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法王) - 3부 9장
2018.11.17 08:40
자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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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역시 베이오드는 법왕의 석상에서 카렌과 녹색 로브의 사내를 만날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이전처럼 만나자 마자 곧바로 공격해 오진 않았다.
"오늘이 일단 마지막이 되겠군요."
녹색 로브의 사내는 마치 샨더스와 베이오드간의 일을 아는듯이 자연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베이오드도 그것이 어색하지 않았다. 적어도 아직까지, 이 사내는 그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
아무 말도 없는 베이오드를 보며 녹색 로브의 사내가 말을 이었다.
"질문은 없는건가요? 약간이라면, 정보를 드릴수도 있습니다만."
베이오드는 경험상 경계하기 위해 잡고 있던 블루드래곤의 손잡이를 놓았다.
일단 오늘은 만나자마자 공격이라는 무식한 방법이 아닌 약간의 대화를 통해 안면을 틀고자 하는 의지가 보였다.
"내가 래딕 마을에 가는건 알지?"
이미 반말을 한 마당에, 명백히 상대가 자신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걸 알고는 있지만 존댓말을 하기는 좀 어색했기때문에, 첫 전투 이후로 베이오드는 계속 반말을 쓰고 있었다.
"물론입니다."
녹색 로브의 사내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눈이 웃는지 어떤지는 알수 없었다. 깊게 눌러쓴 로브 덕에.
"신탁에 의하면 래딕 마을에 위험이 닥친다더군."
사내가 고개를 갸웃 했다.
"...그런가요? 제가 알기론..."
그의 입이 열렸다. 그리고 소리는 뒤이어 흘러나온다.
"이미 죽어가고 있을텐데요."
"뭐!?"
베이오드의 동공이 확대되며 크게 되물었다.
"하핫, 농담입니다. 농담."
"농담같지 않아."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일단 베이오드는 침묵했다.
"하지만, 벌써 위험한건 사실입니다. 아직까지 죽은 사람은 없지만."
"위험? 그게 정확히 어떤 위험이지?"
"아주.. 뜨거운 위협이죠."
하지만 이미 그 소리는 샨더스에게 들은 상태였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질의 응답은 여기까지입니다. 카렌!"
사내가 갑자기 큰 소리로 카렌을 호명했다.
그리고 베이오드는 급하게 블루드래곤에 손을 뻗을수밖에 없었다.
[유진 시각]
카렌을 상대로 베이오드가 이제 제법 분발하고는 있었지만 아직 한참 모자랐다.
더욱이 카렌은 대충 배운 란켈식 대검술만 대충 써서 상대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베이오드의 실력은 객관적으로 형편없다.. 이소리다.
하지만 이정도면 이제 기사 한명 분은 할 만 했다.
유진의 일차 계획은 충분히 성공할 정도라 이거다.
유진은 여유롭게 카렌과 베이오드의 검무를 즐겼다.
수십여합이 흐른 후, 베이오드는 옆에서 들어오는 검날에 현혹되어 방어를 시도하다가 카렌의 발차기에 옆구리를 내주고 밀려 제압당했다.
카렌이 으레 베이오드의 헛점을 지적했다.
"란켈식 대검술은 공격이 생명. 방어에 집착하면 그 진가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 그래. 귀중한 금과옥조와도 같은 한마디란 말야. 잘 새겨 들으라고. 영웅씨."
유진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미소지었다. 일이 차근 차근 잘 진행되는 것 만큼이나 즐거운게 없다.
그리고 카렌이 베이오드를 기절시킨 직후, 유진으로선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꺄아아악!!!"
[하비 시각]
하비는 내일 있을 출정(?)을 앞두고 매우 신경이 날카로웠다.
어느정도냐 하면, 잠을 못 들 정도였다. 그래서 평**면 잠이 들고도 남을 11시 무렵에 방에서 빠져나와 정원을 거닐었다.
그런데, 신전 건물의 사이에서 왠지 모를 철음들이 들려왔다.
-캉-! 카앙!
"무슨 소리지?"
이 신성한 신전에서 누가 싸움질이라도 한단 말인가?
독실한 법왕의 신자인 하비로서는 도저히 그 사실을 용납할수 없었다.
그래서 재빨리 소리의 진원지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녀는 그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누, 누구지? 저 법왕님의 신성한 석상 위에 무엄하게도 엉덩이를 걸치고 있는 저 사악하기 그지 없는 사내는!!?"
그리고 그 일은, 그녀가 비명을 지르기에 충분한 일이였다.
"꺄아아악!!!"
[유진 시각]
"이런."
시나리오상의 중요한 인물중 하나인 하비가 벌써 자신과 만나는 일은 적어도 유진이 창작하고 각색한 대본 상에는 없는 일이였다.
하지만 그게 별 문제가 될 일은 없었다.
아무래도 용사님인 베이오드가 쓰러진걸 보고 비명을 지르는 모양인데(??), 아직죽은건 아니라고 친절하게 말해줘야겠다고 유진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틈새도 없었다.
"매직 애로우!!"
-투~콰앙!
"꺄아아악!!"
무슨 일인고 하면, 무엄하고 사악한 인간을 죽이기 위해 하비는 매직 애로우을 만들어 날렸다. 그런데 그 무엄하고 사악한 인간이 자리에서 재빠르게 피했고, 덕분에 매직 애로우은 법왕의 석상에 직격했다. 자기 자신의 매직애로우이 무엄하고 사악한 짓(?)을 저지르는 걸 본 하비는 다시 한번 날카롭게 비명을 질렀다.
"제기랄, 사람 다 깨울라."
한명 정도라면 별로 상관없었지만 자신의 존재가 만천하에 공개되면 곤란하다.
"카렌!"
유진의 명령과 동시에 카렌이 날랜 고양이처럼 하비에게 덤벼들어 그녀의 뒷목을 쳐 기절시켰다. 저렇게 시끄러운 성격은 아니라고 알고 있었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생각과 실제는 다른 모양이였다.
하지만 방음 시설따윈 형편없는 신전에 날카롭고 커다란 비명 두번은 전 신전의 잠을 깨우기엔 충분했다. 덕분에 오늘은 베이오드를 제 방에 눕혀놓지도 못할 것 같았다.
유진은 망설임없이 돌아섰다. 이로서 신전 사람들이 지난 시간동안 자신과 베이오드 사이에 있었던 일을 어느 정도 알게 되겠지만, 적어도 신전사람들이 자신이 누군지는 전혀 알수 없으니 큰 문제가 생길 여지는 아직 없었다.
"뜨겁고 뜨거운게 기다리고 있으니, 잘 해 보라고."
쓰러진 베이오드를 힐끗 보며 유진이 씨익 웃었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말이지."
샨더스가 그냥 "북쪽 산"이라고 말한 단순함과는 다르게, 래딕 마을은 꽤 멀었다. 페이드시의 북서쪽을 완전히 감싼 플리페이드 숲을 넘어서 하나의 마을을 지나 또 하나의 산을 지나쳐야 래딕 산이 나온다.
이미 "위험"이 닥쳐왔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베이오드는 급하게 길을 나설수밖에 없었다. 어쨋든 자신의 힘이 미쳐 많은 사람을 살릴수 있다면 죽게 내버려 두는 것 보다야 살리는게 낫지 않겠는가.
물론 지난밤, 하비가 자신이 쓰러진 직후 녹색 옷의 사내를 본 모양인지 이런 저런 일들과 해명이 있긴 했지만, 대충 둘러댄 후 베이오드와 하비는 길을 나섰다.
래딕 산과 페이드시의 중간쯔음에 위치한 마을에 도착하기까지는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그냥 지나칠까 했지만, 혹시 정보를 얻을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베이오드는 마을에 들렀다.
또한 그냥 지나치면 분명 래딕 산까지 가는 중간쯔음에서 한번 노숙을 해야 했는데, 아직 안면만 있는 여자와 노숙을 한다는 사실도 조금 부담스러웠다.
그것도 신을 모신다는 신관을.
참고로 말하자면, 법왕의 신전은 신관의 결혼에 대해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또한 신전이란 특수성 때문인지 대부분의 신관들이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로 평생을 지내는 것 또한 현실이였다.
저녁시간이 다 되어 가는 늦은 오후였기때문에, 그 마을에 딱 하나 있던 작은 주점은 상당히 붐볐다. 그나마 숙박이 가능한 곳도 그곳 뿐이였다.
2층에 두어개의 빈 방이 있어서, 드물지만 간혹 있는 여행자들에게 방을 유료로 빌려준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신탁의 용사인 베이오드의 명성은 이 작지만 페이드시와 가까운 마을에 널리 퍼져 있었다. 베이오드는 방을 공짜로 얻을수 있었다.
그리고 래딕 마을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베이오드와 하비는 일찍부터 래딕 마을을 향해 출발했다.
래딕마을에 대해 얻은 정보는 참혹했다.
"일주일 전쯤이였습니다..."
그건, 래딕 마을의 주민이었는데, 참다 못해 도망쳐서 어제 막 이 마을에 정착한 사람에게서 들을 수 있었던 말이였다.
"시작은 별로 크지 않았죠. 그저 마을의 꼬맹이들이 늦은 밤에 산 속에서 귀신을 보았다면서 소란을 떨다가 부모들에게 크게 혼나는 사건이 발생했었습니다. 처음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였다.
"하지만, 귀신을 보았다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4일 전,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갑자기 마을의 공동 우물이 매말라 있었습니다."
그의 표정은 전혀 알수 없는 미지의 괴물을 본 자 같았다.
"그뿐 아닙니다. 래딕 산의 물이란 물은 전부 매말랐습니다. 작은 못은 물론이고, 산의 근원에서 흐르는 계곡까지도 단 한방울도 남지 않았죠. 미묘하지만 날씨도 더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봄철이라 날씨가 더워지는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모두 그 귀신들의 짓이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일은 점점 커져갔다.
"산 전체가 매마르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풀들은 누렇게 뜨며 시들었고, 산의 나무들은 바싹 말라 건드리면 바스러졌습니다. 날씨는 점점 더워져 이른 봄인데도 한 여름만큼이나 찌는 온도가 계속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산에 가꾼 화전들에 심은 작물들도 모두 메말라 망쳐 버렸지요. 이상한 일은 래딕 산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래딕 산과는 전혀 다른 세상처럼 모든것이 평범하다는 것이였습니다."
아직까지는 살만 했다. 래딕 산만 벗어나면 물은 구할수 있었고, 그걸 가져와서 식수로는 해결할수 있다는게 그자의 설명이였다. 하지만 아직 겨우 4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것이고, 이런 일이 2~3주만 계속되어도 래딕산은 아무도 살수 없는 불모지로 변할게 틀림없었다.
"뜨거운 일이라.."
아주 적절한 표현이였다. 신탁을 포함해서.
원인이 뭔지 마을사람들이 급히 찾기 시작했지만, 적어도 베이오드와 하비에게 이야기를 해준 그 사내가 마을에서 도망쳐 나올때까진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고 한다.
"혹시 짐작가는게 있나요?"
무언가 깊이 생각에 잠긴 듯 보이는 하비에게 베이오드가 물었다.
"..아직은..."
하비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무언가 생각나는게 있긴 한 모양이였다.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는걸 보면.
래딕 산과 지나온 마을의 사이를 막고 있는 산을 돌아 지나치자, 베이오드와 하비는 래딕산을 볼수 있었다.
래딕 산은, 노-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마치 한 가을처럼. 하지만 이건 가을의 영향이 아니였다.
들은 말 대로라면, 저 노란 산은 매말라 노랗게 뜬 나뭇잎들로 인한 끔찍한 결과일 뿐일 것이다.
그리고 래딕산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베이오드는 점차 더워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베이오드는 마치 지금이 한여름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질지도 모르겠다는 위협감을 느꼈다.
이마에선 땀이 뻘뻘 나기 시작했고, 신전에서 받은 흑백색의 긴 성복이 거추장스럽기 시작했다. 베이오드는 거침없이 팔을 걷었다. 하지만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대기는 너무 건조해서 그나마 나는 땀 조차도 금새 말라 버렸다. 몸 자체에서 수분이 쭈욱 빠져 나가는 느낌이였다.
그건 하비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머리에까지 회색 천을 뒤집어써서 더욱 더워 보였다.
"옷이라도 걷으라"고 충고할까 하다가, 베이오드는 이상하게 들릴까 싶어서 그만뒀다. 하지만 조금 안쓰럽게 보여 하비가 들고 있던 짐을 맡아 들었다.
산 위로, 래딕 마을의 방책이 보일쯔음에, 하비는 래딕 산 영역에 들어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정령의 기운이 느껴져요."
"정령?"
작은 목소리였지만, 생명체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조용한 사방의 분위기 덕분에 베이오드는 하비의 목소리를 수월하게 알아들을수 있었다.
이미 올라오면서 잔풀들은 싹 말라죽은걸 보았고, 나무껍질들도 매말라 건드리는 족족 바스라지는걸 보았기 때문에 심적으로도 상당히 지쳐 있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베이오드는 무언가 더 듣고 싶었지만, 체력적으로 힘들어 하는 하비에게 묻기가 미안해 조용히 있었다. 하비도 더이상 말을 꺼내진 않았다.
래딕 마을은 황폐했다.
말 그대로였다. 마을 가운데에 일군 화전은 말라붙은 작물들이 을씨년스럽게 흩어져 있었고, 아무도 문 밖에 나와있지 않았다. 바람한점 없는 마을 전체는 마치 죽음의 마을과도 같은 분위기가 맴돌았다.
베이오드와 하비는 마을에서 가장 큰 집으로 향했다.
-똑똑.
문을 두드렸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똑똑!
"저기요! 아무도 안 계십니까?"
베이오드는 이마에 난 땀을 대충 닦아내며 크게 소리쳤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문이 삐끄덕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뉘신가?"
80세는 족히 넘어보이는 늙은 노인이였다.
하지만 더 젊을지도 몰랐다. 래딕 마을의 상태 덕분인지 더 왜소하고 늙어 보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전 페이드시에서 온 베이오드라고 합니다. 실례지만 몇가지 질문에 답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베이오드는 공손하게 물었다.
"아.. 베이오드! 호, 혹시, 신탁의 용사님이십니까!?"
노인의 눈동자가 크게 확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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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게 안나오는 동안 독자가 얼마나 짤려나갈지 기대해 보겠습니다.
시점에 대한 말이 있었는데요...
만약 그걸 바꾸려면 지금 제가 가진 비축분 전체를 바꿔야 합니다....
그냥 글을 다시 써야 되므로 패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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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역시 베이오드는 법왕의 석상에서 카렌과 녹색 로브의 사내를 만날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이전처럼 만나자 마자 곧바로 공격해 오진 않았다.
"오늘이 일단 마지막이 되겠군요."
녹색 로브의 사내는 마치 샨더스와 베이오드간의 일을 아는듯이 자연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베이오드도 그것이 어색하지 않았다. 적어도 아직까지, 이 사내는 그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
아무 말도 없는 베이오드를 보며 녹색 로브의 사내가 말을 이었다.
"질문은 없는건가요? 약간이라면, 정보를 드릴수도 있습니다만."
베이오드는 경험상 경계하기 위해 잡고 있던 블루드래곤의 손잡이를 놓았다.
일단 오늘은 만나자마자 공격이라는 무식한 방법이 아닌 약간의 대화를 통해 안면을 틀고자 하는 의지가 보였다.
"내가 래딕 마을에 가는건 알지?"
이미 반말을 한 마당에, 명백히 상대가 자신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걸 알고는 있지만 존댓말을 하기는 좀 어색했기때문에, 첫 전투 이후로 베이오드는 계속 반말을 쓰고 있었다.
"물론입니다."
녹색 로브의 사내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눈이 웃는지 어떤지는 알수 없었다. 깊게 눌러쓴 로브 덕에.
"신탁에 의하면 래딕 마을에 위험이 닥친다더군."
사내가 고개를 갸웃 했다.
"...그런가요? 제가 알기론..."
그의 입이 열렸다. 그리고 소리는 뒤이어 흘러나온다.
"이미 죽어가고 있을텐데요."
"뭐!?"
베이오드의 동공이 확대되며 크게 되물었다.
"하핫, 농담입니다. 농담."
"농담같지 않아."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일단 베이오드는 침묵했다.
"하지만, 벌써 위험한건 사실입니다. 아직까지 죽은 사람은 없지만."
"위험? 그게 정확히 어떤 위험이지?"
"아주.. 뜨거운 위협이죠."
하지만 이미 그 소리는 샨더스에게 들은 상태였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질의 응답은 여기까지입니다. 카렌!"
사내가 갑자기 큰 소리로 카렌을 호명했다.
그리고 베이오드는 급하게 블루드래곤에 손을 뻗을수밖에 없었다.
[유진 시각]
카렌을 상대로 베이오드가 이제 제법 분발하고는 있었지만 아직 한참 모자랐다.
더욱이 카렌은 대충 배운 란켈식 대검술만 대충 써서 상대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베이오드의 실력은 객관적으로 형편없다.. 이소리다.
하지만 이정도면 이제 기사 한명 분은 할 만 했다.
유진의 일차 계획은 충분히 성공할 정도라 이거다.
유진은 여유롭게 카렌과 베이오드의 검무를 즐겼다.
수십여합이 흐른 후, 베이오드는 옆에서 들어오는 검날에 현혹되어 방어를 시도하다가 카렌의 발차기에 옆구리를 내주고 밀려 제압당했다.
카렌이 으레 베이오드의 헛점을 지적했다.
"란켈식 대검술은 공격이 생명. 방어에 집착하면 그 진가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 그래. 귀중한 금과옥조와도 같은 한마디란 말야. 잘 새겨 들으라고. 영웅씨."
유진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미소지었다. 일이 차근 차근 잘 진행되는 것 만큼이나 즐거운게 없다.
그리고 카렌이 베이오드를 기절시킨 직후, 유진으로선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꺄아아악!!!"
[하비 시각]
하비는 내일 있을 출정(?)을 앞두고 매우 신경이 날카로웠다.
어느정도냐 하면, 잠을 못 들 정도였다. 그래서 평**면 잠이 들고도 남을 11시 무렵에 방에서 빠져나와 정원을 거닐었다.
그런데, 신전 건물의 사이에서 왠지 모를 철음들이 들려왔다.
-캉-! 카앙!
"무슨 소리지?"
이 신성한 신전에서 누가 싸움질이라도 한단 말인가?
독실한 법왕의 신자인 하비로서는 도저히 그 사실을 용납할수 없었다.
그래서 재빨리 소리의 진원지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녀는 그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누, 누구지? 저 법왕님의 신성한 석상 위에 무엄하게도 엉덩이를 걸치고 있는 저 사악하기 그지 없는 사내는!!?"
그리고 그 일은, 그녀가 비명을 지르기에 충분한 일이였다.
"꺄아아악!!!"
[유진 시각]
"이런."
시나리오상의 중요한 인물중 하나인 하비가 벌써 자신과 만나는 일은 적어도 유진이 창작하고 각색한 대본 상에는 없는 일이였다.
하지만 그게 별 문제가 될 일은 없었다.
아무래도 용사님인 베이오드가 쓰러진걸 보고 비명을 지르는 모양인데(??), 아직죽은건 아니라고 친절하게 말해줘야겠다고 유진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틈새도 없었다.
"매직 애로우!!"
-투~콰앙!
"꺄아아악!!"
무슨 일인고 하면, 무엄하고 사악한 인간을 죽이기 위해 하비는 매직 애로우을 만들어 날렸다. 그런데 그 무엄하고 사악한 인간이 자리에서 재빠르게 피했고, 덕분에 매직 애로우은 법왕의 석상에 직격했다. 자기 자신의 매직애로우이 무엄하고 사악한 짓(?)을 저지르는 걸 본 하비는 다시 한번 날카롭게 비명을 질렀다.
"제기랄, 사람 다 깨울라."
한명 정도라면 별로 상관없었지만 자신의 존재가 만천하에 공개되면 곤란하다.
"카렌!"
유진의 명령과 동시에 카렌이 날랜 고양이처럼 하비에게 덤벼들어 그녀의 뒷목을 쳐 기절시켰다. 저렇게 시끄러운 성격은 아니라고 알고 있었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생각과 실제는 다른 모양이였다.
하지만 방음 시설따윈 형편없는 신전에 날카롭고 커다란 비명 두번은 전 신전의 잠을 깨우기엔 충분했다. 덕분에 오늘은 베이오드를 제 방에 눕혀놓지도 못할 것 같았다.
유진은 망설임없이 돌아섰다. 이로서 신전 사람들이 지난 시간동안 자신과 베이오드 사이에 있었던 일을 어느 정도 알게 되겠지만, 적어도 신전사람들이 자신이 누군지는 전혀 알수 없으니 큰 문제가 생길 여지는 아직 없었다.
"뜨겁고 뜨거운게 기다리고 있으니, 잘 해 보라고."
쓰러진 베이오드를 힐끗 보며 유진이 씨익 웃었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말이지."
샨더스가 그냥 "북쪽 산"이라고 말한 단순함과는 다르게, 래딕 마을은 꽤 멀었다. 페이드시의 북서쪽을 완전히 감싼 플리페이드 숲을 넘어서 하나의 마을을 지나 또 하나의 산을 지나쳐야 래딕 산이 나온다.
이미 "위험"이 닥쳐왔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베이오드는 급하게 길을 나설수밖에 없었다. 어쨋든 자신의 힘이 미쳐 많은 사람을 살릴수 있다면 죽게 내버려 두는 것 보다야 살리는게 낫지 않겠는가.
물론 지난밤, 하비가 자신이 쓰러진 직후 녹색 옷의 사내를 본 모양인지 이런 저런 일들과 해명이 있긴 했지만, 대충 둘러댄 후 베이오드와 하비는 길을 나섰다.
래딕 산과 페이드시의 중간쯔음에 위치한 마을에 도착하기까지는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그냥 지나칠까 했지만, 혹시 정보를 얻을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베이오드는 마을에 들렀다.
또한 그냥 지나치면 분명 래딕 산까지 가는 중간쯔음에서 한번 노숙을 해야 했는데, 아직 안면만 있는 여자와 노숙을 한다는 사실도 조금 부담스러웠다.
그것도 신을 모신다는 신관을.
참고로 말하자면, 법왕의 신전은 신관의 결혼에 대해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또한 신전이란 특수성 때문인지 대부분의 신관들이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로 평생을 지내는 것 또한 현실이였다.
저녁시간이 다 되어 가는 늦은 오후였기때문에, 그 마을에 딱 하나 있던 작은 주점은 상당히 붐볐다. 그나마 숙박이 가능한 곳도 그곳 뿐이였다.
2층에 두어개의 빈 방이 있어서, 드물지만 간혹 있는 여행자들에게 방을 유료로 빌려준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신탁의 용사인 베이오드의 명성은 이 작지만 페이드시와 가까운 마을에 널리 퍼져 있었다. 베이오드는 방을 공짜로 얻을수 있었다.
그리고 래딕 마을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베이오드와 하비는 일찍부터 래딕 마을을 향해 출발했다.
래딕마을에 대해 얻은 정보는 참혹했다.
"일주일 전쯤이였습니다..."
그건, 래딕 마을의 주민이었는데, 참다 못해 도망쳐서 어제 막 이 마을에 정착한 사람에게서 들을 수 있었던 말이였다.
"시작은 별로 크지 않았죠. 그저 마을의 꼬맹이들이 늦은 밤에 산 속에서 귀신을 보았다면서 소란을 떨다가 부모들에게 크게 혼나는 사건이 발생했었습니다. 처음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였다.
"하지만, 귀신을 보았다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4일 전,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갑자기 마을의 공동 우물이 매말라 있었습니다."
그의 표정은 전혀 알수 없는 미지의 괴물을 본 자 같았다.
"그뿐 아닙니다. 래딕 산의 물이란 물은 전부 매말랐습니다. 작은 못은 물론이고, 산의 근원에서 흐르는 계곡까지도 단 한방울도 남지 않았죠. 미묘하지만 날씨도 더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봄철이라 날씨가 더워지는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모두 그 귀신들의 짓이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일은 점점 커져갔다.
"산 전체가 매마르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풀들은 누렇게 뜨며 시들었고, 산의 나무들은 바싹 말라 건드리면 바스러졌습니다. 날씨는 점점 더워져 이른 봄인데도 한 여름만큼이나 찌는 온도가 계속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산에 가꾼 화전들에 심은 작물들도 모두 메말라 망쳐 버렸지요. 이상한 일은 래딕 산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래딕 산과는 전혀 다른 세상처럼 모든것이 평범하다는 것이였습니다."
아직까지는 살만 했다. 래딕 산만 벗어나면 물은 구할수 있었고, 그걸 가져와서 식수로는 해결할수 있다는게 그자의 설명이였다. 하지만 아직 겨우 4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것이고, 이런 일이 2~3주만 계속되어도 래딕산은 아무도 살수 없는 불모지로 변할게 틀림없었다.
"뜨거운 일이라.."
아주 적절한 표현이였다. 신탁을 포함해서.
원인이 뭔지 마을사람들이 급히 찾기 시작했지만, 적어도 베이오드와 하비에게 이야기를 해준 그 사내가 마을에서 도망쳐 나올때까진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고 한다.
"혹시 짐작가는게 있나요?"
무언가 깊이 생각에 잠긴 듯 보이는 하비에게 베이오드가 물었다.
"..아직은..."
하비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무언가 생각나는게 있긴 한 모양이였다.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는걸 보면.
래딕 산과 지나온 마을의 사이를 막고 있는 산을 돌아 지나치자, 베이오드와 하비는 래딕산을 볼수 있었다.
래딕 산은, 노-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마치 한 가을처럼. 하지만 이건 가을의 영향이 아니였다.
들은 말 대로라면, 저 노란 산은 매말라 노랗게 뜬 나뭇잎들로 인한 끔찍한 결과일 뿐일 것이다.
그리고 래딕산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베이오드는 점차 더워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베이오드는 마치 지금이 한여름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질지도 모르겠다는 위협감을 느꼈다.
이마에선 땀이 뻘뻘 나기 시작했고, 신전에서 받은 흑백색의 긴 성복이 거추장스럽기 시작했다. 베이오드는 거침없이 팔을 걷었다. 하지만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대기는 너무 건조해서 그나마 나는 땀 조차도 금새 말라 버렸다. 몸 자체에서 수분이 쭈욱 빠져 나가는 느낌이였다.
그건 하비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머리에까지 회색 천을 뒤집어써서 더욱 더워 보였다.
"옷이라도 걷으라"고 충고할까 하다가, 베이오드는 이상하게 들릴까 싶어서 그만뒀다. 하지만 조금 안쓰럽게 보여 하비가 들고 있던 짐을 맡아 들었다.
산 위로, 래딕 마을의 방책이 보일쯔음에, 하비는 래딕 산 영역에 들어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정령의 기운이 느껴져요."
"정령?"
작은 목소리였지만, 생명체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조용한 사방의 분위기 덕분에 베이오드는 하비의 목소리를 수월하게 알아들을수 있었다.
이미 올라오면서 잔풀들은 싹 말라죽은걸 보았고, 나무껍질들도 매말라 건드리는 족족 바스라지는걸 보았기 때문에 심적으로도 상당히 지쳐 있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베이오드는 무언가 더 듣고 싶었지만, 체력적으로 힘들어 하는 하비에게 묻기가 미안해 조용히 있었다. 하비도 더이상 말을 꺼내진 않았다.
래딕 마을은 황폐했다.
말 그대로였다. 마을 가운데에 일군 화전은 말라붙은 작물들이 을씨년스럽게 흩어져 있었고, 아무도 문 밖에 나와있지 않았다. 바람한점 없는 마을 전체는 마치 죽음의 마을과도 같은 분위기가 맴돌았다.
베이오드와 하비는 마을에서 가장 큰 집으로 향했다.
-똑똑.
문을 두드렸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똑똑!
"저기요! 아무도 안 계십니까?"
베이오드는 이마에 난 땀을 대충 닦아내며 크게 소리쳤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문이 삐끄덕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뉘신가?"
80세는 족히 넘어보이는 늙은 노인이였다.
하지만 더 젊을지도 몰랐다. 래딕 마을의 상태 덕분인지 더 왜소하고 늙어 보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전 페이드시에서 온 베이오드라고 합니다. 실례지만 몇가지 질문에 답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베이오드는 공손하게 물었다.
"아.. 베이오드! 호, 혹시, 신탁의 용사님이십니까!?"
노인의 눈동자가 크게 확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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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게 안나오는 동안 독자가 얼마나 짤려나갈지 기대해 보겠습니다.
시점에 대한 말이 있었는데요...
만약 그걸 바꾸려면 지금 제가 가진 비축분 전체를 바꿔야 합니다....
그냥 글을 다시 써야 되므로 패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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