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기념일 - 단편
2018.07.27 02:40
-결혼 기념일-
‘후---아!’
바닥에는 나랑, 진우, 그리고, 수아 씨가 온통 땀에 절은 채, 천장을 바라 보면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몇번 이나 나를 부추키던 진우의 요청을 고사 했음에도 기어이 오늘과 같은 나날을 맞이 할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해서는 입이 열개 라도 할 말은 없었다.
‘어땠냐?’
진우는 수아 씨에게 물어야 할 질문을 나에게 하고 있었다. 나는 그냥 멋적게 웃어 버렸다. 세인들이 그렇게나 입방아를 쪄대는 그 놈의 쓰리썸. 나는 처음에, 오로지 진우의 요구에 응해 줄 뿐이라는 얄팍한 합리화로 끈질기게 나를 찔러대던 그의 요청에 마지못해 거꾸러 지는 것처럼 승낙 했었다. 그러나, 사실 속마음 만은 절대 끌려 간다든가 하는 상황은 아니었다고 고백해 본다. 대학 때부터 실과 바늘처럼 줄창 붙어 다니던 두 사람의 연애 시절 속에서 나도 한 몫은 하고 있었기에. 언제나 진우는 둘이 만나는 자리에 나를 불러 냈고, 내 앞에서도 거침없이 입을 맞추며, 애정질을 선보이던 그들 이였기에 나는 당연한 그들의 사랑놀음에 언제나 뒤따라 다니는 시종장 처럼 스스럼이 없었다. 수아 씨도 그녀 나름대로 나에게 무척이나 잘해왔던 것도 무시 못할 이유중의 하나라면 하나랄까? 언제나 혼자 였던 나를 위해 끊임없이 소개팅을 주선 했고, 커플이 되어 넷이 만들어 지면, 어디 좋은 곳으로 같이 여행을 가도 좋을 것이라며, 내 취향에 신경을 써 가며, 줄줄이 친구들을 선 보였지만, 소개 받은 여자들이 오래 가지는 못했다. 우리 세 사람의 묘한 어우러짐에, 소개되어 나온 여자들은 하나같이 혼자 외톨이가 된 듯한 느낌을 받기에 이르러 결국, 기분이 상한다며, 얼마 못가서 우리들과의 관계에 사절을 표하곤 했었으니까. 세 사람은 서로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앞뒤가 척척 맞아 떨어져서 사실 서먹한 분위기로 동참한 여자들은 속으로,
‘이것들이 나를 엿 멕일려고 불렀나?’
하는 심정이었다는 것을 수아 씨를 통해 너무도 자주 들었기에, 조심은 하면서도 세 사람의 몸에 벤 그 습관적 항상성을 쉽사리 절제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진우는 시시콜콜 수아 씨와의 만남에 있어서 걸림돌에 부딪히면 나에게 도움을 요청 했었다. 연애 라는 것이 다 그렇지 않은가? 시도 때도 없이 싸워 재끼면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다시 철커덕 붙어 다니던 그 두 사람의 끝없는 반복과 반복…. 그 와중에서 언제나 스스로의 푸념과 하소연을 통해, 나는 두 사람의 관계에 방관자의 역할 이었음에도 두 사람의 심리적인 가교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었다. 둘 사이에서 한번 다툼이 생겨서 삐지고 나면 의례 진우는 진우 대로, 수아 씨는 수아 씨 대로, 나에게 카운셀링을 요청해 왔다. 나는 두 사람의 인생과 설정에 개입되는 법도 없었지만, 누구보다도 그 내부를 확연히 들여다 보고 있는 아이러니한 중간자 역할을 본의 아니게 맡고 있었던 게다. 나는 방에 누워 있는 수아 씨를 뒤로 하고, 거실에 나와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어떤 주제도 이 상황에서는 적합치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영훈아, 우리 수아, 이쁘지 않디?’
‘그럼, 언제나 보아 왔지만, 오늘은 더 예뻤던 것 같다.’
나는 구지 저급한 표현을 사용하고 싶질 않았다. 씹물이 질척 여서 끝내 주었네, 보지가 조질나게 쪼여댔네 등등의 까발려진 미사여구로 진우의 질문 의도에 따라주고도 싶었지만 왠지 내 마음 속에서는, 다시 또 수아 씨를 어떻게 볼까나 하는 우려가 뒤따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그랬을까? 다른 사람들은 삼섬을 통해서 삶의 활력을 얻었다고도 하고, 그 쾌감의 장렬함으로 섹스 후에는 삼섬 이외의 섹스는 섹스도 아니라는 고정관념이 확고해 졌다는 등의 얘기가 심심찮게 들려 왔지만, 나는 달랐다. 모가지 붙들려, 끌려 오듯이 온 놈이 더 설치고 난장을 떨었기 때문 이었을까? 나는 그런 내 자신 때문 이었는지는 몰라도 진우의 집을 나서면서도 편치 않은 심정을 느끼고는 이게 자연스러운 것인가, 아니면, 나만의 쓸데없는 자격지심 인가에 대해서 흔쾌한 결론을 내리질 못하고 있었다.
‘영훈아, 넌 섹스가 뭐라고 생각하냐?’
언젠가 학교 때 그가 한 말이다.
‘글쎄, 섹스라……., 그건 선물 같은 게 아닐까?’
‘선물?’
‘응, 주는 사람은 주어서 기쁘고, 받는 사람은 받아서 기쁘고, 지금이 초라했다면, 다음 번을 기대하기에 가슴 부풀고, 받아서 만족 했다면,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테니 말이야.’
난 쉬운 주제로 대답을 했다.
‘그렇네,….음…….그러니까……..나 어제,….. 수아 한테 선물 했어.’
‘이 자식, 대단한데? 어쩐지 묻는 폼이 그렇더라니! 어때? 좋았냐? 끝내줬어?’
나는 부러운 표정으로 그녀와 처음 섹스를 했다는 진우의 어깨를 두드리며, 탄성을 내질렀다.
‘뭐 좋은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더라. 워낙 정신이 없어 놔서….그냥 그렇게 했지. 이렇게 길을 트고 나니 좀 불안하기도 해.’
‘무어가?’
‘나도 비싼 돈 들여서 정조대나 하나 사야 되는 거 아닌가 몰라?’
중세 유럽에서부터 유행하던 정조대. 멀리 전쟁터에 자주 나가야 했던 남정네 들이 아내의 부정을 막기 위해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그 정조대 타령을 하고 있는 진우의 심정을 여자 친구도 없었고, 섹스 경험도 없는 내가 이해하기에는 도저히 격차가 있었고, 따라 잡을 수도 없었지만, 그 당시에는 충분히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네 심정은 알겠는데, 정조대는 쫌 너무했다. 지금이 뭐 조선시대도 아니고 수아 씨도 자유의지가 있는 성인인데, 그렇게 까지 해서야….’
초기의 정조대는 비싼 돈을 주고 귀족들의 특별 주문을 통해 만들어 졌다고 하는데, 지금의 똥꼬 T팬티 같은 형태의 허리띠로 단단히 고정되는 금속가리개 였다고 하며, 장기간 채워 놓아야 하는 관계로 앞과 뒤에는 똥과 오줌, 월경 혈이 빠져 나갈 수 있도록 구멍이 뚫려 있었다.
‘너 정조대의 단점을 알고나 있냐?’
‘글쎄?’
고개를 갸우뚱 하는 진우에게 나는 자세한 설명을 해 주었다.
‘너 그 당시, 정조대로 재미를 본 사람은 남편이 아니라 정조대 제작 업자라 않하디?’
사실, 오랜 기간 동안 전쟁으로 집을 비우는 남편을 대신할, 노는 좇대가리들은 귀부인들의 싱싱한 보지를 조져 놓기 위해 밤낮으로 작업에 몰두 했지만, 언제나 그 정조대가 걸림돌 이었기에 비싼 돈을 들여 제작업자에게 뇌물을 먹인 뒤에, 열쇠를 복제해서 기어이 욕심을 채우고, 그 제작업자 에게도 그 정조대의 보지를 선심차원에서 내돌렸다는 얘기는 다 알려진 사실 이었다.
‘그럼, 믿을만한 친구에게 맡기면 되잖아?’
‘너 같이 순진한 사람이 그 당시에도 있었대지 아마? 그 결과야 뻔했지만….’
‘뻔하다니?’
‘여자가 보지 내두를려고 마음 먹었는데, 친구가 문제냐? 우선 친구를 유혹해서 걸버지게 한탕 한 뒤에, 열쇠 받아 챙겨서, 정조대 벗어 던지고, 애인이랑 열나 하고는 열쇠 반납하면서 또 한번 해주고…’
‘그런가? 만약에, 이건 만약 엔데 말이야, 영훈이 너라면 어떻게 할래?’
‘나? 글쎄,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
‘솔직하게….’
‘나라면…먼저 네가 전쟁터에서 죽기를 기도했을 거야. 그게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음탕한 계획을 외부에 눈치 차리지 못하게 하고 진행 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테니까. 그리고…’
‘그리고?’
‘그게 영 불가능하다 싶으면, 바로 대놓고 말하는 거지. 네가 없는 동안, 녹슬지 않게 내가 닦고, 조이고, 기름칠 해 놓을 테니, 안심하고 열쇠를 맡기고 가라고 말이야. 이놈 저놈, 잡놈들이 다 건드리는 것 보다 내 하나가 막아 서서 지켜주겠다는 말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래, 그게 솔직한 대답일 것 같네.’
그렇게 진우와 나는 솔직한 대화를 했었다. 내가 방위로 제대를 하고, 그가 현역으로 전역하는 그 기간에도, 나는 틈틈이 그녀가 한 눈 팔지 않도록 시시때때로 애인 행세를 하며, 친구들의 주변에 엄한 눈도장을 찍어 댔었고, 그녀의 집안 어른 들께도 인사를 가서 진우가 제대하는 그날까지 자기가 지킴이 로서 사명을 다한다고 선언까지 하여서 그런지, 진우는 군 생활 내내 아무런 걱정 없이 어려운 기간을 마칠 수 있었다고 나에게 털어 놓기도 했었다. 나는 두 사람에게 있어서는 친구이자, 오빠 였고, 어려운 일을 도맡아 감당해 주는 흑기사 였다. 나는 그 역할에 불만이 없었던 것은 진우가 들려주는 위로 차원에서의 즐거운 꺼리들 때문 이기도 했다. 진우는 언제나 그녀와 섹스를 할 때는 나에게 예고 했었고, 섹스 후에는 그 광경 중에서 감동적이었던 부분을 서슴없이 재방송 했었다.
‘글쎄, 나 생전 처음으로 오랄 이란 것, 받아봤다.’
‘오랄?’
‘서양 애들이 피리불기라고 하는 거 말야.’
‘피리불기 라니?’
‘아휴, 섹스를 해봤어야 알지? 좇 빨아주는 거 말야!’
‘수아 씨가 그런 것도 해주디?’
‘해주기는? 내가 해달라고 떼 썼지. 맨 처음에는 더럽다고 입을 두 손으로 막고, 쌩굿을 하더니만 결국 포기하고 해주더라니깐?’
‘기분 어떠냐고 물으면 대답할 형용사가 있을까 몰라?’
‘왜 없어? 좇나게 좋았다지, 뭐긴 뭐야? 하여튼 내가 조절을 하지 못할 정도로 흥분해서 수아 입에다가 그냥 싸버렸다니깐!’
‘뭘 싸? 오줌? 아니면, 좇물?’
‘야, 여자나 흥분하면 오줌 지린 다지만, 남자가 발기 되서 사정할 판에 오줌이 어떻게 나오냐? 책 좀 읽어라, 어휴!’
나는 남자의 섹스와 발기에 대한 신체적 매커니즘 조차도 어두운 무식한 놈이었다. 그저, 글줄에나 나오는 역사적 사실이나 가쉽거리 같은 정조대, 혹은 유럽의 밀교, 라마승의 난교의식 같은 데에만 눈길이 가던 시기 였었다.
‘영훈아, 너 좇털 하나만 뽑아주라.’
‘좇털은 뭐하게?’
‘아무튼 말이야.’
이유도 대질 않고 내 털을 뽑아간 그가 그 털을 되돌려 준 것은 한참이 지나서 였다. 그날은 리포트를 내기 위해서 도서실에서 자료를 찾느라 정신이 없던 때 였다. 조용한 도서실에서 책 속에 파묻혀 자료를 읽고 있던 나에게 진우가 슬며시 다가 왔다. 그리고, 작은 카드봉투 같은 것을 하나 슥 내밀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나는 무슨 영문인가 했다. 봉투를 열고 안의 내용물을 확인하는 순간,
‘하하하하------, 앗, 이거 죄송합니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것 같은 적막한 도서실 안을 나는 참을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웃음으로 뒤 흔들어 버린 것이었다. 털은 돌아오질 않고 그 봉투 안에는 사진이 한 장 들어 있었다. 수아 씨가 무슨 명패처럼 종이 한 장을 가슴팍에 대고, 코메디에 나오는 영구처럼 웃으면서 이빨을 내보이고 있었는데, 가슴 앞에 들고 있는 종이에는 이렇게 씌여 있었다.
‘누구 털?’
그러나, 더 뒤집어 지는 광경은, 수아 씨의 웃고 있는 입술과 입술 사이로 드러난, 앞 이빨 정면에, 남자의 좇털 처럼 생긴 꼬시랭이가 기다랗게 끼워져 있는 것이었다! 그건 분명히 내 털이었다. 나는 사진을 보고 난 후, 도저히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터져 나오는 웃음 때문이었다. 진우도 그랬지만 수아 씨도 그렇듯, 격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랬다. 그렇게 진우와 그녀 곁을 따라 다니다가 네 볼일은 언제 보겠느냐고 말이다. 사실, 수아 씨가 먼저 졸업을 하고, 진우가 군에 다녀 온 후, 졸업반이 되어 상반기 대기업 공채에서 당당히 합격 소식을 전할 때만 해도 나는 딱히 갈 데가 없었다. 방위로 제대해서 진우 보다 일찌감치 복학한 나로서는 전공도 그렇고, 앞날에 대한 비전도 희미했던 관계로 그냥 대학원으로 진학해 버렸던 것이다. 두 사람은 졸업과 동시에 직장과 결혼이 기다리고 있었다. 소꿉장난 처럼 시작 되었던 두 사람의 신혼 살림은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었다.
‘영훈 씨도 결혼 해야죠?’
그녀는 그토록 오랜 세월을 알아 왔음에도 깍듯이 나에게 존대를 했다. 나는 세상 여자들은 다 수아 씨 같아야 된다고 믿기에 이르렀고, 밖으로 내색은 하질 않았지만 은근히 수아 씨와 비슷한 스타일을 고집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내 인생에 있어서 유일한 여자이고, 오랜 동안 보아왔던 관계로 진우의 아내가 되었지만 그 당시, 외로운 밤을 달래주는 내 자위의 상대역은 역시나 그녀였다. 진우와 술이 거나하게 취해 집으로 쳐들어 가도 그녀는 싫어하는 내색 한번 없이 우리들을 맞았다. 유달리 술이 약한 진우는 언제나 내 등에 실려 집으로 가기 일 쑤 였고, 그렇게 정신이 없는 중에서도 언제나 내 등에 업혀서 구지 자기 집으로 가자고 떼를 쓰던 그는 결혼하지 않은 학생 때의 모습 그대로 였다. 아침이 되어 둘 다 은 얼굴로 밥상을 마주 하고 앉아서, 잘 넘어가지도 않는 북어국을 삼키면서, 키득대는 두 사람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도 마찬가지 였기에…내가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름도 없는 광고 기획사에 기획 보조로 입사했을 때에도 나를 격려해주고, 다독거려 준 것은 두 사람 이었다. 본격적인 영화판도 아니고, 30초에 목숨을 건다는 광고영화를 찍는 기획사에 들어갈 때만 해도 세상은 온통 불어 닥친 컴퓨터 열기로 인해 광고 마져도 컴퓨터로 제작해야 끝발이 서는 시기였다.
‘진우야, 공부는 괜시리 오래 했는가 보다. 들어가보니 이거 완죤히 막노동도 그런 막노동이 없어. 이건 영화 찍는 게 아니고, 중노동 이라니깐!’
그렇게 한숨 뿐이었던 나에게 조언과 충고를 아끼지 않았던 사람도 다름 아닌 진우 였다. 진우는 투자 부문에서 일하는 브레인 이었기에 정보에 빠삭 했었다. 언제나 앞으로의 시장 변화에 대해서 대처해야 하니 이런 건 어떨까, 하면서 끊임없이 소재를 물어다 주곤 해서 나는 더욱 자주 그이 집을 찾았던 것이 빌미 였다면 빌미이기는 했다.
‘영훈아! 내가 좋은 껀수 하나 가르쳐 줄 테니 집에 쫌 와 봐라.’
나는 바쁜 촬영 스케줄을 쪼개서 저녁 늦게사, 진우의 신혼 살림집을 쳐 들어 갔다. 그 바닥에 있다 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수염은 멋대로 자라고, 옷은 넝마 같은 것을 걸치고 언제나 콘티 싸움에 날밤을 까던 시절이라 주변 정리라고는 눈꼽 만치도 할 수 없던 시절…집에 들어서니 마침, 두 사람은 잠옷 바람으로 영화를 보고 있었다. 하늘 하늘한 가운 안에 비쳐 보이던 수아 씨의 그 멋들어진 몸매, 나는 밥도 못 먹은 관계로 늦은 밤참을 차려주는 수아 씨의 고마움 보다도, 내 눈 앞을 아른 거리는 그 몸매의 야릇함에 더 시선을 빼앗겼던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밥이나 챙겨 먹고 다니지, 뭐가 그리 죽고 살일 이라고!’
허겁지겁 밥을 때려넣는 나에게 진우는 자료를 하나 갖고 왔다.
‘영훈아, 이것 좀 봐. 네가 흥미 있어 할까 봐, 내가 대외비 이긴 해도 카피 해서 갖고 나왔다. 미국의 광고 기획사 들의 투자 계획에 대한 중장기 전략인데, 내가 똥그라미 쳐 놓은 부분 좀 살펴봐.’
‘뮤직 비디오?’
‘그래, 선진국의 광고 제작 회사들이 광고도 중요하지만 짭짤한 캐쉬카우로(돈줄) 생각하고 준비해 나가는 게 바로 뮤직 비디오라는 거지. 너네 이런 계획안 수립해 본 적 있냐?’
나는 가뭄 속에 단비를 만난 것 같은 심정 이었다. 언제가 클라이언트와 입씨름 해가면서 상업성만이 농후한 제작을 하다 보니 이런 곳에는 눈을 돌리지 못한 것이 사실 이었다. 그렇지만, 그 얘기를 들으면서도 내 시선은 수아 씨의 부풀어 오를 대로 오른 젖 무덤으로 꽂혀 있어 움직일 줄을 몰랐다.
‘임마, 형님이 말씀하시는데, 잿밥에만 눈이 돌아 가서리…아니 수아 젖, 처음 보냐?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 볼 건 또 뭐야? 그럼 이참에 확 까서 뵈줘? 껄껄껄….’
진우의 농담에 나는 시선을 풀어 버렸다. 얼굴이 발개져서 방안으로 들어가 윗도리를 걸치고 다시 나온 그녀를 대하기가 무척 쑥스러웠다. 나는 좋은 정보라고 하면서 집을 나왔다. 나를 따라 나오며, 배웅을 하러 따라 나오는 진우가 담배를 피워 무는 나에게 툭 하며 던진 한마디에 나는 담배 연기가 목구멍에 걸려 기침을 해댔다.
‘너 언제까지 혼자 살래? 결혼 할 생각 없으면, 우리 셋이서 살자!’
‘??, 야, 너 그걸 말이라고 하고 있냐? 셋이서 살자니?’
‘어때? 수아도 널 모르는 것도 아니고, 우리 끼린데 뭐 가릴 거 있냐? 그냥 우리 집에 하숙하는 것처럼 들어와서 형님 아우 하면서 셋이 오붓하게 사는 거지. 너무 이상적인가?’
‘너 미쳤냐?’
‘아니, 나 지난 주에 미국에 가트너 그룹에서 파견 나온 친구랑 일을 한동안 같이 하기로 되었는데, 그 친구 얘기가 미국에서는 그렇게 셋이서 하기도 하고 그런 다는 거야. 부부도 서로 바꾸고 말이야. 나도 깜짝 놀랐다니깐!’
그 당시는 모든 음란한 행위들이 불륜으로 치부되고, 유교적인 사고방식과 체제가 성적인 개방을 짓누르던 시기라, 진우의 그런 발상은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몰아 부칠 수 있는 분위기가 역력했었다.
‘그래도 그건 인륜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니깐! 어떻게 결혼한 부부랑 같이 섹스를 하면서 사냐? 그것도 친구 사이에, 그러다 덜컥 애라도 배면 앞날은 어떻게 책임 진데?’
‘뭐, 둘 중에 한 사람의 씨 아니겠어? 잡놈이 들이다 박지 않은 다음에야?’
진우의 사고는 보기보다 개방 적이었다. 그 미국 사람의 얘기에 진우가 이제까지 가꾸어 왔던 가치관의 세계가 와르르 무너졌었던가 보다.
‘글쎄, 아무리 수아 씨가 섹시하고 어여쁘다고 생각되기는 해도, 네 앞에서 섹스가 가능하기나 할까? 에이, 말도 않돼, 어디 가서 그런 얘기 꺼내지도 마라. 미친놈 취급 당하기 십상이니.’
그러나, 첫 마디가 꺼내기 어려웠지, 진우는 시도 때도 없이 나에게 수아 와의 삼섬을 부추키기에 이른다. 나는 진우가 엮어 내려는 기회를 분명하게 알아 차리고, 차일피일 바쁜 촬영 일정을 내세우며 피해가는 와중이었다.
‘여보세요, 기획사 Simple입니다. 말씀하세요.’
‘저 거기 정 영훈 씨라고 계세요?’
‘전데요, 누구세요?’
‘저 수아에요. 안녕하셨어요? 다름이 아니고, 진우씨가 오늘 회사에서 쓰러 졌대요. 집에 오기는 했는데, ……막무가내로 영훈씨를 찾아서…… 이렇게 전화 드렸어요. 저녁에 시간 좀 내 주세요. 그이가……. 많이 아픈 것 같아요.’
‘알겠어요. 제가 저녁에 가 볼께요, 그 자식, 어디가 아프길래….’
나는 별일 아니겠지 하면서 오후에 있을 일정을 다음 날로 미루고, 저녁을 일찌감치 설렁탕으로 떼우고 진우의 집으로 향했다.
‘띵동’
‘어서 오세요.’
‘진우는 좀 어때요? 이거 좀 받으세요.’
나는 사가지고 간 오렌지 주스를 내밀었다.
‘진우는 어디 있어요?’
‘방에요, 들어가 보세요.’
방문을 열자, 침대 위에 웅크리고 누워 있는 진우의 모습이 보였다.
‘임마, 어떻게 된 거야? 아프긴 어디가?’
이불 안에 누워 있던 진우가 갑자기 스프링 처럼 이불을 재끼면서 벌떡 일어났다.
‘아주 공갈 염소똥, 10원에 열두개, 속았 지롱? 하하하…. 내가 아프긴 어디가 아프냐? 네가 하도 바쁘다고 하면서 이 핑계, 저 핑계 대길래, 내가 수 한번 써 본거지.’
‘나, 이런! 난 그런 것도 모르고 없는 돈에 주스까정 사 들고 왔잖아!’
‘잘 됐네, 뭐…그렇게 서 있지만 말고, 우리 오랜 만에 술이나 먹자.’
진우는 이미 술상을 봐 두었다고 하면서 식탁으로 가자고 했다. 나는 거실로 나오면서 이 공갈 쑈에 일조한 수아 씨에게 주먹을 휘둘러 보였다. 수아 씨는 그냥 웃을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식탁에 마주 앉은 세 사람은 술잔을 마주치면서 웃음을 나누었다.
‘우리 세 사람의 뼈와 살이 타는 밤을 위하여!’
‘야! 그건 또 무신 소리래?’
술을 들이키면서 진우가 자랑 스럽게 운을 띄웠다.
‘영훈아! 내가 전에부터 말하던 거 있잖아? 그거!’
‘그거라니?’
‘우리 셋이서 같이 하자는 거 말이야? 나 그거 오늘 승낙 받았다니깐! 의심 나면 수아 한테 물어 봐.’
‘너 정말!…..아니 근데, 수아 씨는 저 놈 청을 들어 줬단 말이에요?’
수아 씨는 고개만 숙이고 말은 못한 채, 끄덕이기만 했다. 나 이런 참!
‘내 참, 기가 막혀서, 섰던 자지도 꺼질 소리내 그랴. 야, 그렇다고 내가 어떻게 너랑 수아씨랑 같이, 그것도… 그걸….’
나는 말 문이 막혔다. 그러나, 수아 씨는 나를 쳐다 보면서,
‘진우씨가 정말 원하나 봐요. 질투고 뭐고, 아무것도 없이, 그렇게 친한 영훈씨랑 같이 한번 해보면 정말 좋을 것 같다면서….’
서로가 술을 들이키면서도 섹스를 하게 될 거라는 상상은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벌떡거리는 좇대의 감흥은 나의 의지와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더군다나 술을 먹는 도중에 진우는,
‘수아야, 옷좀 편한 걸로 갈아 입고 나와. 내가 얘기한 거 있지, 그걸로…’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온 수아 씨의 모습에 나는 그만 아연질색 하고 말았다. 분명히 진우는 오늘 셋이서 섹스를 할 작정을 한 게 틀림 없었다. 수아 씨의 나이트 가운은 연한 핑크 빛으로 그 안의 속살이 다 비쳐 보이는 하늘하늘한 소재로 된 것이었고, 그 안에는 아무것도 입질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때, 우리 수아 이쁘쥐? 임마, 입 좀 닫아라, 파리 들어갈라. 촌시럽기는…’
수아씨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진우야, 너 진심이냐?’
‘고롬!’
술판은 이미 그 정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진우는 서 있는 수아 씨의 손을 붙들고, 앉아서 입을 짝 벌리고 있는 나의 손까지 같이 붙잡더니만,
‘자, 이제 새 역사가 열리는 거야, 알았지?’
하면서 나와 수아 씨를 먼저 등을 떠밀며 방안으로 들려 보냈다. 방안에 들어선 내가 머뭇하고 있자, 진우는 어서 씻고 오라며, 수아 씨의 가운을 벗기고, 침대에 누우라고 지시했다. 나는 몸을 씻는 도중에도 뭐가 뭔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몸을 다 씻고서 방안으로 들어 섰을 때, 코를 확 찌르는 냄새가 있었다. 그것은 동물의 냄새였다.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살거죽의 냄새, 아니 남녀의 몸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음란의 향기라고 하는 편이 더 적절했다. 왼쪽에 진우가 눕고, 가운데 수아 씨가, 그리고, 오른 쪽에 내가 누웠다. 그때, 왼쪽에 누워있던 진우가 일어나면서 침대 옆의 의자에 걸터 앉았다.
‘자 이제, 우리 수아 좀 이쁘게 사랑해 줘. 네가 내 친구라면 말이야. 난 쫌 보다가 조인 할게.’
팔꿈치를 궤며, 실내의 조명을 낮추는 진우. 손 끝이 덜덜 떨리고 있는 것이 멀리서도 보이고 있었지만 조명을 낮추어 그 모습을 끝까지 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신음과 쾌락의 줄다리기… 끝없이 외쳐대는 그녀의 비명 같은 신음소리와 더불어 방안에는 쾌락 이외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렇게도 갖고 싶었고, 밤마다 나의 눈앞을 가득 메우던 자위의 대상에서 그녀는 이제 나의 섹스의 요화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몸을 덮치면서도 끝끝내 이름을 부를 수 없었다. 그것은 옆에서 그녀의 입에 자신의 좇을 물린 채, 보지에 좇을 찢어져라 쑤셔 박고 있는 내 등을 격려하듯이 쓰다듬고 있는 진우에게 들려 주어서는 안될 소리인 것 같았기에…
‘윽윽윽… 진우씨 영원히 사랑해, 당신만을………’
‘후---아!’
세 사람이 격정적인 쓰리썸의 열기에 취해 바닥에 모두 누워 호흡을 고르는 것이 바로 어제의 일이었다. 나는 일요일 아침까지 내 작은 오피스 텔에서 늦잠을 자 버렸다. 구지 잠을 자고 가라는 두 사람의 만류를 뿌리치고 나온 것은 두 사람의 얼굴을 다시 대한다는 내 양심이 허락칠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비척대며 일어나 거실의 TV를 켰다. 때마침 TV에서는 뉴스를 하고 있었다. 뉴스에는 빗길에 고가차도의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지상으로 추락한 차륜사고에 대한 화면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원 별 미친 놈 다 보겠네, 멀쩡한 가드레일은 왜 디받고 지랄이야 라며, 웃고 있었다.
‘삑삑삑’
책상에 놓여 있는 FAX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에게서, 그것도 일요일에 FAX가 오는가 일어나서 살펴봤다.
‘영훈아, 나 진우야!
이렇게 불쑥 연락해서 미안하구나.
이쯤에서 너는 알아야 하겠기에….
우선 열쇠나 받아라. 무슨 뜻인지는 이 FAX를 다 읽을 때 쯤이면 기억 날거야.
나 입사 시에 건강진단 할 때는 멀쩡했는데,
어제 회사에서 나를 좀 보자구 하더라.
급성폐암 말기 래나 뭐래나….
담배도 않 피우고, 기침 한번 한 적도 없는 내가 폐암 말기라니…
너 우리 아버지가 어릴 적 돌아가셨단 말 들었지?
아마 유전 이었던 가봐.
집에 돌아올 때까지 정신이 하나도 없더구나.
수아 에게는 얘기하지 않을 수 없었어.
어제 너를 불러 올 때까지 끝끝내 울음을 참지 못하는
수아를 달래느라 나 정말 애 먹었다. 네가 눈치 챌까봐…
죽기 전에 건강한 몸으로
그렇게 셋이서
좋은 추억이나 만들자고 내가 강짜를 부렸거든.
타이밍은 별로 않 좋았지만….
그렇지만 이렇게 너에게 연락하는 것은 수아도 모를 거야.
이 FAX를 정확한 시간에 너에게 보내려고,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서 문방구 아저씨께 부탁 하려해.
나는 너희 두 사람에게 병들어 죽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기가
죽기 보다 싫다.
그냥 우연히 빗길에 자동차 사고로……그렇게….해주면 안될까?
지금은 아니지만, 내가 약속해 놓은 시간에 FAX를 보내는 아저씨가
내용을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긴 얘기는 못할 것 같다.
이제 내가 없는 세상에서 수아의 정조대를
책임질 인간은 너 하나밖에 없구나.
영훈아! 절대 그 열쇠는 남 주지 마라.
불쌍한 우리 수아, 부탁해.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부탁할게,
너희 두 사람, 앞으로 결혼식을 올리게 되면,
그 날을 되도록….
내 기일로 잡아주면 안될까?
1년에 한번 이겠지만 너희들의 기쁜 결혼 기념일에 불청객이긴 해도
나도 한자리 끼어 축하해 주고 싶어서…
우리 세 사람, 1년에 한번은 꼭 보고 싶어 질거야.
마지막으로 우리 수아, 한번 더 부탁할게.
과부 됐다고 구박 하지 말구, 잘 보듬어 주렴,
너 밖에 부탁할 사람이 없구나, 알았지? 친구야………
-떠나가는 친구 진우로부터-
그래서 우리의 결혼 기념일은 진우의 기일과 맞추어지게 되었다. 시셋말로 젊디 젊은 남편, 홀랑 잡아먹은 여자를 맞아 들여 새 장가를 가려는 나를 두고, 집에서는 다 미친 놈이라고 했지만 나는 아랑곳 하질 않았다. 많은 시간이 흘러야 잊을 수 있을 것이겠지만 나나 수아 씨나 구지 잊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살아 있었어도 셋이 엮여져 같이 살아가기로 했던 사람들…애써 잊을 필요 있겠나 하는 마음에서 였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오늘 결혼 기념일, 나나 수아 씨나 곁에 없는 진우가 더 보고 싶어진다.
-끝-
‘후---아!’
바닥에는 나랑, 진우, 그리고, 수아 씨가 온통 땀에 절은 채, 천장을 바라 보면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몇번 이나 나를 부추키던 진우의 요청을 고사 했음에도 기어이 오늘과 같은 나날을 맞이 할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해서는 입이 열개 라도 할 말은 없었다.
‘어땠냐?’
진우는 수아 씨에게 물어야 할 질문을 나에게 하고 있었다. 나는 그냥 멋적게 웃어 버렸다. 세인들이 그렇게나 입방아를 쪄대는 그 놈의 쓰리썸. 나는 처음에, 오로지 진우의 요구에 응해 줄 뿐이라는 얄팍한 합리화로 끈질기게 나를 찔러대던 그의 요청에 마지못해 거꾸러 지는 것처럼 승낙 했었다. 그러나, 사실 속마음 만은 절대 끌려 간다든가 하는 상황은 아니었다고 고백해 본다. 대학 때부터 실과 바늘처럼 줄창 붙어 다니던 두 사람의 연애 시절 속에서 나도 한 몫은 하고 있었기에. 언제나 진우는 둘이 만나는 자리에 나를 불러 냈고, 내 앞에서도 거침없이 입을 맞추며, 애정질을 선보이던 그들 이였기에 나는 당연한 그들의 사랑놀음에 언제나 뒤따라 다니는 시종장 처럼 스스럼이 없었다. 수아 씨도 그녀 나름대로 나에게 무척이나 잘해왔던 것도 무시 못할 이유중의 하나라면 하나랄까? 언제나 혼자 였던 나를 위해 끊임없이 소개팅을 주선 했고, 커플이 되어 넷이 만들어 지면, 어디 좋은 곳으로 같이 여행을 가도 좋을 것이라며, 내 취향에 신경을 써 가며, 줄줄이 친구들을 선 보였지만, 소개 받은 여자들이 오래 가지는 못했다. 우리 세 사람의 묘한 어우러짐에, 소개되어 나온 여자들은 하나같이 혼자 외톨이가 된 듯한 느낌을 받기에 이르러 결국, 기분이 상한다며, 얼마 못가서 우리들과의 관계에 사절을 표하곤 했었으니까. 세 사람은 서로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앞뒤가 척척 맞아 떨어져서 사실 서먹한 분위기로 동참한 여자들은 속으로,
‘이것들이 나를 엿 멕일려고 불렀나?’
하는 심정이었다는 것을 수아 씨를 통해 너무도 자주 들었기에, 조심은 하면서도 세 사람의 몸에 벤 그 습관적 항상성을 쉽사리 절제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진우는 시시콜콜 수아 씨와의 만남에 있어서 걸림돌에 부딪히면 나에게 도움을 요청 했었다. 연애 라는 것이 다 그렇지 않은가? 시도 때도 없이 싸워 재끼면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다시 철커덕 붙어 다니던 그 두 사람의 끝없는 반복과 반복…. 그 와중에서 언제나 스스로의 푸념과 하소연을 통해, 나는 두 사람의 관계에 방관자의 역할 이었음에도 두 사람의 심리적인 가교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었다. 둘 사이에서 한번 다툼이 생겨서 삐지고 나면 의례 진우는 진우 대로, 수아 씨는 수아 씨 대로, 나에게 카운셀링을 요청해 왔다. 나는 두 사람의 인생과 설정에 개입되는 법도 없었지만, 누구보다도 그 내부를 확연히 들여다 보고 있는 아이러니한 중간자 역할을 본의 아니게 맡고 있었던 게다. 나는 방에 누워 있는 수아 씨를 뒤로 하고, 거실에 나와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어떤 주제도 이 상황에서는 적합치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영훈아, 우리 수아, 이쁘지 않디?’
‘그럼, 언제나 보아 왔지만, 오늘은 더 예뻤던 것 같다.’
나는 구지 저급한 표현을 사용하고 싶질 않았다. 씹물이 질척 여서 끝내 주었네, 보지가 조질나게 쪼여댔네 등등의 까발려진 미사여구로 진우의 질문 의도에 따라주고도 싶었지만 왠지 내 마음 속에서는, 다시 또 수아 씨를 어떻게 볼까나 하는 우려가 뒤따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그랬을까? 다른 사람들은 삼섬을 통해서 삶의 활력을 얻었다고도 하고, 그 쾌감의 장렬함으로 섹스 후에는 삼섬 이외의 섹스는 섹스도 아니라는 고정관념이 확고해 졌다는 등의 얘기가 심심찮게 들려 왔지만, 나는 달랐다. 모가지 붙들려, 끌려 오듯이 온 놈이 더 설치고 난장을 떨었기 때문 이었을까? 나는 그런 내 자신 때문 이었는지는 몰라도 진우의 집을 나서면서도 편치 않은 심정을 느끼고는 이게 자연스러운 것인가, 아니면, 나만의 쓸데없는 자격지심 인가에 대해서 흔쾌한 결론을 내리질 못하고 있었다.
‘영훈아, 넌 섹스가 뭐라고 생각하냐?’
언젠가 학교 때 그가 한 말이다.
‘글쎄, 섹스라……., 그건 선물 같은 게 아닐까?’
‘선물?’
‘응, 주는 사람은 주어서 기쁘고, 받는 사람은 받아서 기쁘고, 지금이 초라했다면, 다음 번을 기대하기에 가슴 부풀고, 받아서 만족 했다면,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테니 말이야.’
난 쉬운 주제로 대답을 했다.
‘그렇네,….음…….그러니까……..나 어제,….. 수아 한테 선물 했어.’
‘이 자식, 대단한데? 어쩐지 묻는 폼이 그렇더라니! 어때? 좋았냐? 끝내줬어?’
나는 부러운 표정으로 그녀와 처음 섹스를 했다는 진우의 어깨를 두드리며, 탄성을 내질렀다.
‘뭐 좋은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더라. 워낙 정신이 없어 놔서….그냥 그렇게 했지. 이렇게 길을 트고 나니 좀 불안하기도 해.’
‘무어가?’
‘나도 비싼 돈 들여서 정조대나 하나 사야 되는 거 아닌가 몰라?’
중세 유럽에서부터 유행하던 정조대. 멀리 전쟁터에 자주 나가야 했던 남정네 들이 아내의 부정을 막기 위해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그 정조대 타령을 하고 있는 진우의 심정을 여자 친구도 없었고, 섹스 경험도 없는 내가 이해하기에는 도저히 격차가 있었고, 따라 잡을 수도 없었지만, 그 당시에는 충분히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네 심정은 알겠는데, 정조대는 쫌 너무했다. 지금이 뭐 조선시대도 아니고 수아 씨도 자유의지가 있는 성인인데, 그렇게 까지 해서야….’
초기의 정조대는 비싼 돈을 주고 귀족들의 특별 주문을 통해 만들어 졌다고 하는데, 지금의 똥꼬 T팬티 같은 형태의 허리띠로 단단히 고정되는 금속가리개 였다고 하며, 장기간 채워 놓아야 하는 관계로 앞과 뒤에는 똥과 오줌, 월경 혈이 빠져 나갈 수 있도록 구멍이 뚫려 있었다.
‘너 정조대의 단점을 알고나 있냐?’
‘글쎄?’
고개를 갸우뚱 하는 진우에게 나는 자세한 설명을 해 주었다.
‘너 그 당시, 정조대로 재미를 본 사람은 남편이 아니라 정조대 제작 업자라 않하디?’
사실, 오랜 기간 동안 전쟁으로 집을 비우는 남편을 대신할, 노는 좇대가리들은 귀부인들의 싱싱한 보지를 조져 놓기 위해 밤낮으로 작업에 몰두 했지만, 언제나 그 정조대가 걸림돌 이었기에 비싼 돈을 들여 제작업자에게 뇌물을 먹인 뒤에, 열쇠를 복제해서 기어이 욕심을 채우고, 그 제작업자 에게도 그 정조대의 보지를 선심차원에서 내돌렸다는 얘기는 다 알려진 사실 이었다.
‘그럼, 믿을만한 친구에게 맡기면 되잖아?’
‘너 같이 순진한 사람이 그 당시에도 있었대지 아마? 그 결과야 뻔했지만….’
‘뻔하다니?’
‘여자가 보지 내두를려고 마음 먹었는데, 친구가 문제냐? 우선 친구를 유혹해서 걸버지게 한탕 한 뒤에, 열쇠 받아 챙겨서, 정조대 벗어 던지고, 애인이랑 열나 하고는 열쇠 반납하면서 또 한번 해주고…’
‘그런가? 만약에, 이건 만약 엔데 말이야, 영훈이 너라면 어떻게 할래?’
‘나? 글쎄,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
‘솔직하게….’
‘나라면…먼저 네가 전쟁터에서 죽기를 기도했을 거야. 그게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음탕한 계획을 외부에 눈치 차리지 못하게 하고 진행 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테니까. 그리고…’
‘그리고?’
‘그게 영 불가능하다 싶으면, 바로 대놓고 말하는 거지. 네가 없는 동안, 녹슬지 않게 내가 닦고, 조이고, 기름칠 해 놓을 테니, 안심하고 열쇠를 맡기고 가라고 말이야. 이놈 저놈, 잡놈들이 다 건드리는 것 보다 내 하나가 막아 서서 지켜주겠다는 말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래, 그게 솔직한 대답일 것 같네.’
그렇게 진우와 나는 솔직한 대화를 했었다. 내가 방위로 제대를 하고, 그가 현역으로 전역하는 그 기간에도, 나는 틈틈이 그녀가 한 눈 팔지 않도록 시시때때로 애인 행세를 하며, 친구들의 주변에 엄한 눈도장을 찍어 댔었고, 그녀의 집안 어른 들께도 인사를 가서 진우가 제대하는 그날까지 자기가 지킴이 로서 사명을 다한다고 선언까지 하여서 그런지, 진우는 군 생활 내내 아무런 걱정 없이 어려운 기간을 마칠 수 있었다고 나에게 털어 놓기도 했었다. 나는 두 사람에게 있어서는 친구이자, 오빠 였고, 어려운 일을 도맡아 감당해 주는 흑기사 였다. 나는 그 역할에 불만이 없었던 것은 진우가 들려주는 위로 차원에서의 즐거운 꺼리들 때문 이기도 했다. 진우는 언제나 그녀와 섹스를 할 때는 나에게 예고 했었고, 섹스 후에는 그 광경 중에서 감동적이었던 부분을 서슴없이 재방송 했었다.
‘글쎄, 나 생전 처음으로 오랄 이란 것, 받아봤다.’
‘오랄?’
‘서양 애들이 피리불기라고 하는 거 말야.’
‘피리불기 라니?’
‘아휴, 섹스를 해봤어야 알지? 좇 빨아주는 거 말야!’
‘수아 씨가 그런 것도 해주디?’
‘해주기는? 내가 해달라고 떼 썼지. 맨 처음에는 더럽다고 입을 두 손으로 막고, 쌩굿을 하더니만 결국 포기하고 해주더라니깐?’
‘기분 어떠냐고 물으면 대답할 형용사가 있을까 몰라?’
‘왜 없어? 좇나게 좋았다지, 뭐긴 뭐야? 하여튼 내가 조절을 하지 못할 정도로 흥분해서 수아 입에다가 그냥 싸버렸다니깐!’
‘뭘 싸? 오줌? 아니면, 좇물?’
‘야, 여자나 흥분하면 오줌 지린 다지만, 남자가 발기 되서 사정할 판에 오줌이 어떻게 나오냐? 책 좀 읽어라, 어휴!’
나는 남자의 섹스와 발기에 대한 신체적 매커니즘 조차도 어두운 무식한 놈이었다. 그저, 글줄에나 나오는 역사적 사실이나 가쉽거리 같은 정조대, 혹은 유럽의 밀교, 라마승의 난교의식 같은 데에만 눈길이 가던 시기 였었다.
‘영훈아, 너 좇털 하나만 뽑아주라.’
‘좇털은 뭐하게?’
‘아무튼 말이야.’
이유도 대질 않고 내 털을 뽑아간 그가 그 털을 되돌려 준 것은 한참이 지나서 였다. 그날은 리포트를 내기 위해서 도서실에서 자료를 찾느라 정신이 없던 때 였다. 조용한 도서실에서 책 속에 파묻혀 자료를 읽고 있던 나에게 진우가 슬며시 다가 왔다. 그리고, 작은 카드봉투 같은 것을 하나 슥 내밀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나는 무슨 영문인가 했다. 봉투를 열고 안의 내용물을 확인하는 순간,
‘하하하하------, 앗, 이거 죄송합니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것 같은 적막한 도서실 안을 나는 참을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웃음으로 뒤 흔들어 버린 것이었다. 털은 돌아오질 않고 그 봉투 안에는 사진이 한 장 들어 있었다. 수아 씨가 무슨 명패처럼 종이 한 장을 가슴팍에 대고, 코메디에 나오는 영구처럼 웃으면서 이빨을 내보이고 있었는데, 가슴 앞에 들고 있는 종이에는 이렇게 씌여 있었다.
‘누구 털?’
그러나, 더 뒤집어 지는 광경은, 수아 씨의 웃고 있는 입술과 입술 사이로 드러난, 앞 이빨 정면에, 남자의 좇털 처럼 생긴 꼬시랭이가 기다랗게 끼워져 있는 것이었다! 그건 분명히 내 털이었다. 나는 사진을 보고 난 후, 도저히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터져 나오는 웃음 때문이었다. 진우도 그랬지만 수아 씨도 그렇듯, 격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랬다. 그렇게 진우와 그녀 곁을 따라 다니다가 네 볼일은 언제 보겠느냐고 말이다. 사실, 수아 씨가 먼저 졸업을 하고, 진우가 군에 다녀 온 후, 졸업반이 되어 상반기 대기업 공채에서 당당히 합격 소식을 전할 때만 해도 나는 딱히 갈 데가 없었다. 방위로 제대해서 진우 보다 일찌감치 복학한 나로서는 전공도 그렇고, 앞날에 대한 비전도 희미했던 관계로 그냥 대학원으로 진학해 버렸던 것이다. 두 사람은 졸업과 동시에 직장과 결혼이 기다리고 있었다. 소꿉장난 처럼 시작 되었던 두 사람의 신혼 살림은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었다.
‘영훈 씨도 결혼 해야죠?’
그녀는 그토록 오랜 세월을 알아 왔음에도 깍듯이 나에게 존대를 했다. 나는 세상 여자들은 다 수아 씨 같아야 된다고 믿기에 이르렀고, 밖으로 내색은 하질 않았지만 은근히 수아 씨와 비슷한 스타일을 고집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내 인생에 있어서 유일한 여자이고, 오랜 동안 보아왔던 관계로 진우의 아내가 되었지만 그 당시, 외로운 밤을 달래주는 내 자위의 상대역은 역시나 그녀였다. 진우와 술이 거나하게 취해 집으로 쳐들어 가도 그녀는 싫어하는 내색 한번 없이 우리들을 맞았다. 유달리 술이 약한 진우는 언제나 내 등에 실려 집으로 가기 일 쑤 였고, 그렇게 정신이 없는 중에서도 언제나 내 등에 업혀서 구지 자기 집으로 가자고 떼를 쓰던 그는 결혼하지 않은 학생 때의 모습 그대로 였다. 아침이 되어 둘 다 은 얼굴로 밥상을 마주 하고 앉아서, 잘 넘어가지도 않는 북어국을 삼키면서, 키득대는 두 사람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도 마찬가지 였기에…내가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름도 없는 광고 기획사에 기획 보조로 입사했을 때에도 나를 격려해주고, 다독거려 준 것은 두 사람 이었다. 본격적인 영화판도 아니고, 30초에 목숨을 건다는 광고영화를 찍는 기획사에 들어갈 때만 해도 세상은 온통 불어 닥친 컴퓨터 열기로 인해 광고 마져도 컴퓨터로 제작해야 끝발이 서는 시기였다.
‘진우야, 공부는 괜시리 오래 했는가 보다. 들어가보니 이거 완죤히 막노동도 그런 막노동이 없어. 이건 영화 찍는 게 아니고, 중노동 이라니깐!’
그렇게 한숨 뿐이었던 나에게 조언과 충고를 아끼지 않았던 사람도 다름 아닌 진우 였다. 진우는 투자 부문에서 일하는 브레인 이었기에 정보에 빠삭 했었다. 언제나 앞으로의 시장 변화에 대해서 대처해야 하니 이런 건 어떨까, 하면서 끊임없이 소재를 물어다 주곤 해서 나는 더욱 자주 그이 집을 찾았던 것이 빌미 였다면 빌미이기는 했다.
‘영훈아! 내가 좋은 껀수 하나 가르쳐 줄 테니 집에 쫌 와 봐라.’
나는 바쁜 촬영 스케줄을 쪼개서 저녁 늦게사, 진우의 신혼 살림집을 쳐 들어 갔다. 그 바닥에 있다 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수염은 멋대로 자라고, 옷은 넝마 같은 것을 걸치고 언제나 콘티 싸움에 날밤을 까던 시절이라 주변 정리라고는 눈꼽 만치도 할 수 없던 시절…집에 들어서니 마침, 두 사람은 잠옷 바람으로 영화를 보고 있었다. 하늘 하늘한 가운 안에 비쳐 보이던 수아 씨의 그 멋들어진 몸매, 나는 밥도 못 먹은 관계로 늦은 밤참을 차려주는 수아 씨의 고마움 보다도, 내 눈 앞을 아른 거리는 그 몸매의 야릇함에 더 시선을 빼앗겼던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밥이나 챙겨 먹고 다니지, 뭐가 그리 죽고 살일 이라고!’
허겁지겁 밥을 때려넣는 나에게 진우는 자료를 하나 갖고 왔다.
‘영훈아, 이것 좀 봐. 네가 흥미 있어 할까 봐, 내가 대외비 이긴 해도 카피 해서 갖고 나왔다. 미국의 광고 기획사 들의 투자 계획에 대한 중장기 전략인데, 내가 똥그라미 쳐 놓은 부분 좀 살펴봐.’
‘뮤직 비디오?’
‘그래, 선진국의 광고 제작 회사들이 광고도 중요하지만 짭짤한 캐쉬카우로(돈줄) 생각하고 준비해 나가는 게 바로 뮤직 비디오라는 거지. 너네 이런 계획안 수립해 본 적 있냐?’
나는 가뭄 속에 단비를 만난 것 같은 심정 이었다. 언제가 클라이언트와 입씨름 해가면서 상업성만이 농후한 제작을 하다 보니 이런 곳에는 눈을 돌리지 못한 것이 사실 이었다. 그렇지만, 그 얘기를 들으면서도 내 시선은 수아 씨의 부풀어 오를 대로 오른 젖 무덤으로 꽂혀 있어 움직일 줄을 몰랐다.
‘임마, 형님이 말씀하시는데, 잿밥에만 눈이 돌아 가서리…아니 수아 젖, 처음 보냐?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 볼 건 또 뭐야? 그럼 이참에 확 까서 뵈줘? 껄껄껄….’
진우의 농담에 나는 시선을 풀어 버렸다. 얼굴이 발개져서 방안으로 들어가 윗도리를 걸치고 다시 나온 그녀를 대하기가 무척 쑥스러웠다. 나는 좋은 정보라고 하면서 집을 나왔다. 나를 따라 나오며, 배웅을 하러 따라 나오는 진우가 담배를 피워 무는 나에게 툭 하며 던진 한마디에 나는 담배 연기가 목구멍에 걸려 기침을 해댔다.
‘너 언제까지 혼자 살래? 결혼 할 생각 없으면, 우리 셋이서 살자!’
‘??, 야, 너 그걸 말이라고 하고 있냐? 셋이서 살자니?’
‘어때? 수아도 널 모르는 것도 아니고, 우리 끼린데 뭐 가릴 거 있냐? 그냥 우리 집에 하숙하는 것처럼 들어와서 형님 아우 하면서 셋이 오붓하게 사는 거지. 너무 이상적인가?’
‘너 미쳤냐?’
‘아니, 나 지난 주에 미국에 가트너 그룹에서 파견 나온 친구랑 일을 한동안 같이 하기로 되었는데, 그 친구 얘기가 미국에서는 그렇게 셋이서 하기도 하고 그런 다는 거야. 부부도 서로 바꾸고 말이야. 나도 깜짝 놀랐다니깐!’
그 당시는 모든 음란한 행위들이 불륜으로 치부되고, 유교적인 사고방식과 체제가 성적인 개방을 짓누르던 시기라, 진우의 그런 발상은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몰아 부칠 수 있는 분위기가 역력했었다.
‘그래도 그건 인륜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니깐! 어떻게 결혼한 부부랑 같이 섹스를 하면서 사냐? 그것도 친구 사이에, 그러다 덜컥 애라도 배면 앞날은 어떻게 책임 진데?’
‘뭐, 둘 중에 한 사람의 씨 아니겠어? 잡놈이 들이다 박지 않은 다음에야?’
진우의 사고는 보기보다 개방 적이었다. 그 미국 사람의 얘기에 진우가 이제까지 가꾸어 왔던 가치관의 세계가 와르르 무너졌었던가 보다.
‘글쎄, 아무리 수아 씨가 섹시하고 어여쁘다고 생각되기는 해도, 네 앞에서 섹스가 가능하기나 할까? 에이, 말도 않돼, 어디 가서 그런 얘기 꺼내지도 마라. 미친놈 취급 당하기 십상이니.’
그러나, 첫 마디가 꺼내기 어려웠지, 진우는 시도 때도 없이 나에게 수아 와의 삼섬을 부추키기에 이른다. 나는 진우가 엮어 내려는 기회를 분명하게 알아 차리고, 차일피일 바쁜 촬영 일정을 내세우며 피해가는 와중이었다.
‘여보세요, 기획사 Simple입니다. 말씀하세요.’
‘저 거기 정 영훈 씨라고 계세요?’
‘전데요, 누구세요?’
‘저 수아에요. 안녕하셨어요? 다름이 아니고, 진우씨가 오늘 회사에서 쓰러 졌대요. 집에 오기는 했는데, ……막무가내로 영훈씨를 찾아서…… 이렇게 전화 드렸어요. 저녁에 시간 좀 내 주세요. 그이가……. 많이 아픈 것 같아요.’
‘알겠어요. 제가 저녁에 가 볼께요, 그 자식, 어디가 아프길래….’
나는 별일 아니겠지 하면서 오후에 있을 일정을 다음 날로 미루고, 저녁을 일찌감치 설렁탕으로 떼우고 진우의 집으로 향했다.
‘띵동’
‘어서 오세요.’
‘진우는 좀 어때요? 이거 좀 받으세요.’
나는 사가지고 간 오렌지 주스를 내밀었다.
‘진우는 어디 있어요?’
‘방에요, 들어가 보세요.’
방문을 열자, 침대 위에 웅크리고 누워 있는 진우의 모습이 보였다.
‘임마, 어떻게 된 거야? 아프긴 어디가?’
이불 안에 누워 있던 진우가 갑자기 스프링 처럼 이불을 재끼면서 벌떡 일어났다.
‘아주 공갈 염소똥, 10원에 열두개, 속았 지롱? 하하하…. 내가 아프긴 어디가 아프냐? 네가 하도 바쁘다고 하면서 이 핑계, 저 핑계 대길래, 내가 수 한번 써 본거지.’
‘나, 이런! 난 그런 것도 모르고 없는 돈에 주스까정 사 들고 왔잖아!’
‘잘 됐네, 뭐…그렇게 서 있지만 말고, 우리 오랜 만에 술이나 먹자.’
진우는 이미 술상을 봐 두었다고 하면서 식탁으로 가자고 했다. 나는 거실로 나오면서 이 공갈 쑈에 일조한 수아 씨에게 주먹을 휘둘러 보였다. 수아 씨는 그냥 웃을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식탁에 마주 앉은 세 사람은 술잔을 마주치면서 웃음을 나누었다.
‘우리 세 사람의 뼈와 살이 타는 밤을 위하여!’
‘야! 그건 또 무신 소리래?’
술을 들이키면서 진우가 자랑 스럽게 운을 띄웠다.
‘영훈아! 내가 전에부터 말하던 거 있잖아? 그거!’
‘그거라니?’
‘우리 셋이서 같이 하자는 거 말이야? 나 그거 오늘 승낙 받았다니깐! 의심 나면 수아 한테 물어 봐.’
‘너 정말!…..아니 근데, 수아 씨는 저 놈 청을 들어 줬단 말이에요?’
수아 씨는 고개만 숙이고 말은 못한 채, 끄덕이기만 했다. 나 이런 참!
‘내 참, 기가 막혀서, 섰던 자지도 꺼질 소리내 그랴. 야, 그렇다고 내가 어떻게 너랑 수아씨랑 같이, 그것도… 그걸….’
나는 말 문이 막혔다. 그러나, 수아 씨는 나를 쳐다 보면서,
‘진우씨가 정말 원하나 봐요. 질투고 뭐고, 아무것도 없이, 그렇게 친한 영훈씨랑 같이 한번 해보면 정말 좋을 것 같다면서….’
서로가 술을 들이키면서도 섹스를 하게 될 거라는 상상은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벌떡거리는 좇대의 감흥은 나의 의지와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더군다나 술을 먹는 도중에 진우는,
‘수아야, 옷좀 편한 걸로 갈아 입고 나와. 내가 얘기한 거 있지, 그걸로…’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온 수아 씨의 모습에 나는 그만 아연질색 하고 말았다. 분명히 진우는 오늘 셋이서 섹스를 할 작정을 한 게 틀림 없었다. 수아 씨의 나이트 가운은 연한 핑크 빛으로 그 안의 속살이 다 비쳐 보이는 하늘하늘한 소재로 된 것이었고, 그 안에는 아무것도 입질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때, 우리 수아 이쁘쥐? 임마, 입 좀 닫아라, 파리 들어갈라. 촌시럽기는…’
수아씨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진우야, 너 진심이냐?’
‘고롬!’
술판은 이미 그 정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진우는 서 있는 수아 씨의 손을 붙들고, 앉아서 입을 짝 벌리고 있는 나의 손까지 같이 붙잡더니만,
‘자, 이제 새 역사가 열리는 거야, 알았지?’
하면서 나와 수아 씨를 먼저 등을 떠밀며 방안으로 들려 보냈다. 방안에 들어선 내가 머뭇하고 있자, 진우는 어서 씻고 오라며, 수아 씨의 가운을 벗기고, 침대에 누우라고 지시했다. 나는 몸을 씻는 도중에도 뭐가 뭔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몸을 다 씻고서 방안으로 들어 섰을 때, 코를 확 찌르는 냄새가 있었다. 그것은 동물의 냄새였다.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살거죽의 냄새, 아니 남녀의 몸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음란의 향기라고 하는 편이 더 적절했다. 왼쪽에 진우가 눕고, 가운데 수아 씨가, 그리고, 오른 쪽에 내가 누웠다. 그때, 왼쪽에 누워있던 진우가 일어나면서 침대 옆의 의자에 걸터 앉았다.
‘자 이제, 우리 수아 좀 이쁘게 사랑해 줘. 네가 내 친구라면 말이야. 난 쫌 보다가 조인 할게.’
팔꿈치를 궤며, 실내의 조명을 낮추는 진우. 손 끝이 덜덜 떨리고 있는 것이 멀리서도 보이고 있었지만 조명을 낮추어 그 모습을 끝까지 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신음과 쾌락의 줄다리기… 끝없이 외쳐대는 그녀의 비명 같은 신음소리와 더불어 방안에는 쾌락 이외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렇게도 갖고 싶었고, 밤마다 나의 눈앞을 가득 메우던 자위의 대상에서 그녀는 이제 나의 섹스의 요화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몸을 덮치면서도 끝끝내 이름을 부를 수 없었다. 그것은 옆에서 그녀의 입에 자신의 좇을 물린 채, 보지에 좇을 찢어져라 쑤셔 박고 있는 내 등을 격려하듯이 쓰다듬고 있는 진우에게 들려 주어서는 안될 소리인 것 같았기에…
‘윽윽윽… 진우씨 영원히 사랑해, 당신만을………’
‘후---아!’
세 사람이 격정적인 쓰리썸의 열기에 취해 바닥에 모두 누워 호흡을 고르는 것이 바로 어제의 일이었다. 나는 일요일 아침까지 내 작은 오피스 텔에서 늦잠을 자 버렸다. 구지 잠을 자고 가라는 두 사람의 만류를 뿌리치고 나온 것은 두 사람의 얼굴을 다시 대한다는 내 양심이 허락칠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비척대며 일어나 거실의 TV를 켰다. 때마침 TV에서는 뉴스를 하고 있었다. 뉴스에는 빗길에 고가차도의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지상으로 추락한 차륜사고에 대한 화면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원 별 미친 놈 다 보겠네, 멀쩡한 가드레일은 왜 디받고 지랄이야 라며, 웃고 있었다.
‘삑삑삑’
책상에 놓여 있는 FAX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에게서, 그것도 일요일에 FAX가 오는가 일어나서 살펴봤다.
‘영훈아, 나 진우야!
이렇게 불쑥 연락해서 미안하구나.
이쯤에서 너는 알아야 하겠기에….
우선 열쇠나 받아라. 무슨 뜻인지는 이 FAX를 다 읽을 때 쯤이면 기억 날거야.
나 입사 시에 건강진단 할 때는 멀쩡했는데,
어제 회사에서 나를 좀 보자구 하더라.
급성폐암 말기 래나 뭐래나….
담배도 않 피우고, 기침 한번 한 적도 없는 내가 폐암 말기라니…
너 우리 아버지가 어릴 적 돌아가셨단 말 들었지?
아마 유전 이었던 가봐.
집에 돌아올 때까지 정신이 하나도 없더구나.
수아 에게는 얘기하지 않을 수 없었어.
어제 너를 불러 올 때까지 끝끝내 울음을 참지 못하는
수아를 달래느라 나 정말 애 먹었다. 네가 눈치 챌까봐…
죽기 전에 건강한 몸으로
그렇게 셋이서
좋은 추억이나 만들자고 내가 강짜를 부렸거든.
타이밍은 별로 않 좋았지만….
그렇지만 이렇게 너에게 연락하는 것은 수아도 모를 거야.
이 FAX를 정확한 시간에 너에게 보내려고,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서 문방구 아저씨께 부탁 하려해.
나는 너희 두 사람에게 병들어 죽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기가
죽기 보다 싫다.
그냥 우연히 빗길에 자동차 사고로……그렇게….해주면 안될까?
지금은 아니지만, 내가 약속해 놓은 시간에 FAX를 보내는 아저씨가
내용을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긴 얘기는 못할 것 같다.
이제 내가 없는 세상에서 수아의 정조대를
책임질 인간은 너 하나밖에 없구나.
영훈아! 절대 그 열쇠는 남 주지 마라.
불쌍한 우리 수아, 부탁해.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부탁할게,
너희 두 사람, 앞으로 결혼식을 올리게 되면,
그 날을 되도록….
내 기일로 잡아주면 안될까?
1년에 한번 이겠지만 너희들의 기쁜 결혼 기념일에 불청객이긴 해도
나도 한자리 끼어 축하해 주고 싶어서…
우리 세 사람, 1년에 한번은 꼭 보고 싶어 질거야.
마지막으로 우리 수아, 한번 더 부탁할게.
과부 됐다고 구박 하지 말구, 잘 보듬어 주렴,
너 밖에 부탁할 사람이 없구나, 알았지? 친구야………
-떠나가는 친구 진우로부터-
그래서 우리의 결혼 기념일은 진우의 기일과 맞추어지게 되었다. 시셋말로 젊디 젊은 남편, 홀랑 잡아먹은 여자를 맞아 들여 새 장가를 가려는 나를 두고, 집에서는 다 미친 놈이라고 했지만 나는 아랑곳 하질 않았다. 많은 시간이 흘러야 잊을 수 있을 것이겠지만 나나 수아 씨나 구지 잊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살아 있었어도 셋이 엮여져 같이 살아가기로 했던 사람들…애써 잊을 필요 있겠나 하는 마음에서 였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오늘 결혼 기념일, 나나 수아 씨나 곁에 없는 진우가 더 보고 싶어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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