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사이 - 1부

냉정과 열정사이



지금은 서울에 살고 있지만 3년 전만 하더라도 저는 지방의 소도시에서 학원강사를 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가진 것도 없었지만 학원강사로 일하며 적지 않은 돈을 벌고 있었기에 생활에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행복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시절을 같이 했던 이제부터 그녀, 아오이(가명)와 저, 준세이(가명)와의 사랑을 글로 표현해 보려 합니다. 좀 길지만 끝까지 읽어주신다면 영광이겠습니다. 참고로 이것은 모두 실화입니다.



1. 인연의 시작



2001년, 대학교 4학년이 되었다. 존경하는 교수님의 부탁으로 연구실 조교를 맡아 이것 저것 잔심부름도 해야했고, 늙은 부모님께 용돈 타는 것이 부담스러워 일주일에 세 번씩 동네의 조그마한 학원에 나가 중학생들도 가르치면서 바쁘게 보냈다.

후배들은 취직공부를 한다며 도서관에서 처박혀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대학교 4학년이나 되었는데도 특별히 무엇을 하고 싶지도, 되고 싶지도 않았다.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3학년 때부터 해오던 학원일에 마음이 쏠렸다. 후배 몇 명에게 학원을 차리자고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들의 지상목표는 어디까지나 안정된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막막하게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학교 뒤편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진로에 대한 상의도 하고, 안부도 물을겸해서 1살 위인 막내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전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목소리는 뜻밖에도 그녀, 아오이였다.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지 10년이 지났지만 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그녀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녀는 누나의 친구였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 만났지만 그때는 사는 동네도 달랐고, 관심사도 달라 만나면 누나친구와 친구동생 사이로 ‘안녕?’하고 인사만 하는 사이였었다. 그러던 것이 고등학교 때 다시 만나니 서로 반가워 서로의 친구들과 함께 가끔 만나서 팔뚝맞기 고스톱도 치고 밤새워 이야기도 하는 사이로 발전했던 것이다. 물론 누나의 친구들과 내 친구들도 초등학교 동문이어서 서로에 대해 다들 잘 알고 있었다.



누나의 친구들 중 그녀가 제일 나았다. 몸매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큰 눈에 오똑한 코, 부드러운 손,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천사같은 마음씨였다. 늘 타인을 먼저 배려하는 부드러운 그녀에게 나는 마음을 빼앗겼다. 하지만 곧 누나와 친구들은 고3이 되었고, 한 해 차이로 우리도 곧 수험생이 되어 만나는 횟수는 점차 뜸해져 갔다. 나는 곧바로 대학에 들어갔으나 공부를 훨씬 더 잘하던 그녀는 삼수까지 해서 대학에 들어갔다. 마음 약한 아오이에게는 대학입시라는 큰 시험이 엄청난 심리적 부담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나의 부모님은 그녀를 참 마음에 들어하셨다. 초등학교 때부터 집안에 드나들었기 때문에 그녀의 성장과정을 쭉 지켜본 부모님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며느리감으로 일찌감치 점찍어 놓으신 것이었다. 내가 대학교 1학년 때였다. 누나를 통해 이 소리를 들은 그녀에게서 만나자고 전화가 왔다. ‘혹시 사귀자는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만난 대학로 앞 레스토랑에서 그녀는 말했다. “이야기 전해 들었어. 부모님께서 나를 마음에 들어 하신다고.... 그런데 준세이, 나는 김국진같은 스타일의 사람이 좋아. 미안하지만 준세이가 나를 싫어하는 것으로 말씀드려 줘. 나를 잘 봐주신 것은 고마운데 나는 준세이를 한 번도 남자로 생각해 본적이 없어.” 나의 자존심을 고려해서였을까? 그녀는 정말로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말했지만, 나의 가슴에는 이미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의 외모는 내가 생각해도 형편없다. 약간 곱슬머리에 작은 눈, 남들보다 비교적 큰 머리, 키도 그리 크지 않다. 어쨌든 그녀와의 인연은 거기에서 끝났다. 적어도 그땐 그래 보였다.



몇 번의 휴학으로 동기들은 모두 학교를 떠났지, 후배들은 취직공부한다고 도서관에 처박혀 있지, 미래는 불투명하지 하던 차에 그녀와의 뜻밖의 통화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누나는 운전을 하고 있어서 그녀가 대신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 반가운 마음에 만나자고 했고, 그 주 토요일날로 약속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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