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고 바깥으로 향할 때 - 24부
2018.09.08 03:30
문을 열고 바깥으로 향할 때 - 24
선영의 보지 속에 좆물을 한껏 쏟아 넣은 노란 머리 청년은 만족한 미소를 띠며 서서히 자지를 뽑아들었다. 정액을 가득 머금은 자지가 약간 뻑뻑하게 뽑혀져나왔고, 소량의 피도 묻어나왔다. 선영의 보지는 무리한 성교로 인해 붉게 달아올라 사타구니를 경련시키고 있었고, 주르륵 새어나오는 정액에도 피가 섞여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선영을 그쯤에서 놔둘 생각 따윈 없는 것 같았다.
옆에서 선영의 팔을 봉쇄시키던 남자가 일어서서 두번째는 자신이라는 걸 강력하게 피력하기라도 하듯 그녀의 다리 사이로 서둘러 다가갔다. 그 자신이 일을 진행해야 했기에 선영의 두 팔은 놓은 상태였지만, 사실상 그녀는 힘이 다 빠져서 굳이 팔을 붙잡고 있을 필요도 없어 보였다. 힘없이 벽에 기댄 채 바닥에 손을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선영. 땀에 젖은 그녀의 머리카락이 늘어뜨려져 있었지만 이따금씩 하반신을 경련할 뿐,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적어도 그 패거리들이 보기에는.
그리고 두번째 남자가 그녀의 보지 가까이로 자지를 가져가는 동작을 하는 순간이었다.
선영은 갑자기 눈을 떴다. 눈동자의 색깔과 모양 등등은 조금 전 선영과 다를 바 하나 없는 똑같은 모습이었고, 분위기도 변한 게 없어보였지만(성진이라면 미묘한 변화를 알아차렸을지도 모르지만) 사실상 그녀의 내부는 하나의 전환점을 완료한 상태였다. 바로 본래의 선영이 무의식의 심연 속에서 깨어나 그 신체의 의지를 쥐게 된 것. 고개를 숙인 채 죽은 듯 있던 그녀의 입술이 나지막이 열렸다.
“…뭐가 이렇게 불쾌하니.”
“……?”
다가가던 남자는 선영이 중얼거리는 모습에 잠시 멈칫했다. 아직 말할 힘이 남아있나? 그러나 그것은 그야말로 잠깐일 뿐이었고, 남자는 자신의 행동에 머뭇거릴 시간조차 아깝다는 듯 자지를 그녀의 보지구멍 가까이에다가 들이대었다. 아직 씹물이 줄줄 흘러나오는 저 미끈한 구멍 속에다가…….
그리고 그 다음의 장면은 한순간에 일어났다.
남자는 뇌가 굉장한 충격을 받았음을 느끼며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처음에 그는 다른 누군가가 끼어들어서 턱을 가격했다고 생각했다. 도무지 저 힘없이 늘어진 여자가 쳤다고는 생각할 수도 없는 위력이 전해졌기에. PC방의 다른 손님들 중 정의감에 불타는 누군가가 끼어들었나? 그렇다곤 해도 이리 빠르게 기척도 없이…….
물론 그것은 그 남자의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었고, 한발자국 뒤로 물러선 노란 머리 청년과 뒤에서 순서(?)를 기다리던 다른 패거리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방금 저 여자가 다가간 남자의 턱을 걷어찬 것 맞지? 그들은 물론 뒤에서 관망하던 손님들까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묻는 듯한 시선이 되었다.
볼품없이 뒤로 넘어진 남자는 꺼내어진 자지를 도로 들여놓을 생각도 못한 채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앞쪽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눈은 이번엔 더 큰 놀라움으로 커졌다. 선영이 서서히 일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여전히 힘이 없는 듯 고개를 떨구고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비틀거리고 있었지만, 무참히 강간당한 여자란 점을 감안한다면 지금 이렇게 일어선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선영의 입장에서는 이미 그런 비상식적인 행동보다 더 집중하고 있는 게 있었다. ‘일어섰다는 사실’에 놀라느라 그들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팔과 다리 등을 조금씩 꼼지락거리며 신체를 컨트롤해보고 있었다. 측정.
‘여전히 귀찮은 몸뚱아리야.’
선영은 그렇게 생각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시선을 조금 앞쪽 바닥으로 이동시켜, 여전히 일어날 생각도 못하는 ‘조금 전 그녀가 걷어찬 남자’를 바라보았다.
귀신의 눈빛을 본 것처럼 허둥거리는 게 나았을것이다. 하지만 그녀 자체가 바뀌었다는 걸 알리 없는 남자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어쩐지 자신이 그녀에게 압도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울컥하고 말았다. 그래서 다시금 힘으로 제압하려고 벌떡 일어났다.
퍼억-!
1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 남자는 이번엔 그녀의 주먹에 명치를 가격당하고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신음소리조차 제대로 낼 수 없을만큼 깔끔한 타격. 남자는 거품을 물 듯 웅얼거리며 그대로 그녀 앞에 스르르 쓰러져버렸다. 주변에서 이번엔 정확히 봤다는 증거로 경악한 시선이 한데 모아졌고, 그런 시선을 받는 주인공답지 않게 선영은 짜증섞인 시선으로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지탱하고 서있는 것만으로도 부르르 떨리는 다리. 채 낫지도 않은 걸 보니 무의식의 세계에 재잠식(再蠶食)한지 많은 시간이 흐른 건 아니군.
“으아아아!”
“이 빌어먹을 년이!”
옆쪽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패거리 둘이 그제서야 심각성을 자각하고는 온힘을 다해 돌진해들어갔다. 한 녀석은 맨주먹이었지만 다른 한 녀석의 손에는 잭나이프가 들려있었고, 멀리서 관망하던 손님들조차도 신음을 삼킬 정도로 아찔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선영은 침착하게 허리를 뒤로 눕히며 그들의 주먹과 찔러들어오는 잭나이프를 피했다.
공격이 허공을 가르자 두 남자는 잠깐 휘청하였고, 균형을 바로잡으려는 빈틈을 놓치지 않고 그녀는 몸을 돌리며 팔꿈치로 관자놀이를 가격했다. 잭나이프를 든 남자는 얼떨결에 관자놀이를 가격당한 남자가 쓰러지는 것에 떠밀려 넘어졌다. 짧은 순간이지만 선영은 어쩐지 여유있는 동작으로 한 발을 앞으로 내뻗어 남자의 손을 가격했고, 잭나이프는 그의 손아귀에서 떠나 공중으로 튕겨져올랐다. 선영 뒤쪽으로 휘릭 돌면서 날아간 나이프는 컴퓨터 키보드의 자판 사이에 착지하듯 꽂힌다. 투욱.
선영은 비틀비틀 다가가 넘어져있는 잭나이프 남자의 턱을 사정없이 걷어찼다. 그는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기절해버렸고, 세 남자를 쓰러뜨린 장본인답지 않게 선영은 태연하게 주섬주섬 자신의 팬티와 바지를 주워들어 입기 시작했다. 한순간에 혼자 남아버린 노란 머리 청년은 그 위화감 넘치는 어처구니없는 모습에 멍청한 표정으로 응시하고만 있을 뿐이었다.
뭐지? 도대체…. 저 년이 방금 내 동료 셋을 순식간에 쓰러뜨린 년 맞나? 다른 누구 아닌가? 그의 패거리들은 각자 기절하거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여전히 일어날 생각도 못하고 있었고, 그 가운데에서 옷을 다 입은 선영은 다리를 매만지면서 곤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처음 삐끗했던 다리가 여전히 그녀의 의지에 제대로 부합해주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노란 머리 청년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다가가보았다. 선영은 다가오는 그를 보지도 않고 한 팔을 내뻗어 주먹으로 그의 코를 가격했다. 스피드도 스피드지만 코뼈가 부서지는 듯한 정확한 타격에 청년은 얼굴을 감싸쥐고 몇걸음 물러났고 얼른 본능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선영은 여전히 다리를 매만지는데만 정신을 쏟고 있는 모습이었다. 일정량의 데미지와 굴욕감은 청년의 분노를 돋우는 자양분이었고, 그래서 노란 머리 청년은 자신을 완전히 무시하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리곤 곧바로 괴성을 지르며 돌진해들어갔다.
“죽어라, 이년!”
순간, 선영의 한 팔이 옆으로 내뻗어지며 LCD모니터 거치대를 붙잡았다. 그녀는 그것을 수직으로 들어올렸고, CRT에 비해 월등히 가벼운 그것은 연결 플러그가 뽑혀져나가며 본체와 완전히 분리되었다. 선영은 주저 없이 그것을 앞으로 밀어내었다. 청년의 얼굴이 모니터에 가려지듯 한복판에 가격당하고는 다리를 공중으로 들어올리면서 호되게 뒤로 쓰러졌다. 선영은 그런 그의 안면을 향해 곧바로 모니터를 마구 찍어내렸다.
파칵-! 파칵-! 파칵-! 파칵-! 파칵-!
액정 자체는 단단한 게 아니어서 깨지는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위력까지 감소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진득하게 파손되는 LCD모니터가 전하는 기묘한 소리는 PC방 손님들은 물론이고 옆에 쓰러져있는 패거리들까지 몸을 움찔할 정도로 흉흉했다. 선영은 다치치 않은 팔힘이 어디까지 세게 내려칠 수 있는지를 시험해보는 것처럼 강도를 줄이지 않고 끊임없이 내리쳤다. 파칵-! 파칵-! 파칵-! 파칵-!
노란 머리 청년의 얼굴은 곧 알 수 없을 정도로 피투성이가 되었고, 액정 파편과 깨진 커버의 플라스틱 조각들이 사방으로 핏방울과 함께 튀었다. 청년은 발악하듯 몸을 뒤틀다가 곧 그것이 고통의 몸짓으로 돌변했고, 잠시 후에는 정신을 완전히 잃은 채 축 늘어졌다. 그러나 선영은 멈출 생각이 없는 듯 그의 얼굴을 향해 너덜너덜해진 모니터를 계속해서 내리찍었다.
주변에서 감히 끼어들 생각도 못한 채 청년이 죽는 게 아닌가 하고 소리없는 침을 삼켜갈 무렵, 이따금씩 경련만 일으키는 단계까지 온 청년을 향해 수없이 내리찍던 그녀의 손이 간신히 멈추었다. 모니터와 연결된 거치대가 부러져나간 것이다. 선영은 그제서야 허리를 바로 하곤 주변을 둘러보았다.
경악을 감추지 못한 손님들은 그녀의 얼굴을 보자 또한번 지옥의 사신을 보는 시선으로 돌변했다. 청년의 얼굴에서 튄 피가 선영의 옷 곳곳을 물들었고 얼굴에도 적잖은 피가 묻어있었다. 하지만 그런 선영의 표정은 놀라우리만큼 침착했던 것이다. 단지 귀찮은 작업을 하나 끝낸 듯한 살짝 피로한 무표정에 가까웠고, 사실 그건 모니터로 청년을 무차별 가격하는 순간에도 유지되고 있던 표정이기도 했다.
“…….”
입을 다문 채 주변을 한바퀴 둘러본 그녀는 죽은 듯 누워있는 청년 옆에다 거치대 조각을 내던져버렸다. 그리곤 다리를 끌듯이 비틀거리며 카운터로 걸어갔다. 아르바이트생은 용감하게도 도망가지 않고 그의 본연의 임무를 지키겠다는 것처럼 카운터에 있었고 - 라기보단 다리가 굳어서 도망갈 엄두도 못내고 있었다는 쪽이 맞겠지만 - 선영이 걸어오자 그는 비명을 삼킨 채 그녀의 행동을 주시하는 게 고작이었다. 선영은 그의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채 흘끗 고개를 돌려 바라보곤 입을 열었다.
“얼마야?”
“네… 네?”
“얼마냐고? 계산해야 할 거 아냐?”
아르바이트생은 떨리는 손으로 카운터 모니터링 컴퓨터의 마우스를 붙잡으려다 자꾸 놓치고 엉뚱한 곳을 클릭했다. 그래서 계산을 하는 데 조금 시간이 지체되었다. 선영이 물끄러미 바라보는 가운데 그는 마치 대단한 일을 수행하는 것마냥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간신히 클릭 몇 번을 완수했다.
“사사사… 삼천 육백원 입니다.”
꽤나 더듬거리긴 했지만 금액을 알리는 데 성공한 아르바이트생. 선영은 잠시 그를 더 가만히 바라보고는 주머니에서 금액을 꺼내 지불하곤 돌아섰다. 그리고 조금 후 문에 자물쇠가 채워져있다는 것을 안 선영이 다시 돌아보았을 땐 아르바이트생은 기어코 울 듯한 표정이 되어 그녀를 바라볼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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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진은 방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의 문자를 확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의 핸드폰 액정에는 메인 화면만 떠있을 뿐이었고, 그래서 정확한 시간을 재어보고 있다는 추론으로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었다.
저녁 7시 40분. 늦가을의 바깥은 이미 어두워질 대로 어두워져 있는 시각이다. 식사 준비는 약 1시간 전부터 끝나있어서 지금은 데운 음식들이 모두 식은 상태였지만 성진은 입도 대지 않고 있었다. 어쩐지 해가 질 무렵에 느꼈던 불안감이 자꾸만 그를 엄습해온 것이다. 그는 처음엔 침대에 기대어 TV를 시청했고, 잠시 후에는 침대에 걸터앉아 초조히 기다렸고, 이제는 아예 안절부절 못하는 사람처럼 일어서있었다. TV는 이미 한참 전부터 꺼져있었지만, 사실 성진은 처음부터 시청 자체엔 별 의미를 품고 있었던 것 같지 않다. 결국 나가서 찾아봐야 하나라는 심정으로 벽에 걸린 재킷을 돌아보았을 때였다.
쾅-! 쾅-!
원룸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 동시에 흩어지는 그의 생각. 초인종을 놔두고 왜 저렇게 거칠게 손으로 두드리고 있는지에 대해 기분나쁜 의문감을 가지며 성진은 문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현관 앞에서 큰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누구십니까?”
“문 열어, 김성진. 나야.”
선영의 목소리에 성진은 주저 없이 문을 열었다.
“뭐야, 초인종을 놔두고 왜….”
성진의 의문섞인 목소리는 얼마 이어지지 못했다. 선영은 그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발로 거칠게 그의 배를 밀어내었기 때문이었다. 걷어차인 것마냥 뒤로 한참동안 비틀비틀 물러나다 결국 엉덩방아를 찧고 마는 성진. 그의 멍청한 시선이 선영에게 보다 구조적으로 접근했을 때였다. 성진의 입이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열린다.
“은선영…?”
“대행하던 녀석을 부르는 음성은 아닌 것 같군. 그래, 나야.”
“선영… 선영아……!”
성진은 반가움에 배의 통증도 잊고 벌떡 일어서서 그녀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선영은 성진을 밀어붙였던 이유가 있었다. 무표정한 표정으로 힘없이 서있는 그녀와 시선이 마주친 성진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자리에서 멈칫했다. 그리고 그의 눈이 그제서야 경악으로 물들며 입술을 달싹이기 시작한다.
“너… 너 왜이래, 이게… 이 피들은 뭐야? 그… 그러고 보니 왜 다시 본래의 선영이…….”
퍼억-!
이제야 상황이 좀 자각되나보군. 그런 포상마냥 성진의 배에 연이어 가격된건 그녀의 무릎이었다. 성진은 이번엔 꽤나 극심한 아픔을 느끼면서도 본래의 선영이 돌아온 게 확실하다는 기쁨과 의문과, 그녀를 여기저기 물들이고 있는 피에 관한 의문들이 한데 뒤섞여 몰려오는 기분을 받았다. 그리고 성진이 그렇게 바닥에 주저앉아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동안, 선영은 현관문을 닫고 들어와 한 손을 허리에 얹고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입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컴퓨터를 한 대 더 사주든지, 네 컴퓨터를 쓰게 하든지. 그리고 ‘카잔 전쟁’ 이란 게임 알지? 그거 계정을 그녀 이름으로도 등록해 놔.”
당연히 성진의 입장에선 이해 못할 명령들뿐이었고, 그래서 고개만 들어 묻는 시선으로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선영은 그 순간 다른 곳을 바라보며 연이어 말했다.
“이녀석 혼자 PC방을 갔다가 강간당했다.”
“뭐…?”
“양아치 쓰레기 녀석들이 PC방에 포진해있더군. 내기를 빌미로 접근해서 강간한 모양이야.”
자신을 제삼자처럼 표현하는 그녀의 모습은 다른 사람들에겐 충분히 위화감을 심어줄법하지만, 성진은 이미 그녀의 화법에 익숙해있었다. 그래서 대행하던 선영이 강제로 성교를 당하였고, 그로 인해 본래의 선영이 튀어나왔음을 어렵잖게 추측할 수 있었다. 그의 눈이 분노로 물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자식들 있는 PC방 어디야?”
“이미 내가 다 처리했어. 한 명은 운이 나쁘면 식물인간이 될지도 모르겠군.”
“뭐라고……?”
본래의 선영이 이해못할 정도로 강한 건 성진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래서 성진은 그 양아치 패거리들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싸움을 못하거나 수가 한둘에 지나지 않을 거라고 자신을 이해시켜보려 노력했다. 그리고 썩 친절한 여자는 못 되는 선영은 그가 고민해볼 시간을 별로 부여해주지 않고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그녀는 고개를 조금 삐딱하게 기울여서 성진을 쏘아보았다.
“너 도대체 어떻게 된 녀석이기에 다친 여자 하나 제대로 보호 못하냐?”
성진은 순간 울컥했지만 이 상황에서는 말을 삼키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하고는 이성적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바로 어떤 변명도 대지 않는 것.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
“용서를 구할게. 이럼 될까?”
선영은 자신의 앞에 쉽사리 무릎을 꿇는 그를 물끄러미 내려보았다. 성진은 고개를 숙이고 반성한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선영은 짜증이 난다는 듯 옆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잠시간의 정적.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뭐 내가 별로 신경쓰고 싶진 않은 문제지만, 대행하던 녀석이 섹스를 하게 되면 그것이 내게도 적잖게 전해진단 말이야. 정말이지…. 애초부터 돌아오지 않을 생각으로 연애와 섹스를 내 기억속에서 모조리 지우려 했고, 그것은 대행하는 녀석에게 그대로 적용되었지만 이놈의 귀찮은 현실은 섹스를 피해갈 수 없게 만드는군.”
성진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은 자세 그대로 그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연애와 섹스를 하던 때가 네 인생에서 그나마 즐거워서이겠지?”
선영은 성진을 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성진은 선영이 분명히 그것에 동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재차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흔히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라고 하면 그 중 하나는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서라고들 하지. 그리고 그건 네게도 적용되는 것이었겠지? 네 피폐한 삶에서 잠시나마 탈피할 수 있고, 살아갈 만한 가치를 부여했던 건 연애와 섹스로부터 느껴지던 감정 아니었나?”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무의식의 심연 속으로 돌아가지 마. 이채로 나와 살아가.”
선영은 성진을 내려다보았다. 성진은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었고 그 자세 그대로 애원하듯, 하지만 눈을 똑바로 뜨고 그녀를 마주보면서 힘을 담아 말했다.
“내가 네 삶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사랑해볼게.”
선영은 다리가 아파왔다. 그렇잖아도 무리하게 움직인 신체는 그녀에게 끊임없이 쉴 것을 재촉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색하지 않고 가만히 성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말이지, 포기를 모르는 지겨운 남자라고 생각하면서.
사랑이라고? 사랑이 무엇인지 그는 알고 있을까? 선영은 예전에 사귀었던 수많은 남자들과의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그들과 연애를 하면서, 섹스를 하면서 사랑한다는 말은 수없이 많이 들어봤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꽤나 재미있는 자가당착이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사람들은 종종 쉽사리 사랑이라는 단어에 의탁하려 하지만, 사실상 모호하고 정의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들이 뭉뚱그려져서 만만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단어이기도 하다. 사랑이라는 단어에 내포되어 건네지는 말은 서로가 이해할 수 없는 굉장히 어긋난 감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사랑이란 단어는 대부분의 인류들에게 공통적으로 가장 아름답게 비추어지는 것이기도 하지.
이 남자도 삶이란 것을 사랑이란 단어에 의탁하여 살아갈 의미를 발현시켜보려는 것일까? 하지만 곧 선영은 마음속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별 의미 없다. 어차피 그런 고민 따위가 필요 없는 무의식의 세계 속에서 안주하면 그만이니까. 단지 한가지 걸리는 건… 눈앞의 이 멍청이가 나 때문에 괴로워한다는 거다. 나 자신은 괜찮은데, 그는 그렇지 않고 설명을 해도 알아먹는 것 같지도 않다. 도대체 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하지?
하지만 그것도 곧 끝내버려야겠군.
“네 사랑은 에고이즘인가, 앨트루이즘인가?”
“뭐……?”
“설령 둘 다라고 대답한다해도 앨트루이즘쪽에 기울어져있겠지? 희생이란 것이 없고서는 사랑이라는 것이 성립되지 않으니까. 최소한 너희들에게는.”
마치 자신은 차원이 다른 세계의 누군가인 것마냥, 성진을 가리켜 ‘너희들’이란 표현을 건네는 선영. 그리고 성진은 그녀의 말과 지칭에 반박할 수는 없었다. 선영은 한가롭기까지 한 음성으로, 하지만 귀에 또박또박 못박듯 또렷하게 말했다.
“그럼 네 사랑하고 싶다란 감정 또한 희생시켜. 궁극적인 사랑의 완성을 위해서.”
“그게 무슨… 어떻게……?”
“이해가 느리군. 내가 편안히 있을 수 있도록 날 그대로 놔두란 거야. 네가 선영이란 존재를 좋아하나? 그럼 그녀가 원하는 세계에서 안주할 수 있도록 놔주라는 거야. 그것으로써 네 앨트루이즘은 충족되고 사랑이란 것은 완성되겠지.”
성진은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울컥함을 느꼈다.
“이봐! 은선영! 같잖은 말장난으로 날 납득시키려 하지 마! 사랑하니까 놓아준다? 좋아하는 여자가 헤어지자고 하면, 나는 그녀를 사랑하니까 그녀가 원하는 대로 그냥 떠나보내야 한다는 가장 만만하고 비겁한 변명거리를 앨트루이즘이란 근거로 포장하여 건넬 셈인가? 사랑이란 건 그렇게 간단한 게 아냐! 사랑이란 건… 사랑이란 건……!”
그는 결국 못참고 몸은 반쯤 일으킨 채 격하게 중얼거리고 있었지만, 선영은 토론하는 사람이 반박하는 걸 지켜보는 시선으로 덤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성진은 그런 그녀의 시선이 못견디게 싫었다. 속을 짐작할 수 없는 저 무표정. 상대를 방심하게 만들어 자신을 죽여버릴 수도, 또 그렇게 했던 과거의 기억 또한 떠올랐기에. 그래서 성진은 그런 그녀의 시선이란 올가미로부터 빠져나가려고 발악이라도 하듯 소리를 질러댔다.
“상대가 OK라고 해서 안심할 수 없는 것이란 말야! 무슨 뜻인지 아나, 은선영? 그, 혹은 그녀가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해도 끊임없이 걱정하고 아파하고 마치 나 자신이 그런 것처럼 괴로워하는 것. 그로써 이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자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사랑… 그것이 그렇게 만만해 보여? 그것은 이론적으로, 논리적으로 정립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그런데 너는… 네 뇌는 도대체 어떻게 되어있는 거야……. 사랑이란 걸 감히 그런 식으로 정의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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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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