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빛, 내 생명의 불꽃, ... - 14부

14. 재기



내 고향은 지리산의 끄트머리 한 자락에 둘러싸인 고즈넉한 분지에 자리잡고있다.

어릴 적부터 산과 함께 살아왔기 때문에 산이 없는 지역에 가면 뭔가 허전하고 정서적으로도 메마른 듯한 느낌을 받곤 했었다.

고향에 내려오자 물을 떠나있던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나도 점점 원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산이 그렇게 만들었다. 나는 매일같이 아침 일찍 일어나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을 먹고, 산에 오르며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내가 이렇게 자포자기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점점 강하게 자리잡기 시작했다.

한숨으로 지내셨을 어머니, 말씀은 없지만 큰아들이 빨리 중심을 잡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를 바라고 계실 아버지를 생각해도 이렇게 계속 불효를 저지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어느날 내가 두 분께 내 생각을 말씀 드리자 두 분 얼굴이 밝아지며 연신 격려해 주셨다.



“그래. 그래. 잘 생각했다. 그래야지.



나는 다시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향했다.

아버지께서는 텃밭을 팔아서 그 돈이 마련되면 올라가라고 했다. 나는 극구 만류하며 나에게 아직 퇴직금으로 받은 상당한 돈이 있으니 걱정 마시라고 거짓말을 했다.



나는 갑수에게 얼마간 돈을 얻어 옷을 사고 숙식을 해결하기위해 고시원에 들어갔다.

그리고 취업을 하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녔다.

IMF 이후에 중간간부급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남아돌고 구조조정 1순위라서 내 나이에 취업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내가 전에 근무했던 회사가 워낙 지명도 있는 회사였고 내가 눈 높이를 낮추자 몇 주만에 어렵사리 취업이 되었다.

직원이 200명 남짓한 중소기업을 조금 벗어나는 SI업체의 영업직이었다.

인사업무를 하다 본격적인 영업을 처음 하는 거라 어려움이 많았지만 다시 태어났다는 각오로 열심히 일을 했다.

몇 개월 고시원에서 구겨진 듯 생활하다가 돈이 모이자 원룸을 하나 얻어 들어갔다.

친구들, 동생들을 불러 집들이를 했다.

작지만 살림살이도 약간 장만했다.

집들이 할 때 내가 동생 진철에게 넌지시 전처 혜진에 대해서 물었다.

혜진은 나와 이혼을 하고 6개월쯤 지나서 아이들과 함께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다고 했다.

떠나는 날 그나마 제일 허물 없이 지냈던 진철에게만 전화로 통보하듯 알려주고 가버렸다는 것이었다.

이혼 이후에 처음으로 혜진에게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아무리 못된 남편이고 못된 아빠였지만 이런 식으로 핏줄의 인연마저 끊어버리려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며 씁쓸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벌레처럼 노숙을 할 때는 생각 자체를 안하고 살았지만 작고 단출하게나마 내 보금자리를 꾸미고 살다 보니 옛날 가정을 이루고 살 때의 생각이 자주 났다.

주희와 주영이 이제 고등 학생이고 중 학생일 텐데 얼마나 껐을까? 멀고 먼 외국에서 잘 적응하고 살고 있을까?

보고싶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지금도 아빠를 추악하게 여기며 원망하고 있을까?

털 끝 만큼이라도 나에 대한 그리움이 있을까?

혜진이는…? 용서 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민을 갔을 것이다.

외로움을 많이 느꼈다.

그러다 보니 전에 비해서 친구들을 많이 찾게 되고 동생들을 많이 찾게 되었다.

연말이 되니 나의 외로움은 더 커지고 있었다.

하루는 여동생 영미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술을 마시게 되었다.

내가 술에 취해서 그런 심경을 동생들에게 조금 내 비쳤다.

영미가 처음엔 위로를 해주다가 머뭇머뭇 말했다.



“오빠! 주희하고 주영이를 생각나는 것은 이해하지만 혜진 언니 생각은 잊어버리는 것이 좋을 거야.”

“……”



나는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사연이 있을 것 같은 생각에 머뭇거리는 영미에게 묻는 듯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오빠가 병원에 있을 때 엄마하고 나하고 혜진 언니한테 찾아갔는데 얼마나 수모를 당했는지 알아?”

“……”

“엄마가 울면서 사정하고 용서해달라고 했는데……”

“……”

“자기 인생에서 최대의 실수가 오빠를 만난 거래…… 지워버릴 수 있으면 다 지워버리고 싶데……”

“그럴 만도 할 거야. 나도 이해 해.”



내가 미온적이며 혜진을 변호하자 영미가 작정을 한 듯 말을 했다.



“흥! 그것 뿐인 줄 알아? 한 씨 집 식구는 이제 다시는 보기도 싫데…… 애들 성도 다 바꿔버릴 거래…… 나중에는 막 악까지 쓰면서 우리 아빠까지 들먹이며 아빠도 어린애한테 그런 짓 했냐고……”

“그만! 알았다. 그만 해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동생 집을 나오며 또 다시 실의에 빠졌다.

나 하나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욕을 보고 상처를 입고 아파했는가?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상처가 아물지 않아 아파하고 있는가?

죄없는 아버지까지 그런 치욕을 당해야 하는가? 한없이 희생만 하신 어머니까지 그런 치욕을 당해야 하는가?

한없이 초라해지고 한없이 자책을 했다.

며칠이 지나자 자책하는 마음이 혜진에 대한 분노로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다.

나의 실수가 큰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마음 속에서도 용서 못할 것인가 하는 반발심이 생겼다. 15년 가까이 살을 맞대고 살아온 정이 고작 그 정도 밖에 되지 않는가? 나에 대한 수모라면 감수를 하겠는데 내 부모에게… 자신도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부르던 내 부모에게 그런 모욕을 주다니……

내가 혜진에게 준 배신감보다 내가 받은 배신감이 더 크다고 생각되었다. 어쩌면 평생을 내 딸 내 아들에게 버려진 아빠가 될지도 모른다. 끝까지 인정을 못 받는 아빠가 될지도 모른다. 내가 여기서 더 이상 초라해지면 안되겠다 싶었다.

뭔가를 해야 한다… 뭔가 대비해야 한다… 그냥 평범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 그냥 안이하게 되는대로 나 하나 먹고 살만큼만 살아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할 수 있는 것은? 돈을 벌자… 주희, 주영에게 추악했지만 초라한 모습을 보이지는 말자. 그들이 필요할 때 그들이 필요한 것을 내가 갖추고 있어야 한다. 상황에 따라서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때를 대비하자. 어쩌면 내가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돈을 벌기로 결심했다. 악귀가 되어서라도 큰 돈을 벌자고 결심을 했다.

나는 태석을 만나야 겠다.

그를 만나 다리 가랑이를 붙잡고 사정을 해서라도 돈 벌 수 있는 방법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내가 다시 취업을 한지 6개월쯤 되는 시점이었다.



또 다시 해가 바뀌었다.

태석을 만났다.

태석이 안내를 한 일식 집에서 술을 마시며 내 심정을 이야기했다.



“태석아. 나 돈을 벌어야 겠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냐.”

“일을 하면 돈을 버는 거지 무슨 방법이 있겠냐.”

“그런 돈 말고 임마. 너처럼 큰 돈을 벌고 싶다고… 무슨 짓이든 할게… 악마에게 혼이라도 팔 수 있다.”

“이 새끼가 완전 오버하고 있네… 내가 임마 무슨 악마에게 혼을 팔고 나쁜 짓 해서 돈 번 줄 아네 이 새끼…”

“그럼 피라미드, 다단계 판매하는 것이 남한테 피해 안 주는 거야? 부동산은 부당 이득 챙겨서 큰 돈 버는 것 아니냐고?”

“내가 사기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냥 돌아가 새끼야”

“나 돈만 벌 수 있다면 그런 일이라도 하겠다고 새끼야.”

“이 새끼 이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와 함께 일 하려고 한다면 너야말로 사기꾼이다. 나는 사기꾼 하고 일 안 한다 임마.”



태석은 진심으로 기분이 나빠서 일어날 것 같은 기색이었다.

내가 누그러뜨리며 다시 붙잡고 이야기 했다.



“내가 너를 잘 못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럼 너 하는 일 좀 설명해 줘.”

“내가 처음에 시작한 다단계 판매는 남한테 피해를 주는 사업이었지… 지금은 안 해. 나도 자식 키우는 부모 입장이다. 나쁜 일 하면 자식이 잘 못 된다더라. 지금은 양심적으로 사업한다. 우리 일이 마진이 크고 자기 하기에 따라서는 큰 돈을 벌 수도 있지만 우리 고객에게도 그만큼 큰 이득을 주기 때문에 사업이 되는 것이다.”



이어서 태석은 계속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국토의 한계성, 토지에 대한 수요의 증가 등 부동산의 기본 개념부터 설명했다. 그리고 국토개발계획, 지가의 급등 사례와 유명 인사들의 투자 사례들을 이야기 하고 자기가 취급해서 오른 땅, 자기 고객에게 얼마나 큰 이득을 남겨주었는가 등등 태석의 설명은 끝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말문이 막히고 점점 태석의 말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내가 왜 여태 이런 세계를 모르고 있었던가 싶었다. 지금까지는 부동산 하면 아파트 정도만 생각했었는데 진짜 부자들은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또 다른 분야에 시야가 넓혀지는 것을 느꼈다.



“야! 정말 새로 눈을 뜨는 것 같다. 나는 여태 그런 것을 모르고 살았다.”

“그러니까 평범하게 사는 거지.”

“나도 부동산 일 해보고 싶다. 진심이다.”

“사실 나는 요즈음 무역업에 관심을 갖고 사업 하나 더 벌려보려고 하고 있다. 너한테 그 쪽 일을 도와 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보수도 넉넉히 줄 테니까 그 일을 해봐라.”

“나도 무역에 대해서 잘 몰라. 그것보다는 부동산 일을 하고 싶다.”

“그러면… 이왕 그런 생각이라면 내 친구라고 해서 특별히 봐 주는 것 없다. 다른 사람하고 똑 같이 처음부터 시작해라.”

“알았다. 나도 그게 더 좋다. 언제부터 출근하면 되냐?”

“내일.”

“내일은 너무 촉박하고 지금 직장 일도 마무리 해야 하니까… 좀 정리되면 연락하고 출근할게.”



이렇게 해서 태석과의 인연이 다시 시작되었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전 직장들에 비해서 생각보다 열악한 환경과 형편없는 수입이었다.

나는 가족이 없이 혼자만 먹고 살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지만 부양가족이 있었다면 힘든 상황이었을 것이다.

수시로 부동산에 대한 지식, 영업 정신에 대한 많은 교육이 실시되었다. 현장감 있는 교육으로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고 동기부여가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부동산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다 돈 버는 것 아니었고 철저한 영업정신과 자기 관리, 그리고 영업에 대한 열정과 정신력이 빚어내는 승부였다.

3개월째 되는 달에 나도 첫 계약이 이루어졌고 그 감개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주어진 수당은 작은 것이었지만 로또 복권 1등에 당첨이 되었어도 이 보다 기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 번 계약이 되고는 그 이후부터 봇물처럼 계약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부동산 입문 9개월 만에 내 집을 샀다.

그리고 바로 그 달에 부장으로 진급했다.

조직관리는 내 전문 분야다.

부장이 된 이후에도 내가 맡은 부서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3개월 만에 간부 한 자리가 공석이 되고 파격적으로 내가 그 자리에 발탁이 되었다.

회장인 태석이 직접 조회를 주관하며 200여명 되는 직원들에게 나를 소개했고, 뒤에서 쑥덕거리는 부장들이 있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나의 진급은 거기서 머물지 않고 계속되어 상무를 거쳐 전무까지 3개월 만에 한 번씩 이루어졌다.

그리고 부동산 입문 1년 6개월 만에 별도의 신설 회사를 만들어 나에게 사장 자리를 맡겨주었다. 나의 능력과 영업에 대한 열정을 태석이 인정해준 결과였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회사가 정상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매출이 늘어가기 시작할 즈음 어느날 갑작스럽게 검찰과 국세청에서 들이닥쳐 세무조사를 받게 되었다.

태석이 운영하는 다른 계열사에서 문제가 발생하여 수사를 하게 되었는데 여기에 함께 휩쓸려 조사를 받게 된 것이다.

무리하게 실적을 올리려다 개발계획을 과장해서 땅을 판 게 문제였다. 문제를 일으킨 계열사의 간부 몇 명은 구속이 되고 나머지는 풀려난 것이었다.

나도 검찰의 수사부서에 끌려가서 3일 동안 취조를 받은 다음 탈세 혐의로 벌금을 내고 풀려 나왔다.



그 동안 회사는 문을 닫았고 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태석과 상의를 해서 한달 정도 영업을 쉬기로 했다.

그 때도 내 재산은 꾀 모아져 있었다. 이미 직원 때 서울 요지에 30평 대 아파트를 마련 했고, 간부와 사장을 거치면서 직원들에게 많은 돈을 쓰기도 했지만 내 통장에도 차곡차곡 돈이 모아져 있었다. 태석과 약속하기를 어느 정도 자기에게 이익을 내 주면 회사를 전적으로 나에게 주겠다고 계약이 되어있으므로 내 사업체가 된 이후를 위해서 자금을 축적해 두는 것이 필요해서 였다.



악착같이 돈을 벌려고 열심히 일을 할 때도 가끔은 옛날 생각이 나곤 했지만 잠깐 스치고 지나가는 정도였다.

하지만 1개월을 쉬게 되자 주희와 주영이 생각이 간절했다.

그들이 살고있는 도시 이름도 주소도 모르는 채 무작정 뉴질랜드로 떠났다.

대사관에 들러서 그들의 주소를 알아내려고 했지만 사생활 보호라는 측면에서 절대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포기하고 관광만 하다 돌아왔다.

가까운 근처 하늘 아래 그들이 살고 있을 텐데 그냥 돌아와야 하는 심정이 안타까웠다. 벌써 운명의 그날 이후로 4년이 넘게 흘렀다. 지금쯤 주희는 대학생이 되어있겠지. 얼마나 예뻐졌을까? 주영이는 고등학생이 되었겠지. 키는 얼마나 컸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민서에게 생각이 미쳤다.

사실 그날 이후에 자주 민서 생각과 수경 생각을 했지만 나의 불행이 거기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생각날 때마다 애써 생각을 회피하고 말았었다. 또 한편으로는 수경의 입장에서 자기와 은밀한 사이이면서 자기의 딸에게까지 그런 짓을 한 것에 얼마나 배신감을 느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미안한 마음 뿐이었다. 그러던 것이 주희가 대학생이 되었을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민서도 대학생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장난처럼 묻어두었던 타임캡슐에 생각이 미쳤다.

그날 애틋했던 민서와의 일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민서를 원망할 일이 뭐가 있는가? 다 내 탓이지… 그래 민서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먼 발치에서라도 한 번 보자…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착잡한 마음 중에 가느다란 한 가닥 위안이 생겼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만 수경이 살던 집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내가 살았던 집 뒤편의 소나무는 건재해 있었다.

해가 지고 어스름해질 때 타임캡슐을 묻어두었던 곳을 파 보았다.

변화가 있을까? 민서가 그 후로 한번이라도 여기에 와 봤을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캡슐을 열어보았다.

종이 쪽지가 두 장이 나왔다.

나는 기쁜 마음에 불 빛이 있는 곳으로 뛰어 나와 한 장을 펴 보았다.

또박또박 여학생다운 예쁜 글씨체가 나타났다.



아빠!(그냥 아빠라고 부를게요.)

아빠! 죄송해요.

나는 너무 무서웠어요. 그래서 아빠를 위해 변명도 못했어요.

경찰 아저씨가 아빠한테 불리한 말을 물어볼 때도 아빠가 나를 위해서 그냥 대답하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아무 말도 못했어요.

내가 비겁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중에 엄마한테 사실대로 이야기 했어요. 아빠가 나한테 그런 것이 아니라고.

아빠가 싫다는 것을 내가 아빠한테 때를 써서 그랬다고 다 얘기 했어요.

아빠 잘 못 없다고 경찰관한테 말해달라고 했어요.

엄마는 나한테 무척 화를 냈어요.

그래도 나는 아빠를 위해서 사실대로 말을 했어요.

그런데 며칠 있다가 엄마가 나를 대리고 미국에 간다고 했어요.

미국에 있는 외할아버지 댁에 가서 다시는 한국에 안 오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경찰서에 갔다 왔어요.

어떻게 해요. 이제 아빠를 오래 동안 볼 수 없을 것 같아요.

아빠!

나는 미국에 가기 싫어요. 아빠가 있는 여기서 살고 싶어요.

하지만 미국에 가겠다고 엄마랑 약속했어요.

민서가 대학교 졸업하고 어른이 되서 돌아올게요.

민서는 아빠하고 한 약속 지킬 거니까 아빠도 꼭 약속 지켜야 해요.

아빠 안녕! 사랑해요.

xxxx년 xx월 xx일

민서가…… 사랑하는 아빠에게



나는 편지를 읽으면서 애틋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허탈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결국 다들 이렇게 떠나는 구나. 그래서 그때 내가 합의도 안 했는데 풀려났구나 하는 생각들이 뒤죽박죽 떠올랐다.

뒤에 기록된 날짜는 운명의 그날로부터 3주일 정도가 지난 뒤에 쓰여진 것이었다.

또 다른 종이는 민서와 함께 묻었던 그 서약서였다.

나는 다시 한번 서약서를 읽어본 다음 민서의 편지만 주머니에 넣고 서약서는 원래대로 묻어두기로 했다. 애들 장난 같은 이것이 어쩌면 민서와 나를 연결하는 끈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나의 새로운 이동 전화 번호를 적어서 넣어 두었다. 그리고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민서와의 유일한 통로라고 생각했다.

내 예상대로라면 민서는 지금 대학 2학년, 2~3년 후면 혹시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한편으로는 절망하고 있었다. 민서가 그때는 나이도 어리고 성적인 호기심을 나에게 표출한 것 뿐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민서는 나와 자기 엄마와의 일을 모르니까 그렇지 알면 이렇지 않을 거다 하는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업무에 복귀하여 회사를 열고 6개월 만에 태석과 약속한 이익금을 챙겨주고 실질적인 오너 사장이 되었다.

그리고 4개월 만에 순수한 내 자금력으로 회사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남들이 상상할 수 없는 빠른 성공이었으며 태석도 나에게 감탄하며 ‘역시 내가 생각했던 한진우다.’ 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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