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사랑했습니다 - 1부 10장

들킨건가...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보니 지연이다. 조용히 내 손을 끌어 방밖으로 나간다. 오바이트를 했던 여자애는 소파에 잠들어있었다.

다른애들도 대부분 잠들어 있었고 깨있는 애들도 비몽사몽이다.

지연이는 베란다로 날 끌고갔다. 안전때문인지 창은 조금밖에 열리지 않았지만 차가운 바람에 술이 깬다.



"놀랐니?"

어색한 침묵을 깨고 지연이가 묻는다.

"쪼금..."

"첨부터 이런거 보여서 나도 좀 난감하네.."

첨부터?? 그럼 쟤들말고도 그런짓을 한다는거야? 머리가 띵했다.

내 멍한 표정을 보고 지연이는 한숨을 한번 내쉬더니

"뭐 저런것까지 봤는데 더 숨길게 뭐있니. 전부는 아니지만, 저런애들 있어.."

"......"

뭐라 할말이 없었다.

"혐오스럽니?"

지연이가 조심스레 물어온다.

혐오? 글쎄.... 친구들도 아니고 오늘 첨보는 애들인데 혐오하고말게 있나? 따지고보면 나도 이미 성경험이 있지않나.

"아니. 그냥 좀 놀란것 뿐이야."

"다행이다..."

내 말투에서 진심을 느꼈는지 지연이는 안도의 빛을 내비친다.

"근데..."

"뭐??"

"아..아냐.."

"뭔 남자가 말을 꺼내다말어~~ 나 궁금한건 못참아~ 빨리말해~"

그녀가 바짝 다가서며 눈을 부라린다.

"그.그게.."

"아~~ 진짜 답답하네~~ 한번만더 그러면 각오해~~"

"흐흠... 저기.. 혹시 너도?"

"나? 내가 뭘?.... 아~~ 나도 쟤들처럼 저러냐구?"

"뭐......"

"크큭.. 그렇다면 어쩔건데? 실망할거 같애?"

"쳇.. 니가 내 여친도 아닌데 내가 왜 실망을해?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거야~"

"칫~ 뻣뻣하기는~ 근데 난 어떨거 같은데?"

오히려 반문한다.

"그글쎄... 잘 모르겠는데"

"아니라면 믿어줄꺼야?"

그렇게 묻는 지연이의 표정엔 뭔가 절실함이 느껴진다..

"미믿고 안믿고 할게 뭐있냐. 그렇다면 그런거겠지.."



"그러는 넌 여자경험 있어?"

"모몰라두돼!!"

"어? 너 있구나? 그지그지? 표정봐 분명히 있어!"

지연이는 눈을 똥그랗게뜨고 자기 얼굴을 내 얼굴 지척까지 들이밀고 물어온다.

"얘가 왜이래. 비켜"

엉겹결에 뒤로 물러서며 지연이의 시선을 피했다.

"이봐이봐~ 분명히 있어~ 완전 범생인줄 알았는데 술도 마셔봤고~ 여자경험도 있고~ 완전 날나리네~ㅋㅋ"

날라리?

"이게 누구한테 날라리래. 니가 날라리지"

"그래그래~ 우리 둘다 날라리다~ 날라리끼리 뽀뽀한번 할까?"

"저리비켜~ 기지배가 부끄러운것도 없어"

"칫~ 디게 비싸게구네~ 키스한번 한다고 입술이 닳냐? 닳아?"

"넌 아무남자나 키스하냐?"

"뭐가 아무남자야~ 서로 좋아하는 사이끼리 키스하는게 당연하지~"

"서로 좋아하는 사이? 누가 누굴 좋아해? 너 제정신이냐?"

"내가 안이뻐? 나랑 어떻게 한번 해보고싶어 안달난 애들이 줄을 섰는데"



말이야 바른말이지 이쁘긴하다.. 크면서 살짝 올라간 눈꼬리는 나이답지않은 요염함이 느껴지고 얼굴도 어디내놔도 빠지지 않을 전도다. 늘씬한 몸매와 적당히 부푼가슴, 쭉뻗은 다리역시 남자들이 침을 삼키기에 충분하다.



"쳇 이쁘면 남자들이 다 넘어오는줄 아냐"

"어? 그말은 이쁜건 맞다는거지? 아싸~~"

진짜 강적이다......



"근데.. 늬들 항상 이렇게 노니?"

"술? 아님... 섹스?"

섹스.. 아직 중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이쁘장한 여자애의 입에서 나온 단어치고는 쎄다.. 남자체면에 여기서 밀릴순 없지

"섹스"

"그전에 니 생각부터 좀 듣고싶은데.."

"무슨생각?"

"섹스에 대한 니 생각말야"

섹스에 대한 내 생각이라...

"음... 글쎄.. 생각해본적이 없는데.."

"그럼 지금 생각해봐. 정리될때까지 기다릴께"



별걸다 생각해보라네.. 뭐 한번쯤 이런생각을 해보는것도 나쁠건 없을거같긴하다.

난 시계를 과거로 돌려봤다. 처음 자위했을때, 첫사랑, 첫키스, 그 첫사랑과 친형의 섹스를 훔쳐보며 자위를 했던 기억. 그리고 첫경험...



사랑? 섹스?

처음 민수림 그녀를 만났을때 난 그녀는 한없이 순결한 여자일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 그녀는 그렇게 정숙한 여자가 아니었다. 그럼 난 그런 그녀에게 실망했나? 맞다. 실망했었지.. 하지만 나도 그런 그녀를 보면서 자위를 했다. 그럼 나도 더러운 놈일까? 저애들도 전부 더러운 애들일까?

그럼 세상에 과연 깨끗한 사람들은 얼마나 있을까..



내가 그녀의 섹스하는 모습을 보지 않았다면 아마도 난 지금도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순결한 여자라고 믿고 있을것이다. 저애들도 길에서 만나면 그냥 평범한 중고등학생일 뿐일것이다. 세상 모든사람들이 마찬가지다. 한없이 껄렁해보이는 사람들도 의외로 순진할수 있고, 그 반대도 있다.



보이는게 전부가 아니다.. 그렇다면 보이는것에 집착할 이유도없다.

어제까지는 실타래처럼 뒤엉켜 정리가 안되던 것들이 오늘은 왜인지 술술 풀려나가는것같다.



난 내가 생각했던걸 주절주절 얘기했다. 지연인 턱을괴고 내 얘기를 몰입해서 듣고있다. 대충 얘기가 끝나자 지연인 싱긋 웃으며

"너 꼭 원효대사같다.크크"

난데없이 웬 원효대사..

"왜 원효대사가 해골바가지물 마신 얘기있잖아~"

그게 또 그렇게 되나..ㅎ;

"아무튼 니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좀 안심이네. 그럼 이제 우리 얘기 해줄께"



난 무덤덤한 표정으로 지연이를 바라봤다.

"사실 여기있는 애들 전부 제법 잘나가는 집 애들이야. 할아버지가 국회의원인 애도 있고, 재벌3세, 잘나가는 변호사 딸... 뭐 대충 그래. 덕분에 어릴때부터 엘리트교육에 별의별 과외는 다받고 어학연수는 기본이지.. 이거해라,저거하지마라.. 우린 부모님이 짜준 계획표대로 움직이닌 인형일 뿐이야. 그렇게 15년을 살았어. 그런데 어느날 참 억울하더라. 왜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하지.. 뭣때문에? 그래서 옥상에 올라갔어"

"옥상?"

"응.. 옥상.. 그리고 우리 부모님이랑 여기있는 애들 부모님 전부 불렀지. 그러군 어떻게했는줄 알아?크큭"

"?"

"우리 요구를 안받아주면 뛰어내리겠다고 협박했지~ㅋㅋㅋ"

"에~~?"

"그래서 얻어낸게 이날이야. 한달에 하루!! 그날은 아무런 터치도 받지않고 우리들 맘대로 논다!!"

"뭐 절박한 투쟁의 대가치고는 성과물이 별거 아닌거 같지만, 그래도 이 하루가 우리에겐 마음껏 숨쉴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야.. 그게 올해초였는데 막상 시간을 얻으니까 뭘해야할지 모르겠더라. 처음엔 그냥 모여서 다른애들처럼 영화도보고 쇼핑도하고 노래방도가고 그랬는데 지금은 보시다시피 이러구놀아~^^.."



그랬구나... 누구에게나 똑같은 하루라는 시간이지만, 저애들에게 이 하루는 그냥 평범한 하루가 아니었던것이다.

난 거실에 널부러져있는 애들을 보면서 저애들이 저러고 있는게 이해가됐다.



지연이랑 얘기를 하다보니 무거웠던 마음이 좀 편안해지는 느낌이다.

"난 그만 돌아갈께. 애들한테 얘기좀 해줘"

"가려구? 술좀 깨고 좀있다 가지"

"아냐. 괜찮아. 오늘 고마웠다. 덕분에 기분이 나아졌어"

"훗~ 고마운줄 알면 담엔 튕기지말고 밥쏴~^^"

"그래, 그럼 담에보자"



택시를 탈까하다가 그냥 걷기로 했다. 두어시간은 걸어야 할 거리지만, 그냥 걷고싶었다. 집근처에 도착하니 벌써 12시가 훌쩍넘어있다. 혼나게생겼네...

집근처 놀이터를 지나는데 낯익은 그림자가 보인다. 형이다. 한바탕 잔소리들을 각오를하고 다가가는데 형이 먼저 다가와 말없이 날 안아준다. 꽁꽁 얼었던 두 뺨이 형의 가슴속에서 녹아내린다. 그리고 내 마음속의 얼음도 녹아서 눈물로 흘러내렸다.



"들어가자"

내 눈물이 그칠때까지 꼭 안아주던 형은 내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따뜻한 물 받아놨으니까 몸좀 녹여"

욕조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니 몸도 녹아내리는것같다.



"오늘은 형이랑 같이잘래"

"그래. 오늘은 예전처럼 같이 자자"



우리는 나란히 누워서 옛날얘기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별로 좋은 기억은 없었고 대부분 힘들었던 얘기, 아팠던 얘기들이었지만, 이것도 시간이 지나니 좋은 얘기꺼리가 됐다. 한참을 얘기하다보니 어느새 형은 잠들어있었다.

형은 날 위해 참 많은걸 포기했었다. 학교, 자신의 미래, 시간, 청춘.... 그런데 난 그깟 여자 하나도 포기못해서 이렇게 미련을 떨었다니..

잠든 형의 손을 꼭 잡아봤다. 따뜻하면서도 굳은살이 박혀 딱딱하다. 기지배 손같다는 내손과는 비교도 안된다. 이 굳은살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것이다...



형... 미안해....



다음날부터 우리는 완전히 다정했던 형제로 돌아갔다. 그제서야 난 수석합격 소식을 전했고, 형과 누나는 나보다 더 기뻐해주었다. 그리고 결혼식이 다가왔다.

결혼식은 동네의 조그만 성당에서 치뤄졌다. 한푼이라도 아껴야 한다는 형수의 성화에 대부분의 절차는 생략되고, 하객들도 최소화했다. 친척하나 없는 우리를 배려한건지도 모른다.

그래도 웨딩드레스는 입어야 한다는 형의 고집으로 간신히 드레스는 빌렸다.

형 직장 동료 몇명과 형수의 친한 친구 몇명만이 참석한 조촐한 결혼식이 거행됐다. 사랑의 서약과 지인들의 축하속에 결혼식은 끝이났다.



신혼여행은 2박3일로 설악산으로 다녀오기로했다. 제주도라도 가자는 형의 주장을 묵살하고 형수가 결정을 내린것이다.

"너도 같이가면 좋을텐데.."

"아~ 신혼여행을 쫓아가는 동생이 어딨어? 그냥 잘놀다와~ 형수님, 형한테 맛있는거 많이 사달라구하세요~^^"

"네. 도련님~"

"헤헤.. 도련님이라니까 좀 어색하다.."

형이 차를 가지러 간 사이 형수가 내 손에 뭔가를 꼭 쥐어준다.

"? 이게 뭐예요?"

열쇠모양의 팬던트가 달린 목걸이다.

아.. 이건 형수가 항상 하고다니던 목걸이다.

"이걸 왜.."

"도련님이 가지고 있어요~ 내 보물상자 열쇠니까~^^"

"보물상자 열쇠? 그럼 보물상자는요?"

"음~ 그건 나~~~중에 때가되면 줄께요~^^"

"칫.. 지금주지.."

"도련님.."

형수는 내 뺨을 살며시 감싸쥐더니 내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형 미워하지마요..."



그 눈이 왠지 슬퍼보인다.

"안미워해요.. 형이 나한테 얼마나 고마운 사람인데.."



쪽... 형수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다. 차가우면서도 뜨겁다..



"다음에 볼때는 예전처럼 누나라고 불러줘요~ 나도 태우야~~ 부를꺼니까~^^"

내 입술에서 입을 땐 형수가 장난꾸러기같은 미소를 보이며 말한다.



형이 차를 몰고왔고 두사람은 내게 작별인사를 하고 설악산으로 떠났다. 어느새 하늘에서 눈이 내리고 있다.

내 첫사랑은 그렇게 첫눈과 함께 끝이났다..



오랜만에 글올립니다. 좀 바쁘다보니 자주 못올리네요. 그래도 열심히 봐주시는 몇몇분들이 계시기에 힘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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