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 미 - 37부
2018.11.21 10:40
내 얼굴에서 수건을 벗겨 낸 주인님이 뒷좌석의 물건을 가져 오란다.
예쁘게 포장된 물건이었다. 만져보니 말랑 말랑한 게 옷감 같았다.
딱딱한 부분도 없진 않았다. 주인님 지시로 포장지를 뜯었다. 내 입에서 절로
감탄의 소리가 나왔다. 진심에서 우러나 감사 합니다.를 외쳤다.
포장지 속에는 보라색 브라 팬티 세트와 살색 스타킹이 들어 있었다.
“마음에 드나?”
“예. 주인님 너무 예뻐요. 정말 감사해용.”
“입어라. 의자 젖혀 놓고.”
나는 의자를 눕혀 놓고 그 위에 앉아 원피스를 벗고 팬티 브라를 착용했다.
살색 스타킹을 신고 원피스를 걸치니 암캐 아닌 여자가 된 기분이었다.
신이 나서 콧노래가 흘러 나왔다. 옷 갈아입는 것을 누가 보았어도 부끄럽지 않았다.
주인님이 내리더니 조수석 문을 열고 내 손을 잡아 주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내렸다. 사뿐히 문을 닫았다.
우리는 말없이 산책로를 향해 걸었다. 산책로에 들어서며 나는 주인님의 팔짱을 끼었다.
암캐 아닌 여자가 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주인님의 애첩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주인님의 팔꿈치가 내 젖탱이에 부딪혀 왔다. 느낌이 좋았다.
몸을 밀착시키고 얼굴을 주인님 가슴에 묻고 걸었다. 경관이 좋으니 공기도 좋았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 쉬어 보았다. 상쾌했다. 몸도 마음도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물도 시원하고 숲도 시원했다. 숲속에 들어가서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도
될 것 같았다. 숲속은 잘 보이지도 않을 것이고 숨기도 좋을 것 같았다.
구름다리 가까이 가니 먼저 온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아무도 없을 때 구름다리 위에서
찍히고 싶었다. 생각해 보니 멋진 곳에서 알몸으로만 찍어야 하나. 옷 입고 찍고 싶어졌다.
“주인님. 사진 한 판 찍어 주세요.”
“어! 디카 안 갖고 왔는데. 기대하고 있었어?”
“나체 사진 말구요. 옷 입고 찍으면 안 될까요?”
“아하. 미안. 내가 엉큼한 생각을 했구나. 점심 먹고 찍어 주지.”
나도 당연히 처음엔 알몸 사진을 언제쯤 찍히려나 걱정하고 있었다.
디카를 두고 왔다니 다행이었다. 위험을 감수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구름다리를 건너 산책로에서 호수를 등지고 우리는 벤치에 앉았다.
주인님이 말했다.
“나는 지희를 암캐로 키우고 싶지 않아.”
“주인님. 제가 싫으세요? 버리시는 거예요?”
“아니야. 지희는 내생에 가장 큰 선물이야. 숨겨 놓은 보물이면 좋겠어.”
다행이었다. 전 주인님의 하명을 아직 수행하지 못 했는데 버려질까봐 깜짝 놀랐다.
전 주인님께 면죄부를 주고 우리 남편 배경을 만들어 주어야 했다.
“네. 그래요. 제가 아무한테도 안 들키고 숨어 있을께요.”
“주머니에 넣어두고 보고 싶을 때 살짝살짝 꺼내 봤으면 좋겠어.”
“그러세요. 주인님. 언제든 살짝 살짝 불러서 즐기세여.”
“주인님도 듣기 싫다. 나의 여자가 되어 주면 좋겠다.”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숨겨 둔 여자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나?
“주인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자기라고 불러 봐.”
“자기.”
나는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불렀다. 기분이 이상했다.
“소리가 작아. 크게 불러 봐.”
“소리가 기어들어 가요. 지희 부끄러운 가 봐요.”
주인님이 고개를 돌리고 껄껄 웃었다.
“처음이라 그런 거지. 앞으로 자기라고 불러.”
내가 암캐에서 여자로, 애인으로 등급 업 되는 순간이었다.
“아빠라 부르면 안 될까요? 주인님.”
“주인님 빼고. 아빠라 부르면 내가 너무 늙어 버린 것 같아 싫어.”
“그럼 당분간 오빠라 부르다가 용기가 생기면 자기라고 부를 게여.”
주인님 아니 오빠는 내 등을 감싸 안고 좋아라 했다. 나도 오빠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아양을 떨었다. 이제 남편의 배경은 보장 된 거나 다름없었다.
“지희가 김 반장을 어떻게 알게 되었나?”
주인님 아니, 오빠가 나에게 암캐 된 사연을 묻고 있었다.
나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얘기해야하나 잠시 고민하였다. 사실을 다 말해도 괜찮을지
걱정도 됐다. 나로 인해 반장이나 남편이 피해를 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대충 이야기해서 이해가 될 런지도 의문이었다. 거짓으로 둘러댈 수도 없었다.
언젠가 알게 되면 진실까지도 오해받게 될 테니까. 거짓을 엮어댈 여유도 없었다.
“남편 만나기전 애인이었나?”
“사실은요. 오빠.”
나는 사실을 고백했다. 용역 공이던 남편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결근을 하게 된 얘기.
반장 집에 갈비 사 들고 갔던 얘기. 거기서 강간당하고 알몸사진 찍혀 옴짝 달싹
못하게 된 얘기. 그래서 SM을 배우게 되고 암캐로 길들여졌음을 얘기했다.
오빠는 나쁜 자식이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콩밥을 먹여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지나가던 사람들이 들을까봐 조마조마했다. 그리고 오빠의 흥분을 가라 앉혀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반장이 충동적으로 그 짓을 했는데 곧바로 뉘우치고
나에게 언제든 떠나도 좋다고 강요는 안한다고 말했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내가 복종의 의미와 길들여짐의 미학을 깨달아버려 참을 수가 없었다고 얘기했다.
남편 몰래 반찬거리 만들어 가지고 찾아가서 매달렸고 반장도 나의 본능을 개발 하여
주기위해 공부하고 도구를 준비했다고 변호해 주었다. 그리고 반장이 언제 짤릴지 모르는
남편을 정식사원으로 추천해 주고 조장으로 임명해준 고마운 사람이라고 두둔했다.
또한 자기 누나 식당에 나를 취직시켜 주어 남편의 짐을 덜게 해주고 식당 사장의 배려로
요즘 주방일도 배우고 있다고 자랑했다.
“이해할 수 없는 아이구나.”
오빠는 한 숨을 내 쉬었다. 그리고 나를 꼭 껴안아 주었다.
“그래. 그럼 김 반장이 이제 네가 귀찮아서 나에게 보낸 거냐?”
“그 분도 저하고 있으면 항상 홍콩 가는데 싫어할 리가 있겠어요?”
“그럼 네가 주인을 바꾸고 싶다고 했냐?”
“제가 오빠를 어떻게 알고 바꾸고 말고 해요. 암캐가 주인을 바꾸다니요.”
“그럼. 김 반장이 나에게 점수 따려고 너를 상납한 거냐?”
나는 다시 김 반장의 과거를 얘기해야 했다. 권투는 잘 했지만, 성적이 신통찮았다고.
권투할 때 좋아라고 따라 다니던 여자와 결혼 한 얘기. 민속주점에서 친구와
술 마시다가 옆 사람과 시비가 붙어 흠씬 두들겨 패고 숨어 있다가 군대 간 얘기도
해 주었다. 그때 맞은 사람이 공장장님인데 지금 만나게 되니 숨을 곳이 없다고
하더라는 얘기도 했다. 오빠는 내 말에 잠시 멍해 있더니 기억이 나는 듯 말했다.
“시비가 붙었다고? 그 새끼가 행패를 부렸지. 이제야 기억이 나는군.”
나는 얼른 김 반장을 변명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술이 취해 실수했는데
찾아가서 빌고 싶었지만, 나이가 어려 용기를 못 냈다고. 지금 무지 후회 하더라고.
그 당시에 술 깨고 만났으면 자기에게 맞아 죽었을 것이라고 오빠는 열을 냈다.
제대하고 직장이라고 잡은 곳이 **산업인데 회사에 인정받아 반장까지 되어
착하게 열심히 살고 있다고 전해 주었다.
“네가 그 놈의 대변인이냐? 암캐는 벌도 대신 받아야 하나?”
“그 분이 사죄하는 마음으로 예쁘고 말 잘 듣는 암캐를 선물한 거에요.”
“남의 여자 데리고 놀다가 나한테 넘기면 용서가 된다던?”
“저는 그 분의 여자나 마찬가지에요. 그 분이 저를 얼마나 아끼셨다고요.”
“네가 어째 그놈의 여자야? 이용당했지.”
오빠가 벌떡 일어나 성큼 성큼 가 버렸다. 샌들까지 벗고 벤치위에 웅크리고 있던 나는
부리나케 일어나 샌들을 끌고 뒤쫓아 갔다. 허겁지겁 달려가 한참만에야 따라 잡았다.
“오빠 화나셨어요?”
“그래. 네가 불쌍해서 화났다. 그런 놈을 편들어서.”
나는 오빠의 허리를 잡고 쫄랑쫄랑 따라 다녔다. 호수를 거의 한 바퀴 다 돌았을 즈음
오빠가 나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안아 주었다. 나는 허리 두른 팔에 더 힘을 주었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우리는 근처 식당으로 들어갔다. 한방 오리 탕을 주문했다. 기본 반찬이 나왔다.
젓가락을 챙기며 내가 물었다. 아직 화났느냐고. 오빠는 빙그레 웃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김 반장을 용서해 달라고 애원했다.
“남편은 어느 회사 과장 했지?”
오빠는 김 반장 얘기에 대답도 없이 남편 얘기만 물었다.
“대학교는 어디 다니구?”
남편이 A 대학 나오고 야설 산업에서 과장했다고 설명해 주었다.
밥을 먹고 보트를 탔다. 보트 위에서도 김 반장을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용서 안 해주면 물에 뛰어 들겠다고 협박도 했다. 오빠는 딴청만 부렸다.
“내가 기술 연구소 쪽으로 네 남편 자리를 마련해 보마.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지.”
나는 감사를 외치고 또 김 반장 얘기를 꺼냈다.
“아마 당장은 과장자리는 힘들겠고 내가 힘껏 당겨 줄 테니 열심히 하라고 그래.”
“더 이상 반장 얘기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남편도 챙겨야 했다.
“고맙습니다. 오빠. 오빠만 믿어요. 우리 남편이 착해 빠져 가지고 자기 몫도 못 챙겨요.”
“너 보니 알겠다. 마누라도 남 주는 못난 놈. 츠츠츠.”
맞장구는 치지 못했다. 남편이 못난 게 아니고 내가 나쁜 년이었으니까.
돌아오는 차안에서 오빠는 말했다.
학교 후배이자 부하직원의 아내를 만나는 것이 죄악인 줄 알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지희가 너무 사랑스러워 헤어날 수가 없다. 암캐라던가 주인이라는 말은 싫고
가끔 만나 서로의 빈 가슴이나 채워주는 사이가 되자.
오빠는 지희를 길들이거나 다스리고 싶지 않다. 인형처럼 지켜보고 남에게
막 자랑하고 싶다. 오빠가 보고 싶다고 하면 언제든 달려 와라. 정답게 바람이나 쏘이자.
한적한 곳에서 알몸 찍어 남정네들 약도 올리자. 얼굴은 감추고 몸매만 자랑하자.
나는 좋다고 했다. 오빠가 원하는 대로 따르겠다고 대답했다.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오빠가 나에게 귀가 번쩍 뜨이는 얘기를 했다.
“너를 봐서 김 반장은 용서해 주마. 옛날 일은 잊은 지 오래지만 너를 괴롭힌 것이 못마땅하다. 혼 줄을 내고 싶지만, 나도 이미 같은 짓을 했으니 어쩌겠노.”
오빠는 우리 아파트 정문까지 나를 실어다 놓고 갔다. 남편이 눈치 채거나
지희가 싫증나면 언제든 이별을 선언해도 좋다고 말했다. 모레 취임식인데
내일 김 반장을 한 번 만나 보겠다고 했다. 선물 고맙다고 말해 주기로 했다.
우리는 차안에서 한참동안 입술을 빨다가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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