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월드컵의 추억 - 단편7장

프랑스 월드컵의 추억그날,



혜미와 헤어지고 나서,

우리는 며칠간에 서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녀와 나 사이에는,

마치 팽팽한 기 싸움을 하듯이,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날,

혜미가 먼저 백기를(?)들고,

내게 연락을 해왔다.



-토요일인데 뭐해?..괜찮으면 우리 맥주 한잔 할래?-



나는,

특별히 할일도 없었고,

그녀가 무슨 얘기를 할지 궁금하기도 해서,

흔쾌히 알겠다고 대답을 하며 통화를 마쳤다.





1시간 후,



오랫만에 혜미와 나는 단골 술집을 찾았다.

예전에는 자주 다녔던 곳이였는데,

그러고보니 그것도 한참 전인 것 같다.



잠시후,

까페 어딘가에 우리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혜미가 메뉴판을 짚고선 내게 물어왔다.





-맥주 마실거지?-

-어..-

-안주는..치킨 맞지?-

-아냐..간단하게 그냥 마른 안주 같은거 먹자-



그녀는,

내 대답이 약간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단지 나는 저녁을 집에서 먹고 나와,

배가 고프지 않았던 것 뿐이었다.



얼마후,

혜미는 주문한 맥주 몇병과 안주가 나오자,

내게 잔을 내밀며 건배를 제안했다.



-짠하자 우리!-



그녀와 둘이서,

이런 자리를 가져보는 것도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아니, 술 자리에선 늘 다른 친구들이 같이 있었기에,

우리 둘만의 술자리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인것 같다.



혜미는,

잔을 부딪힌 뒤 단숨에 맥주 잔을 들이켰다.

나 역시도 그녀를 따라 똑같이 했다.





그녀는,

잠시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너 조금 바뀐 것 같아..-

-뭐가?-

-안주도 그렇고..예전에는 맥주 원샷 안했자나-

-그래?-



생각해보니,

그녀 말이 맞는것 같기도 했다.

나는 불과 몇 개월 전까지,

맥주 한잔으로 거의 한 시간을 버티는 스타일이였다.



-분위기도 한달 사이에 많이 바뀌었어-

-분위기?..어떻게?-

-뭐랄까..전에는 되게 바른 이미지였는데..-

-하하..-

-지금은..약간 다른것 같아..-



‘바른 이미지라..’



나는,

잠시 혜미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아마도 그녀가 말하는 건,

예전 그녀의 남자 친구였을때 내가 그녀를 대했던 모습과,

지금 ‘친구’로써 그녀를 대하는 모습의 차이를 말하는 것 같았다.



사실 그 미묘한 차이도,

근래 들어 의식을 하면서 티를 내는거지만,



아무튼,

요새 내가 혜미를 대할때의 말투와 태도는,

성철이나 다른 친구들을 대할때의 그것과 비슷했다.





어느덧 혜미가 세번째 잔을 따라 마셨다.

그녀는 술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해서 주량이 끝내주게 쎄다 이런건 아니였다.

그냥 즐겨하는 것 같았다.



예전에는,

그녀가 그렇게 술을 마시고 나면,

언제나 뒷감당은 내 몫이였다.

내가 원체 술을 즐겨하지 않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녀가 술자리 끝에는 어떻게 될 거라는걸 잘 알고 있었기에

나는 늘 그녀 곁에서 대기를 하다가 뒷처리를 하곤 했다.



문득,

혜미의 전화 벨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반응을 하진 않았다.



그녀는,

한참후 벨 소리가 끊기고,

그제서야 전화기를 집어 들은 뒤,

재빨리 전원 버튼을 껐다.



-왜 전화 안받아?-

-귀찮아..별로 받고 싶지도 않고..-



역시 그녀는,

별로 개의치 않는듯 했다.

나는 그녀의 그런 태도가 신경쓰였지만,

뭐..그것도 이제 내가 상관할바는 아니였다.



혜미는,

주변에서 인기가 많은 편이였다.

나랑 만나는 동안에도 찝쩍대는 남자들이 있었던 것 같다.



전공이 그래서 인지,

그녀의 주변에는 인물 좋고, 끼 많고, 잘 노는 남자들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당연스럽게 혜미는 그들의 표적(?)이 되곤 했다.



그들은 내 존재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던 것 같다.



*****



까페에 들어선지 한 시간 정도가 흘렀다.

술이 제법 들어간 혜미가 쾌활해지기 시작했다.

말이 많아진 것이었다.



그녀는,

한참동안 친구들 얘기, 학교 얘기,

그리고 이런 저런 얘기를 늘어놓았다.



나는,

한 두잔씩 술을 받아 마시며,

혜미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고보니,

나도 어느새 4-5잔 정도 마신것 같았다.

오늘은 괜히 많이 마시고 싶었다.

왠지 술도 다른날 보다 잘 받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그때,

혜미가 내 얘기를 물어왔다.



-요새 집안 분위기는 어때?-

-그냥 그렇지 뭐..-

-여전히 아버지 회사는 어렵고?-

-모르겠어..조금씩 낳아지시는 중이라고 말은 하는데..-

-…-

-그냥 나도 신경 안쓰고 있어..-

-그래..어머니는 어떠셔? 계속 일하시지?-

-어..엄마야 뭐..그래도 나름 전문직이니깐 조금 낫겠지.-

-다행이네..언니는 잘 지내?-

-누나?..요새 공부한다고 하는데..나도 얼굴보기 힘들어-

-그래? 무슨 공부?-

-몰라 나도..공부를 하로 다니는건지, 연애를 하로 다니는건지-

-하하..언니 연애해?..안본지 오래되서 언니 보고 싶다..-



그녀는,

위로 오빠가 한명 있었는데,

그렇게 사이는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

뭐..나도 혜미 입장에서만 들은 거라서..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그녀는 나와 우리 누나 사이를 조금 부러워 하는 편이었다.

사실 우리도 그렇게 좋은 남매 사이는 아닌데,

그녀가 보기엔 어딘가 부러운 구석이 있었나 보다.



그렇게 그녀는,

우리 가족 한명 한명의 안부를 물어왔다.

나는 이상하게 그 상황이 낯설지 않았다.





30분 정도가 더 흘렀던 것 같다.

부지런히 왔다갔다 하며 서빙을 보던 친구도

이제는 더 이상 우리쪽으로 오지 않는 듯 싶었다.



나는,

적당히 취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문득 그만 마셔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취한건 둘째치고 배가 불러서 더 이상 못마실 것 같았다.



혜미와의 술자리는,

이쯤에서 마무리가 될 것 같았다.



그때 갑자기,

혜미가 내 이름을 불러왔다.

그러면서 그녀는,

차마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을 해왔다.



-너 나이트 클럽 갔었다면서?-





‘아..’



순간 당황스러웠다.

도데체 그녀가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지금 중요한 건 아닌것 같았다.

예사롭지 않은 그녀의 눈빛이,

더욱 나를 움추리게 만드는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어디서 부터 잘못 된건지 모르겠다.



나는,

갑작스런 그녀의 질문에,

당황했던 마음을 진정 시키고,

하나 둘씩 얘기를 꺼내놓았었다.

그런데,

얘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나는 당당해져(?)있었고,

마치 그날 나이트에서의 일을,

무용담처럼 그녀에게 늘어놓고 있었던 것이었다.



꼭 술 기운 때문에 그런 것 같진 않았다.

어쩌면 나는,

그녀가 만약 싫은 소리를 하더라도,

‘니가 상관할바 아니자나’라고 말할 준비를

은연중에 하고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결국 나는,

은정이 얘기까지 그녀에게 꺼내놓았었다.



사실,

나는 혜미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거짓말도 잘 먹히지 않을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있는 솔직하게 얘기를 했다.



내 얘기를 듣고 있던 혜미의 표정은,

의외로 담담해 보였다.

그녀의 속이야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별로 눈치를 보진 않았다.



혜미는,

내 얘기 중간 중간에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아무말 없이 듣고만 있었다.



한 5분 정도 지났을까?

마침내 내가 얘기를 대충 마무리 지었다.



그녀는,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그래서..방 잡아주고..걔랑 같이 잤어?-



나는,

당황했지만,

대충 얼버무리면서 대답을 했다.



-그냥..그렇지 뭐..-



차마 그 부분은,

내가 언급을 하지 않고 넘어갔었다.

하지만 그녀는 용납하지 않았다.

확실하게 짚고 넘어갈려고 했다.



순간 갈증이 밀려왔다.

나는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맥주잔을 집어들어 단번에 들이켰다.

꽤 오랫동안 나의 눈은,

그녀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내 대답을 들으면서,

씁쓸한 웃음을 짓는 것 같았다.



-변하는게 다 이유가 있는거였네..-



나는,

그녀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시작이야 누가 했든.. 자의였든, 타의였든,

그날의 경험으로 인해서,

나는 혜미를 나만의 절대적인 존재에서,

한단계 내려놓았던건 확실했다.



그것만큼은 분명했다.



*****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갈려고,

내가 지갑을 꺼내고 있는데,

혜미가 먼저 카드를 내밀었다.



그녀는,

잠시후 내 지갑을 보면서 한마디 했다.



-너 내가 준 지갑은 안써?-

-아..그거 나중에 쓸려고..-



나는,

순간적으로 거짓으로 답했다.

그녀의 표정에,

약간의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잠시후,

혜미와 나는 술집을 빠져나와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녀가 팔짱을 껴왔다.



그러고보니 평소대로라면,

지금쯤이면 비틀 비틀 거리거나,

거의 쓰러져 있을것 같은 그녀인데,

오늘은 이상하게 멀쩡해 보였다.



그동안,

나 모르게 술이 쎄진건지,

아니면 정신력이 좋아진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녀는 괜찮아 보였다.



잠시후,

택시를 탈 수 있는 거리가

눈 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혜미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러면서 투정섞인 목소리로 나를 향해 말했다.



-나 힘들어..우리 어디 들어가자..나 너랑 오늘 같이 있고 싶어-





나는,

순간적으로 움찔했었다.

하지만 그녀의 제안을,

도저히 거부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그녀의 표정이,

내 본능을 꿈틀거리게끔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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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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