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탕한 유부녀


 [여전히 너를 사랑해...]


그랬다.


처음 그녀의 눈물은 어쩌면 “슬픔의 눈물”이었다. 내 마음의 소리를 들은 후의 눈물은 아니다. 같은 액체처럼 보이지만 성분이 다르다. 그 눈물은 “행복의 눈물”이었다. 처음으로 여자의 눈물에 나도 감동을 받았다. 내 손이 그녀의 손과 함께 배 위를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더 이상 눈물은 떨어지지 않는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내 눈을 본다. 


“미안해요...고마워요...사랑해요...”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내가 했던 세 가지 서술어와 동일하다. 그 말들이 귀가 아닌 내 가슴 깊은 곳 마음에 꽂힌다. 찌릿하다. 쾌감이나 흥분의 짜릿함이 아니다. 심장 부근을 전기충격 준 듯 찌릿함이 느껴졌다. 그녀가 그랬던 나도 그녀의 짧은 대답을 알아들었다.


그녀가 너무 사랑스럽다.
그녀 안에 있는 새 생명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당신에게 연락 안 해서 미안해요...]
 [당신 아기 인정해서 고마워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해요...]


내가 그녀의 볼을 타고 흐른 눈물 자국을 닦는다. 그녀의 눈과 내 눈이 서로의 마음을 읽듯 마주본다. “행복의 눈물”이 멈추었다. 촉촉하게 젖은 눈동자가 나를 부른다. 난 고개를 숙여 그녀의 눈에 입맞춤한다.


그녀가 눈을 감는다.


“할짝...할짝...쪼옥...쪽쪽...쪽쪽쪽...”


 “아...”


내 입술이 그녀의 눈물을 핥는다.


눈에 뽀뽀를 한다. 눈물로 얼룩진 화장도 상관없다. 그녀의 얼굴이 너무 사랑스럽다는 듯 핥고 “쪽쪽”거리며 뽀뽀했다. 내 입술이 살짝 벌어진 그녀의 입술에 닿았다. 내 혀가 기습을 펼쳤다. 기습은 실패했다. 그녀도 내 공격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혀와 내 혀가 전투를 벌인다.


우리는 서로의 혀를 물고 빨았다.


“쭈웁...쭙...쪼오옵...”


 “아...쭈웁...쭙쭙...당신...”


전투는 무승부였다.


두 사람 모두 너무 뜨거운 무기를 소지했다. 서로의 무기가 부딪혀 녹아버렸다. 그녀는 얕은 신음소리를 내며 내 목을 감싼다. 배고픔을 서로의 타액으로 달래려는 듯 탐한다. 한 손은 그녀와 내 소중한 아기를 품은 배를 쓰다듬는다.


우리의 입맞춤은 방해꾼 때문에 멈췄다.


똑똑...


“사장님...식사 가져왔습니다.”


 “어...들어와.”


나와 그녀는 노크소리는 듣지 못했다.


지배인의 목소리를 듣고 우리 입술은 떨어졌다. 자리를 옮기지는 않았다. 그녀의 옆자리에 앉아 지배인에게 대답한다. 그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았던 지배인은 천천히 방문을 열었다. 내가 그녀와 나란히 앉은 것을 보고 약간 당황하다가 표정을 수습한다.


지배인을 따라 여직원이 음식을 들고 들어온다.


“지배인...인사해. 내 아내 최미경...”


 “네? 안녕하세요. 사모님! 우리 일식 지배인 최광민입니다.”


그녀도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내 소개가 그녀와 지배인 그리고 뒤에 따라온 여직원 모두를 놀라게 한 것이다. 지배인은 역시 처세술이 능한 인물이다. 그녀의 신분을 알고 바로 허리를 굽힌다. 여직원은 자신이 나설 자리가 아님을 아는지 조용히 시립해서 대기한다. 그녀는 나를 향해 환한 웃음을 지으며 지배인에게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최미경이라고 해요.”


그녀는 앉은 자세에서 인사를 받았지만, 거만해보이지 않았다. 말투에서 느껴지는 귀품까지 느껴졌다. 그녀는 상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나도 왜 그녀를 “아내”라고 소개했는지 모르겠다. 내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함께 사는 경화에게 조금 미안해진다.


지배인은 경화를 알고 있다. 경화와 수경 모두 일식집을 다녀갔었다. 그녀들은 “애인”으로 소개했었다. “애인(愛人)”과 “아내”는 다르다. 경화와 수경이 내 아이를 임신하면 그녀들도 내 “아내”가 될지도 모르겠다.


“미스 최...그거 이쪽으로 주고 너도 인사해라.”


그녀는 테이블로 다가와 무릎 꿇고 앉는다.


점심 특별정식 두 접시를 담은 쟁반을 테이블에 조심스럽게 차린다. 세팅을 한 후 일어나 허리 숙여 미경에게 인사한다. 미경은 그녀를 찬찬히 본다. 내 주변에 머무는 여자를 약간 경계하는 눈빛이다. 이 순간에도 질투를 하는 그녀는 역시 여자다.


“안녕하세요. 사모님! 처음 뵙겠습니다. VIP룸 담당 최현미 인사드려요.”


 “안녕하세요. 최현미씨...반가워요.”


 “자...나가서 일들 봐...우리는 배가 고파서...”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맛있게 드세요.”


지배인과 미스 최가 나가고 문이 닫힌다.


“아얏...왜?”


 “놀랬잖아요. 갑자기...”


그녀가 눈을 살짝 흘기며 나를 꼬집었다. 나는 웃음으로 응수했다.


“하하...그럼 뭐라고 소개해? 내 아이의 엄마라고 해?”


 “흥! 못됐어...정말...사람 놀리고...”


 “기분은 좋았잖아...아냐?”


 “그야...좋았어요. 누군가의 아내로 소개된 것이 이렇게 행복할 줄 몰랐어요.”


그녀가 내 팔짱을 끼며 어깨에 기댄다.


“밥 먹자. 얘기는 천천히 하고...많이 먹어야 튼튼한 아기를 낳지.”


 “정말 나랑 결혼할 생각이에요?”


 “음...지금 답해야 돼?”


 “아니요. 아기 때문이라면...”


 “천천히 생각하자. 먹어. 맛있어. 몇 주 됐어?”


결혼은 아직 내게 부담스럽다. “아내”라는 소개가 그녀에게 어떤 기대와 당황스런 감정을 불러온 듯하다. 내게 부담은 주기 싫은 것 같다. 아기 때문에 발목 잡아 결혼하기는 싫다는 간접표현이다. 나도 결정을 못 내리겠다. 그래서 화제를 돌렸다.


“피...바람둥이! 계산해 봐요.”


 “응? 아! 맞다. 한 방에 성공시켰네. 하하하! 그럼 보자...12주?”


 “맞아요. 맛있네요. 얌얌...당신 늦어서...우리 아기도 굶었잖아요.”


 “미안...미안...부족하면 말해. 뭐 더 먹고 싶은 것은 없어?”


 “후루룹...으음...생각나면 말할게요. 당신도 먹어요.”


난 그녀가 먹는 모습을 보며 식사를 멈췄다.


안 먹어도 배가 부른 느낌이다.


이래서 인간들이 기를 쓰고 “결혼”해서 애를 낳으려고 하는 것일까? 처음 느껴보는 충만감이다. 경화와 미영이 함께 살면서 “가족”이 주는 행복은 느꼈다. 하지만 내 아이가 주는 행복감은 또 다르다.


나는 그녀의 배 위에 손을 올린다.


“많이 먹어. 아빠가 등골이 휘도록 돈 벌어서 많이 사줄게...”


 “호호...당신 등골이 왜 휘는데? 딴 여자에게 힘쓴다고...”


 “어허...아기 듣는데...좋은 말만해. 울다가 웃으면 어찌 된다고?”


 “피...불리하면 딴 데로 말 돌리고...알았어.”


그녀는 나를 찾아오기까지 고민을 많이 한 모양이다.


‘여전하네...’


처음에는 내게 존대를 했는데, 내가 “아기”를 인정해주고 기뻐하는 모습에 긴장이 풀린 모양이다. 예전 관계를 가질 때도 성교 후 어느 순간 말을 놓았었다. 반말이 싫은 것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편하고 좋다. 한 손은 초밥을 입에 넣으며 다른 손은 여전히 그녀의 배를 만진다.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묻는다.


“쩝쩝...지금 어디서 살아?”


 “짭짭...왜? 함께 살자고?”


 “싫어?”


 “함께 사는 여자 있다며? 두 집 살림하게...그건 싫은데...”


그녀는 내가 말했던 경화를 기억하고 말한다.


나는 간단하게 생각했는데, 문제가 좀 있다. 경화를 이해시키는 것은 가장 쉽다. 그녀는 무엇이든 내가 결정하면 따른다. 경화 딸 미영에게 설명하기가 좀 복잡하다.


미경을 설득하는 것도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담보로 억지로 나와 결혼하기는 싫다고 했다. 그러나 그 말이 다른 여자들과 나를 나눠 갖는 것까지 인정한다는 말은 아니다.


두 집 살림이 싫다는 것이 그런 의미처럼 들린다.


“그럼? 다 같이 사는 방법은?”


 “싫어...다 가질 수는 없어. 한 쪽은 포기해. 나와 아이를 포기해도 원망하지 않아. 아이는 혼자서도 잘 키울 거니까.”


그녀의 말은 경화를 포기하라는 말로 들린다.


경화와 딸 미영에게 정(情)이 들었다. 경화는 “사랑하는 여자”다. 미경을 속이고 경화와 두 집 살림을 할 수도 있다. 그러고 싶지 않다. 모두 함께 살고 싶다. 내 욕심일 수도 있다. 미경을 설득하는 것이 먼저다.


“날 사랑하니?”


 “당연.”


 “예전에 말했던 거 기억나? 사랑에 크고 작음은 없어. 난 공평하게 모두 사랑할거야. 물론 앞으로 그 사랑이 더 늘어나지 않는다고 장담은 못해. 동거녀 외에도 애인은 더 있어. 지금도 좋아? 내가 어떤 놈인지는 너도 알잖아.”


 “하지만...아이에게 좋지 않아.”


그녀는 아이를 무기로 삼았다.


내게 치명적인 약점이 될 아이를 핑계로 내세웠다. 나도 어른인 경화와 미경보다 아이들이 걱정이다. 미영과 앞으로 태어날 내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문제다.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이란 어떤 것일까? 꼭 엄마와 아빠가 하나씩 존재하는 보통 평범한 가정이 좋은 것인가? 그녀들을 설득할 말보다 아이들을 이해시킬 말들이 더 고민스럽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여러 명인 것이 좋은 점도 많을 것 같다.


욕망이 모든 상황을 내 기준으로 합리화한다. 아이들과 그녀들의 엄마의 의사는 상관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내가 남을 그렇게 배려하는 놈은 아니다. “먹고 싶은 여자”를 따먹기 전에 작업성으로 친절하게 배려한다. 사업상 접대해야 할 상대에게 가식적으로 배려를 한다.


나도 아이들을 무기로 억지 공격을 했다.


“아이들에게 좋을 수 있어. 형제가 있어서 외롭지 않잖아.”


 “잠깐! 아이들? 같이 사는 여자에게 아이가 있어?”


 “응!”


 “당신 딸은 아니지?”


 “말 안했었나? 11살 미영이라고 귀여운 딸이지. 친딸과 마찬가지야.”


 “더 안 돼. 지금은 어려서 몰라도 크면서 혼란스럽고 힘들어할 거야.”


그녀도 나도 고집을 꺾지 않는다.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좋은 방향으로 생각해.”


 “그럼 아이들 호적은?”


그녀는 내게 찾아오기 전에 고민했던 것을 털어놓는다.


미영이를 몰랐을 때는 나와 결혼한다면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였다. 이제 복잡해졌다. 미영이 친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앞으로 태어날 아이를 누구 호적에 올리느냐만 문제가 아니다. 함께 산다면 미영의 문제도 걸린다. 지금까지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이다. 미영의 법적 아버지는 아직 “정용걸”이다.


실종신고 후 일정기간이 지나면 사망에 간주할 수 있다.


경화도 나도 함께 살고 사랑하는 것에만 생각했다. 아이의 문제는 심각하게 생각한 적이 없다. 나는 사악하고 나쁜 놈이다. 내 호적은 깨끗한 상태다. 법적으로 미혼이다. 어쩌면 나는 그것을 아직도 더 향유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미경이 그 문제를 끄집어내 나를 공격해왔다.


“호적법 바꿨잖아. 그냥 엄마 앞으로 올려. 그래도 내 아이들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당신...너무 이기적이야.”


 “그럼 일부다처(一夫多妻)제 나라에 가서 합동결혼식이라도 올릴까?”


내가 농담에 그녀의 기분이 좀 풀린 듯 농담으로 받아친다.


“흥! 바람둥이...애인 말고 또 더 숨겨둔 자식은 없어?”


 “모르지. 일찍 쳤던 사고들 중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있다면 20살이 넘었을까?”


 “못 말려. 정말 같이 살고 싶어? 아이들도 문제지만, 불편할 거 같아. 차라리 그냥 두 집 살림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 그게 당신도 더 자유스럽고 좋겠지?”


 “아니...싫어. 가족이라는 소속감과 안락함은 한 곳에서 느끼고 싶어. 밖에서 아무리 내가 많은 여자를 만나도...돌아가야 할 곳은 하나의 집이었으면 좋겠어.”


내 억지스러운 말에 그녀가 항복의 기를 들었다.


“천천히 생각해. 당장 함께 살 것도 아닌데...당신 다시 만나 좋은 기분 다 망칠 것 같아. 그만해요.”


 “난 결론내고 싶어. 경화를 부를게...만나 봐.”


 “다른 날 만나. 첫 만남에 싸우고 싶지 않아.”


 “좋은 여자야. 난 당신들이 친했으면 좋겠어.”


 “친해지기 힘들지 않을까? 일반적인 관계는 아니잖아. 이웃사촌도 아니고...”


그녀는 별로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남은 음식을 끄적거린다.


“두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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