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모 - 1부

“띠디 띠디 띠디..”



작은 알람소리지만 습관의 힘을 빌려 조용히 일어났다. 한참 잠이 많을 나이였기 때문에 이렇게 일직 일어나는 것이 지금도 힘들었다.



“드르륵..”



“후...아....”



밤새 태양을 등지고 있던 대지에 차갑게 가라앉은 공기가 창문을 통해 안으로 밀려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런 차가운 기운이 싫었는데, 그 사이 날씨가 많이 풀렸는지 오랜만에 상쾌한 기분이 아직까지도 머리 근처에서 맴돌고 있는 잠을 휘저어 날려 보냈다.



“탁..탁..탁..”



“어머니, 안녕히 주무셨어요?”



“......응...”



주방에서 어머니가 딸그락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현관을 열고 빠져나갔다. 지금부터 30분가량 돌아다니다 들어오면 바로 화장실을 가서 대변을 본다. 아무리 바꿔보려고 해도 고쳐지지 않는 이 버릇은 아침마다 아버지, 누나들과의 싸움을 불러 일으켰고, 타인을 바꾸기 보다는 자신을 바꾸는 것이 더 빠르고 편하다는 진리를 남긴 체 종지부를 찍었었다.



배출의 기쁨을 만끽하고, 가볍게 샤워를 하고 나오면, 고2인 작은 누나가 어제도 공부하느라 늦게 잠들어 아침이 힘들다는 표시를 내면서 나와 교대하듯 화장실로 들어가고, 회사에 출근해야 하는 큰누나는 작은 누나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커피한잔을 마시고 있다. 그 시간이면 아마도 아버지는 안방에 붙은 작은 욕실에서 볼일을 보고 계실 것이다.



“깨작..깨작...”



언제나 그렇듯, 어머니의 표정이 무섭다. 아니 오늘은 다른 날보다 더 않좋다.



“너! 똑바로 못 앉니?”



우리 식구는 5명인데, 4인용 식탁에 앉아 먹으려니 불편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온전히 한자리를 차지하고 계셨고, 누나들이 조금씩밖에 양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 자세가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런 이유들이 어머니에게 통하지 않기 때문에 조용히 대답하고 억지로 자세를 잡았다.



“네...”



“남자가...쯧쯧..”



식탁이 너무 좁다고 불평을 하고 싶었지만, 언제나 나에게만 유독 엄격한 어머니이기 때문에 어색한 웃음으로 대답했는데, 또 눈 꼬리가 밑으로 내려간 모양이다. 아버지나 다른 식구들이 웃을 때면 눈이 가늘게 일자로 찢어지는데 비해, 내 웃음은 아래로 휘면서 반달 모양이 되는데, 그럴 때면 어머니는 사내 녀석이 눈웃음 살살 친다며 역정을 내셨다. 아마도 지금도 그런 모양인데, 아침이고 아버지도 계셔서 눈치만 주셨다.



“...........”



3남매 중 유일한 아들이고, 막내라고 하면 주위에서는 귀여움 많이 받고 자랐겠다며 부러워들 한다. 그러다 어머니의 모습을 한번이라도 보고 나면, 사내애라서 더욱 엄격하게 대하는 거라며, 훌륭한 어머니라고들 칭찬한다. 다른 집처럼 귀여움을 받지 못하는 것은 슬펐지만, 어머니를 칭찬하는 소리에 기분이 우쭐해지곤 했기 때문에 그건 그것대로 좋다.



“식탁을 좀 큰 걸로 바꾸지 그래?”



“더 큰집으로 이사 가면...생각해 볼게요..”



“흠...흠....모두 같이 먹는 시간은 아침뿐이 없으니...뭐..이렇게 비좁게 앉아서 먹는 것도 정답고 좋다.”



아버지가 옆으로 자리를 옮기며 큰누나를 당기고, 눈에 보이지 않는 끈이라도 있는 듯 작은 누나가 옆으로 들썩거렸다. 그 작은 동작으로 인해 나에게는 몇 센티의 공간이 생겼다. 다만, 어머니만은 조금의 미동도 없이 묵묵히 젓가락을 놀리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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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떠난 후, 싱크대를 가득 매운 설거지거리를 뒤로한 체 조용히 식탁에 앉았다. 어제 밤늦게 돌아온 남편의 셔츠에 묻어있는 분홍립스틱 자국이 장을 뒤틀어 놓는 것처럼 아픔을 주고 있었다.



“으....”



어느새 50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니고, 이제는 포기할 때도 됐다고 스스로 다잡으려 했지만, 치밀어 오르는 아픔에 가슴을 부여잡고 엎드렸다.



‘흑.....’



큰애 현주를 낳을 때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그 당시 제왕절개를 하면 둘째도 제왕절개로 낳아야 하며, 그 후에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의사가 설명했을 때, 고통스러워 그랬겠지만, 아이 둘이면 됐다고 생각하고 동의했었다. 연주를 낳고 3년 뒤, 남편이 간난아이를 안고 와 제사를 지내줄 아들이 필요 하노라 했을 때, 어쩔 수 없이 참고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것이 실수였는지, 그 후로 남편의 바람기가 제대로 발동한 모양이었다.



“흑..흑..흑...”



아픔 때문인지, 슬픔 때문인지 눈물이 흘러나온다. 남편에게 더 이상 믿음도 사랑도 없노라고, 딸들이 시집갈 때까지만 참고 있다가 이혼하겠노라고, 그때면 딸들도 엄마를 이해해 줄 거라고 스스로를 세뇌하며 고통을 억지로 눌렀다.



“후......”



어느 정도 고통이 수습되고 고개를 들었을 때, 온몸이 땀에 절었고, 얼굴은 눈물, 콧물, 침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식탁위의 티슈를 몇 개 뽑아 얼굴을 훔쳐내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몸을 묻었다. 만사가 귀찮았다. 어차피, 남편과 애들은 밤이 돼야 들어올 것이고, 바쁘게 살던 게으르게 살던 시간은 천천히 흘러가게 되어있다. 그리고 삶이라는 것은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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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엄격한 만큼 이상하게 점점 어머니에게 집착하게 되었다. 어머니가 자신을 안아주고, 기쁘게 웃어주고, 칭찬해 주기를 간절히 원했다. 어머니가 자신에게 살갑게 대해주시지는 않지만, 분명 사랑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왜냐하면, 친구들이 집에서 빈둥거릴 때 자신은 영어유치원부터 해서, 태권도, 피아노, 주산, 수학교실, 영어교실, 등등 수십 개의 학원을 다녔고, 지금도 태권도, 피아노, 영어 학원과 학교수업을 보조해 주는 보습학원을 다니고 있다. 잘은 모르지만 학원비만 해도 가볍게 100만원은 넘는다고 들었다.



몸도 마음도 힘들지만 열심히 다녔다. 열심히 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에게 기쁨을 주고, 따뜻한 미소를 바라는 한, 그 길 뿐이었다.



“터벅..터벅...터벅...”



그 길 뿐이었다. 그 길 뿐이지만, 밤 12시가 넘어 어둡고, 인적 없는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올 때면 몸이 바닥에 쭉 깔려 점점 어둠 속으로 묻혀가는 기분이 든다. 아직 어려서 이런 기분을 뭐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단지에 들어서서 올려다 본 우리 집은 껌껌했다. 지금은 12시 넘었다고 불 꺼지는 집이 드물었기 때문에 어두운 칸을 찾는 것이 오히려 쉬웠다. 물론 고2인 작은 누나는 아직 잠들지 않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책상 앞에 있는 작은 스탠드 하나로는 어둠에 잠겨있는 집을 밝히기는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털썩..”



여기까지 걸어온 것이 한계였던 듯이 몸이 무너져 내리듯, 화단 가장자리에 앉았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졌다.



‘내가 안 들어가도 내일 아침까지는 아무도 모르겠지...’



‘아...싫은 생각 해버렸다..’



그래도 오늘은 금요일이었고, 내일은 학교 안가는 토요일이다. 사실 오늘 마지막 기운을 모두 쥐어짜서 쓴 기분이었기 때문에, 내일 역시 오늘과 같은 하루였다면 견디기 힘들지도 몰랐다.



‘내일은 조금 늦잠 자야지~’



아침에 화장실 문제로 긴장하지 않아도 좋은, 수업도 없고, 학원도 없는 내일을 생각하며 힘겹게 일어나 분홍색으로 유치하게 칠해져 있는, 그러나 어둠으로 인해 회색으로 보이는 현관 안으로 들어갔다.



“팟”



센서에 의해 잠깐 밝혀지는 붉은 등이 반갑다. 어쩌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를 반겨주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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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접대가 있다며 골프가방을 챙겨들고 새벽같이 나갔다. 정말로 골프를 치러가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한번 일어난 의심은 정말로 기다란 꼬리를 가졌는지, 오전 내내 머리와 가슴을 헤집고 다닌다.



남편이 나가고 아침을 할 기분도 없어져버려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엄마. 어디 아파?”



“응...엄마 아프니까 네가 아침 차려서 동생 좀 챙겨주고, 너도 먹어..”



“그런 걱정 하지 말고..어디 아픈데? 약 좀 사올까?”



“아냐...좀 누워 있으면 돼...”



“............알았어...쉬어..엄마..”



“응..”



약간의 두통을 느끼며, 조금씩 흘리는 식은땀이 불쾌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일어나서 샤워라도 하고 움직이면 좋아질지도 모르지만, 굳이 그렇게 기분을 추수를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뜬것도 아니고 감은 것도 아닌 상태로 멍하니 있는데, 따듯한 손이 이마를 짚었다. 묘하게 좋은 느낌, 살며시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재석이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이마를 짚으며 쳐다보고 있었다.



“어머..니......”



“탁~”



“쉬..세..요....”



좋은 느낌이 재석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참을 수 없는 불쾌감으로 돌변하고,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순간 손이 올라가 이마에 오른 손을 쳐냈다. 깜짝 놀라는, 그러면서 어색하고 슬픈 모습으로 어정쩡하게 돌아나가는 그와 내 손을 바라보았다.



“휴...”



좋은 애다. 그냥 옆집애로 알게 되었다면, 정말 귀여워하고, 어쩌면 저런 애가 내 자식이었다면 정말 좋겠네, 하며 부러움 반 시기 반으로 수다를 떨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랑했던 남편을 닮은 외모도 이제는 증오하게 된 남편 때문에 싫었지만, 특히 그 반달웃음, 남편에게도 나에게도 없는 그 웃음은 분명 남편이 바람을 피운 여자에게서 받았을 것이다. 그 웃음만은 참을 수가 없었다.



“휴...”



그렇지만 역시 잘못했다. 이렇게 미워할 바에는 차라리 맡지를 말았어야 했다. 지난 15년 동안 진심으로, 제대로 안아준 적이 한 번도 없다. 아니 같이 있는 것조차 싫어 유아원에 하루 종일 맡겼다가 남편이 퇴근할 때 데려왔었고, 5살 때는 안받아주는 것을 억지로 유치원에 보내 유치원만 3년을 다니게 했다.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도 12시면 다른 애들처럼 놀다 오지도 않고 오는 애가 싫어서 동네에 있는 모든 학원을 보냈다. 당연히 무슨 학원인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현주야..”



“응.”



“재석이 데리고 놀이동산이라도 가서 놀다 와.....”



“...................엄마..................”



“저녁까지 먹이고 와...연주는 도서관 보내고...”



“........알았어..그렇게 할게...”



“그래..고맙다..”



그래도 이게 최선이다. 지금에 와서 태도를 바꾸기 너무 어려웠고, 무엇보다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 더욱이 지금은 그런 것들이 문제가 아니다. 남편만 해도 가슴속에서 천불이 나는데, 재석이를 받아들일 여유 따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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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주는 오늘 데이트가 있었다.



“나 오늘 만나기 힘들겠는데..”



“왜?”



“으응...동생이랑 놀아줘야 할 거 같아...”



“동생? 중학생이라며? 그 나이 때는 친구들이랑 노는 걸 더 좋아해..”



“............그래도...”



“알았어. 그럼 데리고 와..나도 처남에게 미리 점수 좀 따 놓지 뭐..”



“.....그럴까? 알았어..”



그렇게 해서, 동생과 같이 나왔다. 한 발짝 뒤에서 따라오는 재석이를 보며 한숨이 나왔다. 내 한숨을 들었는지, 한걸음 더 뒤로 쳐진다.



“이리와...”



“...응....”



거리를 두려는 동생의 손을 잡아끌자 힘없이 딸려온다. 어깨가 엇비슷한 것이 남자애들은 성장이 빠르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어느새...이렇게 컸네...’



그러고 보니 이렇게 가까이서 동생과 같이 걸어가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아니, 처음인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같이 걸을 만한 일이 없기도 했고, 자신이 어렸을 때는 재석이와 친하게 지내면 안 될 거 같은 분위기에 휩쓸려 애써 무시했었다.



“손...따듯하네..”



“누나도..”



사춘기 즘, 그동안 막연하게 생각했던 재석이가 엄마의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고, 어린 소녀의 마음에 동생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차갑게 대했다. 어떨 때는 일부러 괴롭히기도 하면서 입시와 학업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엄마의 묵인 아래, 아버지 몰래 풀기도 했다. 그 오랜 시간을 묵묵히 견뎌온 동생의 손은 뜻밖에 따듯했다.



“그리고, 손...이쁘다...”



“.........”



유난히 가늘고 길었다. 손가락 마디가 부드러워 고무처럼 잘 휠거 같은 탄력이 느껴졌다.



‘저런 손가락에 닿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부지불식간에 드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손가락으로 동생의 손가락과 손등을 느껴보려 꼼지락 거려 보다가 혼자 얼굴을 붉히고 재석의 눈치를 살폈다. 동생은 조금은 기쁜 듯, 살짝 미소를 지으며 앞을 보고 걸어갔다. 눈꼬리가 가볍게 내려가는, 동생 특유의 웃음이 보이다가 사라졌다.



“..........왜?”



“응? 아냐..늦었다. 어서 가자..”



나타날 때보다 더 빨리 사라지는 웃음에 순간 아쉬운 감정이었다.



‘확실히 남자의 눈웃음 치고는 좀 위험한가?’





대학 1학년 때 준영을 만났다. 군대를 제대하고 막 2학년 2학기에 복학하던 준영은 개강파티때부터 적극적으로 관심을 나타냈고, 인간관계가 좋았던 탓에 주위에서 준영을 밀어주는 분위기였다. 현주도 그가 싫은 것은 아니었기에 자연스럽게 캠퍼스커풀이 되었다. 그 후 어느덧 5년 가까이 사귀고 있었다.



“아유~ 오빠. 옆구리 살 잡히는 것 봐..우리 재석이는 이렇게 딱딱한데..”



“야야. 이제 피어나는 10대랑 좀 있으면 꺾이는 20대 후반이랑 비교하면 되냐? 그렇지? 처남?”



“.......”



양 옆에 애인과 동생을 끼고 다니니 자기도 모르게 여러 가지로 비교하게 되었다. 처음 봤을 때는 그런 대로 날씬했던 오빠가 군대 독이 빠져서 그런지 구석구석 살들을 짱박아 두고 있는 것이 손끝에 여러 군데 걸렸다. 그에 비해 동생은 비록 옷에 가려져 있어 확실하게는 모르지만 매끈한 것이 걸리는 데가 없다.



원래 사교적인 성격이기도 했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더 유들유들해진 오빠에 비해 낯가림을 하는지 말보다는 가끔씩 웃어주는 정도로 분위기 어색하지 않게 대하는 동생이었다.



“이번에는 저거 타자~”



“너는 동생이랑 놀아 준다고 왔으면서, 어째 네가 더 신난 거 같다.”



“흥~ 오랜만에 왔으니까 그렇지..”



연애 초기에는 놀이공원이나 유원지, 혹은 교외로 자주 다녔었다. 일, 이년이 지나고 오빠에게 순결을 준 이후, 밖으로 다니기보다는 주로 시내에서 놀다가 여관에 들렀다가 헤어지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로 취직이 돼서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만나는 횟수가 한 달에 2~3번으로 줄었고, 여관에 가는 날은 생리나 배란기 때문에 1달에 1번 정도였다. 오빠는 콘돔을 사용하는 것을,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콘돔을 씌우면 아예 죽어버려서 일어날 생각을 안 하기 때문에 그 이상은 무리였다. 그리고 나 역시 딱히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별로 불만은 없다.



“이번에는 난 쉴 테니까. 사이좋은 남매끼리 타..”



“참..내...알았어. 여기서 기다려..제석아 가자..”



“응..”



다만 이런 것들은 좀 불만이다. 끝까지 같이 타고 재밌게 놀면 좋은데, 중간에 퍼지기 일쑤였고, 예전에 비해 아기자기한 면이나 다정다감함 같은 것이 없어졌다. 친구들과 남자들 이야기를 할 때 ‘잡은 고기에게 밥 안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어서 안심했다.



“으....."



의자에 앉아 거대한 기둥을 타고 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이며 지나가는 사람들과 차들이 겨우 식별만 가능할 정도로 높이 올라가 멈쳐섰다. 허리 아래가 허전하면서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높은 위치가 주는 공포감이 고개조차 돌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누나...괜찮아?”



동생이 손을 잡아 준다. 억지로 눈동자만 옆으로 돌리자, 동생의 얼굴이 바로 근처에 있었다. 손을 꽉 잡았을 때, 동생 역시 꽉 잡아준다. 아까보다 훨씬 의지가 되었고, 긴장도 많이 줄어들었다. 안 움직이던 고개가 돌아가고, 동생을 마주 보게 되었다.



“야~뭐. 내가 무서워서 그러는 줄 알아!”



“흐흥...”



“우~씨~”



너무 잘 어울리는 눈웃음을 지으며, 살짝 콧소리를 내는 동생이다. 그런 동생을 의식하며, 허리를 펴고, 고개를 밑으로 내려 봤다.



“아....”



“왁~”



“악! 엄마야!”



괜히 오기가 발동해 무섭지 않은 것처럼 보이고 싶어 밑을 봤는데, 까마득한 높이에 다시 오금이 저려왔다. 부지불식간 신음이 새어나오는데, 동생이 나를 치며 깜짝 놀라게 하려는 소리를 지르자 간이 오그라들면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동생의 손을 꽉 움켜잡아 끌어당기고, 다른 손으로 끌려온 팔을 안았다.



“텅~”



묘한 기계음과 함께 중력가속도의 법칙에 타락 추락하기 시작한다.



“악~~~~~~~~~~~~~~~~~~~~~~~~~”



지금까지 여러 가지 놀이기구를 탔었지만, 내 귀가 아플 정도로 높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기계는 무사히 안착을 했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날 수가 없다. 더욱이, 떨어지면서 방광이 놀랐는지, 살짝 지린 것 같았다. 혹시라도 일어났을 때 티가 날까봐 걱정이었다.



‘치마입고 올걸...’



치마를 입었다면, 이런 기구는 타지 않았겠지만, 우선은 꽉 조이는 바지가 걱정일 뿐이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이러고 있을 수 없는 것이 벌써 다음 차례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동생의 손이 허리를 감싸며 일으켜주었고, 그 어깨를 의지하며 일어나 다른 사람들 모르게 사타구니를 점검했다. 다행히 축축하기는 했지만 겉으로 티가 나지는 않았다.



“자 그만타고 뭐 좀 먹고 가자..”



혼자 지루했을 준영의 의견을 따라 한쪽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고, 준영과 동생이 같이가 맥주 2잔과 여러 가지 음식을 사왔다. 커다란 호수가 어둠에 잠기고, 수면이 거울이 되어 찬란한 조명을 2중으로 보이게 만들어 준다.



“펑~”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불꽃놀이가 시작했다.



“예쁘다...”



“그래? 내가 오늘 특별히 너를 위해 준비했어.. 하하하..”



어쩌다 겹쳐진 우연에 내가 너무 좋아하니, 그동안 무심했던 것은 생각도 않고 모두가 자신의 공인양 농담을 했지만, 그런 그가 싫지 않았다.



맥주 한잔씩에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그동안 무심했던 오빠도 오늘따라 나에게 더 신경써주는 것 같고, 나 또한 동생에게 누나노릇 한번 하면서 너무 좋아하는 동생에게 뭔가 해준 거 같은 뿌듯함을 느꼈다. 더욱이 그동안 몰랐던 것이 이상할 정도로 멋지게 성장하는 동생이 대견했다.



“엇!”



그런 기분을 만끽하고 있는데, 호수 건너에서 불꽃 하나가 무서운 속도로 날아왔다. 갑작스런 사태에 사람들은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눈만 그 불꽃을 따라간다.



“어..어...어...”



불과 수 미터 떨어진, 우리 위에 가게의 인테리어로 돌아가고 있던 가짜 풍차의 날개에 불꽃이 명중하며, 수십 수백 개의 불꽃으로 흩어지며 머리위로 떨어져 내렸다. 많이 회복되기는 했지만, 아까 기구의 충격으로 긴장하고 있던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악~~~”



사람들의 비명소리, 여기 저기 넘어지는 움직임 속에 큰 그림자 하나가 내 위로 덮쳐 안았다. 순간 준영씨인줄 알았다.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떨어지는 불꽃이 무언가에 닿았는지 역겨운 탄내가 느껴지면서 겨우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누나..괜찮아?”



두 번째다. 그 소리..



“현주야...”



테이블 밑에서 어색한 동작으로 일어난 사람은 준영씨였고, 아직도 멍하니 있는 나를 일으키며 살피는 것은 동생 제석이였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급히 뛰어와 사태를 수습하고 나섰는데, 아직도 여기저기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난 괜찮아....괜찮아...넌?”



“응..나도 괜찮은 거 같아..형은요?”



“으응...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준영씨 걱정을 하지 못했다. 그러니, 준영씨가 나를 구해주지 못했던 것은 준영씨 잘못은 아니다. 그냥, 그게 인간인 것일 뿐이다.



‘그러면...제석이는....’



아직은 찬바람이 남아 있는 날씨인 탓에 조금은 두꺼운 남방을 입고 있었는데, 제석이 등짝은 벌집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우리 주변에 안 다친 사람은 나와 준영씨 뿐이었고, 제석이가 가장 많이 맞았다. 그것도 그럴만한 것이 대부분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아 본능적으로 파편에 맞는 부위를 최소화 했는데, 재석이는 몸을 최대한 펴서 내 몸을 덮었기 때문이었다.



의무실 안에서 너덜너덜해진 재석이의 옷을 들고 있자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평소 따듯하게 한번을 대해주지 않는 누나였는데, 아니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애꿎진 동생에게 화풀이하는 누난데, 10년이 넘도록 한 번도 동생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는 누난데, 그런 누나인데도 불구하고..



지난시절 아버지가 동생을 안고 왔을 때, 그러니까 10살 때부터 오늘 아침 엄마에게 치여서 놀이공원에 오기까지, 그리고 평생 처음으로 동생과 다정하게 놀았던 순간까지, 마지막 어두운 밤하늘에 눈꽃처럼 아름다운 불꽃이 떨어져 내리던 순간까지 차례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흑흑흑흑....”



“현주야...미안해...”



준영은 준영대로 당황하고 있었다. 마음은 분명 현주를 구하려고 했다. 마지막 테이블 밑에서 나올 때까지, 준영은 현주를 자신이 구했다고 믿고 있었다. 자신이 현주를 감싸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제석이가 현주를 일으켜 세우는 것까지 모두 보고서도,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은 자신인데, 이것은 누군가가 알지 못하는 힘에 의해 자신과 제석의 위치를 억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한마디로 사기 당한 기분이었다.



“현주야....”



“흑흑흑...”



그래서 준영은 현주가 우는 이유가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자기가 현주를 버렸기 때문에 현주가 울고 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 사실만이 머리를 전부 차지해 버렸다.



남자로써, 패배했다.



“누나..”



“제석아...어때? 많이 다쳤어? 많이 아파?”



“아니..별로 안 다쳤데..괜찮아..안 아파..”



“어디..봐봐..”



남매의 모습을 보면서 준영은 옆에 있기가 불편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사라질 수는 없었다. 현주에게 뭔가 도움을 주면서 그녀가 진정될 때까지 거리를 두고 싶었다. 마침, 놀이공원 관계자가 피해자들을 상대로 보상 문제로 시끄러웠다. 준영은 그쪽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흑...이게..뭐야...뭐가 별거 아냐..아프지? 응? 아프지?”



“풋..”



“흑...왜?”



“으응...누나 말 들으니까..아파야 하는지 아프지 말아야 하는지 헷갈려서..”



쪼그만한게 누나 속도 모르고 실없는 소리나 하고, 얄미워서 한 대 때려주고 싶었지만, 당장 목부터 등 여기저기에 물집이 올라와 있어 들어 올려진 손이 갈 곳을 찾지 못했다.



“따끔할 거예요.”



“네..”



의사 한명과 간호사 한명, 그렇게 보이는 두 명이 의무실 전체를 누비며 사람들을 돌보고 있었다. 내 동생이 가장 심해 보이는데, 시끄러운 사람들부터 처치를 해 줬는지 이제야 와서 물집 안으로 실이 역인 바늘을 넣어 고름을 흘려내고, 그 위에 연고를 발라준다.



“바지도 벗으세요..”



“........”



허벅지에 물집까지 터져 너덜한 상처가 크게 자리 잡고 있다. 대충 봐도 30곳은 넘게 화상을 입었다. 하얀 팬티가 좀 낡아 보여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새삼 몹쓸 누나구나 하는 자책에 더욱 가슴 아팠다.



“동생인가요?”



“........네....”



“참 의젓하네요..저..다른 환자들이 많아서 그러는데...이 연고 좀 발라 주실래요? 심한 곳은 발랐는데, 이런 곳도 아직은 좀 쓰라릴 거예요..”



“그럴게요..제가 할게요..”



엎드려 있는 동생 옆에 붙어 앉아 면봉에 연고를 찍어 조금이라도 붉은 색을 띠는 부위에 넓게 발랐다. 의사가 발랐던 곳도 다시 넓고 꼼꼼하게 발라나갔다. 면봉으로 연고를 바르자니, 고르게 되지 않고 뭉쳐있는 것들이 눈에 거슬려 손가락으로 바르기 시작했다. 손으로 바르자 동생이 한번 돌아보고는 아무 말 없이 침대에 머리를 묻었고, 동생의 허락을 받은 기분이 되어 편한 마음으로 문질렀다. 아직은 덜 발달한 근육인데도 남자의 힘 같은 역동성이 있다.



‘왠지 두근두근 한걸?’



아까의 슬픔도 잊고 기분 좋은 감각을 만끽하는데, 의사가 와서 손으로 하면 감염 위험이 있다고 주의를 주곤 상처를 붕대로 넓게 감쌌다. 워낙 많이 다쳐서인지 나중에는 포기하고 미라처럼 말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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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가 아이처럼 우는 모습을 보며, 그것이 나를 걱정해서라는 것에 가슴이 기쁨으로 터질 거처럼 부풀어 올랐다. 나보다 10살이나 많았기 때문에 평소 대하기 어려웠는데, 아까 기구 탈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아이 같은 면이 있었다. 순간 10년의 벽이 일부나마 없어진, 보다 가까워졌다고 느꼈다.



상처부위를 누나에게 맡기고 누워있으니, 누나의 손길이 좋았다. 사랑받고 있다. 그것은 낮선 경험이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찾아 헤매었는지 알았다. 계속 내 속에서 채워지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알 거 같다. 잠깐이지만 눈물이 나왔다.



‘이제 알았으니까 됐어...’



이런 상처 아무것도 아니다. 뼈가 부서지가 몸이 가루가 난다고 해도 이것만 있으면 좋다. 피부가 벗겨지는 쓰라림 속에서도 심장이 뜨겁게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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