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의 그녀 - 9부
2018.08.14 00:30
무더운 한여름의 더위가 식을 줄을 모르는 7 월의 중순. 어느새 여름방학이 찾아왔지만 고3 수험생인
우리에게 있어 방학이란 그저 부족한 과목을 따라잡기 위해 더욱 처절히 노력해야하는 힘든 시간일 뿐이었다.
학교에선 보충수업이란 명목으로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수업을 계속 진행했고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학교 마치는 시간이 약간 일찍 당겨졌다곤 하지만 그 이후엔 독서실이니 뭐니 해서 그저 정해진 루트를
기계처럼 뱅글뱅글 돌기만하는 무미건조하고 힘겨운 일상이 계속되고 있었다.
휴가나 피서, 지금 우리에겐 전혀 다른 세상의 얘기였다.
하지만 그런 괴로운 나날들도 수능이 가까이 임박한 이 시점에서는 쏜살같이 흘러가고 있었다.
분명 달력의 D- day가 엊그제 볼 때와는 달리 순식간에 10 자리 단위로 확확 줄어들어갔다.
그렇게 정신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어느새 3 주 정도의 시간이 유수처럼 흘렀다.
20 일이 조금 넘는 애매한 기간. 나는 손을 들어 머리카락 길이를 이리저리 재어보았다.
머리는 신기할 정도로 빨리 자라는 편이었다. 어디선가 야한 상상을 많이하면 머리가 빨리 자란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그게 사실인걸까?
"....좋아."
6시를 가르키는 시계바늘과 함께 자습시간의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나는 마음을 굳혔다.
드디어 오늘, 그녀를 만나러 가는 거다.
기다리기 힘들 정도로 길게 느껴졌던 지루한 시간이었다.
이 삭막하게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요즘 내 마음 속에 신선한 작은 활력소 하나가 생겼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루 빨리 그녀를 만나러 미용실에 가고 싶다는 그 기대감 하나 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방학 보충수업 중의 야간자율학습은 말 그대로 자율이었다. 하고 싶은 사람은 하고
안하고 싶은 사람은 안하는 것. 물론 안할 경우 담임의 따가운 눈총이 쏟아지기도 했고 고3 수험생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자습을 하긴 했지만 학교에서 강제적으로 시키지 않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덕분에 6 시까지의 정규수업과 같은 보충수업과 필수 자습시간만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으니.
마음을 굳힌 나는 오늘 모처럼 야자는 물론이고 독서실에 가는 것까지 생략하고 서둘러서 바로 집에 돌아와
이것저것 멋을 내기 시작했다. 머리 손보러 가는 미용실에 가면서 머리에 멋 부리고 가는 내 모습이
스스로도 이상한 놈처럼 느껴졌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꾸미고 옷까지 이쁘게 차려입고는 단단히 준비를 했다.
마치 고2 때 친구들과 미팅 나갈때 차려입었던 것처럼 세심하게 신경을 써서 준비를 마친 나는
벌써부터 두근두근 떨려오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집을 나섰다.
"어서 오세요."
ML 헤어라인의 유리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카운터에 서 있던 여성 직원이 내게 인사를 건넸다.
손님용 쇼파에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직원이 물었다.
"찾으시는 디자이너가 있으신가요?"
평**면 이 질문을 받았을 때 고개를 저었겠지만, 오늘은 조금 경우가 달랐다.
나는 내 쪽에서 먼저 누군가를 지목한다는 것이 어쩐지 쑥스러워 잠시 머뭇거렸지만 곧 용기를 내서
지갑에서 유경 누나의 명함을 꺼내들어 직원에게 보여주었다.
"이 누나요."
나는 결코 흑심이 있어서 이 누나를 찾는게 아니에요, 라고 말하듯 최대한 태연한 얼굴로 말하려고 했지만
어쩐지 얼굴이 살짝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여직원은 살짝 미소를 짓더니 쭈욱 길게 늘어진 의자들을
가로질러 직원실 문으로 걸어갔다.
"유경 씨. 호출이네요."
"....네?"
직원실 안쪽에서 아름다운 음율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흘러나왔다.
왠지모르게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누가 절 찾으세요?"
"호호, 유경 씨 찾는 손님이 어디 한둘인가."
역시나 이 미용실에 오는 고객들 가운데 그녀를 찾는 남자들이 많은 것 같다.
나는 내 자신도 전혀 다를 바 없이 그런 사내놈들 가운데 하나라는 걸 스스로 알고있으면서도
그런 부류와 같은 손님으로 인식되었나 싶어 어쩐지 이유없이 찝찝해졌다.
"저 쪽 손님."
여직원이 내가 앉은 쇼파를 가르켰고 곧 직원실 안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천사같은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근 3 주 만에 보게되는 그 매혹적인 자태에 얼이 빠진 것처럼 그녀를 넋놓고 바라보았다.
그녀도 직원에 안내에 내가 있는 방향을 돌아보고는, 그 순간 서로 시선이 마주쳤다.
그리고 내 얼굴을 보더니 잠시 후, 그 예쁜 눈을 토끼처럼 동그랗게 뜨는 그녀.
먼저 인사라도 해야하는건가 싶어 잠시 아무 말도 못하고 어색하게 앉아있는 나.
하지만 다행히도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혹시 안 오시는건가 싶어서 걱정했는데, 너무 늦게 오셨네요?"
"하하.. 그럴리가요."
어깨에 가운을 둘러주며 살짝 웃음을 짓는 그녀의 모습은 이 3주라는 시간 동안 내가 매일마다
애타게 떠올렸던 그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였다. 그렇게나 다시 보고 싶었던 그 미소를 마침내 눈 앞에서
마주 대하고 있으니 기대감으로 떨려오던 가슴이 이젠 세차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한편으론 혹시나 만남이 어색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던 내 우려와는 달리 그녀는 자연스럽게 날 맞이해주었다.
"후훗, 오시나 안오시나 매일 살펴봤는데 도통 안 오시더라구요."
마치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한 그녀의 말에 심장이 두방망이질쳤다.
물론 그녀가 내가 찾아올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겠지만, 나를 특별히 신경쓰고
있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감격스러웠다.
"좀 바쁘게 살고 있어서요. 하하."
"아.. 그러고보니 고3 이셨죠? 많이 힘드실 것 같네요."
내 머리카락 길이를 이리저리 재보던 그녀는 문득 내 어깨를 보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그 때 다친덴 좀 어떠세요?"
"네? 아아, 이거..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 때 떨어진 목검에 얻어맞고 다친 어깨. 3 주 정도가 지난 지금은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았다.
나는 그 당시의 일이 다시 떠올라 나도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너무 죄송해서 자꾸 신경이 쓰였는데.. 별 탈은 없으셨어요?"
"그럼요."
걱정스럽게 물어보는 그녀의 마음 씀씀이가 무척 착해보였다.
그리고 한편으론 그 착한 성격과는 극명하게 대조적인 그녀의 시건방진 동생이 순간 떠올랐다.
"참, 그러고보니... 동생이랑 만난 적이 있어요."
"아, 들었어요. 얼마 전에 윤아가 제게 얘기해주던걸요."
"네? 그 애가요?"
"청소하다 만났다고 그러던데요?"
난 그 윤아란 아이가 언니에게 나에 대한 말을 했을거란 생각은 못했기에 조금 불안해졌다.
혹시 어떤 안좋은 말이라도 늘어놓은건 아니겠지?
"하하, 저보고 뭐라 그러던가요?"
"글쎄요.. 약간 귀엽고 밉살스런 남자라던가?"
"....."
귀엽고 밉살스럽다니.... 도대체 그 애매한 평가는 뭐지?
시건방진 녀석, 이왕이면 좋은 말만 좀 해줄 것이지. 그리고 귀엽다는건 또 뭐야?
"후훗, 제 동생이 좀 철이 없는 성격이지만 나쁜 애는 아니에요. 이쁘게 봐주세요."
"하하.. 물론이죠."
솔직히 그 애가 생긴건 이쁘긴 하지만.
훗, 그래도 이렇게 자기 언니처럼 성격까지 착하면 얼마나 좋아?
"공부는 잘 되세요?"
"2학년 때 까진 놀다가 올해들어 공부 시작했는데 쉽지는 않네요, 하하."
"힘내시고 열심히하세요. 그러고보니 수능이 얼마 안남았죠?"
"네, 좀 있으면 50 일이에요."
"저도 고등학교 다닐 때 날짜 수 세보고 그랬던 기억이 나네요. 후훗.."
그녀의 고등학교 시절이라...
문득 그녀가 여고생일 때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교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 무지무지 이뻤을 거야, 분명. 흐흐.
"뭐, 결과는 별로 안좋았지만요..."
"네?"
그녀는 들릴락 말락하는 조그마한 중얼거림과 함께 옅은 쓴웃음을 지었다.
난 혹시 그녀가 고3 시절 수능을 잘 못 보기라도 한건가 싶어 최대한 조심스럽게 물었다.
"결과가 안좋으셨어요?"
"네... 사실 그 때 좀 힘든 일도 있었고... 사정이 별로 안 좋았어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표정에서 왠지모를 우울함이 언뜻 스쳐지나감을 본 것 같았다.
나는 그 사정이 무엇이었는지 매우 궁금했지만 어쩐지 그것을 물어서는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름대로 빠른 내 눈치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혹시 몸이 아프기라도 했던걸까?
"호호.. 그래도 다 핑계일 뿐이죠, 뭐."
"아, 아니에요. 핑계라니요."
아무래도 분위기로 보아 그녀는 과거에 좋지 않은 개인적인 사정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래도 일단은 어떻게든 그녀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수능이 뭐 중요한가요, 아니.. 뭐, 좀 중요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중에 무슨 일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죠.
지금 하고 계신 미용실 일 너무 보기 좋잖아요. 그러니까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솔직히 이 나라 학생으로서 수능만큼 중요한게 세상에 어디있겠냐만은,
나는 지금 그녀를 위한 어떠한 말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에 나름대로의 어설픈 위로를 되는 대로
만들어내었다. 사정도 정확히 모르는 주제에 서툴기 그지없는 위로. 하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그런 내 말에 그녀는 잠시 아무런 말이 없이 의자 앞의 거울에 비추어진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진심이 통했기 때문일까, 곧 그녀는 너무나 아름답고 눈부신 한줄기 미소를 지었다.
"정말요?"
"그, 그럼요. 정말이죠."
의자 앞의 거울을 통해 그 예쁜 미소가 비추어지는 모습을 마주 대하자 가슴이 주체할 수 없이 두근거렸다.
마치 녹아내릴 것만 같은 그런 황홀한 기분.
"후훗, 원래 제가 격려를 해드려야 하는 건데 되려 제가 위로를 받고 있네요. 고마워요."
"하하.. 천만에요."
그녀의 표정이 다시 환하게 밝아지며 매혹적인 미소를 짓는다.
나는 그 모습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끼며 속으로 연신 나이스를 외쳤다.
아무래도 조금은 잘 보여진 거겠지?
그녀와의 분위기는 이전보다 한층 더 부드러워졌다.
이전까지는 그래도 직원과 고객 간의 대화라는 느낌이 없지않아 있었다만 지금은 한결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그 스스로도 예상치 못했던 기대이상의 성과가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미용실 안을 지나가던 다른 여직원이 그녀를 톡톡 건드리며 장난삼아 건넨 말은 내 기분을
더더욱 상승시켰다.
"어머, 사이 좋네? 애인이야?"
"얘가 손님한테 못하는 말이 없어."
아무래도 같은 미용실에서 일하다보니 서로 친한 사이의 직원인 것 같았다.
그 여직원은 유경 누나의 옆구리를 슬쩍 건드리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좋겠네? 근사한 남학생한테 호출도 받고. 에휴, 역시 여자는 이쁘고 봐야한다니까?"
"농담 말구 가서 일해. 너 찾는 손님들도 있잖아."
"그럼 뭐해, 다들 아저씨들인데."
"손님 차별하다 실장님한테 혼날걸?"
"치~ 아무튼 잘해봐~ 호호."
그 여직원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른 손님을 맡으러 어디론가 걸어가버렸다.
둘의 대화를 듣고있던 나는 얼굴이 약간 달아올랐지만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입가에 걸리는 웃음을 참으려 애를 써야 했다.
"조금 꾸미고 온게 효과가 있었나?"
이름은 모르겠지만 방금 그 직원 누나에게 나는 무한한 감사를 느꼈다.
비록 농담조로 건넨 말이긴 했지만 그래도 남들이 보기에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퍽 사이 좋게 보였나
싶어서 기분이 들떴다. 덕분에 그녀가 머리를 손질하는 내내 좋은 분위기를 끌어갈 수 있었다.
그녀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내게 미용실 일에 관한 생활담을 이것저것 들려주었고 나도 그 흥미있는 얘기를
자연스럽게 받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잡다한 말들을 나누었다.
나는 이 좋은 분위기를 타서 어떻게 그녀에게 한발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사실 연상의 여인에게 접근할 때 무엇을 가장 먼저 우선으로 해결해야 하느냐는 이미 답이 나와있었다.
그 말을 꺼내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나는 지금 이 좋은 분위기라면 어색하지 않게 그 말을 꺼낼 수 있을거란
생각에 용기를 내었다.
"저기, 누나라고 불러도 되나요?"
물론 내 마음 속에서는 이미 그녀를 누나라고 표현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녀를 직접 부를 때에 그래도 될지를
묻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었고 또 나름대로의 뜻이 있는 질문이었다.
이것은 그녀와 가까워지고 싶은 내 마음의 표현이기도 했지만, 사실 그녀를 부를 만한 마땅한 호칭이 없는 곤란함
때문이기도 했다. 이름을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고, 계속해서 저기요 라고 부르기도 어려우니까.
사실 다른 남자들의 경우엔 이 상황에서 그녀보다 나이가 적을 경우 자연스럽게 누나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내 경우는 좀 달랐다. 내 질문에는 단순히 그녀를 부르는 호칭의 문제를 떠나서 그녀와 나 사이를 직원과 손님의
사이에서 한발짝 나아가 한결 자연스러운 사이가 되고싶다는 의미를 어느정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내 말의 의미를 그녀가 알아들었는지는 과연 의문이지만, 어쨌든 지금의 분위기와 내가 그녀의 동생과도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라는 점 등을 보았을 때 이 상황에서 그 질문에 거절할 이유는 없을 터였다.
"그럼요. 물론이죠."
시원시원한 반응에 나는 나도모르게 입가에 웃음을 띄었다.
"대신 그러면 저도 이제부터 말 놓아도 되겠죠?"
"네?"
누나의 그 갑작스런 질문에 나는 거울을 통해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녀는 장난기있게 생긋 웃었다. 평소의 매혹적인 웃음과는 또 다른 느낌의 이쁘고 귀여운 웃음.
난 두근거리는 내 심장소리가 그녀에게 들리지 않길 바라며 마주 웃음을 지었다.
"네, 당연히... 하하."
"후훗. 고마워."
어쨌든 이로써 그녀와의 관계에 한발짝을 더 내딛은 듯한 기분이다.
나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이루어낸 내 자신을 끊임없이 속으로 칭찬하며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오늘도 운이 따라주는 날인 것 같다.
이렇게나 끝내주게 아름답고 천사같은 미인을 누나로 부를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제 곧 수능보고 졸업하는데 자르기보단 다듬기만 하는게 어떨까?"
"그럴까요?"
"응. 더 길러서 매직을 넣을 수도 있고... 지금 자르기는 좀 아깝잖아."
"그건 그래요."
솔직히말해서, 사실 내가 머리를 자르러 온 건 누나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였지
결코 그게 머리를 자르고싶어서는 아니었다.
나도 머리를 기르는걸 좋아하는데 굳이 자르고 싶을 이유가 어디있겠는가.
다 유경 누나를 보고싶은 마음에 머리카락 희생하는 기분으로 왔던 거지.
머리를 자르기보다 모양만 다듬는다면 굳이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도 미용실에 올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내 머리는 원래 반곱슬이었기 때문에 평소에 개인적으로도 볼륨 매직이나 스트레이트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는데. 님도보고 뽕도따고, 일석이조인 셈이다.
"하하, 머리에 볼륨매직 해본 적 한번도 없는데 어울릴지 모르겠네요."
"뭐 걱정마. 수능 치고 오면 누나가 이쁘게 해줄게."
생긋 웃는 누나의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다.
앞으로도 물론 이 미용실을 찾을 계획이었지만 그녀에게서 직접 그런 식의 말을 들으니 무언가 약속이라도
한 기분에 마음이 뿌듯해졌다.
누나가 나에게 말을 놓기로 한 이후부터는 대화의 흐름이 아까보다 더욱 자연스러워져서
아무런 어색함도 없이 서로 말을 주고 받을 수 있었다.
역시 친해지고 싶은 사람과 가까워지려면 자연스런 대화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맞추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서로 격식 있게 존댓말을 하는 것도 좋지만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면 서로 간의 허물을 느끼지 않도록
적당히 친근하고 자연스러운 평어로 말을 주고받는 것이 이상적이다.
나야 뭐 누나에게 함부로 말을 놓으려니 그건 너무 예의가 없어보일까봐 못하겠지만은 유경 누나는
나보다 나이도 많은데 굳이 존댓말을 쓸 필요가 없었다.
물론 그것도 그것 나름의 즐거움이 있긴 하지만 사실 나도 지금처럼 아까보다 더욱 친근한 느낌의 말투가
훨씬 듣기좋았다.
아, 그러고보니 아직까지 누나 나이를 모르는구나.
"누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응? 난 스물셋."
"음, 그럼 동생하고 다섯살 차이시네요."
23 살이라... 뭐 나하고 네살 차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하지만.
"후훗, 왜? 생각보다 너무 많아?"
"아뇨. 그럴리가요."
사실 네살 연상의 여인이란 참으로 애매한 대상이지만 그렇다고 실망할 것도 없었다.
스물 셋이면 딱 좋지, 뭐.
솔직히말해서 내가 그녀와 연애를 할 것도 아닌데.
난 스스로를 낮게 깎아내리진 않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그녀와의 연애를 바란다면 그것은
엄청난 욕심이었다. 그녀 정도의 미모라면 아마도 구애를 청하는 남자들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줄을 이을텐데.
내가 아무리 그 정도의 발전을 바란다고해도 냉정히 생각해서 그녀가 나를 그런 대상으로 봐줄 리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남자로 생각할지 안할지도 정확히 모르는 일이었다.
그냥 친하게 지내는 아는 동생 정도라면 몰라도, 미용실 직원의 눈에 고삐리가 남자로서 들어오기나 할까?
"그러고보니.. 남자 친구는 있을까?"
궁금했다. 이렇게 엄청난 매력의 여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남자가 있을지.
아마 그런 남자가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복을 많이 받은 남자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궁금해도 그런 것까지 물어보는 것은 좀 어색했다. 너무 속보인다고 할까.
난 물어보기도 애매했고 솔직히 굳이 대답을 듣고싶은 질문도 아니어서 그 질문은 마음 속에 묻어두었다.
대신 나는 다른 질문을 택했다.
"그럼 혹시 대학생이세요?"
스스로 물어보면서도 대충 짐작을 해보았다.
대학생이라면 이렇게 온종일 미용실 일을 할만한 시간이 되지 않을텐데,
그렇다면 휴학인가? 아니면 전문대?
"후훗.. 아냐. 난 대학에 못 갔거든."
그녀는 약간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그 대답에 속으로 괜한 이야기를 꺼냈나 싶어 덜컥했지만 다행히도 그녀는
특별히 기분이 나빠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윤아만큼은 좋은 대학 보내고 싶은데... 윤아도 3학년이 되면 열심히 하겠지? 호호."
"하하, 너무 걱정마세요. 고3 되면 알아서들 잘 하거든요."
난 아마도 아까 전 그녀가 말했던 고교 시절때 힘들었던 사정과 그녀가 대학에 가지 못한 이유가
무슨 연관이 있을거라고 짐작했지만 더이상 그것에 대해 더 자세히 물어보는건 바보같은 짓이었다.
하지만 궁금하긴 했다.
누나에겐 도대체 어떤 사정이 있었을까?
유경 누나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즐거운 시간은 그야말로 쏜살같이 지나가버렸다.
머리카락을 그저 조금 다듬기만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별로 짧아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좋았지만
계산대에 섰을 때는 오늘은 이만 이 미용실을 떠나야한다는 사실이 못내 나를 아쉽게했다.
계산대로 다가오는 유경 누나를 보며 나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슬쩍 넣을 수 밖에 없었다.
오늘도 샴푸대의 의자 위에서 누나가 머리를 감겨줄 때 실눈을 뜨고 그녀의 몸매를 조심스럽게 눈으로
훑어보다보니 자지가 진정이 되지않고 빳빳히 서서 청바지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덕에 자지를 아플 정도로 압박하는 청바지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 티가 나지 않게 수습하느라
애를 먹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럴까 싶어서 샴푸대 의자 위에 누웠을 때 눈을 뜨지 않기로 했건만 지난 번에 미용실에 왔을 때에도
그녀가 내 머리를 감겨줄 때 조심스럽게 훔쳐보았던 새하얀 목선과 눈 앞에서 아슬아슬하게 왔다갔다하던
그 가슴의 윤곽이 떠올라 도저히 눈을 뜨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슬그머니 실눈을 뜨고 그녀의 사슴같이 고운 목선과 옴폭하게 들어간 섹시한 쇄골의 라인을
눈에 담다보니 어김없이 나도모르게 아랫도리에서 반응이 오고 말았다.
그것은 결코 이성으로는 자제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눈 앞의 유경 누나가 내가 자신을 생각하며 물건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를거란
생각에 어쩐지 죄책감도 들었지만 그것은 조그마한 조각에 불과할 뿐, 오히려 마음 속에서는 한편으로
거센 흥분이 들끓고 있었다.
어디 이것 뿐인가, 사실 유경 누나를 생각하며 자위를 한게 벌써 몇번은 되고도 남는데..
만약 그녀가 내 이런 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모던 이미지의 원피스 블라우스 차림을 한 그녀의 새햐안 목 언저리에 자꾸만 눈이 간다.
저 부드러운 목선을 한번 핥아볼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속으로 그런 음란한 생각을 하고 있음은 전혀 알지 못하고 누나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야시시한 상상으로 살짝 달아오른 얼굴을 감추기 위해 급히 지갑을 꺼내 만원짜리 한장을 꺼냈다.
용돈까지 아껴가며 모아둔 돈이었다. 그런데 유경 누나는 웃으면서 그 돈을 도로 내게 밀었다.
"호호, 저번에 말했잖아. 공짜로 해주겠다고."
"네? 아니, 그래도 어떻게.."
"괜찮아. 그 때 일이 아직도 미안한데 어떻게 이 정도도 안해주겠어?"
누나는 방긋 웃으며 지폐를 다시 내밀었다.
어떻게 이렇게 천사같은 여인이 있을 수 있을까?
"정말 괜찮아요?"
"그렇다니까. 그냥 아껴뒀다 필요한데 써."
외모도 마음씨도 완벽한 미인. 남자라면 반하지 않을 수가 없는 여성이리라.
그런데 정말이지 언니는 이렇게 착한데 동생은 왜 그럴까?
"고마워요 누나."
"뭘.. 내가 더 고맙지. 그렇게 다쳤는데도 괜찮다고 해줬잖아."
누나의 따뜻한 호의를 거절하지 못하고 지갑에 다시 만원짜리를 집어넣으려는데 문득 지갑에 꽂혀진
그녀의 명함이 보였다. 3 주전부터 지갑에 꽂아다니며 애지중지 보관했던 그 작은 명함 한장.
그 명함을 통해서 그녀의 이름을 알게되었지.
"그럼 안녕히계세요."
"그래, 잘 가. 담에 또 오구."
물론 다음에 다시 오겠지만 솔직히 그 전에 어떻게든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하고 나는 바랬다.
나는 미용실 문을 나서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녀의 모습을 눈에 담아두었다.
바지춤 안에서 아직까지도 진정되지 않고 빳빳이 단단해져있는 자지가 느껴진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유경 누나에게 분명 죄송스런 일이었지만, 아무래도 나는 오늘밤 또 그녀를 생각하며
자지를 움켜쥐게 될 것 같다... 누가 뭐래도 상상은 자유니까, 흐흐.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하고 미용실의 문을 밀어젖혔다.
그런데 문을 밀고 나가려던 순간 반대쪽에서 미용실로 들어오는 한 손님 덕에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아무 생각없이 그 들어오는 남자 손님을 지나쳐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문득 그 남자를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언뜻 들었다. 나는 그 손님의 곁을 지나가며 흘끗 옆모습을 살펴보았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위로 치켜올라간 약간 째진 눈매. 날카롭고 뾰족해보이는 인상.
어쩐지 기분 나쁜 느낌....
"아."
순간 머릿 속에서 한줄기 기억이 스치고 지나갔다.
3 주전 내가 이 미용실 바로 옆 골목에서 보았던 그 남자...
방금 미용실 안으로 들어섰던 남자 손님은 분명히 그 때 유경 누나를 차갑게 만들었던 기분 나쁜 인상의
바로 그 남자였다.
"맞아. 틀림없어."
내 기억력이 쓸만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남자의 날카롭고 기분 나쁜 이미지가
그 얼굴을 다시보는 순간 즉각 기억이 떠오를 정도로 인상적이었던 것이다.
"저 남자... 오늘도 유경 누나를 찾아온건가?"
나야 물론 저 남자에 대해 자세히 모르지만, 분명히 그 때 유경 누나는 저 남자에게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는 미용실 문을 밀고 나가려다 말고 잠시 그 자리에 서서 그 남자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 기분나쁜 인상의 남자는 카운터를 맡고있는 여직원에게 다가서서 뭐라고 말을 전했다.
그러자 여직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지금은 아까 내 머리를 다듬어주느라 바닥에 떨어진 내 머리카락을 빗자루로
쓸어담고 정리하고 있는 유경 누나에게 다가가 그녀를 불렀다.
"유경 씨, 오늘따라 찾는 손님이 많네요."
"네?"
누나는 빗질을 잠시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여직원이 손짓으로 가르키는 방향을 돌아보더니, 그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와 눈이 마주쳐버렸다.
그리고, 순간 참혹하게 굳어지는 그녀의 얼굴.
그 차갑게 변하는 표정을 마주하는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는 그녀에게 비릿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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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따끈한겨울입니다.
날씨가 거꾸로 가는듯 한바탕 태풍이 지나간 후에 날씨가 오히려 더워지고 있네요.
봄, 가을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다시 한여름이 찾아오는 것 같아 슬픕니다 ^^
더위에 고생하시는 분들 다들 건강 조심하시구요, 곧 다가올 추석 여러분 모두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이 글은 제가 예전에 미용실에 갈 때마다 굉장히 이쁘다고 생각했던 한 누나가 문득 떠올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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