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들의 교향곡 - 1부

모자들의 교향곡 1부



90년대 초반의 겨울이었다. 대통령선거도 끝나고해서 시끄러웠던 세상은 잠잠해진 분위기였다. 중3인 강태수와 고선규는 마지막 기말고사를 끝내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모두 나이가 15세인 이들은 고등학교 입학시험도 끝나고해서 마음이 홀가분하였다. 태수와 선규는 초등학교때부터 같은 학교를 다닌 단짝친구들이었다. 모두 성적이 학교에서 상위권에 드는 이들은 다른친구들과는 잘 어울리지를 못하고 둘이 항상 같이 다녔다. 서로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해 주었고 다투는일이 있어도 금방 화해하는 태수와 선규였다. 더군다나 둘다 아버지와 형제가 없는 공통점이 이들의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만들었다. 태수는 키가 173이었고 튼튼한 몸을 가졌으며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호감있는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선규는 태수보다 작은 170의 키에 몸은 약간 말랐으며 곱상하게 생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집들이 길을 마주보고 있어서 이들은 항상 등하교를 함께 했다. 추운 날씨에 몸을 움추리며 선규가 입을 열었다.

"내일 하루만 학교가면 방학이네"

"그러게 말이야. 벌써 중학교생활이 끝나가니 시간 정말 빨리 간다"

"태수야, 너 방학때 뭘할거니?"

"하는 아르바이트들을 계속하고 엄마를 도와드려야지. 너는?"

"이제 고등학교 들어가니까 공부를 해야지. 그런데 네가 새벽에 하는 우유배달을 나도 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니?"

"네가?"

태수의 집은 어려워서 태수가 새벽에 우유배달하고 낮에는 석간신문을 돌리면서 자신의 용돈을 벌면서 남은돈은 집안의 생활비로 보태고 있었다. 선규는 머리를 긁으며 수줍은 웃음을 지었다.

"나도 내용돈은 어느정도 벌려고. 너를 보니 매번 엄마한테 돈달라고 손을 벌리는 내가 부끄러워서 그래"

"너희엄마의 약국이 잘안되시니?"

"그런거 아니야. 나도 뭔가를 내힘으로 해보고 싶어서 그래"

"너와 같이 한다면 나야 좋지.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야. 너희엄마와 상의해보고 결정하도록 해"

"그럼 오늘밤 엄마한테 물어볼게"

그렇게 얘기를 하는데 어느새 집앞에까지 왔다.

"이따가 신문돌리러 나갈거니?"

"응. 오늘은 시험이 일찍 끝나서 잠시 집에서 쉬어도 될것 같애"

"그럼 내일아침 학교갈때 보자"

"그래. 잘가"

태수는 길을 건너서 허름한 아파트로 들어갔다.



선규는 약국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약국에서는 엄마가 하얀가운을 입고 손님에게 약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선규의 엄마인 최명숙은 38세의 약사였다. 163의 키에 안경을 끼고 있었고 파마를 한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세련되게 파마를 해서 아줌마같은 인상은 주지않았다. 차분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으며 봉긋한 가슴과 중년치고는 날씬한 허리를 지니고 있었다. 고3때 피로가 겹쳐 병을 얻었던 명숙은 1년을 쉬고 대학을 들어갔었다. 학교에서 만난 선배와 연애하다가 졸업하기전에 선규를 가지게 되어서 결혼하고 잠시 휴학을 했다. 선규아빠는 좋은회사에 취직을 해서 인정을 받으며 일했다. 명숙은 선규를 낳고 어느정도 안정이 되자 다시 공부를 하여 대학졸업장과 약사자격증을 취득하였다. 그러나 남편이 회사에서 일하는 동료여직원과 눈이 맞아서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사실을 안 명숙은 심한 배신감을 느끼며 이혼을 요구했다. 그러자 남편도 쾌히 이혼해주고 눈이 맞은 여자와 외국으로 이민을 가버렸다. 5년전의 일이었다. 명숙은 합의금으로 받은 돈으로 지금 하고있는 작은 약국을 차렸다. 처음에는 자리를 잡기가 어려웠지만 차차 나아져서 지금은 두식구가 먹고살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선규에게는 아버지없이 자라게한점이 미안했다. 처음에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을때 화가 나서 말만 그렇게 한거지 진짜로 그럴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남편이 주저없이 이혼요구를 승낙하자 명숙은 당황했었다. 하지만 자존심때문에 남편을 설득시키지않고 바로 도장을 찍었다. 그후로는 남자라면 진절머리가 나서 주위에서 재혼을 제의해도 무시해 버렸다. 이제는 아들과 사는게 익숙하고 편하기만 했다. 손님이 나가자 기다리고 있던 선규가 인사했다.

"학교갔다왔어, 엄마"

명숙은 미소를 지으며 아들을 쳐다보았다.

"안추웠니?"

"응. 오늘도 손님이 많이 와?"

"겨울이라 그런지 감기든 사람들이 많이 오네. 어서 들어가 씻어라. 조금 있다가 점심 차려줄게"



선규는 약국뒤에 붙어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마루와 부엌, 화장실 그리고 방3개가 있는 조그만 집이었다. 방1개는 창고로 썼고 나머지2개는 선규와 명숙이 각각 하나씩 쓰고있었다. 태수와 마찬가자로 엄마가 일하기때문에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선규는 책가방을 내려놓고 코트를 벗은다음 화장실에 가서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기 시작했다. 그동안 시험기간이라서 목욕을 한지가 며칠되었다. 그리고는 방으로 들어와서 옷장서랍에서 갈아입을 옷을 꺼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침대의 매트리스밑에 숨겨놓았던 야사책을 꺼내서 옷속에 숨긴다음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그런다음 바지와 팬티를 벗고 변기위에 앉아서 야사책을 펼쳤다. 작년에 같은반 친구로부터 우연히 성을 알게된 선규는 그후부터 호기심에 빠져있었다. 친구한테 야사책을 빌려서 여자의 몸을 보게되자 이상야릇한 흥분을 느끼곤 했었다. 성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싶었지만 아빠도 없고 엄마한테는 창피해서 물어볼수도 없었다. 그래서 엄마몰래 약국에 놓여있는 주부잡지들을 가져와서 성지식을 얻기 시작했다. 잡지에서 부부간의 성생활을 읽고 섹스와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지를 알게되었고 자위하는법도 배우게 되었다. 여자들도 자위를 한다는 글을 읽었을때는 여자도 성을 즐기는구나하며 놀라워 했었다. 처음에는 책에 적힌대로 따라한 자위행위라서 잘안되었지만 몇번 계속하다가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처음에 사정을 했을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을 못할정도의 쾌감이었다. 그후 친구에게서 야사책과 포르노테이프를 파는곳을 알아내어 야사책들을 보면서 정기적으로 자위를 하게 되었다. 테이프도 하나 샀었지만 엄마가 언제 약국에서 집에 들어올지몰라 제대로 볼수가 없었다. 선규는 야사책에 있는 나체의 외국여인들을 보며 발기된 자지를 손으로 감싸고 상하로 흔들기 시작했다.

[여자와 진짜로 섹스하는 기분은 어떤것일까? 자위보다 훨씬 좋겠지]

그런생각을 하며 손의 움직임을 빨리했다. 눈을 감은 선규의 머리속에는 그동안 야사책에서 보아왔던 여자들의 육체들이 떠올랐다. 욕조로 떨어지는 물소리와 함께 선규의 입에서는 신음이 흘러 나왔다.

"으....으........"

얼마동안 있는힘을 다해 자지를 흔들자 사정을 하기 시작했다. 귀두에서는 하얀 정액이 분수처럼 분출해서 선규의 다리와 화장실바닥으로 떨어졌다.

"아..........."

처음에는 자위할때 흥분이 와서 좋았지만 이제는 여자와 섹스를 하고싶다는 생각으로 사정이 끝날때마다 아쉬운 생각이 간절했다. 정액이 묻은 손으로 벌떡거리는 자지를 잡고 여운을 즐기는데 화장실밖에서 엄마의 소리가 들렸다.

"목욕하니?"

정신이 번쩍 든 선규는 얼른 대답했다.

"응"

"점심을 차릴테니 어서 하고 나와라"

"알았어"

보니까 어느새 욕조에서는 물이 넘쳐나오고 있었다. 얼른 물을 잠그고 휴지를 꺼내서 정액이 묻은 화장실바닥을 닦고 목욕을 했다. 목욕을 마친다음 옷을 입고 그안에 야사책을 숨긴다음 입었던 옷을 껴안고 나와서 얼른 방안으로 들어갔다.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있던 명숙이 말했다.

"입었던 옷은 내다놔라"

"알았어, 엄마"



방에서 야사책을 매트리스밑에 얼른 숨긴 선규는 입었던 옷을 가지고 나와서 세탁기안에 넣었다. 그리고는 식탁에 앉아서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기 시작했다. 엄마는 약사가운을 벗고 스웨터와 그안에 블라우스 그리고 바지를 입고 있었다.

"약국은 문닫았어?"

"응. 점식식사하고 1시간후에 온다는 사인을 달았어. 참, 태수도 와서 먹으라고 전화해봐라"

선규는 전화를 한후 다시 돌아왔다.

"이미 먹었대. 신문배달을 나가야 하기때문에 시간이 없대"

"진작에 챙겼어야 했는데"

명숙과 태수엄마는 대학동창이어서 친했다. 그래서 서로의 자식들을 스스럼없이 대했다. 선규는 밥을 다먹고 아까 태수와 나눴던 얘기를 꺼냈다.

"엄마, 이번 방학때 나도 태수와 같이 새벽에 우유배달을 할까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엉? 그게 무슨소리야?"

명숙은 그릇들을 치우다가 놀라서 아들을 쳐다보았다.

"운동도 되고 좋잖아. 엄마에게 용돈타쓰는것도 그렇고"

"태수가 같이 하자고 그래?"

"아니. 내가 먼저 말을 꺼냈어. 태수는 엄마하고 상의해보고 결정하래"

"그거 쉬운일이 아니야"

"나도 알어. 하지만 태수도 하는데 나도 못할거는 없잖아"

"그래도 요즘 날씨가 춥잖아. 특히 새벽에는 얼마나 추운데. 감기라도 걸리면 어떻게 하려고"

어렸을때 심하게 아파보았던 명숙은 선규가 이상하기라도하면 어디 아프지는 않나하며 안절부절하곤 했었다. 남자아이를 이렇게 과잉보호하면은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라서 늘 걱정이 되었다.

"걱정하지마, 엄마. 힘들면 중간에 그만 둘게"

명숙은 계속 근심어린 얼굴로 말했다.

"내가 주는 용돈이 모자라니?"

"그게 아니야. 나도 내힘으로 돈을 벌고싶어서 그래. 나중에 돈벌면 엄마에게 선물을 사줄게"

선규의 표정을 보니 무척 하고싶어하는 눈치였다. 여전히 내키지않았지만 아들이 자신의 힘으로 뭔가를 해보겠다는데 어쩔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고싶다면 차라리 낮에 신문배달을 해. 새벽보다는 덜 춥잖아"

"신문배달? 그럴까?"

"그렇게 해"

"알았어. 허락해줘서 고마워, 엄마"

"대신 무리하지말고 몸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즉시 엄마에게 얘기해야돼"

"걱정마"

선규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명숙은 걱정의 한숨이 나왔다.

[어디 탈이나 안나야 할텐데. 그래도 남자라면 그정도는 한번 해봐야지]

그러다가 항상 자신에게만 의지하던 선규가 돈을 번다는 생각을 하니 왠지 아들이 자신의 곁을 떠나가는듯한 섭섭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 크면 자기짝을 찾아서 내곁을 떠나겠지]

뭔가 서운한 생각이 든 명숙은 설겆이를 끝내고 약국으로 다시 나갔다.



신문배달을 끝낸 태수는 보급소로 돌아와서 소장에게 보고하고 시계를 보았다. 시간은 저녁 7시를 넘고 있었다. 겨울이래서 하늘은 이미 컴컴해져 있었다.

[어서 엄마한테 가봐야지]

서둘러서 엄마가 운영하는 책방으로 갔다.

"엄마, 저 왔어요"

민혜영은 장부를 보다가 아들을 보고 반갑게 맞았다.

"배달은 끝났니?"

"네"

"그럼 집에 곧장 가지 여기까지 왜 또 나왔어? 날씨도 추운데"

"엄마하고 같이 갈려고요. 오늘은 많이 파셨어요?"

"그럭저럭 팔았다. 이제 8시가 되어가니 그만 문닫자"

태수는 엄마를 도와 문닫을 준비를 했다. 37세인 혜영은 대학을 다니다가 그녀의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던 학생데모를 취재하러 왔던 신문기자와 사귀게 되었다. 데모를 하지않고 얌전하게 공부만 하던 혜영이었지만 솔직하고 자상한 그에게 빠져서 그사람의 애까지 가지게 되었다. 그애가 바로 태수였다. 혜영은 임신을 하자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학교를 그만둔다음 태수아빠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그후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작은 신문사에 갓들어간 태수아빠는 젊은나이에 혈기가 왕성해서 정부가 안좋아하는 사건들을 취재하고 기사들을 썼다. 덕분에 남편은 기관에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거나 감옥살이를 해야했다. 혜영은 남편옥바라지를 하며 남편이 취재나 언론통제반대를 하는 데모로 집에 안들어올때는 집에서 어린 태수를 돌보며 또 남편이 잡혀가지 않았을까하는 불안에 떨며 밤을 지새웠다. 남편에게 제발 다른일을 하라고 수없이 설득해 보았지만 남편은 이런일을 하지않으면 태수도 좋은 세상을 살수없다며 막무가내였다. 남편의 수입이 일정하지가 않아서 혜영은 무슨일이든 했다. 시장에서 물건을 팔기도 하고 음식점에서 일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생활형편은 조금도 나아지지가 않았다. 더군다나 일을 할때 주위의 남자들이 하도 추근덕거려서 그들의 유혹을 뿌리치느라고 마음고생이 많았다. 바깥일로 바쁜 남편이 신경을 쓸까봐 혜영은 집안과 자신의 일은 혼자 도맡아 했다. 그러나 고문과 감옥살이 그리고 계속하던 데모로 심신이 멍든 남편은 갑자기 시름시름 앓다가 6년전에 세상을 떠났다. 하도 고생한 혜영은 남편의 장례식때 눈물도 안나오며 그냥 멍하니 서있었다. 시집과 친정이 가난했고 남편의 병원비로 그나마 모아뒀던 돈을 다날린 혜영은 신문사에서 나온 조그만 퇴직금으로 남편의 동료기자들이 소개한 작은 책방을 싼값으로 구입할수 있었다. 처음에는 장사도 잘안되고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리를 잡아가자 두식구의 입에 풀칠은 할수있게 되었다. 더군다나 사람들이 북적하던곳에서 일을 하다가 책들에 파묻혀서 혼자 조용히 장사를 하니까 오래간만에 마음에 평온이 찾아들었다. 얼굴이 예쁘고 착하게 생겼고 키가 162인 혜영은 고생한 흔적으로 얼굴에 잔주름이 있었지만 여전히 고운 모습이었다. 가슴은 적당했으며 허리는 호리호리했다.

"엄마, 이제 나가세요. 제가 문을 닫을테니"

"그래"



혜영이 돈을 챙겨들고 나오자 태수도 뒤따라 나와서 문을 잠그고 셔터를 내렸다. 키가 큰 태수는 시간이 될때마다 책방으로 와서 엄마가 하기 힘든 일을 도와주곤 했다. 혜영은 뒤에서 셔터를 잠그는 아들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남편이 죽은후에는 태수가 그녀의 전부였다. 이제는 모든 희망이 사라진 혜영에게는 태수가 커서 잘되는것이 유일한 소망이었다. 태수는 다행히 남편의 솔직함과 자상함을 물려받아서 혜영을 이해하고 따뜻하게 해주었다. 자라면서 엄마의 속을 한번도 안썩히고 어려운 생활에도 불구하고 불평한마디도 없었다. 오히려 태수가 엄마를 위로할 정도였다. 더군다나 엄마혼자 고생한다고 어렸을때부터 조그만 일을 하며 돈을 벌기 시작했던 태수였다. 혜영은 그런아들이 마냥 대견스러우며 고마웠고 또한 다른아이들처럼 편안한 생활을 못하게 해줘서 미안하기도 했다.

"됐어요. 가방 이리 주세요"

엄마에게서 돈가방을 받은 태수는 엄마와 버스를 타고 정류장에 내린후 집으로 함께 다정하게 걸어갔다.

"시험은 다 끝났니?"

"네. 내일하루만 가면 방학이에요"

"지난 1년동안 돈벌면서 입학시험공부하느라고 애썼으니 방학에는 좀 쉬도록 해라"

"제 걱정은 마시고 엄마나 건강 조심하세요"

태수는 옆에서 걷는 엄마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을때 엄마가 고생했던것이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남아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후 자신을 키우면서 힘들어하시던 엄마에게 고맙고 안스러운 마음이 항상 들었다. 엄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고싶었다. 자신을 돌보아주던 엄마가 언젠가부터 자신보다 작게 느껴지기 시작했었다. 이제는 자신이 엄마를 돌보고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머니에 있던 손을 꺼내 엄마의 손을 잡았다. 차가운 엄마의 손이었지만 부드러웠다. 혜영도 아들을 보며 손을 꽉 잡았다.

"추우시죠?"

"꽤 쌀쌀하구나. 요즘 감기가 유행이라는데 조심하거라"

"엄마도 조심하세요"



태수네가 사는 집은 아파트의 지하에 있었다. 태수아빠가 살아있었을때부터 살던 집이었다. 5층아파트는 지은지 오래되어서 허름했다.

"엄마, 씻으세요. 제가 낮에 나가기전에 대충 저녁준비를 했어요. 불에 데우기만 하면 돼요"

"알았다"

집은 방2개와 화장실 그리고 부엌이 딸린 조그만 마루가 있었다. 집이 지하에 있었기때문에 낮에도 어두웠었다. 그러나 전기세를 아낄려고 낮에는 촛불을 사용했다. 혜영은 방에 들어가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화장실로 갔다. 태수는 부엌에서 저녁준비를 하고있었다. 화장실에서 씻는데 태수생각이 나자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태수에게 시집가는애는 호강할거야. 저렇게 집안일도 알아서 해주고]

혜영이 나오자 태수와 그녀는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선규가 방학때 우유배달을 하고싶대요"

"선규가?"

"네. 그래서 선규엄마와 상의해보라고 했는데 아마 못하게 하시겠죠?"

"그럴거다. 아들의 건강에는 민감한 사람인데 이 날씨에 허락하겠니?"

"제 생각도 그래요"

식사를 마치자 태수는 그릇들을 날랐다.

"설겆이는 내가 할테니 너는 그만 쉬거라"

"아니에요. 제가 할게요"

"아니다. 사내놈이 자주 부엌에 들락날락하는거는 안좋아"

그말에 태수는 웃었다.

"하하, 요즘은 남녀평등시대로 되어가는데 엄마는 아직까지 옛날 사고방식이네요"

"내가 옛날에 태어난걸 어떡하니? 그리고 아들이 부엌에 있는걸 좋아하는 에미가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그럼 들어갈게요"

태수는 웃으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에서 얼마동안 책을 읽고있는데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태수가 일어나서 문을 여니 엄마가 쟁반에 귤을 들고 서있었다.

"이거 먹어라"

"엄마도 들어오셔서 같이 잡수세요"

"그럴까?"

혜영은 아들과 방바닥에 앉아서 귤껍질을 깠다.

"방은 안춥니?"

태수는 귤을 먹으면서 대답했다.

"네. 엄마방은 어때요?"

"내방도 따뜻해"

중간길이의 머리를 가진 혜영은 긴 검은치마와 하늘색스위터 그리고 그위에 같은색의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작년에 태수가 번돈으로 엄마의 생일선물로 사준 옷들이었다. 혜영은 아들과 함께 귤을 먹다가 말했다.

"태수야, 대학가서 뭘 공부할건지는 생각해봤니? 이제 고등학교 들어가잖아. 중학교처럼 3년이 금방 지나갈거야"

"하고싶어하는 공부가 많아서 구체적으로 뭘할건지는 아직 잘모르겠지만 돈을 많이 벌어서 엄마를 호강시켜드리고 싶어요"

혜영은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고맙구나. 너를 믿으니 네가 뭐를 하든간에 말릴생각은 없어. 하지만 나는 네가 의학이나 과학을 공부했으면 하구나. 세상돌아가는 일에 말려드는 일은 하지말아라"

태수는 엄마가 아버지얘기를 하는걸 알았다.

"아버지때문에 그러세요?"

"응. 네가 네아버지처럼 된다면 난 아마 죽을거야"

태수는 엄마의 손을 잡으며 위로했다.

"이제는 그러지 않아요. 군사정권도 없어지잖아요"

혜영은 긴 한숨을 쉬었다.

"크게 바뀔건 없을거야. 투표만 할수있는거지 우리같은 힘없고 평범한 사람들에게 뭐가 달라지겠니?"

혜영은 남편이 당했던 일때문에 항상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았다. 태수는 엄마가 싫어하는것은 하고싶지가 않았다.

"엄마뜻대로 할테니 걱정마세요"

"고맙다, 태수야"

그제서야 혜영은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귤을 다먹고 쟁반을 들며 일어섰다.

"어서 자거라. 새벽에 일어나야 하잖니?"

"그럴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그래. 잘자라"

혜영이 나가고 태수는 엄마가 한말을 곰곰히 생각하다가 불을 끄고 잠들었다.



1부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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