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차장 - 3부 13장

박 차장 3-13







처음 비행기를 타보는 직원이 2명이어서 장우는 자리 배정을 받을 때 창가쪽을 주문했다. 다행히, 방학 기간도 끝나고 떠나는 날이 결혼식이 많이 열리는 토요일이나 일요일도 아니어서 비행기는 좌석에 여유가 있는 편이어서 장우 일행은 비행기 앞쪽의 자리를 배정받을 수 있었다.



장우가 좌석에 앉자마자 잽싸게 장우의 옆 자리에 앉는 것은 정 대리였다.



“헤헤헤, 차장님, 우리 비행기 같이 타고 가요.”



“왜 아니겠어요. 정 대리. 이럴 줄 알았어. 그 대신 귀챦게는 하지마. 나 잘거야.”



“잉…나만 미워하구…알았어요. 조용히 갈께요.”



“신혼여행도 괌으로 갔는데. 차장님이랑 이렇게 비행기 같이 타고 가니까. 다시 신혼여행 가는 기분이에요. 헤…좋다.”



“아…이거…유부녀랑 이렇게 가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차장님!….치…저…저…”



“뭐?”



“아니에요. 그냥 얌전히 간다구요.”



장우의 뒷 자리에는 고 대리와 안 대리가 앉았다. 고 대리는 처음 타보는 비행기라서 그런지 얼굴에 긴장한 것이 역력히 드러났다. 그런 고 대리의 손을 안 대리가 꼬옥 잡아주었다.



“고 대리님, 걱정마세요. 저도 수영 잘해요. 떨어져봤자 바다니까. 제가 고 대리님은 확실히 책임질께요.”



“으응…고마워…근데 약간 긴장된다. 히…”



육 대리는? 짝 없는 육 대리는 혼자 창 밖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드디어,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본 활주로에 도착하는 동안 스튜어디스들이 기내의 안전 수칙을 탑승자들에게 알려줬다. 드디어 본 활주로. 비행기의 엔진 소리가 갑자기 커지더니 비행기는 전속력으로 활주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가속 때문에 의자 등받이에 등이 꽉 밀착되는 것 같았다. 비행기가 떠오르고 있는지 창 밖의 풍경이 점점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고 대리는 긴장 했는지 손으로 치마 앞단을 만지작 만지작 거렸다. 바퀴가 덜컹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드디어 비행기는 지상과 닿은 부분이 없이 급상승을 시도했다. 창 밖 밑으로 인천공항의 불빛이 아름답게 보였다. 조금 지나자 비행기는 고도를 완전히 확보했는지 수평으로 괌을 향해 기수를 잡았다.



“어때요? 아무것도 아니죠? 고 대리님.”



“응…하지만, 바퀴 덜컹거릴 때는 심장이 조마조마하더라. 근데…아래로 보이는 서울이 너무 이쁘네. 난 서울이 저렇게 밝을지 몰랐어.”



“고 대리님, 우리 다음에 비행기 타고 또 여행가요. 제가 많이 많이 모시고 다닐께요.”



“안 대리…”



“헤헤헤, 괜찮아요. 부담 같지 마세요.”



“응, 근데, 육 대리는 왜 이리 조용해?”



“글쎄요. 잠깐만요. 흐흐흐, 저 인간 기절한 모양이요. 완전히 뻗어버렸는데요.”



“어쩌지. 무슨 일 없을까?”



“코 골면서 기절했는데요 뭐. 괜챦겠죠. 나중에 스튜어디스가 깨우겠죠 뭐.”



비행기가 제 고도를 잡자 스튜어디스들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승객들에게 제공할 음료며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기내에 비치된 잡지를 뒤적거리던 장우는 옆 자리의 정 대리를 보았다. 어쩐지 조용했던 정 대리는 이미 잠이 들어있었다.



“그렇게 까불거리더니….”



쌕쌕 거리며 잠을 자는 정 대리의 하얀 얼굴이 오늘 따라 더 귀엽게 보였다. 순간, 비행기가 약간 요동치면서 정 대리의 고개가 장우의 어깨 위로 떨어졌다. 장우는 어깨를 약간 움직여 정 대리의 머리가 편하도록 했다. 정 대리의 흑단 같은 까만 머리카락이 장우의 목덜미를 간질였다.



“이상하게 이 놈은 정 대리 것만 보이거나 닿으면 이렇게 난리를 친단 말이야…”



그렇게 비행기는 영업3팀을 태우고 서태평양의 괌으로 가고 있었다.



비행기의 실내등이 환하게 켜지고 기장의 안내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승객 여러분, 본 비행기는 15분 후, 괌 비행장에 착륙하겠습니다. 현재 괌의 기온은 29도이고 날씨는 맑습니다…..”



스튜어디스들이 승객들의 안전벨트와 좌석 등받이를 확인하느라고 다시 한번 분주히 기내를 오고갔다. 멀리 괌의 항구와 비행장의 불빛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행기를 나오자 마자 일행을 맞는 것은 괌의 후끈한 공기였다. 비행장은 에어컨디셔닝이 잘 되어 있지만 한국의 겨울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그것도 충분치 않았다. 911 사태부터 입국심사가 매우 까다로와져서 일행은 사진과 지문을 모두 찍고서야 입국장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입국 도장을 찍어주는 공항 직원이 장우와 정 대리에게 “happy Honeymoon!” 이라는 멘트를 해 주었다.



“봐요. 차장님, 저 사람들한테는 우리가 부부로 보이나봐요. 근데, 남편이 너무 늙어서…에구에구…”



“정 대리, 까불지마라. 나도 어린 마누라 안좋아 하니까.”



짐을 찾고 밖으로 나오니 40대 초반의 남자가 장우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여기야! 장우야!”



“어! 김기배. 잘 있었니?”



두 사람을 반갑게 서로를 포옹했다.



“소개할께. 여기는 내 친구 김기배씨. 내 대학 동창이고 스쿠버 다이빙에 미쳐서 아예 식구들 데리고 괌으로 이민을 왔어. 여기서 여행사와 스쿠버 다이빙 숍을 하고 있어.”



김기배 라고 소개를 받은 사람과 영업3팀의 사람들도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영업3팀은 기배가 가지고 온 밴에 몸을 실었다. 밴은 공항을 빠져나와 투몬만에 즐비한 호텔들을 지나 아가나만의 빌라에 도착했다.



“여깁니다. 여러분이 괌에 있을 동안 묵을 빌라에요. 방이 모두 여섯 개 있고 방 마다 욕실이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욕실마다 자쿠지가 설치 되어 있으니까 이용하세요. 그리고 내일부터는 차모르 원주민 메이드가 가실 때 까지 시중을 들도록 했습니다. 괌에 처음 오시는 분들도 있을 테니까. 내일 오전은 제가 차로 괌을 한번 일주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늦었으니까. 얼른 짐 푸시고 푹 자도록 하세요.”



“야…기배야. 이거 생각보다 훨씬 좋은 곳을 골라줬는데. 내가 준 돈으로 부족한 거 아니야?”



“야…임마. 나도 먹고 살아야 하는데 내 돈 내고 이걸 잡아줬겠니? 하지만, 그 돈으로 잡을 수 있는 제일 좋은 곳은 잡았지. 대신, 내가 하는 스쿠버 다이빙은 꼭 해야한다.”



“알았다. 고맙다. 가봐라. 늦었는데. 재수씨한테도 안부 전해주고.”



“그래, 잘자. 나 가볼게. 내일 아침 10시에 올게. 메이드는 8시 정도에 아침 식사 준비해 놓을거야.”



“참, 기배야. 내일, 아침에 올 때 우리나라 신문 하나 구할 수 있을까?”



“글쎄, 한번 알아볼게. 안되면 저녁에 갔다줄게.”



“그래. 잘가라.”



“응. 잘자.”



영업3팀은 빌라 안으로 들어가서 장우가 지정하는 각 자의 방으로 들어가서 짐을 풀었다. 빌라는 취사가 가능한 널찍한 주방과 안락한 소파가 있는 너른 거실도 갖추고 있었다. 각 방에는 퀴 사이즈급의 침대와 로마 스타일의 옷장, 그리고 창 밖에는 조명을 받는 야자수가 서태평양의 바닷 바람에 야자수 잎을 한가로이 흔들고 있었다.



“오늘은 일찍 자라구…잘자”



“차장님도 주무세요.”



모두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서 짐을 풀을 때, 고 대리의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 대리였다.



“고 대리님. 저 잠시 들어가도 될까요?”



“응…들어와. 무슨 할 얘기있어?”



“네…저…고 대리님이 전에 저에게 물어보셨쟎아요. 차장님 좋아하냐고.”



“응… 그랬지.”



“저…차장님 좋아해요. 그것도 아주 많이요.”



“하지만…”



“저 무슨 말씀하실지 알아요. 하지만…저도, 이혼했어요. 차장님 때문에 이혼한 건 아니고, 고 대리님이 물어보실 때도 이혼한 상태였어요.”



“응. 그랬었구나.”



“저, 괌에서 차장님하고 좋은 시간 보내고 싶어요. 뭐 차장님은 저 한테 마음을 안 열어주시지만…그래서, 제가 차장님하고 같이 있더라도 고 대리님이 걱정하실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그래. 차장님 참 좋은 분이셔. 나도 두 사람이 잘 됐으면 좋겠어.”



“고마워요. 고 대리님. 그런데 고 대리님도 차장님 좋아하셨던거 아니세요? **제약에서 우리팀으로 온거 보면. 사실 다른 사람들은 영업3팀에 합류할 때만 해도 차장님을 몰랐거든요.”



“후후…그래, 나도 차장님을 좋아했지. 그래서, **언더웨어로 오겠다고 한거고. 하지만…난 차장님한테는 다가갈 수가 없어.”



“왜요?”



“응…그런게 있어. 그리고, 처음엔 차장님 때문에 영업3팀에 오게 됐지만. 지금은 다른 이유가 너무 많아.”



“흥. 두 사람이 비밀까지 있는 사이네…하옇튼 바람둥이 기질이 다분하다니깐…그리고, 저도 처음엔 우리팀 들어와서 기분이 영 엉망이었는데. 지금은 참 잘된 일이었던 것 같아요. 고 대리님하고 같이 일해게 된 것도 그 중 하나고요.”

“고 대리님. 그럼 저도 그만 방에 돌아갈께요. 안녕히 주무세요.”



“응, 정 대리도 잘자. 좋은 꿈 꾸고”



영업3팀 사람들의 괌에서의 첫 밤은 그렇게 평화롭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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