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립스틱* - 43부

혼자가 된 강민우는 TV 리모컨을 켰다. TV채널을 이리저리 바꾸다가 뉴스 화면이 바뀌고 추적60분 프로그램의 사이비 신흥종교에 대한 고발이 재방영되고 있었다. 사이비 종교 단체에 억류되었다가 탈출한 여인의 모습이 모자이크 처리되어 나왔다. 방송국 PD를 마주하고 앉은 여인이 흐느끼는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학자금을 마련하려고 물건을 파는 회사에 들어갔어요.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빚더미에 앉게 되고 너무 힘들었습니다. 월급을 많이 받으려면 조장으로 직급이 올라가야하는데 조장이 되려면 판매원을 열 명 확보해야 돼요. 그러나 조장이 되어도 밑의 판매원이 모자라는 액수를 조장이 책임져야 하기에 갈수록 힘들어졌습니다. 그 회사는 사이비 종교 단체의 다단계 회사였어요. 회사에 들어가면 자동적으로 신도가 될 수밖에 없었어요. 후회하고 빠져 나오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어요.”



“왜, 빠져나오지 못했나요?”

“감시가 워낙 심해서 빠져 나올 수가 없었어요. 교주 밑에는 조직이 있는데 신도들을 감시하는 천위대가 있는데 전부 폭력배들이고 물건을 팔러 나가도 감시가 붙고, 도망하다가 잡히면 독방에 갇혀서 구타를 당하니까 신도들은 모두 두려워합니다. 구타를 당하다가 죽어서 생매장 당한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어요.”



“교주 밑에 어떤 조직들이 있습니까?”

“평신도와 천위대, 천녀대가 있는데 규율이 엄격합니다.”



“천녀대는 뭘 하는 조직인가요?”

“여신도로서 경력이 인정되거나 교주에게 신임 받으면 천녀가 되고 천녀가 되기 위해서는 아기천녀라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사실은 교주의 몸종이나 마찬가지지요. 교주에게 자진해서 몸을 받치거나 성추행을 당하는 천녀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면 피해자께서는.......?”



여자 PD의 질문에 모자이크 처리된 여인이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저도.......천녀였고, 강제로 교주에게 몸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천위대가 하는 일이 무엇이지요?”



여자 PD는 다른 질문을 이어갔고 여인은 사이비종교에 대한 충격적인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전율하는 배경음악과 함께 대화를 마친 PD는 사이비 종교에 대한 심각성을 알리는 멘트. TV 화면을 주시하던 강민우는 리모컨의 스위치를 눌러 껐다. 그렇지 않아도 이진아에 관한 생각으로 혼란스러웠는데 충격적인 사이비종교 집단의 내막을 알고 나니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팠다.



모포를 당겨 올리던 그는 발밑에 시선을 멈추었다. 모포사이에 끼인 사진 한 장이 시야에 들어 왔기 때문이었다. 간신히 허리를 굽혀 사진을 집어 들었다. 순간 심호흡을 하고 다시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유서연의 손가방에서 흘린 사진이었다. 왠지 거북한 자세로 조금 떨어져 있는 유서연과 나란히 찍은 중년남자와 여자의 사진. 유서연을 판박이로 닮은 동그란 눈과 귀염성이 있는 자그마한 얼굴의 여인은 유서연의 어머니가 틀림없었다.



그런데 유서연의 어머니의 어깨에 손을 얹어놓은 남자의 얼굴을 강민우는 잊을 수가 없었다. 두터운 입술에 주먹코의 남자. 안기부 비밀 파일에서 빼내온 흑사회의 조직원인 허문한이 아닌가. 그렇다면 유서연의 어머니가 재혼한 남자가 허문한이라는 말이다. 허문한과 유서연을 안기부에 추천한 권익수는 어떤 관계일까. 권익수는 현재의 안기부장이었다. 사진을 들고 있는 강민우의 손이 떨렸다.



지리산 뱀사골로 올라가는 계곡은 예로부터 무속인과 도인이 많다는 곳이다. 도인은 자고로 숨어서 도를 닦기에 모습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무속인과 사이비 종교의 암자나 건물들은 이따금 발견할 수가 있다. 골짜기 우측의 잘 닦여진 길을 오르다보면 의외로 규모가 큰 건물의 지붕을 발견할 수 있다. 다른 종교단체와는 다르게 체격이 우람한 사내들이 입구를 지키고 있다. 사내들은 근접하려는 사람들이나 입장하려는 사람들을 일일이 검색한다.



입구를 지나면 천궁교라는 현판이 붙은 홍살문이 보인다. 홍살문 안으로 들어서면 이천 여 평 이상이나 되는 대지위에 웅장한 삼층 현대식건물, 좌우로는 이층의 건물이 좌우로 뻗어있다. 어떻게 산속 깊숙한 곳에 건물을 세울 수 있는지 의아심이 든다. 우측 건물의 입구에는 유통업을 하는 창고처럼 트럭에 물건을 하차와 상차를 하고 있었다. 알아볼 수 없는 마크를 가슴에 붙인 가운을 걸치고 일하는 남녀의 모습이 보인다.



이곳이 요즘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사이비종단 중에 가장 규모가 큰 천궁교의 본부였다. 그들은 세 건물을 각각 천존궁, 천녀궁, 천위궁이라 일컫는다. 중앙의 천존궁의 일층은 교주의 설교를 듣기도 하고 신도들이 합동 기도를 하는 강당이고, 이층은 천녀대의 숙소, 그리고 삼층은 그들의 교주가 머무는 장소이다. 좌측의 천녀궁은 그들의 교리를 전파하는 장소로 여신도들의 숙소이고, 우측의 천위궁은 다단계판매 등 그들이 종단자금을 확보하는 사업을 하는 사무실과 남자 신도들의 숙소가 있다.



천존궁의 삼층에는 호화로운 거실과 여러 개의 방이 있다. 고급 카펫과 고가의 가구들이 놓인 넓은 거실의 소파에는 천궁교의 교주가 육중한 몸으로 버티고 앉아 있다. 하얀 도포를 걸치고 제왕처럼 앉아있는 교주 옆으로는 미모의 중년여인과 두 사내가 있었다. 미모의 중년여인은 그들이 천후라고 호칭하는 교주의 부인이고, 두 사내는 교주를 떠받들며 종단을 운영하는 두 집사였다. 그들 종단에서는 청색 점퍼를 걸친 남자를 청집사, 홍색 점퍼를 걸친 남자를 홍 집사라고 호칭한다.



거실에 있는 그들은 정기적으로 모여서 차를 마시며 종단의 운영에 관한 논의를 한다.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하던 그들의 시선은 추적 24시를 방영하는 TV를 향해 있었다. TV 화면에는 모자이크 처리된 여인이 여자 PD의 질문을 받고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고 있었다.



“저도.......천녀였고, 강제로 교주에게 몸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천위대가 하는 일이 무엇이지요?”



“종단의 신임을 받은 남자 신도들이고, 기본적으로는 다단계 회사를 운영하며 신도들을 감시하고 경비 업무 등을 합니다. 그들은 대부분 폭력배 출신들입니다.”

“그럼, 신도들의 헌납금과 다단계 회사에서 벌어드리는 돈으로 종단을 운영하는군요.”



“그 외에도 다른 사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신도들뿐만 아니라, 천녀들도 그 사업 내용은 잘 모릅니다. 종단에 들어오는 돈이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TV 화면을 응시하고 있던 교주가 찻잔을 집어 던졌다. 찻잔이 날아가서 진열장의 유리를 부수고 떨어졌다. 분통을 참지 못해 얼굴이 벌겋게 변한 교주는 벌떡 일어나서 거실을 맴돌았다. 지금 정치의 수뇌부들은 그에게 정치자금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천궁교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종단으로 TV에 방영되도록 방치한 정치인들이 괘씸했다. 도포 소맷자락을 내저은 교주가 씩씩거렸다.



“개 같은 놈들! 돈 받아 처먹을 때는 언제고 저런 방송을 내보내게 해!”



화장을 짙게 한 천후와 두 집사는 주눅이 들어 교주에게 시선도 마주하지 못한다. 종단에서 도망친 천녀를 붙잡지도 못했고, 그 천녀가 버젓이 TV 화면에 나오기 때문이다. 더욱이나 교주가 아끼던 천녀였다. 분통을 터트리던 교주가 천후와 홍집사를 노려보았다.



“병신 같은 것들! 뭣들하고 있었기에 윤정이를 놓친 거야?”

“아마도 이장호가 도와준 것 같습니다.”

“이장호!? 그 윤정이와 같은 고향이라는 놈?”



소파에 앉았던 홍집사가 일어나서 교주의 눈치를 살폈다.



“네. 그래서 이장호를 감금했습니다.”

“그럼, 윤정이 말을 듣고 경찰에서 이장호를 찾으려 할지도 모르니 잘 처리해.”



“네. 형님! 죄송합니다.”

“그나저나 돈 받아 처먹은 놈들이 우리가 필요 없다는 말인가!? 하기야 이제 우리도 놈들이 필요 없어. 일본에서도 종단을 세워달라고 하니. 국외로 나갈 생각도 해야지.”



“그럼 조총련의 요구를 들어 줄까요? 북한산 고로쇠액을 팔아 달라고 하던데요.”

“북한산.......!?”



“네! 뿐만 아니라. 형님한테는 말 안했지만 건강 약품과 정력제도 팔아달라고 합니다.”

“그럼, 우선 대구 분점에 보관하고 판매망을 확보해 봐. 나도 내려가 볼 테니.”

“네.”



거실의 전화벨이 울렸다. 굽실거리던 홍집사가 전화기를 집어들었다. 전화를 걸어온 상대편을 확인한 홍 집사의 얼굴이 긴장한다. 그리고 교주를 향해 돌아선다.



“안기부라는데요.”

“이제 와서 뭣 하러 전화해.”



교주가 투덜거리면서 전화를 받았다. 그는 큰 기침을 하고 소파에 와서 앉으며 목소릴 낮게 깔았다.



“네. 누구십니까?”

“남산의 차 국장이오.”



“그런데요.”

“요즘 너무 언론에 노출되는 것 같은데 자중했으면 해서.”



“이제 우리가 필요 없다는 말입니까?”

“그게 아니고, 고위층에서도 걱정하니 잠시 동안 종단 문을 닫아줘야겠소.”



전화를 하던 교주가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발끈 화를 냈다.



“그렇게는 못하겠소. 우리도 당신들이 필요치 않으니 마음대로 하시오. 여차하면 당신들한테 건네준 정치자금도 까발릴 테니!”



집어 던지듯이 전화기를 내려놓은 교주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천후와 두 집사는 지금까지 교주가 이토록 화를 내는 것을 보지 못했다. 눈치를 살피던 청집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기도 시간이 되어서 강당에 신도들이 모였는데, 설교하시겠습니까?”

“해야지.”

“그런데.......”

“........?”



교주가 거드름을 피며 바라본다. 청집사가 홍집사와 천후의 눈치를 살핀다. 중대한 일이기에 얘기를 해도 괜찮은지 동의를 구하는 눈치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홍집사를 보고 청집사는 용기를 얻었다.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요청했는데요.”

“인터뷰는 안 해. 하지만 설교하는 동안 강당에 들어오는 것만 허용하도록 해. 이제는 두려울 것도 없고 우리 종단을 홍보하는 효과도 있으니.”

“네. 알았습니다.”



두 집사가 거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교주를 향해 절을 하고 거실을 나갔다.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은 교주가 천후의 어깨를 당겨 끌어안았다. 몸매가 들어나도록 얇은 적색 두루마기를 걸친 천후가 교주에게 눈웃음을 쳤다. 교주는 천후를 껴안은 손으로 어깨를 토닥인다.



천존궁 입구에서는 강당으로 들어가려는 남녀 신도들이 몰려 있었다. 남자 신도는 천위궁에서 심사를 받고 여자 신도들은 천위궁에서 심사를 받아야 천존궁으로 들어 갈 수 있다. 이따금 홍, 청, 백의 두루마기를 걸친 천녀들이나 홍, 청, 백의 점퍼를 걸친 남자들이 줄지어 서 있는 신도들을 젖히고 천존궁으로 들어간다.



천녀궁에서 심사를 받는 여자신도들 중에는 나이어린 여자, 대학생 같은 젊은 여자, 나이 듬직한 여자들도 있다. 그녀들이 줄지어 서 있는 책상 앞의 의자에는 홍색 두루마기를 걸친 중년여인이 앉아 있었다. 오늘은 특별히 천녀가 되는 여자 신도들에 대한 심사가 있는 날이다. 줄지어 서 있는 여신도들은 일일이 홍천녀에게 서류를 제출해 심사를 받는다. 평신도의 자격을 인정받으면 팔뚝에 도장을 받고 천존궁의 기도에 참석하거나 되돌아간다.



어눌한 표정인 삼십대의 여인이 한 숨을 내쉬면서 책상위에 서류를 제출했다. 서류는 다단계판매 실적과 개인 신도카드였다. 서류를 들여다 본 중년의 홍천녀가 여인을 날카롭게 노려본다.



“넌, 천신님께 정성이 부족해. 이런 실적으로는 천신님의 은총을 받지 못해. 돌아가서 공덕을 더 쌓고 와.”



팔을 내밀었던 여인은 시무룩해서 책상위의 서류를 다시 집어 들고 되돌아나갔다. 다음 서류를 내민 여자는 무사히 팔뚝에 도장을 받고 천녀궁을 나섰다. 몇 명의 여자가 도장을 받고 천존궁으로 향하고 대학생처럼 발랄한 여자가 봉투와 서류를 내밀었다. 홍천녀인 중년여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이건.”

“저는 천신님께 제가 가진 전 재산을 헌납하고 천녀가 되겠어요.”



힐끔 바라 본 홍천녀가 봉투 속에 든 것을 끄집어냈다. 십만 원과 백만 원짜리 수표 다발이었다. 수포를 세어본 홍천녀는 의외로 거액이기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리고 신도 명부에 있는 성명 란에 붉은색의 칼라 펜으로 동그라미를 치며 밝은 웃음을 흘렸다.



“그래. 이름이 강애리. 넌 천신님을 가까이 모시며 계시를 받을 수 있는 백천녀가 되었다.”



모두들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그녀는 이진아였다. 대부분의 신도들은 길거리나 지인들을 통해 들어오지만 그녀는 자진해서 찾아 온 것이다. 천궁교의 신도들이 천신이라고 받드는 교주가 바로 이진아가 찾던 허문한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교리를 받는 동안 교주를 보좌하는 두 집사가 김철오와 황충식이라는 사실도 알아냈다. 허문한에게 접근하려면 천녀가 되어야 한다.



다단계판매나 재산을 헌납하여 신임을 얻지 않으면 천녀가 될 수 없었다. 이진아는 단 시일 내에 복수를 하기 위해 큰 금액을 헌납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말하는 천녀는 세 계급으로 나뉘어 있다. 홍천녀와 청천녀, 그리고 백천녀가 있다. 홍천녀는 여자신도중에 천궁교에 입문해서 오래된 천녀들로 사무를 관장하고, 청천녀는 일반 천녀들이며, 백천녀는 주로 천녀들 중에도 신심이 두터운 천녀들 중에 선발되어 교주를 가장 가까이 모시는 천녀들이다. 물론 모두 신앙심을 인정받아야하지만, 헌금하는 돈의 액수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관례이다.



홍천녀의 판정을 들은 다른 청천녀들이 이진아를 이끌고 천녀궁 안으로 들어갔다. 천녀궁 안에는 긴 복도로 이어진 좌우에 작고 큰 방들이 있었다. 천녀들이 이진아를 복도 중간의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팬티차림으로 옷을 벗기더니 어렴풋이 몸의 윤곽이 들어나 보이는 백색 두루마기를 걸치게 했다.



천녀들의 인도를 받고 이진아가 들어선 천존궁의 강당 중앙에는 형형색색의 기괴한 형상의 연단이 있고 음산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강당에 들어와 있는 신도들은 모두 연단을 향해 절을 하거나 바닥에 부복하고 있었다. 연단 뒤에는 백천녀들이 선정적인 모습으로 정렬해 서 있었다. 이진아도 청천녀의 인도를 받고 백천녀들 속에 섰다.



연단 아래의 양쪽에는 홍천녀와 청천녀들은 각각 정렬하여 무릎을 꿇고 있었다. 얼마 있으려니 기묘한 음악소리가 흐르고 강당에 부복한 여자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이구동성으로 ‘천존님!’을 외치기 시작했다. 연단 우측 문에서 홍집사와 홍천녀의 인도를 받으며 하얀 도포를 걸친 교주가 입장했다. 천궁교의 정신적 지주인 천신이었다.



다른 백천녀와 같이 머리를 숙이고 있던 이진아가 눈을 치뜨고 바라봤다. 비만의 체구에 두터운 입술, 주먹코의 모습은 그녀가 찾던 허문한이었다. 허락 없이 감히 천신님을 마주 바라보는 것은 금기인 것을 모르는 이진아는 교주를 노려보았다. 연단으로 오르던 교주와 이진아의 시선이 마주쳤다. 교주를 뒤따라 와서 연단 옆에 선 홍집사가 작은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신선한 장소에서 천신님을 쳐다보느냐?”

“그냥 놔두어라. 이름이 뭐냐?”



흰색 도포의 소맷자락을 펄럭이며 홍집사를 제지한 교주가 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이진아를 뚫어지게 눈여겨 쳐다봤다. 게슴츠레하게 쳐다보는 교주의 시선을 피해 이진아는 고개를 숙였다.



“강애리예요.”

“천존님의 은총을 받을 아름다운 천녀이구나.”



웬만한 천녀들은 거의 다 알고 있는 교주였지만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마치 황제나 된 것처럼 거만하게 육중한 몸을 돌린 교주가 연단 앞에 올라섰다. 그는 모두들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강단을 내려다보며 양 팔을 높이 들어 올렸다.



“불쌍한 영생들을 인도하리라!”



우렁찬 북소리가 울렸다. 이어서 강당에 부복하고 있던 모든 신도들이 일어나서 합장을 하며 다시 부복을 했다. 그리고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천신님!”

“천존님의 아들 천신님!”



교주의 뒤에 서있던 하얀 드레스처럼 몸매가 들어나는 두루마기를 걸친 백천녀들은 양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었다. 또다시 북소리가 강당 안에 울려 퍼지고 교주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흘러 나가기 시작했다.



“영생들은 들어라! 지구의 종말이 멀지 않았다. 우주의 행성들이 지구로 몰려들고 있다. 구러나 천존님께서는 내게 이르셨다. 천존님이 계신 세계로 통하는 외계의 문을 열어 줄 것이니 영생들을 구워하라고. 영생들은 그 뜻을 받들어라!”



기묘한 음향과 함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교주의 목소리에 신도들은 강당 바닥에 부복을 하였다. 어떤 신도들은 울부짖기도 하며 간절한 목소리로 외쳤다.



“천존님의 아들 천신님을 믿나이다.”



이진아는 광적인 그들의 모습에 소름이 끼쳤다. 악마의 부르짖음 같은 소리가 싫어서 그녀는 스스로 ‘나부코’의 오페라를 떠올리려 했다. 이어서 설교를 시작한 교주의 음산한 목소리가 귀 속을 파고들었다.



“천존님을 믿는 자만이 영생으로 재림할 것이다. 풍속토의와 성경에 한울님께서 흙으로 빚어 인간을 만들었다고 적혀있다. 그러나 생명을 불어 넣은 분은 천존님이시다. 천존님이 행하시는 역사는 그날에 이루어집니다. 천존님은 그날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매일 말씀으로 그 뜻을 나타내시며 천궁교를 이끌라고 하셨습니다. 그 뜻대로 살기 위해 매일 말씀을 배우고 알고 순종하며 사는 신도들만이 천존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역사는 나그네가 길을 가다가 어느 집에서 잔치하니까 불쑥 들어가 음식 먹듯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천존님이 온 인류에 행하실 역사는 ‘재림 역사’입니다. 이 역사는 어느 한 날에 이루어집니다. 평소 신앙이 핵심입니다. 그런데 지금 정치를 하는 이단자들이 우리 천존님을 무시하는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천존님의 뜻에 따라 이단자를 물리치고 재림역사를 창조해야합니다.”



“천존님! 천존님! 천존님의 뜻에 따릅니다!”



“전능자 천존님은 그 형상과 모양으로 인간을 위대하고 신비하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전능자 천존님은 저에게 영생을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로 전능자 하나님과 구세주 예수님의 위대한 생각을 배우고 받아서 그 생각대로 작동시키며 행해야 됩니다. 마태복음에도‘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해서 못 한다’라는 글귀가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천존님의 말씀을 도용한 것입니다.”

“천존님! 천존님의 말씀을 따릅니다!”



“인간의 육체는 대우주의 축소판입니다. 수천 가지를 할 수 있는 기묘하고 능력 있고 신비한 대기계가 바로 "육신" 입니다. 사람은 참으로 위대하고 신비한 존재입니다. 지구가 그렇게 크고 우주가 그렇게 커도 사람같이 자체로 활동하지는 못합니다. 여러분들도 모두 겪고 당해 봤을 것입니다. 차 사고가 나기 전에도 이런 느낌을 받고 순간 대처한 자는 살았고, 또 피해도 당하지 않았습니다. 천존님께서 대 재앙을 예고했습니다. 대재앙이 오기 전에 천존님의 은총을 받는 자는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고통스러운 지옥 불에 떨어집니다. 인간은 만드는 대로 만들어지고, 행하는 대로 건설되고, 만들고 행하는 대로 없던 것이 존재하게 됩니다.”

“천존님! 천존님의 뜻에 따릅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농사를 지어야만 곡식밭이 되어 곡식을 얻게 되고, 과일나무를 심어 가꿔야만 과일을 얻게 되고, 바다에 가서 배를 띄우고 고기를 잡아야만 고기를 얻게 되고, 돈을 벌려고 돈 버는 일을 해야만 돈을 벌게 되고, 가축을 길러야만 가축을 얻게 되고, 공부를 해야만 학문을 얻게 되고, 옷을 만들어야만 옷을 얻게 되고, 음식을 만들어야만 음식을 얻게 됩니다. 이와 같이 육신을 가지고 천존님을 위해 사는 자만이 천국을 얻게 됩니다. 의를 행해야 의를 얻고, 선한 일을 행해야 선을 쌓게 됩니다. 조금 하면 조금 얻고, 많이 하면 많이 얻게 됩니다. 천존님께서는 영생을 구원하기 위해 성적인 본능을 주었습니다. 인간의 본능은 천존님께서 내린 은총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은총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천존님의 아들 천신님의 은총을 기다립니다.”



교주의 설교가 중단할 때마다 강당바닥에 부복한 신도들이 모두 천존님을 외치며 합장을 하였다. 교주인 허문한은 흥분하고 있었다. 안기부와의 통화를 하고 나서 일어났던 불만의 여파로 감정을 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마치 정치자금을 받은 자들을 상대로 설교하는 것처럼 목청을 높였다.



“통일을 외치면서도 그들은 정권을 쟁탈하는 데만 눈이 어두워 있습니다. 우리 천궁교가 통일을 할 것입니다. 일본의 조총련에도 북한에도 우리 천궁교를 전파하고 민족 통일을 이룰 것입니다. 모든 영생들은 천존님의 역사아래 뭉쳐야 합니다. 천존님은 세계의 영생들까지도 구원의 손을 뻗칠 것입니다.”



“구세주 천존님!”

“천존님의 아들 천신님!”



신도들이 부르짖는 함성이 강당 안에 메아리쳤다. 아니 울부짖음이었다. 신도들의 모습은 정말 지구가 멸망하기 직전의 사람들 같았다. 눈물을 흘리는 광신도들! 통곡을 하며 몸을 떠는 맹신도 들도 있고, 일어서서 만세를 부르는 신도, 바닥에 몸을 눕히며 신들린 사람처럼 몸을 흔드는 신도, 모두들 광적인 행동을 했다.



강단을 울리는 아우성. 그들의 행동을 바라보는 이진아는 몸서리치는 이질감을 느껴 아예 눈을 감았다. 그녀는 어린 시절 유린을 당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남자들이 벌거벗은 짐승으로 변해 미친 듯이 달려드는 환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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