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비와 함께 - 프롤로그

비로 질척이는 어둠 속.. 미친듯이 뛰는 여자.. 여유롭게.. 쫒는 남자.. 그렇게 아직 추운 2000년 4월의 밤.. 추격이 시작되었다.. "살려주세요.. 흑흑 누가 제발 살려주세요.. 헉헉.." 그렇게 애원하는 여자의 울부짖음이 어두은 새벽밤 어둠과 거칠게 내리는 빗소리에.. 묻혀져간다..



강철웅.. 28세의 중소기업 제약회사 영업사원.. 경기도의 2류 대학을 나와.. 군대를 제대하고 벌써 이년째.. 어려운 경제 속에서 살아남았다.. 일년간의 노력끝에 들어온 제약회사 영업직.. 그럭저럭 병원을 돌면서 회사에 미안하지 않을 정도로 영업을 해 중간정도 영업순위가 되었다.. 그동안 초기엔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책자만 들고 갔다. 면전에서 쫒겨나기 일수.. 아버지가 어떻게 아셨는지 마련해 준 돈으로 접대를 하기 시작하고 하나둘 계약을 따오자..



돼지같은 영업부장의 썩소를 날리며 그래 그렇게 하는거야 한다.. 초기 영업 연수시절 부장과 과장을 따라다니며 뒷돈에 접대에.. 기사노릇하며 배운 노하우.. 그게 노하우냐.. 씨발.. 그렇게 하나둘 계약을 따오니 부장새끼가.. "그래 잘하네.. 좀 더 노력해봐.. 그럼 회사에서 밀어줄꺼야..". 아무것도 모르는 영업사원에게 회사가 밀어주며 영업을 시킬까.. 그계통이 다 그렇듯.. 처음에는 내돈 남으돈 끌어써 하나둘 단계를 쌓으면 회사는 지원을 해준다.. 그렇게 6개월간 수천만원을 쓰며 10개가 넘는 곳을 개척했다..



"그동안 아주 잘했다.. 다 지돈 써봐야.. 회사돈 귀한줄 알지.. 강군아.. 다 그런거야.. 회사돈 펑펑쓰고 계약 못따와바.. 그게 얼마나 지랄같은 줄 아냐.. 그동안 수고했으니깐.. 관리 잘하고.. 필요한거 있음 나한테 이야기해 총알 준비해주마..",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좆나게 뛰어다니고 아버지 노후자금까지 써가며 비빈게 효과가 있었는지 일이 잘 풀려간다.. 하지만 좆같다.. 는 생각만 드는 철웅..



그날 동기중 유일하게 남은 조판식과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는 철웅.. "야.. 씨발 넌 얼마나 가져다 썻나..", "그렇지 뭐.. 씨발.. 한잔해..". 판식의 넉두리를 받으며 쓴소주만 목으로 넘어간다.. "썅 이게 얼마만에 소주냐.. 그동안 술도 맘놓고 못먹었다.. 썅..", "야 판식아 나라고 다르냐.. 아우 씨발.. 이게 영업사원인지.. 대린지 모르겠다..", "그래도 어떻게 하냐.. 먹고살아야지.. 썅 일어나자..", "그래 오늘도 콜올라나.. 차라리 대리기사나 할껄 잘못했다..". 서로 두잔씩.. 한병도 못비우고 우동을 먹고 일어선다..



"아씨바 망할놈의 의사시키들.. 이건 뭐 돈 잘버는 것들이 공술은 더 좋아해요..", "야야 씨발 공술만 마시면 괜찮지.. 대리비 그깟 얼마한다고 대리까지 시키냐..", "하긴.. 씨발 그래도 수고했다고 돈 만원 던지는데.. 외각에 나가서 집까지 돈 만원가지고 아우 더러워서 씨발..", "에효 그래도 어떻하냐.. 먹고 살자니.. 아우.. 썅.. 퉷..". 말은 포장마차에 있는 소주 다 마실듯 하면서도 아쉽지만 일어서는 두남자..



그들은 영업이란 이름하에.. 언제 전화 올줄 모르는 의사들의 전화를 기다리며 빠듯하게 산다.. 철웅은 생각해본다.. 입시때도.. 취업준비하면서도 하루 여섯시간은 꼬박 잤는데.. 요즘은 세시간 네시간 자는 것도 힘드니.. 이게 사회생활인가 한숨을 쉬며 그만두려고 해도 농사지어 대학보내고 취업했다고 자금으로 쓰라고 내밀던 통장위에 그 거친손가락.. 그냥 그만둘수 없다는 생각에 가슴엔 눈물이 흐른다..



그렇게 대리운전에 골프 캐디에.. 접대에 피가 마른다.. 술이야 잘마시니깐 적당히 마시면 된다고 치고 그런날은 응당 대리까지 불러 돈을 집어줘야 했다.. 골프에 골자도 모르는 내가 만화며 책이며 교재등이며 읽고 보며 캐디까지 했다.. 거기에 사모님이나 자녀들 운전까지.. 결혼식이나 상가집에 가서 이리저리 뛰며 음식을 나르기도 하고 했다..



자기 위에 대리급들은 그나마 나아보였다.. 정시출근 정시퇴근.. 여유있는 접대.. 이미 노가 났으니 그들도 요령이 남다를 것이다.. 대충 대충 일하면서 간호사들 꼬셔서 숙먹고 따먹었단 이야기나 하며 요령껏하라지만 철웅은 우직하니 시키면 시키는대로 다하고 지내는 자신이 더 미치도록 등신같았다..



그렇게 이년이 지나 요령이 조금 생기긴 했지만.. 생각해보라.. 보증금 500에 월 40.. 사글세를 살고 월급 200이 조금 안되는 돈으로 빠듯하게 적금붙고 사는 영업사원.. 여자라고 꼬실라고 해도 시간도 없고.. 덩치만 컸지 여자에게 말도 잘 못건다.. 선배들은 간호사랑 사무보는 여자들을 잘 꼬셔야 병원 문으로 들어간다고 하지만.. 내성적이고 남자들과 지내온 철웅은 쉽지가 않다..



늘 접대비가 많다며 닥달하는 부장과 과장.. 대리들은 잘도 삥땅 치든데.. 자기는 쓸만큼 쓰고 속이는 것도 없는데 왜 구박만 받을까.. 이년동안 그렇게 수십번 수백번도 그만두자 했건만 아직도 그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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