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 - 37부
2019.03.09 10:40
-37부-
영진 사장과 민희가 함께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어디론가 가는 모습이 자꾸만 눈에 아른거린다. 민희가 마누라도 아닌 바에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만 회장의 클럽 후배로만 알고 있던 민희를 회장과 부부관계인 사장이 에스코트해서 가는 광경은 아무리 생각해도 낯 설게 느껴지는 일이다.
“참...... 정말 요지경 속이란 말이야...... 도무지 알 수가 없어......”
회장이 여자를 경계하란 말이 다시 한 번 떠오른다. 필요에 의해서 만나고 버리기를 손바닥 뒤집듯이 한다고 했으니 철모르고 타인에게 속을 드러냈다가 무슨 낭패를 당할지 모르는 일인 것이다.
“허허, 참...... 행여 사장 흉이라도 봤다간 큰일 날 뻔 했군......”
어제 인천에서 받아온 명함을 몇 장 꺼내 지갑 안에 챙긴다. 이 또한 취중에 엉뚱한 명함을 잘못 꺼내주면 낭패를 당하기 쉬우니 조심해야 할 일이다. 벌써 회사의 소장 명함과 의왕매장의 명함, 이제는 인천 영진 기획실 명함까지 세 종류의 명함을 챙기고 다녀야 하니 별도의 명함첩이라도 있어야 할 모양이다.
“이거 정말 갈수록 사는 게 왜 이렇게 복잡해지는 거야?......”
언뜻 우리네 사는 모양이 별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가장만 바라보는 가족에게는 남편이자 아버지요, 부양해 모셔야 할 부모님에게는 자식이고, 회사에서는 나름의 직위로 불릴 테니 모두가 각각의 정체성을 가지고 최선을 다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자리인 것이다. 혹여 어릴 적 친구들과 연을 끊고 지낸다면 그것은 사회적 요구로 인해 자기 안에서 계속 일어나는 다른 정체들의 무게로 필연적으로 어릴 적의 정체를 포기하고 사는 것일 게다.
“최강주, 너는...... 정체가 도대체 뭐냐?......”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어떻게 살아야 최적의 합을 이루어 낼 수 있을지 잠시 생각해 본다.
어쩌면 시간적, 공간적 정체성에 대한 최적의 합을 구해 내지 못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마치 스스로를 슈퍼맨처럼 단련하여 그 모두를 이루기 위해 거기에 목을 매달고 사는지도 모를 일이다.
“자, 그러면 오늘은 옷을 어떻게 입어 볼까......”
문득 어제 만난 황부장이 생각난다. 편한 복장을 착용했다고 해서 그 자리가 공식적인 자리도 아닐진대 초면의 사람을 쉽게 상대해 버리는 가벼움이 오늘은 강주로 하여금 몇 벌 되지도 않는 옷을 망설여 고르게 한다.
“어쨌거나 휴가 기간인데 정장을 하면 너무 억울하지......”
흰 티셔츠에 면바지를 입고 선글라스를 챙기고는 전화를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음...... 부소장?”
“네, 지금 거의 다 왔습니다.”
“그래, 나도 지금 나갈 테니까 매장 앞에서 만나지.”
“네, 알았습니다.”
주차장으로 들어서는데 민철이가 강주를 보고 인사를 해온다.
“아! 형님, 이제 나오세요?”
“응, 그래...... 어어? 왜 지수는 안 보이고......”
“네, 허 참...... 아침에 나만 내려주고는 누나랑 어디를 가던데요. 아...... 형님이 이거 사주고 나서는 내가 자유롭게 다닌다고 그러는지...... 이러다가 이제 왕따 시키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하하하......”
“하하하...... 그러게 말이다. 거 참...... 궁금하네. 둘이 어디를 갔을까?”
“저...... 소장님. 반갑습니다.”
“아! 부소장, 어서 와...... 자, 악수 한 번 합시다. 고생 많았어.”
전 부소장과 반갑게 악수를 한다. 건강하게 다시 돌아왔으니 무엇보다 반가운 일이다. 파라솔 밑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니 상인들이 음료수를 준비해 준다.
“아유, 부소장님...... 오랜만에 오셨네요?”
“아, 이 친구 요즘 의왕에 있어요. 잘 마실게요. 이거 공짜죠? 하하하......”
“아, 소장님...... 저도 의왕에서 일하는 겁니까?”
“아니, 지금 내가 다른 곳 일을 하나 더 맡아서 하고 있는데 지금은 실상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 암행으로 감찰을 하는 중이야. 결국 자네는 거기서 매장을 하나 책임지게 될 거야.”
“아이고, 제가요?”
“허허...... 왜? 자신 없어? 여기서 한 만큼만 하면 거기서도 엘리트야. 걱정하지 마. 우선은 내가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줄 테니까, 자네가 약도를 보고 매장 찾아다니면서 쇼핑도 하고 쭉 둘러 봐. 정식으로 그쪽에 소속될 때까지는 의왕에서 월급이 지급되는 걸로 할 테니까 그렇게 알고......”
“에, 알았습니다.”
“자네가 그 쪽에 간다고 해서 나하고 연이 끊어지는 건 아니니까 맘 쓰지 말고, 필요해서 내가 다시 부르면 언제든지 돌아와야 해. 어쨌든 지금은 의왕 소속이야.”
“아! 물론입니다. 소장님. 하하하......”
강주는 약도를 펼쳐놓고 부소장에게 이것저것 지시를 한다.
“음...... 군데군데 있어서 최소한 며칠은 걸리겠는데요?”
“그럴 거야. 자네 차가 필요할 테니까 저 벤을 끌고 가지. 아주 그걸로 당분간 출퇴근을 해.”
“그럼 소장님은 어떻게 하시고......”
“응, 다른 차가 하나 더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자, 우선 경비는 백만 원 줄 테니까 일단 쓰고 부족하면 다시 말 해.”
“네, 그럼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그래, 시간 되면 나는 나대로 돌아 볼 테니까 너무 조급하게 하지는 말고 천천히 해.”
부소장을 보내 놓고 담배를 피워 문다. 모처럼 앙코르 상가에나 가볼까 싶어 차에 오르는데 전화가 온다.
“네......”
“여보세요? 이사님......”
전화도 가려 받아야 할 모양이다. 섣불리 최소장이라고 했다가는 우스운 꼴을 당할 수도 있겠다 싶어 실소가 흘러나온다.
“네, 누구십니까?”
“어머! 뭐야? 전화 해준다고 해 놓고선...... 어제도 마주쳐서 나중에라도 전화 해줄 줄 알았는데......”
“응? 누구야? 민희니?”
“그래......”
“야, 사장 팔짱 끼고 다니는데 내가 뭣 하러 너한테 전화를 하냐?”
“푸훗, 지금 질투 하는 거야?”
“야! 네가 무슨 내 마누라라도 되니? 내가 질투를 하게......”
“호호호...... 그럼...... 만리장성을 쌓았는데 마누라지. 지금 어디에 있는데?”
“나, 수원이야. 왜?”
“왜는? 보고 싶어서 그러지. 언니한테 물어보니까 전화 왔었다던데, 왜 나한테는 연락 안했어? 인천에 오면 전화 한다고 했잖아?”
“야, 전화 안 하기 천만다행이지. 사장하고 다니다가 전화 받으면 너 곤란할 거 아냐?”
“아유...... 내 생각 해 주는 거야? 호호호...... 내가 뭐 사장 애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한다?”
“그럼 아니야? 나는 그게 헛갈리더라. 너...... 회장하고 언니 동생 하면서 친하게 지내던데 사장하고도 그렇고 그런 것처럼 보여서 말이야.”
“아이 차암......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냥 내가 신세지고 있는 게 있어서 그날 무슨 모임에 파트너로 참석해 준 것뿐이라니까......”
“음...... 그래? 허허...... 참 나...... 까짓 거 돈 드는 거 아닌데 믿어준다. 알았어.”
“피...... 그럼 언제 올 건데...... 나, 이사 친구 보고 싶단 말이야.”
“그래, 알았어. 이번에는 가게 되면 전화 해줄게.”
“꼭이야? 꼭?”
“응, 그래.”
역시 민희답다는 생각이다. 자신의 효용가치를 극대화하여 사용할 줄 아는 프로다. 한 쪽에 관심을 기울이면 그만큼 다른 쪽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을 터이지만 연결의 끈을 놓치지는 않는다. 아니, 어쩌면 사장이나 강주 모두 회장의 말처럼 그저 수첩에 적혀 있는 한 줄 메모에 불과할 수도 있을 것이니 정작 그녀가 목적하는 바는 무엇인지, 혼란한 난전 상황에서 과연 칼자루를 쥐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 강주로서는 도저히 알 길이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희에게는 알 수 없는 정이 끌리는지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정리하기라도 하려는 듯 서둘러 차를 몰아 앙코르 상가를 향해 차를 몰아 나간다.
“아! 소장님. 휴가 중이시라고 하던데 어디 안 가셨어요?”
“하하...... 팔자가 그런 모양입니다. 뭐...... 마땅히 갈 곳도 없고......”
“하하하...... 자, 들어오세요. 마침 여쭤보고 싶은 것도 있었는데......”
사무실에 들어가자 사장 딸이 정작 제 서방은 곁에 두고, 죽은 서방 돌아온 것처럼 반가워한다.
“어머! 소장님, 왜 이렇게 오랜만이에요? 뭐, 시원한 것 좀 드릴까요?”
“아니, 됐어요. 그나저나 요즘 매장도 깔끔해지고 공부를 많이 하는가 보네요? 물어볼 게 다 있다고 하고...... 하하하......”
“허허...... 네, 매출에 신경을 좀 쓰다 보니까 요즘 재고가 부쩍 늘어나는 것 같아서 재고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까 해서요.”
“오! 이제 제법 슈퍼맨 티가 납니다. 하하하......”
“슈퍼맨이요? 하하하...... 맞네요. 슈퍼맨......”
“뭐, 정답이야 조금씩 자주 하는 게 정답이지만 원하는 답이 그건 아닌 것 같고...... 체계적인 규칙을 만들려면 제일 먼저 낱개 품목별로 단품관리를 해야 정확히 알 수 있어요. 우선 평균 판매량을 알아야 하지요.”
“평균 판매량이라면......”
“음...... 오래 조사하면 좋겠지만 한 일주일 정도만 체크해 봐도 근사치는 뽑을 수 있잖아요?”
“네......”
그래서 하루에 열 개가 팔린다고 가정을 하고 일주일에 한 번 발주를 한다고 규칙을 정한다면...... 그러면 필요량이 칠십 개 아닙니까?
“네, 그렇죠.”
“그 상품이 그런데 발주를 하면 그 다음 날 오는 물건이라면 하루 치 여유가 더 있어야 하겠지요?”
“그렇지요.”
“그러면 그 물건은 매장에 팔십 개가 있으면 되는 겁니다. 팔십 개 이상 가지고 있으면 과다 재고가 되는 것이고...... 이십 개 밑으로 떨어지면 이미 품절이나 다름없는 겁니다.”
“아! 네......”
“그렇게 규칙이 정해진 물건이라면 항상 이십 개에서 팔십 개만 가지고 있으면 되니까 발주할 무렵에 삼십 개가 있다면 오십 개만 추가로 발주하면 되는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걸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하려면 개별 상품 진열대에 그 표시를 적어서 붙여두면 도움이 되겠지요. 음...... 매장이 지저분해질지도 모르니 창고에 하시던지......”
“아! 네, 알고 보니 의외로 간단하군요.”
“그렇죠? 하하...... 자...... 그럼 오늘 밥값은 한 것 같은데, 내가 아침을 아직 못 먹어서......”
사장 딸이 반색을 하고 앞서 내실로 들어서며 강주를 부른다.
“어머! 뭐 하시느라 아직도 식사를 못하셨어요? 어서 들어오세요.”
“자, 그럼 점장님은 우선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나 재고관리가 잘 안 되는 것부터 몇 가지 시작해 보세요. 뭐...... 일주일 치 평균을 내도 될 테니까 매일 재고조사 할 필요는 없어요.”
“네, 네...... 저는 창고에 가 볼 테니까 어서 들어가서 식사하십시오.”
내실로 들어서니 사장 딸은 벌써 싱크대에 붙어서 이것저것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모친은 방에 있는지 인기척도 없어 슬그머니 사장 딸에게 다가가서 엉덩이를 쓰다듬는다.
“어머! 아이 참...... 엄마 방에 계신단 말이야. 얼른 앉아서 식사나 해.”
“잠깐만 방에 들어가자. 점장이 나보고 들어가서 식사하라고 했단 말이야. 킥킥......”
“으이그...... 참, 기가 막혀서...... 갖다 붙이기도 잘 한다. 아유, 엄마한테 들켜 놓고도 또 그래......”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강주는 쉼 없이 그녀의 엉덩이를 자극해 사장 딸은 이미 일손은 멈춘 상태로 싱크대를 짚고 엉덩이를 조금 내민 모습이다. 그녀도 내심 싫지는 않은지 사무실 방향을 흘끔 쳐다보고는 방으로 걸음을 옮긴다. 아직 침대 정리를 하지 않은 듯 흐트러져 있는 모습이 더욱 자극적이다.
이미 경험이 많이 있으니 자연스레 바지와 팬티를 내리고 통이 넓은 치마를 갈아입고는 침대에 올라가 엉덩이를 내민다.
“자, 그럼 얼른 끝내고 나가야 돼.”
“킥...... 너나 소리 지르지 마라. 아예 미리 담요를 입에 물고 있지? 나는 책임 못 진다. 큭큭......”
좆을 들어 음순을 문지르니 이미 물이 많이 흘러 있어 그녀도 아슬아슬한 상황에 몹시 흥분하고 있다는 것이니 밥상은 이미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소리를 내지 않도록 슬며시 밀어 넣지만 그래도 콧소리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흐으으응......”
여자가 많아도 딱히 함께 기거하는 여자가 없는 처지니 자고 일어나면 잔뜩 발기해 있는 좆이 처치곤란이라 가끔 챙겨 둔 예쁜이들의 팬티를 뒤집어쓰고 아들 오형제의 신세를 질 때도 있는 터에 아침 공기 맑은 이른 시간에 사타구니 맛을 보니 눈앞이 아득하다.
“후우욱, 쑤우욱......”
쉼 없이 드나드는 좆질에 사장 딸도 고개를 쳐 박고 최대한 엉덩이를 들어 올려 강주에게 박자를 맞춘다. 감창소리를 줄이려 입을 틀어막아도 사타구니에서 마주치는 살 부딪치는 소리는 어쩔 수 없는지라 걱정이 밀려오고, 그것 때문인지 오히려 흥분을 통제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
“아흑, 살 사알...... 흐으윽......”
급기야는 입에 물고 있는 담요를 뱉어내고 강주를 바라보며 사정을 한다.
“하으으윽, 미치겠어. 난 몰라. 하으으윽......”
“후욱, 후욱......”
“아흑, 여보...... 아학.......”
“조금만 참아 봐......”
치마를 완전히 걷어 올려 상체를 덮어 버리니 연꽃처럼 보이고, 밑으로는 커다란 엉덩이가 복숭아 빛 뽀얀 살결에 물결을 일으키고 있으니 용왕이 있어 이런 모습에 매혹되었을지 모를 일이고, 치마를 뒤집어쓰고 인당수에 뛰어 든 심청이도 이런 모습이었을지 모를 일이다.
“후우욱, 크으으윽...... 울컥...... 꿀럭...... 울컥......”
“하악, 하악, 하악......”
그대로 엎어져 쓰러지는 그녀에게서 행여 좆이 빠질세라 따라 엎드리며 풍성한 엉덩이를 마저 즐긴다. 손을 앞으로 넣어 가슴을 주물러 주며 허리를 움직여 엉덩이를 계속 자극해 준다.
“하으으응...... 여보......”
“으응? 왜......”
“흐응...... 사랑...... 해......”
“그래, 나도 사랑해......”
좆을 꺼내 일어서니 그녀가 잽싸게 달려들어 물티슈로 좆을 닦아주고 바지를 주워 침대에 올려두고는 뒤늦게 흐르기 시작하는 게 느껴지는지 황급히 쭈그리고 앉아 뒤처리를 한다.
거실로 나가기 전, 품에 안아 깊은 입맞춤으로 아쉬운 교감을 끌고 가고 사장 딸은 아직도 홍조가 가시지 않아 색스러운 기운을 발하고 있다.
“허억! 엄마야......”
“이, 이런......”
거실 주방에는 모친이 이미 나와 상차림을 모두 마치고 싱크대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어 기겁을 하게 한다. 민망한 상황에 강주는 엉거주춤 식탁에 자리를 잡고 사장 딸은 엄마에게 천천히 다가가 팔을 잡는다.
사장은 식탁에 앉아있는 강주를 원망스러운 듯 바라보고는 식탁에 앉아 입을 연다.
“소장님, 이 늙은 것이 심장이 떨려서 못 살겠어요. 어찌 보면 내 딸이 좋아서 저러니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제발 우리 사위 모르게 조심 좀 하세요.”
이어서 딸을 바라보며 허공에 주먹질을 한다.
“그리고 이것아. 사무실 문이라도 잠그고 그 짓을 할 일이지. 네 서방 들어와서 봤으면 어쩌려고...... 그나마 내가 먼저 알고 문을 잠갔으니 망정이지......”
아예 드러내 놓고 이야기를 하니 차라리 편안한지 사장 딸이 입을 가리고 쿡쿡거리며 웃는다.
“아유, 미안해요. 엄마. 앞으로 조심할게요.”
“조심은 무슨...... 앞으로는 차라리 나가서 만나. 자, 소장님은 어서 식사하세요.”
어찌 됐든 강주를 바라보는 눈빛은 자애로운 장모의 눈길이니 민망하긴 하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위도 아니고 딸자식이 바람을 피우니 드러내 놓고 나무랄 일도 못 되어 그저 사고 없이 잘 지내기만 바랄 것이다.
시선처리가 어려운 마당에 마침 전화가 울려 강주를 도와준다.
“네, 여보세요?”
“응, 나야...... 혜숙이.”
“응, 너...... 아침부터 지수 데리고 어디 갔었다면서?”
“응...... 이제 돌아가는 길이야.”
“뭐야...... 왜? 무슨 일 있어. 어제는 술 마시면서 아무 말도 없더니 갑자기 무슨 일인데...... 목소리에 힘도 없고......”
“으응, 너...... 어제 올케하고 갔다던 그 매장......”
“응, 그래. 그게 왜?”
“이혼한 남편이 그리로 간 모양이더라...... 올케가 비슷한 것 같다고 해서 지금 보고 오는 길이야.”
“뭐야? 뭐, 그런 일이 다 있냐? 저쪽에...... 어디...... 달맞인가 아디에 있다고 그랬잖아?”
“으응...... 거기서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었다는데 전에 강주씨가 네다바인가 뭔가 해서 그런 거 아닐까?”
“에이...... 그런 정도야 뭐 비일비재한 일인데 설마...... 다른 이유가 있었겠지. 그런데 그 친구는 왜 지수를 몰라보니?”
“당연하지...... 민철이 결혼하기 전인데...... 올케가 언젠가 앨범에서 사진을 봤던 모양이지.”
“으응...... 그렇구나. 그럼...... 그놈 이번에 아주 모가지를 쳐 버려야 하겠구나. 애 좀 먹으라고......”
“피...... 안 그래도 너 그럴 줄 알았다. 그래서 일부러 전화 한 거야. 그러지 마......”
“뭐? 그러지 말라고...... 야! 홍혜숙. 너 왜 그래? 제 정신이야?”
“그래...... 만나보니까 얼굴이 많이 상했더라. 맘이 안 좋아. 그래서......”
“어이구...... 아주 열녀 나셨네...... 너한테 그렇게 한 놈인데 오히려 걱정을 해 주는 거야? 참 나......”
“그래도 내가 부탁하면 강주씨는 모두 들어주잖아. 그렇지?”
“야! 그거하고 이거하고 무슨 상관이야?”
“그럼 그렇게 믿을 테니까 절대 그 사람 자르지 마. 부탁할게...... 그럼 나중에 보자. 끊을게......”
“야! 혜숙아...... 혜숙아......”
인천 매장에 따라 나섰던 지수로부터 점장을 자를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들었던 모양이다. 천생 착해빠진 혜숙이가 전 남편을 보고 마음이 착잡한 모양이니 다시 전화를 해서 자세한 상황을 묻기도 어색하고 지금 이 자리를 빨리 피하고 싶기도 해서 서둘러 밥그릇을 비운다.
“아, 이거...... 역시 꿀맛이네요. 허허...... 잘 먹었습니다. 이만 가 봐야 하겠네요.”
“뭐, 무슨 일 있는 거야?”
“아, 아니...... 별 일은 아니고...... 나중에 얘기해 줄게...... 자,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네, 소장님...... 잠깐만요.”
모친이 방으로 들어가서 뭔가를 주섬주섬 챙겨 안겨준다.
“아유, 엄마...... 그걸 왜 이 사람을 줘요? 창피하게......”
“이게 뭔데?”
“너는 가만히 있어. 어미가 하는 대로...... 자, 이거 하루에 한 봉씩만 먹으면 된다더구먼......”
“네?...... 아, 한약입니까? 저...... 건강해서 이런 거 안 먹어도 됩니다.”
“그래도 가지고 가요. 내 성의니까...... 그리고 다음부터는 밖에서 만나고......”
“아이 참, 엄마는...... 푸훗, 강주씨...... 그거 정력제야. 갖다가 먹어 봐...... 호호호....... 아유, 우리 엄마 못 말리겠어......”
딸자식은 키워두면 엄마와 친구처럼 같이 늙는다더니 사장과 그 딸이 그런 모양이다. 사위를 주려고 준비해 둔 약까지 받아들고 차에 오르니 뭔가 처리하기 까다로운 숙제를 맡은 듯 기분이 묘하다.
부소장이 출소하고 실무에 뛰어들었으니 당분간 시간이 넉넉할 것 같아 주변을 돌아볼까 했는데 혜숙이 전화를 받고 보니 그냥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인천 영진 본사로 차를 몰아간다.
“동생?”
“응, 누님. 왜요?”
“요즘 안 보이기에 물어봤더니 휴가라던데 나한테는 말도 없이 이럴 거야? 내가 들어붙을까 봐?”
“킥...... 누님, 용건만 간단히...... 히힛...... 나 보고 싶어서 그런다고 솔직하게 말을 해야지.”
“피...... 야, 꿈 깨셔...... 며칠 후에 형님 생일인데, 밥이나 같이 먹자고 하는데 시간 낼 수 있지?”
“아! 그래요? 물론이지. 형님 생일 선물은 뭐가 좋을까? 참한 아가씨나 하나 붙여줄까? 하하하......”
“흥...... 그래 보던가....... 호호호...... 지금 어디니?”
“응, 전에 얘기했잖아. 인천...... 인천에 가는 중이야.”
“어머! 그럼 운전 중인가 보다...... 그래, 알았어. 끊어......”
벤을 몰다가 자동변속 승용차를 운전하니 전화 받기도 좋아 역시 돈이 좋긴 좋은 모양이다. 이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돈을 벌기 위해 애를 쓰는 모양이다.
잘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 본다. 정말 잘 사는 것은 호화찬란하게 꾸미고 말 그대로 잘 먹고 잘 사는 것만이 잘 사는 것일까?
가족을 책임 진 가장들이 잘 살기 위해서 밖에서 허리가 휘도록 일을 하고 퇴근하면 이미 잠들어 있는 어린 자식들과 눈 한 번 맞춰보지 못하고 사랑하는 부인과 교감도 이루기 전 내일 일을 걱정하며 침대에 쓰러져 버린다.
다시 아침에는 자식들 얼굴도 보지 못하고 바쁘게 빈속을 달래며 일터로 나가 버리니 잘 살기 위해서 그런다지만 그게 과연 잘 사는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미 아버지라는, 남편이라는 정체성은 사라져 버리고 그가 속할 가정이라는 것은 애초에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용현동 본사 매장을 들어서니 어제와는 제법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강주가 어제와 다른 옷을 입고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지만 바보가 아니라면 능히 알 수 있을 테니 어느새 점장이 따라붙어 강주를 수행하고 있다.
“그래요. 노력한 흔적이 보여서 흡족합니다. 지금도 포장작업은 계속 하고 있겠지요?”
“네, 어제 말씀하신 대로 종류별로 모두 일정량 선을 보인 후에 나머지를 포장하고 있습니다.”
“그것 봐요. 그러니까 빈자리도 없이 꽉 차 있으니 손님들이 바로 집어가잖아요. 팔리길 기대해선 안 됩니다. 내가 파는 겁니다. 알겠지요?”
“네. 알았습니다.”
일차식품 코너를 벗어나 공산품 코너를 돌아봐도 통로를 널찍이 확보해 둬 통행하기가 좋다. 여기저기 안내하는 인원 외에 진열을 하는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강주는 한 곳을 유심히 보더니 그리로 걸음을 옮기고 역시 점장은 그 뒤를 따라 붙는다.
“음...... 그래요. 잘 하고 있네요. 자, 한 가지 물어봅시다.”
“네......”
“이건 하루에 몇 개나 팔리는지 대강이라도 알 수 있을까요?”
“아! 그걸 체크해 보진 않았지만 약 이십 개 내외로 팔릴 겁니다.”
“뭐, 좋습니다. 정확한 대답을 원한 건 아니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진열을 많이 해 뒀을까요? 이건 지금 얼핏 봐서 음...... 자리가 비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십 개 이상으로 보이는데...... 다 채우면 한 팔십 개는 되겠네요?”
“네...... 그건 업체에서 파견사원이 나와 있어서......”
“그게 맹점이에요. 파견사원이 나와 있는 곳도 경쟁 거래처보다 확실하게 비교우위만 확보해주면 인사치레는 된 거예요. 여기가 그 사람들 대리점은 아니잖아요.”
“네, 그야 그렇지요.”
“이게 뭡니까? 이 정도면 나흘간 진열을 안 해도 품절이 일어나지 않을 양 아닙니까?”
“......”
“인원을 가지고 작업배분을 할 때 지금처럼 일차식품에 전력투구를 하고 그 다음에는 공산품 보충진열을 하는데...... 상품 종류가 워낙 다양하니까 맡은 바 코너를 나눠 주세요. 그리고 하루에 한 번이면 한 번, 두 번이면 두 번...... 정한 시간 외에는 진열도 못하게 하고 오로지 접객에만 신경을 쓰는 겁니다. 그래야 통로도 확보가 되고 손님들에게는 서비스가 되는 거예요.”
“네......”
“이렇게 필요 없는 양을 진열대에 깔아두면 쓸데없이 그걸 채우느라고 사람은 사람대로 부족하고 손님은 손님대로 불편한 겁니다. 예를 들어서 하루에 한 번만 보충진열을 한다면 이 물건은 몇 개만 진열하면 될까요?”
“네...... 이십 개 아닙니까?”
“그래요. 초등학생도 알 수 있는 일이에요. 그걸 이렇게 커다란 매머드 급 매장 점장이 모른다고 해서야 말이 됩니까? 두 번 진열시간을 준다면 열 개만 진열해도 되겠지요?”
점장은 어느새 강주를 상대하기가 부끄럽고 난감하여 몸 둘 바를 모르고 있다.
“자, 창고를 한 번 가 봅시다. 안내하세요.”
강주는 창고에 들어가 쭉 둘러보고 점장을 불러 세운다.
“자, 점장님...... 파레토의 법칙이란 말 들어 보셨습니까? 아니면 팔 대 이든...... 이 대 팔이든......”
“아, 아니요...... 처음 듣는데...... 아, 이사님. 이러실 게 아니라 우선 사무실로 가셔서......”
점장은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갖고 있는 강주를 너무 오래 세워뒀다는 생각이 들은 모양이다. 점장을 따라서 사무실로 가 자리에 앉는다. 여직원이 음료수를 내오고 눈을 말똥거리며 강주를 바라본다.
“파레토의 법칙이란 어떤 원인의 이십 퍼센트가 그 결과물의 팔십 퍼센트를 만들어 낸다는 거예요. 우리같은 무지렁이들한테는 다소 기분 나쁜 이야기인데 사회적으로 본다면 상류층 이십 퍼센트의 인간이 팔십 퍼센트의 부를 차지하거나 운용한다는 뜻이기도 해요.”
“네......”
“이 이야기를 왜 하는가 하면 우리에게도 이 기분 나쁜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전체 매출이 백만 원이라고 가정하고 우리가 취급하는 아이템이 백 가지라고 한다면 스무 가지의 상품이 팔십만 원의 매출을 감당한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가 알아들으시겠지요?”
“아! 네, 네...... 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 최적의 합을 구해 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상위를 차지하는 것들은 재고를 많아 갖고 있어야 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것들은 재고를 줄여야 하겠지요?
“네, 네......”
“그렇게 하면 등위 별로 A, B, C 분류가 가능할 겁니다. 매출과 이익을 가로 세로로 두고, 매출과 이익이 다 높은 것은 AA...... 다 낮은 것은 CC...... 이렇게 분류를 할 수 있겠지요?”
“네......”
“그럼 답은 나온 겁니다. AA군에 속한 상품은 효자 상품이니 많이 갖고 있어도 되고, CC군에 속한 물건은 빨리 매장에서 치워버려야 하는 상품인 겁니다. 아시겠지요?”
“네......”
“지금 내가 한 말을 듣고 나니 어때요? 창고에 다시 한 번 가 볼까요? 그거 다 돈입니다. 우리 회사 그렇게 자금력이 좋은 회사 아니에요. 점장님이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서 매장 뿐 아니라 회사 전체를 힘들게 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네, 면목 없습니다. 앞으로는 오늘 배운 바를 꼭 실천하도록 하겠습니다. 제발 기회를 더 주십시오. 사실 어디서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도 없이 무작정 경력만으로 진급을 하다 보니...... 사실 저뿐만이 아닐 겁니다. 다른 점장들도 ......”
점장은 점점 헤어 나오기 어려운 길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지 여직원 앞에서도 필사적으로 강주에게 매달려야 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아, 아...... 내가 뭐, 당장 점장님을 어떻게 하겠다는 뜻이 아니에요. 오늘도 겸사겸사 왔는데...... 어쨌든 식사나 하러 갑시다. 점심은 먹어야지요.”
“네, 제가 모시겠습니다.”
영진 사장과 민희가 함께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어디론가 가는 모습이 자꾸만 눈에 아른거린다. 민희가 마누라도 아닌 바에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만 회장의 클럽 후배로만 알고 있던 민희를 회장과 부부관계인 사장이 에스코트해서 가는 광경은 아무리 생각해도 낯 설게 느껴지는 일이다.
“참...... 정말 요지경 속이란 말이야...... 도무지 알 수가 없어......”
회장이 여자를 경계하란 말이 다시 한 번 떠오른다. 필요에 의해서 만나고 버리기를 손바닥 뒤집듯이 한다고 했으니 철모르고 타인에게 속을 드러냈다가 무슨 낭패를 당할지 모르는 일인 것이다.
“허허, 참...... 행여 사장 흉이라도 봤다간 큰일 날 뻔 했군......”
어제 인천에서 받아온 명함을 몇 장 꺼내 지갑 안에 챙긴다. 이 또한 취중에 엉뚱한 명함을 잘못 꺼내주면 낭패를 당하기 쉬우니 조심해야 할 일이다. 벌써 회사의 소장 명함과 의왕매장의 명함, 이제는 인천 영진 기획실 명함까지 세 종류의 명함을 챙기고 다녀야 하니 별도의 명함첩이라도 있어야 할 모양이다.
“이거 정말 갈수록 사는 게 왜 이렇게 복잡해지는 거야?......”
언뜻 우리네 사는 모양이 별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가장만 바라보는 가족에게는 남편이자 아버지요, 부양해 모셔야 할 부모님에게는 자식이고, 회사에서는 나름의 직위로 불릴 테니 모두가 각각의 정체성을 가지고 최선을 다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자리인 것이다. 혹여 어릴 적 친구들과 연을 끊고 지낸다면 그것은 사회적 요구로 인해 자기 안에서 계속 일어나는 다른 정체들의 무게로 필연적으로 어릴 적의 정체를 포기하고 사는 것일 게다.
“최강주, 너는...... 정체가 도대체 뭐냐?......”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어떻게 살아야 최적의 합을 이루어 낼 수 있을지 잠시 생각해 본다.
어쩌면 시간적, 공간적 정체성에 대한 최적의 합을 구해 내지 못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마치 스스로를 슈퍼맨처럼 단련하여 그 모두를 이루기 위해 거기에 목을 매달고 사는지도 모를 일이다.
“자, 그러면 오늘은 옷을 어떻게 입어 볼까......”
문득 어제 만난 황부장이 생각난다. 편한 복장을 착용했다고 해서 그 자리가 공식적인 자리도 아닐진대 초면의 사람을 쉽게 상대해 버리는 가벼움이 오늘은 강주로 하여금 몇 벌 되지도 않는 옷을 망설여 고르게 한다.
“어쨌거나 휴가 기간인데 정장을 하면 너무 억울하지......”
흰 티셔츠에 면바지를 입고 선글라스를 챙기고는 전화를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음...... 부소장?”
“네, 지금 거의 다 왔습니다.”
“그래, 나도 지금 나갈 테니까 매장 앞에서 만나지.”
“네, 알았습니다.”
주차장으로 들어서는데 민철이가 강주를 보고 인사를 해온다.
“아! 형님, 이제 나오세요?”
“응, 그래...... 어어? 왜 지수는 안 보이고......”
“네, 허 참...... 아침에 나만 내려주고는 누나랑 어디를 가던데요. 아...... 형님이 이거 사주고 나서는 내가 자유롭게 다닌다고 그러는지...... 이러다가 이제 왕따 시키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하하하......”
“하하하...... 그러게 말이다. 거 참...... 궁금하네. 둘이 어디를 갔을까?”
“저...... 소장님. 반갑습니다.”
“아! 부소장, 어서 와...... 자, 악수 한 번 합시다. 고생 많았어.”
전 부소장과 반갑게 악수를 한다. 건강하게 다시 돌아왔으니 무엇보다 반가운 일이다. 파라솔 밑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니 상인들이 음료수를 준비해 준다.
“아유, 부소장님...... 오랜만에 오셨네요?”
“아, 이 친구 요즘 의왕에 있어요. 잘 마실게요. 이거 공짜죠? 하하하......”
“아, 소장님...... 저도 의왕에서 일하는 겁니까?”
“아니, 지금 내가 다른 곳 일을 하나 더 맡아서 하고 있는데 지금은 실상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 암행으로 감찰을 하는 중이야. 결국 자네는 거기서 매장을 하나 책임지게 될 거야.”
“아이고, 제가요?”
“허허...... 왜? 자신 없어? 여기서 한 만큼만 하면 거기서도 엘리트야. 걱정하지 마. 우선은 내가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줄 테니까, 자네가 약도를 보고 매장 찾아다니면서 쇼핑도 하고 쭉 둘러 봐. 정식으로 그쪽에 소속될 때까지는 의왕에서 월급이 지급되는 걸로 할 테니까 그렇게 알고......”
“에, 알았습니다.”
“자네가 그 쪽에 간다고 해서 나하고 연이 끊어지는 건 아니니까 맘 쓰지 말고, 필요해서 내가 다시 부르면 언제든지 돌아와야 해. 어쨌든 지금은 의왕 소속이야.”
“아! 물론입니다. 소장님. 하하하......”
강주는 약도를 펼쳐놓고 부소장에게 이것저것 지시를 한다.
“음...... 군데군데 있어서 최소한 며칠은 걸리겠는데요?”
“그럴 거야. 자네 차가 필요할 테니까 저 벤을 끌고 가지. 아주 그걸로 당분간 출퇴근을 해.”
“그럼 소장님은 어떻게 하시고......”
“응, 다른 차가 하나 더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자, 우선 경비는 백만 원 줄 테니까 일단 쓰고 부족하면 다시 말 해.”
“네, 그럼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그래, 시간 되면 나는 나대로 돌아 볼 테니까 너무 조급하게 하지는 말고 천천히 해.”
부소장을 보내 놓고 담배를 피워 문다. 모처럼 앙코르 상가에나 가볼까 싶어 차에 오르는데 전화가 온다.
“네......”
“여보세요? 이사님......”
전화도 가려 받아야 할 모양이다. 섣불리 최소장이라고 했다가는 우스운 꼴을 당할 수도 있겠다 싶어 실소가 흘러나온다.
“네, 누구십니까?”
“어머! 뭐야? 전화 해준다고 해 놓고선...... 어제도 마주쳐서 나중에라도 전화 해줄 줄 알았는데......”
“응? 누구야? 민희니?”
“그래......”
“야, 사장 팔짱 끼고 다니는데 내가 뭣 하러 너한테 전화를 하냐?”
“푸훗, 지금 질투 하는 거야?”
“야! 네가 무슨 내 마누라라도 되니? 내가 질투를 하게......”
“호호호...... 그럼...... 만리장성을 쌓았는데 마누라지. 지금 어디에 있는데?”
“나, 수원이야. 왜?”
“왜는? 보고 싶어서 그러지. 언니한테 물어보니까 전화 왔었다던데, 왜 나한테는 연락 안했어? 인천에 오면 전화 한다고 했잖아?”
“야, 전화 안 하기 천만다행이지. 사장하고 다니다가 전화 받으면 너 곤란할 거 아냐?”
“아유...... 내 생각 해 주는 거야? 호호호...... 내가 뭐 사장 애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한다?”
“그럼 아니야? 나는 그게 헛갈리더라. 너...... 회장하고 언니 동생 하면서 친하게 지내던데 사장하고도 그렇고 그런 것처럼 보여서 말이야.”
“아이 차암......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냥 내가 신세지고 있는 게 있어서 그날 무슨 모임에 파트너로 참석해 준 것뿐이라니까......”
“음...... 그래? 허허...... 참 나...... 까짓 거 돈 드는 거 아닌데 믿어준다. 알았어.”
“피...... 그럼 언제 올 건데...... 나, 이사 친구 보고 싶단 말이야.”
“그래, 알았어. 이번에는 가게 되면 전화 해줄게.”
“꼭이야? 꼭?”
“응, 그래.”
역시 민희답다는 생각이다. 자신의 효용가치를 극대화하여 사용할 줄 아는 프로다. 한 쪽에 관심을 기울이면 그만큼 다른 쪽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을 터이지만 연결의 끈을 놓치지는 않는다. 아니, 어쩌면 사장이나 강주 모두 회장의 말처럼 그저 수첩에 적혀 있는 한 줄 메모에 불과할 수도 있을 것이니 정작 그녀가 목적하는 바는 무엇인지, 혼란한 난전 상황에서 과연 칼자루를 쥐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 강주로서는 도저히 알 길이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희에게는 알 수 없는 정이 끌리는지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정리하기라도 하려는 듯 서둘러 차를 몰아 앙코르 상가를 향해 차를 몰아 나간다.
“아! 소장님. 휴가 중이시라고 하던데 어디 안 가셨어요?”
“하하...... 팔자가 그런 모양입니다. 뭐...... 마땅히 갈 곳도 없고......”
“하하하...... 자, 들어오세요. 마침 여쭤보고 싶은 것도 있었는데......”
사무실에 들어가자 사장 딸이 정작 제 서방은 곁에 두고, 죽은 서방 돌아온 것처럼 반가워한다.
“어머! 소장님, 왜 이렇게 오랜만이에요? 뭐, 시원한 것 좀 드릴까요?”
“아니, 됐어요. 그나저나 요즘 매장도 깔끔해지고 공부를 많이 하는가 보네요? 물어볼 게 다 있다고 하고...... 하하하......”
“허허...... 네, 매출에 신경을 좀 쓰다 보니까 요즘 재고가 부쩍 늘어나는 것 같아서 재고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까 해서요.”
“오! 이제 제법 슈퍼맨 티가 납니다. 하하하......”
“슈퍼맨이요? 하하하...... 맞네요. 슈퍼맨......”
“뭐, 정답이야 조금씩 자주 하는 게 정답이지만 원하는 답이 그건 아닌 것 같고...... 체계적인 규칙을 만들려면 제일 먼저 낱개 품목별로 단품관리를 해야 정확히 알 수 있어요. 우선 평균 판매량을 알아야 하지요.”
“평균 판매량이라면......”
“음...... 오래 조사하면 좋겠지만 한 일주일 정도만 체크해 봐도 근사치는 뽑을 수 있잖아요?”
“네......”
그래서 하루에 열 개가 팔린다고 가정을 하고 일주일에 한 번 발주를 한다고 규칙을 정한다면...... 그러면 필요량이 칠십 개 아닙니까?
“네, 그렇죠.”
“그 상품이 그런데 발주를 하면 그 다음 날 오는 물건이라면 하루 치 여유가 더 있어야 하겠지요?”
“그렇지요.”
“그러면 그 물건은 매장에 팔십 개가 있으면 되는 겁니다. 팔십 개 이상 가지고 있으면 과다 재고가 되는 것이고...... 이십 개 밑으로 떨어지면 이미 품절이나 다름없는 겁니다.”
“아! 네......”
“그렇게 규칙이 정해진 물건이라면 항상 이십 개에서 팔십 개만 가지고 있으면 되니까 발주할 무렵에 삼십 개가 있다면 오십 개만 추가로 발주하면 되는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걸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하려면 개별 상품 진열대에 그 표시를 적어서 붙여두면 도움이 되겠지요. 음...... 매장이 지저분해질지도 모르니 창고에 하시던지......”
“아! 네, 알고 보니 의외로 간단하군요.”
“그렇죠? 하하...... 자...... 그럼 오늘 밥값은 한 것 같은데, 내가 아침을 아직 못 먹어서......”
사장 딸이 반색을 하고 앞서 내실로 들어서며 강주를 부른다.
“어머! 뭐 하시느라 아직도 식사를 못하셨어요? 어서 들어오세요.”
“자, 그럼 점장님은 우선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나 재고관리가 잘 안 되는 것부터 몇 가지 시작해 보세요. 뭐...... 일주일 치 평균을 내도 될 테니까 매일 재고조사 할 필요는 없어요.”
“네, 네...... 저는 창고에 가 볼 테니까 어서 들어가서 식사하십시오.”
내실로 들어서니 사장 딸은 벌써 싱크대에 붙어서 이것저것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모친은 방에 있는지 인기척도 없어 슬그머니 사장 딸에게 다가가서 엉덩이를 쓰다듬는다.
“어머! 아이 참...... 엄마 방에 계신단 말이야. 얼른 앉아서 식사나 해.”
“잠깐만 방에 들어가자. 점장이 나보고 들어가서 식사하라고 했단 말이야. 킥킥......”
“으이그...... 참, 기가 막혀서...... 갖다 붙이기도 잘 한다. 아유, 엄마한테 들켜 놓고도 또 그래......”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강주는 쉼 없이 그녀의 엉덩이를 자극해 사장 딸은 이미 일손은 멈춘 상태로 싱크대를 짚고 엉덩이를 조금 내민 모습이다. 그녀도 내심 싫지는 않은지 사무실 방향을 흘끔 쳐다보고는 방으로 걸음을 옮긴다. 아직 침대 정리를 하지 않은 듯 흐트러져 있는 모습이 더욱 자극적이다.
이미 경험이 많이 있으니 자연스레 바지와 팬티를 내리고 통이 넓은 치마를 갈아입고는 침대에 올라가 엉덩이를 내민다.
“자, 그럼 얼른 끝내고 나가야 돼.”
“킥...... 너나 소리 지르지 마라. 아예 미리 담요를 입에 물고 있지? 나는 책임 못 진다. 큭큭......”
좆을 들어 음순을 문지르니 이미 물이 많이 흘러 있어 그녀도 아슬아슬한 상황에 몹시 흥분하고 있다는 것이니 밥상은 이미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소리를 내지 않도록 슬며시 밀어 넣지만 그래도 콧소리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흐으으응......”
여자가 많아도 딱히 함께 기거하는 여자가 없는 처지니 자고 일어나면 잔뜩 발기해 있는 좆이 처치곤란이라 가끔 챙겨 둔 예쁜이들의 팬티를 뒤집어쓰고 아들 오형제의 신세를 질 때도 있는 터에 아침 공기 맑은 이른 시간에 사타구니 맛을 보니 눈앞이 아득하다.
“후우욱, 쑤우욱......”
쉼 없이 드나드는 좆질에 사장 딸도 고개를 쳐 박고 최대한 엉덩이를 들어 올려 강주에게 박자를 맞춘다. 감창소리를 줄이려 입을 틀어막아도 사타구니에서 마주치는 살 부딪치는 소리는 어쩔 수 없는지라 걱정이 밀려오고, 그것 때문인지 오히려 흥분을 통제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
“아흑, 살 사알...... 흐으윽......”
급기야는 입에 물고 있는 담요를 뱉어내고 강주를 바라보며 사정을 한다.
“하으으윽, 미치겠어. 난 몰라. 하으으윽......”
“후욱, 후욱......”
“아흑, 여보...... 아학.......”
“조금만 참아 봐......”
치마를 완전히 걷어 올려 상체를 덮어 버리니 연꽃처럼 보이고, 밑으로는 커다란 엉덩이가 복숭아 빛 뽀얀 살결에 물결을 일으키고 있으니 용왕이 있어 이런 모습에 매혹되었을지 모를 일이고, 치마를 뒤집어쓰고 인당수에 뛰어 든 심청이도 이런 모습이었을지 모를 일이다.
“후우욱, 크으으윽...... 울컥...... 꿀럭...... 울컥......”
“하악, 하악, 하악......”
그대로 엎어져 쓰러지는 그녀에게서 행여 좆이 빠질세라 따라 엎드리며 풍성한 엉덩이를 마저 즐긴다. 손을 앞으로 넣어 가슴을 주물러 주며 허리를 움직여 엉덩이를 계속 자극해 준다.
“하으으응...... 여보......”
“으응? 왜......”
“흐응...... 사랑...... 해......”
“그래, 나도 사랑해......”
좆을 꺼내 일어서니 그녀가 잽싸게 달려들어 물티슈로 좆을 닦아주고 바지를 주워 침대에 올려두고는 뒤늦게 흐르기 시작하는 게 느껴지는지 황급히 쭈그리고 앉아 뒤처리를 한다.
거실로 나가기 전, 품에 안아 깊은 입맞춤으로 아쉬운 교감을 끌고 가고 사장 딸은 아직도 홍조가 가시지 않아 색스러운 기운을 발하고 있다.
“허억! 엄마야......”
“이, 이런......”
거실 주방에는 모친이 이미 나와 상차림을 모두 마치고 싱크대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어 기겁을 하게 한다. 민망한 상황에 강주는 엉거주춤 식탁에 자리를 잡고 사장 딸은 엄마에게 천천히 다가가 팔을 잡는다.
사장은 식탁에 앉아있는 강주를 원망스러운 듯 바라보고는 식탁에 앉아 입을 연다.
“소장님, 이 늙은 것이 심장이 떨려서 못 살겠어요. 어찌 보면 내 딸이 좋아서 저러니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제발 우리 사위 모르게 조심 좀 하세요.”
이어서 딸을 바라보며 허공에 주먹질을 한다.
“그리고 이것아. 사무실 문이라도 잠그고 그 짓을 할 일이지. 네 서방 들어와서 봤으면 어쩌려고...... 그나마 내가 먼저 알고 문을 잠갔으니 망정이지......”
아예 드러내 놓고 이야기를 하니 차라리 편안한지 사장 딸이 입을 가리고 쿡쿡거리며 웃는다.
“아유, 미안해요. 엄마. 앞으로 조심할게요.”
“조심은 무슨...... 앞으로는 차라리 나가서 만나. 자, 소장님은 어서 식사하세요.”
어찌 됐든 강주를 바라보는 눈빛은 자애로운 장모의 눈길이니 민망하긴 하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위도 아니고 딸자식이 바람을 피우니 드러내 놓고 나무랄 일도 못 되어 그저 사고 없이 잘 지내기만 바랄 것이다.
시선처리가 어려운 마당에 마침 전화가 울려 강주를 도와준다.
“네, 여보세요?”
“응, 나야...... 혜숙이.”
“응, 너...... 아침부터 지수 데리고 어디 갔었다면서?”
“응...... 이제 돌아가는 길이야.”
“뭐야...... 왜? 무슨 일 있어. 어제는 술 마시면서 아무 말도 없더니 갑자기 무슨 일인데...... 목소리에 힘도 없고......”
“으응, 너...... 어제 올케하고 갔다던 그 매장......”
“응, 그래. 그게 왜?”
“이혼한 남편이 그리로 간 모양이더라...... 올케가 비슷한 것 같다고 해서 지금 보고 오는 길이야.”
“뭐야? 뭐, 그런 일이 다 있냐? 저쪽에...... 어디...... 달맞인가 아디에 있다고 그랬잖아?”
“으응...... 거기서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었다는데 전에 강주씨가 네다바인가 뭔가 해서 그런 거 아닐까?”
“에이...... 그런 정도야 뭐 비일비재한 일인데 설마...... 다른 이유가 있었겠지. 그런데 그 친구는 왜 지수를 몰라보니?”
“당연하지...... 민철이 결혼하기 전인데...... 올케가 언젠가 앨범에서 사진을 봤던 모양이지.”
“으응...... 그렇구나. 그럼...... 그놈 이번에 아주 모가지를 쳐 버려야 하겠구나. 애 좀 먹으라고......”
“피...... 안 그래도 너 그럴 줄 알았다. 그래서 일부러 전화 한 거야. 그러지 마......”
“뭐? 그러지 말라고...... 야! 홍혜숙. 너 왜 그래? 제 정신이야?”
“그래...... 만나보니까 얼굴이 많이 상했더라. 맘이 안 좋아. 그래서......”
“어이구...... 아주 열녀 나셨네...... 너한테 그렇게 한 놈인데 오히려 걱정을 해 주는 거야? 참 나......”
“그래도 내가 부탁하면 강주씨는 모두 들어주잖아. 그렇지?”
“야! 그거하고 이거하고 무슨 상관이야?”
“그럼 그렇게 믿을 테니까 절대 그 사람 자르지 마. 부탁할게...... 그럼 나중에 보자. 끊을게......”
“야! 혜숙아...... 혜숙아......”
인천 매장에 따라 나섰던 지수로부터 점장을 자를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들었던 모양이다. 천생 착해빠진 혜숙이가 전 남편을 보고 마음이 착잡한 모양이니 다시 전화를 해서 자세한 상황을 묻기도 어색하고 지금 이 자리를 빨리 피하고 싶기도 해서 서둘러 밥그릇을 비운다.
“아, 이거...... 역시 꿀맛이네요. 허허...... 잘 먹었습니다. 이만 가 봐야 하겠네요.”
“뭐, 무슨 일 있는 거야?”
“아, 아니...... 별 일은 아니고...... 나중에 얘기해 줄게...... 자,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네, 소장님...... 잠깐만요.”
모친이 방으로 들어가서 뭔가를 주섬주섬 챙겨 안겨준다.
“아유, 엄마...... 그걸 왜 이 사람을 줘요? 창피하게......”
“이게 뭔데?”
“너는 가만히 있어. 어미가 하는 대로...... 자, 이거 하루에 한 봉씩만 먹으면 된다더구먼......”
“네?...... 아, 한약입니까? 저...... 건강해서 이런 거 안 먹어도 됩니다.”
“그래도 가지고 가요. 내 성의니까...... 그리고 다음부터는 밖에서 만나고......”
“아이 참, 엄마는...... 푸훗, 강주씨...... 그거 정력제야. 갖다가 먹어 봐...... 호호호....... 아유, 우리 엄마 못 말리겠어......”
딸자식은 키워두면 엄마와 친구처럼 같이 늙는다더니 사장과 그 딸이 그런 모양이다. 사위를 주려고 준비해 둔 약까지 받아들고 차에 오르니 뭔가 처리하기 까다로운 숙제를 맡은 듯 기분이 묘하다.
부소장이 출소하고 실무에 뛰어들었으니 당분간 시간이 넉넉할 것 같아 주변을 돌아볼까 했는데 혜숙이 전화를 받고 보니 그냥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인천 영진 본사로 차를 몰아간다.
“동생?”
“응, 누님. 왜요?”
“요즘 안 보이기에 물어봤더니 휴가라던데 나한테는 말도 없이 이럴 거야? 내가 들어붙을까 봐?”
“킥...... 누님, 용건만 간단히...... 히힛...... 나 보고 싶어서 그런다고 솔직하게 말을 해야지.”
“피...... 야, 꿈 깨셔...... 며칠 후에 형님 생일인데, 밥이나 같이 먹자고 하는데 시간 낼 수 있지?”
“아! 그래요? 물론이지. 형님 생일 선물은 뭐가 좋을까? 참한 아가씨나 하나 붙여줄까? 하하하......”
“흥...... 그래 보던가....... 호호호...... 지금 어디니?”
“응, 전에 얘기했잖아. 인천...... 인천에 가는 중이야.”
“어머! 그럼 운전 중인가 보다...... 그래, 알았어. 끊어......”
벤을 몰다가 자동변속 승용차를 운전하니 전화 받기도 좋아 역시 돈이 좋긴 좋은 모양이다. 이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돈을 벌기 위해 애를 쓰는 모양이다.
잘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 본다. 정말 잘 사는 것은 호화찬란하게 꾸미고 말 그대로 잘 먹고 잘 사는 것만이 잘 사는 것일까?
가족을 책임 진 가장들이 잘 살기 위해서 밖에서 허리가 휘도록 일을 하고 퇴근하면 이미 잠들어 있는 어린 자식들과 눈 한 번 맞춰보지 못하고 사랑하는 부인과 교감도 이루기 전 내일 일을 걱정하며 침대에 쓰러져 버린다.
다시 아침에는 자식들 얼굴도 보지 못하고 바쁘게 빈속을 달래며 일터로 나가 버리니 잘 살기 위해서 그런다지만 그게 과연 잘 사는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미 아버지라는, 남편이라는 정체성은 사라져 버리고 그가 속할 가정이라는 것은 애초에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용현동 본사 매장을 들어서니 어제와는 제법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강주가 어제와 다른 옷을 입고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지만 바보가 아니라면 능히 알 수 있을 테니 어느새 점장이 따라붙어 강주를 수행하고 있다.
“그래요. 노력한 흔적이 보여서 흡족합니다. 지금도 포장작업은 계속 하고 있겠지요?”
“네, 어제 말씀하신 대로 종류별로 모두 일정량 선을 보인 후에 나머지를 포장하고 있습니다.”
“그것 봐요. 그러니까 빈자리도 없이 꽉 차 있으니 손님들이 바로 집어가잖아요. 팔리길 기대해선 안 됩니다. 내가 파는 겁니다. 알겠지요?”
“네. 알았습니다.”
일차식품 코너를 벗어나 공산품 코너를 돌아봐도 통로를 널찍이 확보해 둬 통행하기가 좋다. 여기저기 안내하는 인원 외에 진열을 하는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강주는 한 곳을 유심히 보더니 그리로 걸음을 옮기고 역시 점장은 그 뒤를 따라 붙는다.
“음...... 그래요. 잘 하고 있네요. 자, 한 가지 물어봅시다.”
“네......”
“이건 하루에 몇 개나 팔리는지 대강이라도 알 수 있을까요?”
“아! 그걸 체크해 보진 않았지만 약 이십 개 내외로 팔릴 겁니다.”
“뭐, 좋습니다. 정확한 대답을 원한 건 아니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진열을 많이 해 뒀을까요? 이건 지금 얼핏 봐서 음...... 자리가 비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십 개 이상으로 보이는데...... 다 채우면 한 팔십 개는 되겠네요?”
“네...... 그건 업체에서 파견사원이 나와 있어서......”
“그게 맹점이에요. 파견사원이 나와 있는 곳도 경쟁 거래처보다 확실하게 비교우위만 확보해주면 인사치레는 된 거예요. 여기가 그 사람들 대리점은 아니잖아요.”
“네, 그야 그렇지요.”
“이게 뭡니까? 이 정도면 나흘간 진열을 안 해도 품절이 일어나지 않을 양 아닙니까?”
“......”
“인원을 가지고 작업배분을 할 때 지금처럼 일차식품에 전력투구를 하고 그 다음에는 공산품 보충진열을 하는데...... 상품 종류가 워낙 다양하니까 맡은 바 코너를 나눠 주세요. 그리고 하루에 한 번이면 한 번, 두 번이면 두 번...... 정한 시간 외에는 진열도 못하게 하고 오로지 접객에만 신경을 쓰는 겁니다. 그래야 통로도 확보가 되고 손님들에게는 서비스가 되는 거예요.”
“네......”
“이렇게 필요 없는 양을 진열대에 깔아두면 쓸데없이 그걸 채우느라고 사람은 사람대로 부족하고 손님은 손님대로 불편한 겁니다. 예를 들어서 하루에 한 번만 보충진열을 한다면 이 물건은 몇 개만 진열하면 될까요?”
“네...... 이십 개 아닙니까?”
“그래요. 초등학생도 알 수 있는 일이에요. 그걸 이렇게 커다란 매머드 급 매장 점장이 모른다고 해서야 말이 됩니까? 두 번 진열시간을 준다면 열 개만 진열해도 되겠지요?”
점장은 어느새 강주를 상대하기가 부끄럽고 난감하여 몸 둘 바를 모르고 있다.
“자, 창고를 한 번 가 봅시다. 안내하세요.”
강주는 창고에 들어가 쭉 둘러보고 점장을 불러 세운다.
“자, 점장님...... 파레토의 법칙이란 말 들어 보셨습니까? 아니면 팔 대 이든...... 이 대 팔이든......”
“아, 아니요...... 처음 듣는데...... 아, 이사님. 이러실 게 아니라 우선 사무실로 가셔서......”
점장은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갖고 있는 강주를 너무 오래 세워뒀다는 생각이 들은 모양이다. 점장을 따라서 사무실로 가 자리에 앉는다. 여직원이 음료수를 내오고 눈을 말똥거리며 강주를 바라본다.
“파레토의 법칙이란 어떤 원인의 이십 퍼센트가 그 결과물의 팔십 퍼센트를 만들어 낸다는 거예요. 우리같은 무지렁이들한테는 다소 기분 나쁜 이야기인데 사회적으로 본다면 상류층 이십 퍼센트의 인간이 팔십 퍼센트의 부를 차지하거나 운용한다는 뜻이기도 해요.”
“네......”
“이 이야기를 왜 하는가 하면 우리에게도 이 기분 나쁜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전체 매출이 백만 원이라고 가정하고 우리가 취급하는 아이템이 백 가지라고 한다면 스무 가지의 상품이 팔십만 원의 매출을 감당한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가 알아들으시겠지요?”
“아! 네, 네...... 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 최적의 합을 구해 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상위를 차지하는 것들은 재고를 많아 갖고 있어야 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것들은 재고를 줄여야 하겠지요?
“네, 네......”
“그렇게 하면 등위 별로 A, B, C 분류가 가능할 겁니다. 매출과 이익을 가로 세로로 두고, 매출과 이익이 다 높은 것은 AA...... 다 낮은 것은 CC...... 이렇게 분류를 할 수 있겠지요?”
“네......”
“그럼 답은 나온 겁니다. AA군에 속한 상품은 효자 상품이니 많이 갖고 있어도 되고, CC군에 속한 물건은 빨리 매장에서 치워버려야 하는 상품인 겁니다. 아시겠지요?”
“네......”
“지금 내가 한 말을 듣고 나니 어때요? 창고에 다시 한 번 가 볼까요? 그거 다 돈입니다. 우리 회사 그렇게 자금력이 좋은 회사 아니에요. 점장님이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서 매장 뿐 아니라 회사 전체를 힘들게 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네, 면목 없습니다. 앞으로는 오늘 배운 바를 꼭 실천하도록 하겠습니다. 제발 기회를 더 주십시오. 사실 어디서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도 없이 무작정 경력만으로 진급을 하다 보니...... 사실 저뿐만이 아닐 겁니다. 다른 점장들도 ......”
점장은 점점 헤어 나오기 어려운 길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지 여직원 앞에서도 필사적으로 강주에게 매달려야 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아, 아...... 내가 뭐, 당장 점장님을 어떻게 하겠다는 뜻이 아니에요. 오늘도 겸사겸사 왔는데...... 어쨌든 식사나 하러 갑시다. 점심은 먹어야지요.”
“네, 제가 모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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