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삽입면허 - 38부

-38부-



**가 남영동으로 떠나고 난 뒤, 혼자서 뒤척이던 기찬은 문득 흑석동의 부동산 사무실을 떠올린다. 이미 애경에게 지시를 해 두긴 했지만, 부동산업자들을 앞으로의 계획에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느닷없이 나타나는 것보다 미리 얼굴이라도 들이밀고 그간 소원했던 관계를 회복시켜 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흐음...... 조금 있으면 형수가 도착할 텐데...... 늦게라도 가 볼까?”



남영동과 노량진을 가고 오는 시간이라야 얼마 걸리지 않는 노릇이었으니 주춤 일어서려 했던 기찬은 다시 침대 위로 몸을 던진다.



복덕방에 전화라도 할 생각으로 전화를 집어들 무렵, 때 맞춰 초인종이 울려 기찬의 몸을 일으킨다.



“으응? 누구지? 형수가 벌써 왔을 리는 없고......”



창문 밖으로 내다보이는 골목에는 검정색 승용차가 주차되어 있었고, 건장한 사내들 몇이 그 곁을 서성이고 있었다.



“뭐야? 저건...... 자식들 영화라도 찍는 거야, 뭐야?”



마치 홍콩 영화에서나 봄직한 무거운 분위기를 풍기는 사내들이었으니 이들의 방문은 기찬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누구십니까?”



“자네가 강 하사 맞나?”



도어폰에서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중저음의 사내 목소리가 들려오고, 의아하게도 그는 카이로에서나 부르는 기찬의 호칭을 사용하고 있었다.



“으응? 누구신데......”



“문을 열어 보게. 만나보면 알 만한 사람이니......”



-기잉......



사내는 오십 대의 중년이었고, 골목에서 보였던 이들은 그를 호위하고 온 것으로 보여 중년 사내가 나름 의 신분이 있음을 짐작하게 하였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흐음...... 우선 앉아서 이야기를 하지. 난 김성진이라 하네.”



초면의 사내가 반말을 늘어놓아도 불쾌감이 들지 않는 것은 그가 중년의 연배여서만은 아니었다. 익숙한 듯 자연스런 몸짓은 마치 이곳이 기찬의 집이 아니라 그의 집무실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편안해 보였으니, 알 수 없는 흡입력으로 기찬을 끌어들인다.



엉거주춤 사내의 명함을 받아들자, 곁에 있던 사내들은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인 듯 재킷을 열어 품 안의 권총을 보여주곤 다시 옷깃을 여미고 있었다.



“으응?......”



삼오공사......! 사내의 명함에는 마치 숫자를 나열한 것처럼 보이는 회사의 이름이 찍혀 있었다. 기찬도 군 시절 들은 적이 있었는지 희미한 기억을 떠올리고, 사내는 무심하게 말을 이어간다.



“우린 기관에서 나왔네.”



“아! 네...... 그런데 무슨 일로......”



순간 기찬은 아득한 현기증을 느낀다. 스스로 자신이 어떤 일을 벌여 왔는지 모를 리 없으니, 그간의 금융 사고며, 불법, 탈법을 일삼아 인수한 가구공장 등을 이들이 모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짐작 때문이었다.



“자네도 지금 쯤 짐작은 하고 있을 텐데......”



“......”



“음...... 하지만, 신경 쓰지 말게. 지금은 그따위 일로 자네를 찾아 온 것이 아니니까...... 자네가 현재 보안 계통의 일에 종사를 하고 있다는 것도...... 그리고 종로의 카이로며 방배동의 비밀 요정, 얼마 전까지는 소공동에서 큰돈을 굴리기도 했었지. 주변에 여자들은 차고 넘치는 희대의 카사노바에다가...... 자신의 형수는 물론 미성년 여고생들과도 성관계를 맺고 있는 도덕 불감증에 빠진 인물이라는 것도 모두 알고는 있네.”



“아! 이, 이런...... 그, 그럼 왜 저를?......”



“아! 그리고 가구공장도 운영하고 있다지? 하지만, 안심하게. 자네를 체포하기 위해 온 것은 아니니까......”



“그, 그렇다면......”



“그래, 눈치 빠른 사람이니 이미 짐작하고 있겠지만, 자네가 해 줘야 할 일이 하나 있어.”



“......”



“그리고 그 일은 필연적으로 자네가 해 줘야 할 일이야. 결국 끝 모르고 달려가던 자동차가 브레이크 사고를 일으킨 셈이니 자네 탓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고......”



“무슨 말씀이신지......”



“지금 자네 형이 일본에 있다는 것도 알고 있네.”



“네, 그건 그렇습니다만......”



기찬은 형에게 연락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이미 **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무언가 요구를 하기 위해서 이들이 형을 억류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자네가 고의원을 만나게 된 건 자네에게 악연일세. 고 의원의 자식 놈도 얼마 전 일본으로 건너갔다네.”



“아니, 그, 그러면......”



“그래. 놈이 사람을 사서 자네 형을 납치하려는 과정에 약간의 사고가 있었지. 자네 형을 우리가 확보하려고 노력은 했네만, 자동차 사고가 일어나는 바람에 뜻을 이룰 수가 없었어.”



“네에?...... 이, 이런...... 그렇다면 저희 형이 납치를 당했다는 말입니까?”



기찬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온 몸을 떨어댄다.



“진정하고 자리에 앉게. 결국 목적이 있어서 그런 일을 벌였을 테니 연락이 오지 않겠나?”



“그, 그러면 그놈이 잠적했다는 말씀이십니까?”



“우리 눈을 피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나? 게다가 녀석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고 여기고 있을 테니 숨을 이유도 없는 일이겠지. 다시 국내로 들어와 있네.”



“이, 이...... 이놈을......”



중년의 사내, 김성진은 서늘한 눈빛으로 기찬을 한동안 바라본다. 마치 무언가 저울질을 하듯 가늠을 하는 모양이었다.



“자, 그렇다면 이제 거래를 해 보세.”



“무, 무슨 말씀이신지...... 거래라면......”



“난 솔직히 자네 같은 부류의 인물들...... 별로 좋아하지는 않네. 하지만, 어쩌겠나? 세상이 온통 도둑놈 소굴이니 큰 도둑놈, 작은 도둑놈이라는 것만이 다를 뿐, 털어서 먼지 나오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고, 제각기 조심해 가며 살아야 할 뿐이겠지. 까짓 수십억, 수백억 단위로 사기를 친다 한들 나라가 흔들리는 것도 아닐 테니 내겐 관심 밖일세.”



“음, 흠......”



“하하, 나 역시도 마찬가지 아니겠나? 하지만 나는 신념이 있고. 그 신념을 지키기 위해 내 직위를 조금 이용할 뿐이니 너무 욕하지는 말게. 그리고 자네 형은 현재 일본의 모병원에서 감시를 당하며 치료를 받는 중인 것으로 알고 있네만,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네.”



“네에?...... 그렇다면 위독하다는 말씀이십니까?”



“아! 사고를 당하고 이틀 만에 의식은 돌아왔다는데, 경과는 더 두고 봐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현재로서는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을 노출시킬 수도 없는 일이니 그쪽의 대응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실정 아닌가? 어쨌든 자네 형의 안전은 우리가 염두에 두고 있으니 그리 알고 자네는 모른 척 하게.”



“네, 알았습니다. 그럼 말씀을 해 보시죠. 제가 무얼 도와 드리면 되겠습니까?”



“고 의원은 현재 여당에서 나름의 세를 구축하고 있는 인물일세. 조만간 계보를 이용해 당을 장악하고 머지않아 있을 대선에 출마할 계획을 갖고 있다는 첩보가 진작부터 있어왔네.”



“아! 그렇습니까?”



“내가 이끄는 조직에서는 그런 인사가 혹시라도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네. 하지만, 점점 나름의 세를 굳혀가고 있는 형국이니 그 우려가 현실로 될 가능성이 점점 농후해지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 오늘 자네를 찾아오게 만든 걸세. 어떤가? 자네도 결코 무관하지 않으니 나를 도와 그를 주저앉히는 일에 동참하지 않겠나?”



“아!...... 물론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정부 기관에 속해 있는 우리가 이런 일을 한다는 것도 사실 탈법이고 위법일 수밖에 없으니 자네 같은 도둑놈, 사기꾼을 찾아 일을 맡길 수밖에 없지 않겠나? 하하하...... 자네, 군 시절 경력을 보아하니 달리 훈련이 필요한 일도 아닐 것이고, 이대로 우리 지시를 받아 움직여 준다면 자네 뒤는 내가 봐 주도록 하겠네. 어떤가?”



“이것 참...... 이미 제가 거절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저희 형의 안전은 어찌 되는 것입니까?”



“그 일은 자네와 별도로 우리도 추적을 할 테니까 자네는 일단 그의 요구에만 귀를 기울이는 것이 좋겠네.”



“좋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원하시는 것을 말씀해 주시죠. 제가 어떻게 해 드리면 되겠습니까?”



“몰락일세. 다시는 그의 계파에서 정권을 꿈꿀 수 없을 정도로......”



“아!......”



난처한 일이었다. 일본에 있는 형과 연락이 되질 않는다며 형수가 걱정한다는 말을 들은 것이 조금 전인데, 그것이 금주의 전 남편 소행이라니 기찬으로서는 대안을 세우기가 몹시 난감한 노릇이었다. 이들이 원하는 대로 하자면 며느리와의 섹스 스캔들을 불러올 수 있는 디스켓을 공개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것은 금주는 물론 자신의 형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일이었으니 행여 입에서 뱉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석방의 조건이 금주와의 이혼이라는 것을 고 의원에게서 전달을 받았겠지만, 고 의원의 입장에서는 자식에게 며느리와 살을 섞은 자신의 치부를 보일 수 없었을 테니, 방배동 비밀 요정을 압박하다가 기찬에게 정치적 약점을 잡혀 보복을 당하고 있다고 둘러대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요구라면 이미 진작부터 기찬과 제 마누라가 붙어먹고 있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한 일이니, 고가의 보석을 대수롭지 않게 선물한 일이라든지, 툭하면 방배동에 가서 살다시피 했던 금주의 행동도 모두 아귀가 맞아 들어간다고 생각했을 터, 자신이 저지른 소행을 생각하기보다는 기찬과 금주에 대한 배신감에 치를 떨었을 것이다.



이미 자신의 정치적 기반은 잃은 것이나 다름없고, 뭔가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면 상황을 역전시킬 방법이 없다는 생각에 일을 꾸민 것일 테니 장난처럼 대응했다가는 형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이것조차 금주 전 남편의 단독소행인지, 제 치부를 가리기 위해 고 의원이 아들을 앞세워 흥정을 벌여 오는 것인지 알 길은 없는 것이니, 자칫 그들로 하여금 기찬의 흔들림을 감지하게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또한 이 시간 마주 앉아있는 이들조차 말과는 달리 자신들의 영달을 위해 누군가의 그늘에서 정적을 없애려는 수작으로 자신에게 접근한 하수인인지도 모르는 일, 섣부르게 행동할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현재의 상황으로서는 빼도 박을 수도 없는 처지에 몰리고 말았다.



“우리가 사용하는 비용도 모두 국민의 세금이니 감찰을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정치인들의 입김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니 더 이상 가까이 접근을 하기 어려운 일일세. 하지만, 이런 저런 일들로 얽혀 있는 자네라면 뭔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온 것이니 적절한 방법을 연구를 해 보게.”



“네,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저쪽의 연락을 기다려야 할 것 같으니 추후 다시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지, 연락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그 번호로 하게.”



자리에서 일어서 나가는 그들과 스쳐 지나듯 형수 보라가 대문을 들어선다.



“어머! 손님들이 계셨나 보네?”



“아! 형수...... 어서 와요. 먼저 들어가 있어요. 손님들 배웅하고 올 테니까......”



“네......”



형수 보라에게 사실을 알려 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공연히 마음을 쓰게 해서 도움이 될 것도 아니었으니, 고 위원장도 납치 사실을 그녀에게 연락할 필요는 느끼지 않을 것이다.

일행을 배웅하고 현관으로 들어서는 기찬에게 보라가 다가와 안긴다.



“호호...... 세상에...... **가 오늘 그 날이라면서......”



“으응? 아! 하하하......”



“그런데 아까 그 사람들은 누구?...... 혹시 차림새를 보아하니 수사관들?......”



“으응? 아! 그래...... 지금 일본에 뭔가 조사하는 게 있는데, 파견시킬 요원이 부족해서 형한테 뭔가 부탁을 해 뒀거든...... 그래서 그 일 때문에......”



순간, 보라의 눈이 커지고, 주먹을 모아 기찬의 가슴을 두들긴다. 하지만 적절한 핑계가 떠오르지 않은 기찬으로서는 이렇게 둘러 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어머! 아유 참....... 그런 일이 있었으면 내게는 말을 해 줬어야지. 나는 연락이 안 돼서 얼마나 걱정을 했다고......”



“아! 그랬어? 하하, 걱정할 필요 없어. 위험한 일은 아니니까......”



걱정을 많이 했는지 어느새 마음의 위안을 얻으며 보라의 속눈썹에는 물기가 맺혀 있었다.



“후훗, 바보같이 울기는...... 아무 일도 없다니까......”



기찬은 천천히 입술을 옮겨 눈물을 빨아주곤 입을 맞춰준다. 후일, 사건이 종결되면 그뿐일 일을 가지고 사서 걱정을 시킬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이젠 스치는 피부마저도 내 살인 듯, 살가운 정을 나누는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방으로 자리를 옮기고, 천천히 허물을 벗어 내린다.



날이 저물도록 두 사람은 침대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꼼지락거리며 장난으로 서로의 체온에 녹아들고, 이젠 헤어질 시간에 아쉬움을 나누고 있었다.



“아이, 또?......”



“후훗, 좋으면서 뭘 그래?”



“피...... 가긴 싫지만, 내가 얼른 가야 **도 집에 가지.”



하지만 울리는 전화벨소리는 기찬을 다시 긴장 속으로 몰고 가는 것이었으니, 그것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여보세요......”



“아! 저예요. 애경이......”



애경의 전화라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잔뜩 긴장했던 기찬의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바닥으로 내려앉는다.



“으응, 왜?......”



“왜는 뭐가 왜예요? 지금 흑석동으로 좀 오세요. 업자들 몇 사람 모이기로 했어요. 혼자서만 만나기가 이상해서 그 사람 계모임에 있는 업자들 몇 사람 더 불러뒀거든요.”



“아! 그래...... 바로 갈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대충 샤워를 하곤 보라를 남겨둔 채, 기찬은 차를 몰아 흑석동 부동산 사무실을 향한다. 납치된 형으로 인해 마음이 쓰이는 것을 어찌 할 수 없는 노릇이니 거칠게 보라에게 몰입하고, 이제는 다시 업자들을 만나 그곳에 마음을 붙일 모양이었다.



부동산 근처 멀찌감치 애경의 승용차가 보이고, 기찬의 차를 알아봤는지 멀리서부터 하이 빔을 올려 깜빡이로 신호를 해 온다.



“들어가서 기다리지. 왜 여기에 있어?”



“치...... 죄 지은 년이니 할 수 있나? 기찬 씨 일만 아니라면 평생 이곳에 올 일은 없을 건데......”



“죄는 무슨...... 이제 이혼했으면 그만이지. 그 양반도 다른 여자가 생기지 않았을까? 자, 들어갑시다.”



아니나 다를까, 기찬과 애경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미리 모여 있던 일행은 다소 어색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맞아들이지만, 그중에서도 애경의 전 남편은 더욱 놀란 표정으로 기찬을 바라본다.



“아, 아니...... 기찬이 네가 어떻게......”



“아! 형님 오랜만입니다. 저 요즘 애경 씨와 함께 움직이잖아요. 거대물주를 하나 잡았는데 나로서는 물량 확보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어서......”



처음에는 사장 부인이었으니 사모님이라 부르던 여자를, 그리고는 형수라 부르던 여자에게 이젠 자유로이 이름을 호칭하는 것이 그에게는 더욱 못 견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이혼한 여자에게 권리 따위를 주장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사장은 일행을 한 번 돌아볼 뿐 머쓱한 표정으로 자리를 만들어 준다.



이혼할 당시에도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헤어졌던 애경은 자신과 살 때보다 더욱 화려해지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것은 비단 그만 느끼는 것은 아니었을 테니 자리를 함께 하고 있는 계원들도 어색한 가운데 훑어보듯이 느끼한 시선으로 애경의 몸을 위아래로 핥고 있었다.



“그래, 당신도 오랜만이구먼...... 물건은 무슨 물건인데?......”



“시세 삼백오십억...... 물건은 땅입니다. 조만간 아파트가 들어 설 자리를 알아보는 중인데, 택지로 개발할 땅입니다. 현재 물주가 외국에 있는 터라 당분간 그 땅을 붙잡고 있어야 하는데, 그 사이 땅이 팔려 버릴지도 몰라 도움을 청하는 겁니다.”



“아니, 그거야 계약금을 걸고 기다려 달라고 하면 될 일을 가지고 그러나? 그러길......”



“형님도 참...... 누가 그걸 모릅니까? 지금 물주가 외국에 있는데 아직 그 땅을 보지 못했으니까 내 임의 대로 계약금을 걸 수가 없어서 그러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 달라는 거야?”



“다름이 아니고 여러분들이 한 번씩 내려가서 분위기만 띄워달라는 겁니다. 애경 씨가 위치를 알려드릴 거니까 곧 거래를 할 것처럼 하면서 흥정만 해 두면 저쪽에서도 욕심이 날 테니 선뜻 누구에게도 팔려고 나서질 못할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말입니다.”



“허허...... 참,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 그러면 공연히 땅 값만 오를 텐데......”



“나중에야 모두 한 걸음에 뒤로 빠지면 되는 일 아니겠습니까? 거품이야 가라앉을 수밖에 없지요. 정 안 되면 다소 오른 값에 사더라도 할 수 없는 일이고......”



“그럼 우리에겐 뭐가 남는가? 바쁜 사람들에게 그 일을 그냥 해 달라고 하는 것은 아닐 테고......”



“일억을 드릴 테니 그것으로 여러분들이 공평하게 나눠 가면 되지 않겠어요?”



“뭐?...... 일, 일억?......”



“네, 일억...... 더 달라고 하면 곤란한 일이니, 그러면 차라리 다른 팀을 찾아보고요. 그래도 나는 형님과 인연이 있어 이렇게 부탁을 드리러 온 건데......”



“만약에 자네 물주라는 양반이 그 땅을 싫다고 하면...... 그러면 우리만 헛고생하는 것이 아닌가?”



“하하, 그러니까 그럴 경우에 계약금을 날리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형님께 부탁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되더라도 일억을 손해 볼 뿐이니까 계약금을 다 떼이는 것보다는 다행스런 일이지요.”



“아! 아, 그러면 해야지. 그까짓 것 한 번 가서 명함 건네주고, 그 뒤로는 전화로 분위기만 잡아줘도 되는 일 아닌가? 응?...... 안 그래?...... 모두 동참할 거지?”



그렇게 부동산 업자들과의 합의를 볼 수 있었다. 일억이라고 해 봐야 앞으로 만들어질 돈에 비하자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한 일이니 한기주가 성형수술을 마치고 돌아오기까지 시간을 버는 데에 필요한 비용이라면 아까울 것도 없는 일이었다.



“네......”



“아! 저예요. 도련님......”



일을 마칠 무렵 보라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순간순간 벨이 울릴 때마다 고 위원장의 전화는 아닌지 온갖 신경이 곤두서는 일이었다.



“으응? 형수...... 어디야? 아직 가게에 안 갔어?”



“아니에요. 여기 남영동이에요. 벌써 왔지요.”



“그런데 왜?......”



“모처럼 **도 함께 있는데...... 우리 고기라도 먹으러 갈까 싶어서...... 윤정 씨도 함께 있으니까 우리 식구끼리 회식이나 하면 어떻겠어요?”



“아! 그래?...... 그럼 그러지. 여기 볼 일도 다 끝났으니까 금방 갈게. 그러면 나 기다리지 말고 먼저 나가서 자리 잡아 둬. 그 근처에 도착하는 대로 전화할 테니까......”



“네, 알았어요.”



저녁 무렵 기찬을 만난 애경은 나름의 기대가 있었지만, 기찬의 통화 내용을 듣고는 입을 삐쭉인다. 그러나 정작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어이가 없는 노릇이었으니 은연 중 두 사람의 관계를 짐작하는 모양이었다.



업자들은 뭔가 허전한 마음이었는지, 차를 출발시키는 애경의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본다. 동료의 아내였던 여자, 하지만 지금은 헤어져 혼자 살고 있는 여자에 대한 도발 같은 상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 오늘 그녀와 함께 나타난 기찬에게 뭔가 기대를 하는 눈빛으로 갖은 친절을 베푸는 모습은 웃음을 머금게 하는 일이었다.



“후후후...... 이 친구들을 부리는 데...... 어쩌면 단 돈 십 원도 안 들지 모르는 일이로군. 이 일은 그냥 애경이에게 맡겨 두면 저절로 해결되겠어.”



기찬은 애경의 뒤를 따라 천천히 차를 몰아 골목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복잡한 한식당, 한 편에 자리한 네 사람 앞에는 불판이 차려져 있고, 그 위는 갖은 고기들이 구워지고 있었다. 기찬의 옆에는 의당 **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함께 하고 있는 여자들이 모두 그의 여자들이니 기찬으로서는 흐뭇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야! 기찬 씨, 너는 내가 말할 때는 모른 척하고 있더니 언니한테만 말해 주고......”



“뭐, 뭐를......”



**의 강짜가 이어진다. 필경 형의 문제로 이러는 것일 테니 기찬은 괜히 모르는 척 의뭉을 떤다.



“형부 말이야. 자기가 무슨 일을 부탁해서 연락이 안 되는 거라면서......”



“아! 그거...... 하하...... 공연히 여러 사람한테 알려서 좋을 게 없으니까 그랬지. 미안, 미안......”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이것 봐라. 하나 알면 열까지 알고 싶어서 그러니까 말을 안 해 주지.”



“피......”



“별 일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조만간에 내가 일본으로 한 번 건너가긴 할 건데, 내가 그 나라 말을 할 줄을 모르니 그게 조금 걱정이네......”



그 말을 듣던 보라가 대뜸 윤정을 바라보며 말을 받아넘긴다.



“어머머! 그럼 윤정 씨 동생에게 부탁하면 안 될까? 왜, 지난번 그 아가씨가 동생이라면서...... 우리 가게에 왔던 손님하고 말 하는 것을 보니까 아주 유창하던데......”



“아! 그래요?”



“으응, 그래, 일어일문학과에 다닌다던데...... 어차피 요즘 강의도 없을 텐데, 경험삼아 일본에 가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도련님 안내도 해 주고......”



윤정은 뭔가 곤란한 듯 기찬을 바라보곤 말을 이어간다. 보나마나 기찬의 성향을 모르는 바가 아니니 그와 함께 해외여행을 한다면 동생의 안위가 걱정될 수밖에 없는 노릇일 게다.



“그, 글쎄요. 시간이 되는지 한 번 물어보긴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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