장을 쥐어 주었다.

그리고는 방문 손잡이를 잡은 채 고맙다는 말을 하였다.

나는 실눈을 뜬 채 그 모습들을 지켜봤다.

그녀가 문을 잠그고 돌아섰다.

나는 끄응~ 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였다.

그녀는 나를 한 번 돌아보더니 수건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녀가 물수건을 만들어 가지고 와 침대에 걸터앉았다.

물수건이 머리에 얹어지는 것과 동시에 나는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그녀가 흠칫 놀라며 벌떡 일어서 뒷걸음질쳤다.



"정말 미안해요. 미라씨!

당신에게선 그녀의 냄새가 나요.

당신의 냄새를 맡을 수 없을까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 쪽으로 다가갔다.

당황해하는 그녀의 눈에 불안한 빛이 감돌았다.

나는 몸을 앞으로 당겨 그녀의 턱을 손으로 살며시 잡았다.

매끄러운 감촉이 손끝으로 해서 팔꿈치로, 심장으로 전해졌다.

손가락 하나를 길게 그으며 손을 그녀의 목덜미로 옮겨갔다.

그리고 목덜미를 잡고 아주 부드럽게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갰다.

그녀의 따스한 온기가 온몸을 타고 전해졌다.



미라는 눈을 감았다.

이러기에는 너무 빠르지 않나 싶었지만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남자의 입에서는 담배냄새와 독한 알콜 냄새가 심하게 풍겨났지만 더럽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녀의 몸은 이미 남자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좋아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남자에게서는 더럽다는 생각은 들지않으니까......



그녀의 떨림이 전해져 왔다.

온몸에 퍼진 알콜 기운이 그녀를 쉽게 무너지게 하고 있었다.

나의 혀가 천천히 그녀의 입술 깊숙이 파고 들고 들어갈려고 시도를 하였다.



"아.....으....음...."



그녀는 나지막히 신음을 내뱉었다.

그녀의 신음 소리는 한 줄기 강렬한 불길에 휩싸이며 이내 입을 벌려주며 젤리처럼 말랑말랑한 혀가 마중을 나왔다.



그녀의 입에서 달짝지근한 냄새가 났다.

술 냄새와 여인의 농밀한 체취가 뒤섞인 달콤한 침은 감로수처럼 달고도 달았다.



"당신의 냄새를 맡고 싶어요."



그리고는 빨간색 가디건을 벗기고는 원피스의 단추를 하나하나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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