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 2주 그 1년 후


“쪽...쪼....쪽..쪽,,....오...옥........퍼버벅`퍼벅 타닥닥 타닥”처음부터 이게 무슨 소리냐고요? 
“아...흑...아.....아.....아...빠...싫...아....아...흑.....”들어 보시기나 하세요. 
“쯥...읍...쯔...으...읍....쯥............퍽.. 퍽.. 질퍽... 질. 퍽.. 헉.. 헉.. 퍽. 퍽..”제 보지는 이미 질이 들어있고 질이 잘 든 탓에 물도 엄청 나옵니다. 
“오 멋..있...어...아빠...더...먹...어...줘.....내걸...다......아...아...빠...“혹시 아빠하고 하는 근친상간이냐고요? 
호호호 이제 눈치를 차렸어요? 


“퍼…벅….퍽퍽퍽…퍽. 퍼…벅…퍽.!!!상미야 좋니?”아빠가 펌프질을 하면서 묻습니다. 
“하...아...좋아......아니. 내가 싫증나?..아니....왜...왜.......아빠....난...아 빠...거야”밑에 깔린 저는 몸부림을 치며 말을 합니다. 
“퍽.. 퍽.. 질퍽... 질. 퍽.. 헉.. 헉.. 퍽. 퍽..너무 좋다”아빠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을 합니다. 
“아...아...아...흑...아...빠...아....아...흑...내가 좋은 거야 거기가 좋은 거야.”아빠 몸에 매달려 몸부림을 치며 묻습니다. 
“퍽.. 퍽.. 질퍽... 질. 퍽.. 아!.. 으~.. 퍽. 퍽..너도 좋지만 네 보지도 좋아 넌?”아빠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을 하고는 되묻습니다. 
“아...악...아...아...빠...거...기...너...무...해...아...악....아....딸에게 보지가 뭐야 보지가?”눈을 흘기며 아빠를 보지만 싫지는 않은 투로 말을 합니다. 
“벅...펍...첩....처..철벅....후우.....넌 어때?”오십 줄이 넘다보니 거의 매일 저를 안는 것이 힘드신 모양입니다. 
“왜..날...아......아. 계속..더..꽂..아...줘”불안한 마음에 더 힘을 주어 매달리며 몸부림을 칩니다. 
“퍼…벅….퍽퍽퍽…퍽. 퍼…벅…퍽. 타다닥!!!”다시 아빠가 힘을 씁니다. 
“아흑...아빠.....너무 좋아......아빠의 자지는 너무해...아......”볼을 아빠 볼에 대고 비비며 몸부림을 칩니다. 


“퍽퍽퍽퍽!!!!!!!!! 퍼벅… 퍼벅.. 퍽퍽퍽!!!!!!!!!!!!!!!!!!!”아빠의 펌프질이 아주 격렬하게 빨라집니다. 
“아빠 더 완전히 끝까지......네 몸 속에 깊이.....아빠의 자지가....”그렇습니다. 
아빠의 좆은 이미 제 자궁 입구를 마구 찌르고 있습니다. 
“퍽. 퍽…질퍽... 퍽.. 질. 퍽 .. 질퍽. 질퍽..”그렇게 찔러대다 보니 제 보지구멍에서는 얼마나 많은 물이 흘렀는지 알 정도로 질퍽입니다. 
“아...느껴져 아빠 좆이 움직이고 있어.....아흑 좆이 내 보지를 치고 있어”그리고 느껴집니다. 
제 보지구멍 안에서 용동을 치는 아빠의 사랑스러운 좆의 움직임이 말입니다. 
“퍼……퍽…퍽퍽퍽…….퍼.. 벅.. 퍽!!!상미야 아무렴 아빠의 자지를 좆이라니?”아빠가 눈을 흘기며 말하지만 싫어하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아흑. 몰라..내보지를 찌르고 있어.....느껴 아흑...더 박아줘요.”되레 몸부림을 치며 말을 합니다. 
“퍽퍽퍽…퍼.. 퍽…퍽퍽퍽!!!!!”아빠의 펌프질을 멈출 줄을 모릅니다. 
“아...흑 엄마와 내 것 중에 어느 보지가 더 좋아요........”그만 나와서는 안 될 말이 제 입을 통하여 나와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빠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펌프질만 합니다. 
“아빠 내걸 먹어요......그렇게요.....흐윽...더...세게.....박아줘요.....“아차 싶은 마음에 말을 돌려봅니다. 
“퍽. 퍽…질퍽... 퍽.. 질. 퍽 .. 질퍽. 질퍽..”아빠는 묵묵히 펌프질을 하며 허공을 주시합니다. 
“아...빠 ...사...랑..해...줘...요...내...보...지....를...”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이기에 슬며시 돌려봅니다. 
“퍽. 퍽…질퍽... 퍽.. 질. 퍽 ..”아빠가 여전히 허공을 바라보며 펌프질만 합니다. 
“날..마...음..대...로...가...지...고..놀...아...요.....뚫어줘요...아...악....아빠...난...언제나...아빠,...꺼”답답한 나머지 분위기를 바꾸려고 하지만 제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퍽. 퍽…질퍽... 퍽.. 질. 퍽 .. 질퍽. 질퍽..”허궁을 풀린 눈으로 보라보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안쓰럽습니다. 
“나...나...아...빠......아...빠......나...나...아빠...아빠.....더...세...게...“애걸에 가까운 부탁을 하여 봅니다. 
“퍽퍽퍽퍽!!!!!!!!! 퍼벅… 퍼벅.. 퍽퍽퍽!!!!!!!!!!!!!!!!!!!”아빠가 다시 힘을 냅니다. 
“아빠....아...아빠....더...더....왜...왜....나...나...보...지...보...지...하...악...“힘을 낸 아빠에게 더 힘을 나게 하기 위하여 음란한 말을 뱉습니다. 
“퍽..퍽..퍽...철퍽....퍽...벅...퍽..퍽..퍽...철퍽....퍽...벅.”아빠가 힘들어 하면서도 펌프질을 멈추지 아니합니다. 
“퍽. 퍽…질퍽... 퍽.. 질. 퍽 .. 질퍽. 질퍽..”다시 아빠의 좆 끝이 제 자궁을 찔러댑니다. 
“아흣, 하앗... 오, 오빠야... 하읏...”저는 아빠가 마무리를 짓기 위함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압니다. 
“상미야 간다~퍽퍽퍽퍽!!!!!!!!! 퍼벅… 퍼벅.. 퍽퍽퍽!!!!!!!!!!!!!!!!!!!으~~~~~”아빠의 마무리 펌프질과 함께 아빠의 분신이 베 보지구멍을 통하여 제 몸으로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아~아빠 너무 좋아”아빠의 등을 끌어안은 손에 힘을 줍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넘어서는 안 될 금단의 벽인 아빠와 근친상간을 하고 있는 18살 소녀랍니다. 
그럼 이제부터 저와 아빠가 이렇게 된 사연을 모조리 거짓은 물론이고 숨김없이 있는 그대로 털어 놓겠습니다. 


우리 집은 10년 전만 하더라도 남부러울 것이 없는 아주 화목한 집이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흠이라고 할라 치면 낚시를 너무나도 좋아하여 주말이면 어떤 일이 있어도 낚시를 가는 아빠를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빠가 얼마나 낚시에 미쳐있었는지 간단한 예를 들어 말씀을 드린다면 아빠의 동생이자 저에게는 삼촌이 되는 그 삼촌이 장가를 드는 날도 아빠는 엄마하고 저 그리도 동생에게 갔다 오라고 하고는 낚시를 갈 정도였고 아빠의 형님이자 저에게는 큰아버지인 큰아버지의 딸인 저에게는 사촌언니인 언니가 시집을 가는 날도 아빠는 집을 비우고 낚시를 가면서 엄마와 저 그리고 동생에게 다녀오라고 하였을 정도였습니다. 
일가친척의 대소사에 있어서 비가 오거나 태풍이 불지 않은 한은 그 대소사에서 우리 아빠의 모습을 찾아보기란 힘들 정도였습니다. 
할머니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이 평일이었고 그도 주중이라 다행이었지 아마 주말이 끼어있었더라면 상주이면서도 조문객들의 눈을 피하여 낚시를 갔을 것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우리 아빠는 낚시에 미쳐있었습니다. 


작년에도 예년처럼 정초부터 아빠는 주말이면 하루도 거르지를 않고 낚시에 갔습니다. 
그런데 작년 여름휴가가 다가오자 엄마의 행동이 수상하였습니다. 
금요일 저녁이면 으레 아빠가 낚시를 가는 것을 알고 낚싯대는 물론 참이나 장비들을 엄마가 챙겼는데 작년 봄부터 어찌된 영문인지 엄마는 아예 아빠의 낚시 장비에 손을 대지 않았고 참도 알아서 챙겨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엄마가 속내를 들어 낸 것은 아빠의 여름휴가를 세 달 여 앞둔 어느 날이었습니다. 


엄마가 아빠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면담을 신청한 것입니다. 
그도 저와 동생을 참석 시키는 조건으로 말입니다. 
아빠는 처음에는 엄마의 요구에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엄마는 아빠의 출근시간에 맞추어 차리던 밥상까지 차리지 않고 늦잠으로 응수를 하였습니다. 
일주일이 조금 지나고 아빠가 엄마의 면담을 받아들였습니다. 
엄마의 요구는 안 간단하였습니다. 
내년이면(작년 기준)제가 고등학교 삼학년에 올라가고 삼학년에 올라가게 되면 엄마가 저에게 매달려야 한다면서 금년만이라도(역시 작년 기준)온 가족이 함께 여름휴가를 같이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대 찬성이었지만 남동생도 대 찬성을 하였습니다. 
궁지에 몰린 것은 아빠였습니다. 
하지만 일주일만 생각을 해 보자고 하던 아빠는 두 주일이 지날 때까지 차일피일 미루면서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주일이 자나자 엄마를 중심으로 저와 제 남동생도 똘똘 뭉쳤습니다. 
엄마는 아빠의 밥을 해 주지 않았고 저와 제 동생이 아빠에게 인사는커녕 묻는 말에도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빠만 우리 집에서 외톨이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결국 이 주일하고 이틀 만에 아빠는 여름휴가를 온 가족과 함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대신 조건을 붙였습니다. 
낚시를 위주로 한 가족 여행이라고 말입니다. 
그놈의 낚시가 무슨 재미가 있기에 가족 여행도 낚시를 위주로 하는가? 궁금한 나머지 엄마와 저희 남매도 순순히 받아들였습니다. 
또 낚시 장소도 아빠가 가자고 하는 곳으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작년 장마가 지나가기 무섭게 아빠는 스케줄을 잡았습니다. 
서해 바다에 있는 외딴 섬으로 가기로 말입니다. 
엄마와 동생의 경우 남해 바닷가로 가자고 하였지만 문학에 취미가 많더 저는 해가 지는 석양의 가을 바다가 보고 싶은 나머지 아빠 편을 들어서 서해로 가기로 하였습니다. 
출발을 하기 일주일 전부터 엄마와 저희 남매는 부산을 떨기 시작을 하였습니다. 
엄마와 저는 외딴섬이라 보아줄 사람도 없을 것이지만 비키니 수영복을 준비하였고 겨의 맥주병이나 다름없는 엄마와 저희 남매는 구명 복에 아빠가 민박을 할 것이라고 하였지만 아빠의 말은 무시를 하고 텐트도 샀고 침낭도 샀으며 민박집에서 식사도 해결을 하기로 하였다고 하였지만 엄마와 저희는 아빠의 말에 아랑곳 하지 않고 코펠에 참숯 그것도 부족하여 그릴까지 샀으며 분명하게 전기도 들어온다고 하였지만 가스 플래시에 손전등까지 준비를 하는 둥 만반의 준비를 하였습니다. 
새벽에 출발을 하여 외딴섬으로 우리를 이동을 시켜 줄 낚싯배를 탄 것은 점심을 먹은 직후였습니다. 
낚싯배라고는 하지만 평소에는 고기를 잡는 고기잡이 배였습니다. 
배에 오리기 직전 맥주병인 엄마와 우리 남매는 아빠의 지도 아래 구명 복을 입었습니다. 


배에 올라 탄 엄마와 저희 남매는 바다의 풍광과 파도에 미쳐서 선수에서 바닷바람을 만끽하였지만 항구를 출발하고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난생 처음으로 배를 탄 엄마하고 남동생은 멀미를 하기 시작하였지만 어찌 된 샘인지 저의 경우 멀미를 하지 않고 바닷바람에 미쳐있었고 아빠는 주말마다 낚시를 다니시기에 그럼 배에 익숙해 져 있어서 멀미를 하지 않고 바다의 풍광에 미친 저의 말동무가 되어주었습니다. 


거의 한 시간 정도 나갔을까.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는가 싶었는데 눈 깜짝 할 사이 그 파도는 종이배나 다름이 없던 낚싯배를 집어삼켰고 바닷물이 아주 짜다는 것을 느끼고 허우적거리는데 저의 손을 잡은 것은 아빠였고 엄마와 남동생 그리고 낚싯배 선장은커녕 낚싯배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연이어 밀어닥치는 파도와 간만의 차이가 아주 많은 서해 바다의 소용돌이는 엄마와 남동생의 안부를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그나마 갑판 위에 놓아두었고 그리고 아빠가 깔고 앉아있던 아빠의 낚시에 갈 때마다 필수품처럼 가지고 다니던 아이스박스가 아니었다면 맥주병이나 다름없던 저는 물론이지만 수영을 그나마 조금 한다고 하던 아빠도 어쩌면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아빠와 저는 그 아이스박스에 몸을 의지하고 파도가 치는 대로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대로 바다에서 둥둥 떠다녀야 하였습니다. 
그리고 뭍이라고 생각이 드는 곳에 발바닥이 닿은 것은 석양이 질 무렵이었습니다. 
그때서야 아빠와 저는 엄마와 남동생 걱정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망망대해였고 아무리 둘러봐도 불빛이라고는 보이지 아니하였습니다. 
대행이 아빠의 아이스박스에 매어진 수건이 하나가 있어서 그것을 짜서 몸에 물기는 닦을 수가 있었습니다. 
물기를 닦고 아빠와 마주보고 앉아 넋을 일고 울기를 거의 한두 시간. 
허기가 지자 눈물도 말랐습니다. 
아빠가 주섬주섬 아이스박스를 열었습니다. 
짐을 싸면서 부피가 많으면 움직이기 곤란하다고 하면서 넣었던 다섯 개들이 라면이 하나 있었습니다. 
라면만 있으면 뭐 합니까. 
물도 없지 불도 없는데 말입니다. 
생 라면을 부셔서 먹었습니다. 
배가 부르고 나니 다시 엄마와 남동생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빠는 저의 등을 두드리면서 단념을 하자고 하였습니다. 
배가 풍랑에 휩싸일 당시 엄마와 남동생은 배 밑에 있던 아주 작은 공간에서 누워 있었습니다. 
내려가는 입구가 비좁아 엄마와 남동생은 경우 구명 복을 벗고서야 간신히 들어갔고 내려가서 다시 구명 복을 착용을 하였기에 성장님이 살아 있어 엄마와 남동생을 꺼내려고 하였을 지라도 꺼내었을 때는 이미 많은 물을 먹은 후였을 것이고 또 죽었을 것이라는 것이 아빠의 추측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실망을 하지 않았습니다. 
꼭 살아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말입니다. 


또 저나 아빠나 사람인지라 자고 싶었습니다. 
어둠 그리고 추음과 싸움을 하는 사이 아빠는 달빛과 달빛에 따라 일렁이는 파도를 보면서 바닷가를 마구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구해 온 것은 스티로폼 조각들이었습니다. 
바닷가 자갈밭에서 웅크리고 잘 수가 없다고 판단을 하였고 그런 생각에 따라 돌아다니다가 주운 것들을 모아 폈습니다. 
하지만 펴봤지만 한 사람이 겨우 누울 그런 공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여름이라고는 하지만 바닷물에 젖은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고 담배를 피우지도 않기에 가지고 다닐 이유가 없었던 성냥이나 라이터 같은 없었기에 모닥불을 피울 여건도 되지 못 하였습니다. 
결국 아빠가 선택을 한 것은 그 작은 스티로폼 위에 저와 함께 끌어안고서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기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은 결국 저와 아빠 사이에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게 하고 말 줄이야.............. 


“아빠 이게 뭐야?”제가 앞에 눕고 아빠가 제 등 뒤에서 끌어안았고 저는 제 엉덩이에 닿을 딱딱해 진 물건을 저도 모르게 그만 잡고 물은 것입니다. 
“아~상미야”아빠가 가느다란 신음을 하며 저를 더 힘주어 끌어안았습니다. 
“!”그때서야 저는 제가 잡은 것은 정체를 알게 되었고 알게 되었지만 아빠마가 미안해 할 것 같은 마음에서 손에서 때지 못 하였습니다. 
“미.....미안하다”아빠가 저를 거의 으스러지도록 끌어안으며 저의 귀에 뜨거운 김을 불어넣으며 말하였습니다. 
“아빠 정말 엄마하고 상국이 죽었을까?”아빠의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완화를 시킬 마음에서 물었습니다. 
“휴~그래 아마”하고 힘없는 어조로 말을 하기에 
“그럼 이제 아빠와 단 둘이 살아야 하는 거야?”몸을 돌려 아빠와 마주보고 누우며 물었습니다. 
“기적이 없는 한은”아빠가 말을 하면서 저의 엉덩이를 끌어당겼습니다. 
“!”이번에는 딱딱해진 아빠의 그것이 제 거기에 닿았습니다. 
“그럼 이제 어떡하지?”아빠의 그것 느낌에 온몸으로 전율을 느끼며 물었습니다. 
“너와 둘이 살아야지”하고 말하며 더 밀착을 시켰습니다. 
“내가 엄마 대신에?”하고 묻자 
“그럴 자신은 있니?”아빠의 몸과 스티로폼 사이에 묻힌 팔을 빼는가 싶더니 엉덩이를 조금 빼고는 지퍼를 내리며 되묻기에 
“그렇게 살아야 한다면 별수 있어?”하고 말하자 
“해 봤니?”아빠가 딱딱해진 것을 빼는가 싶더니 제 손에 쥐어주고는 제 바지의 호크를 풀며 묻기에 
“아니 아직”하고 대답을 하였지만 아마 아빠가 달빛 속으로 에 얼굴을 봤다면 붉게 물든 것은 봤을 것입니다. 
“그럴 상황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잖니?”조심스럽게 제 바지 지퍼를 내리며 물었습니다. 
“.................”차마 그렇다고는 대답을 할 수가 없기에 고개만 끄떡이자 
“고맙다 상미야”하고 제 이름을 부르는가 싶더니 제 몸 위로 몸을 포개고는 키스을 하였습니다. 
저도 아빠의 목을 두 팔로 걸고 매달리며 키스를 받았고 아빠의 혀가 제 입안으로 들어오자 저는 게걸스럽게 빨았습니다. 
그렇게 키스를 하는 동안 춥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아빠 몸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온가만 느껴졌고 아빠가 키스를 하면서 물기가 마르지 않은 티를 벗기자 더욱 뜨거운 느낌을 받았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 손은 아빠 바지 안으로 들어가 딱딱하여진 아빠의 그것 아니 좆의 느낌을 느끼며 주물럭거리고 있었지만 부끄럽다는 생각은 하나도 없이 되레 당연하다는 듯이 만졌습니다. 
아빠 역시 제 티를 벗기고 나더니 이어서 브래지어를 제 가슴에서 때어내었고 그리고 저처럼 손을 제 바지 안에 넣고는 제 처녀림을 만지작거리며 뜨거운 키스를 계속 하였습니다. 


솔직히 말하여 아빠의 몸이 제 몸 위로 포개어지고부터는 엄마와 남동생의 생각은 제 뇌리에서는 사라졌었고 그것은 아빠도 마찬가지였었던지 아빠도 엄마와 남동생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아빠와 딸 아니 인간과 인간에서 욕정이 굶주린 두 마리의 동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저는 봤습니다. 
당나라 시인인 이태백이가 호수에 비친 달과 하늘에 뜬 달 그리고 자신이 든 술잔 속에서 세 개의 달을 봤듯이 저에게도 세 개의 달이 보였습니다. 
파도에 찰랑이는 바다에 비친 달과 하늘에 뜬 달 그리고 술잔 속은 아니지만 조난을 당하기 직전 낚싯배 뱃머리에서 보았던 이글거리든 태양보다도 더 이글거렸지만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아빠의 눈망울 속에도 달빛은 유난히도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아빠는 딸인 저에게 뜨거운 키스를 하는 중에도 손을 놀리지 않았습니다. 
바지도 벗기고 바닷물의 물기가 마르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축축하게 젖은 팬티도 벗겨내었습니다. 
자신의 바지와 팬티도 벗어서 아빠와 저는 맨살로 서로를 갈구하며 비비고 있었습니다. 
황홀하다는 생각을 할 즈음 뭔가가 아니 정확하게 말하여 아빠의 좆이 제 보지둔덕에 닿았고 닿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악! 아빠 아파”저도 모르게 단말마의 비명이 터져 나오면서 가랑이 사이의 사투구니로 아빠의 좆이 박히기 시작하였습니다. 
“상미야 조금만 참아”아빠가 제 젖가슴을 움켜잡으며 몸을 파르르 떨었습니다. 
“응, 들어갔어?”통증을 참으며 물었지만 양 볼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조금만 참아 이제 마지막으로 관통을 할 거야”아빠가 제 아랫도리를 내려다보며 말을 하는가 싶더니 
“에잇!”하고 고함을 질렀고 
“악! 뭐야 들어갔어?”다시 한 번 더 단말마의 비명이 나왔습니다. 


후에야 알았습니다. 
처음 아빠의 좆이 제 보지구멍 입구에 박히면서부터 통증이 느껴졌지만 아빠의 기합에 가까운 고함을 칠 때 비로소 제가 간작하고 있었던 처녀의 상징이기도 한 처녀막을 관통하며 느꼈던 통증이 바로 두 번째로 느꼈던 통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통증도 잠깐 느꼈을 뿐입니다. 
통증을 느끼며 저는 아빠라는 남자가 앞으로 제가 믿고 의지하며 살아야 할 유일한 사람이란 것은 느꼈으니까요. 


“많이 아프니?”아빠가 아랫도리에 힘을 주며 물었습니다. 
“응, 하지만 참을 만 해”하고 대답을 하였습니다만 제 보지구멍에 박힌 아빠의 좆은 마치 아빠 몸에서 분리가 되어 떨어져 나온 또 다른 생명체처럼 제 보지구멍 안에서 나음대로 껄떡이고 있었습니다. 
“그래? 몇 칠만 참으며 돼 알았지?”아빠가 천천히 움직이며 말하였습니다. 
“몇 칠이 아니라 몇 달이라도 아빠와 함께라면 참을 거야”저는 아빠의 목에 매달리며 감격의 눈물을 흘려야 하였습니다. 
그렇게 시작이 된 아빠와의 첫날밤은 새벽 먼동이 트기 직전까지 계속이 되었습니다. 


날이 밝자 아빠와 저는 살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아빠는 저에게 바닷가를 돌아다니며 가스가 든 일회용 라이터와 불이 붙을만한 것들을 모으라고 하였습니다. 
대신 아빠는 먹을 물을 구하러 다녔습니다. 
거의 10M이상 되어 보이는 수직으로 깎아 내린 절벽 어디인가는 물이 흘러나올 것으로 생각을 한 것입니다. 
저의 경우 거의 한 시간 이상을 돌아다니며 구석구석을 뒤진 끝에 일회용 라이터를 거의 열 개 이상 주웠습니다. 
하지만 어느 하나도 불이 켜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아빠의 지시에 따라 바위 위에 올려놓고 말렸고 그리고 불이 붙을 만 한 것들을 모으기 시작하였습니다. 
작은 스티로폼 조각부터 낡은 부이 헌 그물들에 나뭇조각까지 불이 븥을 만한 것들은 모조리 모았습니다. 
물론 그런 것들을 모으는 틈틈이 배가 지나가지 않나 바다를 주시하는 일도 개으르지 않고 감시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망망대해를 지나가는 배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글거리는 여름 바닷가에서 새벽부터 먹은 것이라고는 생 라면 부스러기가 고작이었습니다. 


“상미야 어서 와라”배는 고프지 몸을 이글거리는 태양아래 바로 노출이 된 상태라 거의 물집이 생기기 직전이고 거기다가 물이라고는 한 모급도 마시지 못 한 상태라 아빠가 저 멀리서 저를 불렀을 때는 거의 아사 직전이었습니다. 
“물 있어?”급선무가 식수였습니다. 
“갈증은 풀겠다, 어서 와라”하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응”아사 직전이었지만 갈증을 풀겠다는 아빠의 말은 조로 하여금 힘이 솟도록 만들었습니다. 
바위 위로 기다시피 기어서 가자 아빠 앞에는 어른 손바닥 크기로 움푹 파여 있었고 거기에는 맑은 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아빠 말대로 거의 갈증이나 겨우 풀 정도로 말입니다. 
그 물로 갈증을 풀고 저는 다시 아빠의 지시에 따라 물을 담을 만한 것들을 찾으러 다녔습니다. 
그러는 동안 아빠는 우리를 살렸던 아이스박스 옆의 주머니에서 맥가이버 칼이라고 부르는 다용도 칼과 낚시 바늘 그리고 동그란 동태 모양에 감겨있던 낚싯줄과 그리고 납덩어리로 낚시채비를 하더니 바위에 붙어있던 홍합을 따고 깨어서는 낚시를 시작하였고 물을 담을 만한 것들을 찾은 저는 아빠가 발견을 하였던 옹달샘도 아닌 모래 절벽 틈으로 흘러내리는 물을 용기에 모아 담았습니다. 
해가 서해 기울기 직전까지 아빠는 손바닥 크기의 작은 물고기를 몇 마리 잡았고 아빠의 지시에 따라 주워서 바위위에 얹어놓고 물기가 마른 라이터들을 아빠에게 다져다 주자 아빠는 조심스럽게 켜기 시작하였지만 겨우 세 개를 남겨 두고도 불은 켜지지 않더니 마지막 두 개째에 신기하게 불이 켜졌습니다. 
아빠가 살려준 불을 저는 일으키고 아빠는 자신이 낚시로 잡은 물고기를 손질하였고 제가 주운 찌그러진 알루미늄 용기에 라면 하나와 생선 과 미끼로 쓰려고 따 두었던 홍합을 넣은 후 물을 붙고 끓였습니다. 
조난을 당한 날 아침 집에서 밥을 먹은 후에 처음으로 음식 같은 음식을 먹었습니다. 
다시 밤이 찾아오고 아빠는 전날 밤처럼 저를 안아주었습니다. 


여기서 잠시 정말로 민물이 좋았습니다. 
전날 밤 아빠가 아빠의 분신을 제 몸 안에 뿌려주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임신에 대한 두려움)아빠가 싸기 무섭게 달빛을 위안삼아 보지구멍을 바닷물로 씻으면 소금기 때문에 안 그래도 아프게 느껴지던 보지구멍의 따가움이란 말로 표현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둘 쨋 날 밤에 아빠가 전날처럼 아빠의 분신을 제 몸 안에 뿌리고 나면 뿌린 즉시 아빠가 발견을 한 옹달샘도 아닌 모래 절벽 틈으로 흘러내리는 물로 씻었을 때의 그 상쾌함이란 이루 말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전날 밤의 경우 아빠가 자신의 분신을 제 몸에 뿌리고 나면 씻는 자체가 고통이었던 반면 먹고 씻을 물이 생기자 걱정이 되지 않아 되레 제가 더 하라고 부추기기까지 하였습니다. 


다음 날도 눈을 뜨자마자 저는 물을 모았고 아빠는 고기를 잡았습니다. 
하루에 라면 한 깨와 잡은 물고기로 연명을 하였지만 조난 5일이 지나자 라면도 떨어졌고 그날부터는 아빠가 잡은 고기와 홍합 그리고 바위틈에 있던 게며 성개 등으로 연명을 하며 살아야 하였습니다. 
그렇게 보름이 지나는 동안 우리가 조난을 당한 바다 앞을 지나가는 배는커녕 개마도 한 마리도 보이지 아니하였습니다. 
물론 거의 가물가물하게 보이는 바다를 지나는 커다란 배는 보였지만 아빠와 제가 옷이며 스티로폼을 마구 흔들었어도 그냥 지나가는 배 뿐이었습니다. 


7일이 되던 날 아빠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더 이상 가까이 지나가는 배를 기다릴 수만은 없었습니다. 
바닷물에 의한 침식 작용 때문에 거의 10M이상 되어 보이는 수직으로 깎아 내린 절벽을 타고 넘기로 말입니다. 
새벽에 일어나 해가 뜨기 전과 해가 질 무렵의 조금이나마 시원할 때에 아빠는 나무로 절벽의 흙을 파서 발을 디딜 틈을 만들었고 저는 절벽에 걸칠만한 것들을 모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태양이 작열하는 때면 아빠는 낚싯대도 없이 오로지 낚싯줄과 바늘 그리고 홍합 등의 바닷가 바위에 붙어사는 것들을 미끼로 고기를 잡고 저는 모래벽 틈으로 흘러내리는 식수를 받아 모아야 하였습니다. 
물론 가끔 아빠가 훤한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빠구리를 하자고 하면 하였지만 더위 때문에 가급적이면 해가 진 뒤에 하였습니다. 
많이 한 날은 15~16번 적게 한날도 8~9번 이상은 하였습니다. 
물론 처음과 달리 통증도 많이 완하다 되었기에 아빠가 하고 싶다고 하면 무조건 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하고난 직후에는 상처가 아물어 아프거나 따가움이 사라지기에 거의 바닷물을 이용하여 씻었습니다. 


손톱 사이가 갈라지고 파가 나는 와중에도 아빠는 단단한 흙으로 된 수직 절벽에 발 디딜 틈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5일이 지난 아침 가까스로 아빠가 흙으로 된 절벽 위에 오를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빠는 사라졌고 다시 아빠가 나타난 것은 해가 중천에 떴을 무렵이었고 다시 나타난 아빠의 손에는 낡은 그물이 들려있었습니다. 
아빠는 그 낡은 그물을 절벽에 걸쳤고 저에게 그걸 잡고 천천히 오르라고 하였습니다. 
오르다가 미끄러지기를 반복한 끝에 거의 해 질 무렵이 되어서 저도 절벽 위에 올라 설 수가 있었습니다. 
오르고 나서야 우리가 바라보던 바다에 배가 지나다니지 않은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배가 자나가기를 바라던 바다는 섬의 서해 쪽이었고 섬의 동쪽 바다도 너무 넓어서 섬인지 육지인지 구분이 안 되었지만 하여간 다른 육지나 섬으로 보이는 곳도 화창한 날인데도 까마득하게 멀어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로는 제법 많은 배들이 지나갔지만 우리가 있는 섬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지나갔습니다. 
아빠를 따라 천천히 내려갔습니다. 
거기에는 거의 다 허물어져 형체만 만은 집이 하나 있었고 그 밑으로 다시 내려가니 시멘트로 된 작은 포구로 보이는 것이 있었지만 배는 엔진도 없고 배 밑바닥도 언제 썩었는지 모를 정도로 썩어버려 갯벌을 드러나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날이 어두워지자 다시 올라간 형체만 겨우 남은 집을 뒤지니 쌀벌레가 우글거리는 항아리에는 고맙게도 한줌을 조금 더 되어 보이는 쌀이 있었고 그 쌀을 마당에 있던 우물에서 씻어서 곡기를 때울 수가 있었습니다. 
그날 밤 아빠와 저는 살았다는 안도감에 빠져 제대로 된 빠구리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 날도 다시 그 다음 날도 바닷가에서 그 집에 있던 곰팡이가 핀 이불호청을 뜯어서 깃발을 만들어 흔들었지만 우리를 봐주는 바는 없었습니다. 


마침내 우리가 조난을 당한 날부터 꼭 2주가 되던 날 우리는 자나가던 고깃배에 의하여 해경에 신고가 되었고 해경이 도착을 하였을 때는 아빠나 저는 걸인 그 자체의 몰골이었습니다. 
아빠와 저가 머물었던 섬은 2년 전만 하여도 한 가구가 살았지만 거기서 살던 분이 죽어버리자 무인도가 되어버렸던 그런 섬이었습니다. 
그도 가까운 섬에서 거의 한 시간을 배를 타고 가야하는 그런 섬이었습니다. 
간신히 우리가 출발을 하였던 항구로 갔으나 아빠의 승용차는 거기에 없었습니다. 
해경의 도움을 받아 여비를 마련하여 집으로 갔습니다. 
아빠의 예상대로 엄마와 남동생은 죽은 후였고 장례까지 치른 후였습니다. 
하지만 슬퍼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살던 집에는 큰어머니와 작은어머니가 상주하면서 서로 우리 집의 권리를 주장하며 암투가 벌어지고 있었고 거기에다가 엄마의 친정 오빠인 외삼촌까지 가세를 하여 아바의 재산을 탐을 대고 암투를 벌리고 있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사람이 바다에 빠졌을 경우 해경이 몇 칠 간 수색을 하다가 실종이 된 사람을 찾지 못 할 경우 일가친척들이 잠수부나 배를 대여를 하여 개인적으로 수색을 한다고 하였지만 큰아버지나 작은아버지는 경찰에서 수색을 일단락하자마자 자기들을 우리 집으로 몰려가서 우리 집을 서로 자기들 목으로 할 량으로 눈치를 보며 암투를 벌렸고 엄마와 남동생의 시신이 수습이 되자마자 바로 하장을 하여 바다에 뿌렸다는 것입니다. 


아마 아빠가 실종이 아니고 시체라도 발견이 되었다면 아빠의 재산은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나누어 가졌을 것이라는 것이 이웃 사람들의 말이었습니다. 


실종이 되어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도 믿고 있던 아빠와 제가 나타나자 당혹해 한 것은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 그리고 외삼촌이었습니다. 
우리 가족의 비극을 아는 사람들은 아빠와 제가 살아서 나타나자 아주 고소해 하였습니다. 
하지만 자초지종을 알게 된 아빠와 저의 실망은 극에 달하였습니다. 
아빠가 결단을 내렸습니다. 
형제의 연을 끊기로 말입니다. 
결단을 내린 아빠는 우리가 출발하였던 항구로 내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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