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 그리는 남자 - 하편

느즈막히 일어나 평소 잘 하지도 않는 청소를 해나갔다. 예상외의 인물이 파토를 놓을수도
있는 확률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동청소기를 돌려 바닥의 먼지를 끌어당김과 동시에
작은 환풍기로 빨려나가는 먼지들을 바라보았다.

‘휴우~ 정말 더럽군!!’

끝도 없이 피어오르는 먼지들이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듯 후
련해지기까지 했다. 청소를 마무리하고 샤워를 하는 동안도 들뜬 기분을 주체 못하고 콧노
래까지 흥얼거리는 내 모습을 보니 예진을 무척이도 그리고 싶었던 마음을 보는 것 같았다.

병원의 점심 시간은 대부분 1시부터였다. 혹시 모를 기대감 때문인지 12시부터 온몸의 촉
각을 곤두세우고 있었지만 역시 그녀가 다니는 병원도 다르지 않았다. 분명히 오긴 올거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수간호사라는 여자와의 등장이 마음이 걸렸다. 괜히 와서는 훼방이
나 놓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1시를 넘기고 십 여분이 지났을 무렵, 누군가의 발걸음이 지하로 연결
되는 나의 작업실로 내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왔다! 왔어....’

꾸준히 들려오는 그 발걸음은 둘이 아닌 하나였다. 지하 특유의 울림과 또각또각 내려오는
발걸음 소리로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고 곧 작고 수줍은 노크소리가 울렸다.

“네... 들어오세요~”

내내 소파에 앉아 멍하니 예진을 기다리다 발걸음이 들리자마자 구석의 그림들을 뒤적거리
는 척 또 다시 연기를 했고 끼~익 대는 소리와 함께 분홍색 간호사복을 입은 예진이 수줍
게 모습을 드러냈다. 사복을 입었을 때보다 훨씬 예쁜 모습이었다.

“오빠!”

“어~ 왔어?”

혹시나 예진의 뒤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 아줌마도 같이 온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
다. 하지만 나의 우려는 말끔히 씻겨주듯 조용히 문을 닫고 작품들을 뒤적이는 나를 향해
한걸음씩 발걸음을 옮기는 예진이었다.

“뭐해요? 어제 오빠 선물 안 갖고 간 거 있지?”

“그래서 미리 다 포장해 뒀어... 밥 먹고 가져가던지.. 아니면 이따 퇴근 후에 들러서 가져
가~ 그나저나 혼자야? 그 간호사 언니랑 같이 온다더니....“

“응... 그냥 혼자 갔다 오래... 부끄럽다나?”

눈치 없는 아줌마로만 봤던 것이 조금은 미안해졌다. 하지만 미안한 것은 그 뿐 점심시간에
예진의 승낙을 받아 들이겠노라 다짐을 했다.

“그랬구나... 앉아! 뭐 먹을래?”

“내가 오면서 초밥집에 들러서 음식 시키고 왔어요... 오빠 유명하던데? 주소를 불러주기도
전에 단번에 알더라고~“

화가로서 명성이 유명한 것이 아닌 자주 시켜먹는 단골집이었기에 아는 것 뿐이었지만 그
초밥집도 섭외작업에 조금은 도움을 준 것 같아 앞으로 자주 시켜먹으리라 다짐했다.

“어제 정은 언니는 잘 그리고 갔어요?”

“그럼~ 거의 프로 수준이니까... 처음에 아무것도 모르는 수줍음 많은 여자에서 이젠 한껏
물오른 여자의 모습이랄까? 그림은 이미 다 팔려서~“

“헤엑! 그 그림 다 파는 거예요?”

“아무한테나 파는 건 아니고 정말 누드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매니아들에게만... 진정 예술을
알아보고 내 그림을 존경해주는 사람들에게만....“

“아~ 그렇구나!! 하긴 화가들도 자신이 가지고 있으면 작품이 아닌 거죠? 타인의 손에 들어
갔을 때 빛을 발하는 작품이 되는 거라던데?“

“빙고! 누가 그래? 잘 알고 있네?”

“어제 정은 언니가요... 그 언니 덕분에 정말 내가 무식했었구나 라는 걸 알았다니까요?”

“하하하... 무식까지나....”

예진은 자기 자신을 한껏 낮추면서 말을 이었다. 그보다 내가 놀란 것은 그 짧은 시간동안
순진하고 누드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던 여자를 하룻밤 새에 이렇게 바꿔 놓은
것이었다.

“모델료는 프로하고 아마추어하고 차이가 있겠죠?”

“다른 작가들은 그렇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아. 프로건 아마추어건 작품에 나타낼 수
있는 생명력은 동등하거든... 되레 나 같은 경우는 아마추어가 모델료가 더 좋을 때도 있어“

“오빠는 정말 진정한 예술인 같아. 정말 처음엔 사기꾼인 줄 알았는데~ 역시 사람은 알고
판단해야 한다니까? 후훗!“

모델료를 묻는다는 것, 그것은 99.9% 넘어와 있다는 증거였다.
어제까지는 나의 작품을 위해, 나의 돈 벌이를 위해 피치 못 할 거짓말을 했다면 오늘은 조
금의 숨김도 거짓도 없이 진실을 말해야했다. 나의 철학과 혼을 그녀에게 불어넣어 내가 원
하는 작품모델로 가꿔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뭐... 그럴수도 있지~ 지금이라도 안 게 어디야?”

“사실 난 예술가, 특히 화가라고 하면 지저분하고 고집도 세고 일반 사람들하고 잘 어울리
지 못할 거라 생각했거든요.. 근데 오빠는 달라요. 그냥 동네 아는 오빠 같애“

“칭찬이지? 그렇게 믿을게”

여러 질문들이 쏟아졌다. 그리고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평상적인 질문들까지 나
와 그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질문을 하는 예진은 초밥이 도착하고 식사가 끝나 차를 마시는
동안까지도 틈 없이 이어졌다.

“오빠! 아직도 나 그려보고 싶어요?”

소화가 되던 초밥의 밥알들이 다시금 뭉쳐 입으로 튀어 나올 만큼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식사를 마친 후 슬슬 제안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던 차에 들려온 예
진의 목소리는 가뭄의 비와같이 촉촉하게만 느껴졌다.

“그럼, 말했었잖아... 예진이가 가지고 있는 표정과 몸짓에서 오는 맑고 청순하면서도 남자
의 본능 끌어낼 수 있을 만큼의 매력이 공존하는 모습은 처음 봤을 때와 지금, 다르지 않거
든... 그리고 싶어 섭외를 했다가도 막상 그리려면 이미지가 흐려져 작품이 안 될 만한 사람
도 있는데 예진이는 그대로야~ 아니 갈수록 그 Feel이 점점 무르익어“

“정말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내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었으면 예진이가 지금 나랑 같이
있겠어? 단지 조금 걱정이 되는 건....“

예진의 입에서 100%로 모든 조건들을 이끌어내고 싶었다. 후에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그녀의 마음 스스로가 누드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좋은 작품이 나
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누드라는 거? 괜찮아요... 사실 예전에 누드화보가 유행일 때 ‘나도 한 번 찍어 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 가졌었는데 그땐 용기가 없었거든요... 근데 어제 정은언니의 얘기를 듣고 그리
고 직접 작품하는 모습을 보니까 당당해 보이고 멋져 보이더라고요~ 게다가 사진보다는 그
림이 더 예술적으로 보이기도 할테구요~“

“음... 그럼~ 이따 퇴근 후에 올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는 뜻이야... 괜히 후회가 남을
것 같으면 예진이도 나도 상처만 될테니까“

예진은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표정을 보아서는 마음을 굳게 먹은 듯 했다. 수줍은 입술이
가늘게 떨리는 것은 불안함을 떨치지 못한 모습이었고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 또한 초조함을
대변하는 듯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녀의 나머지 경계심을 와르르 무너뜨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제 한마디면 생애 최고수준의 작품이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예진아~ 불안해하지도 말고 겁먹지도 마... 지금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당당하고 솔직한
아름다운 모습이야. 타인의 시선 따윈 신경 쓰지 말고... 알았지? 누구보다도 세상에서 널
가장 아름답게 그려 줄테니까... 그리지 않아도 누구보다도 아름다우니까“

활짝 핀 장미 같은 모습을 닮은 예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
었다. 복장을 챙긴 예진은 빙긋 웃음을 보였다. 가지런한 하얀 이가 빛났다.

“오빠! 나 기다릴꺼예요?”

“처음 만난 날부터 지금까지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 그리고 앞으로도 기다릴꺼야~”

“나.... 가요~ 기다리고 있어요~”

예진은 부끄러운지 총총걸음으로 빠르게 작업실을 빠져나갔다. 계단의 울림이 멎고 그녀의
인기척이 사라지자마자 나는 기쁨의 환호를 지를 수 밖에 없었다.

“유후!! 예쓰!! 예쓰!! 됐어!! 됐어!!!”

다른 모델의 섭외 때도 이만큼 기쁘지 않았었다. 아니 그저 무덤덤했었다. 하지만 예진은
달랐다. 마치 정복하지 못 할 무언가를 이룬 것 같은 후련함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
정도 였다. 소파로 몸을 날린 나는 거센 몸부림과 함께 예진의 얼굴을 떠올렸다.

결국 예진은 퇴근 후에 작업실로 들렀다. 많은 생각과 결심을 했는지 점심시간 때보다 한결
편안한 모습이었다. 경계심이 사라지자 예진과 나는 훨씬 더 가까워 질 수 있었다.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계약서까지 꾸미고 나자 내 여자가 된 것처럼 기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이젠 그녀의 아름다운 여체를 그릴일만 남았다.


추적이는 비가 내리는 토요일이었다. 많은 비는 아니었지만 그녀의 감정을 끌어올릴수 있을
만큼의 양은 충분히 되었다. 잠시 후 퇴근을 해 올 예진을 위해 온풍기를 작동시켜 적당한
실내온도를 맞추고 매트리스와 각종 소품들을 정리하며 첫 작품의 시작점을 준비해갔다.

‘어떤 모습일까? 굉장히 멋진 모습 일꺼야....’

나도 모르게 예진을 생각하자 아랫도리가 불끈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생각만으로도 내가
꼴린다는 것 누드화의 작품, 다른 것을 떠나서 변태 같은 고객들의 성적 환타지를 충족시키
기엔 불 보듯 뻔히 성공적 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가슴이 답답해져오며 내가 더욱 긴장을 하고 있었다. 시침이 세시를 가리키고 그 긴장
감은 극에 달했다. 이제 잠시 후면 기다리고 기다리는 예진의 모습이 드러날 것이었다.

‘아~ 왜 이리 떨리나... 이런 기분 무척 오랜만인데?’

아마도 대학 시절 처음으로 누드화를 그릴 때, 그리고 정은 선배의 알몸을 보았을 때, 마지
막으로 누드화를 업 삼아 처음으로 섭외한 최고물산의 고등학생이었던 막내딸의 누드화를
그렸을 때 이후 전혀 없을 것 같던 긴장감이 다시금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1분이 하루같이 지나는 시간, 그토록 애를 쓴 목표물을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온 예진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이었다. 사실 나도 이리 떨리는데
예진은 오죽했을까!! 종전까지 볼 수 없었던 긴장된 모습의 예진이 소파로 다가오고 있었다.

“오빠!”

애써 밝게 웃음 지으며 긴장감을 지워내려 했지만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와.. 왔어?”

“오빠 긴장했구나! 헤에....”

예진도 나의 얼굴을 보고 눈치를 챘는지 놀려대듯 물어왔다. 하지만 작가가 긴장을 하면 모
델은 더욱 긴장을 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기에 나의 마음을 숨겨야만 했다.
나는 긴장을 풀어 주는 효과가 있다는 허브차를 건네고 맞은편에 앉았다. 간호사복을 그대
로 입고 온 예진의 모습은 눈이 부실정도였다.
예상과는 다르게 나와 예진의 대화는 이미 단절이 되어 있었다. 온풍기가 돌아가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그것과 맞지 않는 썰렁한 기운이 우리 둘 사이를 마구 헤집고 다니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한 시간 여를 흐르고 있었다.

“어때? 준비 됐어?”

“으...응... 오빠~ 시작하자~”

뭘 어찌 해야 할지 모르는 예진은 시작하자는 말을 뱉어 놓고는 주뼜대고 있었다. 무척 긴
장한 기운이 역력했다.

“예진아! 오른쪽으로 와서 한 번 서봐~”

“여기?”

한 점의 먼지도 없을 만큼 하얀 벽은 사진을 찍기 위한 공간이었다. 나는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기 전 사진작가들처럼 웃으며 또는 생생한 표정들을 짓는 사진들을 담아내곤 했다.
물론 그 사진들도 고객들에게 보너스로 보내졌다.

“자~ 부끄러워해도 되고 창피해해도 돼. 너 하고 싶은 말이건.. 아니면 자연스럽게... 예진이
마음대로 해“

나는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부끄러워 볼을 가리는 모습, 분홍의 간호사복을 추스르는 모습,
웃는 모습, 찡그리는 모습, 다시 확인해 볼 새도 없이 유연하고 부드러운 표정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들이댔다.

“예진아~ 남자친구 왜 없어?
제일 좋아하는 색깔은?
좋아하는 가수는?
첫키스는 언제 해 봤어?
첫경험은?”

나는 조금 더 생생하고 다양한 표정을 얻어내기 위해 질문들을 쏟아 냈다. 던져지는 질문에
빠짐없이 답을 하는 예진의 대답 중 나의 손동작을 멈추게 한 대답이 있었다.

“나 아직 한 번도 안해봤는데?”

동그란 두 눈이 놀라듯 더욱 동그래지고 아랫입술이 빼꼼히 튀어나오며 흰 피부위로 홍조가
돋아나기 시작하는 예진이었다. 스물 네 살의 꽃다운 나이, 게다가 아직 남자 경험이 없는
숫처녀의 예진은 상품가치로는 최상이었다.
잠시 넋을 잃은 나는 그 귀엽고도 청초한 표정을 놓칠새라 다시 셔터질을 해댔다.

“자 이번엔 단추 좀 풀어볼래?”

하얀 손이 꼬물거리며 살짝 고개를 숙인 채 단추를 한 땀 한 땀 풀어나갔다. 맨 윗 단추부
터 서서히 가슴 아래로 벌어지며 살결과도 비슷한 바닐라 색의 귀여운 브라가 모습을 비쳤
다. 그 안으로는 부드럽고 말캉한 솜사탕과도 같은 풍만한 가슴이 보기 좋게 담겨있었다.

“그만! 부끄러운 척 어깨 좀 오므리면서... 그렇지!
자 이번엔 좀 도발적으로 오른쪽 어깨를 까면서... 그.. 그래....좋아~ 잘하네!!“

나의 말에 충실히 행동을 하는 예진은 점점 자신감이 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부끄러움과
공존하는 자신감은 묘한 매력을 발산시키고 있었다.

“스타킹 신었지?”

“아니... 가방에 있어~”

“가져와서 자연스럽게 신어 봐~”

“응...”

맨 다리가 밝은 조명에 부대끼며 빛이 났다. 원래 털이 없는 건지 아니면 왁싱을 했는지 너
무도 매끈한 다리였다. 가방으로 다가가 스타킹을 꺼내오는 모습까지 모두 카메라에 담아내
고 곧 의자위에 다리를 올린 예진의 스타킹 신는 모습까지 전부 찍어댔다.

“좋다.. 섹시하다~ 그리고 예뻐... 거울에 비쳐 보듯이 몸을 비틀어 다리 뒤편을 바라봐~
그래... 원래 출근 할 때처럼... 옷 가다듬듯이... 그렇지!!“

내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무엇하나 나무랄데 없는 이미지의 예진
은 점점 즐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예진아~ 이번엔 상의를 벗어 볼래?”

망설임 없이 옷을 벗어나가는 예진은 다시 부끄러움이 찾아왔는지 팔꿈치를 앞으로 모아 속
옷에 가려졌지만 봉긋 솟은 가슴을 가리려 노력했다. 홍조가 된 얼굴에선 풋풋한 미가 풍겨
왔고 의도되지 않은 자연스런 가슴골이 섹시미를 연출했다.

“죽인다!”

“뭐라구?”

“지금까지 본 모델들 중 최고라고....”

“헤헤... 정말? 나 기분 좋으라고 하는 소리죠?”

“아니야... 정말이야~”

셔터는 눌려지고 자연스런 대화와 함께 수많은 표정들과 몸짓이 카메라로 담겨지고 있었다.
이미 나의 아랫도리는 바지를 뚫을 만큼 치솟아 아픔을 주고 있었고 예진의 옷은 계속해서
한 꺼풀씩 벗겨져 나가고 있었다.

“예진아~ 힘들지?”

“아니? 재밌는데?”

“그럼 이번엔 이 삘을 이어서 가슴가리개 한 번 벗어볼까?”

작게 고개를 끄덕인 예진은 살짝 몸을 돌려 팔을 등 뒤로 올려 후크를 잡아 풀어내기 시작
했다. 결국 보여질 가슴이지만 그것이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툭’ 하는 소리가 들릴 듯 가슴을 두르고 있던 밴드가 헐거워졌다. 그리고 얇은 어깨끈이 스
르르 가는 팔뚝을 타고 흘러내렸다. 직접 보는 것도 흥분이 됐지만 카메라의 앵글에 잡힌
예진의 모습은 마치 에로영화나 포르노를 보는듯한 착각이 일어나며 참을 수 없을 만큼의
흥분을 유도 시켰다.

팔로 가슴을 떠받치고 있는 그녀의 가슴이 눌려 겨드랑이로 퍼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탄력
이 넘치는 흰 가슴이 예진이 몸을 움직일 때 마다 살랑이고 있었고 다시 몸을 정면으로 돌
린 예진은 팔과 브래지어를 천천히 내리며 두 개의 봉우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우와~ 최고다... 최고야....’

차마 여체에 대한 평가를 노골적으로 할 수 없어 속으로 외쳤지만 심마니가 귀한 산삼을 봤
을 때가 나와 같은 심정일거라 생각 들었다.
쳐지지 않은 모양, 둥글다기 보단 약간 뾰족한 느낌의 유방은 탐스러웠다. 특히 정점에 솟
아 오른 연분홍빛의 맑은 꽃판과 꼭지는 한입에 머금고 싶을 만큼 숫처녀의 특성을 그대로
그려내고 있었다. 마치 고운 향기가 뿜어져 나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예쁘다... 정말 예뻐! 최고야....역시.... 왼팔로 유두를 가린다 생각하고 오른쪽 몸통을 잡듯
이 둘러봐~ 그래... 팔 조금 내리고 어깨 긴장 풀고.... 그래...“

왼 팔뚝에 눌린 가슴살과 짓눌려 밑가슴으로 부푼 살집이 야하게 느껴져 왔다. 베베꼬인 길
다랗고 가는 다리가 귀엽게 보였다.

“예진이 몸의 비율이 참 좋다~”

“나 예전에 무용했었어... 고전무용....헤헤”

역시 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손동작과 몸의 유연성이 다른 모델에 비해 고급스럽고 안정적
이었기 때문이다. 고전무용을 해서 인지 어깨와 목선, 그리고 허리와 골반으로 이어지는 라
인이 무척 매끄럽고 유연했다.

“자~ 이번엔 팬티까지 벗어보자... 몸 돌리지 말고 천천히 벗어봐~”

가슴을 두른 왼팔을 풀어내고 천천히 허리를 숙인 예진은 셋트인 바닐라색의 청초한 팬티를
슬며시 내리기 시작했다. 허리를 숙일수록 커다란 가슴이 더욱 크게 느껴지고 유연한 골반
을 벗어나는 팬티 중심으로는 검은 숲이 드러나고 있었다.

“좋아... 다리 한 짝을 빼내고....”

점점 흘러내리는 팬티를 오른손으로 붙잡은 예진은 왼손으로 출렁이며 흔들리는 가슴을 고
정시켰다. 그리고 왼다리를 들어 팬티사이에서 부드럽게 빼내는 모습은 가히 여신이라 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요염하고 섹시했다. 하지만 천박해 보이지 않았다.

맑고 깨끗한 이미지. 분홍빛의 꼭지와 꽃판, 그리고 티 없는 하얀 살결까지 일치했다. 그러
나 눈을 비빌만큼 풍성하고 짙은 예진의 음모는 거친 땅에 뿌리를 내린 잡초와도 같이 억세
보였다. 그러나 도톰하게 살집이 올라붙은 둔덕은 귀여운 이미지 그대로였다.

“음모가 많네~”

“응... 유별나게 여기만 이래.... 깨지?”

“아니야... 오히려 더 자극적이야~”

자신도 컴플랙스라고 생각하는 듯 갑자기 얼굴빛이 어두워지는 예진이었다. 내가 원하는 모
든 것을 갖춘 그녀였다. 프로 모델은 음모까지 깨끗하고 단정하게 관리해 자연스러움이 떨
어 졌지만 눈앞에 보이는 숲풀은 그렇지 않았다.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은 깊은 숲, 미지의 숲의 형상을 그대로 담고 있어 만족스러웠다.

“혹시라도 관리하거나 정리하지마~ 예진이 이미지랑 딱 맞으니까...”

“알았어요...”

부끄러운 자태의 절정의 포즈. 한손으로 숲풀을 가리고 나머지 한 손으로 가슴을 가린 모습
의 예진이었다. 오른쪽 발목에 걸쳐진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팬티와 수줍게 앙다문 입술,
굳어 붙여진 허벅지며 붉게 달아오른 얼굴. 누구나 흉내내는 단골포즈이지만 자연스러움이
떨어지는 모습과는 달리 예진의 모습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오빠! 나도 정은 언니 같은 포즈 취해 볼까요?”

수줍은 얼굴로 정은이 했던 자위하는 포즈를 묻는 예진의 말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왜? 그 포즈 하고 싶어?”

“아니 꼭 그렇다기 보다, 왠지 그 포즈가 프로다워 보여서....”

“그렇담 하지마! 난 프로보단 아마추어를 더 좋아하니까. 솔직히 말하면 아마추어를 벗어난
프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아마추어의 미를 살릴 수 없어! 반대로 어설프게 프로의 몸짓을 따
라하는 아마추어도 그 모습이 예쁠 리 없어... 지금 예진이는 지금의 모습이 가장 예쁜거야.
부끄러워하기도, 창피해 하기도, 때론 용기를 내는 모습도...“

“네~”

물론 예진의 벌어진 꽃잎사이를 보고 싶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설픈 몸짓에 지금
가지고 있는 풋풋한 미를 잃을까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자~ 수고했어! 옷 입고...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알았어 오빠!”

반말과 존대를 오가는 것처럼 여전히 감정의 기복이 심한 예진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예진이 옷을 입는 사이 메모리 카드를 컴퓨터에 연결해 300장여 되는 사진들을 일일
이 검토해 나갔다. 딱 눈에 들어오는 사진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모델을 처음하는 사람
치고는 꽤 수준급의 표정들이었다. 말 그대로 감정이 풍부한 살아있는 사진들이었다.
궁금했는지 후딱 옷을 챙겨 입고 낼롬 내 곁으로 다가선 예진은 어깨에 팔을 두르며 모니터
에 시선을 갖다댔다.
다시 한 번 느끼는 것이지만 알몸이 가져다주는 친근함은 그 어느 것보다 사람과 사람을 가
깝게 해주는 것 같았다.

“오빠 이게 나야?”

“예쁘지? 다 잘 나왔어... 간간히 눈을 감은 것들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다 좋은 사진들이야”

“나 아닌 거 같애... 어색해~ 지금에서야 좀 창피하네?”

“다들 그래... 오늘 아주 잘 했어!! 너무 예뻤어~ 작업들어가고 싶을 만큼”

진심이었다. 맑은 얼굴, 순결한 여체.. 연인으로 만들고 싶을 만큼 아릿따운 여자였다.

“작품 끝나면 작업 들어온다면서~ 그땐 정말 많이 튕겨야지!!”

“이거 겁나서 작업 들어 가겠나~~~”

예진은 길고 짙은 속눈썹을 껌뻑이며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최대한 정면에서 바라보
고 싶은지 점점 몸이 나와 가까워지고 있었고 그럴수록 풍기는 샴푸냄새와 여자특유의 살내
음이 숨겨놓은 욕정을 품게 만들고 있었다.

“그냥 옷만 벗고 사진을 찍었을 뿐인데 오빠랑 디게 가까워진 거 같다!”

“원래 예술이란 게 그런거야...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말하지 않아도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것. 그게 누드일 때 더 빛을 발하지..“

“완전 선수야~ 그렇게 해서 몇이나 꼬시셨어?”

“하하하... 꼬시기는....”

300여장이나 되는 사진을 한 번씩만 훑어봐도 두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계절과 상관없이
그리고 밤낮과 상관없이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작업실의 시간관념을 알려줄 수 있는 건 단
지 시계라는 기계뿐이었다.

“저녁 먹고 가~”

“이 화백님! 그럼 모델 저녁도 안 먹이고 보내려고 하셨어요?”

한결 편안해진 예진의 모습에 난 소소한 웃음을 금치 못했다. 보면 볼수록, 상대하면 할 수
록 귀엽고 예쁜 여자였다. 시계가 딱 저녁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오빠 그럼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그리는 거야?”

“그러려고... 왜 약속있어?”

“아니~ 그냥 물어봤어요~”

“그럼 내일을 위해서 일찍 밥 먹고 쉴까? 얼굴 부으면 뚱뚱하게 그릴꺼야~”

작은 농담 한 마디에도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관계, 작품을 그려내기 가장 좋은 관계였다.
혹자는 섹스를 통해 아주 가까워진 사이가 되어야만 작품성이 좋아진다고도 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섹스를 하게 되면 상상력 자체가 없어져 버리기 때문이었다.
예진과 저녁을 나누고 보낸 후 나는 다시 그녀의 사진을 꼼꼼하게 훑어나가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몸매와 얼굴만으로도 예술이구만!’

나도 모르게 흡족한 미소와 굳게 서버린 자지를 주무르고 있었다. 풍만한 가슴과 잘록할 정
도는 아니지만 야리한 허리, 그리고 검게 자란 자유로운 음모가 남자의 본능을 깨우기 딱이
었다.

‘아~ 구도를 어찌 잡아야 하나...’

사실 머릿속으로 그렸던 구도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숫처녀라는 사실을 깨닫고 난 후엔 좀
더 풋풋하고 처음이라는 그것! 한 번 지나가면 다시 잡을 수 없는 그 아름다움을 담아내야
했다. 신인상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못 받는 것처럼...
그러나 구도를 생각하는 것 보다 달아오른 자지를 먼저 달래는 것이 급선무였다. 누드화를
그리면서 결코 흔치 않은 일이었다.

‘아~ 저 가슴... 정말 몇 몇 가지고 있지 않은 명품중에 명품이야~’

분홍빛의 꽃판과 꼭지에 담긴 빛깔은 파릇한 봄의 향연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흩날리는 싱
그런 벚꽃의 꽃잎과도 닮은 여린 가슴의 고봉은 불끈하게 솟아오른 자지에 눈물을 흘리게
했고 그 유연한 곡선과 함께 지금도 눈에 아른 거리는 거친 황무지 같은 은밀한 부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으..으흑!!”

짧은 비명과도 같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참고 참았던 껄쭉하고 미끈한 액체가 분수처럼 솟
아 올랐다. 뜨거운 물줄기는 몇 차례나 더 뿜어졌고 그렇게 자위가 끝이 났음에도 예진의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나였다.

‘정말 죽이는구만! 그림의 떡이야...’

휴지를 가져다 뒤처리를 하는 동안에도 나의 흥분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그녀의 맑은
미소가 신기루처럼 허공을 떠돌며 나의 정신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후덕한 실내공기가 탁했지만 환기를 시키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지금 내가 있는 이 공간에
다른 공기가 들어오면 상상하고 느끼는 예진의 느낌이 싸그리 사라져 버릴 것 만 같았다.



탈의실로 들어간 예진을 기다리며 하얀 캔버스를 이젤위에 올리고 담배한대를 피워내고 있
었다. 예진이 작업실로 들어와 맞닥뜨리자마자 욕정을 품고 자위를 한 것이 괜시리 미안해
지는 느낌이었다.
메일로 황 이사에게 예진의 스틸사진을 몇 장 보냈더니 오늘 아침부터 전화를 해서 아주 흡
족한 인사말을 건네던 것이 떠올랐다. 분명 내가 그려낸 작품 속으로 사라질 한 여인이지만
그저 그렇게 보내기엔 아까울만한 여자, 예진이었다.

“오빠! 오빠!”

예진의 생각에 나도 모르게 넋을 놓고 있었다. 전신 타올로 몸을 두른 예진이 어느새 나와
나를 불러대고 있었다. 가슴살을 수건의 가장자리가 파고들어 살을 누르는 형상이 눈에 들
어와 예진의 섹시미를 재차 깨닫는 나였다.

“예진아! 수건을 그렇게 강하게 조이면 어떻게~ 자국 남잖아~”

“아~ 미안...”

어차피 자국이야 금방 없어질 것이었고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예진을 그저 모델이
아닌 여자로 보고 있는 내 자신이 들킬까 조금은 힘주어 말을 건넸다. 그러자 자신이 큰 잘
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황급히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는 그녀였다.

“자~~~ 이제 포즈 잡아보자!”

예진이 매트리스로 가 다소곳이 앉는 모습을 보고 조명을 밝혀 명암을 조절했다. 워낙 흰
피부와 맑은 인상인지라 그림의 톤을 밝게 가져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때론 아예 반대로
어둡게 가기도 했지만 어두운 것보다는 밝은 분위기가 처음이라는 것을 표현해내기 수월할
것이었다.

“가장 편한 자세부터 잡아봐...”

예진은 머리를 왼쪽으로 두고 살포시 매트리스위에 몸을 뉘였다. 빛에 닿는 피부가 아스라
하게 번져 눈이 부실지경이었다.

“왼 다리를 굽혀서 세워봐~ 얼굴은 나있는 곳으로 돌리고~ 오른손은 가슴아래에 자연스럽
게 올리고... 아니! 조금 더 위로... 그래... 왼손은 팔베개를 하듯이 목뒤로... 그래...“

몸의 굴곡과 매끈한 피부, 그리고 얼굴생김새는 나무랄데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지시를 하
고 있는 포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무 평범했다. 보여지는 그림 자체는 예뻤지만 특별
한 주제가 없었다.

“아니다... 이번엔 엎드려 봐~ 허벅지 살짝 벌리고.... 아니야... 아니야...”

“오빠 디게 어렵다...”

“자~ 다시 해보자... 이번엔 앉아봐! 음... 발은 엉덩이와 성기가 보일정도로 벌리고 그렇지,
그리고 무릎만 모아... 무릎위에 팔꿈치 올리고... 아~~~ 가슴이 전부 가려지잖아... 이것도
아니야....“

오랜시간 동안 포즈에 대한 지시와 그에 따르는 예진은 점점 지쳐가는 듯했다. 내가 너무
의욕적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예진 만큼은 그녀 마음에도, 그리고 내
마음에도 꼭 드는 멋진 작품으로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잠깐만 쉬었다 하자~ 오른쪽 커튼 젖히면 가운있어... 가운입어~”

나는 다시 담배를 잡아 물었다. 거의 밤을 새워 생각하고 생각했던 포즈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느 곳 하나 포기할 수 없었다. 청소한 눈망울이 매력적인 얼굴, 봉긋
하고 육감적인 가슴과 야리한 허리 밑에 위치한 탄탄한 엉덩이 그리고 그 중심의 거친 풀
숲.

하얗게 변해 버리는 듯 한 머릿속이었다. 입에서 내뿜어지는 담배연기와도 같이...

“오빠! 왜? 잘 안돼? 내가 너무 못하지?”

“아니야... 내 욕심이 커서 일꺼야... 예진이를 너무 예쁘게 그리고 싶은...”

“맨 처음에 나 보고 어떤 모습이 그리고 싶었는데? 그때도 생각한 건 누드였을꺼 아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지 나를 처음의 그때로 데려다 놓는 예진이었다. 솔직히 생각
을 하고 있는데 자꾸만 조잘거리는 그녀가 귀찮기도 했지만 딱히 다른 생각이 없었기 때문
에 그녀의 말대로 처음 예진을 봤을 때를 떠올렸다.

‘처음... 그래... 가슴을 출렁이며 뜀박질을 하던... 솔직히 그땐 모델을 구하기 위한 거였어.
내가 담고 싶었던 모습이 아냐... 그렇다면... 병원 안에서... 아~ 생각이 안나...‘

처음으로 돌아가 봐도 나오는 답은 없었다. 그저 맑고 청순한 이미지를 담고 있었던 것 뿐
이었다. 황 이사의 입맛에 딱 맞는 예진을 끌어들이기 위한 일종의 립서비스였던 것이었다.

“예진아~ 솔직히 너의 예쁜 외모, 그게 그리고 싶었어.. 하지만 욕심이 생긴다. 솔직히 니가
아직 남자를 모르는 여자의 몸이란 걸 알고 나서 그게 고민됐어. 너의 순결함을 담아내고
싶어. 순결한 여자의 음탕함? 그런 걸 말이야...“

“나 음탕하지 않아~ 왜 이러셔?”

“너의 생각과는 무관하게 너의 음모가 그렇게 보여~ 아주 음탕하게! 거칠고 막자란...”

“헤헤.. 그래서 여기 손질하지 말라고 했구나?”

“응... 근데 딱히 좋은 포즈가 떠오르지 않아”

“근데 순결한 여자가 음탕할 수도 있나?”

“음... 몸은 남자의 손이 닿지 않아 아주 순결하지만 속내는 강간이 됐던 또는 합의에 의한
성교가 됐던 속마음은 남자를 원하고 있다는 거, 인간이란 동물의 보여지는 것과 숨겨진 부
분이 일치하지 않는 이중성을 표현하고 싶다는 거지~ 예진이가 그렇다는 게 아니고...“

“어우 어려워!”

“그럼! 널 아주 멋지게 그리려는데 쉽게 떠오르면 좋겠니?”

그러고 싶진 않았지만 본격적으로 예진을 담아낼 주제와 구성에 대한 것을 나누고 있었다.
장난스럽지 않게 곰곰이 생각을 해주는 예진이 더욱 예뻐보였다. 사실 지금 이렇게 앉아 순
진무구한 표정으로 알몸에 가운하나를 걸치고 있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상품으
로는 어울리지 않았다. 결국 내가 그리는 그림은 예술성은 깡그리 무시한 채 리얼리티의 포
르노 그림을 그리면 고객은 만족을 할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렇게 작업을 해왔다.
하지만 예진만큼은 순수하게 예술이라는 옷을 입혀 팔고 싶었다.

“예진아! 간호사복 가져왔지?”

예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몇 시간째 진도가 나가지 않는 상황에 많이 지쳐보였다.

“상의만 입고 나와 볼래?”

힘겹게 몸을 일으킨 예진은 신발을 신는 것도 귀찮은지 맨발로 터벅터벅 탈의실로 들어갔
다. 나는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소파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떠오르는 것은 삼류
포즈외엔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다시 기운을 차린 우리는 다시 포즈를 연구했다. 누워도 보고 엎드려보기도 하고, 또는 서
서 포즈를 잡아보기도 했지만 마음에 드는 것은 없었다.

“아구구... 조금 쉬자! 가운 입어~”

“귀찮아... 포즈 잡는 거 보다 이 가운을 입어다 벗었다 하는 게 더 힘들어! 어차피 다 보여
준 거 더 보면 어때!!“

귀찮아 하며 신경질을 부리는 예진이었다. 계속된 번복에 힘이 많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사
실 모델일이란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몇 시간 포즈를 취하고 있으면 그대로 곯아
떨어질 만큼 중노동에 가까웠다.

“그렇게 하던지...”

“에구구.. 오빠 나 누워서 쉴 래~”

예진은 포즈를 취하던 그 상태로 매트리스에 엎드려 버렸다. 간호사복의 앞섬을 풀어헤친
그 상태로 어린 아이처럼 기절을 하듯 기우뚱 넘어져 버렸다.
나는 다시 컴퓨터 앞으로 가서 지난 작품들의 포즈와 타 작가들의 포즈를 찾아보기 시작했
다. 그림을 그리는 표현기법이나 구도의 변화외엔 그닥 새롭거나 와 닿는 포즈는 역시 없었
다. 말 그대로 거기서 거기였다.

‘후우~~~~’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애꿏은 담배만 연달아 피워낼 뿐이었다.
정말 간만에 창작의 고통을 느끼는 중이었다.
시끄럽게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정은이었다. 나는 매트리스에 쓰러진 예진
의 눈치를 살짝 살핀 후 뒷문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응 누나~]

[오늘 작품 들어간다더니... 전화 받는 거 보니까 잘 안 풀리는구만!]

[역시 누나는 귀신이구려~ 포즈가 안 떠올라]

[뭐 그리려고 하는데?]

[순결한 여자의 음탕함? 제목은 아닌데... 뭐 그냥....]

[별.... 순결한 여자는 무슨... 요즘 시대에 그런 거 그리려면 중학생 데려다 그려야 돼]

[흐흐.. 누나~ 예진이 쟤 숫처녀래...]

[정말? 얼굴은 예쁜데... 남자들이 가만 안 뒀을텐데...]

[몰라~ 누나 무슨 좋은 포즈 없을까?]

[치~ 몰라 이놈아! 헤헤...아주 순진무구한 얼굴 하라고 해놓고 두 다리 쫙 벌려놓고 처녀막
이라도 그리던가!!]

[아! 장난치지말고... 아무튼 내가 나중에 전화 할게..]

쓸데없는 통화였다. 섭외작업 이외엔 도무지 쓸데가 없는 선배였다. 답답한 마음에 다시 담
배를 피워내고 꽁초를 비벼껐다.

‘아~ 씨발 폐 썩겠다 썩어!!’

나는 다시 조용히 작업실 안으로 들어왔다. 담배를 많이 피워서 인지 답답하게 막힌 가슴이
시원한 물을 달라는 듯 외쳐대고 있었다. 냉수를 두 컵이나 비우고 다시 커튼안으로 들어가
는 순간이었다.

‘헛! 이... 이거야...’

예진은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얼굴을 한 채 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짙은 화장은 아니지만
무거워 보일만큼 짙고 긴 속눈썹이 마스카라와 함께 다소곳이 내려앉아 감겨있었고 살짝 벌
린 입술은 아이의 입처럼 작고 귀엽게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볼을 살
짝 가린 채 흩어져 있었다.

나는 서둘러 그러나 예진이 깨지 않게 카메라를 가져와 셔터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긴 오른쪽 다리가 곧게 뻤어 있고 왼 다리는 굽혀져 무릎이 매트리스에 닿아 은밀한 부분이
삼각점의 정점을 이뤄내고 있었다.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너무도 크게 들려왔다. 혹시 그 소리에 깰까 다각도로 셔터를 눌러대고
난 후 조용히 이젤을 옮겨 최상의 구도를 잡아냈다. 최대한 빨리 스케치를 끝내야만 했다.
아무리 사진을 보고 똑같이 만든다고 한들 자연스러움보다는 못하기 때문이었다.

길게 뻤은 오른팔을 벤 머리와 절묘하게 드러나는 얼굴라인, 엎드리지도 그렇다고 옆으로
눕지도 않은 절묘한 자태였다. 왼쪽 팔은 적당히 굽혀져 손바닥을 짚어 중심을 잡는 듯 했
고 그 팔꿈치 아래로 두 개의 동근 유방이 편안하게 쉬고 있었다.
편안하게 잠을 자는 모습. 실제로도 예진이는 꿈을 헤매이고 있었다.

‘아~ 아름답다... 예뻐!’

침대 광고에서나 볼법한 자연스러운 포즈였다.
나는 연필을 들고 빠르게 스케치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가장 가까이 보이는 것은 발이었다.
하지만 중심이 되고 작품의 하이라이트가 될 엉덩이부터 둥글게 손을 놀려 나갔다. 원래도
탱탱하고 튼실한 그녀의 엉덩이와 골반이었지만 그 골로 펼쳐진 음탕한 계곡이 야스러웠다.
앙증맞게 펼쳐진 두 장의 꽃잎 사이로 한줄기 애액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앤 도대체 무슨 꿈을 꾸길래...’

그 모습 하나만으로도 순결한 여자의 음탕함은 표현이 가능했다. 내가 추구하는 그림들은
모두 리얼리티였다. 그저 사진처럼 얼굴과 가슴, 그리고 은밀한 부분을 사실적으로 표현하
는 것에 많은 고객들이 찬사를 보내왔다.
하얀 반달과 보름달을 연상시키는 엉덩이와 은밀한 계곡의 스케치가 이뤄지고 연필은 다시
예진의 다리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두껍지 않은 허벅지를 지나 가는 발목이 인상적인 곧게
뻤은 오른 다리의 각선미를 애무하고 굽혀져 있는 왼쪽 다리를 애무한다. 직접적인 성교보
다 훨씬 강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며 나의 자지도 굳게 서 끝에서 맑은 액체를 흘리는 듯
했다. 솜털이 돋아난 매끄러운 피부가 스타킹을 신은 것 보다 더욱 빛나게 만들고 귀찮다며
맨발로 돌아다닌 때 묻은 작은 발바닥도 연출해내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느껴졌다.

순결한 몸을 가진 바쁜 여자, 남자를 만날 만큼의 시간 조차 허락되지 않는 착한 여자가 피
곤에 쩌들어 옷도 채 벗지 못하고 자신만의 쉼터에서 곤히 잠든다. 하지만 내면의 숨겨진
그녀의 음탕함, 꿈에서나마 흥분을 느끼는 그녀는 애액을 흘려낸다. 그 모습을 그대로 연출
해내고 있는 여자, 바로 예진이었다.

길다란 다리까지 끝낸 스케치는 다시 예진의 몸을 타고 올라가 잘록한 허리를 만졌다. 얇은
살가죽이 비틀린 허리를 표현해내며 겹친듯한 모습이지만 밉지 않은 모습이었다. 엉덩이의
골부터 척추로 이어지는 날렵한 라인은 무척이나 유연했다. 허리 뒷부분에 돋아난 거뭇한
솜털이 간지럽게 느껴졌다. 아직 몽고반점이 없어지지 않은 듯 조금은 퍼런기가 백옥같은
피부를 더욱 희게 만들어주고 있었고 위를 보고 있는 갈비뼈의 선형이 날씬한 여자라고 말
해주는 듯 했다. 특히 등에 귀엽게 돋은 작은 점이 빛나는 피부와 대조를 이루며 유독 눈에
띄었다.

‘정말 끝내준다...’

감탄사만이 터져 나올 뿐이었다. 스케치에 빠져드는 순간부터 나는 이미 예진의 몸에 넋을
잃고 말았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주위의 사물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
지 엉덩이부터 시작된 고운 여체에 눈이 멀어 감탄만 할 뿐이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손목과 팔은 다시 그녀의 젖가슴을 주무르고 있었다. 동근 어깨부터 시작
된 유선형의 뾰족한 모양의 가슴은 매트리스와 만나 조금은 모양이 일그러진 모습이었지만
그 구겨진 모양자체도 섹시미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퍼런 실핏줄마저 선명하게 돋아나는
두 개의 봉우리 중 오른쪽은 왼쪽 봉우리에 가려져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양감만큼은 충분
히 가늠할 수 있었다.
특히 봄의 전령사인 진달래를 꼭 닮은 꽃판과 그 위로 정성스레 빚어 올린 동그란 분홍빛의
알맹이는 입에 머금고 혀를 돌려내고 싶을 만큼 앙증맞았다. 최고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은
모양과 크기, 그리고 빛깔이었다. 향긋한 꽃내음이 풍길 것 같은 봉우리를 지나 가녀린 목
선을 따라 오르자 정상이 보였다.
부드럽게 올라붙은 턱선과 갈빛의 머릿칼에 가려진 예쁜 모양의 귀 아래엔 하트모양의 귀걸
이가 달랑이며 쉬고 있었다.

희고 투명한 눈처럼 부드럽지만 차갑게만 보이는 피부가 겨울이라면 엉덩이 사이 계곡물을
흘려내고 있는 억센 잡초가 무성한 은밀한 부분이 여름이었다. 진달래꽃을 만개한 두 개의
젖가슴은 봄을 노래했고 마지막으로 갈색의 브릿지가 들어간 고운 웨이브진 머릿칼은 가을
을 형상화 했다. 어느 것 하나 부족함 없이 곳곳에 숨어 남자의 욕구를 곳곳이 그리고 빼곡
하게 충족시켜주고 있었다.

참을 수가 없었다. 여체를 갖고 싶었다. 예진을 갖고 싶다기 보다 그저 눈에 보이고 내 나름
대로 해석한 순결하고 음탕한 여자를 품고 싶었다.
삼발이에 달리 카메라를 들고 커텐 뒤로 몸을 숨겼다. 여전히 곱게 잠을 자고 있는 그 여체
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생각할 것도 없이 다용도실로 숨어든 나는 바지를 내리고 사정없이
자지를 붙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카메라 앵글에 들어온 그녀의 하얀 허벅지와 줌을 이용해
그녀의 몸 중 여름으로 향했다. 좁은 계곡이지만 나 혼자 발 담그고 물놀이를 할 수 있을
정도는 충분했다.

액정에 비친 예진의 속살은 더욱 빨갛고 더욱 부드러워 보였다.

“후우~ 후우.... 어흣!”

왼손은 여전히 불끈대는 자지를 붙잡고 펌프질을 해댔고 오른손으론 카메라의 액정을 맞추
며 봄 나라로 여행을 감행했다. 크고 진한 진달래 한 송이가 눈에 들어왔고 그럴수록 나의
흥분은 배가 됐다.

“하읏....끄응....”

미치도록 발산을 하고 싶었다. 그녀의 몸 위로 뿌려버리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그것을 보
고 즐기고 있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흥분을 달래 줄 수 있었다.

“읏~ 흐읏!!!”

그녀의 사계는 곳곳마다 절경이었다. 결국 사계절을 모두 돌아보기도 전에 이미 끈적한 정
액이 솟구쳐 삼발이며 커텐을 더럽히기 시작했다. 무척이나 많은 양에 나 조차도 놀라울 뿐
이었다.

“하아~ 하아.... 좋았어... 아주 좋았어 예진아~”

서둘러 옷을 다시 올려 입은 나는 뒤처리를 할만한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다시 새롭게 보
인 사계를 카메라에 담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호흡은 몹시 가빠져 있었고 억지스레
참는다고 참았지만 쉽게 참아지지 않았다.

거친 숨소리와 끊임없이 들려오는 셔터소리 때문이었는지 서서히 눈을 뜨는 예진이었다. 흠
칫 놀란 예진의 얼굴엔 짐승 같은 숨소리 때문인지 급격하게 겁을 집어먹은 표정을 지어냈
다. 잠시 잠든 사이에 알몸의 자신을 느끼고 당황했을 것이다.

“우.. 움직이지마!”

굳어버린 채 움직임을 멈춘 예진이었지만 이미 몸은 깨어나 있었다. 사계도 서서히 모습을
감춰갔고 은밀한 부분의 발간 속살도 살아 움직이며 흘렸던 애액을 느꼈는지 꼬물거리고 있
었다.

“오빠 미안해...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네?”

“이제 움직여도 돼~”

풀어헤쳐졌던 앞섬을 챙기며 앉은 예진은 헝클어진 머리를 곱게 손가락으로 빗어냈다. 그리
고는 두 다리를 가지런히 모아 은밀한 꽃잎까지 거둬들였다.

“아니야... 예진이 덕분에 아주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아... 고마워~”

무슨 소리인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설명대신 가운을 어깨에 걸쳐주며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매트리스를 덮고 있던 하얀
천에 애액이 붙었다가 진득하게 떨어지는 모습이 생생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젖은 부
분이 적나라하게 새겨지고 있었다.

“어머! 오빠 미안...”

“왜?”

“침대보가 더러워졌어....”

“괜찮아~ 신경 쓰지마... 그건 그렇고 이리와 봐”

예진의 어깨를 감싼 나는 캔버스에 그려진 예진의 자는 모습을 보였다. 그림을 아는지 모르
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몸이 담긴 캔버스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였다.

“헤에.... 난 아직 잘 모르겠다! 근데 내가 잘 때 이렇게 자는 거 처음 알았어~”

“예쁘지?”

“몰라~ 야하게 자는 거 같애...”

“그러니까 예쁜거야~ 내가 말한 딱 그거!!”

그렇게 우리 둘은 그림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잘 모르겠다고 얘기하는 예진이었지만
내심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예진은 탈의실로 들어가 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그녀가 옷을 입는 동안 작품에 대한 흥분
과 여체에 대한 흥분을 가라앉히려 담배를 찾아 물었다. 달콤한 향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스케치지만 이미 완성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색칠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그녀의 살결이며
작은 바람에도 흔들릴만큼 야들한 솜털까지 카메라에 전부 담겨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될 건
없었다.

“오빠 근데 지금 몇 시.....헤엑!! 벌써 9시가 넘었어? 나 도대체 얼마나 잔거야?”

“몰라~ 푹 자줘서 고마워~”

“헤헤.. 그래도 화백님께서 만족해하시는 거 보니까 나도 만족스러운데?”

행복한 밤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그 어느때보다도 즐겁게 작품을 완성 시킬 수 있음에 입
가에 번지는 웃음이 자랑스러웠다.
늦은 저녁을 먹고 이미 집으로 돌아간 예진이었지만 눈앞에서 생생하게 그려지는 그녀의 자
는 모습이 아른거렸다.

그 후로 예진은 퇴근을 하자마자 기꺼이 같은 자세로 잠을 자 주었다. 카메라에 담긴 그때
의 그 모습으로도 충분했지만 역시 실물에는 비할바가 못됐다. 자의반 타의반이었다.
나는 그녀의 알몸이 계속 보고 싶었고 그녀는 작품의 질을 위해 그렇게 스스로 옷을 벗어
던지고 잠을 자 주었다.
서두르면 사나흘이면 됐지만 심혈에 심혈을 기울여 일주일이 지날 때 쯤 작품은 끝이 났다.

‘올 때가 됐는데....’

퇴근시간이 훨씬 지난 시간임에도 오기로 한 정은과 예진은 올 생각을 않고 있었다.
하얀 보자기에 싸인 것은 허름한 판넬이 아닌 순수함을 뜻하는 흰색의 엔틱풍 액자에 담긴
예진이었다. 내 생애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 중 하나였다.

/똑! 똑!/

빼꼼히 얼굴을 들이민 것은 예진이었다. 그 어느 날보다 화사한 원피스를 차려입고 반짝이
는 높은 하이힐을 신은 그녀는 사뭇 다른 이미지였다.

“오빠!!”

“어서 와~”

긴장과 설레임이 있는 표정, 그럴 수밖에 없던 것은 스케치 이후 단 한 번도 작품을 본 적
이 없는 그녀였다. 봐도 상관은 없었지만 본인 스스로 완성작을 몹시 기대를 하고 있는 듯
했다.

“나 무지 궁금해 죽겠어.... 오빠 생애 최고의 작품이라며?”

“궁금해? 빨리 볼까?”

“어흐~ 이런 건 좀 뜸 좀 들여줘야지...”

“보자고 해도 올 사람이 남았어~”

“누구?”

“정은씨! 꼭 보고 싶다고~”

정은 역시 최고의 작품이라 말하자 첫 공개 때 불러 달라며 기대감을 가졌었다. 하지만 약
속시간이 지났음에도 모습을 비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짜기라도 한 듯 작업실 문을 열어 제끼는 정은이었다.

“미안해요... 내가 좀 늦었죠?”

전화를 해보려는 찰라 케잌과 샴페인, 그리고 빨간 장미꽃다발을 챙겨든 정은이 모습을 드
러냈다. 뛰어왔는지 거친 숨과 허둥대는 몸짓이었다.

“예진아~ 축하해~...”

“이것보세요 이가씨들... 원래 축하는 화가인 내가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호호호... 죄..죄송해요”

“자! 그럼 공개 할까요?”

“어흐~ 무드 없긴... 예진씨도 첫 모델 한 거 축하하고 화백님도 생애 최고의 작품을 하신
거 축하하며~ 케잌 컷팅이라도 해야죠~“

정은과 예진은 테이블을 끌어다 케잌을 펼치고 초에 불을 붙였다. 보잘 것 없지만 종이컵까
지 가져다 놓은 후 샴페인의 축포를 터뜨리기 위한 준비를 끝마친 두 여자는 숨을 죽이며
이젤 위의 작품으로 눈을 맞췄다.

“정은씨! 뚜껑 조심해요... 혹시라도 상처나면 나 울어버릴거야~”

“확 맞춰버려야지!”

한바탕 웃어버린 우리였다. 다시 천의 끝을 잡고 공개를 준비했다.

“자! 공개합니다... 하나, 둘, 셋!!”

하얀 보자기가 걷히며 드러난 액자 안에는 예진의 자는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몸에 돋
은 솜털까지 세세하게 묘사하고 싶었던 나는 솜털까지는 아니지만 살아있는 표정과 은밀한
계곡에 흐르는 음탕함을 제대로 표현해냈다. 그리고 사계까지...

그림을 그리는 정은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만큼 놀라버린 것이었다. 그녀의 떨리
는 손과 걷어붙인 팔뚝에 돋은 소름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점점 다가와 작품의 질감까
지 확인한 정은은 예진의 얼굴과 그림을 연신 번갈아가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내가 봐도 음탕한 은밀한 꽃잎과 그 곳에 흐르는 맑은 물이 압권이었다.

“대...대박! 대박!! 어쩜... 대박!”

“오..오빠~”

미처 신경쓰지 못했던 예진 역시 눈가에 그렁이던 눈물을 흘려내며 만족의 웃음을 지어 보
였다. 걱정하고 두려워하던 예진이 감동을 하자 나는 한숨을 돌렸다.

“어때? 마음에 들어?”

눈물을 훔치며 고개만 끄덕이던 예진은 말문을 열었다.

“너무 예뻐... 내가 이렇게 예쁠 줄이야.... 정말 고마워요~”

“치~ 왜 예진이가 고마워해~ 화백님이 더 감사해야지.... 자! 빨리 촛불 끄세요 화백님!”

정은은 타들어가는 촛불을 끄길 재촉했다. 나는 예진의 어깨를 감싸고 눈을 맞추었고 예진
역시 뜻을 알았는지 동시에 초를 불어 불씨를 날렸다. 그러자 정은은 꽃다발을 내게 건네주
었다.

“축하드려요~ 계속 이런 그림만 그리시면 금방 유명해 지실꺼예요”

“정은씨 고마워요... 그나저나 이 꽃은 나보다는 예진씨가 더 잘 어울리겠죠?”

나는 다시 꽃다발을 예진에게 넘겼고 환한 얼굴로 꽃다발을 받아드는 그녀였다. 그리고 간
단한 축배를 들었다. 휴대폰의 카메라로 사진을 담는 예진은 아쉬움도 함께 느끼고 있는 듯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곧 황 이사에게 넘어갈 그림이기에 누구보다도 아쉬움이 클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리 셋은 아쉬운 마음을 숨긴 채 2차를 나갈 수 밖에 없었다.



유독 해가 밝은 날이었다. 작업실로 검은 고급 세단이 와 멈춰 서고는 양복을 멋지게 차려
입은 황 이사가 내리며 반가운 얼굴을 하고 악수를 청했다.

“오~ 이 화백님 대단히 고생 많으셨습니다.”

“들어가시죠”

깊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넨 나는 앞장서 작업실로 황 이사를 이끌었다. 뒤따라 들어오는
비서로 보이는 내 또래의 남자는 선물꾸러미를 한아름 들고 우리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얘기는 들었어요~ 거의 걸작 수준이시라고...”

“걸작은요. 사실 팔고 싶지 않은 작품이긴 합니다.”

“하하하하... 제가 운이 굉장히 좋은 놈이로군요”

“차라도 한 잔...”

“그것보다 어서 작품공개부터~ 하하하 어제 한숨도 못잤습니다”

나는 곱게 포장된 액자를 들고 이젤 위로 올렸다. 묶인 끈을 잘라내는 순간에도 흠집이라도
날까 내손이 떨렸다.
포장지가 아래로 흘러내리며 가려졌던 예진의 생명력 있는 그림이 나타났다.

“우오~~~ 짝짝짝짝!! 대작입니다. 고 사장 작품과는 품격자체가 다르오”

“핫하.. 이사님! 고 사장님 작품도 제가...”

“어이쿠.. 이런... 이 화백님만 만나면 이렇게 말 실수를 한다오... 정말 미안하오”

“괜찮습니다.. 사실은 저도 그 작품 보다는 황 이사님 작품이 더 좋습니다. 고 사장님께는
비밀로 해주셔야 합니다“

“여부가 있겠소~ 이 화백님 정말 멋집니다. 고맙소”

황 이사는 계속해서 감사의 뜻을 전해왔다. 곧 내 곁을 떠날 예진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
는 일이었다. 시원하고 후련하게 보내줘야 할 일이었다.

“최 비서! 화백님께 잔금 드려요~”

나는 간단한 목례를 하고 건네주는 잔금을 받아 챙겼다. 그리고 그림이 정말 마음에 들었는
지 본인의 지갑을 꺼내 가득 들은 돈을 건네며 말을 했다.

“처음하고 오늘 실수한 저의 성의오... 이렇게 훌륭한 작가인지도 몰라보고... 정말 미안했소
얼마 되지 않지만 받아주시오!“

“그러시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저... 그리고 이것”

나는 고급스러운 앨범과 작은 쪽지를 함께 건넸다. 황 이사는 그것을 받아들면서도 황당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이게 뭔가요?”

“쪽지는 작품의 주인공 프로필입니다. 이 근처이니 실물이라도 한 번 보고 가시죠... 거짓이
아닌 실로 진실된 그림임을 밝히기 위함입니다. 믿지 않는 분들이 계셔서... 그리고 앨범은
누드집이라면 거창하고 작품을 하기 전 찍는 스틸 사진들입니다. 그림과는 다른 매력이 있
으니 비교해 보셔도 좋으실겁니다. 아! 사진은 절대 유출이 금지인 것 아시죠? 계약서에 분
명히 명시되어 있으니 꼭 탈 없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소! 내가 왜 이 화백을 의심했을까? 나중에 좋은 밥 한 번 사겠소...”

“저야 감사하죠~”

황 이사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림에 아마추어지만 누드집까지 손에 넣었으니 그
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예진은 내 곁을 떠나갔다.



<1년 후>


[여보세요? 어~ 오빠...]

[예진아 바빠?]

[아니~ 지금은 좀 한가한데?]

[나 좀 도와줘...]

[뭐야~ 또? 치! 오빠 예전에도 정은 언니랑 이런식으로 해서 나 꼬신거지! 못됐어]

[아..급해!! 이번거는 좀 크단 말이야~]

나는 서둘러 전화를 끊고 커피잔에 물을 따라 커텐 밖으로 나섰다.
딱 1년전 예진의 모습 그대로 벽면에 걸린 누드화며 풍경화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곧게 뻤
은 두 다리위로 짧은 미니스커트가 아슬아슬하게 엉덩이를 감춰내고 있었다.

“화가시라더니... 사기는 아니었네요?”

“제가 사기꾼으로 보이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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