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스커트 - 2부
2018.08.14 01:00
3
윤식이와 옥순이가 결혼할거라는 건 우리 모두의 대세였다. 언제 결혼할 것인가만 남겨 놓은 그들의 소식이 갑자기 뒤틀리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 3학년 때였다.
옥순이가 이상해졌다는 것이다. 이상한 짓을 한다는 것이다. 무슨 이사한 짓이냐고 물으면 시원하게 답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 숨기고 알 수 없는 시간이 그에게 있다는 것이다.
서울의 윤식이를 근처에서 지켜보던 내 외종사촌 순애의 말에 의하면 옥순이가 매주 하루는 어디론가 사라진다는 것이고 또한 그날은 이상하게도 초록치마를 입는다는 것이었다.
아침 일찍. 아주 일찍 새벽기도를 다녀온 그녀 옥순이는 동네에 있는 빵가게에서 빵을 사가지고는 어디론가 차를 타고 떠나는데 그날은 아무도 그를 본적이 없고 그녀는 늘 그렇듯이 이튿날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그녀를 지켜본 사람들의 모듬 얘기라고 전했다.
" 언니, 어제 어디 갔었어?"
" 응, 가는데가 있어서.."
" 매주 가?"
" 그렇다고 봐야지.."
" 뭐하는데야?"
" 응, 알필요 없어. 알려고도 말고.."
순애가 대충 전해주는 옥순이와의 대화 내용이다
윤식이는 이때부터 소주를 그라스로 먹기 시작했단다. 나에 비해 주량이 좀 적었던 그가 술에 간을 씻고 정신이 나갔다든지 친구들을 찾아와서 괜한 소리로 횡설수설 한다든지 그런 소문이 들려 왔지만 윤식이의 본심은 아마도 외로움과 옥순이와 관계에 대한 트러블 때문이리라는 짐작 말고는 아무 것도 아는게 없었고 그렇다고 물어볼 수도 없는 처지였다.
윤식이 생각과 옥순이 그리고 내 사촌 순애.
점점 넓어지는 생각과 윤식이가 주고간 총 한자루
왜 윤식이는 총을 주고 갔으며 옥순이가 초록치마를 입는 날은 어디로 가는 걸까..
나는 핸드폰을 걸었다. 순애에게
" 야, 난데 잘 지냐?"
" 어, 오빠구나. 뭔일 있어?"
" 뭔일은.. 한가지 궁금해서"
"말해"
" 너 옥순이 소식 아냐?"
"응~ 글쎄. 지금도 거기 산다고는 하던데 요즘은 통 못만나지. "
" 그래, 그런데 아직도 그 짓거리 한다냐?"
" 그 짓거리..?"
" 응, 초록치마 말야.."
" 아, 그거. 여전하겠지 뭐."
" 그랬구만 근데 그 치마가 어찌 생겼냐?"
" 그게 궁금해서 전화했어? ㅎㅎ"
" 아니 그건 아니고.."
" 뭘 아냐 오빠도 속물이네 ㅎㅎ"
" 뭔소리 하는거여. 윤식이가 며칠전에 왔다 갔는데 소식 준다고 하고 아무 소식이 없으니까 혹시해서 전화 한거지"
" 알았어. 내가 봤는데 그 치마 말야 스커트더라"
" 스커트, 짧은 스커트?"
" 응"
4
옥순이 어머니는 미망인이었다.
시골여자 답지 않게 고운 화장을 하고
늘 신탄진 장엘 가는 그녀를 볼때마다 어린 마음에도 참 예쁘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장보고 돌아오는 옥순이네 집엔 늘 조기며 동태가 있었고
농사를 열심히 짓는 우리보다 없는게 없을 정도로 풍성했다. 그렇다고 옥순이네가 장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남달리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지만...
어느해 가을로 기억 된다. 학교를 마치고 이현(배고개)을 해가 뉘엇거리는 저녁 사촌누이와 함께 넘어 오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 왔다. 소곤거리는 소리. 어디.. 옥당골 호도나무 밑에서 무슨 일일까.. 약간 무서워하는 중 1짜리 사촌누이 민아의 손을 잡고 나무 뒤로 숨었다. 그리고 입에다 검지를 대고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했다.
"안돼요. 성님 알면 어쩔려구.."
옥순이 엄마의 목소리였다.
"여기 아무도 없잖아. 뭐든지 줄께.."
그때 우린 괴장면(?)을 보고 말았다. 상대 남자는 아랫마을 비룡리 이장님이 분명했다.
입에 침이 넘어 갔다. 사촌누이 민아의 얼굴이 노을 탓인지 너무 붉어지고 있었다.
"야, 가자.."
나는 얼른 민아의 손을 잡아 끌었다. 민아는 암말 없이 끌려 왔다.
"너 말하면 안돼 알았지?"
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귓뒤로 소리가 들려 왔다. 나의 궁금증은 견딜 수 가 없었다.
"야, 너 여기 잠깐 있어 혹시 옥순이 엄니를 죽일지도 모르잖아 "
그러나 그건 괜한 소리였다. 민아의 손을 밀치고 되돌아 온 길을 거의 기어서 올라가 옥순이 엄마와 이장님의 꼴을 보았다. 짐승처럼 헐떡이는 본능이 황혼에 벌어지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짐작은 했지만 남자와 여자가 그렇게 리얼하게 불을 태우는 것은 처음 보았다.
어릴때 아버지와 어머니와 한방을 쓸때 내가 잠자는 줄 알고 두분이 서로를 껴안고 어둠속에서 하시던 말이 생생하다
" 맛이 어뗘?"
" 꿀맛이져"
침만 꼴깍거리고 넘어 갔지만 자는 척 참느라 고생한 그날 밤이 새고는 난 다시는 엄마 방에서 자는 것이 즐겁지가 않았었다. 그리고 엄마가 해주는 밥이 더러웁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참만에 두분(옥순이 엄니와 이장님)의 뜨거운 정사가 끝났나 보았다. 조용히 몸을 식히는 한쌍의 모습이 내게 선연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서로의 입을 갔다대고 부르르 떨며 애무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한창시절을 혼자사는 미망인과 동네 일을 총괄하는 불혹의 남정네가 나누는 비밀스런 정사 장면을 봤던 것이다. 세상은 늘 모를 일이잖는가
그런일이 있은후 사촌누이인 민아와 나는 더욱 친해졌다. 손을 붙잡고 산을 같이 넘어오고 학교 갈때에도 올때에도 늘 같이 다녔다. 학교가 끝나고도 꼭 어디서 무엇을 하나 챙겨보곤 했었다. 지금 민아는 청주에 산다. 곧 만날테지...
황혼이 그때처럼 물든 날은 지금도 그 광경을 클로즈 업 시키며 어이없게 웃곤 하는데 그 후로 옥순이 엄니가 팬티를 안입고 다닌다는 괴소문이 우리친구들 사이에 돌곤 했었다.
5
옥순이는 남다르게 정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그녀를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얼굴 못지 않은 정 때문에 많은 남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속 급한 남자들은 한번만 웃어 주어도 자기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들기도 했다. 윤식이와는 늘 가까이 지냈지만 무언가 석연찮은 점이 있었는데 나중에 안일이지만 강준석이라는 선생의 등장 때부터라고 했다.
강준석은 장재리 교회의 주일학교 선생이었는데 워낙 샤프하게 생긴데다 말도 잘하고 마음씨도 깔끔하고 남을 돕는 일에는 늘 앞장서던 사람이어서 소문이 대단히 좋았던터다.
옥순이는 윤식이에게서 마음을 돌려 강선생을 좋아 했던 모양이다. 윤식이는 그때부터 무언가 위기감을 느꼈고 옥순이의 뒤를 밟곤 했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작년말 쯤인가 친구 누구에게서 강선생 얘기가 나왔는데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병신이 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했지만 자세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강선생을 좋아하는 사람은 또 있었다. 우리 사촌동생 민아. 속을 들어내 보이지 않지만 그를 보러 교회도 가고 그가 동네에 온다고 하면 이쁘게 보이려고 법석을 떨었지만, 강선생은 누구나에게 똑같이 정답게 말하고, 또 예수교의 말만을 전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나도 한때 그의 권유로 모임에 참석 했었지만 요란하게 박수를 치는 모습이 발광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후로는 강선생을 피했 다녔었다.
배고프지만 순수한 시절엔 도랑물도 순수하게 흘러가고 산도 정겹고 잎도 늘 진실한 바람으로 흔들렸었다. 산의 솔이 청정한 공기를 내면 대청호가 생겨 날줄도 모르는 길마다 진달래 향기가 온통 벌집 같은 마을.
자꾸 그날들의 에피소드랄까 남녀간의 사랑얘기들이 가슴의 젊은 날로 나를 인도한다.
아마도 너무 정겨운 날들의 푸른 추억이어서 그런 모양이다.
윤식이가 다녀간지 얼마간의 기다림이 망각으로 변할 즈음 편지 한 장이 날아 왔다.
<< 야, 나다 윤식이. 좀 더 기다려 다오.
권총은 사람을 죽이는 총은 아닌게 그냥 가지고 있고 내가 그 총의 용도를 가르쳐주러 곧 갈께. 갈때는 내 친구 한명 데리고 가마. 벤처사업가인데 머리 팍팍 도는 놈이지. 그때 가서 얘기하기로 하고 >>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뭔놈의 벤처사업가 친구리야. 이 총이 정말 뭐리여?
빌어먹을놈 옥순이는 어디다 둔기여. 혹시 이거 가지고 옥순이 죽이라는 건 아니겠지. 사람죽이는 총은 아니라고 했응께...
담배 한대를 더 빼물고 핸드폰를 들여다 보니 전화번호가 하나 찍혔는데..
"여보세요. 누구세요?"
"응, 오빠, 나 민아"
" 니가 왠일이냐?"
" 왜 난 전화하면 안돼?"
" 아, 그건 아니고. 너 한동안 소식 끊고 살아서."
" 오빠, 윤식이 오빠 소식 알어?"
" 윤식이.. 아니 근데 왜?"
" 얼마전에 옥순이 언니가 왔었는데 아마 둘이 헤어진 것 같대"
" 그려, 잘 모르겠네"
" 오빠 그건 그렇고 우리 신랑 외국 발령 나버렸네"
" 왜?"
" 응, 연수 6개월 간대"
" 잘됐네. 나 놀러좀 오라고 해봐라"
" 알았어. 가고나면 바로 전화할께"
나는 괜히 웃음이 났다.
혼자사는 여자만 보면 괜히 즐거운게 남자 아닌가
" 야, 민아야. 너 이쁜거 여전하지..?"
" 오빠, 오빠 여전하네. 알았어. 한잔 하자구? 알았어"
윤식이와 옥순이가 결혼할거라는 건 우리 모두의 대세였다. 언제 결혼할 것인가만 남겨 놓은 그들의 소식이 갑자기 뒤틀리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 3학년 때였다.
옥순이가 이상해졌다는 것이다. 이상한 짓을 한다는 것이다. 무슨 이사한 짓이냐고 물으면 시원하게 답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 숨기고 알 수 없는 시간이 그에게 있다는 것이다.
서울의 윤식이를 근처에서 지켜보던 내 외종사촌 순애의 말에 의하면 옥순이가 매주 하루는 어디론가 사라진다는 것이고 또한 그날은 이상하게도 초록치마를 입는다는 것이었다.
아침 일찍. 아주 일찍 새벽기도를 다녀온 그녀 옥순이는 동네에 있는 빵가게에서 빵을 사가지고는 어디론가 차를 타고 떠나는데 그날은 아무도 그를 본적이 없고 그녀는 늘 그렇듯이 이튿날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그녀를 지켜본 사람들의 모듬 얘기라고 전했다.
" 언니, 어제 어디 갔었어?"
" 응, 가는데가 있어서.."
" 매주 가?"
" 그렇다고 봐야지.."
" 뭐하는데야?"
" 응, 알필요 없어. 알려고도 말고.."
순애가 대충 전해주는 옥순이와의 대화 내용이다
윤식이는 이때부터 소주를 그라스로 먹기 시작했단다. 나에 비해 주량이 좀 적었던 그가 술에 간을 씻고 정신이 나갔다든지 친구들을 찾아와서 괜한 소리로 횡설수설 한다든지 그런 소문이 들려 왔지만 윤식이의 본심은 아마도 외로움과 옥순이와 관계에 대한 트러블 때문이리라는 짐작 말고는 아무 것도 아는게 없었고 그렇다고 물어볼 수도 없는 처지였다.
윤식이 생각과 옥순이 그리고 내 사촌 순애.
점점 넓어지는 생각과 윤식이가 주고간 총 한자루
왜 윤식이는 총을 주고 갔으며 옥순이가 초록치마를 입는 날은 어디로 가는 걸까..
나는 핸드폰을 걸었다. 순애에게
" 야, 난데 잘 지냐?"
" 어, 오빠구나. 뭔일 있어?"
" 뭔일은.. 한가지 궁금해서"
"말해"
" 너 옥순이 소식 아냐?"
"응~ 글쎄. 지금도 거기 산다고는 하던데 요즘은 통 못만나지. "
" 그래, 그런데 아직도 그 짓거리 한다냐?"
" 그 짓거리..?"
" 응, 초록치마 말야.."
" 아, 그거. 여전하겠지 뭐."
" 그랬구만 근데 그 치마가 어찌 생겼냐?"
" 그게 궁금해서 전화했어? ㅎㅎ"
" 아니 그건 아니고.."
" 뭘 아냐 오빠도 속물이네 ㅎㅎ"
" 뭔소리 하는거여. 윤식이가 며칠전에 왔다 갔는데 소식 준다고 하고 아무 소식이 없으니까 혹시해서 전화 한거지"
" 알았어. 내가 봤는데 그 치마 말야 스커트더라"
" 스커트, 짧은 스커트?"
" 응"
4
옥순이 어머니는 미망인이었다.
시골여자 답지 않게 고운 화장을 하고
늘 신탄진 장엘 가는 그녀를 볼때마다 어린 마음에도 참 예쁘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장보고 돌아오는 옥순이네 집엔 늘 조기며 동태가 있었고
농사를 열심히 짓는 우리보다 없는게 없을 정도로 풍성했다. 그렇다고 옥순이네가 장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남달리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지만...
어느해 가을로 기억 된다. 학교를 마치고 이현(배고개)을 해가 뉘엇거리는 저녁 사촌누이와 함께 넘어 오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 왔다. 소곤거리는 소리. 어디.. 옥당골 호도나무 밑에서 무슨 일일까.. 약간 무서워하는 중 1짜리 사촌누이 민아의 손을 잡고 나무 뒤로 숨었다. 그리고 입에다 검지를 대고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했다.
"안돼요. 성님 알면 어쩔려구.."
옥순이 엄마의 목소리였다.
"여기 아무도 없잖아. 뭐든지 줄께.."
그때 우린 괴장면(?)을 보고 말았다. 상대 남자는 아랫마을 비룡리 이장님이 분명했다.
입에 침이 넘어 갔다. 사촌누이 민아의 얼굴이 노을 탓인지 너무 붉어지고 있었다.
"야, 가자.."
나는 얼른 민아의 손을 잡아 끌었다. 민아는 암말 없이 끌려 왔다.
"너 말하면 안돼 알았지?"
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귓뒤로 소리가 들려 왔다. 나의 궁금증은 견딜 수 가 없었다.
"야, 너 여기 잠깐 있어 혹시 옥순이 엄니를 죽일지도 모르잖아 "
그러나 그건 괜한 소리였다. 민아의 손을 밀치고 되돌아 온 길을 거의 기어서 올라가 옥순이 엄마와 이장님의 꼴을 보았다. 짐승처럼 헐떡이는 본능이 황혼에 벌어지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짐작은 했지만 남자와 여자가 그렇게 리얼하게 불을 태우는 것은 처음 보았다.
어릴때 아버지와 어머니와 한방을 쓸때 내가 잠자는 줄 알고 두분이 서로를 껴안고 어둠속에서 하시던 말이 생생하다
" 맛이 어뗘?"
" 꿀맛이져"
침만 꼴깍거리고 넘어 갔지만 자는 척 참느라 고생한 그날 밤이 새고는 난 다시는 엄마 방에서 자는 것이 즐겁지가 않았었다. 그리고 엄마가 해주는 밥이 더러웁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참만에 두분(옥순이 엄니와 이장님)의 뜨거운 정사가 끝났나 보았다. 조용히 몸을 식히는 한쌍의 모습이 내게 선연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서로의 입을 갔다대고 부르르 떨며 애무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한창시절을 혼자사는 미망인과 동네 일을 총괄하는 불혹의 남정네가 나누는 비밀스런 정사 장면을 봤던 것이다. 세상은 늘 모를 일이잖는가
그런일이 있은후 사촌누이인 민아와 나는 더욱 친해졌다. 손을 붙잡고 산을 같이 넘어오고 학교 갈때에도 올때에도 늘 같이 다녔다. 학교가 끝나고도 꼭 어디서 무엇을 하나 챙겨보곤 했었다. 지금 민아는 청주에 산다. 곧 만날테지...
황혼이 그때처럼 물든 날은 지금도 그 광경을 클로즈 업 시키며 어이없게 웃곤 하는데 그 후로 옥순이 엄니가 팬티를 안입고 다닌다는 괴소문이 우리친구들 사이에 돌곤 했었다.
5
옥순이는 남다르게 정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그녀를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얼굴 못지 않은 정 때문에 많은 남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속 급한 남자들은 한번만 웃어 주어도 자기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들기도 했다. 윤식이와는 늘 가까이 지냈지만 무언가 석연찮은 점이 있었는데 나중에 안일이지만 강준석이라는 선생의 등장 때부터라고 했다.
강준석은 장재리 교회의 주일학교 선생이었는데 워낙 샤프하게 생긴데다 말도 잘하고 마음씨도 깔끔하고 남을 돕는 일에는 늘 앞장서던 사람이어서 소문이 대단히 좋았던터다.
옥순이는 윤식이에게서 마음을 돌려 강선생을 좋아 했던 모양이다. 윤식이는 그때부터 무언가 위기감을 느꼈고 옥순이의 뒤를 밟곤 했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작년말 쯤인가 친구 누구에게서 강선생 얘기가 나왔는데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병신이 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했지만 자세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강선생을 좋아하는 사람은 또 있었다. 우리 사촌동생 민아. 속을 들어내 보이지 않지만 그를 보러 교회도 가고 그가 동네에 온다고 하면 이쁘게 보이려고 법석을 떨었지만, 강선생은 누구나에게 똑같이 정답게 말하고, 또 예수교의 말만을 전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나도 한때 그의 권유로 모임에 참석 했었지만 요란하게 박수를 치는 모습이 발광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후로는 강선생을 피했 다녔었다.
배고프지만 순수한 시절엔 도랑물도 순수하게 흘러가고 산도 정겹고 잎도 늘 진실한 바람으로 흔들렸었다. 산의 솔이 청정한 공기를 내면 대청호가 생겨 날줄도 모르는 길마다 진달래 향기가 온통 벌집 같은 마을.
자꾸 그날들의 에피소드랄까 남녀간의 사랑얘기들이 가슴의 젊은 날로 나를 인도한다.
아마도 너무 정겨운 날들의 푸른 추억이어서 그런 모양이다.
윤식이가 다녀간지 얼마간의 기다림이 망각으로 변할 즈음 편지 한 장이 날아 왔다.
<< 야, 나다 윤식이. 좀 더 기다려 다오.
권총은 사람을 죽이는 총은 아닌게 그냥 가지고 있고 내가 그 총의 용도를 가르쳐주러 곧 갈께. 갈때는 내 친구 한명 데리고 가마. 벤처사업가인데 머리 팍팍 도는 놈이지. 그때 가서 얘기하기로 하고 >>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뭔놈의 벤처사업가 친구리야. 이 총이 정말 뭐리여?
빌어먹을놈 옥순이는 어디다 둔기여. 혹시 이거 가지고 옥순이 죽이라는 건 아니겠지. 사람죽이는 총은 아니라고 했응께...
담배 한대를 더 빼물고 핸드폰를 들여다 보니 전화번호가 하나 찍혔는데..
"여보세요. 누구세요?"
"응, 오빠, 나 민아"
" 니가 왠일이냐?"
" 왜 난 전화하면 안돼?"
" 아, 그건 아니고. 너 한동안 소식 끊고 살아서."
" 오빠, 윤식이 오빠 소식 알어?"
" 윤식이.. 아니 근데 왜?"
" 얼마전에 옥순이 언니가 왔었는데 아마 둘이 헤어진 것 같대"
" 그려, 잘 모르겠네"
" 오빠 그건 그렇고 우리 신랑 외국 발령 나버렸네"
" 왜?"
" 응, 연수 6개월 간대"
" 잘됐네. 나 놀러좀 오라고 해봐라"
" 알았어. 가고나면 바로 전화할께"
나는 괜히 웃음이 났다.
혼자사는 여자만 보면 괜히 즐거운게 남자 아닌가
" 야, 민아야. 너 이쁜거 여전하지..?"
" 오빠, 오빠 여전하네. 알았어. 한잔 하자구?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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