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28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28부]



















아버지가 그해 초여름 엄마와 옥신각신 다투면서 끝까지..자영업 두번째 도전의 포문을 연 **찜닭....

엄청난 대박과 함께... 분점을 두개.. 세개 차리더니.. 밀려드는 체인문의에..

아예 프랜차이즈 회사를 설립하고야 말았다.



내가 복학을 일주일 앞둔 날..

아버지의 고물 세단이 고급세단으로 바뀌었고.. 엄마의 말에 의하면 9월말.. 분당의 대형평수의

신축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될 것이라고 한다.



가게도.. 자취도 그만 끝내고 오직 공부만 하라는 엄마와 아버지..

하지만 끝까지.. 가게 [툰드라]는 꼭 운영을 하고야 말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때 즈음...가게 주인인 [길주]녀석의 집에서 [툰드라]를 부동산에 내다 놓고야 말았다.

아버지에게 몇날 며칠을 졸랐다.



어제...결국 아버지가 두손,두발을 다 드셨다.

[툰드라]는 이제 완벽한 내것이 되었다.















2000년 건축공학과 3학년 2학기의 개강..



동기들인 4학년들은 요즘 졸작에다 취업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이 바빠 보인다.



몇몇 낯익은 후배녀석들..

이놈들과 같은 학년이라니...T_T



개강첫날..



"우와아!!............."



슈퍼모델 뺨치는 여자하나가 강의실로 들어온다.

엄청난키.. 글래머틱한 가슴.. 가느다란 허리.. 빵빵한 히프의 미니스커트.. 하얀얼굴에

골져스한 길다란 파마머리..



"희..희준선배!!.... 저..저여자!!....설마.. 우리..과?????"

"그러게나 말이다... 진짜 죽여주네.........."



이 슈퍼모델이 나와 [선영]이 쪽으로 오더니 내뒤에 조심스레 앉는다.



강의실의 모든 남자녀석들과 기집애들이 죄다 뒤돌아보며 내쪽으로 시선을 향한다.

내가 아니라 내 뒤의 맨끝자리에 방금 앉은 슈퍼모델을 보는것이다.



죽이네.. 복학생인가?? 그럴리가.. 그럼 편입생???????.....뭐지??...



슬쩍 뒤돌아 보았다.

진한 눈썹... 커다란 눈망울.. 짙은 쌍커풀..



헙!!.......



이 섹시한 슈퍼모델이 방금 웃었다.



"하하...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훗... 오랜만이야.. 오빠?.........."



허걱!!!!!!!!!!!!!!!!!!!!!!!!..............



자세히 보니.. 낯이 익다..!!... 눈.. 코... 입술... 서..설마..!!!!!!!!!....



"너...너............!!......"

"몰랐어??...... 연주잖아 바보야......."



..............!!!!!!!!!!!!!!!!!!!!!!!!!!!!!!!!!!!!...............



학과에 난리가 났다.

그 거구의 뚱땡이 한장군이 골져스한 슈퍼모델이 되어 나타날 줄이야..!!!...





개강파티...



새삼 작년의 종강파티때의 그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나를 사랑한다며 콘크리트 바닥위에서 나뒹굴며 울며불며 그 몹쓸고백을 하던 처참한 뚱녀..

한장군..!!!...



학급생들과 술자리를 대충 쫑내고 [종필]이형과 [대식]이.. [은미].. [서연]이..[윤지]가

기다리는 다른 술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뒤에서 [한장군]이 나를 부른다.



"오빠!!.... 어디가??...."

"어..연주야... 종필이형이랑.. 친구들 만나러..."



"나도 갈래.. 같이가.."

"아니... 하하... 거기 3대3... 커플끼리라.. 쫌 그런데??..."



"그래??? 그래 그럼...."

"하하.. 미안 연주야.. 다음에 한번 보자..."



슈퍼모델이 뒤돌아서서 다시 술자리로 걸어 들어간다.

타이트한.. 미니스커트의 치솟은 히프.... 길다란 다리... 우아한 머릿결..



아직도.. [한장군]의 변신을 두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하는 상황이다.







며칠후..

강의가 끝나고 4학년들의 설계실을 찾았다.

졸업작품 전시회 일정이 11월15일부터 시작이라고 한다..

1학기에 졸작의 컨셉과 스터디모델에 대한 구상이 끝났고.. 지금은 수업이 끝나면

죄다 졸작에 푹 빠져있다.



졸작은 각자가 판넬과 모형 한작품씩...

조별 작업이 아니다보니.. 빡쎄게 작업해야 할꺼 같아 보인다.



[대식]이 녀석이 어제밤에도 집에 못갔는지.. 까칠한 턱수염의 피곤한 얼굴로 나를 반긴다.



"어.. 왔냐??..."

"종필이형은??..."



"집..."

"집???... 여기서 안하고??..."



"풋..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집에서 작업해.. 맨날.."

"그래??...."



"야.. 지난번에.. 영계들 있잖냐.. 거 왜.. 동해안에 놀러가서 엮은 애들.."

"어..."



"내일 니네 가게 데려가도 되냐??..."

"하하....... 맘대로 해라??..."



"세명다 데려간다..."

"그래...그렇게 해...."



이것들이 보름전.. 결국 그 바닷가에서 엄청난 썸씽을 만들고야 말았다.

20살짜리.. 영계들..

두년은 동덕여대 일어일문학과1학년.. 한년은 재수생..

재수생이라는 기집애 하나만 빼고.. 두년은 이미 [대식]이와 [종필]이형의 먹이감이 되고야

만 것이다...



[띠리리리................]



"응... 오빠...."

"서연이 끝났어??......"



"오빠.. 오늘도 바로 가게 가??..."

"뭐 어쩔수 있냐??...."



"씨이.... 어제도 끝나고 못만났잖아....사람하나 쓰면 안돼 오빠??..."

"사람을 더 쓰더래도.. 가서 장사준비는 내가 해야지.. 그러다 보면.. 이시간이고.."



"민주씨한테.. 오픈준비 맡겨.. 걔 잘하잖아..."

"안그래도.. 그럴려고 생각중이야.. 저학년이라 바빠보이지도 않고..."



"내일 놀러갈까??? 동생들이랑??.."

"내일???? 하하.. 차라리 오늘 오면 안돼냐?? 내일은 가게사장이던 친구녀석 부모님들이 가게

매매 때문에 나랑 할얘기가 있어서...."



"잠깐일꺼 아냐??..."

"아무래도 돈얘기 하는건데.. 잠깐일지.. 오랫동안일지.. 솔직히 모르지..."



"그래???... 그럼 이따가 전화할께.."

"그래.. 서연아..."



휴우.....................



사실은 오늘부터 [민주]녀석이 오픈준비는 알아서 다 하고 있다.

오늘.. 할일이 있어서이다.



학교후문....

포플러 나무의 벤취로 향한다.



[은영]이를 꼬셨던 그 자리..

그리고 [은영]이가 이 세상을 떠난 그 자리..



포플러나무의 굵직한 가지 한개가 짤려 나가 있고..

나무 아래에는 누군가가 국화꽃 한송이를 올려다 놓았다.

오래된.. 꽃송이..



손에 들린 싱싱한 국화꽃 한송이를 내 옆 벤취위에 올려다 놓았다.

[은영]이가 앉았던 자리이다..



"은영아......이제야.. 이렇게 다시 왔다..."



"니가 잠들었다는 서해바다.. 너가 떠나던날로 해서.. 친구들과 가기로 했어.."



"내가 아무리 미안하다고.. 죽을 죄를 지었다고 해도.. 넌 다시 살아날 수 없으니..

더이상 미안하다고 죽을 죄를 지었다고.. 말은 안할께.. 하지만.. 니생각만은

내가 죽을때까지.. 평생을.. 그 죄책감을 안고서.. 그렇게 살아갈께..."



초가을의 선선한 바람이 뉘엿뉘엿지는 햇살과 함께.. 두 볼에 와닿는다.



[우수수수수.............]



바람소리에 부딪히는 포플러나뭇잎의 울음소리..

내 가슴속.. 깊숙히 박혀있는 [은영]이의 녹슨칼날이.. 점점..더 파고드는 심정이다.



[종필]이형의 집으로 향한다.

저녁을 거기서 때우고 가게로 가려한다.



반갑게 나를 맞이하는 [종필]이형.. 하지만 바로.. 하던일에 열중이다.

이형 역시.. [대식]이 못지 않은 폐인모드이다.



"우와아... 이거 머야???...."

"머긴..머야?? 졸작이지....."



"크하.... 작품제목 뭐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헐... 너무 서정적이다..."

"훗....."



"근데.. 특이해서 좋다..."



하얀매쓰감이 느껴지는 육중한 떵이들이 형이상학적 알수없는 배열로 오밀조밀 만들어지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디테일까지..참 정성을 많이도 쏟았나 보다.



"이거.. 컨셉이 머야??..."

".... 컨셉은 그냥.. 삶과 죽음의 공간..그리고 그 공간의 연속성을 이해하고 파헤쳐 보는거지..."



"잉???...."

"다르게 생각하면 삶이란건 죽기위한 과정일 뿐이고..

죽음이란건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다른 세계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거 뿐이고.."



"캬아......"

"우리가 살고있는 공간과.. 만약에 죽음에서 느낄 수있는 공간은 별개가 아니라 중첩되어 있는

하나의 공간이었던 거라면.. 그리고 그 각각의 공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이루어낼 수 있는 장소가

신개념의 납골당이라면 좋은거겠지..........."



"음.. 그렇군... 이게 납골당겸 추모공원이군...."



[종필]이형은 결국.. 납골당과 연계된 추모공원을 만들고 있는 거였다.

졸작치고는.. 쫌.. 그렇다.



하지만 남들이 흔하게 했던 작품들이나.. 선배들.. 작가들꺼 모방하는 다른 학우들에

비하면.. 너무나 특이한 주제에.. 특이한 컨셉에.. 특이한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판넬 초안으로 보이는 판때기 역시.. 죽여준다.

블랙과 화이트.. 죽음을 뜻하는 색조..

그리고 열정과 생명.. 피를 뜻하는 정열적인 빨강이 시선을 확 잡아당긴다.



작품의 주제와 컨셉과 프로쎄스과정과 작품을 이 한장의 판넬에 담아내려

부단히도 노력하고 연구한거 같아 보인다.



남들이 꺼려하는 님비적인 건축물을 [종필]이형만의 죽음에 대한 철학을 담아내어

이렇게까지 열심히 만들어 놓았다는건 대단한거였다.





물론.. 우리학교 교수들이 어떻게 평가할지는 모르겠지만..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

그런 아름다운 서정성이 죽은자를 위한 납골당을 만드는 졸작의 제목이라니...!!...



"짜식.. 아까 전화로 얘기들었다.. 내일 가게에서 모이기로 했다며??.."

"훗...."



"너 임마.. 그러다 딱걸리려면 어쩌려고 그러냐??.."

"아니.. 내가 뭐?? 죄진거 있어??.. 나야 장소제공밖에 더돼??..."



"훗... 서연이 입장에서 그렇게 생각하겠냐?? 세명 온다는데.."

"그러게.. 그 기집애는 재수생이면.. 열공이나 할것이지.. 삼수하려고 작정했나..

하여간 난 상관없어.. 동석하지도 않을꺼고.. 신경도 안쓸건데..머..."



"훗...짜식... 그렇게 되겠냐??....난 지금 내일 니네가게 갈까 말까 생각중이다...."

"뭐??........"



"이젠..지겹다... 기집애들 후리는것도.. 후려봤자.. 좋을것도 없고.. 얻는것도 없고..

다.. 그 구멍이.. 그 구멍이고.......후!!..이게 왜 안붙지??....."

"............"



[종필]이형...

본격적인 2학기가 시작되자.. 좀.. 이상해진것 같은건.. 나만 느끼는 걸까??...



"형.. 밥먹으로 갔다가 스타나 한껨 하지??..."

"스타는 싫다.. 니새끼랑은..."



"하하... 왜???.."

"얍실해서......."



"하하하하...."

"하하........"



[종필]이형이 모형제작에 전념을 다하는듯 일하면서 입을 연다.



"연주.. 너한테 아무말 안하냐??..."

"한장군??..걔가 무슨.. 나한테..."



"연주 조심해라.. 걔 무지막지하게 너 좋아했던 애다.. 휴학하고 다이어트 그렇게까지 한거..

혹시 너때문이라고 생각해본적 없냐??..."

"에이.. 무슨??????.... 하여간 건강해지고.. 이뻐지니까.. 보기에도 좋은거고..

다이어트 식품업체 전속모델이라니까.. 돈도 많이벌고.. 형도 봤잖아.. 걔 끌고온 스포츠카..

나 말고..괜찮은 놈씨들.. 많이들..... 붙겠지..."



"서연이는 니가 괜찮아서 니를 좋아하는거냐??..."

"뭐??...."



"나가자.. 밥먹으러......."

".............."



[종필]이형과 동네 분식집에서 TV를 보며 끼니를 때우고 있다.

"형.... 혹시.. 형 그 졸작.. 있잖아...."

"...응..."



"혹시.. 그전 사랑했던 그 누나 때문에.. 만드는거야??.."

"..훗... 그렇겠지..."



"그랬군...."

"희준아.. 부탁이 하나 있다.."



"머??...."

"너 나중에 건축사 될꺼지??..."



"머..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지.. 근데.. 5년이 될지 10년이 될지.. 모르는거지..머.."

"나중에.. 오늘 형이 만들고 있는 그 작품.. 니가 기회가 되어 나중에 납골당 설계를 하게 된다면..

꼭.. 형작품을 실시설계해주라..."



"아니.. 형이 하면 되는거지.. 그걸 왜 나한테.. 그래??..."

"물론.. 나도 나중에 건축사 되서 그럴기회가 온다면.. 그렇게야 하겠지..그러니까.. 니도

그때되면.. 꼭 그렇게 해달라고..."



"하하... 알았어... 형이 그렇게 얘기하니까.. 꼭 건축사 된거 같다..."

".............."



[종필]이형과 헤어지고 가게로 돌아왔다.

툰드라의 바쁜 저녁..



하지만.. 이시간만 지나면.. 비교적 한가하다.

어떻게 된게 점점 더 손님이 줄어드는 것 같다.

이동네에도.. 여기 저기 문닫은 까페가 많기도 하다.



새로 입점한 가게역시.. 두어달.. 장사하다.. 문닫고.. 때려부시고.. 다시 공사하고..

다시 입점하고... 그렇게 두어달.. 장사하다.. 또 문닫고..



바텐에 앉아 [종필]이형 생각을 한다.

그나저나 [종필]이형이 마지막에 했던 말이 생각난다.



"이작품을 다 만들면.. 나와 혜숙이는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꺼야...

이젠.. 더이상 혜숙이 생각으로 힘들고 싶지 않다.."



어쩜.. 저 형은 자기여자 혜숙이만을 위한 추모공원을 만드는게 아닐지도 모르겠군...!!!...



그렇다..!!...

아까.. 밥먹으면서.. 자기 작품의 기획안을 나중에 기회가 되면 실시설계로 만들어달라는 말..

실시설계는 곧.. 시공도면을 말하는것이다.. 분명히 나한테 먼저 그 얘길 꺼냈었다..



어쩌면 [종필]이형은 작품완성과 동시에.. 사랑했던 혜숙이라는 여자의 곁으로 떠나려는게

아닐까?????????????????????............











아홉시가 넘은 시간..

[서연]이가 같은과 친구들과 들이닥쳤다.



"옵빠!!!........"

"왔어??........."



"안녕하세요......"

"하이..희준오빠.."

"하하.. 네.. 반갑습니다.."



기집애 둘과 남자한명..



[서연]이가 팔을 걷어부치며 세팅을 돕는다.



"야..넌 손님이니까.. 그냥 앉아 있어..."

".........."



갑자기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서연]이..

느닷없이.. 이렇게 까지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서연]이의 이해못할 행동에

나역시 당황스럽다.



".........오빠.... 이따 할말 있어..."

"...지금 하면 안돼??....."



그제서야.. 획.. 째려본다..



씨바.... 머야??.... 내가 뭐??......잘못한게 없는데???...



같은과 친구들에게 고개를 돌리며 금새 웃는 표정으로 술을 세팅하는 [서연]이..

왔다 갔다.. 하면서 잠깐 잠깐 [서연]이 옆에 앉아 [서연]이의 학과친구들과 수다를 떨었다.







11시..



오늘따라.. 징글징글하게 손님이 없다.

[서연]이 친구들이 모두 가버리고.. [민주]가 퇴근전.. [서연]이네 테이블 정리에 한창이다.



"민주야.. 그냥 들어가.. 시간 됐잖아.. 빨랑.. 버스 끊기겠다.."

"아뇨.. 괜찮아요... 다했는걸요..."



[서연]이가 앞머리를 확 쓸어넘기고.. 앉아있다.

친구들이 나간 순간부터.. 저러고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 골똘히 생각을 하고 있다.

아까부터.. 바텐쪽에서 정리하는척 하면서 이런 [서연]이의 눈치를 보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잘못한게 없는데.. 지미...



드디어 [민주]가 퇴근하고..

아예 간판불을 꺼버렸다.

지금 이시간.. 새로 손님을 받게 되더라도 골치아프다.



[서연]이옆에.. 조심스레 다가간다.



마치.. 숫거미가 교미를 위해.. 암거미에게 다가가듯.. 조심스럽게..

숫거미는 한번의 거한 빠구리를 하고난 후.. 암거미에게 잡아먹히면서

자기가 뿌린 씨들의 영양분을 공급한다.



느닷없이 그생각이 왜 났을까??

지금.. 조심스런 나의 행동이.. 암거미에게 접근하는 숫거미와도 같은 느낌이다.









"아고..아고.. 피곤해라... 오늘은 우리 서연이 왔으니까.. 일찍 문닫고 그래야지....."



[서연]이 옆에 앉으며 [서연]이의 눈치를 본다.

[서연]이앞의 병맥주와 맥주잔.. 그리고 견과류의 기본안주..



[서연]이가 나를 쳐다본다.

왠지.. 화난듯한 눈빛은 아니고 슬프면서 진지한 눈빛이다.

[서연]이의 커다란 눈망울이 내 두눈을 살펴보더니 드디어 입을 연다.



"오빠는.. 내가 오빠한테.. 어떤 존재야??..."

"나한테??... 그야.. 머.. 사랑스런.. 아니 사랑하는 여자지.."



"사랑??... 그리고..."

"사랑한다면..얘기 끝난거지.. 그리고는 또 뭐야??..."



[서연]이의 테이블 앞..

빈잔에 맥주병을 기울이고 가득담긴 술을 입에 가져다 댄다.





"오빠.. 우리 결혼할까??..."



"푸핫!!!!......켁켁!!!......쿨럭..쿨럭...!!..."



엉뚱한 면이 있는 [서연]이지만.. 느닷없는 결혼얘기에.. 너무나 황당해 그만

사래가 걸리고 말았다.



"..............."

"흐음... 흠... 흠!!... 머야??... 너 왜 그래??.."



"왜..??... 싫어??..."

"아니.. 싫기는??... 그렇게야 한다면.. 얼마나 좋겠냐??..."



"근데 왜 그렇게 놀래??...."

"야.. 결혼이 쉽냐?? 나도 너도 공부하고 졸업하고 자리잡고.. 그렇게.. 연애하고 하다가

나이 들면 하는거겠지.. 으이구...."



"왜 그래야 해??..."

"아니.. 그건.. 남들도 그러고... 다들..."



"다들 뭐??.. 남들 죽으면 죽어?? 그렇게 살아가야 해??.."

"우린 학생인데.. 니가 이제 스물셋밖에 안됐는데.. 무슨 결혼이야??.."



"왜?? 내 동창중에 시집간애 둘이나 있어.. 애 있는애도 있고.. 부부커플 몰라?? 우리학교에도

지금 두쌍인가 있다며??.."

"아니...그건...... 하하.....참내..."



"오빤.. 거기까지구나?? 그치??..."

"뭐가??......"



"아까 친구들 있을때 한말.. 기억안나?? 나는 손님이니까.. 그냥 앉아 있으라 그랬지.."

"그래서..."



"나 되게 기분나빴어... 나는 오빠가 하는일 하나하나가 다 내일같아 보이는데...

오빠는 그렇게 생각 안하니까..."

"야!!... 아이고.. 그거야 니가 고생하니까.. 친구들도 있고 그러니까.. 같이 있으라 그런거지.."



"친구들 있으니까.. 더 그래야 하는거 아냐?? 진짜 서로 하나가 되어 있는 완벽한 커플처럼.."

"이제.. 별걸 가지고 다 시비거리를 만드려고 한다....참내...."



"오빠 우리 바닷가 놀러갔을 때.. 대식오빠가 차라리 결혼하라고 했을때.. 대답 안하더라??.."

"그거야.. 너무 뜬금없이..."



"나 그때도 되게 서운했어.. 농담이라도.. 결혼할꺼니까.. 신경꺼!!.. 뭐 이래주면 안돼??..

오빠.. 혹시.. 나랑 결혼생각 한번도 안해본거 아니야??..."





무섭다.. 나를 이토록 사랑해주는 [서연]이가 진짜.. 결혼까지 작정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서연아.. 오빠.. 진짜 너 사랑해..."

"사랑사랑.. 그놈의 사랑.. 사랑이 뭔데??.. 그건.. 짙은 호감정도 밖에 안될수도 있어..."



"오빠의 사랑을 보여줘??...언젠가.. 꼭 너랑 결혼할께.. 진짜야!!.."

"싫어.. 보여주려면 빨리 보여줘.. 올해..아니..당장..!!...."



"머?????????????????...... 야!!.. 넌 무슨 여자애가 프로포즈 같은거 생각도 않고..

앞뒤 막나가고.. 갑자기 왜이래??..."

"나 그딴 상술에 젖은 관습 필요없거든???... 그냥.. 너랑 나랑만 있으면 그만이지.. 뭘 더바래??"



"야.. 나 니네 부모님들 얼굴도 몰라!!.. 너 이러는거 니네 엄마아빠 아직 모를꺼 아냐??.."

"그건 내가 알아서 해.. 하여간 오늘은 얘기 끝..."



"야.. 넌 어떻게 된게.. 니 얘기만 하고 그러냐??...오빠 얘기도 좀 들어봐야지.."

"이거바바... 끝까지야... 난 니가 내생각과 같아주길 바랬는데.. 넌 사랑이라는 애매한

선.. 거기까지만 날 생각하고 있는거야..."



"서연아.. 내가 생각하는 사랑으로는 넌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의 전부야..."

"............"



"꼭.. 너랑 결혼할꺼야.. 아니.. 너 없으면.. 난 못살아.."

"그럼.. 왜 나랑 헤어지고 난뒤.. 나 안찾았어?? 내가 오빠 안찾았으면.. 우리 이렇게 다시

시작하지도 않았겠지....."



"........그거 얘기 했잖아..죽은 은영이 때문에도 그렇고.. 너한테도 그렇고..에이........."

"나 솔직히.. 불안해.. 오빠랑 어떻게 될까봐.. 무섭고.. 빨리 결혼하고 싶어.."



"나도 결혼하고 싶어..너보다 더... 백배..천배..더!!.... 근데.. 지금은 좀 그렇잖냐.."

"자꾸.. 했던 말 또하게 만들면서.. 나 설득하려 하지마.. 내가 분명히 얘기했지.. 다른게

뭐가 중요하냐고.. 너랑 나랑만 있으면 되는거라고.."



지금 좋아서 기뻐 훌쩍!! 뛰어올라야 할지.. 어째야 할지.. 도무지 모를 상황이다.

느닷없이 결혼이라니..!!!!....



분명히 무슨일이 있을껏만 같다.

아무리 엉뚱한 구석이 있는 [서연]이라지만.. 별 시덥지않은 일로 이렇게 까지 예민해하면서

느닷없는 결혼얘기를 한다는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알았어..!!... 그래.. 결혼해!!... 대신 졸업하는 해.. 내후년에 하자...."

"안돼...지금 당장 할꺼야..!!......"



"아니.. 도대체..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그렇지.. 넌 도대체...!!"

"나..임신했어.. 한달이야..."





"뭐????????????????????????????????????????............."







오!!... 하느님!!!.....T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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