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특별한 사랑방식 - 1부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박 선배였다.

“왔구나, 왔어. 하하하하하....”
박 선배는 나를 한참 동안이나 끌어안으면서 반가워했다.

공항을 빠져나오는 길에 햇살은 따사로웠고, 가로변의 진달래가 나를 반겨주는 것 같았다.
박 선배는 운전을 하면서 수다를 멈추지 않았다. 주로 자신의 사업에 관한 얘기였다.

“그 아이템이 대박을 칠 줄 누가 알았겠어? 이제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던 순간에 일대 반전이 일어난 거지. 정말 사람 일 아무도 몰라.”

박 선배의 사업은 여러 번의 부침(浮沈)을 겪고 나서 이제는 제법 탄탄한 궤도에 오른 것 같았다.

“여자는 없어요?”

박 선배가 늘 혼자였던 것이 기억이 나서 내가 물었다.

“야..야...난 몇 년간 전쟁터에 있었던 것이나 다름이 없다. 전쟁하면서 여자 사귀는 놈도 있냐?”

내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을 것이다.
박 선배는 늘 그랬으니까 말이다. 뭔가에 몰두하기 시작하면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하던 박 선배였다.

“그런데 말야....크크..”
박 선배는 나를 흘끗 보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박 선배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서울 강남의 한 번화가였다.
밤이 내린 거리는 이미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몇 년 만에 와 보는 거리지만 그다지 변한 것은 없어 보였다.
늘씬하게 뻗어 내린 다리를 휘저으며 걸어 다니는 여자들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난 그 여자들에게서 왜 아련한 슬픔과도 같은 느낌을 받았었는지 모르겠다.

“어디 가는 거예요?”
“사실은 내가 말야....만나는 여자가 있거든...크크”
“네? 하하하...”
“환영식 겸해서 같이 만나지 뭐...”
“하하..네.”



써니 힐(Sunny Hill)

선배가 나를 데리고 간 건물의 정면에 있는 로고였다.
산뜻하고 모던한 영문글자체였다.
써니 힐이라는 로고 외에는 그 건물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그 어떤 다른 정보도 보이지 않았다.
열려진 입구 안쪽으로 복도가 들여다보였고, 은은한 조명이 밖으로 새어나오고 있었다.

“내려, 여기야.”

나는 그 건물이 디자인 회사 쯤 되는 것이라고 추측을 하면서 선배를 따라 들어갔다.
레몬을 연상시키는 조명이었다.
복도를 걸어가면서 벽면에 양각되어 있는 그림들에서 예술적 터치가 묻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선배는 거침없이 문을 열고 그 아름다운 건물 ‘써니 힐’의 내부로 발을 내딛었다.

“어서 오십쇼.”

말끔하게 차려 입은 한 청년이 냉큼 달려오더니 단정하게 인사를 했다.

“음...잘 있었지?”
선배의 목소리 톤에는 약간의 거만한 느낌이 실려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써니 힐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써니 힐이라는 그 모던한 건물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아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청년은 무전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긴급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일 분도 채 못 되어 어떤 여자가 종종걸음으로 박 선배에게 다가왔다.

“어머! 어머! 박 사장님. 오늘은 왜 연락도 안 주시고 이렇게 왕림하셨어요?”
“공항에서 오는 길이야. 내 친동생이나 다름없는 후배야. 인사해.”
“어머머, 세상에...어디에다가 이렇게 멋있는 후배님을 숨겨 두셨데...완전 브래드피트시네요.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실장 윤아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써니 힐’은 강남의 고급 룸 살롱이었고, 실장 윤아는 써니 힐의 마담이었다.

“아, 네. 처음 뵙겠습니다. 정 진우라고 합니다.”
나는 속으로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든 인사를 했다.
박 선배가 나를 보고 눈을 찡긋 한다. 나는 피식 웃어버렸다.

방음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던 탓인지 다른 룸에서 소리가 새어나오지 않았다.
가끔씩 지나쳐가는 웨이터들도 단정한 몸짓으로 조심스럽게 걸어 다녔다.
우리가 안내된 방은 생각보다 화려하지는 않았다.
내가 알고 있던 룸살롱에 대한 인식을 흔들어 놓을 정도로 룸 안의 인테리어는 차분하고 은은하기까지 했다.

“저희 써니 힐은 그야말로 고품격을 추구합니다. 다른 업소에서 느꼈던 천박한 분위기를 우리 써니 힐에서는 절대로 느끼실 수 없을 겁니다. 호호호...”

따라 들어온 실장 윤아가 나에게 써니 힐에 대해서 자랑 섞인 설명을 해 주었다.

“어이, 쓸 데 없는 소리 그만 하고 빨리 셋팅해. 우리 바뻐.”
“어머머..박 사장님 정말...좀 우아하게 살자구요. 그리고 후배님 앞에서 저 가오 좀 세워주시면 안 돼요? 흥!..”

나는 박 선배와 실장 윤아가 티격태격하면서 하는 대화를 들으면서 웃음이 나왔다. 두 사람은 마치 오래 된 친구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럼, 박 사장님은 역시 미미?”
“당연하지.”
“오케이,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실장 윤아가 나가자 실내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만큼 윤아의 목소리는 하이톤으로 분위기를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목소리가 고품격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선배의 여자가....미민가보죠?”
나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면서 말했다.

“너도 한 번 봐봐라. 죽이는 애다.”

나는 결국 참고 있던 웃음을 터뜨려 버리고 말았다.

“하하하하하하하하...”



곧바로 웨이터 둘이 들어와서 술을 세팅했다.
웨이터들은 우리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각별히 신경 쓰는 모습이 역력했고, 그들의 동작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했다.
고급 양주병이 조명을 받아 아름답게 반짝인다.

“꺅! 오빠!”

미미라는 여자애가 들어와서 박 선배에게 안기다시피 하면서 앉았다.
실장 윤아의 고품격론은 미미의 화장에서도 나타나고 있었다.
전혀 천박하지 않은 화장이었다. 오히려 화장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미미의 얼굴은 조명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런데.......고급 룸살롱에서 일하는 아가씨치고는 키가 작다는 느낌을 주었고, 몸매도 그다지 특 에이급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내 친동생 같은 후배야. 인사해.”
“어머, 안녕하세요. 저 미미예요. 잘 부탁드립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오모. 근데 완전 영화배우 같으세요.”
“그래서? 내 후배랑 한 번 하고 싶으냐?”
“악! 오빠. 전 오빠만의 소녀 춘향인 거 모르세욧?”

두 사람의 대화는 정겨웠고 나름 재미있었다.
미미라는 여자애는 쉴 새 없이 떠들었고, 박 선배도 즐겁게 맞장구를 쳤다.

고품격 ‘써니 힐’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초이스 타임이었다.
실장 윤아가 데리고 들어온 10여 명의 아가씨들은 마치 왕에게 간택받기를 기다리는 궁녀들처럼 내 앞에서 자신만의 매력을 그 짧은 시간에 최대한 어필하기 위해서 서 있었다.
나는 룸살롱을 좋아하는 남자가 아니었다. 미국으로 가기 전에 한국에 있을 때 룸살롱에 갈 기회도 별로 없었거니와, 꼭 가야할 자리가 아니면 되도록 그런 자리를 피하려고 했었다. 불가피하게 가야할 경우에는 참으로 곤혹스러웠던 것 같다. 생전 처음 보는 여자와 붙어 앉아서 술의 힘을 빌어 가까워지기를 강요받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특히 초이스 타임은 나에게 가장 힘겨운 시간이었다. 내가 한 명을 선택하면 나머지 다수는 쓸쓸하게 발길을 돌려 대기실로 돌아가야 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누군가 한 명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모두가 마음을 졸이며 그 자세로 계속 서 있어야 한다. 초이스는 피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써니 힐 최고의 걸들입니다. 아니 강남 최고의 걸들이지요.”
실장 윤아는 걸이라는 말을 할 때 혀를 과장되게 굴렸다.

내 시야에 아름다운 여자들의 얼굴과 몸매가 하나하나 지나갔다.
정말 너무나도 예쁘고 섹시한 여자들이었다.
도대체 누굴 선택한단 말인가.
그런데.....그런데.......내 시야에 지나쳐가는 얼굴들 중에 눈을 둥그렇게 뜨고 얼굴 표정이 굳어있는 여자애가 한 명 들어왔다. 저 여자애는 왜 저런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음...저기...오른쪽에서 세 번째 아가씨로 할게요.”
나는 그 여자애를 지목했다.

“탁월한 선택이시네요. 진우씨하고 정말 어울리는 컨셉의 걸입니다.”

그 여자애가 나를 향해 걸어온다.
여전히 표정이 밝지 못하다.
박 선배와 미미는 가볍게 입을 맞추면서 여전히 대화에 열중하고 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되세요. 제가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거기 벨을 눌러 주세요. 바로 달려
옵니다.“
실장 윤아가 이렇게 말하고 나갔을 때 그 여자애는 이미 내 옆에 앉아 있었다.

“리수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 여자애는 자기를 리수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물론 가명일 것이다.

“아...그래요. 편히 있어요.”
“감사합니다.”

나는 왜 리수에게 편히 있으라는 말을 했던 것일까.
그것은 초이스 타임 때 유일하게 미소 짓고 있지 않았던 여자애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나는 미미가 리수에게 눈짓을 보내는 것을 포착했다.
리수는 뭔가 갑자기 생각난 사람처럼 통과일을 깎기 시작했다.
아마 미미가 리수보다 선배였었나 보다.
그것도 그럴 것이 리수는 강남의 룸살롱에서 일하기에는 아직도 상당히 앳돼 보였다.

“몇 살이죠?”
“20살입니다.”

20살. 그때가 봄이었으니까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리수는 교복을 입은 학생이었다는 것이다.

리수가 과일을 깎는다.
옆모습이 예뻤다.
내리깔고 있는 눈에 속눈썹이 고와 보였다.
과장되지 않은 아름다움을 가진 아이였다.

“뭐 해? 술 들 마시자고.....미미야. 술 따르거라.”
“예이, 서방님. 받으시오. 받으으시오. 이 술잔 받으시면 천만세를 누리리다.”
“오냐, 너도 한 잔 받거라.”

박 선배와 미미는 마치 만담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저 순수하게 즐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술잔이 서너 차례 도는 동안 리수도 몇 잔을 받아 마셨다.
그러나 본격적인 룸살롱 아가씨 같은 모습은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일단 대화가 자꾸 끊겼다. 미미는 자꾸 리수에게 핀잔 어린 눈빛을 보냈다.

“미미, 듣거라. 네 천한 몸으로 수절이 웬 말이냐? 대부인께서 들으시면 아주 요절을 하시겠구나. 허허허!”
박 선배는 취기가 오르자 이번에는 춘향전의 변학도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사또 대부인 수절이나 소녀 미미 수절이나 수절은 일반인데, 수절에도 상하가 있소?”
미미 역시 제대로 받아쳤다. 표정 연기 또한 일품이었다.

“어허, 이 년, 아직도 수절 타령이냐?”
“구군이 불행하여 왜군이 집정하면 사또께옵서도 무릎 꿇고 두 임금을 섬기리까?”
“뭣이라? 이년이 아주 요망한 악물의 딸이로구나.”
“내가 나라 곡식을 도적질하였소, 부모에게 불효를 하였소. 살인강도 아니거든 이 형벌이 웬 말이오. 어서 바삐 죽여주오. 으흐흐흑...”

박 선배와 미미의 춘향전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우리 이러고 논다.”
박 선배가 말했다.

“오우, 근사한데요. 하긴 박 선배 옛날 실력 어디 가겠어요?”
박 선배가 대학 시절 판소리와 창극에 푹 빠져 있었던 것이 기억났다.

“어휴. 말도 마세요. 제가 오빠한테 이거 배우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데요. 호호호.”
미미는 박 선배에게 꼭 안기면서 말했다.
그러는 동안 리수는 혼자 겉돌고 있었다.

“어머, 얘. 너 오늘 뭐하는 거니? 혼자 사색하려고 여기 들어온 거야?”
미미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이 리수를 힐난했다.

“죄..죄송합니다.”
“아니, 난 괜찮아요. 이쪽은 신경 쓰지 말고 두 분 재밌게 노세요.”
나는 리수를 두둔했다.

“그래. 편하게 해 줘라. 딱 보니 이런 일 처음이구만...우리 노래나 부르자.”
“그래두 그렇지. 여기가 어떤 덴 줄 알고...네, 알았어요.”

밴드가 들어오고 취흥은 본격적으로 무르익어 갔다.
나는 두 사람이 플로어에 나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그대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리수 역시 내 옆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을 뿐이었다.

“죄..죄송합니다.”
“괜찮아요. 마음 편히 있다 가요.”

나는 그때 리수의 얼굴에서 아련한 슬픔이 묻어나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을까.
겨우 20살의 나이에 술 따르는 직종을 선택했다는 것은 그 이유가 어찌되었든 간에 기쁜 일은 아니니까 말이다.

“사랑, 사랑, 내 사랑아. ....앵두를 주랴...포도를 주랴...어화둥둥 내 사랑아...”
박 선배는 춘향가의 한 대목을 멋들어지게 불러내고 있었다.



“아이, 안 돼요. 아직 두 시밖에 안 됐는데...”
실장 윤아가 울상을 지으면서 말했다.

“아이씨. 좀 봐 주라. 내가 오늘 기분이 좋아서 그래. 진우하고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 옛날 생각도 나고 해서 그러는 거야. 미미야. 나 이렇게 기분 좋은 거 본 적 있냐? 있어?”

미미는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박 선배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동의를 해주었다.

“아이..참...”
실장 윤아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를 못했다.
박 선배는 외부로 자리를 옮겨 술을 더 마시겠다는 것이다.
미미와 리수 모두 데리고 나가서 말이다.

“알았어요. 그 대신 오늘 만이에요. 응?”
실장 윤아의 허가가 떨어졌다.

“오케이! 이따가 시간 내서 실장도 와. 거기 알지? 참치집...”
“알았어요.”

이렇게 해서 박 선배와 나, 그리고 미미와 리수는 함께 써니 힐 바깥으로 외출을 하게 되었다.
아닌 게 아니라 박 선배는 정말로 기분이 좋아 보였다.

“오늘 춘향가 정말 죽였어요. 호호호.”

미미가 외출 준비를 하기 위해서 룸을 나가면서 한 말이다.

박 선배와 나도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진우야, 너, 오늘 2차 가라. 리수, 걔 쌔끈하더라.”

박 선배가 2차 가라는 말을 했을 때 나는 살짝 놀랐던 것 같다.
2차라는 것이 룸살롱에서 술 마시고 모텔로 자리를 옮겨 아가씨와 섹스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리수와 내가 그 짓을 한다는 것이 도저히 상상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됐어요. 내가 언제 그런 거 하는 거 봤어요?”
“미국에서도 못 하고 살았을 거 아냐? 오늘 좀 풀지?”
“됐다구요. 하하. 박 선배나 하세요.”
“뭐야? 수도승이야?”

써니 힐 입구에서 잠시 기다리자 미미와 리수가 걸어 나왔다.
그런데 홀복을 벗고 평상복을 입은 리수를 보았을 때 나는 가슴 속이 서늘해질 정도로 깊은 인상을 받았다.
결코 화려하지 않은 그저 단정한 옷을 입은 리수는 너무도 어리고 예뻐 보였기 때문이다.

‘후와, 예쁘다.’

나는 속으로 감탄을 했다.


참치요리집에서 또 한 바탕 술판이 벌어졌다.
거기에서는 주로 미미가 대화를 주도했다.

“실장님, 정말 너무하신 거 같아요. 오빠 안 오실 때 나는 완전 진상처리반이라니까요. 어휴, 진상들 진짜...”
“알았어. 내가 말 좀 넣어주지 뭐. 그러지 말라고..”
“어머, 정말요? 호호호...”

미미는 박 선배에게 참치를 집어서 입에 넣어주면서 계속 수다를 떨었다.
나와 리수는 그저 그들의 대화를 들어주고 있는 입장이었다.
나는 두 사람의 대화가 너무 재미있었지만 리수는 어땠을까.
여전히 겉돌고 있었다. 그저 얌전히 앉아서 내 술잔을 채워주기만 했다.

“불편해요?”
내가 말했다.

“아..아니요. 괜찮습니다.”
룸에서는 잘 느끼지 못했었는데 리수는 말을 대단히 단정하게 하는 아이였다.

“불편하면 먼저 집에 가요.”
“아...아닙니다. 그보다도 저..부탁이 있는데요...”
“뭔데요? 말해봐요.”
“말씀 편하게 하시면 안 되나요? 제가 너무 듣기가....”
“불편하면 말 놓을까요?”
“.......네.”
“알았어. 그러지 뭐.”

리수에게 말을 놓았더니 나 역시 한결 편해졌다.
사실 그토록 어린 여자애하고 함께 자리를 하고 있는 것도 그다지 자연스럽지 못했는데,
거기다가 존댓말까지 하고 있자니 나 역시 불편한 건 마찬가지였다.

술잔이 오고 가고 웃음이 끊이지를 않았다.
나 역시 취기가 오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실장 윤아가 잠시 들렀다 갔고, 박 선배와 미미는 완전히 취해서 웃고 떠들고 난리가 아니었다.

.
나는 화장실에 가서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서 찬물로 세수를 했다.
그리고 화장실을 나왔을 때 거기에는 리수가 서 있었다.
마치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기나 한 사람처럼 보였다.

“왜?”
“저.......”
리수는 뭔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것일까.

“말해. 무슨 일인데? 아하! 내가 팁을 안 줬구나, 잠깐만...”
“아..아뇨....그게 아니구요.....”
이렇게 말하는 리수의 눈에 물기가 번져있는 것이 보였다.
리수의 눈에 눈물이?

“선생님.......”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른 리수의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이 결국 뺨을 타고 흘러 내렸다.

“선생님?”
내 머릿속이 뒤죽박죽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상황 파악을 하고 정리를 하려고 무척 애썼던 것 같다.
선생님. 리수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선생님. 저, 모르시겠어요?”
리수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은 결국 울음을 동반하게 되었다.
리수는 서럽게 울고 있었다.

“바.....반장? 연주?”
"네..선생님....“


리수, 아니 연주는 나에게 안기더니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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