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절망 - 10부

내가 사랑한 절망

진아가 대식가의 폭력으로부터 해방된 것은 그 이후로 한참을 더 얻어맞은 이후였다. 그는 진아에게 사정을 하고도 한참을 더 두들겨 팼다. 진아는 애원도 하고 빌어도 봤지만 나중에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낌과 비명을 억누르며 무저항으로 맞았다. 그것이 이 아픔을 더 빨리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녀의 예상은 거의 틀리지 않았다.





대식가는 진아의 반응을 보더니 이내 지친 듯 숨을 몰아쉬며 옷을 여몄다. 진아는 흐느낌과 구역질이 올라오고 배가 아파 거의 허리를 피기 힘들 정도였지만 간신히 참고 대식가의 물건을 혀로 정성스럽게 닦고 자신의 소변을 핥아 마셨다.





섹스가 끝난 뒤 자지를 혀로 닦는 것은 이제 진아에게는 일반적인 행동이었다.





아침 식사와 용변을 허락받은 것은 그 이후였다. 정갈하게 담겼던 음식이 대식가의 발로 짓뭉개진 상태였지만 그정도면 진아의 입장에선 양호한 축에 드는 식사였다.





때문에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아침을 먹은 그녀가 쇠뭉치를 낑낑대고 들고나가며 “감사합니다”하고 한 공손한 인사에는 안도가 섞여 있었다. 대식가의 험상굳은 표정이 그나마 만족스럽게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대식가가 주로 육체에 고통을 준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견딜만한 수준에 속했다. 무자비한 폭력이 있을지언정, 대식가의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만족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불가능하지도 않았다.





진아는 방에서 나와 복도를 걸으며 내장이 뒤틀리는 기분 때문에 방금 먹은 음식을 몇 번이나 토할 뻔 했지만 억지로 참아냈다.





‘이 정도는 괜찮아.’





그녀는 풀린 다리로 휘청거리며 지하 창고의 구석에 있는 화장실을 찾았다. 사실 여기는 화장실이라기에도 민망스러웠다. 지하 구석에 나무 뚜껑이 덮인 양동이가 하나 있었을 뿐이었다. 굳이 장소를 지칭한다면 이 양동이가 화장실이자 변기이며 또 정화조이기도 했다.





아침부터 흠씬 두들겨 맞은 터라 요의나 변의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지만 다음 용변을 허락받을 때가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진아는 양동이 뚜껑을 열고 조심스럽게 앉았다.





뚜껑이 열리자 환기도 잘 되지 않는 지하실에 고약한 냄새가 올라왔다. 양동이가 바닥에 고정되지 않은 탓에 균형이 흐트러지면 양동이가 쏟아지는 대참사가 벌어진다. 그렇다고 엉덩이를 양동이에서 떼는 것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생각했을 때 거의 무리였다.





이전에 재래식 변기에 아예 앉지도 못했던 진아였지만 이젠 사정이 달라졌다. 가장 큰 계기는 서기와 함께 보낸 3일 간이었다. 그날을 떠올리면 차라리 오늘은 사정이 좋았다고 자평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녀가 이 화장실을 찾아야 할 때는 늘 그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건 앞으로도 계속 될 것만 같았다.





진아가 서기를 본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일주일 전, 그러니까 진아가 납치된지 약 8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납치 당시 받은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것이 고려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진아가 어렴풋이 깨달을 때였다.





그런 의미에서 당시 진아는 서기가 지하창고를 찾았을 때 일부 안심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녀가 느낀 서기는 대식가처럼 억세 보이지도 않았고 오덕이나 선생처럼 악랄해 보이지도 않았다. 이중에서는 유일하게 조용하고 내성적인 타입 그리고 유일한 정상인으로 보였다.





“안녕하세요...”





벌거벗은 채 엎드려 절을 하는 진아의 몸에는 곳곳에 멍과 딱지가 들러붙어 있었다. 진아를 찬찬히 살펴보던 서기가 한 말은 의외의 질문이었다.





“친환경, 재활용 이런 거 좋아하나?”





진아는 서기의 질문 의도를 두고 잠시 고민에 빠졌지만 이내 “예”라고 대답했다.





서기는 “잘됐군. 따라와”라고 짧게 대답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진아는 다소 안심하고 있었다. 며칠 간 겪은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워낙 크던 탓도 있었다.





서기가 진아를 데리고 간 곳은 이 건물 2층에 위치한 자신의 방이었다. 이곳의 특이한 점이라면 다른 방과 달리 생활의 냄새가 물씬 난다는 점이다. 두 개의 방을 터 싱크대와 화장실을 포함 두어 개의 방이 내부에 위치해한 오피스텔 같은 형태였다. 깨끗하게 청소가 된 것이 그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그간 제대로 먹지도 못했겠지. 계란은 좋아해?”





서기는 식탁 앞에서 물어봤고, 진아는 처음으로 느끼는 따뜻함에 감사하다는 말만 연발했다. 무릎을 꿇고 앉아있어 보이지 않았지만 서기는 2인용 식탁 위에서 뭔가를 차리는 듯 했다.





“그래, 두부는? 돼지고기도 먹지?”





“예, 먹어요 서기님.”





분위기가 서서히 이상하다고 느끼기 시작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서기는 이후에도 감자, 상추, 소금, 식초, 된장을 먹냐고 물었고 심지어는 겨자, 배추, 마늘에 대해 질문하기도 했다.





진아는 먹는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지만 불안감은 급격하게 커져갔다. 식탁 위는 보이지 않았지만 무언가 부지런히 준비되고 있었다.





“뭐, 음식물 쓰레기도 괜찮겠지?”



“예, 예?”





진아가 어리둥절한 사이 곧바로 거친 모터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식탁 위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알 수 있었다. 그 소리는 바로 믹서기였다.





“변기도 영양 보충은 해야지”





처음처럼 담담한 어조였지만 진아는 그의 말이 호의에서 시작된 것이 아님을 직감하기 시작했다.





실제 그녀의 예상은 거의 틀리지 않았다. 서기는 커다란 사발에 담아온 내용물은 검붉은 녹색의 진득한 액체였다. 그가 말했던 모든 것을 믹서기에 갈아 넣은 것이리라.





“한방울도 남기지 말고 먹어”





“...예.”





식욕이 달아나는 모양새도 문제였지만 그보다는 그 양이 문제였다. 이건 거의 세수를 해도 될 정도였다. 진아는 사발을 들고 억지로 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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