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이야기 - 1부 2장

그녀의 이야기 - 은지 제1부 (수정)



첫경험 2장 ([email protected])



2월이 왔다.

아직 겨울의 도시는 회색과 흰색이 어우러져 마음도 몸도 황량하게 만들고 있었다.

개학이 다되서야 그아이는 돌아왔다.



그간 나혼자 애태웠던 시간을 모르는 그아이가 왠지 원망스러웠지만 귀국하자마자

달려온 그아이를 만나자마자 달궈진 후라이팬에 떨어진 버터처럼 스르륵 굳었던 마음이

녹아버렸다.



달력에 남몰래 표시해둔 14일...... 마침 토요일이라 학교는 일찍 마치고 그아이를

만나러갈 수 있었다.



난생처음 초코렛 가루를 사다가 내가 직접 만든 초코렛를 포장해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탔던 버스안 광경......

아직 미끄러운 거리의 보도블록을 휘청거리면서 약속장소로 걸어가던 기억만이 오히려

지금가지 또렷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아뭏튼 설레이던 마음으로 달려가 막상 그아이 얼굴을 보구나니 머라고 말해야 될지

말문이 딱 막히며 얼어붙고 말았다.

한참만의 어색한 시간속에서 어렵게 뗀 말이 그뒤 더 날 어색하게 만들어 버렸다.



" 저기..... 이거...... 별다른 의미는 아..아니야. 친구로써 ..그래 친구로써 주는거야.

하나도 못받았지? 자...... 이거라도 받아. "



그아인 엉겹결에 받고는 한손에 포장된 내초코렛을 올려놓구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그리곤 약간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코트 안주머니에 그것을 집어넣었다.

찰라였지만 그아이의 입가에 살짝 걸쳐진 그 씁쓸한 미소를 보니 순간 내가 그아이에게 못할 말을

그애에게 해버린듯 해서 마음 한편이 짜릿하게 아려왔다.

하지만 머라고 수습해야할지 생각나지않았다.



" 그래. 고맙다. 우리 한강에 갈까? "



그아이는 어느새 좀전의 표정은 지우고 밝은 모습으로 내손을 잡으며 말했다.

난 그냥 바보같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쫓아갈 수 밖에 없었다.



어둑해진 강변가 도로의 가로등이 주황색빛을 뿌리며 들어오기 시작했다.

점차 어둠이 짙어지고 그 빛사이로 천천히 걷는 동안 그아이는 무언인가 생각에 잠긴채 걸어갔다.

무엇인가도 잘 기억나지 않는 짧은 물음과 답변이 서로에게 오고 갔을뿐...... 거의 침묵속의 시간이었



다.



다리를 다건너가 자판기의 커피를 빼어 양손에 쥐고 있을때마저도 그 침묵의 시간은 깨어지지

않았다.

난 애써 신경쓰지않는듯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 무언가 무너지고 있는 듯한 기분을

추스릴수 없었다.

웃으며 버스에 올라 헤어는 졌지만 이미 기분은 엉망이었다.



상대를 알수없는 화가 온몸을 감싸고 후회와 서운함이 같이 밀물처럼 몰려들었다.

주위가 깜깜해지고 금새 울것처럼 눈가가 화끈화끈 젖어오는거 같았다.



" 바보...... 멍청이...... "



" 정말 내가 홀깃 쳐다보면서 너 눈치보는거 몰랐던 거야? "



" 왜 그런 말을 한 걸까...... 차라리 아무말도 안하고 줄껄 그랬어....... "



수만가지 생각과 생각들이 머리와 가슴속을 헤쳐놓고 있었다.





그날 이후 그아이로부터 연락이 와도 만나지 않도록 피했다.



일부러 피하려고 하는것도 아니고 일부러 쌀쌀하게 대하려고 하는것도 아니었지만 왠지

그아이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아이로부터 연락이 오거나 하교길 날 만나러오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함께 있는 자리를 피하게

되었다.



막상 그아이로부터 멀어지면 금새 왜이럴까 후회하면서도 막상 다시 그아이가 다가오면 또다시

마음이 싸늘해지면서 등을 돌려 달아나길 반복하고 있었다.



이런시간이 반복되던 어느순간 그아이로부터 연락이 끊어져 버렸다.

하교길 익숙하게 된 그아이의 기다리던 모습도 사라져버렸다.



하루이틀 그 시간이 길어지자 이번엔 절망감이 나를 삼켜버렸다.

전화를 들어 연락하고 싶었지만 막상 그아이의 번호는 누를수 없었다.

난 거미줄에 걸린 무엇처럼 이도저도 못한채 혼란에 빠져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뒤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수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무언가 부속이 빠져버린 시계처럼 아니면 텅빈 양철인형처럼 멍하니 학교와 집을 오가고 있었다.



바람이 매서운 어느날 저녁, 거리엔 평상시와 다른 화려한 분위기가 넘쳐 흐르고 있었다.

쌍쌍이 다니는 연인들의 모습들, 보기에 들기도 힘들어보이는 화려한 장식의 바구니를 들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

난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 참...... 화이트데이......였지 오늘...... "



혼자 들떠 초코렛을 만들었던때가 마치 일년전처럼 멀게 만 생각되었다.

고작 한달정도도 안되는 시간이었는데 이렇게 달라지다니......



모두들 행복한 세상속에서 나만 동떨어져 나와있는것 같았다.

지구에서 떨어져나와 홀로 돌고 있는 인공위성처럼......겉돌고 있는 나의 모습은 너무도 작아보였다.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가는 길은 왜그리 멀었던지, 발은 몸은 왜이리 무거운지 한없이 걸어도 마냥

그자리인듯 길게 만 느껴졌다.



마침내 집앞 골목길을 돌아서는데 눈앞 발끝에 긴 그림자가 갑자기 나타났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는 순간 난 눈에 뜨거운 것이 그렁그렁 고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멀리 보이는 그림자의 주인, 지금까지 날 아프게 하고 있는 그아이였다.

추운 바람속에서 그아이가 붉은 장미다발로 장식된 커다란 바구니를 들고 서있었다.

가로등아래 보이는 그의 모습이 왠지 현실로 느껴지지 않고 멀리 느껴졌다.



어울리지않는 꽃샘추위가 찾아와 매우 추웠던 저녁시간 얼마나 기다렸는지 그아이 입술이 파랗게

질려있었는데도 나를 보곤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마치 그웃음은 지금까지 만나지 않았던 시간이 거짓처럼 녹여버렸다.

그리고 가로불빛에 그의 눈동자는 물기에 촉촉히 젖어 별빛처럼 빛나는듯 보였다.

그리고 가까이에서 울리는 그의 나직한 목소리.



" 널 생각하며 고른 거야. 친구보다 좀더 가까운 너이길 바라며...... "



난 그순간 바구니를 내밀고 있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이 어찌나 차던지 금새 잡은 내손에도 얼어붙는듯한 한기가 스며들어왔다.

가슴이 아리면서 나도 모르게 고였던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아이는 천천히 다가왔다.

마치 슬로우모션을 보듯 그의 얼굴이 눈안 가득 다가오자 나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얼굴에 느낄듯말듯한 숨기운이 느껴지며 눈가에 그의 입술이 머물었다.

마치 내 눈물을 그의 입술로 닦으려는듯이.

그의 입술이 눈가에 느껴지자 순간 부끄러움이 밀려와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순간 양볼에 그의 양손이 느껴졌다. 그리고 얼굴이 들어올려지며 내입술에 그의 입술이 포개져왔다.



난 당황스럽기도 하고 알수없는 기쁨을 느끼며 그의 입술을 받아드렸다.



약간 거칠은듯한 그아이의 입술 느낌과 그리고 차거운 감촉이 나에게 전해왔다.

그리고 점차 누구것인지 알 수 없는 뜨거운 숨결과 보드라움이 진하게 내입술을 통해 온몸으로

퍼져갔다.

그리고 양볼을 감싸고 있는 그애의 손도 점차 따듯해져가는듯 했다.



그아이와 내가 그렇게 첫키스를 한 시간은 실제 그리 긴 시간을 아니었을것이다.

하지만 난 그순간 마치 세계의 모든 시계가 멈춘듯한 착각에 빠졌다.

들리는건 내가슴속에서 쿵쿵거리는 심장의 고동소리와 가까이 느껴지는 그아이의 체온과 누구것인지 알



수없는 거친 숨소리......

그리고 내안 깊숙한 곳에서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묘한 짜릿함......



한동안 그렇게 멈춰있다가 서로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천천히 떨어졌다.

그리고 둘다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렇게 있다가 나와 그아이의 눈이 서로 동시에 마주치는 순간 참을수 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아이도 마찬가지로 누가 들을까 크게 웃지는 못하고 쿡쿡 거리며 벽에 기대어 웃어댔다.



나는 나직히 그에게 말했다.

" 미안...미안해......"



나는 비로써 그가 지금 누구보다도, 엄마나 가족과는 다른 먼가 특별한 존재라고 느꼈다.

이런 기분이, 지금과 같은 나의 이 감정이 소설이나 영화에서 말하는 연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일꺼라고 여기며 말이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를 나의 마음속에 받아드리며 고등학교 3학년 입시생의 시간을 시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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