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살, 그렇게 나는 걸레가 되었다 - 1부

17살, 그렇게 나는 걸레가 되었다









- 1부. 우리는, 나는 평범한 여고생이야









"자 그럼 이제 여기서 적분을 해야겠지?" 선생님의 말이 들려온다.



이미 아이들의 반 이상은 자고 있다. 공부에 관심 있는, 그야말로 희망 있는 아이들만 선생님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나 역시 수업에 열중한다. 나는 공부를 착실히 해 왔다. 이유도 모르고, 공부가 재미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공부를 해왔던 것이다.



"자 그럼 교재에 있는 4문제 풀어보고, 수업 끝나기 전에 4명 칠판에서 풀어보게 한다. 시작"



선생님의 말에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영욱이, 성찬이, 은총이, 그리고... 은혜까지. 나와서 문제 풀어본다."



내 이름을 부르는 선생님의 말에 영혼 없이 일어나 칠판으로 향해서 문제를 풀었다. 왜 하는지도 모르겠고, 이게 뭐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 옆에서 전교 1등 은총이가 빠르게 문제를 풀어낸다. 얼굴도 나쁘지 않은 것이 공부까지 잘한다.



나 역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문제를 푼다. 수업을 열심히 들어서 문제를 푸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수업이 끝났다. 자고 있던 친구들이 하나 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수학 존나 싫어. 씨발"



어릴적부터 친구였던 수빈이가 잠에서 깨면서 말한다. 공부를 더럽게 안 하는 년이다.



얼굴이 아주 이쁜 편은 아니지만 이쁘장한 흔히 말하는 날라리 여고생이다.



공부도 못하지만, 골초에, 남자들이 흔히 말하는 "걸레".... 하지만 나는 수빈이가 좋다.



행실은 나쁘지만 본성을 착한 애다. 하긴 소위 잘 나가는 애면서도 어릴적부터 친구였던 우리를 떠나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야 욕하지마~ 이쁘장한 내 얼굴 놀란거 안 보여?" 수진이가 말한다. 미친 년.



솔직히 이쁘게 생긴 얼굴은 아니다. 하지만 행동이 귀엽고 목소리도 귀엽다.



덕분에 귀여운 척 한다고 욕도 많이 먹는다.



나랑 가장 비슷한 위치에 있는 친구다.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고.... 친구도 보통 수준으로 있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잠시 맨 앞을 본다. 지연이가 앉아 있다. 수업 내용을 복습하고 있는 것 같다.



친구지만 나는 생각한다. "진짜 못생기기는 했다...."



정말 못생겼다. 공부를 해야 희망이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못 생긴 년이다.



친구도 어릴적부터 친해온 애들밖에 없다.



남자들이 얘를 아예 사람 취급을 안한다. 우리도 솔직히 큰 신경을 써주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그 외모 때문에 우리 노예 노릇을 하고 있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하고 있다. 우리가 시킨적 없지만 자신이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람들은 무섭다. 사람들은 행동 하나로 사람을 살게 할 수도, 죽게 할 수도 있는 무서운 생물이다.



하지만 어릴적부터 친구다. 사실 나는 친구에게 이런 생각을 하는 내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낀다.



"예전에는 이렇게 외모로 친구를 평가하지 않았는데...."



우리 넷은 어릴적부터 친구이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까지.



우리가 처음 만났던 것은 유치원 첫 날, 우리는 집이 가까워서 유치원도 같은 곳으로 다녔다.



그 때는 우리 모두가 순수했던 것 같다.



서로가 진심으로 서로를 위하고, 외모도 보지 않고, 질투심도 없고.



그냥 친구라는 것이 행복하고 좋았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정확히는 중학교때부터는 외모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면 안되는건데....



"은혜야 우리 화장실 가자" 수진이가 말한다.



"그래" 안 그래도 나도 오줌이 마려웠다.



화장실로 가서 오줌을 싸고 수진이보다 먼저 나와서 손을 씻었다.



그러면서 문득 거울을 봤다.



"나는 뭘까" 라는 생각이 든다.



완전 못생기지는 않았지만 절대 이쁜 얼굴은 아니다. 귀엽다는 소리는 좀 듣는다. 얼굴도 약간 귀여운상이고, 행동도 귀엽다고 한다. 정확히는 순수해서 귀엽다고 한다.



나는 정말 순수한 아이였다. 수빈이가 남자와 뒹굴때, 수진이가 쿨한 여자인척 하면서 야한 얘기를 서슴없이 할때, 나는 잠자코 가만히 있었다.



나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성교육을 받은적 분명히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야동을 보거나, 남자를 사귀거나, 자위를 해보거나, 그렇게 성을 내 욕구를 위해서 사용해본적은 없다.



비단 성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욕도 한번도 해본적이 없다. 욕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했다. 욕을 하면 괜히 내가 나쁜 사람이 될거라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소심했던 성격 탓인지 남에게 피해주는것을 못하고 거절하는것도 굉장히 힘들었다. 만약 거절하게 되면 며칠씩 그 사람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에 괴로워했다.



그런 나를 보고 아이들은 귀엽고 순수하다고 한다. 사실 맞는것 같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고, 그게 결코 가식도 아니었다. 나는 그런 사람인거다.



수진이가 오줌을 싸고 나왔다. "아 시원해~" 손을 씻는 동안 수진이를 보았다. 수진이 역시 평범한 아이, 나의 좋은 친구다.



복도로 나오자 수빈이가 남자 애들과 장난치고 있다. 남자 애들 두명이 수빈이를 밀치고 있다. 수법이 뻔히 보인다. 둘이 짠것이다.



한 놈이 한 놈을 밀고 밀린 놈은 어쩔 수 없이 밀리는 척하면서 수빈이를 밀고 있다. 그러면서 가슴을 느끼고 있다.



"아 진짜 왜 저래.... 수빈이 기분 나쁘겠다. 어떻게 하지?" 라고 생각한다. 진심이었다.



수빈이가 기분 나쁘지는 않을까하고 걱정했다. 하지만 수빈이는 전혀 그렇지 않고 웃으면서 남자 애들과 장난치고 있었다. 나로서는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그때 수업 종이 울렸다. 수빈이가 남자 애들과 인사를 하고 우리에게 온다.



"히~" 뭐가 그렇게 좋은지, 우리를 보고 웃는다.



"야 우리 오늘 학교 끝나고 맛있는거 먹으러 가자! 내가 친구들한테 들었는데, 카페 하나 생겼는데 거기 팥빙수 엄청 맛있대 거기 가자!" 수빈이가 말한다.



"진짜루? 가자 가자!" 수진이가 말한다.



"그래 가자!" 나도 말한다.



교실로 들어가자 수빈이가 자고 있는 지연이에게 향한다.



"야! 야!" 수빈이가 지연이를 깨운다.



"응" 지연이가 일어나면서 무미건조하게 말한다. 자고 일어나니 더 못생겨진거 같다.



"우리 오늘 학교 끝나고 팥빙수 먹으러 가자! 가는거다?"



"야 나 안돼.... 나 학원 숙제 안했어...."



"나중에 하면 되잖아~ 가는거다!"



"...."



수빈이가 활발하게 말하며 자리로 간다. 진짜 기분 좋게 만드는 친구다. 지연이도 나름 기분이 좋은듯 미소를 짓는다.















다시 수업 시간이 끝났다. 그 때 은총이가 나에게 다가온다. 전교 1등 은총이. 얼굴도 나쁘지 않고 공부도 잘해서 인기도 조금 있다.



하지만 성격이 싸가지 없고 성깔 있다.



그래서 선배들과 친구들 중에는 싫어하는 애들이 많다. 친구도 없다.



"은혜야 너 이거 푸는 방법 알아?" 수학 문제를 나에게 물어본다.



"아니.... 미안" 나는 얼버무리면서 말한다.



"알았어~" 은총이가 자리로 돌아간다.



나는 그나마 거절을 못하는 성격이고 싫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해서 은총이랑 이야기한다.



은총이도 일부러 나한테 말을 하러 오는 것이다. 내가 아니면 말할 사람이 없으니까.



저런 인생은 살고 싶지 않다. 공부만 잘하고 사실은 외로운.



친구도 없는 저런 삶은 싫다.



그렇게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든다.















학교가 끝나고 아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우리 넷도 같이 학교를 나오기 시작한다. 운동장으로 나오자 뜨거운 햇살이 우리를 비춘다. 덥지만 괜히 기분은 좋다.



이제 여름이다.



팥빙수 집으로 걸어가는 도중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연예인은 누가 잘생겼네, 누가 이쁘네, 누가 재수없네, 누가 맘에 안드네....



나 옷 샀는데 그 옷 완전 이쁜거 같다.... 근데 배송이 왜 이렇게 늦는지 모르겠다....



우리 어디로 놀러가고 싶다....



어느 덧 팥빙수 집 앞에 도착했다. 사람이 많았다. 자리를 잡고 앉았다. 2명을 짝을 지어 마주 보고 앉았다.



나는 친구들을 바라 보았다. 모두 핸드폰에만 열중하고 있다.



수빈이 . 지연이 . 수진이 .



수진이 . 지연이 . 수빈이 .



이 중에 예쁘다는 소리를 들어본 애는 없다. 다 평범하다. 단지 조금씩 다를 뿐이지.



날라리 수빈이, 공부하다 놀다하는 수진이, 공부만 하는 지연이.



그럼 나는?



이런 생각이 들어 핸드폰으로 비친 내 모습을 본다. 나는 지연이처럼 공부만 하는 것도 아니고, 수빈이처럼 놀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 수진이처럼 공부하다 놀다가하나? 막상 수진이보다 성적은 안 좋다.



"나는 도대체 뭘까...." 회의감이 든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평범한 여고생이다. 남녀공학 학교에 다니는 여고생들이다. 대한민국 어디서도 찾아볼수 있는, 예쁘지도 않고 공부를 잘하지도 않은 그냥 여고생들이다.



"내 자신을 찾아야하는거 아닌가...."



"뭐하냐?" 남자 애들이 지나가면서 수빈이를 건든다.



"가라 그냥~!" 수빈이가 웃으면서 받아쳐준다.



수빈이는 진짜 인기가 많고 친구도 많다. 길거리를 같이 다니거나 같이 놀러가면 수빈이는 다들 알아보고 인사를 한다.



우리는 아무도 못 알아본다.



조금은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다.



하긴, 얼굴도 이쁘장하고, 옷도 잘 입고.... 인기가 많을 수 밖에 없다.



수빈이의 교복은 타이트하게 줄여져 있다. 꽉 조여진 치마는 "똥꼬 치마"라고 불릴수 있을만큼의 길이로 짧다.



상의 또한 수빈이의 윤곽을 잘 드러내고 있다.



"와 씨발 쩐다...." 남자들이 수빈이를 보고 말하는 것이 들린다.



나는 못 들린척 하면서 핸드폰을 본다.



수빈이는 자기를 보고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아는 듯 살짝 뒤를 째려보더니 핸드폰에 열중한다.



그렇게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모든 사람들이 수빈이에만 관심이 있는거 같았다.















팥빙수는 굉장히 맛있었다. 먹는 순간만큼은 행복했고 나는 고민도 잊었다.



집에 갈 채비를 마쳤다. 팥빙수 집 밖으로 나와 집 방향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집도 가까웠다. 그래서 집으로 갈때는 언제나 같이 갈수 있었다.



"야 오늘 니네 먼저 가 나 오늘 갈데 있어서!" 갑자기 수빈이가 말한다.



"왜 어디 가는데~" 수진이가 말한다.



"아 있어 그런게~ 먼저 가!" 수빈이가 외치고 반대 방향으로 걸어간다.



모텔이 밀집되어 있는 곳.... 저기는 아무것도 할게 없는데.



"수빈이 남자 만나러 가나봐 히힛" 수진이가 웃으며 말한다.



"그런가봐. 모텔쪽으로 가는거 보니까" 지연이가 걸어가는 수빈이를 보면서 말한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보는 척 했다. 수빈이가 나름 걱정되기도 했다.



"수빈이 부럽다. 남자도 만나고" 수진이가 집으로 걸어가면서 말한다.



나는 가만히 있었고, 지연이도 가만히 있었다.



지연이는 아주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이렇게 소심없고 말 없지 않았었는데. 아무래도 자신도 자신의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는 것 같다.



그런게 아니면 이렇게 바뀔리는 없지.



언제부터인가 지연이는 그냥 우리가 하자는대로, 하라는대로 하는 아이가 되었다.



외모가 너무 못생겨서 그런지, 아이가 바뀌었다. 분노를 내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상태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렇게 된 지연이가 조금은 낯설다. 그리고 조금은 동정심을 느낀다.



니가 원해서 이렇게 태어난 건 아닐텐데.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사람들은 다 그렇잖아. 니 사정 같은건 신경 안 쓰지.



솔직히 나도 친구지만 어쩔 수는 없어.



니 인생이야.



니가 살아가야지.















집에 돌아왔다.



"언니 왔어?" 연주가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다가 나를 본다.



"언제 왔어?" 내가 묻는다.



"학교 끝나고 바로 왔어"



"알았어~ 나 씻는다!" 나는 말하고 방으로 들어간다.



내 동생 연주. 나랑 닮았다는 소리도 듣고 안 닮았다는 소리도 듣는다.



귀여운 아이다. 나보다 한 살 어리다.



나랑 성격도 꽤 비슷하다.



순수하고, 귀엽다. 남자도 만나본 적 없다. 나처럼 친구들 몇 명과 같이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아버지는 집에 잘 안 들어오신다. 어머니는 한국으로 시집 오신 일본인이다.



두 분 다 일이 바쁘신지 집에는 잘 없으시다.



그래서 나는 항상 동생과 같이 있어야했고, 동생과는 매우 친하다.















침대에 앉자 갑자기 팥빙수집에서의 고민이 다시 떠올랐다.



"내 자신은 뭐지?"



내가 진정 원하는것은 뭔지, 나의 본성은 무엇인지, 나는 도저히 모르겠다.



공부? 그래 중상위권이지... 그래도 1등은 아니야. 그리고 내가 정확히 어떤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건지도 잘 모르겠어.



완전히 노는거? 나는 그렇게 인기도 많지 않고, 수빈이처럼 술 마시고 담배 펴본적도 없어. 남자도 만나본적 없고.



연예계? 말도 안되는 소리야.



친구들은 정했을까?



수빈이? 지금쯤 남자랑 아마 있을거야. 근데 왜 모텔을 갔지.... 성교육 시간에 배운 그 성....행위 때문인가.... 하고 있을까? 해봤겠지? 그래 수빈이는 인기 많잖아....



그리고 성행위....가 나쁜건 아니잖아? 선생님이 자연스러운거라고 했어. 수빈이는 나중에 뭘 할까? 맞아, 외모에 관련된걸 하고 싶다고 했어. 수빈이는 잘할꺼야.



수진이? 지금쯤 놀고 있을거야. 수진이는 참 재밌게 사는 것 같아. 공부도 잘하고 놀기도 하고. 부럽다.... 놀면서 나보다 성적도 더 잘 나와.



지연이? 공부 잘 하지. 공부만 하니까. 근데 솔직히 지연이처럼 되고 싶지는 않아.



그래, 나는 그냥 평범한 여고생이야. 지금 이 상황에서 열심히 해서 나를 찾자. 지금은 고민하고 있을 시간 없어.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평범했 "었다".















샤워를 하기 위해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들고 온 속옷을 변기 위에 놓고 옷을 벗었다.



거울에 내 몸이 비춰졌다. 크지 않은 가슴, 예쁘지 않은 몸, 예쁘지 않은 얼굴.



"외모라도 좋았다면 어땠을까...." 오늘은 계속 이런 생각만 든다.



감정이 복잡미묘하다. 빨리 씻고 나가야지.



씻고 나왔는데 카톡이 와 있다.



수빈이다.



"은혜야 나 내일 너네 집에서 자도 돼?"



답장을 보낸다. "왜?"



"아 몰라.... 부모님이랑 싸웠어 늦게 들어왔다고 부모님한테 내일 친구네에서 잘거라고 말했는데 괜찮아?"



"응 난 괜찮아!"



"그럼 수진이랑 지연이도 같이 불러서 놀까? 되게 오랜만이다 ㅋㅋㅋㅋ"



"그래 그러자! ㅎㅎ"



"우리 영화 보자! 나 오랜만에 영화 보고 싶다 너네랑 ㅎㅎ"



"맛있는거 사와서 영화 보면서 먹을까? ㅋㅋ"



"그래 그래 좋다! 나 완전 기대돼 ㅎㅎ 잘 자~!"



"그래 잘 자 내일 봐~"



내일이 사뭇 기대되었다. 친구들이랑 얼마만에 같이 자는거지. 기대된다.















하지만 나는 내일이 나를 어떻게 바꾸어놓을지에 대해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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