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사랑했습니다 - 2부 5장
2019.04.21 14:10
다음날 내가 수업을 하는동안 미대 교수회의가 열렸다.
내 약속과는 달리 학장은 최교수를 집요하게 공격해갔다. 오랜만에 잡은 기회를 그냥 놓치지 않겠다는거다.
최교수는 묵묵히 학장파의 공격을 받고 있을뿐이다. 간간히 최교수를 옹호하는 교수들은 학장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했다.
최유진 부교수도 최교수를 옹호했다가 한소리를 들었다.
"뭐 아무튼 그 사람이 스스로 수업을 그만둔다고 나에게 얘기를 했으니 이 문제는 이쯤에서 덮기로 하겠습니다"
그때까지 잠잠히 듣고만 있던 최교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만두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분명히 제가 책임을 진다고 말씀드렸는데 갑자기 그게 무슨말씀입니까!!"
"아~ 그 사람이 먼저와서 수업을 그만두겠다고한거니 따질거면 거기가서 따지세요. 아무튼 다음 수업부터는 김광호선생이 수업을 하기로 했으니 그렇게 알고 있으세요."
"전 받아들일수 없습니다!!"
"이봐요~ 최교수!! 좋게좋게 넘어갈랬더니 한번 해보자는거요!! 어디서 배워먹지 못한 고등학교 중퇴자를 데려와서 그런 말썽을 일으켜놓고 어디서 큰소리야. 큰소리가! 이런식으로 나오면 당신도 좋을거없어~!"
학장이 버럭 고함을 지른다.
회의실 분위기가 살벌해진다.
"똑똑..."
노크소리가 살벌한 정적을 깬다.
"누구야! 회의중인거 안보여!"
학장이 버럭 고함을 지른다.
교수진중 가장 막내인 최유진 부교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더니 깜짝 놀라며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며 문밖으로 나간다.
"선생님.. 안녕하셨습니까!!"
최유진 교수의 큰 목소리에 자리에 앉아있던 교수들은 뭔가싶어서 문쪽을 바라본다.
"최군. 잘 지냈나"
문밖에서 들려오는 노인의 목소리에 자리에 앉아있던 교수들이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최교수의 부축을 받고 들어오는 백발의 노인을 보고 누가 먼저라고 할것없이 문쪽으로 뛰다시피 튀어나가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한다.
그건 거만하게 앉아있던 학장도 마찬가지다.
"선생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허허. 박군도 잘지냈는가. 오~ 그래 최군, 김군. 허허"
도대체 이 노인이 누군데 교수들을 박군, 최군, 김군이라고 부르고 교수들은 이렇게 깍듯하게 노인을 대하는걸까.
"선생님, 이곳까지 어쩐일로.."
학장인 박교수가 조심스레 묻는다.
"허허. 늙은이가 방에만 박혀있으니 답답해서 오랜만에 바람이나 쏘일까해서 나왔네."
"아~ 그러셨군요~ 그럼 제가 모시겠습니다. 자~ 선생님도 오셨으니 회의는 여기서 끝내고 다같이 식사나 하러 갑시다."
다른 교수들도 그러자고 동조를한다.
"허허~ 아닐세. 한창 회의중인거 같은데 마저 끝내게. 아직 식사하려면 시간도 이른거 같으니. 난 잠시 기다림세"
"그래도 선생님을 기다리시게 하는건.."
"괜찮네~ 나도 오랜만에 학교에 돌아온 기분도 좀 내보고싶네"
노인은 벌써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최유진 교수가 재빨리 의자를 빼준다. 노인은 최교수에게 인자한 미소로 고마움을 표시한다.
다시 회의가 재개됐다.
노인 때문인지 아까처럼 살벌한 분위기는 없어졌지만, 강사교체는 대세로 굳어져갔고 학장의 마지막 선언만 남은 상태였다.
최교수도 어쩔수없이 받아들일수 밖에 없었다.
"박군. 내가 한마디 해도 되겠나?"
조용히 듣고있던 노인이 나섰다.
"예? 아예! 물론입니다. 선생님."
테이블에 둘러앉아있던 교수들의 시선이 일시에 노인에게 모여졌다. 그들의 눈빛만봐도 노인에 대한 존경심과 경외감이 어느정도인지 느껴진다.
노인은 자리에 둘러앉은 교수들을 한번 스윽 둘러보더니 입을 열었다.
"허허. 자네들과 수업을 하던게 얼마전인거 같은데 이렇게 마주보니 감회가 새롭구만. 최군이 제일 마지막에 나와 수업을 했지 아마?"
"예. 선생님. 제가 막냅니다.^^"
"허허~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군.."
노인은 감회어린 표정이다.
이 노인은 도대체 누군가.
이근찬..
이것이 이 노인의 이름이다. 그리고 그 앞에는 항상 미술계의 대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현대 한국미술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들 중 한명이고 이 학교에서 30년간 학생들을 가르쳐 대한민국 미술계에서 내노라하는 사람들중 상당수가 그의 제자들이다.
또한 고아한 인품으로 미술인들에게 가장 존경을 받는 인물이기도하다. 십년전 은퇴를 했지만, 여전히 그의 명성은 대단했다.
"최군.. 자네는 내 수업에서 무슨 학점을 받았는지 기억하나?"
"예? 학점이요?"
최유진 부교수가 놀라서 되묻다가 금새 얼굴이 빨개져서 대답한다.
"B- 입니다."
"흠.. 박군은 어떤가? 기억이 나시는가?"
"예? 그게... 하도 오래전이라.."
"허허~ 하긴 박군이 나에게 배운게 벌써 30년 전이구만"
"죄송합니다."
"허허허. 아닐세~ 그게 무에 죄송할 일인가. 그럼 김군, 최군은 어떤가? 기억이 나시는가?"
"부끄럽지만.. 저도 B-였던걸로 기억합니다..하하"
조형과 김교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하지만, 누구도 그 학점을 비웃지 않는다. 이 자리에서 이 노인에게 B+를 받은 사람은 단 한명 뿐이었다. 바로 최진수교수다.
30년간 이근찬 교수에게 A를 받은 사람은 총 3명이었다. 그것도 전부 A-.. 그리고 그 세사람은 대한민국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10인에 모두 꼽히는 인물들이다.
이교수의 수업에서 절반은 낙제다. C학점만 받아도 감지덕지할 지경이다. 이렇게 학점이 짠데도 불구하고 이교수의 수업은 항상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그만큼 그의 명성은 독보적이었던것이다.
"내가 15년전에 중3 남학생을 우연히 만나 그 친구의 스케치북을 본적이 있네"
느닷없이 노인이 옛날얘기를 꺼낸다. 다들 무슨 소린가 귀를 기울이는데 한사람 최유진 부교수만 살풋 미소를 짓고있다.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적도 없는 16살짜리의 스케치북에 난 주저없이 B+를 매겼네."
교수들은 모두 자기 귀를 의심했다. B+.. 자기들중 오직 한명만이 받았던 점수를 미술을 배운적도 없는 16살짜리에게 줬다고?
"그 아이의 그림을 보고 정말 오랜만에 희열을 느꼈더랬지.. 得天下英才敎育之三樂也라... 허허"
교수들의 표정은 이교수님이 맹자까지 인용하시다니 확실히 대단한 인물인가보다라는 표정이다. 그는 자애로웠지만, 평가만은 냉정했다. 수없이 많은 천재들을 배출했지만 반대로 수많은 미술학도들이 그의 한마디에 꿈을 접기도했다.
민수림도 그중 한명이었다. 하지만 이 노교수는 무작정 넌 재능이 없으니 그만두라고 하지는 않는다. 숨겨진 잠재력을 발견하고 그것을 일깨워주는것도 잊지않았다. 민수림이 교행직을 결심한것도 이교수의 조언때문이었다. 이런점 때문에 이 노교수가 많은 미술학도들의 존경을 받았던것이다.
아무튼 평가에 냉정한 이 노교수에게 처음보인 작품이 B+라니.. 경악할만한 일이다. 자신들은 수년간 가르침을 받은후에야 겨우 B+, B-를 받지 않았던가. 어리다고 점수를 후하게 줄 사람이 아니란것은 누구보다 자신들이 더 잘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자리에서 그 얘기를 꺼내지? 교수들에게 이런 의문이 떠오를즘 이교수가 최유진 부교수를 바라보면 물었다.
"최군이 그때 그 아이의 그림을 같이 봤었지?"
"예. 선생님. 제가 그때 선생님 수업을 듣던 때였습니다"
교수들의 시선이 최유진 부교수에게 쏠렸다.
"그 아이의 이름을 기억하는가?"
"예. 분명히 기억합니다. 신태우라고 했었습니다."
신태우?? 좌중은 경악했다. 그 이름이라면 방금까지 자기들이 고등학교 중퇴라고 열심히 까댔던 이름이 아닌가. 특히 학장의 표정은 가관이었다. 놀라기는 최교수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추천해서 데려오긴 했지만 그런 이력이 있는지는 몰랐었다.
이 자리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은 딱 한사람... 최유진이다. 사실 이 자리에 노인이 참석한 이유도 그녀때문이다. 오늘 교수회의에서 분명 태우가 궁지에 몰릴걸 알고 그녀가 은사를 찾아가서 사정을 얘기한것이다. 사실 급한 마음에 얘기는 했지만, 설마 은퇴한 노교수가 직접 찾아올지는 그녀도 짐작을 못했었다. 그냥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는데 이건 예상외의 구명튜브다.
그가 인정했다는것은 대한민국 미술계가 인정했다는뜻이다. 학벌이니 인맥이니 경력이니 따위는 뒷문제다. 갑자기 회의장 분위기는 급변했다.
"허허..아무래도 회의가 좀더 길어질거 같으니 난 먼저 일어나보겠네. 내 오랜만에 학교도 좀 둘러보고 있겠네."
"선생님, 제가 모시겠습니다."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최유진이 재빨리 다가선다.
교수들의 배웅을 받고 노인이 회의장을 나가자 교수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난감한 표정을 짓고있다. 특히 학장인 박교수는 완전 똥씹은 표정이다. 다된밥에 완전히 코빠뜨렸다. 그렇다고 여기서 자기뜻을 밀어붙일수도 없다.. 젠장...
결국 회의는 다시 재개됐고, 강의는 그대로 계속하고 경고를 주는 선에서 징계는 마무리하기로 했다.
교수들이 한창 내 문제로 회의를 하는동안 나는 마지막 강의를 하고있었다. 아쉽다거나 분하다거나하는 감정은 없다. 나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거지로 강의를 계속하겠다고 싸우고 싶지도않고 이 강의를 그만둔다고 내 밥줄에 문제가 생기는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 시간에 다른일을 하는것이 수입적인 측면에서는 최소 몇배 이익이다.
다만 나를 믿고 열심히 따라준 학생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드는것은 어쩔수 없었다.
"그럼 수업은 여기까지 하기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께 말씀드릴게 있습니다"
가방을 챙기던 학생들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제가 사정이 생겨서 더이상 수업을 진행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제 수업은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강의실이 급격히 웅성대기 시작한다. 일부는 분노했고, 일부는 슬퍼했다. 즐거워할 애들은 이미 강의실에 남아있지 않았다. 다행히 주희는 집안에 일이 있어서 오늘 결석을했다.
"선생님 학벌 때문인가요?"
한 여학생이 잔뜩 화가난 눈으로 물어온다. 당장 총장에게라도 달려갈 기세다.
다른 학생들도 내 대답을 기다리고있다. 내가 그렇다라고 대답하면 그것을 뇌관으로 폭발할것같았다.
"그것과는 전혀 관계없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강의를 하고, 이번 일을 겪으면서 저 스스로도 제가 대학에서 강의하기에 많이 부족하다는걸 느꼈습니다. 좀더 준비를 하고 했어야하는데 너무 급작스럽게 강의를 하게되다보니 만족할만한 강의를 못하는것 같아서.."
흥분한 아이들을 겨우 진정시켜놓을때쯤 문자가 들어왔다.
"수업 마쳤어? 끝나면 내 전용커피숍으로~^^"
최유진 부교수다.
"아무튼 강의는 여기서 끝내지만, 언제든지 도움이 필요하거나 배가 고프거나 술이 고플때는 연락하세요. 민생고 정도는 해결해줄테니^^"
아쉬워하는 학생들을 뒤로하고 유진누나가 말한 자판기앞으로 가니 미리 와있던 누나가 반갑게 손을 흔든다. 그런데 옆에 왠 노인도 한명 같이있다.
"날 기억하시겠는가? 벌써 15년전에 한번 봤는데"
노인이 인자한 미소를 띄며 물었다.
노인을 자세히 보니 확실히 낯이 익었다.
"혹시.. 수림이 누나와 학교왔을때 뵜던..."
"허허. 용케 기억하고 있었구먼. 그래, 자네가 15년전에 민군이랑 함께 학교에 왔었지."
난 재빨리 허리를 굽혀 인사를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신태우입니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허허허. 보다시피 아직 잘 돌아다니고 있다네. 자네도 멋진 청년이됐구만. 우리 최군이 왜그렇게 호들갑을 떠는가했더니~허허허"
"선생님~~!! 저 유부녀예요~~~"
"아 그랬던가?허허허허"
얘기는 자연스럽게 수림 누나 얘기로 이어졌다. 교수님은 수림누나의 갑작스런 죽음을 매우 안타까워하셨다. 그때 교수님은 외국에 나가계셔서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셨다고한다.
그때 회의를 마친 최교수가 저쪽에서 뛰어왔다.
"선생님, 여기 계셨군요. 마침 신선생도 있었군."
"예. 안그래도 최교수님을 찾아뵐려고 했었습니다."
"혹시 마지막 인사라도 하려고요?"
최교수가 싱긋 웃으면서 말한다.
"예. 그것도 그렇고.."
"하하 그 얘기라면 안해도됩니다. 방금 회의에서 그 얘기는 없던일로 하기로 했습니다. 그냥 구두경고로 끝날겁니다"
"예? 그게 무슨.."
"저희 은사님께서 말씀을 잘해주셔서 좋게 해결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신선생이 계속 수업을 해주세요"
"잘됐네요~ 태우씨 한턱 내셔야겠어요~후후"
"안그래도 지금 선생님 모시고 다같이 식사하러 갈건데 신선생도 같이 갑시다."
"힘써주신건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전 역시 그만두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내 의외의 대답에 최교수와 유진누나가 놀란 얼굴로 바라본다.
"신선생이 이번일로 많이 기분나쁜건 알아요. 한번만 참고 계속 맡아줘요. 내가 이렇게 부탁하겠습니다."
"자존심이 상해서 그만두겠다는게 아닙니다. 사실 수업을 하면서도 제가 많이 부족하다는걸 느꼈습니다. 이렇게 신경써주시는데 이런말씀 드리게되서 뭐라 드릴말씀이 없습니다."
유진누나까지 가세해서 몇번 더 설득하려 했지만, 내뜻이 완고하다는걸 알고 결국 최교수도 단념할수 밖에 없었다.
"많이 아쉽군요. 하지만, 다음 학기에는 저도 절대 포기안합니다~"
"하하. 그땐 제가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아쉽다~ 오랜만에 학교다닐 맛이 났었는데~"
"하하하, 허허"
유진누나의 한마디에 다같이 웃음을 터트렸다.
"수업은 수업이고 식사하러 갑시다. 단번에 이교수님께 B+을 받은 신화를 들어봐야지~"
"아.. 어쩌죠.. 제가 오늘 저녁에 부산에 내려가야되서.. 제가 다음에 제대로 대접한번 하겠습니다."
"그럼 교수님 다음에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신군.. 내가 비록 자네를 직접 가르친적은 없지만 수림군에게 배웠으니, 내 제자와 다를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네. 언제든지 내 도움이 필요하면 찾아오게나."
가슴이 뭉클했다. 나에게 이렇게 마음을 써주는 사람들이 있을줄은 미처 몰랐다.
"예.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자 벌써 수연이는 짐을 다 싸놓고 기다리고있다.
"우아~ 무슨 짐이 이렇게 많아? 이사가냐?"
"히히~ 열흘씩이나 신혼여행가는데 이정도는 기본이지~"
"신혼여행?"
"응~~ 아빠랑 나랑 신혼여행~"
"하하하~"
"웃지마~ 여행가있는동안엔 아빠가 내 애인해줘~ 이게 내가 원하는 생일선물이야~히히~"
"뭐~~~? 하하하하. 좋아~ 나도 영계애인 생기고 좋지뭐~"
"진짜? 히히~ 무르기없기다~~"
"내가 할말이네요~"
수연이는 신이나서 빨리 출발하자고 보챈다.
"임마~ 나도 준비좀하자~ 너만 이쁘게하면 아빠가 부끄럽잖아~"
"안그래도 아빠 입을거도 다 챙겨놨어~ 선글라스도 준비해놨지롱~호호호홍~"
이녀석 이번 여행이 그렇게 좋은가보다. 여행을 가기로한건 잘한것같다.
주말이라 경부고속도로는 많이 밀렸다. 경기도를 벗어나는데 거의 3시간이 걸렸다. 급할건 없었기에 휴게실에 들러서 커피도 마시면서 진짜 여행기분을 내면서 천천히 내려가기로했다.
수연이는 잔뜩 들떠서 노래도 크게 틀어놓고 쉴새없이 조잘거리더니 대구쯤 왔을때 잠이들었다. 잠든 수연이를 보니 형수를 꼭 빼닮았다.
어느새 도로는 뻥뚫려 한두시간이면 목적지인 해운대에 도착할수 있을거같았다.
기장을 지나 해운대로 들어서자 드디어 부산에 왔다는게 실감이 난다. 새벽2시가 넘었는데도 바닷가도로엔 사람들이 넘쳐난다. 핫팬츠와 탱크탑을 입은 늘씬한 여자들이 눈을 즐겁게한다. 여기저기 헌팅중인 남녀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남자들이 여자를 찾아 헤매듯이 여자들도 자기들을 꼬셔줄 남자를 찾아 헤매고 있을것이다.
숙소인 조선비치호텔에 도착할때까지 수연이는 잠이 깨지않았다. 깊이 잠든모양이다. 도어맨에게 차를 맡기고 수연이를 안아들었다. 가볍다. 수연이를 안고 호텔로 들어가자 사람들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키득거리며 웃는사람들도 있고 부러운눈으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다. ㅎㅎ;
벨맨의 안내로 객실로 들어갔다. 한창 성수기라 방을 잡기가 힘들었는데 마침 스위트룸이 하나 비어서 재빨리 예약을했다.
벨맨이 편히 쉬시라고 인사를하고 나가자 침대에 수연이를 눕히는데 갑자기 수연이가 눈을 뜬다.
"너 깨있었어?"
"헤헤~ 아빠가 안아줄때부터 깨있었지롱~"
"임마~ 그럼 빨리 얘기하지~ 창피하게.."
"모어때~ 난 좋기만하구만~ 신혼여행인데 이정도는 해줘야지~"
"예~~ 알아모시겠습니다~ 공주님~~"
"호호~ 그래~ 내 두고보겠노라~~"
"어서 씻고 자자. 내일부터 놀려면 체력비축해야지~"
"옹~ 귀찮다.. 그냥자면 안되나.."
"어허~ 빨리~~"
"알았오~~ 아빠도 같이 씻을래? 키킥"
"딱~~"
"아야~~ 왜때려~~ 피~~ 이런기회가 흔한줄 아나~ 나중에 후회하지 마셔~~"
수연이가 입을 삐죽 내밀더니 욕실로 들어갔다.
침대에 몸을 눕히자 피로가 밀려온다. 나도모르게 스르르 눈이감겼다..
내 약속과는 달리 학장은 최교수를 집요하게 공격해갔다. 오랜만에 잡은 기회를 그냥 놓치지 않겠다는거다.
최교수는 묵묵히 학장파의 공격을 받고 있을뿐이다. 간간히 최교수를 옹호하는 교수들은 학장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했다.
최유진 부교수도 최교수를 옹호했다가 한소리를 들었다.
"뭐 아무튼 그 사람이 스스로 수업을 그만둔다고 나에게 얘기를 했으니 이 문제는 이쯤에서 덮기로 하겠습니다"
그때까지 잠잠히 듣고만 있던 최교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만두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분명히 제가 책임을 진다고 말씀드렸는데 갑자기 그게 무슨말씀입니까!!"
"아~ 그 사람이 먼저와서 수업을 그만두겠다고한거니 따질거면 거기가서 따지세요. 아무튼 다음 수업부터는 김광호선생이 수업을 하기로 했으니 그렇게 알고 있으세요."
"전 받아들일수 없습니다!!"
"이봐요~ 최교수!! 좋게좋게 넘어갈랬더니 한번 해보자는거요!! 어디서 배워먹지 못한 고등학교 중퇴자를 데려와서 그런 말썽을 일으켜놓고 어디서 큰소리야. 큰소리가! 이런식으로 나오면 당신도 좋을거없어~!"
학장이 버럭 고함을 지른다.
회의실 분위기가 살벌해진다.
"똑똑..."
노크소리가 살벌한 정적을 깬다.
"누구야! 회의중인거 안보여!"
학장이 버럭 고함을 지른다.
교수진중 가장 막내인 최유진 부교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더니 깜짝 놀라며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며 문밖으로 나간다.
"선생님.. 안녕하셨습니까!!"
최유진 교수의 큰 목소리에 자리에 앉아있던 교수들은 뭔가싶어서 문쪽을 바라본다.
"최군. 잘 지냈나"
문밖에서 들려오는 노인의 목소리에 자리에 앉아있던 교수들이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최교수의 부축을 받고 들어오는 백발의 노인을 보고 누가 먼저라고 할것없이 문쪽으로 뛰다시피 튀어나가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한다.
그건 거만하게 앉아있던 학장도 마찬가지다.
"선생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허허. 박군도 잘지냈는가. 오~ 그래 최군, 김군. 허허"
도대체 이 노인이 누군데 교수들을 박군, 최군, 김군이라고 부르고 교수들은 이렇게 깍듯하게 노인을 대하는걸까.
"선생님, 이곳까지 어쩐일로.."
학장인 박교수가 조심스레 묻는다.
"허허. 늙은이가 방에만 박혀있으니 답답해서 오랜만에 바람이나 쏘일까해서 나왔네."
"아~ 그러셨군요~ 그럼 제가 모시겠습니다. 자~ 선생님도 오셨으니 회의는 여기서 끝내고 다같이 식사나 하러 갑시다."
다른 교수들도 그러자고 동조를한다.
"허허~ 아닐세. 한창 회의중인거 같은데 마저 끝내게. 아직 식사하려면 시간도 이른거 같으니. 난 잠시 기다림세"
"그래도 선생님을 기다리시게 하는건.."
"괜찮네~ 나도 오랜만에 학교에 돌아온 기분도 좀 내보고싶네"
노인은 벌써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최유진 교수가 재빨리 의자를 빼준다. 노인은 최교수에게 인자한 미소로 고마움을 표시한다.
다시 회의가 재개됐다.
노인 때문인지 아까처럼 살벌한 분위기는 없어졌지만, 강사교체는 대세로 굳어져갔고 학장의 마지막 선언만 남은 상태였다.
최교수도 어쩔수없이 받아들일수 밖에 없었다.
"박군. 내가 한마디 해도 되겠나?"
조용히 듣고있던 노인이 나섰다.
"예? 아예! 물론입니다. 선생님."
테이블에 둘러앉아있던 교수들의 시선이 일시에 노인에게 모여졌다. 그들의 눈빛만봐도 노인에 대한 존경심과 경외감이 어느정도인지 느껴진다.
노인은 자리에 둘러앉은 교수들을 한번 스윽 둘러보더니 입을 열었다.
"허허. 자네들과 수업을 하던게 얼마전인거 같은데 이렇게 마주보니 감회가 새롭구만. 최군이 제일 마지막에 나와 수업을 했지 아마?"
"예. 선생님. 제가 막냅니다.^^"
"허허~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군.."
노인은 감회어린 표정이다.
이 노인은 도대체 누군가.
이근찬..
이것이 이 노인의 이름이다. 그리고 그 앞에는 항상 미술계의 대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현대 한국미술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들 중 한명이고 이 학교에서 30년간 학생들을 가르쳐 대한민국 미술계에서 내노라하는 사람들중 상당수가 그의 제자들이다.
또한 고아한 인품으로 미술인들에게 가장 존경을 받는 인물이기도하다. 십년전 은퇴를 했지만, 여전히 그의 명성은 대단했다.
"최군.. 자네는 내 수업에서 무슨 학점을 받았는지 기억하나?"
"예? 학점이요?"
최유진 부교수가 놀라서 되묻다가 금새 얼굴이 빨개져서 대답한다.
"B- 입니다."
"흠.. 박군은 어떤가? 기억이 나시는가?"
"예? 그게... 하도 오래전이라.."
"허허~ 하긴 박군이 나에게 배운게 벌써 30년 전이구만"
"죄송합니다."
"허허허. 아닐세~ 그게 무에 죄송할 일인가. 그럼 김군, 최군은 어떤가? 기억이 나시는가?"
"부끄럽지만.. 저도 B-였던걸로 기억합니다..하하"
조형과 김교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하지만, 누구도 그 학점을 비웃지 않는다. 이 자리에서 이 노인에게 B+를 받은 사람은 단 한명 뿐이었다. 바로 최진수교수다.
30년간 이근찬 교수에게 A를 받은 사람은 총 3명이었다. 그것도 전부 A-.. 그리고 그 세사람은 대한민국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10인에 모두 꼽히는 인물들이다.
이교수의 수업에서 절반은 낙제다. C학점만 받아도 감지덕지할 지경이다. 이렇게 학점이 짠데도 불구하고 이교수의 수업은 항상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그만큼 그의 명성은 독보적이었던것이다.
"내가 15년전에 중3 남학생을 우연히 만나 그 친구의 스케치북을 본적이 있네"
느닷없이 노인이 옛날얘기를 꺼낸다. 다들 무슨 소린가 귀를 기울이는데 한사람 최유진 부교수만 살풋 미소를 짓고있다.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적도 없는 16살짜리의 스케치북에 난 주저없이 B+를 매겼네."
교수들은 모두 자기 귀를 의심했다. B+.. 자기들중 오직 한명만이 받았던 점수를 미술을 배운적도 없는 16살짜리에게 줬다고?
"그 아이의 그림을 보고 정말 오랜만에 희열을 느꼈더랬지.. 得天下英才敎育之三樂也라... 허허"
교수들의 표정은 이교수님이 맹자까지 인용하시다니 확실히 대단한 인물인가보다라는 표정이다. 그는 자애로웠지만, 평가만은 냉정했다. 수없이 많은 천재들을 배출했지만 반대로 수많은 미술학도들이 그의 한마디에 꿈을 접기도했다.
민수림도 그중 한명이었다. 하지만 이 노교수는 무작정 넌 재능이 없으니 그만두라고 하지는 않는다. 숨겨진 잠재력을 발견하고 그것을 일깨워주는것도 잊지않았다. 민수림이 교행직을 결심한것도 이교수의 조언때문이었다. 이런점 때문에 이 노교수가 많은 미술학도들의 존경을 받았던것이다.
아무튼 평가에 냉정한 이 노교수에게 처음보인 작품이 B+라니.. 경악할만한 일이다. 자신들은 수년간 가르침을 받은후에야 겨우 B+, B-를 받지 않았던가. 어리다고 점수를 후하게 줄 사람이 아니란것은 누구보다 자신들이 더 잘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자리에서 그 얘기를 꺼내지? 교수들에게 이런 의문이 떠오를즘 이교수가 최유진 부교수를 바라보면 물었다.
"최군이 그때 그 아이의 그림을 같이 봤었지?"
"예. 선생님. 제가 그때 선생님 수업을 듣던 때였습니다"
교수들의 시선이 최유진 부교수에게 쏠렸다.
"그 아이의 이름을 기억하는가?"
"예. 분명히 기억합니다. 신태우라고 했었습니다."
신태우?? 좌중은 경악했다. 그 이름이라면 방금까지 자기들이 고등학교 중퇴라고 열심히 까댔던 이름이 아닌가. 특히 학장의 표정은 가관이었다. 놀라기는 최교수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추천해서 데려오긴 했지만 그런 이력이 있는지는 몰랐었다.
이 자리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은 딱 한사람... 최유진이다. 사실 이 자리에 노인이 참석한 이유도 그녀때문이다. 오늘 교수회의에서 분명 태우가 궁지에 몰릴걸 알고 그녀가 은사를 찾아가서 사정을 얘기한것이다. 사실 급한 마음에 얘기는 했지만, 설마 은퇴한 노교수가 직접 찾아올지는 그녀도 짐작을 못했었다. 그냥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는데 이건 예상외의 구명튜브다.
그가 인정했다는것은 대한민국 미술계가 인정했다는뜻이다. 학벌이니 인맥이니 경력이니 따위는 뒷문제다. 갑자기 회의장 분위기는 급변했다.
"허허..아무래도 회의가 좀더 길어질거 같으니 난 먼저 일어나보겠네. 내 오랜만에 학교도 좀 둘러보고 있겠네."
"선생님, 제가 모시겠습니다."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최유진이 재빨리 다가선다.
교수들의 배웅을 받고 노인이 회의장을 나가자 교수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난감한 표정을 짓고있다. 특히 학장인 박교수는 완전 똥씹은 표정이다. 다된밥에 완전히 코빠뜨렸다. 그렇다고 여기서 자기뜻을 밀어붙일수도 없다.. 젠장...
결국 회의는 다시 재개됐고, 강의는 그대로 계속하고 경고를 주는 선에서 징계는 마무리하기로 했다.
교수들이 한창 내 문제로 회의를 하는동안 나는 마지막 강의를 하고있었다. 아쉽다거나 분하다거나하는 감정은 없다. 나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거지로 강의를 계속하겠다고 싸우고 싶지도않고 이 강의를 그만둔다고 내 밥줄에 문제가 생기는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 시간에 다른일을 하는것이 수입적인 측면에서는 최소 몇배 이익이다.
다만 나를 믿고 열심히 따라준 학생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드는것은 어쩔수 없었다.
"그럼 수업은 여기까지 하기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께 말씀드릴게 있습니다"
가방을 챙기던 학생들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제가 사정이 생겨서 더이상 수업을 진행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제 수업은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강의실이 급격히 웅성대기 시작한다. 일부는 분노했고, 일부는 슬퍼했다. 즐거워할 애들은 이미 강의실에 남아있지 않았다. 다행히 주희는 집안에 일이 있어서 오늘 결석을했다.
"선생님 학벌 때문인가요?"
한 여학생이 잔뜩 화가난 눈으로 물어온다. 당장 총장에게라도 달려갈 기세다.
다른 학생들도 내 대답을 기다리고있다. 내가 그렇다라고 대답하면 그것을 뇌관으로 폭발할것같았다.
"그것과는 전혀 관계없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강의를 하고, 이번 일을 겪으면서 저 스스로도 제가 대학에서 강의하기에 많이 부족하다는걸 느꼈습니다. 좀더 준비를 하고 했어야하는데 너무 급작스럽게 강의를 하게되다보니 만족할만한 강의를 못하는것 같아서.."
흥분한 아이들을 겨우 진정시켜놓을때쯤 문자가 들어왔다.
"수업 마쳤어? 끝나면 내 전용커피숍으로~^^"
최유진 부교수다.
"아무튼 강의는 여기서 끝내지만, 언제든지 도움이 필요하거나 배가 고프거나 술이 고플때는 연락하세요. 민생고 정도는 해결해줄테니^^"
아쉬워하는 학생들을 뒤로하고 유진누나가 말한 자판기앞으로 가니 미리 와있던 누나가 반갑게 손을 흔든다. 그런데 옆에 왠 노인도 한명 같이있다.
"날 기억하시겠는가? 벌써 15년전에 한번 봤는데"
노인이 인자한 미소를 띄며 물었다.
노인을 자세히 보니 확실히 낯이 익었다.
"혹시.. 수림이 누나와 학교왔을때 뵜던..."
"허허. 용케 기억하고 있었구먼. 그래, 자네가 15년전에 민군이랑 함께 학교에 왔었지."
난 재빨리 허리를 굽혀 인사를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신태우입니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허허허. 보다시피 아직 잘 돌아다니고 있다네. 자네도 멋진 청년이됐구만. 우리 최군이 왜그렇게 호들갑을 떠는가했더니~허허허"
"선생님~~!! 저 유부녀예요~~~"
"아 그랬던가?허허허허"
얘기는 자연스럽게 수림 누나 얘기로 이어졌다. 교수님은 수림누나의 갑작스런 죽음을 매우 안타까워하셨다. 그때 교수님은 외국에 나가계셔서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셨다고한다.
그때 회의를 마친 최교수가 저쪽에서 뛰어왔다.
"선생님, 여기 계셨군요. 마침 신선생도 있었군."
"예. 안그래도 최교수님을 찾아뵐려고 했었습니다."
"혹시 마지막 인사라도 하려고요?"
최교수가 싱긋 웃으면서 말한다.
"예. 그것도 그렇고.."
"하하 그 얘기라면 안해도됩니다. 방금 회의에서 그 얘기는 없던일로 하기로 했습니다. 그냥 구두경고로 끝날겁니다"
"예? 그게 무슨.."
"저희 은사님께서 말씀을 잘해주셔서 좋게 해결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신선생이 계속 수업을 해주세요"
"잘됐네요~ 태우씨 한턱 내셔야겠어요~후후"
"안그래도 지금 선생님 모시고 다같이 식사하러 갈건데 신선생도 같이 갑시다."
"힘써주신건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전 역시 그만두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내 의외의 대답에 최교수와 유진누나가 놀란 얼굴로 바라본다.
"신선생이 이번일로 많이 기분나쁜건 알아요. 한번만 참고 계속 맡아줘요. 내가 이렇게 부탁하겠습니다."
"자존심이 상해서 그만두겠다는게 아닙니다. 사실 수업을 하면서도 제가 많이 부족하다는걸 느꼈습니다. 이렇게 신경써주시는데 이런말씀 드리게되서 뭐라 드릴말씀이 없습니다."
유진누나까지 가세해서 몇번 더 설득하려 했지만, 내뜻이 완고하다는걸 알고 결국 최교수도 단념할수 밖에 없었다.
"많이 아쉽군요. 하지만, 다음 학기에는 저도 절대 포기안합니다~"
"하하. 그땐 제가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아쉽다~ 오랜만에 학교다닐 맛이 났었는데~"
"하하하, 허허"
유진누나의 한마디에 다같이 웃음을 터트렸다.
"수업은 수업이고 식사하러 갑시다. 단번에 이교수님께 B+을 받은 신화를 들어봐야지~"
"아.. 어쩌죠.. 제가 오늘 저녁에 부산에 내려가야되서.. 제가 다음에 제대로 대접한번 하겠습니다."
"그럼 교수님 다음에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신군.. 내가 비록 자네를 직접 가르친적은 없지만 수림군에게 배웠으니, 내 제자와 다를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네. 언제든지 내 도움이 필요하면 찾아오게나."
가슴이 뭉클했다. 나에게 이렇게 마음을 써주는 사람들이 있을줄은 미처 몰랐다.
"예.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자 벌써 수연이는 짐을 다 싸놓고 기다리고있다.
"우아~ 무슨 짐이 이렇게 많아? 이사가냐?"
"히히~ 열흘씩이나 신혼여행가는데 이정도는 기본이지~"
"신혼여행?"
"응~~ 아빠랑 나랑 신혼여행~"
"하하하~"
"웃지마~ 여행가있는동안엔 아빠가 내 애인해줘~ 이게 내가 원하는 생일선물이야~히히~"
"뭐~~~? 하하하하. 좋아~ 나도 영계애인 생기고 좋지뭐~"
"진짜? 히히~ 무르기없기다~~"
"내가 할말이네요~"
수연이는 신이나서 빨리 출발하자고 보챈다.
"임마~ 나도 준비좀하자~ 너만 이쁘게하면 아빠가 부끄럽잖아~"
"안그래도 아빠 입을거도 다 챙겨놨어~ 선글라스도 준비해놨지롱~호호호홍~"
이녀석 이번 여행이 그렇게 좋은가보다. 여행을 가기로한건 잘한것같다.
주말이라 경부고속도로는 많이 밀렸다. 경기도를 벗어나는데 거의 3시간이 걸렸다. 급할건 없었기에 휴게실에 들러서 커피도 마시면서 진짜 여행기분을 내면서 천천히 내려가기로했다.
수연이는 잔뜩 들떠서 노래도 크게 틀어놓고 쉴새없이 조잘거리더니 대구쯤 왔을때 잠이들었다. 잠든 수연이를 보니 형수를 꼭 빼닮았다.
어느새 도로는 뻥뚫려 한두시간이면 목적지인 해운대에 도착할수 있을거같았다.
기장을 지나 해운대로 들어서자 드디어 부산에 왔다는게 실감이 난다. 새벽2시가 넘었는데도 바닷가도로엔 사람들이 넘쳐난다. 핫팬츠와 탱크탑을 입은 늘씬한 여자들이 눈을 즐겁게한다. 여기저기 헌팅중인 남녀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남자들이 여자를 찾아 헤매듯이 여자들도 자기들을 꼬셔줄 남자를 찾아 헤매고 있을것이다.
숙소인 조선비치호텔에 도착할때까지 수연이는 잠이 깨지않았다. 깊이 잠든모양이다. 도어맨에게 차를 맡기고 수연이를 안아들었다. 가볍다. 수연이를 안고 호텔로 들어가자 사람들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키득거리며 웃는사람들도 있고 부러운눈으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다. ㅎㅎ;
벨맨의 안내로 객실로 들어갔다. 한창 성수기라 방을 잡기가 힘들었는데 마침 스위트룸이 하나 비어서 재빨리 예약을했다.
벨맨이 편히 쉬시라고 인사를하고 나가자 침대에 수연이를 눕히는데 갑자기 수연이가 눈을 뜬다.
"너 깨있었어?"
"헤헤~ 아빠가 안아줄때부터 깨있었지롱~"
"임마~ 그럼 빨리 얘기하지~ 창피하게.."
"모어때~ 난 좋기만하구만~ 신혼여행인데 이정도는 해줘야지~"
"예~~ 알아모시겠습니다~ 공주님~~"
"호호~ 그래~ 내 두고보겠노라~~"
"어서 씻고 자자. 내일부터 놀려면 체력비축해야지~"
"옹~ 귀찮다.. 그냥자면 안되나.."
"어허~ 빨리~~"
"알았오~~ 아빠도 같이 씻을래? 키킥"
"딱~~"
"아야~~ 왜때려~~ 피~~ 이런기회가 흔한줄 아나~ 나중에 후회하지 마셔~~"
수연이가 입을 삐죽 내밀더니 욕실로 들어갔다.
침대에 몸을 눕히자 피로가 밀려온다. 나도모르게 스르르 눈이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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