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서 동침 - 단편
2018.04.14 21:17
“탕……! 타 탕!”
어디선가 엽총 소리가 연이어 들리고 숲속을 달리는 사냥꾼들의 발자국 소리가 어수선하게 들려왔다. 덤불속에서 밀회를 즐기던 꿩 한 쌍이 총 소리에 놀라 급히 푸드덕! 날갯짓을 하며 날아올랐다. 산등성이를 향해 가시덤불을 헤치며 허우적거린다. 목까지 숨이 차오르고 온몸에는 비 오듯 땀이 흘러내리고 있다. 갈수록 험한 바위와 우거진 숲뿐이었다.
우거진 수풀을 헤치고 나가던 나는 아차! 싶었다. 발을 잘못 디뎌 균형을 잃은 것이다. 잡목으로 우거진 비탈길을 굴러 내리기 시작했다. 나뭇가지에 긁히고 돌부리에 채이면서 얼마인가를 굴러 내린 다음에야 멈추었다. 온몸에 묻은 흙과 낙엽을 털고 일어서서 뒹굴고 있는 카메라와 배낭을 어깨에 둘러메고 잡목 사이를 바라봤다.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다져진 오솔길을 발견하고 나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읍내에서 산을 넘으면 해안가에 도착할 수 있다는 말에 흘깃하여 만용을 부린 것이 애초에 잘못이었다. 산을 오르기는 했으나 인적이 없는 산중에서 길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벌써 산을 헤맨 지 세 시간이 지나 태양은 서산에 가려지고 어둑어둑 해지고 있었다. 읍내에서 버스를 이용할 것인데 도보로 산을 넘어온 것이 후회스러웠다. 카메라와 배낭을 다시 고쳐 메고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니 바다의 짠 냄새와 함께 해풍이 불어오고 탁 트인 수평선이 한없이 펼쳐진 바다가 시야에 들어왔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와 갈매기의 울음소리가 어우러지는 해안가 풍경은 운치를 느끼게 하기보다는 소름이 끼치도록 적적함을 느끼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어둠마저 내려앉고 있어서 고독함이 스며든다.
외딴 세계에 들어선 나그네처럼 외로워지고 낯선 공간을 휘둘러본다. 하룻밤 묵을 곳을 찾아야 하건만 바위와 숲이 묵화처럼 펼쳐진 바닷가에는 인적이 없었다. 어쨌든 민가라도 찾아야 하기에 어둠이 내려앉고 있는 해변 소로를 따라 걸었다. 한 시간여를 걸었을까, 바다를 마주한 산모퉁이를 돌다가 오래된 가옥 두 채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 중 사립문이 달린 돌담 벽에 세워진 낡은 여인숙 간판이 나를 반겼다. 비바람에 씻겨 페인트가 벗겨져 너덜거리고 글씨조차 알아 볼 수 없을 간판이었다.
간판이 붙은 돌담 벽을 지나 사립문 안을 들여다보았다. 인적커녕 적막이 흐르고 있어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는 빈집인 것 같았다. 실망스러워 돌아서서 발길을 옮기려다가 주춤하고 다시 사립문 안을 드려다 보았다. 작은 화단에 잘 가꾸어진 화초로 보아 사람의 손길이 닿은 것이 분명했다. 앞마당을 가운데로 디귿자로 된 가옥은 여러 개의 방문들이 보였다.
방문 앞에 길게 이어진 쪽 마루로 보아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인숙임을 알 수 있었다. 형식적으로 닫혀있는 사립문을 열고 들어갔다. 마당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쪽마루와 이어진 가옥의 중앙에는 큰 마루가 보이고 마루 안쪽 방에서는 가물가물한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다. 아마도 주인이 사용하는 안방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계세요?”
“..........”
큰 소리로 불렀으나 기척이 없었고 집안은 정적만이 흘렀다. 바다에서 파도를 몰고 온 바람이 한차례 불어와 더욱 썰렁하게 만들었다.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가서 다시 한 번 큰 목소리로 외쳤다.
“아무도 안 계세요?”
“누구시오?”
큰 마루 안쪽의 방문이 스르르 열리고 중년 사내의 모습이 들어났다. 어촌의 남자로 보이지 않게 얼굴이 백납처럼 흰 사내였다. 사내는 체격이 깡마르고 키가 큰 편이라서 꾸부정하게 허리를 숙이고 방문을 나섰다.
“숙박 좀 하려는데요?”
“여기 여인숙 안하는데요.”
내 물음에 대답을 한 것은 남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여인네의 목소리였다. 사내의 뒤편으로부터 목소리의 주인공인 여인의 모습이 들어났다. 삼십 초반의 그 여인은 머리를 뒤로 단정히 묶고 단아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넋을 놓고 여인을 바라봤다. 아내와 이별하고 오랫동안 여자를 멸시하는 편견에 젖어 있었는데 그녀에 대한 첫 느낌은 충격이었다.
결코 화려하지도 않고 뛰어난 미모는 아니었지만 아담한 체구와 청초한 그녀의 자태는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였다. 그들이 부부인 것을 알 수 있었으나,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라기보다는 도시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부부의 모습이었다. 여인을 바라본 첫인상에 대한 돌발적인 감정은 솔직히 특별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공연한 관심이라고 생각하며 씁쓸해졌다. 한편으로 어디선가 하룻밤을 묵어가야하는 나로서 여인숙이 아니라는 그녀의 대답에 다시 실망스러워졌다. 그들 부부는 난처한 표정을 짓고 망설이는 나의 아래 위를 훑어보았다. 사내가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더니 마루 끝으로 나서며 물었다.
“어딜 가십니까?”
“여행 중인데요, 숙박할 곳을 찾습니다.”
“어쨌든 밤이 되고 했으니, 불편하셔도 괜찮으시다면 쉬고 가십시오.”
“그래도 될까요?”
의외로 흔쾌하게 쉬고 가라는 사내의 말이 반가웠다. 나의 물음에 사내는 동조를 구하듯 고개를 돌려 자신의 아내를 쳐다보았다. 사내와 시선이 마주친 여인이 무표정하게 앞으로 나섰다. 여인은 큰 마루를 지나 치맛자락을 나풀거리며 우측에 연결된 쪽마루를 걸어갔다. 나란히 줄지어 있는 방문들 중에 하나를 열고 쪽마루에 다소곳이 서서 말했다.
“방이 누추한데.......”
“괜찮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지덕지하여 말꼬리를 흐리는 여인의 곁을 지난 쪽마루를 딛고 방문 안으로 들어섰다. 안쪽 벽으로 창문 하나 뚫려있는 방안은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뒤따라서 방안으로 들어온 여인이 벽에 붙어있는 전등불 스위치를 눌렀다. 천장에서 잠시 형광등이 껌벅거리더니 희미한 불빛을 쏟아내며 방안을 밝혔다.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던 여인이 형광등이 밝혀진 것을 확인하고 방문을 나섰다.
방문을 닫아 주려고 그녀가 방문 고리를 잡고 잡아 당겼다. 그러나 낡아서 틈새가 뒤틀린 방문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멍하니 서 있던 나는 뒤늦게 방문으로 다가가 방문을 바로 잡아 당겼다. 나도 모르게 넋을 잃고 여인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여인의 손길이 맞닿았다. 내 시야에 들어온 그녀의 손은 험한 일을 하지 않은 희고 고운 손이었다. 혼자서 오랜 홀아비 생활을 한 탓인지는 몰라도 시선이 마주친 그녀에게서 강한 여인의 체취를 느꼈다.
맞닿은 손길을 슬며시 떼어내는 그녀의 눈동자에 얼핏 소녀 같은 수줍음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무표정하던 그녀의 얼굴에 옅은 홍조가 떠올랐다. 뒤뚱거리던 방문이 닫히고 쪽마루를 딛고 걸어가는 여인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져 갔다. 그녀의 발자국 소리의 여운마저 사라진 방안에는 혈관을 흐르는 피처럼 찌르르 하는 전류만이 흘렀다.
배낭과 카메라를 방구석에 던져 놓고 털썩 주저앉았다. 점심 저녁 두 끼를 굶었더니 뱃속에서 꾸르륵하는 소리가 들렸다. 팔베개를 하고 누워 염치없지만 밥을 얻어먹을 궁리를 한다. 한동안 몸을 뒤척이고 있는데 쪽마루를 딛는 조심스런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방문이 열렸다. 밥상을 든 그녀의 모습이 나타났다.
“반찬이 별로 없지만 식사하세요.”
“감사합니다.”
시장기를 느끼고 있었던 탓에 벌떡 일어난 밥상을 받아 들었다. 시선을 떨어트린 채 그녀는 치맛자락을 거머쥐고 몸을 돌렸다. 단아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방문을 닫았다. 주로 산나물인 반찬이지만 배가 고팠기에 허겁지겁 밥 한 공기를 단숨에 비웠다. 식사를 끝내고 담배 한 대를 피워 무는데 사내가 이불과 요를 들고 왔다. 적지 않은 키이지만 무척 체구가 마른 탓인지 그가 휘청거리는 것 같았다. 그가 들고 들어오는 이불마저 힘에 겨워 보여 얼른 받아 들었다.
“이거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예전에는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많았답니다. 그런데 해일로 인해 마을이 물속에 잠기고 섬처럼 쓸쓸한 곳이 됐지요.”
사내는 묻지도 않는 말을 흘렸다. 형광등 불빛 아래 그의 모습이 뚜렷하게 들어났다. 멀끔하게 보이던 그의 얼굴은 희다 못해 창백하였고 병색이 완연하였다. 뼈마디가 앙상해 보이는 그의 손등에는 굵은 힘줄이 돋아있고 헐렁하게 걸친 옷조차 힘겨워 보였다. 허지만 곁눈질로 나를 살피는 그의 눈빛은 살아 있었다. 내 가슴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할 듯이 유심히 나를 살피던 그가 방을 나갔다.
사내가 나가고 나서 잠시 낯선 곳에서의 적막감에 젖어 있었다. 문득 방문 밖으로부터 인기척이 들려와 문틈으로 내다보니 쪽마루 밑에 여인이 웅크리고 있었다. 아마도 내 방에 군불을 때는지 아궁이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불빛을 받은 그녀의 얼굴이 완연하게 들어나 있었다. 시골에 사는 여인답지 않게 잡티 하나 없는 그녀의 얼굴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반사되어 황홀해 보였다.
여인내의 비밀스런 방안을 훔쳐보듯이 문틈을 내다보는 내 가슴은 사춘기 소년처럼 달아오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엉덩이 밑에 깔린 방구들은 따뜻해지고, 나는 이방인이 되어 허망한 몽상에 잠겼다. 마치 긴 여정 끝에 아늑함에 빠져 드는 것 같았다. 여인내의 모습대신 내 곁을 떠난 지 오년이 지난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내는 성악을 전공하던 캠퍼스 후배였다. 결혼하고 삼년 만에 아내는 단조로운 결혼생활에 흥미를 잃었던지, 내게 권태를 느꼈는지는 몰라도 이혼을 요구하였고 음악공부를 한다며 외국 유학을 떠나버렸다. 그때서야 나는 아내의 소중함을 느꼈다. 무미건조한 생활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오직 결혼 전부터 운영하던 사진관에 매달렸다.
그러나 아내의 잔상을 쉽사리 잊을 수는 없었다. 떠나버린 아내의 흔적을 쫓아다니기라도 하듯이 카메라를 들고 산과들, 그리고 바닷가로 여행을 다니며 고독함을 달랬다. 자주 사진관을 비우는 까닭에 사진관을 찾는 손님들은 종업원을 주인으로 착각하고 있을 정도이다. 정말 아내를 사랑했는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 가야하는지 스스로 되물어도 해답은 없다.
군불을 지피던 여인네가 사라졌는지 방문 밖은 적막이 깃들었다. 잠을 청하려고 하지만 낯선 곳에서의 밤은 외로움과 함께 더욱 정신을 맑게 한다. 방문 틈으로 스며드는 달빛이 방바닥에 안개처럼 피어오르고 있다. 방문을 열고 쪽마루에 나와 떠오르는 보름달을 바라본다. 불러오는 밤바람에 마당에 떨어진 나뭇잎이 이리저리 뒹군다.
힐끔 바라 본 안방에서는 희미한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문득 주인 부부에게 호기심을 느꼈다. 이런 외진 곳에서 그들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이런 적적한 밤에 그들은 어떤 대화를 하는지가 궁금했다. 발소리를 죽여 안방 마루로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거리가 멀어 소곤거리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마루 위로 올라갔다. 마루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숨을 죽이고 잠시 눈치를 살핀다.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호기심은 더욱 깊어간다. 살금살금 기어 안방 문 앞에 다가가서 귀를 기울였다.
“그, 그만해. 당신 힘만 들어.”
힘겨워하는 남자의 낮은 목소리. 깊은 밤에 그들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뚫어진 창호지 문틈으로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헉! 깊이 들이마신 숨을 멈추었다. 부부가 모두 발가벗은 알몸뚱이였다. 공연한 호기심으로 보지 말아야할 것을 본 것이다. 아랫목에 깔린 하얀 이불 위에 반듯이 누워 있는 남편의 하복부에 여인네가 머리를 묻고 있었다. 여인네는 남편의 남성을 손에 쥐고 입술로 핥고 있는 광경이다. 하지만 남편은 무감각한 표정이고 여인네의 손에 쥔 남성은 전혀 발기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축 늘어져 있다. 남편이 어눌한 말을 흘린다.
“그냥, 내가 당신을 즐겁게 해줄게.”
뼈가 앙상하게 들어난 남편이 일어나 앉으며 여인네를 눕혔다. 다소곳이 이불위에 누운 여인네의 발가벗은 알몸이 불빛에 들어난다. 외진 어촌의 여인 같지 않게 뽀얀 피부였다. 희미한 전구 불빛과 들창문으로 스며드는 달빛에 들어난 여인네의 알몸은 신비스럽게도 보였다. 남편의 양손이 눈을 사르르 내리감는 여인네의 알몸을 안마를 하듯이 주무르기 시작한다.
방문 틈으로 엿보고 있는 내 심장이 고장 난 모터처럼 덜컹거린다. 여인네의 몸을 샅샅이 더듬어가던 남편의 손이 젖가슴을 보듬어 안는다. 그리고 보듬어 쥔 아내의 젖가슴 한가운데 돋아난 젖꼭지를 혀끝으로 핥는다. 여인네의 상체가 흠칫하며 떨린다. 남편의 입속으로 젖꼭지가 빨려 들어가는 여인네가 옅은 신음을 흘린다.
“아.......! 여보.”
나도 모르게 깊은 숨을 내쉬었다. 여인네가 남편의 머리를 감싼다. 여인네의 몸을 타액으로 적셔가는 남편의 손이 여인의 허벅지 사이를 더듬는다. 융털처럼 돋아난 여인네의 음모가 남편의 손바닥에서 이리저리 쓸려 다닌다. 그리고 항문 근처에서부터 배꼽 밑까지 손바닥으로 쓸어 올리기를 반복한다. 여인네의 허리가 꿈틀거렸다.
“조, 좋아요. 하 아~!”
여인네의 몸을 타액으로 적시던 남편의 혀가 점점 밑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허벅지 사이를 쓸어 올리며 살갗을 마찰하던 남편의 손이 젖꼭지를 둥글게 마사지를 한다. 젖꼭지를 손가락 사이에 끼고 돌기를 일으키는 남편의 입술이 여인의 음부에 잇닿았다. 뱀의 혓바닥처럼 날름거리는 남편의 혀가 음순을 감아 핥았다. 별안간 여인네가 남편의 머리를 내리 누르며 둔부를 들썩인다.
“하 아! 여, 여보.”
여인네의 음부를 타액으로 적신 남편이 다시 여인네의 젖가슴을 핥으며 젖꼭지를 혀끝으로 농락을 한다. 젖꼭지를 입속으로 빨아 당기는 남편의 손끝이 여인네의 음부를 쓰다듬었다. 순간 나는 심장이 멈추는 것만 같았다. 방문을 마주하고 있는 남편의 시선이 문틈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나를 향하는 것만 같았다. 아니 묘한 눈빛으로 보아 분명히 엿보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리라 생각한다.
크게 숨을 들이 키고 방문에서 떨어진 나는 고동치는 가슴을 달랬다. 그러나 별다른 반응이 없기에 끓어오르는 호기심을 견딜 수 없었다. 다시 문구멍으로 방안을 드려다 보고 현기증마저 느꼈다. 젖꼭지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남편의 손가락이 여인네의 음부 속을 헤집고 있었다. 여인네는 남편의 머리를 부둥켜안고 허리를 들어 올리며 꿈틀거린다.
“여, 여보. 어떡해.”
습기에 젖은 여인네의 촉촉한 속삭임. 아내의 젖꼭지를 입속으로 빨아 당기는 남편이 힐끔 나를 바라봤다. 그러나 나를 무시하듯이 여전히 아내에게 수음을 해준다. 발기를 못하는 남편이 아내에 대한 봉사였다. 입술을 깨무는 여인네의 알몸은 발정을 한 암사슴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며 허우적거린다.
마른 침을 꼴깍 삼킨 나는 안방 문 앞을 떠나 마루를 기어서 내려왔다. 하늘에 떠 오른 둥근 보름달이 완연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마당을 밝히고 있다. 왠지 휘청거려지는 발걸음으로 나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팔베개를 하고 누웠으나 나를 바라보던 남자의 눈빛과 알몸을 뒤틀던 여인네의 간절한 표정이 떠올라 뒤척였다. 그래도 온종일 산을 헤매고 다녀서 피곤한 탓인지 나도 모르게 잠속에 빠져들었다.
잠에 깨어나 눈을 뜬 것은 방문 틈으로 들어오는 눈부신 아침 햇살이 먼저인지, 아니면 방문 두드리는 소리인지, 여인네의 목소리 때문인지 모르겠다. 피곤이 덜풀린 탓에 몽롱한 정신이었다. 방문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아직도 꿈인 것만 같다.
“세면하시고 식사하세요.”
여인의 나긋한 목소리는 마치 이혼한 후 오래 동안 잊고 있었던 아내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여인의 목소리가 꿈인지 생시인지 몽롱한 정신으로 사각무늬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흐릿해지는 아내의 잔상에 잠겨 있는데 여인의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아직 안 일어나셨어요?”
“네. 일어났습니다.”
온 몸이 뻐근하기에 마지못해 일어났다. 어느새 방문 틈으로 흘러 들어온 햇빛이 방바닥에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미안한 마음으로 방문을 열고 나서는데 그녀가 도리어 쑥스러운 미소를 엷게 흘렸다. 세면을 하고나니 그녀가 아침 밥상을 들고 들어왔다. 나는 어제 밤에 보았던 그녀의 모습이 선하게 떠올라 민망스러웠다.
티셔츠와 치마를 걸쳤던 어제와는 다르게 여인네는 앞가슴이 깊게 패인 원피스를 걸치고 있었다. 더욱이나 옅은 화장까지 한 그녀의 몸매가 들여다보이는 것 같아 바라보기가 거북스러웠다. 그러나 내 감정을 모르는 그녀는 물을 따라 주는 정성스러움까지 보이고 나서 방밖으로 나갔다. 식사를 하면서 열린 방문 틈으로 밖을 내다보니 그들 부부의 모습이 보였다.
여인은 걸레를 들고 마루를 닦고 있었다. 엎드려서 걸레질을 하는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원피스 위로 들어난 엉덩이가 매력적으로 흔들렸다. 그녀의 남편은 아내에게 관심 없는 듯 화단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헐렁한 옷을 걸친 남편의 뒷모습이 왠지 초라해 보인다고 느꼈다. 식사를 하면서도 내 관심은 방밖에 있는 그들 부부에게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카메라를 둘러메고 방을 나왔다. 나만의 감정인지는 몰라도 그들을 대하기가 어색함을 느꼈다. 그 어색함이란 그녀에 대한 나의 호기심 때문이기도 하였다. 여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밥상을 들고 나와 나에게 고개를 까닥했다. 내가 고마운 인사를 해야 하건만 먼저 눈인사를 하는 그녀가 새삼스럽게 보였다. 살며시 미소를 띤 그녀가 밥상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화단 앞에 쪼그리고 앉았던 여인의 남편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어디 가시게요?”
“네. 사진 몇 장 찍고 싶어서요.”
어줍은 말투로 대답을 하고 여인숙을 나섰다. 여인숙 앞에 있는 바위들 틈을 지나니 조그마한 갯벌이 펼쳐진 해변이었다. 파도는 잠잠했고 구름 사이에 걸린 태양이 맑은 햇살을 뿜어내고 있었다. 바다 풍경에서 오는 정감을 사진 속에 담아내느라 해변 가와 절벽 밑의 바위들을 찾아 다녔다.
바위에 부딪쳐 하얗게 부서져 파도, 이따금 수평선을 지나치는 어선의 한가로움, 멋진 자태로 바다 위를 비행하는 검은 머리 갈매기, 바위 틈새에서 날카로운 앞발로 서로를 애무하는 바위게 자웅 한 쌍, 바다의 꿈을 소리로 담는 소라의 정감 등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해변의 정취에 듬뿍 빠졌다.
한동안 해변 북쪽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다가 정오가 다 되어서 남쪽으로 내려가기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여인숙이 바라보이는 해안의 모래사장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며 셔터를 누르기도 하고, 파도에 밀려온 해초들이 흔들리는 장면을 사진기에 담았다. 바닷가를 지나치다가 큰 바위 위에 앉아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느릿한 남자의 음성이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인적이 드문 이곳이 아틀리에나 마찬가지지요.”
“..............”
그는 마치 오랜 옛날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망부석처럼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망설이다가 그들 부부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기에 그가 앉아 있는 바위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가 앉은 옆의 바위에 걸터앉으며 물었다.
“원래 여기서 사셨습니까?”
“아뇨. 도심지에 살다가 이곳으로 온지 2년 됐지요.”
그는 여전히 바다에 시선을 둔 채 대답했다. 아내를 애무하던 남자의 모습과는 다르게 마치 삶에 대해 해탈한 도인 같은 모습이었다. 걸치고 있는 옷마저도 힘겨워 보이는 남자의 모습이지만 알지 못할 위압감이 서려있다. 나는 공연히 신고 있는 등산화를 벗어 바위에 두드려 털었다.
“쓸쓸하지 않으세요?”
“글쎄요.......”
“단 두 분만이 있기에는.......! 자녀분들은........?”
“자녀요? 흐흣!”
그는 내 물음을 되 내이면서 옅은 웃음을 흘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녀는 아이를 원하지만.......!?”
“.......!?”
씁쓸해지는 그의 창백한 얼굴을 곁눈질로 바라보면서 공연한 질문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가 갑자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쳐다보고 있기에도 거북하고 측은한 생각이 들 정도로 심한 기침이었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입을 막고 가래가 끓는 소리를 냈다. 남자의 옆에 놓인 어망을 들여다봤다. 그가 낚시로 잡은 물고기에 비해 물이 부족한지 물고기는 꼼짝도 않고 있었다.
“물고기가 죽었나 봐요.”
“아뇨! 이놈이 죽은 척 하는 것이지요.”
억지웃음을 흘린 남자가 어망 속에 든 물고기를 움켜쥐었다. 죽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던 물고기가 퍼덕거렸다. 남자는 손에 쥔 물고기를 바다를 향해 멀리 던졌다. 남자는 조금도 아쉽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아깝지 않으세요. 왜 놓아주십니까?”
“씨알이 굵은 놈만 반찬으로 쓰지요. 죽은 척하는 것은 여자처럼 삶에 대한 본능이지요.”
“본능 요........!?”
“네. 여자의 몸과 마음은 남자보다 빈틈없는 본능과 예민한 감정을 갖고 있지요. 물고기가 몸을 사리고 있는 것은 살아남으려는 여자의 집념과 같다고 생각하니까.......”
“흠.......”
“그러니 여자와 같이 사는 남자의 마음은 어부의 심정인지도 모르지요. 여자는 항상 생명을 불어 넣어줘야 하는 유리그릇 같으니........”
말을 하던 남자가 다시 격하게 기침을 했다. 기침을 하는 그의 모습은 고통스러워 보였고 눈동자가 충혈 되어 있었다. 언뜻 그의 손수건을 바라보니 각혈까지 한 듯 보였다. 바닷바람이 불어와 그의 앞이마에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휘날렸다. 기침을 진정시킨 그가 불쑥 물었다.
“아내를 사랑하시오?”
“사랑했었는지 모르지만 떠나갔습니다.”
그때서야 바다를 주시하던 그가 나를 흘깃 쳐다보았다. 휑하게 뚫린 그의 눈동자에는 막연함 같은 것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난 은아를 사랑하오. 얼마 남지 않은 생명을 행복하다고 자부하는 까닭이기도 하지요.”
“.........!?”
얼핏 알아들을 수 없는 그의 말을 되새겨 보았다. 자신의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과 자신 스스로 앓고 있는 병으로 죽음에 대한 예견을 하고 있다는 것인가. 단지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그의 아내 이름이 은아라는 것이다. 나는 그의 혼잣말처럼 흘려내는 말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내가 안타까운 것은 내가 떠나간 다음 은아가 외로움에 쌓이는 것이오.”
“...........”
“그 외로움을 달래주기 위해서라도 아이를 남겨주고 싶지만, 내게는 이미 그럴만한 능력이 없어서 안타까울 뿐이지요.”
“............!?”
묻지도 않았는데 흘리는 남자의 말에 묘한 여운이 남았다. 바다 갈매기가 머리위에서 선회를 하며 울음소리를 떨어트렸다. 왠지 갈매기의 울음소리가 애잔하게 들렸다. 넋두리처럼 말을 흘려내던 그가 침묵을 하였다. 나도 말을 잃은 채 온갖 상념에 잡혀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죽음을 바라보듯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 그 사랑을 받는 여인네의 감정들을 생각하며 애틋함을 느꼈다.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해변의 남쪽을 행해 걸어갔다. 갯벌을 지나 해변을 따라 걸으면서 사내의 말에서 느꼈던 감정을 잊고 한적한 바닷가의 정취에 흠뻑 빠졌다. 필름을 몇 통이나 갈아 치울 정도로 눈앞에 펼쳐진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갈대밭의 사각거리는 소리에 넋을 잃기도 하고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면서 한없이 걸었다. 얼마를 걸었는지 몰라도 어느새 노을 지는 석양으로 붉게 물들인 수평선에는 태양이 이글거리며 걸려 있었다. 나는 해변을 온통 붉게 물들인 또 하나의 장관에 감탄하였다.
여인숙으로 돌아 온 것은 수평선에 걸린 태양이 사라지고 땅거미가 질 무렵이었다. 바위 위에 앉아 있던 사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내가 하룻밤을 묵었던 방문 앞의 쪽마루로 다가가는데 여인이 부엌에서 나왔다. 그녀의 은빛처럼 맑은 눈빛을 보고 사내가 말했던 은아라는 이름이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치마로 손의 물기를 닦는 그녀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시장하시죠?”
“네. 조금요.”
그녀를 바라보면서 자신이 죽으면 외로움에 쌓일 것이라는 사내의 애잔한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단아하고 조순한 그녀의 아릿한 자태에 충동적인 감정이 솟아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방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준비를 하고 기다렸다는 듯 그녀가 밥상을 들고 들어왔다. 시장하던 차에 허겁지겁 식사를 마치고 밥상을 쪽마루로 내 놓았다.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빗줄기가 후드득 떨어졌다. 쪽마루에 걸터앉아서 비오는 밤의 바다를 바라보니 새로운 운치를 느꼈다. 주룩주룩 추녀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 바다냄새를 물씬 풍기는 냄새를 품고 자작자작 내리는 빗줄기 속으로 어둠이 내려앉는 바다가의 야경은 또 다른 색다름을 느끼게 했다.
문득 두런두런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리는 곳은 불빛이 흘러나오는 안방 문 앞이었다. 여인네는 열려진 안방에서 흘러나오는 불빛 아래서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내가 있는 것도 모르는지 마루에 나란히 앉아 있는 남자와 여인이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남자도 비 내리는 어둠속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무의식적으로 그들의 말소리에 청각을 곤두 세웠다.
“점잖은 사람이더군.”
“사진을 찍고 다니던데요.”
“사진작가인가?”
“그런가 봐요.”
“아내와 이혼했다더군.”
“........”
그들의 대화는 나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대화가 잠시 중단 되었다가 다시 이어졌다.
“약 들었어요?”
“음........”
“내일은 병원에 가봐야 되잖아요?”
“또 요양원에 가라고 할 걸. 당신 혼자 두고 어떻게 가?”
“그래도 이제는 가봐야 하잖아요.”
“당신도 잘 알잖아? 병원에서도 손 댈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을. 난 이제 아무런 미련도 없어. 단지.......”
“........?”
“혼자 남을 당신이 걱정이지......”
“.........”
“심심하지 않아? 저 방손님 커피라도 가져다주고 놀다 오지.......”
중얼거리듯이 힘없이 흘려내는 사내는 말끝을 흐렸다. 그들이 일어나는 기척을 느끼고 슬며시 방안으로 들어왔다.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남자의 말이 나의 귀에는 묘한 의미가 담긴 여운으로 남아있다. 남자이든 여자이든 가끔은 스스로 고독해지고 싶은 분위기에 휩쓸리기 마련이다. 특히 사랑하는 남녀를 의식하며 일어나는 감정의 질투일 수도 있다.
한동안 빗소리만이 들려오던 방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니 그녀의 치맛자락이 하늘거렸다. 그녀는 마른 장작을 들고 와서 내 방 앞의 마당에 내려놓았다. 오늘도 그녀가 내 방에 군불을 지피려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쪽마루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신문지에 불을 붙이더니 아궁이 속으로 집어넣었다. 불씨가 당겨진 아궁이에서 연기가 잠시 흘러나오고 그녀의 얼굴을 붉게 물들이는 불길이 일어났다.
장작 불빛에 들어난 그녀의 얼굴은 여인의 숨겨진 아름다움이 그대로 들어내 보이는 것 같다. 짙은 속눈썹 아래 까만 눈망울과 연분홍으로 변한 피부 빛깔, 그리고 윤기가 흐르는 그녀의 붉은 입술은 공연히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녀에 대한 호기심은 깊은 관심으로 변해 나도 모르게 방문을 열고 나서게 했다.
그녀의 큰 눈동자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쪽마루에서 내려서서 슬며시 그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러나 막상 그녀에 대한 관심으로 방을 나왔으나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겸연쩍은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바닷가라서 요새는 밤에 추워요.”
그녀가 희미한 미소를 흘렸다. 그 한마디를 나누고 나와 그녀는 탁탁거리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타오르는 아궁이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불꽃이 일어나는 장작을 뒤적이는 그녀의 모습을 곁눈질하며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체취를 느끼고 있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충동을 느꼈다.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 그녀에게 물었다.
“주인 되시는 분은 뭐하시던 분인가요?”
“궁금하신가 봐요. 지금은 붓을 안 들지만 반시현이라는 꽤 이름 있는 화가였어요....... 화가요. 병이 깊어서 요양할 겸 이곳을 사서 내려와 있어요.”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유명한 화가였다는 것을 강조하여 말했다. 남편에 대한 사랑이고 존중심 때문에 하는 말인 것 같다. 다시 침묵이 흐르고 무거워지는 분위기가 싫어 다시 물었다.
“어떻게 만나서 결혼 하셨는데요?”
“.........?”
그 물음에 그녀가 별 걸 다 묻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흘깃 쳐다보았다. 그러나 이내 그녀의 얼굴이 발그스름하게 물들었다. 장작불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 가슴도 장작불처럼 타올랐다. 나 자신 스스로도 내 물음이 황당하다고 느껴 변명을 하였다.
“남편 되시는 분이 자신이 죽은 다음에 홀로 남을 아내를 걱정할 정도로 사랑이 깊은 것 같아서......”
“그 이가 그런 얘기까지 했어요?”
“그냥 편하게 애기하시더라고요.”
엉뚱한 질문에 대한 변명을 하려던 나는 더욱 무안해서 쓴 웃음을 지었다. 그때 안쪽 마루로부터 발자국 소리와 함께 인기척을 느꼈다. 안방에서 슬그머니 나온 여인의 남편이 마루 끝에 걸터앉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우리에게 무관심한 표정으로 어둠 속의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남편의 모습을 힐끔 쳐다보면서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이는 화가였고 전 모델이었어요. 홀어머니는 암투병중이었고 병원비를 마련하기위해 화가들 앞에서 누드모델을 했지요. 그때 저이를 만났어요.”
“........!?”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내는 의외의 말에 나는 놀랐다. 그녀와 그 남자를 번갈아 쳐다보았으나 그들의 모습에는 변화가 없었다. 멀리서도 파도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내의 말을 듣고 있는지 모르지만 남자는 어둠 속을 바라보며 꼼짝하지 않은 채 웅크리고 있었다. 아궁이 속에 장작을 집어넣으며 여인네가 나를 곁눈질했다.
“그때 저이는 부인과 이혼한 후 혼자였고 이미 병이 깊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수녀가 되겠다고 이혼한 아내가 수녀복 대신 저이 친구의 아내가 되기 위해 신부 드레스를 입었데요.”
“........!”
“저이 덕분에 어머니를 입원시키고 수술까지 했으나 돌아가시고 말았지요. 저이와 나는 서로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어요. 나는 저이의 힘겹게 날아오르는 갈매기 등에 의지한 생명이고, 저이의 생명이 다하는 날 나는 추락하고 말거에요,”
“그래서 남편께서는 죽은 다음에 홀로 남을 아내를 위해 뭔가가 필요하다고 했군요?”
문학적인 표현을 하는 그녀에게 적당한 질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내 말에 대한 반응을 살피기 위해 마루에 걸터앉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녀의 남편은 방안으로 들어갔는지 어둠만이 남아 있었다. 불빛에 비치는 그녀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아기 말하시는 거죠? 그 말도 했군요. 하지만 그건 제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이의 희망 사항이에요. 아내를 안을 수없는 욕구 불만, 홀로 남을 아내에 대한 배려.........”
거기까지 말한 그녀가 얼굴을 붉혔다. 너무나 담담하게 말하는 그녀의 말에 나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장작 불길에 그녀와 나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녀가 다시 이어서 말했다.
“남자로서 욕망을 상실한 육체적 갈등. 그런 것들 때문이지요.”
그녀의 말을 듣고 나니 남자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사내가 한창 농익어가는 아내의 육체를 바라보는 마음을 조금은 이해가 갈 것도 같았다. 그런 생각으로 그녀를 바라본 내 시선이 그녀의 눈길과 마주치자 장작불로 달구어진 얼굴이 더욱 화끈거렸다. 그녀는 내 감정을 들여다보기라도 하듯이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들어난 그녀의 미소는 나를 유혹하는 아라비안의 무희 같았다. 장박불처럼 타오르는 감정은 내 혈관을 뜨겁게 달구어 요란한 고동 소리를 울리게 했다. 스스로의 감정에 도취된 나는 더 이상 그녀 옆에 앉아 있을 수 없어서 슬그머니 일어서서 방으로 들어왔다.
방안으로 들어 온 뒤에 내 가슴은 도둑질이라도 한 것처럼 두근거렸다. 그런데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에 방문이 스르르 열렸다. 그리고 찻잔을 받쳐 든 그녀의 모습이 나타났다. 앞섶이 깊게 패인 원피스를 걸친 그녀를 본 내 가슴은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젯밤에 본 그녀의 자태가 떠오른 까닭인지 방안으로 들어 온 그녀의 나긋한 몸의 윤곽이 원피스 위로 고스란히 들어나 보였다.
“커피 한 잔 하세요.”
“.........!”
그녀는 눈가를 붉히면서 찻잔을 내려놓았다. 옆으로 다가와 앉는 그녀에게서 성숙한 여인의 체취가 흘러 나왔다. 흐릿한 전구 불 밑에 들어난 그녀의 이마위에 흘러내린 머리카락마저 선정적으로 느껴졌다. 찻잔을 내려놓느라고 엎드린 그녀의 앞가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 같아 민망스러움으로 시선을 외면하였다.
“잠자리에는 커피가 안 좋아 드리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이가 가져다 드리라고 해서......”
자신의 의지가 아니고 남편이 커피를 가져다주라고 했다는 그녀의 말은 변명일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말을 어떻게 판단해야할지 몰라 어리둥절하였다. 하지만 스스로의 감정에 사로잡혀 있어서 나 나름대로의 판단을 하기로 했다. 내가 그녀에게 깊은 관심을 갖는 것만큼 그녀도 나에 대한 관심이 있고, 자신의 아내에 대한 극진한 배려를 갖고 있는 그녀의 남편 또한 은연중에 그러기를 바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그렇게 생각을 하고보니 더욱 쑥스럽기만 하였다. 아무런 말도 못하고 공연히 뜨거운 커피 잔을 들었다 놓았다는 반복하였다. 커피 잔을 내려놓은 그녀도 시선을 한곳에 머물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것 같아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느꼈다. 마주친 시선을 슬며시 피하는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혼자서 여행을 다니면 쓸쓸하지 않으세요?”
“이젠 습관이 돼서요.”
그녀의 희고 고운 손가락이 찻잔 가장자리를 만지작거렸다. 자꾸만 어색해지려는 분위기를 어떻게 수습해야할지 망설였다. 그녀도 같은 느낌인지 찻잔만 만지고 있었다. 그러나 여자는 역시 남자보다 순발력이 뛰어나고 용감하다. 머뭇거리던 그녀가 다시 물었다.
“혼자 생활에 익숙하신가 봐요?”
“그런 셈이죠.”
“저는 남편과의 여기 생활이 행복하다고 느끼고 익숙해졌으면서도 가끔은 적적하고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어요.”
“누구나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
그녀는 말없이 눈가에 자잘한 미소를 띠었다. 순간 나는 그녀의 여린 어깨를 껴안아 위로해 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아니 나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고 싶은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침묵 속에 묻히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는 도덕적 관념과 위로를 빙자한 욕구의 허상 속을 오가며 혼란스러워졌다.
내가 어찌해야 할지 몰라 침묵으로 일관하는데 그녀가 일어섰다.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현기증을 느끼는 사람처럼 그녀가 휘청거렸다. 무의식적으로 나는 그녀의 허리를 껴 않았다. 단지 반사적인 행동이지만, 그녀로부터 흘러나오는 옅은 화장품 냄새와 여인의 체취를 느꼈다.
“괜찮으세요?”
“네.”
그녀는 단지 딛고 일어난 발이 꼬였을 분이었다. 그녀는 홍조를 띠고 머뭇거리더니 방문을 열고 나갔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후회스러웠다. 좀 더 용기를 갖고 그녀에게 깊은 관심을 표현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모든 정황으로 볼 때 적어도 포옹 정도는 그녀가 거부할 것 같지 않아서였다.
쪽마루를 걷는 그녀의 발걸음소리가 멀어져 갔다. 그런데 멀어졌던 그녀의 발걸음소리가 크게 들리며 다시 되돌아오고 있었다. 내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혼자만의 느낌인지 몰라도 그녀도 아쉬움이 있을 거라는 엉뚱한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방문이 다시 열리고 그녀의 모습이 나타났다.
“찻잔을 좀.......”
내 귀에 그녀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녀가 뭐라고 말하는 것에 앞서서 나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 방문 안으로 끌어 들였다. 예기치 않았는지 그녀는 몸의 균형을 잃고 끌려 들어왔다. 나는 가벼운 흥분에 젖어 말했다.
“알아요.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나의 말은 적어도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고 관심보다는 사랑을 베풀고 느낀다는 진심이었다. 쓸어 질 듯이 끌려오는 그녀의 작은 체구를 가슴속 가득히 포옹하였다. 그녀가 나의 돌발적인 행동에 흠칫 놀라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거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여기서 중단하면 자존심도 무너지고 치한으로 취급당해 난처해질 뿐이다.
더 이상의 주춤거림은 그녀와 나 사이에 벽을 쌓을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입술을 포개고 입맞춤을 하였다. 그녀가 주춤거리며 거부의 몸짓을 하였다. 그러나 여자는 누구나 처음에는 무의식적으로 남성에 대한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나 자신 스스로 용기를 불어 넣었다.
내 예상이 맞았는지 그녀는 더 이상은 거부의 몸짓을 하지 않았다. 가슴에 안긴 그녀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녀의 보드랍고 달콤한 입술을 탐닉했다. 수동적이던 그녀의 팔이 나의 목덜미에 감겼다. 점점 열기에 달아오르는 그녀의 입술을 헤집고 혀를 빨아 당겼다. 혀와 혀가 엉키고 그녀는 파르르 떨었다. 그녀의 엉덩이를 두 손으로 잡아들어 올렸다. 하복부가 잇닿아지고 그녀의 뜨거워지는 열기를 느꼈다.
그녀의 등 뒤로 손을 뻗어 원피스 자크를 끌어내렸다. 원피스 자락이 주르륵 발밑으로 떨어지고 그녀의 희고 고운 어깨와 가녀린 몸매가 들어났다. 서로의 혀가 엉키어지고 그녀를 끌어안은 내손은 그녀의 브래지어 호크를 풀어냈다. 그녀가 입술을 떼어내고 빤히 쳐다보았다. 브래지어마저 벗겨져 팬티차림의 그녀 모습은 무척 선정적인 자태였다.
“사랑하고 싶어요.”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넋두리처럼 흘리는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가로젓고 돌아섰다. 그녀는 탁자위에 놓인 이부자리를 들어서 방바닥에 펴 놓았다. 그리고 시선을 피하면서 전구의 스위치를 돌려 방을 밝히던 불을 껐다. 어둠속에서 뽀얗게 들어나는 몸을 사린 그녀가 이불 속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가식 같은 허물을 벗듯이 옷을 벗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그녀를 껴안았다.
다시 그녀와 습한 입맞춤을 하고 혀와 혀가 엉키어 갈증을 풀어내듯이 서로의 타액을 들이마셨다. 풀 먹인 이부자리의 감촉이 그녀의 살갗에서 전달되어 오는 보드라움을 더욱 감미롭게 했다. 나의 손끝에서 나뭇잎 같은 팬티마저 벗겨진 그녀가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그녀는 이미 닫혀있던 문을 촉촉하게 열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서슴없이 발기된 남성을 그녀의 늪 속으로 밀어 넣었다.
“아.........”
그녀는 은어처럼 파닥거리며 매달렸다. 여인의 몸속에 숨겨져 있던 살갗들이 남성을 휘감아 왔다. 빠듯한 압박감을 느끼는 남성은 그녀의 보지 속 깊숙이 파고들었다. 어둠 속에 들어나는 그녀의 눈동자는 습기로 반짝거렸다. 뜨거운 불기둥이 여인의 늪 속을 파고들 때마다 그녀는 흘러나오는 감탄의 신음을 삼키려는지 입술을 깨물었다. 우람하게 발기된 남성이 보지 속으로 치밀어 들어가면 그녀도 따라서 허리를 들어 올렸다.
“아! 난 몰라.”
그녀와 나는 허울을 벗고 본능에 휘말린 암수에 불과했다. 이부자리에는 끈적끈적한 습기가 베어나고 방안에는 끊이지 않는 열기가 이어졌다. 나는 깊은 나락을 헤매고 있어 등을 껴안은 그녀의 손톱이 살갗을 파고드는 통증마저 극한 쾌감으로 느꼈다. 방문 밖에서는 추녀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살갗과 살갗이 잇닿은 곳에서 낙숫물처럼 습기가 배어 나온다. 폭풍처럼 몰아치며 보지 속을 치받을수록 그녀의 발가벗겨진 알몸은 능동적으로 흔들렸다. 잇닿은 살갗에 땀방울이 맺히고 갑자기 그녀가 자지러지는 신음을 터트렸다.
“하 으~! 하 앙. 여보. 미, 미치겠어.”
“허 윽! 으, 은아 씨.........”
그녀의 몸속에 틀어박힌 남성이 샘물에 휘말리는 감각에 신경세포가 자지러지는 것 같았다.상체를 들어 올린 그녀는 바들바들 떨며 습기에 젖은 눈망울로 올려다보았다. 황홀한 꿈속을 헤매는 여인의 눈빛이었다. 지칠 줄 모르는 남성은 그녀의 늪 속을 여전히 헤집고 있었다. 오르가즘을 느낀 그녀는 더욱 장작불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땀방울이 으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오르가즘의 엑스터시에 젖어 있는 그녀의 표정은 신비로웠다.
"아 흐......."
“허 억~!”
기어코 나는 그녀의 보지 속에 용암 같은 정액을 쏟아 넣었다. 으스러지도록 그녀를 껴안고 경직 되었다. 그녀와 나는 한 치의 여유도 없이 서로의 몸을 부둥켜안았다. 시간이 갈수록 뜨겁게 달아오르는 그녀는 지구의 종말의 마지막 날처럼 가슴을 파고들었고 나는 오랜 세월 만에 해후한 부부같이 그녀를 보듬어 안으며 아내에게 쏟았던 남자의 열정을 살려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그녀와 나는 서로의 지친 몸을 껴안고 잠들었다. 언뜻 정신이 나서 선잠을 깨고 보니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녘이었다. 발가벗은 그녀는 작은 암사슴처럼 내 가슴에 파묻혀 잠들어 있었다. 문득 바스락 거리는 인기척을 느끼고 방문 틈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방문 틈으로 내다보는 내 시선에 들어온 것은 웅크리고 있는 검은 물체였다.
그것은 안집 마루 끝에 꿈쩍도 하지 않고 앉아있는 그녀의 남편이었다. 나는 도둑고양이처럼 숨을 죽이고 한동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방안의 이불 속에서는 그녀가 여전히 고른 숨소리로 쌔근거리면서 곤한 잠에 빠져 있었다. 다시 문틈으로 어둠이 가시지 않은 밖의 동정을 살펴보았다. 웅크리고 있던 그가 불쑥 일어나 부엌으로 가더니 쌀을 퍼 가지고 우물가로 나왔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씻어내듯 쌀을 씻기 시작했다.
나는 소리 나지 않게 무릎으로 기어서 이불속으로 들어가 깊은 잠에 빠져있는 그녀를 안았다. 잠 속에 빠진 그녀가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소녀같이 어리광이 섞인 잠투정을 하였다.
“으응.........! 조금만.”
군불이 식어가는 방바닥이 미지근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남편대신 그녀의 몸을 따뜻하게 감싸 안고 다시 달콤한 꿈속에 젖어 들었다.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창문에 환한 햇살이 비추고 있었고 옆에서 잠들었던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세수를 마칠 때까지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방안에서 어정쩡한 모습으로 있는데 방문이 열렸다.
방문을 열고 밥상을 들고 들어선 사람은 그녀가 아니라 그녀의 남편이었다. 그와 시선을 마주하기가 서먹서먹하였다. 남자는 자신의 아내가 나와 하룻밤을 보낸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자의 얼굴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단지 그는 들고 있는 밥상이 무거워 보일만큼 힘들어 보였다. 안쓰러워 보이기에 얼른 밥상을 받아들었다.
“아내가 읍내에 나가서.......”
어눌한 미소를 지은 그는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밥상을 차려온 이유를 말했다. 그러나 그의 아내가 왜 아침 일찍 읍내에 갔는지 알 수가 없고 물어 볼수도 없다. 다만 죄지은 사람처럼 주눅이 들어 고개를 꾸벅거렸다.
“아! 네 고맙습니다.”
이상하게도 그가 차려준 식사는 돌을 씹는 것처럼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몇 수저를 뜨다말고 방문 앞에 밥상을 내 놓고 곰곰이 생각했다.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 서운하기도 했고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밖으로 나가고 싶었으나 그녀의 남편을 대하기도 어색하였다.
팔베게를 하고 누워 곰곰이 생각한 끝에 결국 이곳을 떠나야겠다는 결단을 하였다. 카메라와 배낭을 어께에 둘러메고 방을 나섰다. 마당 한 가운데서 그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가시려고요?”
“네. 잘 쉬었습니다.”
“아내가 읍내에 갔는데 좀 더 계시다가 보고 가시지?”
“아뇨. 가볼 때도 있고 해서. 나중에 들리겠습니다.”
쪽마루에 앉아서 신을 신고 일어서면서 명함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명함을 받아들고 내 이름을 암기라도 하듯이 되뇌었다.
"민태용 씨.......?”
“언제 서울 오시면 들리십쇼.”
나는 마치 취조라도 받는 느낌으로 대답했다. 그를 뒤로하고 여인숙을 나섰다. 그가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니 자꾸 뒤 꼭지가 당기는 것 같았다.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으리라고 다짐을 하였다. 그러나 어느새 내 마음속에는 그녀에 대한 미련이 스며들어 있었다. 결국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뒤를 돌아 본 나의 발걸음이 휘청거렸다. 돌담 곁으로 보이는 문 사이에 여인의 머리를 묶은 리본이 팔랑거리고 있었다. 대문 틈으로 내다보고 있는 눈동자. 읍내에 갔다고 하는 그녀가 틀림없었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용기가 없어 바닷가 소로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 길로 서울로 돌아왔으나 그녀에 대한 잔상을 지울 수 없었다.
지나치고 말아야 할 인연이건만 이별한 아내에게 향한 마음보다도 더한 그녀에 대한 그리움으로 사무쳤다. 나는 밤마다 그녀에 대한 생각으로 불면증에 시달렸다. 결국은 그녀에 대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여행을 다녀온 지 한 달 만에 다시 그곳을 찾아갔다. 그러나 바닷가의 그곳을 찾아간 나는 실의에 빠졌다.
그곳에는 더욱 녹슨 여인숙 간판만이 서 있을 뿐, 그녀도 그녀의 남편 보습도 보이지 않고 텅 비어 있었다. 먼지만 풀풀 날리는 집안을 돌아보며 좌절감에 빠졌다. 못내 아쉬움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이웃의 지붕이 나지막한 집의 문을 두들겼다. 집안에서 머리가 백발인 노인네가 나왔다.
“혹시 저 옆집에 사시던 분들 어디 가셨는지 아시나요?”
“모르지요. 남정네가 죽고 여편네는 어디론가 떠났으니까.......”
그 노인의 말은 나의 간절함을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결국 그녀의 남편이 걱정했듯이 혼자가 된 그녀가 외로움으로 헤맬 것을 생각하니 애잔한 마음이 솟구쳤다. 나는 쓸쓸함에 젖어 발걸음을 돌리면서 한 가닥의 희망만은 놓치지 않았다. 분명하게 나는 그녀의 남편에게 명함을 건네주었다. 언젠가는 그녀가 남편의 유물들을 정리하다가 내 명함을 발견하고 연락을 해 올 것 같았다. 아니 연락이 오리라고 기대하고 그리움을 간직한 채 기다릴 것이다.
어디선가 엽총 소리가 연이어 들리고 숲속을 달리는 사냥꾼들의 발자국 소리가 어수선하게 들려왔다. 덤불속에서 밀회를 즐기던 꿩 한 쌍이 총 소리에 놀라 급히 푸드덕! 날갯짓을 하며 날아올랐다. 산등성이를 향해 가시덤불을 헤치며 허우적거린다. 목까지 숨이 차오르고 온몸에는 비 오듯 땀이 흘러내리고 있다. 갈수록 험한 바위와 우거진 숲뿐이었다.
우거진 수풀을 헤치고 나가던 나는 아차! 싶었다. 발을 잘못 디뎌 균형을 잃은 것이다. 잡목으로 우거진 비탈길을 굴러 내리기 시작했다. 나뭇가지에 긁히고 돌부리에 채이면서 얼마인가를 굴러 내린 다음에야 멈추었다. 온몸에 묻은 흙과 낙엽을 털고 일어서서 뒹굴고 있는 카메라와 배낭을 어깨에 둘러메고 잡목 사이를 바라봤다.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다져진 오솔길을 발견하고 나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읍내에서 산을 넘으면 해안가에 도착할 수 있다는 말에 흘깃하여 만용을 부린 것이 애초에 잘못이었다. 산을 오르기는 했으나 인적이 없는 산중에서 길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벌써 산을 헤맨 지 세 시간이 지나 태양은 서산에 가려지고 어둑어둑 해지고 있었다. 읍내에서 버스를 이용할 것인데 도보로 산을 넘어온 것이 후회스러웠다. 카메라와 배낭을 다시 고쳐 메고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니 바다의 짠 냄새와 함께 해풍이 불어오고 탁 트인 수평선이 한없이 펼쳐진 바다가 시야에 들어왔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와 갈매기의 울음소리가 어우러지는 해안가 풍경은 운치를 느끼게 하기보다는 소름이 끼치도록 적적함을 느끼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어둠마저 내려앉고 있어서 고독함이 스며든다.
외딴 세계에 들어선 나그네처럼 외로워지고 낯선 공간을 휘둘러본다. 하룻밤 묵을 곳을 찾아야 하건만 바위와 숲이 묵화처럼 펼쳐진 바닷가에는 인적이 없었다. 어쨌든 민가라도 찾아야 하기에 어둠이 내려앉고 있는 해변 소로를 따라 걸었다. 한 시간여를 걸었을까, 바다를 마주한 산모퉁이를 돌다가 오래된 가옥 두 채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 중 사립문이 달린 돌담 벽에 세워진 낡은 여인숙 간판이 나를 반겼다. 비바람에 씻겨 페인트가 벗겨져 너덜거리고 글씨조차 알아 볼 수 없을 간판이었다.
간판이 붙은 돌담 벽을 지나 사립문 안을 들여다보았다. 인적커녕 적막이 흐르고 있어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는 빈집인 것 같았다. 실망스러워 돌아서서 발길을 옮기려다가 주춤하고 다시 사립문 안을 드려다 보았다. 작은 화단에 잘 가꾸어진 화초로 보아 사람의 손길이 닿은 것이 분명했다. 앞마당을 가운데로 디귿자로 된 가옥은 여러 개의 방문들이 보였다.
방문 앞에 길게 이어진 쪽 마루로 보아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인숙임을 알 수 있었다. 형식적으로 닫혀있는 사립문을 열고 들어갔다. 마당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쪽마루와 이어진 가옥의 중앙에는 큰 마루가 보이고 마루 안쪽 방에서는 가물가물한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다. 아마도 주인이 사용하는 안방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계세요?”
“..........”
큰 소리로 불렀으나 기척이 없었고 집안은 정적만이 흘렀다. 바다에서 파도를 몰고 온 바람이 한차례 불어와 더욱 썰렁하게 만들었다.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가서 다시 한 번 큰 목소리로 외쳤다.
“아무도 안 계세요?”
“누구시오?”
큰 마루 안쪽의 방문이 스르르 열리고 중년 사내의 모습이 들어났다. 어촌의 남자로 보이지 않게 얼굴이 백납처럼 흰 사내였다. 사내는 체격이 깡마르고 키가 큰 편이라서 꾸부정하게 허리를 숙이고 방문을 나섰다.
“숙박 좀 하려는데요?”
“여기 여인숙 안하는데요.”
내 물음에 대답을 한 것은 남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여인네의 목소리였다. 사내의 뒤편으로부터 목소리의 주인공인 여인의 모습이 들어났다. 삼십 초반의 그 여인은 머리를 뒤로 단정히 묶고 단아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넋을 놓고 여인을 바라봤다. 아내와 이별하고 오랫동안 여자를 멸시하는 편견에 젖어 있었는데 그녀에 대한 첫 느낌은 충격이었다.
결코 화려하지도 않고 뛰어난 미모는 아니었지만 아담한 체구와 청초한 그녀의 자태는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였다. 그들이 부부인 것을 알 수 있었으나,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라기보다는 도시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부부의 모습이었다. 여인을 바라본 첫인상에 대한 돌발적인 감정은 솔직히 특별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공연한 관심이라고 생각하며 씁쓸해졌다. 한편으로 어디선가 하룻밤을 묵어가야하는 나로서 여인숙이 아니라는 그녀의 대답에 다시 실망스러워졌다. 그들 부부는 난처한 표정을 짓고 망설이는 나의 아래 위를 훑어보았다. 사내가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더니 마루 끝으로 나서며 물었다.
“어딜 가십니까?”
“여행 중인데요, 숙박할 곳을 찾습니다.”
“어쨌든 밤이 되고 했으니, 불편하셔도 괜찮으시다면 쉬고 가십시오.”
“그래도 될까요?”
의외로 흔쾌하게 쉬고 가라는 사내의 말이 반가웠다. 나의 물음에 사내는 동조를 구하듯 고개를 돌려 자신의 아내를 쳐다보았다. 사내와 시선이 마주친 여인이 무표정하게 앞으로 나섰다. 여인은 큰 마루를 지나 치맛자락을 나풀거리며 우측에 연결된 쪽마루를 걸어갔다. 나란히 줄지어 있는 방문들 중에 하나를 열고 쪽마루에 다소곳이 서서 말했다.
“방이 누추한데.......”
“괜찮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지덕지하여 말꼬리를 흐리는 여인의 곁을 지난 쪽마루를 딛고 방문 안으로 들어섰다. 안쪽 벽으로 창문 하나 뚫려있는 방안은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뒤따라서 방안으로 들어온 여인이 벽에 붙어있는 전등불 스위치를 눌렀다. 천장에서 잠시 형광등이 껌벅거리더니 희미한 불빛을 쏟아내며 방안을 밝혔다.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던 여인이 형광등이 밝혀진 것을 확인하고 방문을 나섰다.
방문을 닫아 주려고 그녀가 방문 고리를 잡고 잡아 당겼다. 그러나 낡아서 틈새가 뒤틀린 방문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멍하니 서 있던 나는 뒤늦게 방문으로 다가가 방문을 바로 잡아 당겼다. 나도 모르게 넋을 잃고 여인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여인의 손길이 맞닿았다. 내 시야에 들어온 그녀의 손은 험한 일을 하지 않은 희고 고운 손이었다. 혼자서 오랜 홀아비 생활을 한 탓인지는 몰라도 시선이 마주친 그녀에게서 강한 여인의 체취를 느꼈다.
맞닿은 손길을 슬며시 떼어내는 그녀의 눈동자에 얼핏 소녀 같은 수줍음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무표정하던 그녀의 얼굴에 옅은 홍조가 떠올랐다. 뒤뚱거리던 방문이 닫히고 쪽마루를 딛고 걸어가는 여인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져 갔다. 그녀의 발자국 소리의 여운마저 사라진 방안에는 혈관을 흐르는 피처럼 찌르르 하는 전류만이 흘렀다.
배낭과 카메라를 방구석에 던져 놓고 털썩 주저앉았다. 점심 저녁 두 끼를 굶었더니 뱃속에서 꾸르륵하는 소리가 들렸다. 팔베개를 하고 누워 염치없지만 밥을 얻어먹을 궁리를 한다. 한동안 몸을 뒤척이고 있는데 쪽마루를 딛는 조심스런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방문이 열렸다. 밥상을 든 그녀의 모습이 나타났다.
“반찬이 별로 없지만 식사하세요.”
“감사합니다.”
시장기를 느끼고 있었던 탓에 벌떡 일어난 밥상을 받아 들었다. 시선을 떨어트린 채 그녀는 치맛자락을 거머쥐고 몸을 돌렸다. 단아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방문을 닫았다. 주로 산나물인 반찬이지만 배가 고팠기에 허겁지겁 밥 한 공기를 단숨에 비웠다. 식사를 끝내고 담배 한 대를 피워 무는데 사내가 이불과 요를 들고 왔다. 적지 않은 키이지만 무척 체구가 마른 탓인지 그가 휘청거리는 것 같았다. 그가 들고 들어오는 이불마저 힘에 겨워 보여 얼른 받아 들었다.
“이거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예전에는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많았답니다. 그런데 해일로 인해 마을이 물속에 잠기고 섬처럼 쓸쓸한 곳이 됐지요.”
사내는 묻지도 않는 말을 흘렸다. 형광등 불빛 아래 그의 모습이 뚜렷하게 들어났다. 멀끔하게 보이던 그의 얼굴은 희다 못해 창백하였고 병색이 완연하였다. 뼈마디가 앙상해 보이는 그의 손등에는 굵은 힘줄이 돋아있고 헐렁하게 걸친 옷조차 힘겨워 보였다. 허지만 곁눈질로 나를 살피는 그의 눈빛은 살아 있었다. 내 가슴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할 듯이 유심히 나를 살피던 그가 방을 나갔다.
사내가 나가고 나서 잠시 낯선 곳에서의 적막감에 젖어 있었다. 문득 방문 밖으로부터 인기척이 들려와 문틈으로 내다보니 쪽마루 밑에 여인이 웅크리고 있었다. 아마도 내 방에 군불을 때는지 아궁이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불빛을 받은 그녀의 얼굴이 완연하게 들어나 있었다. 시골에 사는 여인답지 않게 잡티 하나 없는 그녀의 얼굴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반사되어 황홀해 보였다.
여인내의 비밀스런 방안을 훔쳐보듯이 문틈을 내다보는 내 가슴은 사춘기 소년처럼 달아오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엉덩이 밑에 깔린 방구들은 따뜻해지고, 나는 이방인이 되어 허망한 몽상에 잠겼다. 마치 긴 여정 끝에 아늑함에 빠져 드는 것 같았다. 여인내의 모습대신 내 곁을 떠난 지 오년이 지난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내는 성악을 전공하던 캠퍼스 후배였다. 결혼하고 삼년 만에 아내는 단조로운 결혼생활에 흥미를 잃었던지, 내게 권태를 느꼈는지는 몰라도 이혼을 요구하였고 음악공부를 한다며 외국 유학을 떠나버렸다. 그때서야 나는 아내의 소중함을 느꼈다. 무미건조한 생활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오직 결혼 전부터 운영하던 사진관에 매달렸다.
그러나 아내의 잔상을 쉽사리 잊을 수는 없었다. 떠나버린 아내의 흔적을 쫓아다니기라도 하듯이 카메라를 들고 산과들, 그리고 바닷가로 여행을 다니며 고독함을 달랬다. 자주 사진관을 비우는 까닭에 사진관을 찾는 손님들은 종업원을 주인으로 착각하고 있을 정도이다. 정말 아내를 사랑했는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 가야하는지 스스로 되물어도 해답은 없다.
군불을 지피던 여인네가 사라졌는지 방문 밖은 적막이 깃들었다. 잠을 청하려고 하지만 낯선 곳에서의 밤은 외로움과 함께 더욱 정신을 맑게 한다. 방문 틈으로 스며드는 달빛이 방바닥에 안개처럼 피어오르고 있다. 방문을 열고 쪽마루에 나와 떠오르는 보름달을 바라본다. 불러오는 밤바람에 마당에 떨어진 나뭇잎이 이리저리 뒹군다.
힐끔 바라 본 안방에서는 희미한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문득 주인 부부에게 호기심을 느꼈다. 이런 외진 곳에서 그들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이런 적적한 밤에 그들은 어떤 대화를 하는지가 궁금했다. 발소리를 죽여 안방 마루로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거리가 멀어 소곤거리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마루 위로 올라갔다. 마루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숨을 죽이고 잠시 눈치를 살핀다.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호기심은 더욱 깊어간다. 살금살금 기어 안방 문 앞에 다가가서 귀를 기울였다.
“그, 그만해. 당신 힘만 들어.”
힘겨워하는 남자의 낮은 목소리. 깊은 밤에 그들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뚫어진 창호지 문틈으로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헉! 깊이 들이마신 숨을 멈추었다. 부부가 모두 발가벗은 알몸뚱이였다. 공연한 호기심으로 보지 말아야할 것을 본 것이다. 아랫목에 깔린 하얀 이불 위에 반듯이 누워 있는 남편의 하복부에 여인네가 머리를 묻고 있었다. 여인네는 남편의 남성을 손에 쥐고 입술로 핥고 있는 광경이다. 하지만 남편은 무감각한 표정이고 여인네의 손에 쥔 남성은 전혀 발기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축 늘어져 있다. 남편이 어눌한 말을 흘린다.
“그냥, 내가 당신을 즐겁게 해줄게.”
뼈가 앙상하게 들어난 남편이 일어나 앉으며 여인네를 눕혔다. 다소곳이 이불위에 누운 여인네의 발가벗은 알몸이 불빛에 들어난다. 외진 어촌의 여인 같지 않게 뽀얀 피부였다. 희미한 전구 불빛과 들창문으로 스며드는 달빛에 들어난 여인네의 알몸은 신비스럽게도 보였다. 남편의 양손이 눈을 사르르 내리감는 여인네의 알몸을 안마를 하듯이 주무르기 시작한다.
방문 틈으로 엿보고 있는 내 심장이 고장 난 모터처럼 덜컹거린다. 여인네의 몸을 샅샅이 더듬어가던 남편의 손이 젖가슴을 보듬어 안는다. 그리고 보듬어 쥔 아내의 젖가슴 한가운데 돋아난 젖꼭지를 혀끝으로 핥는다. 여인네의 상체가 흠칫하며 떨린다. 남편의 입속으로 젖꼭지가 빨려 들어가는 여인네가 옅은 신음을 흘린다.
“아.......! 여보.”
나도 모르게 깊은 숨을 내쉬었다. 여인네가 남편의 머리를 감싼다. 여인네의 몸을 타액으로 적셔가는 남편의 손이 여인의 허벅지 사이를 더듬는다. 융털처럼 돋아난 여인네의 음모가 남편의 손바닥에서 이리저리 쓸려 다닌다. 그리고 항문 근처에서부터 배꼽 밑까지 손바닥으로 쓸어 올리기를 반복한다. 여인네의 허리가 꿈틀거렸다.
“조, 좋아요. 하 아~!”
여인네의 몸을 타액으로 적시던 남편의 혀가 점점 밑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허벅지 사이를 쓸어 올리며 살갗을 마찰하던 남편의 손이 젖꼭지를 둥글게 마사지를 한다. 젖꼭지를 손가락 사이에 끼고 돌기를 일으키는 남편의 입술이 여인의 음부에 잇닿았다. 뱀의 혓바닥처럼 날름거리는 남편의 혀가 음순을 감아 핥았다. 별안간 여인네가 남편의 머리를 내리 누르며 둔부를 들썩인다.
“하 아! 여, 여보.”
여인네의 음부를 타액으로 적신 남편이 다시 여인네의 젖가슴을 핥으며 젖꼭지를 혀끝으로 농락을 한다. 젖꼭지를 입속으로 빨아 당기는 남편의 손끝이 여인네의 음부를 쓰다듬었다. 순간 나는 심장이 멈추는 것만 같았다. 방문을 마주하고 있는 남편의 시선이 문틈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나를 향하는 것만 같았다. 아니 묘한 눈빛으로 보아 분명히 엿보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리라 생각한다.
크게 숨을 들이 키고 방문에서 떨어진 나는 고동치는 가슴을 달랬다. 그러나 별다른 반응이 없기에 끓어오르는 호기심을 견딜 수 없었다. 다시 문구멍으로 방안을 드려다 보고 현기증마저 느꼈다. 젖꼭지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남편의 손가락이 여인네의 음부 속을 헤집고 있었다. 여인네는 남편의 머리를 부둥켜안고 허리를 들어 올리며 꿈틀거린다.
“여, 여보. 어떡해.”
습기에 젖은 여인네의 촉촉한 속삭임. 아내의 젖꼭지를 입속으로 빨아 당기는 남편이 힐끔 나를 바라봤다. 그러나 나를 무시하듯이 여전히 아내에게 수음을 해준다. 발기를 못하는 남편이 아내에 대한 봉사였다. 입술을 깨무는 여인네의 알몸은 발정을 한 암사슴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며 허우적거린다.
마른 침을 꼴깍 삼킨 나는 안방 문 앞을 떠나 마루를 기어서 내려왔다. 하늘에 떠 오른 둥근 보름달이 완연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마당을 밝히고 있다. 왠지 휘청거려지는 발걸음으로 나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팔베개를 하고 누웠으나 나를 바라보던 남자의 눈빛과 알몸을 뒤틀던 여인네의 간절한 표정이 떠올라 뒤척였다. 그래도 온종일 산을 헤매고 다녀서 피곤한 탓인지 나도 모르게 잠속에 빠져들었다.
잠에 깨어나 눈을 뜬 것은 방문 틈으로 들어오는 눈부신 아침 햇살이 먼저인지, 아니면 방문 두드리는 소리인지, 여인네의 목소리 때문인지 모르겠다. 피곤이 덜풀린 탓에 몽롱한 정신이었다. 방문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아직도 꿈인 것만 같다.
“세면하시고 식사하세요.”
여인의 나긋한 목소리는 마치 이혼한 후 오래 동안 잊고 있었던 아내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여인의 목소리가 꿈인지 생시인지 몽롱한 정신으로 사각무늬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흐릿해지는 아내의 잔상에 잠겨 있는데 여인의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아직 안 일어나셨어요?”
“네. 일어났습니다.”
온 몸이 뻐근하기에 마지못해 일어났다. 어느새 방문 틈으로 흘러 들어온 햇빛이 방바닥에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미안한 마음으로 방문을 열고 나서는데 그녀가 도리어 쑥스러운 미소를 엷게 흘렸다. 세면을 하고나니 그녀가 아침 밥상을 들고 들어왔다. 나는 어제 밤에 보았던 그녀의 모습이 선하게 떠올라 민망스러웠다.
티셔츠와 치마를 걸쳤던 어제와는 다르게 여인네는 앞가슴이 깊게 패인 원피스를 걸치고 있었다. 더욱이나 옅은 화장까지 한 그녀의 몸매가 들여다보이는 것 같아 바라보기가 거북스러웠다. 그러나 내 감정을 모르는 그녀는 물을 따라 주는 정성스러움까지 보이고 나서 방밖으로 나갔다. 식사를 하면서 열린 방문 틈으로 밖을 내다보니 그들 부부의 모습이 보였다.
여인은 걸레를 들고 마루를 닦고 있었다. 엎드려서 걸레질을 하는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원피스 위로 들어난 엉덩이가 매력적으로 흔들렸다. 그녀의 남편은 아내에게 관심 없는 듯 화단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헐렁한 옷을 걸친 남편의 뒷모습이 왠지 초라해 보인다고 느꼈다. 식사를 하면서도 내 관심은 방밖에 있는 그들 부부에게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카메라를 둘러메고 방을 나왔다. 나만의 감정인지는 몰라도 그들을 대하기가 어색함을 느꼈다. 그 어색함이란 그녀에 대한 나의 호기심 때문이기도 하였다. 여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밥상을 들고 나와 나에게 고개를 까닥했다. 내가 고마운 인사를 해야 하건만 먼저 눈인사를 하는 그녀가 새삼스럽게 보였다. 살며시 미소를 띤 그녀가 밥상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화단 앞에 쪼그리고 앉았던 여인의 남편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어디 가시게요?”
“네. 사진 몇 장 찍고 싶어서요.”
어줍은 말투로 대답을 하고 여인숙을 나섰다. 여인숙 앞에 있는 바위들 틈을 지나니 조그마한 갯벌이 펼쳐진 해변이었다. 파도는 잠잠했고 구름 사이에 걸린 태양이 맑은 햇살을 뿜어내고 있었다. 바다 풍경에서 오는 정감을 사진 속에 담아내느라 해변 가와 절벽 밑의 바위들을 찾아 다녔다.
바위에 부딪쳐 하얗게 부서져 파도, 이따금 수평선을 지나치는 어선의 한가로움, 멋진 자태로 바다 위를 비행하는 검은 머리 갈매기, 바위 틈새에서 날카로운 앞발로 서로를 애무하는 바위게 자웅 한 쌍, 바다의 꿈을 소리로 담는 소라의 정감 등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해변의 정취에 듬뿍 빠졌다.
한동안 해변 북쪽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다가 정오가 다 되어서 남쪽으로 내려가기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여인숙이 바라보이는 해안의 모래사장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며 셔터를 누르기도 하고, 파도에 밀려온 해초들이 흔들리는 장면을 사진기에 담았다. 바닷가를 지나치다가 큰 바위 위에 앉아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느릿한 남자의 음성이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인적이 드문 이곳이 아틀리에나 마찬가지지요.”
“..............”
그는 마치 오랜 옛날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망부석처럼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망설이다가 그들 부부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기에 그가 앉아 있는 바위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가 앉은 옆의 바위에 걸터앉으며 물었다.
“원래 여기서 사셨습니까?”
“아뇨. 도심지에 살다가 이곳으로 온지 2년 됐지요.”
그는 여전히 바다에 시선을 둔 채 대답했다. 아내를 애무하던 남자의 모습과는 다르게 마치 삶에 대해 해탈한 도인 같은 모습이었다. 걸치고 있는 옷마저도 힘겨워 보이는 남자의 모습이지만 알지 못할 위압감이 서려있다. 나는 공연히 신고 있는 등산화를 벗어 바위에 두드려 털었다.
“쓸쓸하지 않으세요?”
“글쎄요.......”
“단 두 분만이 있기에는.......! 자녀분들은........?”
“자녀요? 흐흣!”
그는 내 물음을 되 내이면서 옅은 웃음을 흘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녀는 아이를 원하지만.......!?”
“.......!?”
씁쓸해지는 그의 창백한 얼굴을 곁눈질로 바라보면서 공연한 질문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가 갑자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쳐다보고 있기에도 거북하고 측은한 생각이 들 정도로 심한 기침이었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입을 막고 가래가 끓는 소리를 냈다. 남자의 옆에 놓인 어망을 들여다봤다. 그가 낚시로 잡은 물고기에 비해 물이 부족한지 물고기는 꼼짝도 않고 있었다.
“물고기가 죽었나 봐요.”
“아뇨! 이놈이 죽은 척 하는 것이지요.”
억지웃음을 흘린 남자가 어망 속에 든 물고기를 움켜쥐었다. 죽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던 물고기가 퍼덕거렸다. 남자는 손에 쥔 물고기를 바다를 향해 멀리 던졌다. 남자는 조금도 아쉽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아깝지 않으세요. 왜 놓아주십니까?”
“씨알이 굵은 놈만 반찬으로 쓰지요. 죽은 척하는 것은 여자처럼 삶에 대한 본능이지요.”
“본능 요........!?”
“네. 여자의 몸과 마음은 남자보다 빈틈없는 본능과 예민한 감정을 갖고 있지요. 물고기가 몸을 사리고 있는 것은 살아남으려는 여자의 집념과 같다고 생각하니까.......”
“흠.......”
“그러니 여자와 같이 사는 남자의 마음은 어부의 심정인지도 모르지요. 여자는 항상 생명을 불어 넣어줘야 하는 유리그릇 같으니........”
말을 하던 남자가 다시 격하게 기침을 했다. 기침을 하는 그의 모습은 고통스러워 보였고 눈동자가 충혈 되어 있었다. 언뜻 그의 손수건을 바라보니 각혈까지 한 듯 보였다. 바닷바람이 불어와 그의 앞이마에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휘날렸다. 기침을 진정시킨 그가 불쑥 물었다.
“아내를 사랑하시오?”
“사랑했었는지 모르지만 떠나갔습니다.”
그때서야 바다를 주시하던 그가 나를 흘깃 쳐다보았다. 휑하게 뚫린 그의 눈동자에는 막연함 같은 것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난 은아를 사랑하오. 얼마 남지 않은 생명을 행복하다고 자부하는 까닭이기도 하지요.”
“.........!?”
얼핏 알아들을 수 없는 그의 말을 되새겨 보았다. 자신의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과 자신 스스로 앓고 있는 병으로 죽음에 대한 예견을 하고 있다는 것인가. 단지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그의 아내 이름이 은아라는 것이다. 나는 그의 혼잣말처럼 흘려내는 말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내가 안타까운 것은 내가 떠나간 다음 은아가 외로움에 쌓이는 것이오.”
“...........”
“그 외로움을 달래주기 위해서라도 아이를 남겨주고 싶지만, 내게는 이미 그럴만한 능력이 없어서 안타까울 뿐이지요.”
“............!?”
묻지도 않았는데 흘리는 남자의 말에 묘한 여운이 남았다. 바다 갈매기가 머리위에서 선회를 하며 울음소리를 떨어트렸다. 왠지 갈매기의 울음소리가 애잔하게 들렸다. 넋두리처럼 말을 흘려내던 그가 침묵을 하였다. 나도 말을 잃은 채 온갖 상념에 잡혀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죽음을 바라보듯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 그 사랑을 받는 여인네의 감정들을 생각하며 애틋함을 느꼈다.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해변의 남쪽을 행해 걸어갔다. 갯벌을 지나 해변을 따라 걸으면서 사내의 말에서 느꼈던 감정을 잊고 한적한 바닷가의 정취에 흠뻑 빠졌다. 필름을 몇 통이나 갈아 치울 정도로 눈앞에 펼쳐진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갈대밭의 사각거리는 소리에 넋을 잃기도 하고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면서 한없이 걸었다. 얼마를 걸었는지 몰라도 어느새 노을 지는 석양으로 붉게 물들인 수평선에는 태양이 이글거리며 걸려 있었다. 나는 해변을 온통 붉게 물들인 또 하나의 장관에 감탄하였다.
여인숙으로 돌아 온 것은 수평선에 걸린 태양이 사라지고 땅거미가 질 무렵이었다. 바위 위에 앉아 있던 사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내가 하룻밤을 묵었던 방문 앞의 쪽마루로 다가가는데 여인이 부엌에서 나왔다. 그녀의 은빛처럼 맑은 눈빛을 보고 사내가 말했던 은아라는 이름이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치마로 손의 물기를 닦는 그녀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시장하시죠?”
“네. 조금요.”
그녀를 바라보면서 자신이 죽으면 외로움에 쌓일 것이라는 사내의 애잔한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단아하고 조순한 그녀의 아릿한 자태에 충동적인 감정이 솟아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방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준비를 하고 기다렸다는 듯 그녀가 밥상을 들고 들어왔다. 시장하던 차에 허겁지겁 식사를 마치고 밥상을 쪽마루로 내 놓았다.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빗줄기가 후드득 떨어졌다. 쪽마루에 걸터앉아서 비오는 밤의 바다를 바라보니 새로운 운치를 느꼈다. 주룩주룩 추녀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 바다냄새를 물씬 풍기는 냄새를 품고 자작자작 내리는 빗줄기 속으로 어둠이 내려앉는 바다가의 야경은 또 다른 색다름을 느끼게 했다.
문득 두런두런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리는 곳은 불빛이 흘러나오는 안방 문 앞이었다. 여인네는 열려진 안방에서 흘러나오는 불빛 아래서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내가 있는 것도 모르는지 마루에 나란히 앉아 있는 남자와 여인이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남자도 비 내리는 어둠속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무의식적으로 그들의 말소리에 청각을 곤두 세웠다.
“점잖은 사람이더군.”
“사진을 찍고 다니던데요.”
“사진작가인가?”
“그런가 봐요.”
“아내와 이혼했다더군.”
“........”
그들의 대화는 나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대화가 잠시 중단 되었다가 다시 이어졌다.
“약 들었어요?”
“음........”
“내일은 병원에 가봐야 되잖아요?”
“또 요양원에 가라고 할 걸. 당신 혼자 두고 어떻게 가?”
“그래도 이제는 가봐야 하잖아요.”
“당신도 잘 알잖아? 병원에서도 손 댈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을. 난 이제 아무런 미련도 없어. 단지.......”
“........?”
“혼자 남을 당신이 걱정이지......”
“.........”
“심심하지 않아? 저 방손님 커피라도 가져다주고 놀다 오지.......”
중얼거리듯이 힘없이 흘려내는 사내는 말끝을 흐렸다. 그들이 일어나는 기척을 느끼고 슬며시 방안으로 들어왔다.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남자의 말이 나의 귀에는 묘한 의미가 담긴 여운으로 남아있다. 남자이든 여자이든 가끔은 스스로 고독해지고 싶은 분위기에 휩쓸리기 마련이다. 특히 사랑하는 남녀를 의식하며 일어나는 감정의 질투일 수도 있다.
한동안 빗소리만이 들려오던 방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니 그녀의 치맛자락이 하늘거렸다. 그녀는 마른 장작을 들고 와서 내 방 앞의 마당에 내려놓았다. 오늘도 그녀가 내 방에 군불을 지피려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쪽마루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신문지에 불을 붙이더니 아궁이 속으로 집어넣었다. 불씨가 당겨진 아궁이에서 연기가 잠시 흘러나오고 그녀의 얼굴을 붉게 물들이는 불길이 일어났다.
장작 불빛에 들어난 그녀의 얼굴은 여인의 숨겨진 아름다움이 그대로 들어내 보이는 것 같다. 짙은 속눈썹 아래 까만 눈망울과 연분홍으로 변한 피부 빛깔, 그리고 윤기가 흐르는 그녀의 붉은 입술은 공연히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녀에 대한 호기심은 깊은 관심으로 변해 나도 모르게 방문을 열고 나서게 했다.
그녀의 큰 눈동자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쪽마루에서 내려서서 슬며시 그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러나 막상 그녀에 대한 관심으로 방을 나왔으나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겸연쩍은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바닷가라서 요새는 밤에 추워요.”
그녀가 희미한 미소를 흘렸다. 그 한마디를 나누고 나와 그녀는 탁탁거리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타오르는 아궁이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불꽃이 일어나는 장작을 뒤적이는 그녀의 모습을 곁눈질하며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체취를 느끼고 있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충동을 느꼈다.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 그녀에게 물었다.
“주인 되시는 분은 뭐하시던 분인가요?”
“궁금하신가 봐요. 지금은 붓을 안 들지만 반시현이라는 꽤 이름 있는 화가였어요....... 화가요. 병이 깊어서 요양할 겸 이곳을 사서 내려와 있어요.”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유명한 화가였다는 것을 강조하여 말했다. 남편에 대한 사랑이고 존중심 때문에 하는 말인 것 같다. 다시 침묵이 흐르고 무거워지는 분위기가 싫어 다시 물었다.
“어떻게 만나서 결혼 하셨는데요?”
“.........?”
그 물음에 그녀가 별 걸 다 묻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흘깃 쳐다보았다. 그러나 이내 그녀의 얼굴이 발그스름하게 물들었다. 장작불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 가슴도 장작불처럼 타올랐다. 나 자신 스스로도 내 물음이 황당하다고 느껴 변명을 하였다.
“남편 되시는 분이 자신이 죽은 다음에 홀로 남을 아내를 걱정할 정도로 사랑이 깊은 것 같아서......”
“그 이가 그런 얘기까지 했어요?”
“그냥 편하게 애기하시더라고요.”
엉뚱한 질문에 대한 변명을 하려던 나는 더욱 무안해서 쓴 웃음을 지었다. 그때 안쪽 마루로부터 발자국 소리와 함께 인기척을 느꼈다. 안방에서 슬그머니 나온 여인의 남편이 마루 끝에 걸터앉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우리에게 무관심한 표정으로 어둠 속의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남편의 모습을 힐끔 쳐다보면서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이는 화가였고 전 모델이었어요. 홀어머니는 암투병중이었고 병원비를 마련하기위해 화가들 앞에서 누드모델을 했지요. 그때 저이를 만났어요.”
“........!?”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내는 의외의 말에 나는 놀랐다. 그녀와 그 남자를 번갈아 쳐다보았으나 그들의 모습에는 변화가 없었다. 멀리서도 파도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내의 말을 듣고 있는지 모르지만 남자는 어둠 속을 바라보며 꼼짝하지 않은 채 웅크리고 있었다. 아궁이 속에 장작을 집어넣으며 여인네가 나를 곁눈질했다.
“그때 저이는 부인과 이혼한 후 혼자였고 이미 병이 깊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수녀가 되겠다고 이혼한 아내가 수녀복 대신 저이 친구의 아내가 되기 위해 신부 드레스를 입었데요.”
“........!”
“저이 덕분에 어머니를 입원시키고 수술까지 했으나 돌아가시고 말았지요. 저이와 나는 서로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어요. 나는 저이의 힘겹게 날아오르는 갈매기 등에 의지한 생명이고, 저이의 생명이 다하는 날 나는 추락하고 말거에요,”
“그래서 남편께서는 죽은 다음에 홀로 남을 아내를 위해 뭔가가 필요하다고 했군요?”
문학적인 표현을 하는 그녀에게 적당한 질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내 말에 대한 반응을 살피기 위해 마루에 걸터앉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녀의 남편은 방안으로 들어갔는지 어둠만이 남아 있었다. 불빛에 비치는 그녀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아기 말하시는 거죠? 그 말도 했군요. 하지만 그건 제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이의 희망 사항이에요. 아내를 안을 수없는 욕구 불만, 홀로 남을 아내에 대한 배려.........”
거기까지 말한 그녀가 얼굴을 붉혔다. 너무나 담담하게 말하는 그녀의 말에 나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장작 불길에 그녀와 나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녀가 다시 이어서 말했다.
“남자로서 욕망을 상실한 육체적 갈등. 그런 것들 때문이지요.”
그녀의 말을 듣고 나니 남자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사내가 한창 농익어가는 아내의 육체를 바라보는 마음을 조금은 이해가 갈 것도 같았다. 그런 생각으로 그녀를 바라본 내 시선이 그녀의 눈길과 마주치자 장작불로 달구어진 얼굴이 더욱 화끈거렸다. 그녀는 내 감정을 들여다보기라도 하듯이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들어난 그녀의 미소는 나를 유혹하는 아라비안의 무희 같았다. 장박불처럼 타오르는 감정은 내 혈관을 뜨겁게 달구어 요란한 고동 소리를 울리게 했다. 스스로의 감정에 도취된 나는 더 이상 그녀 옆에 앉아 있을 수 없어서 슬그머니 일어서서 방으로 들어왔다.
방안으로 들어 온 뒤에 내 가슴은 도둑질이라도 한 것처럼 두근거렸다. 그런데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에 방문이 스르르 열렸다. 그리고 찻잔을 받쳐 든 그녀의 모습이 나타났다. 앞섶이 깊게 패인 원피스를 걸친 그녀를 본 내 가슴은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젯밤에 본 그녀의 자태가 떠오른 까닭인지 방안으로 들어 온 그녀의 나긋한 몸의 윤곽이 원피스 위로 고스란히 들어나 보였다.
“커피 한 잔 하세요.”
“.........!”
그녀는 눈가를 붉히면서 찻잔을 내려놓았다. 옆으로 다가와 앉는 그녀에게서 성숙한 여인의 체취가 흘러 나왔다. 흐릿한 전구 불 밑에 들어난 그녀의 이마위에 흘러내린 머리카락마저 선정적으로 느껴졌다. 찻잔을 내려놓느라고 엎드린 그녀의 앞가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 같아 민망스러움으로 시선을 외면하였다.
“잠자리에는 커피가 안 좋아 드리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이가 가져다 드리라고 해서......”
자신의 의지가 아니고 남편이 커피를 가져다주라고 했다는 그녀의 말은 변명일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말을 어떻게 판단해야할지 몰라 어리둥절하였다. 하지만 스스로의 감정에 사로잡혀 있어서 나 나름대로의 판단을 하기로 했다. 내가 그녀에게 깊은 관심을 갖는 것만큼 그녀도 나에 대한 관심이 있고, 자신의 아내에 대한 극진한 배려를 갖고 있는 그녀의 남편 또한 은연중에 그러기를 바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그렇게 생각을 하고보니 더욱 쑥스럽기만 하였다. 아무런 말도 못하고 공연히 뜨거운 커피 잔을 들었다 놓았다는 반복하였다. 커피 잔을 내려놓은 그녀도 시선을 한곳에 머물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것 같아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느꼈다. 마주친 시선을 슬며시 피하는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혼자서 여행을 다니면 쓸쓸하지 않으세요?”
“이젠 습관이 돼서요.”
그녀의 희고 고운 손가락이 찻잔 가장자리를 만지작거렸다. 자꾸만 어색해지려는 분위기를 어떻게 수습해야할지 망설였다. 그녀도 같은 느낌인지 찻잔만 만지고 있었다. 그러나 여자는 역시 남자보다 순발력이 뛰어나고 용감하다. 머뭇거리던 그녀가 다시 물었다.
“혼자 생활에 익숙하신가 봐요?”
“그런 셈이죠.”
“저는 남편과의 여기 생활이 행복하다고 느끼고 익숙해졌으면서도 가끔은 적적하고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어요.”
“누구나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
그녀는 말없이 눈가에 자잘한 미소를 띠었다. 순간 나는 그녀의 여린 어깨를 껴안아 위로해 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아니 나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고 싶은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침묵 속에 묻히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는 도덕적 관념과 위로를 빙자한 욕구의 허상 속을 오가며 혼란스러워졌다.
내가 어찌해야 할지 몰라 침묵으로 일관하는데 그녀가 일어섰다.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현기증을 느끼는 사람처럼 그녀가 휘청거렸다. 무의식적으로 나는 그녀의 허리를 껴 않았다. 단지 반사적인 행동이지만, 그녀로부터 흘러나오는 옅은 화장품 냄새와 여인의 체취를 느꼈다.
“괜찮으세요?”
“네.”
그녀는 단지 딛고 일어난 발이 꼬였을 분이었다. 그녀는 홍조를 띠고 머뭇거리더니 방문을 열고 나갔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후회스러웠다. 좀 더 용기를 갖고 그녀에게 깊은 관심을 표현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모든 정황으로 볼 때 적어도 포옹 정도는 그녀가 거부할 것 같지 않아서였다.
쪽마루를 걷는 그녀의 발걸음소리가 멀어져 갔다. 그런데 멀어졌던 그녀의 발걸음소리가 크게 들리며 다시 되돌아오고 있었다. 내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혼자만의 느낌인지 몰라도 그녀도 아쉬움이 있을 거라는 엉뚱한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방문이 다시 열리고 그녀의 모습이 나타났다.
“찻잔을 좀.......”
내 귀에 그녀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녀가 뭐라고 말하는 것에 앞서서 나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 방문 안으로 끌어 들였다. 예기치 않았는지 그녀는 몸의 균형을 잃고 끌려 들어왔다. 나는 가벼운 흥분에 젖어 말했다.
“알아요.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나의 말은 적어도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고 관심보다는 사랑을 베풀고 느낀다는 진심이었다. 쓸어 질 듯이 끌려오는 그녀의 작은 체구를 가슴속 가득히 포옹하였다. 그녀가 나의 돌발적인 행동에 흠칫 놀라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거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여기서 중단하면 자존심도 무너지고 치한으로 취급당해 난처해질 뿐이다.
더 이상의 주춤거림은 그녀와 나 사이에 벽을 쌓을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입술을 포개고 입맞춤을 하였다. 그녀가 주춤거리며 거부의 몸짓을 하였다. 그러나 여자는 누구나 처음에는 무의식적으로 남성에 대한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나 자신 스스로 용기를 불어 넣었다.
내 예상이 맞았는지 그녀는 더 이상은 거부의 몸짓을 하지 않았다. 가슴에 안긴 그녀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녀의 보드랍고 달콤한 입술을 탐닉했다. 수동적이던 그녀의 팔이 나의 목덜미에 감겼다. 점점 열기에 달아오르는 그녀의 입술을 헤집고 혀를 빨아 당겼다. 혀와 혀가 엉키고 그녀는 파르르 떨었다. 그녀의 엉덩이를 두 손으로 잡아들어 올렸다. 하복부가 잇닿아지고 그녀의 뜨거워지는 열기를 느꼈다.
그녀의 등 뒤로 손을 뻗어 원피스 자크를 끌어내렸다. 원피스 자락이 주르륵 발밑으로 떨어지고 그녀의 희고 고운 어깨와 가녀린 몸매가 들어났다. 서로의 혀가 엉키어지고 그녀를 끌어안은 내손은 그녀의 브래지어 호크를 풀어냈다. 그녀가 입술을 떼어내고 빤히 쳐다보았다. 브래지어마저 벗겨져 팬티차림의 그녀 모습은 무척 선정적인 자태였다.
“사랑하고 싶어요.”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넋두리처럼 흘리는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가로젓고 돌아섰다. 그녀는 탁자위에 놓인 이부자리를 들어서 방바닥에 펴 놓았다. 그리고 시선을 피하면서 전구의 스위치를 돌려 방을 밝히던 불을 껐다. 어둠속에서 뽀얗게 들어나는 몸을 사린 그녀가 이불 속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가식 같은 허물을 벗듯이 옷을 벗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그녀를 껴안았다.
다시 그녀와 습한 입맞춤을 하고 혀와 혀가 엉키어 갈증을 풀어내듯이 서로의 타액을 들이마셨다. 풀 먹인 이부자리의 감촉이 그녀의 살갗에서 전달되어 오는 보드라움을 더욱 감미롭게 했다. 나의 손끝에서 나뭇잎 같은 팬티마저 벗겨진 그녀가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그녀는 이미 닫혀있던 문을 촉촉하게 열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서슴없이 발기된 남성을 그녀의 늪 속으로 밀어 넣었다.
“아.........”
그녀는 은어처럼 파닥거리며 매달렸다. 여인의 몸속에 숨겨져 있던 살갗들이 남성을 휘감아 왔다. 빠듯한 압박감을 느끼는 남성은 그녀의 보지 속 깊숙이 파고들었다. 어둠 속에 들어나는 그녀의 눈동자는 습기로 반짝거렸다. 뜨거운 불기둥이 여인의 늪 속을 파고들 때마다 그녀는 흘러나오는 감탄의 신음을 삼키려는지 입술을 깨물었다. 우람하게 발기된 남성이 보지 속으로 치밀어 들어가면 그녀도 따라서 허리를 들어 올렸다.
“아! 난 몰라.”
그녀와 나는 허울을 벗고 본능에 휘말린 암수에 불과했다. 이부자리에는 끈적끈적한 습기가 베어나고 방안에는 끊이지 않는 열기가 이어졌다. 나는 깊은 나락을 헤매고 있어 등을 껴안은 그녀의 손톱이 살갗을 파고드는 통증마저 극한 쾌감으로 느꼈다. 방문 밖에서는 추녀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살갗과 살갗이 잇닿은 곳에서 낙숫물처럼 습기가 배어 나온다. 폭풍처럼 몰아치며 보지 속을 치받을수록 그녀의 발가벗겨진 알몸은 능동적으로 흔들렸다. 잇닿은 살갗에 땀방울이 맺히고 갑자기 그녀가 자지러지는 신음을 터트렸다.
“하 으~! 하 앙. 여보. 미, 미치겠어.”
“허 윽! 으, 은아 씨.........”
그녀의 몸속에 틀어박힌 남성이 샘물에 휘말리는 감각에 신경세포가 자지러지는 것 같았다.상체를 들어 올린 그녀는 바들바들 떨며 습기에 젖은 눈망울로 올려다보았다. 황홀한 꿈속을 헤매는 여인의 눈빛이었다. 지칠 줄 모르는 남성은 그녀의 늪 속을 여전히 헤집고 있었다. 오르가즘을 느낀 그녀는 더욱 장작불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땀방울이 으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오르가즘의 엑스터시에 젖어 있는 그녀의 표정은 신비로웠다.
"아 흐......."
“허 억~!”
기어코 나는 그녀의 보지 속에 용암 같은 정액을 쏟아 넣었다. 으스러지도록 그녀를 껴안고 경직 되었다. 그녀와 나는 한 치의 여유도 없이 서로의 몸을 부둥켜안았다. 시간이 갈수록 뜨겁게 달아오르는 그녀는 지구의 종말의 마지막 날처럼 가슴을 파고들었고 나는 오랜 세월 만에 해후한 부부같이 그녀를 보듬어 안으며 아내에게 쏟았던 남자의 열정을 살려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그녀와 나는 서로의 지친 몸을 껴안고 잠들었다. 언뜻 정신이 나서 선잠을 깨고 보니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녘이었다. 발가벗은 그녀는 작은 암사슴처럼 내 가슴에 파묻혀 잠들어 있었다. 문득 바스락 거리는 인기척을 느끼고 방문 틈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방문 틈으로 내다보는 내 시선에 들어온 것은 웅크리고 있는 검은 물체였다.
그것은 안집 마루 끝에 꿈쩍도 하지 않고 앉아있는 그녀의 남편이었다. 나는 도둑고양이처럼 숨을 죽이고 한동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방안의 이불 속에서는 그녀가 여전히 고른 숨소리로 쌔근거리면서 곤한 잠에 빠져 있었다. 다시 문틈으로 어둠이 가시지 않은 밖의 동정을 살펴보았다. 웅크리고 있던 그가 불쑥 일어나 부엌으로 가더니 쌀을 퍼 가지고 우물가로 나왔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씻어내듯 쌀을 씻기 시작했다.
나는 소리 나지 않게 무릎으로 기어서 이불속으로 들어가 깊은 잠에 빠져있는 그녀를 안았다. 잠 속에 빠진 그녀가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소녀같이 어리광이 섞인 잠투정을 하였다.
“으응.........! 조금만.”
군불이 식어가는 방바닥이 미지근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남편대신 그녀의 몸을 따뜻하게 감싸 안고 다시 달콤한 꿈속에 젖어 들었다.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창문에 환한 햇살이 비추고 있었고 옆에서 잠들었던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세수를 마칠 때까지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방안에서 어정쩡한 모습으로 있는데 방문이 열렸다.
방문을 열고 밥상을 들고 들어선 사람은 그녀가 아니라 그녀의 남편이었다. 그와 시선을 마주하기가 서먹서먹하였다. 남자는 자신의 아내가 나와 하룻밤을 보낸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자의 얼굴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단지 그는 들고 있는 밥상이 무거워 보일만큼 힘들어 보였다. 안쓰러워 보이기에 얼른 밥상을 받아들었다.
“아내가 읍내에 나가서.......”
어눌한 미소를 지은 그는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밥상을 차려온 이유를 말했다. 그러나 그의 아내가 왜 아침 일찍 읍내에 갔는지 알 수가 없고 물어 볼수도 없다. 다만 죄지은 사람처럼 주눅이 들어 고개를 꾸벅거렸다.
“아! 네 고맙습니다.”
이상하게도 그가 차려준 식사는 돌을 씹는 것처럼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몇 수저를 뜨다말고 방문 앞에 밥상을 내 놓고 곰곰이 생각했다.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 서운하기도 했고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밖으로 나가고 싶었으나 그녀의 남편을 대하기도 어색하였다.
팔베게를 하고 누워 곰곰이 생각한 끝에 결국 이곳을 떠나야겠다는 결단을 하였다. 카메라와 배낭을 어께에 둘러메고 방을 나섰다. 마당 한 가운데서 그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가시려고요?”
“네. 잘 쉬었습니다.”
“아내가 읍내에 갔는데 좀 더 계시다가 보고 가시지?”
“아뇨. 가볼 때도 있고 해서. 나중에 들리겠습니다.”
쪽마루에 앉아서 신을 신고 일어서면서 명함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명함을 받아들고 내 이름을 암기라도 하듯이 되뇌었다.
"민태용 씨.......?”
“언제 서울 오시면 들리십쇼.”
나는 마치 취조라도 받는 느낌으로 대답했다. 그를 뒤로하고 여인숙을 나섰다. 그가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니 자꾸 뒤 꼭지가 당기는 것 같았다.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으리라고 다짐을 하였다. 그러나 어느새 내 마음속에는 그녀에 대한 미련이 스며들어 있었다. 결국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뒤를 돌아 본 나의 발걸음이 휘청거렸다. 돌담 곁으로 보이는 문 사이에 여인의 머리를 묶은 리본이 팔랑거리고 있었다. 대문 틈으로 내다보고 있는 눈동자. 읍내에 갔다고 하는 그녀가 틀림없었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용기가 없어 바닷가 소로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 길로 서울로 돌아왔으나 그녀에 대한 잔상을 지울 수 없었다.
지나치고 말아야 할 인연이건만 이별한 아내에게 향한 마음보다도 더한 그녀에 대한 그리움으로 사무쳤다. 나는 밤마다 그녀에 대한 생각으로 불면증에 시달렸다. 결국은 그녀에 대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여행을 다녀온 지 한 달 만에 다시 그곳을 찾아갔다. 그러나 바닷가의 그곳을 찾아간 나는 실의에 빠졌다.
그곳에는 더욱 녹슨 여인숙 간판만이 서 있을 뿐, 그녀도 그녀의 남편 보습도 보이지 않고 텅 비어 있었다. 먼지만 풀풀 날리는 집안을 돌아보며 좌절감에 빠졌다. 못내 아쉬움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이웃의 지붕이 나지막한 집의 문을 두들겼다. 집안에서 머리가 백발인 노인네가 나왔다.
“혹시 저 옆집에 사시던 분들 어디 가셨는지 아시나요?”
“모르지요. 남정네가 죽고 여편네는 어디론가 떠났으니까.......”
그 노인의 말은 나의 간절함을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결국 그녀의 남편이 걱정했듯이 혼자가 된 그녀가 외로움으로 헤맬 것을 생각하니 애잔한 마음이 솟구쳤다. 나는 쓸쓸함에 젖어 발걸음을 돌리면서 한 가닥의 희망만은 놓치지 않았다. 분명하게 나는 그녀의 남편에게 명함을 건네주었다. 언젠가는 그녀가 남편의 유물들을 정리하다가 내 명함을 발견하고 연락을 해 올 것 같았다. 아니 연락이 오리라고 기대하고 그리움을 간직한 채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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