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박사와 하이드씨 - 1부

Prolog



나는 천주교 신자다. 하지만 사이비 신자여서 초등학교 이후로 성당에 가 본 적이 없다. 얼마 전 성당 옆을 지나가다가 문득 내가 고해 성사를 할 자신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은 이미 다 알고 계실 테지만, 내 입으로 이제까지 지은 죄를 고백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 나는 고해 성사를 하거나 혹은 정신과 상담을 받는 기분으로 이 글을 써 보려 한다.



1. 과거를 회상하다.



‘연락하지 마라.’

이것이 그 놈과 나의 길고 긴 인연의 종지부를 찍은 한 마디였다.



지킬 박사가 스스로 실험체가 된 그 순간 하이드 씨라는 새로운 인격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지킬이 만든 약은 단지 그의 무의식 어딘가에 억눌려 잠자고 있던 하이드의 인격이 자유롭게 표출될 기회를 제공한 것뿐. 내 경우에도 역시 단순히 그 놈이 처음이었을 뿐이지, 그가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은 아니다.



가족과 친구, 그 아무도 상상하지 못하는, 나의 이중생활은 8년 전 겨울에 시작되었다.



2. 약을 만드는데 성공하다.



그 놈은 시내 고등학교 연합 동아리의 1년 후배였다. 나란 인간은 불편한 건 끔찍이도 싫어하는 이기주의자여서 선배나 동기보다도 후배들과 잘 어울려 다녔고, 한 기수 아래의 후배들과는 동기들보다 오히려 자주 만났다. 지금도 종종 형이라 불리는, 나의 남성적인 기질 때문에 그 당시에도 여자들과 다니기 보다는 남자들을 따라 술집이나 당구장, 노래방을 들락거렸는데, 우리를 끌고 다니는 건 거의 그 놈이었다. 그 놈에게는 뭔가 사람을 끄는 게 있었다. 잘 생긴 편이었지만 외모 때문은 아니었다. 아무튼 그 놈 주변엔 항상 사람이 많았고 난 그냥 그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주변인들 중 한 명이었다. 그런 관계는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중반, 그러니까 그 놈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즈음까지 계속 유지되었다.



우리는 여느 때처럼 여러 후배들과 어울려 술 먹을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 날 마침 누군가의 부모님께서 여행을 가셔서 집이 빈다하여 모두들 그 집으로 몰려가게 되었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이성 친구와 손이라도 잡고 가면 지나가던 어른들께 욕 한마디씩 듣던 시절이지만, 연합 동아리이다 보니 아무래도 자유로운 분위기여서 나를 제외하고는 다들 쌍쌍이었다. 엠티라도 간 기분으로 밤늦게까지 놀다가 자려고 보니 방의 분할이 문제가 되었는데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건 그 놈과 그 여자 친구, 또 다른 연인과, 여자 친구가 일찍 가버린 집주인, 그리고 나였다. 남녀를 나누느냐 마느냐를 고민하다가 남자들 쪽에서 강력히 요구하는 바를 따라 커플에게 각각 방을 하나씩 내어주고 집주인과 내가 한 방에서 자게 되었다.



잠을 자려고 누웠으나 술김에도 옆방에서 키득거리는 소리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다 들려왔다. 잠이 오긴 커녕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져서 결국 거실로 나와 애꿎은 그 집 강아지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런데 안에서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 놈이 신경질적으로 문을 열고 나왔다.

“왜, 싸웠냐?”

“......”

“여기서 잘려구?”

“잠깐 무릎 좀 빌려줘.”

그러더니 내 무릎에 턱 자기 머리를 얹는 그 놈이었다. 난 얼떨결에 무릎을 빼앗긴 채 어색한 자세로 앉아 있어야 했다. 그 놈은 내가 괴롭히던 강아지를 쓰다듬어 주며 가만히 누워 있었고 한참 동안 둘 다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 놈이 가만히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놈의 눈빛. 그 놈이 날 바라보는 눈빛은 항상 늑대의 그것과 흡사했다. 굶주려 있는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슬퍼 보이는.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있어도 내 뒷모습을 쫓는 그 눈. 그 놈의 시선을 느낄 때마다 정수리부터 등골까지 싸한 것이 흘러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나중에 경험을 통해 그것이 여자의 몸을 원할 때의 눈빛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 놈의 눈빛은 특별해서 지금 떠올려 봐도 오싹한 기분이 든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마주보려 했지만, 눈빛에 압도당해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고 식은땀마저 흘렀다. 안절부절 못 하는 사이 그 놈의 얼굴이 점점 가까이 다가와 어느 샌가 그 놈과 나는 입을 맞추고 있었다. 놀라운 상황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은 더 담담해져서 그 놈이 얼굴이 제자리, 내 무릎 위로 돌아갔을 때는 그의 머리를 쓸어주며 아까보다 훨씬 편안히 마주볼 수 있게 되었다. 그 때 문이 열리며 그 놈의 여자 친구가 정말 안 들어 올 거냐며 얼굴을 내밀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그 놈의 머리를 밀어 냈지만 그 놈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일어나 방으로 돌아갔다. 첫 키스를 했다는 사실과 그 상대가 다른 사람의 애인이라는 죄책감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자리에 다시 누워 잠을 다시 청했다. 하지만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궁금증. 도대체 그건 무슨 의미일까.



다음 날도 우리는 그 집을 점령하고 있었다. 또 늦게까지 술을 마셨고 전날처럼 방을 나눴다. 달라진 것은 집주인의 여자 친구가 남아 있었고 그 놈의 여자 친구는 집에 갔다는 점이었다. 결국, 이번엔 그 놈과 내가 한 방에서 자야 했다.



자리에 눕자 그 놈은 당연하다는 듯이 키스를 해 왔다. 안 된다고 해야 했지만 이미 한 번 했던 거라는 생각이 들어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런데 키스를 하던 그 놈의 손이 윗도리를 밀어 올리더니 이번엔 가슴에 입을 가져다 대는 것이 아닌가. 처음으로 남자에게 몸을 보인 나는 어쩔 줄 몰라 아무런 대처도 못 하고 있었다. 그만 두라며 어색한 웃음으로 그 상황을 모면하려고만 했지만 그 놈은 내가 못 움직이도록 자신의 몸을 반쯤 내 몸 위에 얹고 가슴을 빠는 일에만 열중했다. 갑자기 문에 달린 강아지용 통로가 열리더니 강아지가 뛰어 들어와 그 놈이 동작을 멈췄다. 그것도 잠시,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통로가 다시 열리더니 각각 방으로 들어갔던 후배놈들이 방 안을 들여다보며 실실대고 있었다. 난 너무 놀라거나 창피하면 사고회로가 멈춰 버리는 경향이 있어서 그들을 확인하고도 그 놈을 밀쳐낼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는데 뻔뻔한 그 놈은 이불로 날 약간 가려 주더니 방해하지 말라고 되려 큰 소리를 치는 거였다. 후배들이 낄낄대며 방으로 돌아가고 그 놈은 이번에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하던 일을 계속 했다. 얼마나 당황하고 부끄러웠는지 머리 속이 막 엉킨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놈의 손이 이번엔 아래로 내려가는 거였다. 혼란한 머리로도 이건 정말 안 된다는 생각이 번쩍 들어 그 손을 급히 막았다. 물론 남자의 힘을 당할 수는 없었지만 그 놈을 잠시 멈추게 할 수는 있었다.

“......”

“한 번만 만져볼게.”

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딱 한 번만, 응?”

“안돼.”

그 놈은 내 반대 의사 표명에 아랑곳하지 않고 팔에 더욱 힘을 주었으나 한동안의 실랑이 후에 결국 그 놈이 밖으로 나가 버리는 것으로 끝이 났다. 지금 생각건대 전날도 비슷한 일로 여자 친구와 싸우고 나왔던 게 아닐까.



일주일 후, 문틈으로 웃던 후배들과 함께 그 놈 자취방에 놀러 갔다. 그 날도 술을 꽤 많이 마시고 넷이 나란히 자리에 누웠다. 후배들은 금방 잠이 들었지만 난 그 놈이 만지작거리는 통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애들 옆에 있자나.”

그 놈에게 눈을 흘기며 작은 소리로 항의해 보았지만, 역시나 소용없는 짓이었다.

“자는데 뭐.”

“어휴......”

입씨름해봤자 나만 피곤할 게 뻔해서 포기하고 누워 있는데 또 아래로 손이 가는 거였다.

“하지 말라고.”

“한 번만 만져 보자니까.”

이번엔 순순히 물러나지 않으려는지 팔에 힘이 꽤 들어간다. 갑자기 무서워지면서 좋지 않은 일을 당할 것 같다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 전과는 무언가 느낌이 달랐다. 그래도 옆에 후배들도 있는데 뭘 어쩔까 해서 약간은 안심하고 있는데 그 놈이 옷을 벗기려고 하는 것이었다.

“뭐야, 하지 말라고!”

“한 번 만이라니까.”

“안돼, 정말… 야!”

“조용히 해. 들려.”

중학교 때 사촌 오빠와 팔씨름을 한 번 해 본 뒤로 남자의 힘이 여자보다 훨씬 세다는 것을 막연히 느끼고만 있었는데 그 놈의 완력을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자 여자의 무력함을 새삼 느껴 억울하기까지 했다. 팔과 가슴을 밀어내며 버둥거리는 것이 고작, 후배들이 깰까봐 소리도 지를 수 없었다. 그 놈이 팔꿈치를 바닥에 붙이고 내 손목을 잡아버리자 더 이상 밀어낼 수도 없고 점점 힘만 빠질 뿐이었다. 어느 정도 반항이 약해지자 그 놈은 내 두 손을 모아 한 손으로 잡더니 나머지 한 손으로 바지를 벗겼다. 내가 다시 저항할 새도 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자기 옷도 벗어 버리더니 내 다리를 벌려 사이에 들어왔다.



P.S.

인간의 기억력이란 어찌나 간사한 것인지 자기가 관심 없는 일,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은 점차 망각해 버린다. 아주 편리한 능력이지만 나는 그 정도가 심해서 스무 살 이전의 과거는 뚜렷이 기억나는 일이 별로 없다. 그 놈과의 일은 스무 살 이후의 일이기도 하지만 몇 해를 거듭해 곱씹어 떠올려 본 덕분으로 보존 정도가 대단히 양호한 축에 속한다. 그 이후의 사건(?)들은 모호할 뿐 아니라 순서도 어지러워서 미리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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