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잔과 뚝배기 - 단편

-커피잔과 뚝배기-



아무리 바빠도 그 집의 냉커피는 꼭 마시고 가야, 그나마 그 날 일과를 다 마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집에 들어 설 때 마다, 나는 나름대로의 내기를 한다. 만일 그 자리에 누가 앉아 있으면, 그 날은 대가리가 복잡해 질 것이고, 만일 어제처럼 나를 위해 그 자리가 비워 있으면, 글발이 국수가락 뽑듯이 줄줄 나올 것이라고……그 내기는 적중률이 꽤나 높았다. 왜냐하면, 자리에 누가 없을 때에는 웬일 인지, 아내는 피곤을 탓하며,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고, 나는 이게 웬 떡이냐 라는 심정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글을 썼으니 말이다. 누구는 그럴 것이다. 어떻게 자리 하나를 갖고서 그런 내기를 한다고 글이 잘 써지고 말고가 결정되는가 하고 말이다. 그러나, 그건 그랬다. 그 카페의 유리창 쪽 자리가 혼자 오는 손님들을 위해 만들어 진 것처럼 되어 있기에 하는 말이다. 술집의 스탠드 바처럼 혼자 오는 손님들을 위해 밖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개인별 의자는, 굳이 누구와 같이 와야 될 것 같은 부담감이 없었다.



오늘도 나는 냉커피를 시켜 놓고, 어제 정리 하다만 수첩을 꺼냈다. 나는 뭐 형사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대가리가 썩 좋은 인물도 아닌 걸 안다. 그저, 지나치다, 전철 속에서, 혹은 똥 누다가도 머리에 번뜩 떠오른 글의 소재를 무작정 수첩에 적는 버릇이 있다. 나중에 그 수첩을 들추어 보다가, 내가 이걸 왜 써놓고 지랄이래 하는 의문을 갖기도 하지만, 대개는 기억이 제대로 돌아오는 편이다. 그 수첩을 옆에 놓고, 시원한 냉커피를 홀짝이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 보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의 전부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지극히 평범하게 생겨먹은 나에게 시선을 주는 법도 없었지만, 나도 그들과 관련이 없는 한, 고개를 비틀어가며, 눈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쫓아 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시야에 들어오는 그 순간마다 나에게는 새로운 소재가 쏟아져 들어오는 때이기도 했다. 말소리가 들리지는 않아도, 서로가 헤어지기 일보직전으로 바락바락 대들며, 입씨름을 하는 젊은 커플, 아마도 서로에게 잘못한 일들이 뽀록 이라도 난 듯한 분위기…..옳커니! 불륜이라! 나의 수첩에는 또 다른 플롯이 적혀 진다.



남의 것을 빌리긴 했었어도, 노트북 피씨를 펼치고 바로 글을 쳐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 적도 많았다. 그러나, 어찌 그리 사람들은 바쁜 일도 없이, 남의 일에 관심이 많은지, 지 할 일은 제쳐두고, 딜딜 거리는 내 자판 두드리는 소리에 눈깔이 사시가 되도록, 내 화면을 훔쳐보기 예사라, 이제는 그 짓도 그만 두게 되었다. 사실, 외국의 유명 작가들은 식당이나, 카페에 자기만의 자리가 있다는 얘기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나야 유명 작가도 아니고, 남들에게 들킬까 봐 공개적인 장소에서는 노트북 피씨도 펼쳐서 쳐댈 수 없는 인터넷 야설 작가랍시고 감투를 쓰고 있으니, 그런 얘기는 그림의 떡 일 수 밖에…..



오늘은 유난히 시켜 놓은 냉커피가 맛나다. 아무래도 밖의 날씨가 봄 자락도 붙들기 전에 여름으로 껑충 뛰어가고 있는 탓일 게다. 수첩에 적어대는 플롯이 장황해 지면, 커피를 두 잔씩 시키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여지없이 밤에 잠을 설친다. 굳이 카페인 때문만은 아니고, 오줌 누느라 자주 깨어나기 때문이지 싶다. 그 카페에서 너무 시간을 지체 해서는, 집 사람에게 한 소리 들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가끔 까먹는다.



‘회사에서 나온 지가 몇 신데, 이제 사 들어 오시는 감?’



‘저, 그게…그 놈의 전철이 띠발, 또 말썽이지 뭐야.’



그 놈의 전철 타령, 아무리 생사람 불태워 죽이고, 아무 생각 없이 뛰어드는 모진 목숨, 받아 쳐 뒈지게 하는 전철 이건만, 나는 나에게 아무런 해도 입히질 않는 애꿎은 전철의 늑장 타령을 예사 안주로 입에 올리기 일 쑤다. 아니, 이 쌍판대기에 관심 갖는 여자들 한 마리 없드구만, 프란체스카도 아니고 설랑, 어찌 남 뒤는 캐고 다닌 디야? 아내는 내 핸폰을 이제는 갖다 버리라고 하기까지 한다. 도대체 통화도 제때 되질 않고, 언제나 메시지만 날려야 하는 내 전화기를 일컫는 소리다. 사실, 결혼 이라는 문지방을 넘어서면서 나라는 개인이 사라지는 그 혹독한 경험이, 결국엔 글을 쓰게 한 원인 인지도 모른다. 그 어디에서고, 나라는 개체는 뿌리 채 사라지고, 직장에서는 직함이, 집에서는 아버지이자, 남편, 혹은 이웃의 누구, 처가 댁의 일원 정도로 화하여, 어디에서고 나란 존재를 기어이 찾지 못하는 그 답답함……나는 사회의 보란 듯한 공인도 아니었을뿐더러, 인파 속에 껴 묻혀 하루 하루를 보내는 그런 평범함 속에서 나이가 들어가는 쪼잘한 소시민 이었기에……



‘커….저 사람 부모는 월매나 좋을꼬?’



뉴스에 나오는 성공한 청년 실업가의 얘기만 나왔다 하면, 18번으로 등장하는 부모님의 탄성……사실 남자로 이름 석자 들고 태어났으면서도, 신문은 커녕, 교회 주보에도 오르지 못하는 내 이름…..이름이라도 자주 오르게 돈이나 많이 벌어 헌금이나 많이 혀는 건데…..쩝….. 맨날, 가뭄에 콩 나듯이, 십일조도 떼어먹고 헌금하니, 그것도 언제나 무명씨로만 오르지….헐……가끔 내 이름과 같은 탤런트가 방송에 나오면 나는 어김없이 아내에게 해댄다.



‘저 봐라 말이야! 내 이름이랑 똑 같은 탤런트는 뭐가 달라도 다르단 말이지. 연기면 연기, 얼굴이면 얼굴, 쥑이잖아? 역시 이름 값은 하고 볼 일 이라니깐?’



‘저 사람이 너니? 어째 같은 이름 달고 사면서, 저 사람이랑 그렇게나 차이 나게 살아대나?’



시셋 말로 니가 나를 좇나 모르는데, 낸들 너를 알겠느냐고 묻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맨 처음 글을 쓰려고 했던 것은 단지, 내가 겪고 있는 섹스의 한계를 알리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다. 나이도 나이려니와, 무덤덤 하긴 했어도, 별 탈 없이 지내오는 결혼 생활 이었기는 했지만, 주변의 변화무쌍한 섹스의 도화경이 부러웠던 탓에 저질러 본 손찌검이, 이 지경까지 온 것이라는 게 솔직한 내 심정이다. 부부 사이에 폭력이 손찌검으로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몽둥이 찜질도 예사가 되는, 요즈음 세상의 시류에 편승하는 것처럼, 나의 글발도 처음에는 순순했던 것이, 이제는 제법 미친갱이 소리를 들어 줄 정도로 방향성이 소실되어 가는 느낌이다.



‘얘들아, 아빠 얘기는 들을 것도 없다. 맨날 뻥만 치고…..’



그 말은 맞는 말이다. 하긴 글 쓰는 일이란 게, 읽기 좋게 보이는 그럴싸한 뻥이 아니고 뭐냔 말이지! 나이 살이나 쳐먹고서도 맨날 실없이 뻥만 쳐대니, 이 길로 빠졌지 싶은 나대로의 자책감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기냥, 모든 걸 확 까 발기면서, 아내에게 나의 글들을 모두 면상에다 던져주고 싶은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이거 왜 이러셔! 나도 이 바닥에서는 한 가락 한다 이거야! 라고 외치고 싶다가도 아내의 예상되는 대꾸를 떠올리다 보면 깨갱 하며, 꼬리를 내려 버린다.



‘니가 그렇지, 한다는 꼬라지가 고작 그거지?’



오늘도 수첩에 어제 전철에서 적었던 플롯을 마저 적고 있을 때, 누군가 옆에 앉았다. 훅 하며, 풍기는 여성의 체취….아마도 이것은 그 싱그러운 여름 향내로 유명한 겐조 라는 향수가 아닐까 싶다. 노트북 피씨를 척 하니 펴 들고, 커피와 재털이를 같이 주문하는 그녀. 이 카페뿐만이 아니라, 끓이고 남은 커피 원두를 재털이에 깔아 나오는 그 서비스를 나처럼 좋아하는 모양이다. 손톱이 짧게 다듬어져 있는 손 끝……나는 힐끔대며, 눈깔이 튀어 나올 것처럼 옆으로 컨닝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러나, 곧 이어, 나나 그녀는 자신의 일에 조용히 집중해 가면서 서로에 대한 관심을 끊어 버렸다. 아마 그녀는 그랬을 것이다. 노트북 피씨 하나 없이, 수첩에 오만상, 인상을 써가며, 무언가를 써대는 나를 측은한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하나 장만 허지…왠 궁상은….쯧쯧……그러나, 그녀는 담배를 피워 물면서, 내가 수첩에 휘갈겨 놓은 내용을 관심 있게 내려다 본다.



‘기자신가? 아님, 혹시, 글 쓰시나 봐여?’



‘네? 아, 네…그냥 습작으로 설랑…끄적 대는 정도죠. 근데…..’



‘어떻게 알아 보느냐고요? 저도 속기 할 줄 알거덩요.’



나는 아차 싶었다. 나는 다른 사람이나, 혹시 집사람 이라도 알까 봐, 수첩에 적는 내용은 모두 속기로 적기 때문이었다. 그걸 알아 보다니….



‘속기를 알아보시다니……’



‘뭐 비밀스런 얘기 인가여?’



‘꼭 그렇지만은 않죠. 요즈음이야 섹스가 일반적인데, 굳이 가릴 거야……’



‘……야설, 뭐 그런 건가 보죠?’



‘네. 읽어 보신 적 있으세여?’



‘뭐 그렇고 그런 얘기죠 뭐. 몇 번 들어가 봤는데, 너무 현실성이 없어서 아직 멀었구나 하고 나온 기억은 있어도…..’



‘현실성이 없다는 말씀은 무슨 의미인지….’



나는 이런 주제에 대해서 토론을 무척 즐기는 편이다. 글발도 죽어가는 이 마당에 잘 됐네.



‘줄줄이 경험담이네 뭐네 하면서 시선들을 끌려고 안달 복달 들은 하는데, 읽어 보면, 영 그렇더라구여. 읽는 사람들 중에는 진짜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도 있는데, 내용을 살펴보면 웃기기 십상 이져. 작업 들어가는 스타일 하며, 작가들 전부가 남성적인 측면에서 비쥬얼을 잡아나가다 보니, 여자들이 생각하는 심리적인 부분은 아예 고려되지 않는 부분이 많더군여.’



‘예를 들자면…..’



‘야설 이니까 그렇기도 하겠지만, 섹스 장면의 묘사에 너무 치중하는 경향이 짙은 게 문제 인 거 같아여. 그것도 덮쳐대는 남자 측면에서만…..’



‘야설 인데, 그럼, 그거 빼면 뭐가 남수?’



‘그러니, 다들 그 수준이 그 수준 이란 말을 듣죠. 앞 뒤 다 짜르고, 쌩뚱 맞게 그 짓거리만 들이대니, 현실성이 떨어진다 이거져. 그 중에서 장편을 한 두 편 읽어 봤는데, 그건 그래도 어지간히 상황 설정이 맞아 떨어지고, 깊이 있는 심리묘사에 접근하는 수준이 높이 살 만 했지만 서도, 다른 것은 영 아니었어여.’



‘장편을 섭렵하실 정도면, 그렇게 무관심한 부류는 아닌 거 같은데……’



‘관심이야 있죠. 제 얘기가 없어서 그렇죠. 만일 제 얘기 같은 소재가 있었더라면, 눈에 불을 켜고 봤을 거에여. 추천은 물론 이고…..’



나는 은근히 그녀의 얘기는 무엇일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보기에 그녀는 나처럼 평범한 얼굴이었고, 나 보다는 좀 있어 보이는 직장에 다니는 모습 이었다. 그것도 꽤 괜찮은……



‘혹시 기성 이세여?’



‘기성 이라뇨?’



‘야설을 그래도 쫌 써오신 분들을 그렇게 부르던데……아닌가여?’



그렇게 물어주는 덕에, 나는 평소에 아내에게 하질 못했던 자랑을 좌악 늘어 놓고 싶었으나, 꿀꺽 삼킬 수 밖에 없었다. 나의 아뒤를 대려다, 이미 야설 문화가 시큰둥 하다는 초평을 접한 이 마당에, 필명은 밝혀서 뭐할까 싶은 생각 때문 이었다.



‘제 아뒤는 들어도 모르실 거에여. 글도 글 같지 않은 허접한 것들 뿐이고….’



‘제가 너무 초를 쳤나여? 그렇게까지 타박하시니, 쫌 그렇네….’



‘아니, 뭐 자격지심에 그런 건 아니고, 이렇게 객관적인 평을 듣는 것도 나쁘진 않네여.’



‘맘 상하셨어여?’



‘아녀, 그건 그렇고…..어떤 경험을 갖고 계세여? 혹시 제가 그걸 글로 옮길 수 있는 영광 이락두…..’



‘그건 다음에 시간 나면여. 남편이랑 저녁 식사 약속이 있어서여……다음에 시간 나면 뵙져……..’



그녀가 자리를 떴다. 아마도 옷 차림새로 보아, 결혼 한지, 3,4년쯤 된 것 같고, 아이는 아직 없는 신혼분위기가 넘치는 맞벌이 부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씬하다거나 쭉빵의 느낌은 없었지만, 버들형 히프가 가져다 주는 안온한 느낌은 왠지 낯설지 않다는 생각 이었다. 나는 아차 하고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오늘 난 정말 디졌다! 이거 전화기도 꺼놓고, 1시간 반이 왠 말이야!



‘이번엔 어느 전동차가 고장 나셨남?’



‘아니, 그게 아니구…..’



‘그게 안 이면, 밖은 뭐래?’



‘아효, 왠 그런 치사시런 개그는, 쌩뚱 맞게….누가 뭘 쫌 물어 보는데, 그냥 지나 칠 수가 있어야쥐…….’



‘그럼 그렇지,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고, 안 나서는 데가 없어요. 니가 무신 야구장 민선 응원단장 이냐? 틈 만나면 고개 쳐들고 나서게? 집안 일에 그렇게 열씸 쫌 내 보지?’



‘…….보지? 달도 안 떴는데 왠 보지?’



‘어이그….화상 하고는……대화가 안돼요. 저 대가리로 돈 벌어오는 게 용해! 내가 말을 말아야쥐. 어여 씻고 밥이나 자시게.’



나는 속으로 오늘의 시간 죽이기가 탄로 났으면 어쩔까 조마조마 했었다. 이런 경우를 비껴 가자면 할 수 없이 들이대야 하는 나의 뺑끼….그래서 아내에게 비추어지는 나란 인간은 있는 대로 거드름에, 똥폼 잡는 가장이 아니라, 허구한날 헷소리에 뻥만 쳐대는 실없는 사람 이었다. 집에 돌아와 가장 괴로운 시간은 머릿속에서 뱅뱅 돌고 있는 이야기가 있는 대도 불구하고, 웬 산삼을 뽂아 자셨는지, 아내가 잠자리에 빨리 들지 않을 때 였다. 이럴 때면, 눈에 불을 켜고 TV라도 열씸히 보는 척을 해야 한다. 그러다, 혹여 소파에 앉아 졸기라도 했다가는 대번에 불호령이 떨어 지면서 냉큼 들어가 자라고 하기에, 그런 소리를 들어가며, 컴퓨터 앞에 비질비질 앉았다가는 무슨 치도곤을 당할는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뭐, 집 사람이 무서운 건 아니다. 단지, 이치에 하나도 어긋남이 없게 말을 똑똑 끊는 그 사리 분명 함에 나 같은 헤벌탱이는 이빨조차 들이밀지 못한다는 것 뿐……아내는 완벽주의자는 아닐 지라도, 상식 선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잣대, 그 자체 다. 학교 다닐 때도, 누가 뭐라든 간에, 할 소리는 해야 사는 성격에다, 아이들의 교육에 있어서도 남다른 독특함이 나를 앞서고 있었다.



‘너희들, 엄마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1등이 되어라 가 아닌 거 알고 있지?’



이럴 때면 나까지 아이들 옆에 주루륵 서서, 말 디지게 안 듣는 큰 아들처럼, 네 하며, 머리를 조아리기 일 쑤다. 별 수 있나? 애들이나 나나 말 안 듣기는 피차마차 쌍마차 였기에…..



‘그럼, 엄마가 바라는 것은 무어지?’



‘그건 여……’



이미 답을 알고 있는 내가 대답 하려 하자,



‘당신은 알면서도 맨날 그 모냥 이니, 저기 멀찌감치 떨어져서 벽 보고 손들고 서 있어. 내가 못살아.’



나는 손들고 면벽을 한 뒤에, 또다시 뺑끼를 뿌린다. 아내의 비위를 살살 건드리는 찬송가 한 구절…..



‘’아,아 나는 기쁘다…..정말, 나는 기쁘다……’



교회나 열씸으로 나가면 말을 안 해요……., 아내는 내 쪽을 보다가 입으로 흥얼대며, 유행가처럼 흘러 나오는 찬송가에, 애들 혼도 내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려 버린다. 이게 내 생활이다. 아이들이나 아내나, 나란 사람의 거죽을 볼 때는 그저 헷소리에, 실없는 개그맨 흉내나 질펀하게 내고 다니는 그런 부실하기 짝이 없는 뻥쟁이 아빠로 볼 뿐이다. 아내는 없는 살림이지만, 그래도 항상 열심을 낸다. 오늘도 잠을 설쳐 가며, 들통에다 꼬리를 푹 고는 통에, 글쓰기는 애저녁에 글렀지 싶다. 그래도 나는 그런 아내의 정성에 매우 탄복한다. 아이들에게도 누누히 얘기하는 그 철학조차,



‘성실히 살아야 돼,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거짓말을 해선 안되고….알았지? 거짓말은 그거짓을 가리기 위해, 다른 거짓말을 또 하게 되거던. 그것은 성실히 살지 않으려는 노력과 도 같이 아주 나쁜 거란다. 1등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성실하게 살면서 노력했는가 하는 점이야.’



음…. 좋아!, 그러나, 나는 아내의 훈계를 들으면서도 속으로는 아닌데여 하면서 몸을 틀어댄다. 나야말로 겉으로 뺑끼를 쳐대면서 온통 거짓말로 그 수많은 독자들을 농락하는 아수라 백작 보다 더 나쁜 인간 이었기에 하는 넋두리였다. 이렇게 살다가는 언젠가 마징가 제트의 로케트 펀치에 맞아 뒤질게 분명헌디……항상 이런 저녁이면, 머릿속이 토해내지 못한 얘기들로 뒤죽박죽이 되어 버려, 그 다음날은 더 글발이 개판이 되곤 했다. 회사를 마치고, 나는 또 버릇처럼 그 카페에 들러 냉커피를 시켜 놓고, 수첩을 꺼낸다. 이 글이 쓰여 졌으니, 다음부터 카페에서 냉커피 시키고 수첩 꺼냈다가는 대번에 쪽 팔릴 수도 있으니, 다음 번 부터는 쓰다만 이면지나 꺼내야 할까 싶다.(지가 무신 유명인산 줄 알아요 글쎄…쯧쯧…하늘도 무심하시지, 이런 인간부터 아작을 냈어도 냈을 것을……..). 그 동안 너무 나의 패턴에서 멀어지는 글들을 올렸다는 생각에 나는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옮겨가고 있었다. 나의 플롯 짜기야 워낙 단순하다. 가장 중요한 뼈대는 기승전결. 식사 초반에 숭늉 쳐먹는 인간 없듯이, 나 또한 기본 가락구나 전공을 문학 나부랭이를 하지는 않았어도, 그 원칙만큼은 절대 고수한다. 그 다음은, 그 다음은…..솔직히 별거 없다. 아마 그것도 무신 법칙이 있었다면, 글 쓰는 것을 포기 했을 테니까. 그저 쓰고자 하는 글의 속성상, 필요한 뒷 배경에 대한 상식들을 인터넷이나, 국어 사전에서 좇나게 찾아서 수첩에 적어 넣는 것 밖에는…..그 밑받침이 다 갖추어지고, 대강의 뼈대가 수첩에서 마무리 되면, 나는 그제서야 자판을 두들긴다.



‘당신, 아랫 사람 보기 챙피 하지도 않니?’



‘왜?’



‘웬만하면 자판 쫌 외워보지? 우리 애들도 채팅할 때 보면 다 외우더만……하긴 그 머리에 들어갈 자리나 있나? 바라는 내가 지 그르지.’



아내의 나무람도 일리는 있다. 아내의 표현에 의하면 나의 타법은 독수리도 아니고, 찌질이 란다. 마우스가 없었으면 애저녁에 나가 뒤졌을 솜씨, 그게 나였으니까……그러다 보니, 나는 언제 어디서고 기회만 나면 자판을 쳐대야 했다. 그리고, 언제나 꼬리처럼 따라 다니는 자료의 저장 문제……요즈음 직장에 보급되는 컴퓨터에는 아예,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없는 모델도 있다. 나는 그래서, 그나마 쌩돈 깨가며, 3.5인치 FDD를 사다가 내 자리의 컴퓨터에 끼워 넣었다. 사람들은 씨디로 굽는 게 오히려 싸다고 했지만, 다들 나의 사정을 모르고 떠드는 얘기들 이었고….한번은 이렇게 집과 직장을 왕복하며, 틈틈히 자료를 저장하는 디스켓이 읽을 수 없다는 엉뚱한 사태가 종종 벌어져, 나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 놈의 전철 안이 문제였는데,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다, 가방 안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었던 플로피 디스크가 찌그러 들면서 생긴 자연적인 현상 이었지만……그래서 요즈음은 동료에게 그 놈의 찝드라이브의 디스크 커버를 빌려 그 안에 디스켓을 대신 넣고 다닌다. 빤쭈야 어떻게 생겼거나 말거나 좇대가리랑, 불알 두 쪽만 가리면 되었지, 뭘 더 바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수첩에 글을 쓰다 말고, 고개를 들어, 며칠 전, 폼 나게 노트북 피씨를 펼치던 그 여자를 떠올렸다.



‘어머, 또 뵙네요, 여기 자주 오시나 봐여?’



‘네? 누구 시드라….’



벌써 까 쳐먹고 왠 지랄? 대가리 속으로는 그 여자 생각을 하면서도, 그 인물과 얼굴과의 매치가 영 어려운 나의 대갈빡….나라도 내다 버리고 싶을 지경인데, 남들은 오죽 할라구?



‘아, 그 장편을 좋아하신 다는…..’



‘네, 이제야 기억 하시네여.’



하긴 통성명이 없었으니, 바로 기억해 낸다는 게 좀 무리이긴 했다. 통성명을 한다고 좀 낫나? 다른 직장의 사람들과 미팅하고 나서, 건네 받은 명함, 꼭 빼쳐 먹고, 윗사람에게 찐빠먹는 건 어딜 가나 나였다. 뭐를 해도 어리버리한 인간….언제 사람 될려나?



‘오늘은 한가하세여?’



‘쫌 그런 편이져. 아까부터 와서 쭉 보고 있었는데, 얼마나 열씸히 쓰고 계시는지, 아는 체 하기가 어렵드만여.’



‘그랬나여?’



‘살짝 보니까 외국 얘기도 써 있고 그런 것 같던데…..’



‘인간이 덜 되다 보니까, 친구랍시고 주변에 있어야 될, 떨거지들이 죄다 외국에 나가 퍼질리고 있구, 그러다 보니, 그 치들을 통해 주어 듣는 게 하도 많아서, 글로 옮길 때 쬐금 도움은 되져. 외국에서 사셨나 봐여, 척하니 알아보시고……’



‘아녀, 출장을 많이 다니는 편이져. 직장을 꽤 오래 다니고 있고, 외국인 회사 이다 보니…..’



‘그래여?’



나는 슬슬 구미가 당기기 시작했다. 나는 단도직업적(?!)으로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외국 사람 이랑 사귀어 보신 경험은 있으세여?’



‘물론 있져,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고….그렇다고 외국인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모두 그렇다는 말은 아니구여. 말이 외국인 회사지, 모두 한국 사람 이에여, 웃대가리만 외국 사람들이고……’



‘아, 그래여? 그럼, 얼마나 오랫동안?’



‘이거 혹시 글로 쓰실 거에여? 그럼 곤란한데…..’



곤란하긴 뭘? 이미 수첩이 한 두 장 넘어가는 게 아닌 걸 옆에서 척하니 보면 모르남?



‘괜찮아여…..각색을 하면 되고…..그대로 올리는 짓을 하면, 본인이 괴롭잖아여. 누가 봐도 저건 나야 라고 짐작하게 쓰는 사람은 없다고 보면 되여.’



‘믿어보죠.’



믿는 도끼에 기어이 허벌창 난다고 누가 그랬더라? 암튼 난 이게 왠 떡이냐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외국인 회사에서는 일년에 한번씩, 혹은 분기별로 자신을 직접 평가하는, 이른바, 보스와 독대하면서, 자신의 업무를 평가하는 좝 이벨류에이션(Job Evaluation:직무평가) 이란 걸 하죠. 아마 다른 회사도 마찬가지 일 거에요. 얼굴 가렵긴 해도, 내가 그 동안, 무슨 일을, 얼만큼, 열씸히 해 왔냐는 결과를 놓고, 자신의 상관에게 자신의 업무결과를 있는 그대로 평가해 주십사 설득시키는, 일종의 성적표 대조작업 같은 거에여. 일대일로 치르기 때문에 그 방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는 아무도 모르져.’



‘그럼 그 방 안에서 기냥 해댔다 이건가여?’



‘성격도 급하셔라. 그러니, 아직까지 기성 소리를 못 듣고 계시는 게 아닐까여?’



허이구 닝기리…..괜시리 아픈 속은 찔러대고 지랄이야…..



‘맨 처음에는 그저 그렇게 일반적이고, 사무적인 얘기가 오갔져. 그러다, 첫 번째 직무평가에서 저는 기대했던 점수를 못 받았어여. 이유를 알 수가 없었져. 일도 열심히 했구, 사람들도 프로모션(승급)을 받기에 나 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도 없을 거라 해서 자신만만 했는데, 말이져. 그런데, 정작 뚜껑을 열고 보니, 엉뚱하게 딴 사람이 떡 하니, 프로모션을 받은 거 아니겠어여?’



‘그래도 명색이 외국인 회산데, 주먹구구로 했을 라구여……’



‘저도 그렇게 생각했져, 발끈 하는 마음에 저 대신 승급한 여직원 동료에게 까놓고 대들었져.’



‘머리 끄댕이 쥐고여? 에이 그러면 쓰남? 같은 솥밥 먹는 식구끼리 친하게 지내야징…’



‘아녀, 말로 했져. 누가 봐도 이번에 내가 당연한 순서 인데, 어떻게 승급의 기회를 잡았느냐고 물었져. 살살 달래가면서 말이져.’



그럼, 똥꾸녕 살살 긁어 주면서리, 호호 바람을 불어대도 시원찮을 판에….



‘그 직원이 하는 말에 기가 푹 죽어서 한 마디도 못했어여.’



‘왜여?’



‘저에게도 똑 같은 질문을 했거덩여.’



‘무슨 질문이여?’



‘시간 나면 저녁 식사나 같이 하자는 말…….그게 신호 였는데……..’



‘그게 작업이 아니고 뭐여? 뭐 별 다를 것도 없네…..’



‘다른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글로 옮길 때, 음흉한 상사가 부하 여직원 따 먹으려고 덤비는 것으로 나와 있지만, 실상은 안 그래여, 당당하게 프로포우즈(제안)하는 거져. 그 당시, 저는 싱글 이었고, 상사와의 섹스관계는 별로 탐탁칠 않게 여기는 상황인 데다가, 사회 경험이 모자라, 그 신호를 알아차리질 못했었져.’



‘당당하다는 건 뭐져?’



‘그들에게 있어서 섹스라는 의미는 우리네가 갖고 있는 것 같은 복잡다단한 미련 곰팅이가 아니었다는 거져. 서로가 필요로 할 때, 해주고, 받고….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아주 단순한 뭐랄까? 가려우면 당연히 긁고 잊어야 할 부스럼 같은 거라고 할까여?’



‘그래서, 상사와 얽히고 섥혀서 그저 그런 짬뽕 됐다, 그런 거 아뇨?’



‘제가 그 동료에게 물었어여. 언니는 가정도 있는 사람이 늦게 사, 외국인 회사에 들어와 그렇게나 승진이 하고 싶었수 라고 말이져. 그랬더니…..’



‘그랬더니?’



‘남편도 안다는 말에 기가 탁 막히더라니깐여.’



나는 듣다 듣다 이건 좀 심한 구석이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이런 상황에서 글 쓴 이들은 남편의 입장을 어쩔 수 없이 마누라를 대 주는 쪽으로 글머리를 돌리곤 했는데, 현실은 좀 다른 구석이 분명히 있긴 했다.



‘그건 쫌 다른 이야기네.’



‘아주 많이 다르져, 상납을 한다는 측면과 서로가 필요에 의해 아무런 대가가 없는 것처럼 섹스가 무슨 아이템 회의처럼 결정 지워져서 끝난다는 게 말이져.’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여, 본인은?’



‘할 수 없이 다음 분기의 직무평가를 기다렸져, 아니나 다를까, 똑 같은 질문이 평가 마지막에 사사로이 건네지고, 저는 그걸 승낙했어여.’



‘흔한 직장 상사의 작업이랑, 뻐꾸기, 그리고, 결심, 일탈, ….모두 아설에서 나오는 거 아니우? 이거 직장 내 성희롱이나 뭐 그런 거로 걸어 넣어야 할 거 같은데….’



‘직장 내 성희롱이여? 그래서 아직도 여자들의 맘을 모른다는 거 아녜여? 같은 여자 입장으로 이해는 가져. 그러나, 직장 내 성희롱으로 본인에게 돌아오는 거라고는 모멸감 밖에 없는 경우는 저도 가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이 경우는 달라여. 먹이 감이 눈 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데, 직급의 상승이 주는 풍요로움은 마다하고라도, 서로가 상하 직급의 체제가 아닌 동등한 입장에서의 제안이라 거절하기는 무척 어렵다고 봐여. 여기에 미묘한 여자로서의 갈등이 깔리져. 누가 알면 어쩌나, 이게 도덕적으로 합당한가, 저들이 외국인으로서 우리를 농락하기 위한 방편으로 승진을 이용하는 건 아닐까? 그런데, 현실과 다른 것은 그들 스스로가 철저히 조심에, 조심을 기한다는 겁니다.’



‘어떻게여?’



‘사내에서는 일절 사적인 접촉을 금합니다. 서로의 친밀감을 나타내는 스킨쉽은 물론 이고, 쓸데없이 악수를 청한다든가 하는 것도, 필요 없는 사내 이멜을 개인적으로 보내는 일도 없어요. 그리고, 섹스의 횟수도 극히 제한적으로 조절 해여. 가뭄에 콩 나듯이……이건 국내 회사에서 섹스 관계에 빠지는 상사와 부하직원 과의 관계와는 좀 다르져. 그리고, 언제든지, 저의 의사를 존중 하져. 제가 싫다고 하면, 언제든지 흔쾌하게, 뒷끝 없이 받아들이니까여.’



나는 그네들의 미묘한 섹스 관계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럼 섹스는 어디서 해여? 같이 가나여?’



‘그런 법도 없져. 식사도 같이 안 해여. 차도 따로 타고, 사전에 정해진 호텔에 서로 시간차를 두고 들어가서, 섹스를 하고 나오더라도, 별 말 없이, 들어왔을 때처럼, 시간차를 두고 방을 나오져. 그러다 보니, 섹스를 했다손 쳐도 집에 들어가면, 차가 막혀서 조금 늦은 것 같은 시각이지, 절대로 술에 골아서 밤 늦게 비칠대며 보지가 벌창이 나서 들어온다든가 하는 야설 속의 헤프닝 같은 것은 없어여.’



‘이건 다른 질문인데, 결혼 하셨져?’



‘그럼여….’



‘그럼 남편 되시는 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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