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녀와 노신사의 죽음


창녀와 노신사의 죽음 
이 이야기를 처음 접한 것은 군대에서 첫 휴가를 나와서 이었었고 들은 장소는 부산에서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집장촌의 하나인 범전동 300번지에서였다.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다가 자대 배치 후 다시 자대 훈련소에서 빡시게 훈연을 받은 후에 받은 첫 휴가라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부산에 도착을 하자마자 부모님이 기다리시던 말든 간에 300번지로 갔고(더 환경이 좋은 완월동도 있었지만 완월동은 돈이 비싸서 엄두도 내지 못 하였고 부신진역 맞은편에 있는 부산일보사 사옥 뒤편에 있는 집장촌의 경우 가격은 쌌지만 아가씨가 아니라 대부분 내 엄마 나이 도래의 늙은 창녀라 안 갔음)거기에서 긴 밤을 보내면서 나와 상대한 이십대 후반의 창녀로부터 직접 들었던 내용임을 사전에 먼저 밝히겠다.(제보자의 증언임) 


먼저 창녀의 이야기부터 하기로 하겠다. 


창녀는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없다. 
다만 15살 때까지 같이 지냈던 남자를 아빠라고 여겼으나 나중에 자신을 대한 그 남자가 아빠라면 그녀에게 할 수 없는 행동을 시도 때도 없이 하였고 나중에 자신이 만을 듣지 않는다고 하여 창녀촌에 팔아버리자 그 남자는 절대 아빠가 될 수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아빠에 대한 기억은 전무한 것이다. 


여기서 잠시. 
나에게 자살을 하였다는 세라라는 창녀는 이 이야기를 같은 동료인 창녀에게 하면서도 단 한 번도 자신을 그렇게 만든 남자를 욕 하는 것을 듣지 못 하였다고 했다. 
그래서 이야기를 듣던 동료 창녀가 그 남자를 개새끼니 소 새끼니 혹은 그보다 더 한 욕을 할라치면 만류를 하며 자기 팔자가 그래서 그런 것이지 그 남자의 탓은 아니라고 하더란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자살한 그 창녀가 바로 천사가 아닌가 싶었다. 
그게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그녀 아니 그 천사의 이름은 세라였다. 
물론 세라라는 이름도 그 남자가 지어준 이름이었고 그 이름이 나오게 된 것은 처음 그 남자의 손에 끌러가면서 이름을 묻기에 어린나이의 발음이 정확하지 않았던 세라가 엄마아빠로 기억이 되는 사람들이 부르던 것으로 기억이 된 세림이라는 이름을 말하였는데 그 남자가 세림이를 혀 짧은 세라의 발음을 세라로 혼돈을 하고 그때부터 세라라고 부르게 된 것이었다. 
세라가 그 남자에 대한 기억을 하고 있는 것들 중에 가장 오래 전의 것은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기도 한참 전의 일이었다.(참고로 세라는 초등학교 입학은커녕 문턱도 밟지 못 함) 
그 남자는 세라에게 자신을 아빠라고 하였고 또 아빠라고 부르라고 하였다. 
그런 세라에게는 희미한 기억이지만 엄마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을 하였고 그 남자가 아닌 다른 남자를 아빠라고 불렀던 기억은 조금 남아있었지만 어떻게 하여 자신이 그 남자에게 왔고 같이 살면서 아빠라고 불러야 하는지에 대하여서는 전혀 기억이 없었다. 
그 남자와 세라가 살았던 집은 산골짜기에 있는 예전에 무당이 기거하면서 굿을 하고 점을 보던 곳이었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굿을 하고 점을 보던 무당이 그곳에서 끔찍하게 살해를 당하고는 폐가처럼 되어 인정이라고는 끊겨버린 그곳에 정착을 하게 된 이유를 세라는 알지 못 하였고 그 남자가 자기 집이며 세라의 집이라고 하였기에 그런가 보다 하고 살고 있었다. 
세라가 기억을 하고 있는 것은 솔직하게 말하여 말로 표현을 하기도 싫은 그런 것들뿐이었다. 
하지만 나와 상대를 하였던 창녀는 세라와 나이도 비슷하였고 부모에 대한 기억도 하나도 없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고 더구나 아주 어려서부터 남자들의 성 노리개 노릇을 하였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서 서로는 비밀을 숨기지 않고 털어 놓았고 그래서 나와 상대한 창녀는 세라에 대한 비밀 전부를 알고 있었다. 


세라가 그 남자의 손에 끌려 폐가가 되어버린 굿막으로 와서 처음으로 한 것은 그 남자의 손에 끌려 계곡으로 가서 같이 알몸이 되어 씻긴 것이 처음의 일이었다. 
세라는 씻기를 좋아하였고 씻기고 나자 배고 고팠고 그 남자에게 배가 고프다고 투정을 하자 그 남자는 마치 기다리기라도 하였다는 듯이 계곡 가에 벗어둔 점퍼 주머니에서 크림빵을 끄집어내더니 그 크림빵을 세라에게 주지 않고 빵을 둘로 가르더니 흉측하게 생긴 고추에 가져다대고 문질러 크림을 고추에 묻히더니 배가 고프면 크림을 핥아먹으라고 하면서 세라의 입으로 향하자 어린나이에 아무 것도 모르는 세라는 오로지 배가 고픈 이유 때문에 그 남자의 고추에 묻은 크림을 빨아먹어야 하였고 다 빨라먹고 나면 다시 크림을 고추에 묻히고 빨아 먹게 하기를 반복하면서 자신의 고추를 잡고 마구 흔들었고 막바지에는 고추에서 하얀 물이 흐르자 그걸 먹으면 나머지 빵을 준다고 하기에 아무 생각도 없이 억지로 삼켜야 하였다. 
그렇게 하여 세라가 빵을 게눈 감추듯이 먹고 나자 그 남자는 자신도 알몸인체 세라에게도 옷을 입히지 아니하고 목말을 태우고 그 폐가 같은 굿막으로 데리고 갔고 거기서 그 남자에게 끌어안긴 체 잠을 잤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눈을 떴을 때는 이마 날은 밝아있었고 그 남자는 알몸인 세라의 가녀린 보지를 마구 빨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세라에게는 매일 같이 반복이 되는 일이었다. 
또 그 남자가 먹을 것을 구하려고 산을 내려 갈 때는 세라를 굿막 안에 가도고 열쇄를 채우고 내려갔고 용변이 마려우면 그릇이나 냄비에 싸는 일은 다반사가 되었다. 
그러면서 세라는 그런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처음에 그 폐가에 가까운 굿막에 왔을 때는 무당이 쓰다버린 잡동사니가 전부였으나 그 남자는 마을에만 내려갔다 오면 살림이며 식량이 늘어났다. 
세라가 반항을 하기 시작하자 효용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였던지 그 남자에게 끌려 창녀촌으로 팔려오기 직전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남자는 마을에 내려가면 빈집을 털었고 그렇게 하여 살림이며 식량을 그 남자는 구하여 왔지만 세라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 남자는 마을에 내려가지 않은 때는 하는 것이라고는 세라에게 고추를 빨게 하거나 아니면 세라의 고추를 빠는 일이 전부였다. 


그렇게 그 남자로부터 사육을 당하던 세라에게 아주 큰 변화가 왔다. 
그 남자가 거의 하루에 서너 번 이상 빨아 제키는 바람에 열 살 나이의 소녀답지 않게 보지둔덕은 두툼하여졌고 거무스름하게 변한 것이다. 
거기다가 세라는 이미 남자의 좆 물을 먹지 않으면 그 남자에게 짜증까지 내는 것이었다. 
거기다가 그 남자는 시기가 다가 온 것을 알았다. 
세라를 진짜 여자로 만들 시기가 말이다. 
그 남자 말에 따르면 세라가 열 살이 되던 해 설날 이침 그 남자는 마을에 다녀왔고 마을에서 떡국을 구걸하여 왔다. 
그리고 그 떡국을 두 개의 그릇에 담더니 상에 올려놓고는 엄숙하게 말을 하기를 오늘부터 성인이 되었기에 성인식을 한다고 하였다. 
초등학교 입학은커녕 문턱도 밟아 본 적이 없는 세라에게 성인식이라는 들어보지 못 한 생소한 단어였지만 세라는 그 남자가 시키는 대로 그 남자에게 큰절을 하였고 그리고 떡국을 먹고 나자마자 성인이 되어야 한다며 옷을 벗으라고 하자 평소처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벗고 누우며 어떻게 성인이 되냐고 묻자 그 남자는 음흉하게 웃으면서 옷을 벗더니 자신의 좆을 잡고는 세라의 보지를 가리키며 거기에 넣을 것이라고 하였다. 


예전부터 그 남자는 자신의 좆으로 세라 보지에 대고 문지른 것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세라 보지에 데고 함을 주기도 하여 세라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면 느슨하게 하였고 그리고 용두질을 쳐서 좆 물로 세라 보지구멍은 물론이고 보지둔덕이 풀칠을 하는 것은 예사였다. 
하지만 정작 성인식이라고 하면서 박는다고 하자 무서웠다. 
하지 말자고 애원을 하자 그 남자는 눈을 부라리며 이제는 그 적절한 시가에 도달하였다며 몸을 일으키려는 세라를 억지로 누르고는 좆을 보지에 대고는 세라 입을 막는가 싶더니 세라는 아랫도리가 찢어지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고 양 볼로 눈물이 줄기차게 흐르고 있음을 느끼자 그 남자는 세라에게 이제는 성인이 다 되었다며 고개를 받쳐 들어주고 밑을 보라고 하였고 세라가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며 밑을 봤을 때는 아빠라고 하라던 남자의 좆은 거의 뿌리만 남기고 자신의 보조구멍 안으로 사라진 것을 보았다. 
그걸 보자 아픔도 아픔이었지만 한 편으로는 아주 신기하였다. 
아궁이의 부젓가락보다도 굵어 보이는 아빠의 좆이 전부가 자신의 보지구멍 안으로 사라졌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로부터 세라는 그 남자의 물받이가 되어서 하루에도 몇 차례씩 그 남자의 좆 물을 보지구멍은 물론이고 입과 심지어는 후장에까지 받아들여야만 하였다. 
그게 어떤 행위인줄도 모르고 말이다. 


굿막으로 유괴를 당하고 5년이라는 길고 신 세월이 흘렀지만 세라는 문명의 혜택은 전혀 받지 못 하였다. 
전기며 전화가 들이오지 않아 TV는 물론 라디오도 없었다. 
거기다가 그 남자는 외출을 할 때면 으레 세라를 굿막 방에 가두어 두고 외출을 하였고 굿막 주인이었던 무당이 무참하게 살해가 된 이후 인적이 끊겨서 지나가는 사람은커녕 세라가 유괴를 당하였을 당시에만 해도 있었던 오솔길은 사라진지 오래고 그 오솔길에는 잡초만 무성하여 일 년 열두 달 아니 오 년 60여 개월이 흘렀지만 세라가 인기척을 느낀 것은 그 남자가 오고 갈 때뿐이었다. 
쌀을 가지고 오면 그 쌀로 밥을 해서 먹고 채소를 가지고 오면 가지고 오는 대로 먹었고 고기라고는 일 년에 많아야 한두 번 먹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 남자가 올라오면 죽은 듯이 있다가 그 남자의 좆 물을 보지구멍이나 입 혹은 후장으로 받는 일이 세라의 제일 중요한 일과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세라는 점점 좆 맛을 알아 갔고 그 남자에게 본격적으로 먹히기 시작한지 일 년이란 세월이 지났을 무렵에는 세라가 그 남자 몸 위로 올라가 펌프질을 하며 즐기는 처지에 이르고 말았다. 


세라가 문명 세계의 것을 처음 접한 것은 12살이 가까워진 가을의 어느 날 초경이 시작이 되면서부터였다. 
그 남자는 세라가 생리를 시작하자 생리대를 사왔고 또 세라가 아기를 임신을 하는 것이 두려웠던지 피임약을 사서 먹인 것이 세라 입장에서는 처음으로 접한 문명세계의 것이었다. 
설명서가 있고 복용방법이 있지만 글이라고는 전혀 몰랐기에 그 남자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 남자가 사용방법이 적힌 것을 읽어주고 복용방법을 일어주자 글자에 대한 호기심이 났다. 
그 호기심은 그 남자를 조르게 만들었고 깊은 산중에 사는데 글을 안다고 해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 그 남자는 한글 책을 가져다주었고 처음부터 ㄱㄴㄷㄹ........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머리가 좋은 세라는 일 년도 안 되어 어지간하게 간단한 한글은 읽고 이해를 하기에 이르렀다.(쓰는 것은 겨우 자기 이름하고 숫자 10까지가 전부였다) 
하지만 그 남자는 문명세계에 접하지 못 하게 더 단단하게 차단을 하였다. 
한글을 터득하자 그 남자는 외출을 하면서 한 개만 채우던 열쇄를 이중으로 단단하게 채웠다. 
뿐만 아니었다. 
세라가 문명세계에 대하여 호기심을 나타내자 쇠고랑을 준비를 하더니 외출을 할 때면 아예 발목에다 쇠고랑을 채우고서 나갔다. 
말 그대로 그 남자에게 사육을 당한 것이다. 


그런데 그 남자가 조금 술을 마셨던지 어느 날부터인가 마을에 다녀오면 입에서 술 냄새가 났고 그런 날이면 감시가 느슨해지며 세라에게 약간의 자유를 주었다. 
물론 그 남자 기분에 맞도록 올라가서 펌프질을 하여 줄 경우에 말이다. 
술에 취하면 비틀거리기 마련이고 산이라는 곳이 술에 취하여서 다니기에는 아주 좋지 않다는 것을 그 남자도 알았다. 
그러다 보니 빠구리를 하고 보지를 씻으러 간다고 하면 혼자 다녀오라고 하였고 세라는 혼자서 계곡으로 가서 뒷물을 하고 오는 횟수가 점점 늘어가게 되었다. 
그런 어느 날 세라는 날짜가 한참이나 지난 신문을 한 조각을 주웠다. 
세라에게 문명 세계의 비밀이 하나 생긴 것이다. 
그도 사회면 기사가 있는 신문 조각이었다. 
몇 날 몇 칠을 꼼꼼히 읽고 나름대로 해석을 하였다. 
그게 14살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세라는 그 주운 신문지를 통하여 많은 것을 얻었다. 
어떤 사람이 어린 소녀를 상습적으로 강간을 하였다는 기사가 나왔고 그 기사에는 그 소녀가 임신을 하는 통에 소녀의 할아버지가 이상하게 여긴 나머지 학교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하였고 학교 선생님이 그 소녀를 상담을 한 결과 상습적으로 강간을 하였다는 것을 알고 경찰에 신고를 하여 구속이 되었다는 기사였다. 


세라는 피임약을 그 남자가 사주어 꼬박꼬박 먹기는 하였지만 피임약이 무엇인지도 몰랐으나 그 신문지 조각으로 인하여 피임약이 임신을 피하기 위한 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빠라고 부르는 남자가 자기에게 하는 짓이 강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것을 알게 되자 세라는 그 남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다짐을 한 세라는 그 남자가 시키는 것을 거부하기 시작하였다. 
얼마나 독하였던지 세라는 몽둥이찜을 당하면서까지 그 남자의 요구를 거절하였다. 
그러자 그 남자는 세라의 두 다리와 두 팔을 묵고서는 자신의 욕심을 채웠다. 
또 감시도 강화가 되었다. 
하지만 자신의 욕심을 채울 때마다 번거롭게 세라를 묵는 일이 귀찮았던지 세라에게 집으로 가고 싶으냐고 물었다. 
집이란 말에 세라는 공손하여졌고 보내달라고 애원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 남자는 한 달 동안만 자기 말을 잘 들으면 데려다 주겠다고 하였고 세라는 그 남자의 말을 믿고 하자는 대로 해 주었고 또 갖은 아양을 부렸다. 


산골짜기 굿막으로 들어 온 이래 떠나기 전 날 세라는 옷 같은 옷을 처음으로 입어보았다. 
산골짜기로 들어 온 후로 세라가 입은 옷은 산 아래 마을에서 빨아서 말리려고 빨랫줄에 걸어 놓은 팬티나 세라 몸에 맞지도 않아 헐렁하거니 꼭 끼는 그런 옷이었던 반면 내려 오기 전날에는 어디에서 어떻게 구했는지 모르지만 한 번도 빨지 않은 새 옷이었고 몸에도 거의 맞았다. 
다음 날 세라는 그 남자의 말을 믿고서 그 남자를 따라갔다. 
처음으로 기차도 탔고 버스도 탔다. 
하지만 세라가 도착을 한 곳은 부산의 변두리 술집이었고 그 술집은 중고등학생들로서 가출 내지는 납치가 되어온 아이들에게 노팬티차림으로 교복을 입히고 술좌석에 동석을 시켜 술을 팔게 하고 이차로 으슥한 골방에서 빠구리를 하게 만들어 술집 주인 주머니에 넣는 그런 곳이었다. 
그 남자는 세라를 거기에 넘기고 돈을 받고는 세라에게 온다간다는 말도 없이 도망을 가버렸고 그날부터 세라는 바로 손님을 받아야 하였다. 
그렇게 그런 집을 전전하다가(배운 것이 없어서 지식이 짧은 탓에 같이 있던 애들에게 따돌림을 받는 통에 자주 옮겼다고 함)세라 나이 22살 때 문제의 300번지로 팔려온 것이었고 거기서 나와 동침을 하며 세라의 이야기를 마치 자신의 이야기인 냥 눈물가지 흘리며 이야기를 하였던 창녀와 같은 집에서 몸을 팔게 되었다. 


앞에서도 언급을 하였지만 당시 나와 상대를 한 창녀는 이십대 후반인 반면 세라는 그녀보다 세 살이 많아 삼십대 초반이었다. 
15살 때부터 삼십에 이르기까지 창녀 짓을 하다 보니 배운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세라였지만 손님을 상대하는 대는 능구렁이가 다 되었다. 
그런 어느 날 예순 정도의 노신사를 세라는 손님으로 받았다. 
내가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부모님이 기다리는 집으로 먼저 달려가지 않고 창녀촌으로 와 창녀와 긴 밤을 새우듯이 말이다. 
그런 여기서부터는 나와 긴 밤을 지내며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창녀가 아닌 이야기 속의 주인공인 세라가 남긴 유서를 토대로 세라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이해를 하기 쉽겠기에 그렇게 하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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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번지라는 곳이 내가 300번지로 오기 훨씬 전에 없어졌다고 하는 태평 시네마라는 2평 동시 상영을 하는 허름한 극장이 있었고 극장 중에 제일 하류다 보니 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들도 거의 막장 인생이 대부분이었던지 그 극장이 사라진 후에도 300번지로 와서 빠구리를 하고 가는 인간들도 거의 그런 사람들입니다. 
손님은 두 가지 부류가 있는데 주머니 사정이 빈약하여 숏 타임을 하는 사람들과 주머니 사정이 조금 넉넉한 경우 소위 롱 타임이라고 하여 긴 밤을 자고 가는 사람들로 나누어집니다. 
기가 찬 것은 주머니 사정이 빈약한 숏 타임 손님이랍니다. 
숏 타임의 경우 한 번 올라와 한 번 싸면 그만인데 싸지 않은 것처럼 하고 계속하는 경우입니다. 
아무리 콘돔을 끼고 하는 빠구리라고는 하지만 창녀 생활 하루 이틀 한 것도 아닌데 싸고 나서 바로 다시 하려는 것 모르겠습니까? 
그러면 바로 오빠나(기둥서방이라고들 하지만) 주인을 부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손님은 죽지 않을 만큼 시쳇말로 좆 나게 맞고 갑니다. 
300번지의 경우 앞에서 이야기를 한 것처럼 거의 막장인생인 노가다나 껄렁패들이 출입을 하기에 돈이 되고 몸도 편한 롱 타임을 하고 가는 사람은 한 달이면 한두 명 있을까 말까 합니다. 


그날은 초저녁에 롱 타임으로 즐기고 가겠다는 초로의 신사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오래간만에 하룻밤이지만 편하게 보내게 된 것입니다. 
예순이 조금 넘었든지 아니면 그 근처의 나이로 보였습니다. 
돈만 가지고 오면 미성년자인 고삐리는 물론 중학생으로 보이는 애들에게도 가랑이를 벌려주는 것이 창녀라는 직업 아닌 직업입니다. 
그 말은 나이와는 상관없이 돈만 주면 그 누구에게라도 가랑이를 벌려 준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예순인들 칠순인들 심지어 여든이 넘었으면 가랑이를 벌려주어서는 안 된다는 법은 없다는 말입니다. 
방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한 탕을 하였습니다. 


롱 타임의 경우 급하지 않다는 것이 좋습니다. 
새벽에 재첩 국 장사가 재첩 국을 사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를 때까지는 시간이 많으니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롱 타임을 하기로 한 초로의 신사는 돈을 주며 술과 간단한 안주를 부탁을 하였습니다. 
“아가씨 고향이 어디야?”술과 안주를 가운데에 두고 대화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아저씨도 이렇게 몸이나 팔고 있는 년이 고향이 어디에 있겠어요?”하고 대답을 하자 
“그래도 태어난 고향은 있을 것이 아니야?”하고 다시 물었습니다. 
“고향이 이디냐고 묻지를 마시고 부모님이 어디에 사느냐고 묻지도 마세요.”하고 말하고는 한숨을 쉬자 
“허허허 그래?”하고는 술잔을 들기에 
“아저씨는 어디에 사세요? 아줌마는 없어요? 이런 곳에서 몸을 풀게”하고 묻자 
“허허허 난 00에 살고 마누라는 작년에 눈을 감았어.”하고 말하기에 
“00에 산다면서 여기는 무슨 일로?”00이라면 부산에서 아주 멀리 덜이 진 곳이라 으아해 하며 묻자 
“작년에 마누라가 눈을 감으면서 부탁을 하더군. 먹고 살 정도로 돈은 모아 두었으니 예전에 잃어버린 딸을 찾아서 자기 무덤에 데리고 오면 편히 눈을 감고 이승으로 가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 하면 한이 맺혀서 구천을 떠돌 것 같다고 말이지, 그래서 그 아이를 찾으려고 전국을 돌고 있어”하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언제 잃어버렸는데요?”하고 초로의 신사 손을 잡으며 묻자 
“걔 나이 5살 때였어. 마누라가 시장에 가서 흥정을 하는 사이에 사라져버렸지”하고 말하였습니다. 
“몇 년 전의 일인데요?”제 기억에도 제 아니 5살 때 그 더러운 남자 손에 끌려 산골짜기에 있던 굿막으로 끌려간 기억이 나서 물었습니다. 
“25년이 조금 지났어, 걔가 살아 있다면 지금 30살이겠지”하고 말하였습니다. 
“!”놀랐습니다. 
제 나이와 같았고 제가 엄마하고 헤어진 것도 5살이라 인연치고는 우연한 인연이란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혹시 따님의 특징이 있다면.......”말 그대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물었습니다. 
“가장 겉으로 봐서 알 수가 있는 것은 왼쪽 눈썹 위에 길게 난 흉터지”하고 말하였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창녀 노릇을 하는 동안 저에게 가장 큰 콤플렉스는 언제 난 상처인지는 모르지만 왼쪽 눈썹 위에 길게 난 흉터였습니다. 
그래서 15살의 나이에 그 더러운 남자의 꼬임에 꼬여 술집을 전전하며 다녀 보지도 못 한 여학교의 교복을 입고서 술좌석에 앉았다가 몸을 팔면서 들어온 팁을 한 푼 두 푼 모았고 그리고 300번지로 와서도 열심히 모은 돈으로 26살이 되었을 때 왼쪽 눈썹 위에 길게 난 흉터를 제거하였던 것입니다. 


“또 다른 특징은 없어요?”하고 물었습니다. 
왼쪽 눈썹 위에 길게 난 흉터를 가진 여자가 저 하나만은 아니라고 생각하여서였습니다. 
“배꼽 위에 검은 점이 아니 참 아까 보니 아가씨도 거기에 검은 점이 있던데, 잠깐 엉덩이이도 점이 있나? 팬티 잠시만 내려 봐”하기에 
“!”저는 다시 한 번 더 놀랐습니다. 
“또 다른 곳에는?”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오른쪽 복숭아뼈에도 점이 있어! 어디 봐”하고는 술과 안주가 놓인 쟁반을 밀더니 제 발을 당겼습니다. 
“세상에나 그런데 왼쪽 눈썹 위에 길게 난 흉터가 없네.”하고는 다시 한숨을 쉬었습니다. 
“아버지 흑흑흑 4년 전에 흉터 보기 싫어서 없앴어요. 흑흑흑”저는 난생 처음으로(잃어버리기 전의 기억은 거의 없음으로)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며 아버지 무릎에 머리를 박고 흐느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럼 네가!”저의 어깨를 잡고 일으키더니 놀란 눈으로 저를 보며 말하기에 
“세림이가 맞죠?”하고 눈물을 훔치며 묻자 
“그.........그래 세림이가 걔 이름이야 이게 정녕 꿈이란 말인가! 흑흑흑”아버지가 저를 부둥켜안고 흐느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미 아버지는 저를 상대로 해서는 안 될 빠구리를 한 상태였습니다. 
그걸 깨달은 저는 나오려고 하던 눈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물론 부녀사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였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도덕적으로 용납을 할 수가 없는 일이란 것을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세림아 그런데 우리가 무슨 짓을 했지?”아버지도 그때서야 상황을 판단을 하였습니다. 
“쉿! 조용히 하세요. 옆방이서 다 들려요”아버지의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말하였습니다. 
옆방에서 저와 같이 창녀 짓을 하는 하라는(하라가 바로 세라의 친구이며 제보자와 잠자리를 한 창녀임: 필자 주)손님을 받기 위하여 집 앞에서 지나가는 남자들에게 저와 함께 추파를 보내고 있었는데 다행이 아버지인줄도 모르고 빠구리를 하고 또 많은 대화를 통하여 저의 아버지라는 것이 밝혀진 후였지만 손님을 잡지 못 하였던지 들어오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아버지 여기에서 저는 세림이가 아니라 창녀인 아가씨이고 아버지도 아버지가 아닌 손님으로 행동을 하세요.”하고 말하자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하고 초점 잃은 눈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내가 내일 집에 다녀와서 너를 여기서 빼내야하겠다.”한동안 말이 없이 술잔만 들고 있더니 말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아가씨라고 불러요”옆방의 하라가 남자하고 들어오는 인기척이 들리자 나직하게 말하였습니다. 
“아가씨도 한잔 하지”아버지가 제 말을 의식하고 말하기에 
“고마워요 아저씨”하고 대답을 하라가 들으라는 듯이 크게 하자 
“세라 언니 그 손님 술 마사러 300번지에 온 것은 아니거든”하고 하라가 자기 방에서 말하기에 
“이년아 벌써 한 탕 하고 쉰다.”하고 받아치자 
“보통 손님들 같으면 이미 두 탕 째 시작을 할 시간이거든, 야~콘돔 껴”하고 하라가 말하자 
“하라 너 조무래기 하나 얻어 걸렸니?”하고 묻자 
“조무래기는 아니고 외국 애야”하고 말하기에 
“코 큰놈 걸렸니?”하고 묻자 
“다행이 코 큰놈은 아니야, 야~어서 올라와서 싸고 나가”하라가 재촉을 하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옆방에서는 펌프질을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안 하면 이상하게 생각해요. 이왕 한 것 태연하게 하세요.”저는 아버지의 귀에 입을 대고 아주 나직하게 말하였고 
“몰랐으면 몰라도 어떻게 딸하고 그런 짓을 하겠니?”아버지도 내 귀에 입을 대고 나직하게 말하기에 
“손님 콘돔 다시 끼세요.”하고 말하고는 저는 팬티를 벗고 이불 위에 누웠고 아버지는 아주 난처한 표정을 지었지만 저는 아버지를 당겨서 제 몸 위에 올라오도록 만들었고 아버지의 콘돔도 끼지 않고 시들어진 좆을 잡고 주물럭거려 발기가 되자 제 보지구멍 입구에 대고 엉덩이를 들어 올려 아버지의 좆이 제 보지구멍에 박히도록 만들어버렸습니다. 
첫 탕에 콘돔을 끼고 하였기에 얇은 콘돔을 사이에 두고 아빠 좆과 제 보지구멍이 하나가 되었다면 아버지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사이에 둘 것도 없이 하나가 되어서 그 동안 느껴보지 못 하였던 아버지를 느꼈습니다. 


아버지도 남자라 어쩔 수가 없었던지 펌프질을 시작하였고 창녀라면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가(저의 경우 저의 뒤를 봐 주는 기둥서방의 경우 진짜 신음을 하지 안 함)아닌 이상 그저 손님으로 대하기에 형식적인 신음을 하게 마련이지만 아버지의 좆이 완전하게 발기가 되어 제 보지구멍 안에서 들락날락 하기 시작하자 평소 기둥서방에게서만 느꼈던 오르가즘이 느껴졌고 신음이 마구 나오려고 하자 행여 아버지라는 단어라도 나오게 된다면 저야 어떤 욕을 들어도 상관이 없지만 아버지가 욕을 듣는 것은 싫었기에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몸부림을 처야 하였습니다. 
그날 밤 옆방의 하라가 손님을 데리고 와 빠구리를 할 때마다 저는 아버지와 빠구리를 하였고 손님이 끊기고 하라가 잠 좀 자자고 고함을 지르자 저는 알았다고 하고 아버지의 품에 안겨서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새벽 재첩 국 장사 아줌마의 재첩 국을 사라는 소리에 잠을 깼고 재첩 국을 사서 해장을 하고는 아버지는 집에 가서 돈을 가지고 오겠다고 갔습니다. 


다음 날 아버지는 돈을 가지고 와서 제가 진 빚을 갚았고 그리고 저를 지긋지긋한 300번지 창녀촌에서 해방을 시켜주었습니다. 
해방과 동시에 아버지는 저를 데리고 아버지가 살던 곳으로 데리고 갔고 집 근처에 있던 공원묘지로 찾아가 저 때문에 이승으로 가지 못 하고 구천을 떠돌겠다고 하였다는 엄마의 묘소에 가서 통곡을 하며 절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한 빠구리의 후유증은 너무나 컸습니다. 
저는 아버지에게 자연스럽게 안겼고 아버지도 저를 아주 자연스럽게 안고 빠구리를 다시 한 것입니다. 
마음 놓고 신음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300번지에서 옆방의 하라가 손님을 데리고 올 때마다 생으로 하여 보지구멍에 쌌던 아버지의 좆 물이 마르지도 않은(뒷물을 하지 않고 생리대를 차고 있었음)상태에서 다시 그 보지구멍으로 저는 아버지의 좆 물을 받았습니다. 
하고 나면 아버지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저 역시 괴로웠습니다. 
아버지가 제안을 하였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엄마 곁으로 가서 엄마를 보자고 말입니다. 
좋다고 하고는 일주일의 말미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일주일간 아버지는 아버지 나름대로 유서를 쓰고 저는 저 대로 유서를 썼습니다. 
아버지의 유서가 아버지가 아는 사람들에게 쓴 것이라면 저는 저와 함께 창녀 노릇을 하면서 친자매처럼 지내던 하라에게 썼습니다. 
유서를 쓰는 시간 말고 하는 것이라고는 밥을 먹는 것과 용변을 보는 시간 이외에는 아버지의 좆을 저는 제 보지구멍 안에 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약속을 한 날 저는 아버지 몰래 제 유서를 하라에게 보냈습니다. 


그날 밤 마지막 아버지와의 빠구리를 끝을 내고 창산가루를 소주에 타서 동시에 마셨습니다. 
마시기 직전 저는 우리의 시신을 발견하는 사람에게 저와 함께 창녀 노릇을 하던 하라에게 저의 죽음을 알려달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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