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립스틱* - 44부

매캐한 냄새와 뿌연 연기. 졸듯이 밝히고 있는 전등불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취해서 흐느적거리는 것 만 같다. 무교동의 한 술집에서 둥근 식탁을 마주하고 앉아있는 강민우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병원 입원실에서 유서연이 떨어트린 사진을 보고 허문한에 관한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는 희망을 느꼈다.



그래서 강민우는 유서연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서연은 허문한에 대해서 자세히 말하지 않으려 한다. 벌써 술을 마시기 시작한지 한 시간이 지나고 있다. 그렇다고 강압적인 방법을 쓸 수도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 화장실에 갔던 유서연이 조금은 비틀거리며 돌아와 앉아서 배시시 미소를 짓는다.



“강 실장님! 우리 한 잔 더해요.”

“많이 마셨는데, 천천히 마시지.”

“호호~! 난 강 실장님이 술 한 잔 하자고 해서 얼마나 반가웠는데요.”



조금은 혀 꼬부라진 소리를 하며 유서연이 술잔을 들어 강민우에게 술 마시기를 권한다. 강민우는 억지 미소를 띠며 잔을 들었다. 잔을 부딪친 그녀는 단숨에 소주잔을 비웠다. 강민우는 반잔쯤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어머니의 사생활을 물어서 서연 씨 마음을 아프게 하자는 건 아니야. 허문한 씨에 대해서 정말 몰라?”

“왜, 그렇게 우리 어머니 남자한테 관심이 많으세요? 나한테 관심 있어서 술 마시자고 한 거 아네요. 실망이네요.”



토라진 표정을 지어 보이며 유서연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리고 자신의 빈 잔을 채운다. 강민우가 나머지 남긴 반잔을 마저 들이키고 내려놓은 잔에도 술을 채운다. 지글거리고 익어가는 돼지고기를 젓가락으로 집어 들면서 강민우는 쓴 웃음을 지었다.



“서연씨처럼 귀여운 여자한테 관심 없는 남자가 있을까. 단지 그 사진을 봤을 때 개인적으로 안면이 있는 사람이기에 알아보려는 거야.”

“호호~! 정말 내가 귀여워요!? 아니면 그 남자의 종교에 관심이 있던지, 아니면 그 남자가 하는 사업에 문제가 있는 것 인가요. 나하고 술 마시자고 했으면 나한테만 관심 가져줄 수 없어요?”



유서연이 강민우의 턱 밑에서 빤히 올려다봤다. 그리고 강민우의 목덜미에 팔을 두르고 어깨에 머리를 의지하였다. 유서연이 술에 취한 것 같이 횡설수설한다. 그러나 종교니, 사업이니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어쩌면 허문한에 대한 신상정보를 그녀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종교.......!? 그 사람을 종교관계로 알았는지도 모르지! 무슨 종교였지?”

“애구! 생각도 말아요. 사이비 종교이니까. 그런데 그렇게 싫어하던 울 엄마가 그 사람 종교에 빠져든 것은 이해할 수 없어요. 사람 마음은 참 묘한 거 같아요.”



“종교는 자기 자신의 믿음이니까. 다른 사람은 이해 할 수가 없겠지. 무슨 종교인데?”

“나도 잘 몰라요. 뭐라고 하더라.......! 아! 만화에나 나올 것 같은 이름, 천궁교 라던가!? 그 종교의 교주라나요? 웃기죠? 창피해서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치부를 들어내 보이듯이 유서연이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강민우는 그녀가 입을 연 기회를 틈타 더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었다.



“교주가 무슨 사업을 한다는 거지?”

“종, 종교도 결과적으로....... 돈이 필요하잖아요.”

“그렇기도 하지.”

“끅~! 유통판매업이라고 하지만........다단계판매 사업이죠 뭐. 끅~!”



딸꾹질을 한 유서연이 무안한지 공연히 강민우의 팔을 주먹으로 쳤다. 취기로 인해 말을 더듬는 그녀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강민우는 어깨에 머리를 기대는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천궁교! 그게 어디 있는데? 대구?”

“대구에 엄마가 사는 집에요. 본부는 아녜요.”

“그럼, 본부가 어디 있는데?”

“그만 물어봐요.......! 취해서.......대답하기도 싫어요.”



연거푸 술을 마시던 유서연이 결국은 취해서 흐느적거렸다. 어깨에 기대있던 그녀가 휘청거리며 몸을 가누지 못한다. 고개를 숙이고 끄덕거리는 그녀의 어깨를 강민우가 붙잡았다. 음식 값을 계산하고 그녀를 부축해서 밖으로 막상 나왔으나 강민우는 난처했다. 그녀의 집도 모르기에 무작정 택시를 태워 보낼 수도 없었다. 송나희의 집을 떠 올렸으나 오해를 받을 소지가 다분하기에 유서연을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강민우는 하는 수없이 유서연을 모텔에서 쉬게 하고 나오기로 생각했다. 비틀거리고 매달리며 발걸음을 옮기는 유서연이 웃음을 흘리며 취기의 목소리를 흘렸다.



“강 실장님.......! 강 실장님.......”

“응, 서연 씨는 너무 마셨나봐.”

“괜찮아요. 나, 있잖아요........! 술 잘 마셔요. 끄떡없어요. 강 실장님!”

“응.”

“나, 있잖아요. 강 실장님 좋아하는 거 알아요?”



걸음을 멈춘 유서연이 흐느적거리면서 강민우를 빤히 쳐다봤다. 강민우는 그녀의 눈빛을 피했다. 그리고 그녀의 허리를 팔로 감아 부축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모두 좋은 사람이니까. 같이 술도 마시고 대화를 할 수 있는 거잖아.”

“그런 거 말고요. 나 안아 줄 수 있어요?”

“지금 안고 있잖아.”

“피 잇~! 그렇다고 책임지라고 하지 않아요. 엄마남자의 종교가 어디 있냐고 했잖아요?”

“그랬지. 말해 봐.”

“호호~! 안아 주면 말해 줄게요.”



강민우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어린아이들 소꿉장난하듯이 아무렇지 않게 내 뱉는 유서연의 말에 농락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그렇게 쉽게 농담을 하고 지나칠 사이도 아니기에 강민우는 당혹스러웠다. 모텔간판이 보이는 건물 앞에 걷던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몽롱한 눈빛으로 흐느적거리던 유서연은 주저하지 않고 강민우의 어깨에 매달려 모텔로 들어섰다.



강민우가 카운터에서 방 열쇠를 받는 동안 유서연은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취중에도 모텔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유서연은 흐트러진 머리칼과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유서연은 강민우의 가슴에 머리를 묻고 있었다. 방 안에 들어선 유서연이 강민우의 가슴에 와락 매달렸다.



“나, 갖고 싶지 않아요. 안아 주세요.”

“이, 이러지 말고 취했으니 자도록 해.”



하얗게 눈을 흘긴 유서연이 강민우의 목덜미에 팔을 두르고 매달렸다. 그리고 발 돋음을 하고 강민우의 입술에 입술을 포갰다. 당돌한 그녀의 행동에 강민우는 당황하였다. 하지만 여자에게서 흘러나오는 체취를 느낀 강민우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껴안고 키스를 했다. 되도록 술에 취하지 않으려던 그는 취기가 한꺼번에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서로의 혀와 혀가 엉키며 부둥켜안았다. 진한 키스를 하면서 열기를 느끼는지 그녀가 스스로 겉옷을 벗어 던졌다. 슈미즈 차림이 된 그녀가 허겁지겁 강민우의 점퍼를 벗겨냈다. 농도 깊은 키스의 열기에 젖어든 강민우가 그녀를 안아서 침대 위에 눕혔다. 그리고 와이셔츠를 벗어 던지고 그녀의 슈미즈를 벗겨 내렸다. 브래지어를 밀어 올리고 탐스러운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손아귀에 움켜쥔 젖가슴에 한가운데 솟아난 젖꼭지를 덥석 물고 빨아 당겼다.



“아~!”



뜨거운 입김을 흘려내는 유서연의 몸이 꿈틀거리고 그녀의 다리가 강민우의 허벅지를 감았다. 이성을 잃은 강민우의 손이 그녀의 팬티 속을 더듬었다. 이미 촉촉하게 젖은 그녀는 몸을 활짝 열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인의 늪을 더듬는 남자의 손길을 느끼는 그녀의 허리가 파르르 떨렸다.



“아.......! 사랑해줘요.”

“........!?”



유서연의 말을 들은 순간 강민우는 흠칫하였다. 그리고 활활 타오르던 욕구의 불길이 꺼져갔다. 내려다보이는 유서연의 얼굴에 송나희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유서연의 사랑해 달라는 말은 그가 사랑하는 여자는 송나희라는 것을 자각시켜주는 것이었다. 강민우는 그녀의 몸 위에서 스르르 미끄러져 내려왔다. 침대 모포를 끌어당겨 그녀의 몸 위에 덮어주었다. 그리고 유서연에게 묻고 싶었던 말을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어머니의 남자는 어떤 사람이지?”

“저도.......잘 몰라요. 그 남자의 종교 본부는 지리산에 있다는데.......가보지는 않았어요.”



강민우의 돌변한 행동에 쑥스러움을 느낀 유서연은 벽을 향해 돌아누웠다. 그녀는 강민우와 송나희가 어느 정도의 관계인지는 몰라도 연인 사이로 발전해 가는 것은 예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랑은 쟁취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기에 언젠가는 솔직히 감정을 들어내 보이려고 했었다. 술의 힘을 빌려 감정을 들어내 보였고, 모텔까지 같이 들어왔기에 그가 자신을 받아드리는 것으로 알았었다.



결과적으로 송나희를 생각하는 강민우의 마음속으로 들어 갈수 없음에 실망한 유서연은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히려 평소에 갖고 있던 강민우에 대한 감정을 노출시킨 자신이 초라해보였다. 홀어머니 밑에 어렵게 살아온 그녀는 왠지 열등감마저 느꼈다.



사이비 종교를 믿는 남자와 재혼한 어머니의 딸이라는 것에 강민우가 자신을 천박하게 여기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이비 종교에 대해서 꼬치꼬치 캐물었던 강민우가 자신에게 실망했으리라는 추측을 한다. 뜨거워졌던 열기가 식어가며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아울러 취기가 달아올라 땅속으로 가라앉는 것처럼 어지러움을 느꼈다.



유서연을 등지고 침대 끝에 돌아앉은 강민우는 곰곰이 생각했다. 순간적인 감정에 유서연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았는지. 하마터면 감정에 휘말려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할 뻔했던 것이다. 침묵이 흐르고 유서연의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등 뒤를 돌아본 강민우는 그녀가 취해서 잠든 것이라고 생각했다. 벗어던진 옷을 걸쳐 입고 냉수를 한 컵 들이키며 방안을 둘러보았다. 방문 손잡이를 돌려 안으로 잠근 강민우는 방문을 열고 나섰다.



벽을 향해 돌아누운 유서연은 방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점점 취기가 달아오르는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라 혼란스러웠다. 강민우에 대한 수치심과 함께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앞섰다. 어렵게 살아온 어머니가 애틋하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어머니의 남자관계는 복잡했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왔기 때문인지 몰라도 그녀도 두려움 없이 육체관계를 했던 남자는 있었다. 다만 이 시점에서는 어머니가 재혼한 남자로 인해 열등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뒤척이다가 잠든 유서연은 숙취로 머리가 지끈거리고 뱃속이 울렁거려 아직 어둠이 깔린 시간인데도 눈을 뜨고 깨어났다. 지난밤 강민우로부터 받은 좌절감을 되돌아보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그녀는 어머니를 찾아갈 생각을 했다. 사무실에 전화를 해서 몸이 아파서 못 나가겠다고 하면서 하루 휴가를 신청했다. 휴가허락을 받고 모텔을 나온 그녀는 대구행 열차를 탔다.



청와대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항상 돌발 상황에 대비해야한다.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 주변에는 사복을 한 경호원들이 조를 이루어 순찰을 돌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고도의 훈련을 받은 경호견을 앞세우고 순찰을 하는 경호원, 관저와 집무실 앞에서 동상처럼 서 있는 경호원, 무전기를 들고 지휘하는 경호책임자의 모습도 보인다. 관저 앞에는 먼지조차 미끄러져 내릴 만큼 윤택이 흐르는 대통령 승용차가 대기하고 있다.



관저 안에서는 식사를 마친 대통령이 차를 마시며 아침에 배달된 신문을 보고 있었다. 항상 하루 일정을 소화해야하기에 대통령은 큰 활자의 기사나 그날그날 중요한 기사들을 보는 것이 습관적이다. 집무실로 가기위해 펼쳐들었던 신문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대통령의 양복 상의를 들고 있던 영부인이 다가섰다.



“요즘 사이비종교 때문에 언론과 국민들의 관심이 많은 거 아세요?”

“음. 좀 심각하다는 걸 나도 알고 있어요.”



대통령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문제였다. 어쩌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었던 정치 세력의 정치자금을 조달하는 검은 조직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자신을 후원하는 정치세력이 일이라서 방임하고 있지만, 남은 임기동안 안정적인 국정운영과 민심의 동요를 막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던 조치를 해야 하기에 골치를 썩는 중이었다.



잠시 창문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던 대통령은 대기하고 있는 비서실장과 함께 집무실로 향해 갔다. 대통령은 비서실장에게 검찰총장과 안기부장을 집무실로 부르라고 지시를 했다. 그리고 책상위에 놓인 일상적인 서류들을 결재하다가 해당 책임자를 부르거나, 직접 결재를 받으러온 각 부처 책임자들과 당면한 문제들을 검토한다. 비서실장이 들어와서 대기실에서 검찰총장과 안기부장이 기다린다고 보고를 했다.



책상에서 벗어난 대통령은 회의용 탁자에 가서 앉았다. 비서실장의 안내를 받은 안기부장과 검찰총장을 집무실로 들어왔다. 정중한 자세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는 그들은 탁자 주위의 의자에 앉아 대통령의 눈치를 살핀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 조금은 굳어진 안색의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그, 연쇄 살인사건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죄송합니다. 각하! 합동수사본부를 차리고 공개수배중입니다만, 아직 범인은 잡지 못했습니다.”

“피해자에게서 검출한 DNA를 미국 FBI에 검사 의뢰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저희도 빠른 시일에 과학수사 장비를 갖추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안기부장의 어눌한 대답에 이어 검찰총장은 이번기회를 통해 수사 장비를 보충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대답하였다.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민심이 동요하기 전에 하루빨리 범인을 잡아 드려야 할 겁니다. 그리고 요즘 사이비종교가 언론에 기사화 되고 있는데, 문제가 있는 거 아닙니까?”

“손을 쓰고 있습니다만, 워낙 사이비 종교가 많아서........”



대답을 회피하는 안기부장은 대통령의 눈치를 살폈다. 대통령도 잘 알고 있을 것 같은 정치자금을 헌납 받고 있던 조직이기 때문이었다. 검찰총장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정치 수뇌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던 문제라서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대통령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 추적24시인가 하는 TV프로그램을 봤습니다. 조총련과 북한을 운운하는데 국가 안보에도 문제가 있는 것 같던데.......”

“.........”



안기부장이나 검찰총장은 대답을 못하고 눈치만 살필 뿐이다. 그들의 의견을 듣고 해답을 얻으려던 대통령도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였다. 입술을 굳게 다물고 고심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결심을 한 듯이 입을 열었다.



“우선 언론에 문제가 되는 사이비종교 단체부터 수사하세요. 그냥 방치했다가는 더 많은 사이비 종교가 민심과 국가 안보를 혼란하게 할 겁니다.”

“.........네”

“네.”



마지못해 대답을 하는 안기부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들은 모두 현재의 대통령을 만들어낸 GIS의 멤버였다. 슬며시 그들의 표정을 살피던 대통령이 인터폰을 눌러 비서실장을 불렀다. 대통령의 지시를 어떻게 처리할지 방도가 서지 않는 검찰총장과 안기부장은 시선을 주고받았다. 비서실장이 문을 열고 들어오고 대통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되도록이면 민심을 동요시키는 일들을 시급히 다루도록 해요.”



한마디 던진 대통령이 책상으로 가서 앉았다. 안기부장과 검찰총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대통령에게 인사를 했다. 비서실장이 굽실거리며 대통령에게 지시를 받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대통령이 집무실을 나왔다. 대통령에 대한 신임도와 자신의 정치적 입지들을 생각하는 안기부장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복도를 걸어갔다.



대구시 달성공원의 상가주택 단지의 도로변 공터에는 큰 화물차가 주차 되어 있다. 회사마크를 붙인 점퍼를 걸친 남자직원들이 옮기는 물품으로 화물칸은 점점 가득 채워져 간다. 남자들이 옮기는 물품들은 화물차가 주차된 옆의 창고 건물이었다. 삼층 슬래브 건물이지만 평수가 꽤 넓은 건물로 공터 입구의 기둥에는 천궁기업이라는 간판이 걸려있다. 그러나 층계를 오르는 입구에는 천궁교 대구지부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이층으로 올라가면 강당 입구에 남녀 신도들의 신발들이 쌓여있고, 삼층은 살림집으로 개조한 가정집이었다. 유서연은 삼층의 거실에서 어머니 방순덕과 마주하고 있다. 조금 전에 서울에서 내려온 그녀는 강민우에게 느꼈던 좌절감을 분풀이 하듯이 어머니를 몰아붙이고 있는 중이다.



“왜, 그래 엄마! 무슨 교주부인이라는 소리를 들으니까, 어떻게 된 거 아냐? 정신 좀 차려. 창피해 죽겠단 말이야.”

“뭐가 창피하단 말이니. 너도 천신님께 공덕을 싸야 돼. 그렇지 않으면 영생을 못해.”



“영생은 무슨 영생? 처음에는 안 그렇더니 왜 그러는 거야, 정말.”

“얘 좀 봐라! 그런 소리하면 죄 받아. 그러지 말고 너도 천신님께 제발 은총을 받아라. 엄마 소원이니까. 날 위해서가 아니고 널 위해서야.”



유서연의 마음과는 달리 방순덕은 딸의 손목을 움켜잡고 사정조로 매달렸다. 유서연은 기가 막혔다. 혹을 때러 왔다가 혹 붙이는 격이 된 것이다. 악이 받친 유서연이 어머니를 밀치며 벌떡 일어났다.



“엄마는 아무래도 정신이 이상해 졌나봐. 정신 치료라도 받아. 사이비 종교라고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는 걸 몰라?”

“우리가 잘되는 것을 훼방 놓는 악마들의 시샘이야. 너한테도 악귀가 달라붙은 모양이다.”

“정말, 이러면 나 집에 안 들어 올 거야. 엄마도 이제 필요 없어.”

“안 되겠다. 그렇지 않아도 널 천녀로 만들려고 했는데, 당장 나하고 가자.”



방순덕은 미친 사람처럼 유서연의 멱살을 붙들고 늘어졌다. 방순덕은 딸을 붙잡고 거실 밖으로 끌어 내려하고 유서연은 잡힌 멱살을 뿌리치려고 안간힘을 썼다. 엎치락뒤치락하는 바람에 탁자와 진열장의 물건들이 떨어져 내려왔다. 평상시 상냥하던 성격과는 다르게 갑자기 광적으로 변한 어머니의 모습에 유서연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가긴 어딜 가자는 거야? 정말 미쳤어.”



그때 거실 문이 열리고 배가 불룩한 거구의 남자가 들어왔다. 방순덕의 남편인 허문한이었다. 또한 천궁교의 교주이고 유서연에게는 의붓아버지이기도 했다. 허문한이 들어오자 방순덕이 구세주를 만나듯이 소리를 질렀다.



“얘한테도 악마가 깃든 모양예요. 천존님의 은총을 베풀어 주세요.”

“.........”



유서연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허문한의 눈빛이 게슴츠레해졌다. 허문한은 말없이 묘한 미소를 흘리며 다시 거실 문을 열고 나갔다. 현재 상황으로는 어머니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고 판단한 유서연은 대구에 내려 온 것조차 잘못된 생각이라고 느꼈다. 드잡이 하던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일어났다.



“이러면 정말 집에 영영 안 내려올 거야. 전화도 하지 마.”

“얘야! 엄마 죽는 꼴을 봐야하니.”



“몰라! 죽던 말든 상관하지 않을 게.”

“이런 못 된 계집애. 못 간다!”



유서연은 어머니가 이 세상사람 같지 않았다. 설마 했더니 의지해야할 단 한 사람인 어머니가 너무나 달라진 모습을 보니 눈물이 솟구쳤다. 어차피 하루 휴가를 낸 것이라 일찍 서울로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하여 손가방을 들고 거실 문으로 다가갔다. 그때 거실 문이 덜컥 열리고 밖에서 일하던 남자직원들이 들어왔다. 직원들 등 뒤에는 허문한의 모습이 보였다. 직원들과 마주친 유서연이 주춤거렸다. 그 순간 남자직원들이 달려들어 유서연의 양 팔을 각각 붙들었다.



“왜, 이래요! 무슨 짓.......”



말을 끝내기도전에 유서연은 급히 숨을 들이켰다. 남자직원들이 마취제로 적신 타월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은 것이다. 그녀는 직원들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 그럴수록 호흡은 거칠어지고 정신이 몽롱해졌다. 그녀는 결국 정신을 잃고 힘없이 거실 바닥에 쓰러졌다. 희미해지는 정신 속에 둥둥 떠올려진 몸이 어딘가로 옮겨지는 것으로 그녀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지리산 천궁교의 교주가 머물고 있는 천존궁 삼층은 고대 황실처럼 꾸며져 있다. 삼면이 흰색의 커튼이 찰랑거리며 둘러싸고 있는 큰방이었다. 한쪽 벽에 살아있는 것처럼 커다란 눈동자가 벽화가 그려져 있어 보는 사람의 영혼을 빨아 당기는 것 같다. 눈동자의 가운데에는 구름위에 가부좌를 하고 금관을 쓴 도인이 그려져 있다. 벽화 앞에서는 향불의 연기가 피어오르고 음산한 기운이 흐른다.



방 한가운데는 오색 천으로 덮인 큰 침대가 놓여있고 침대위에는 붉은 천으로 덮인 여자가 꼼짝도 하지 않고 반듯이 누워 있다. 눈동자의 벽화 앞에 서있던 천궁교의 교주 허문한이 양손을 합장하며 무릎을 꿇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기도문을 중얼거린 그가 양손을 모으면서 일어서더니 뒤돌아선다. 그리고 천천히 손바닥을 두들겼다.



손바닥을 두들기는 소리를 신호로 맞은편 흰색 커튼 뒤의 방문이 열렸다. 엷은 커튼 뒤에 는 또 다른 방이었다. 방안에는 백색 두루마기를 걸친 백천녀들 열 명이 두 줄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녀들은 이슬람교의 여인의 히잡처럼 머리에 하얀 두건을 뒤집어쓰고 있다. 그러나 두루마기와 두건이 투명한 천이기에 그녀들의 얼굴과 팬티 차림의 몸매가 그대로 들어나 보인다.



백천녀들 속에는 이진아도 있었다. 백천녀들의 우측에는 천후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여인이 붉은 두루마기를 걸치고 있었다. 천후는 교주의 부인이며 유서연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천후 양쪽에는 남자같이 듬직한 체격의 홍천녀가 버티고 있다. 천후 방순덕이 위엄을 들어내는 저음의 굵은 목소리로 백천녀들에게 말했다.



“천신님의 은총을 기다리는 너희들도 잘 보도록 해라.”

“네. 천후님! 천존님의 영험을 저희도 원합니다.”



합장을 한 백천녀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며 교주를 향해 절을 했다. 방순덕이 교주를 향해 무릎을 꿇고 합장을 하며 간절한 목소리를 흘린다.



“천존님의 영원한 아드님이시며, 이 땅의 구세주이신 천신님께서 불쌍한 영생에게 영험한 은총을 내려 주십시오!”



양팔을 벌리고 서 있던 교주가 자신이 걸치고 있던 붉은색 두루마기를 벗었다. 두건을 쓰고 있던 백천녀들이 흠칫하였다. 두루마기를 벗은 교주는 흉물스러운 남성이 들어나 보이는 완전한 나체였다. 이진아도 너무나 놀라운 광경에 숨을 들이켰다. 교주는 벗은 두루마기를 침대위에 죽은 듯이 누운 여자의 몸 위에 흔들며 요상한 주문을 외웠다.



흔들던 두루마기를 내려놓은 교주가 침대위에 누워있는 여자를 덮고 있는 붉은 천을 벗겨냈다.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여자의 발가벗은 알몸이 들어났다. 교주가 주문을 외우며 침대 주위를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한발자국 옮겨 멈출 때마다 교주의 손길은 발가벗겨진 여자의 몸을 더듬는다. 젖가슴과 하복부의 은밀한 비역까지 더듬어 내려가고 여자의 알몸이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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